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

   
장성익
ǻ
이상북스
   
18000
2020�� 10��



■ 책 소개


사람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문명의 뉴 노멀, 
우리 삶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하는 환경책읽기

이 책은 ‘환경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 30여 권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오랫동안 환경 관련 잡지와 출판사에서 일하고 환경을 비롯한 여러 주제로 책을 쓰고 만든 저자가 세월이 흘러도 사그라지지 않는 ‘녹색의 빛’을 발하는, ‘지금,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꼭 읽어야 할 환경 책’을 선별했다. 중요한 환경 관련 이론이나 사상을 선구적으로 설파한 책, 독창적인 녹색의 사유와 주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고정관념과 상식을 뒤흔든 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사는 방식을 익혀야 할 때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 익숙하게 길든 것들과 결별해야 할 때다. 필요한 것은 삶의 전환, 시스템의 전환, 문명의 전환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의 확산과 인식의 전환, 그리고 개인과 사회 모두의 생태적 각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생태적 인식과 실천의 뼈대를 세우고 새로운 지혜와 감수성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장성익
저자 장성익은 작가,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이다. 

저술 작업을 비롯해 대중 강연, 출판 기획, 학술 연구, 시민단체 활동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환경 관련 잡지와 출판사에서 편집주간을 지내는 등 환경을 비롯한 여러 주제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인간과 자연이 어깨동무하며 생명과 삶의 가치가 꽃피는 녹색 세상을 꿈꾼다.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 모두가 고루 나누고 함께 누리는 평등과 연대의 공동체를 소망한다. 앞으로 삶과 세상을 더욱 새롭고 깊게 보는 책, ‘다른 생각’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북돋우는 글을 많이 쓰려고 한다.

저서로는 『환경에도 정의가 필요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 새로운 삶의 지도』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자본주의가 쓰레기를 만들어요』 『다시 낙타를 타야 한다고?』 『생명윤리 논쟁』 『환경 논쟁』 『젠트리피케이션 쫌 아는 십대』 등이 있다.

■ 차례
책을 내면서

1부 지구에 울리는 비상벨
지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가이아》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녹색세계사》
생태학과 환경 공부의 길잡이 《원은 닫혀야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코로나19, 그 이전과 이후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인간이 만든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 《인류세》
저 목소리를 듣고서도 핵발전을? 《체르노빌의 목소리》
석유 없이 산다는 것은 《장기 비상시대》

2부 굿바이, 경제성장
시대의 ‘우상’을 무너뜨린 돌팔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경제발전이 가난을 없앤다는 거짓말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끝없는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성장의 한계》
자본주의 너머의 대안, 정치생태학 《에콜로지카》
현대의 모든 상식을 의심하라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미래는 어디에서 오는가 《오래된 미래》
‘녹색자본주의’는 없다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살아 있는 경전 《한살림선언》

3부 생명에 대한 예의
환경운동은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침묵의 봄》
채식을 권함 《동물해방》
숲이 시와 철학을 껴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땅은 인간의 것이 아니거늘 《모래 군의 열두 달》
느끼고 아파하고 기뻐하는 동물들 《소리와 몸짓》
사라지는 것들에 경의를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4부 삶의 대안을 찾아서
야생의 자유인으로 살기 《월든》
풍성하고 촉촉하고 둥근 시간을 찾아서 《시계 밖의 시간》
‘먹는다는 것’의 의미 《잡식동물의 딜레마》
약자들과 함께 부르는 사랑 노래 《우리들의 하느님》
과학기술을 넘어 ‘삶의 신비’로 《삶은 기적이다》
페미니즘과 에콜로지가 만나다 《에코페미니즘》
암, 석유문명의 저주?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들의 반란》
뿌리내리기 《또 하나의 일본》

5부 문학의 뜰에서 만나는 환경 이야기
내 영혼에 도토리를 심자 《나무를 심은 사람》
땅에 뿌리내린 자의 위엄 《땅의 혜택》
공해병의 진실을 캐다 《슬픈 미나마타》
늑대개 벅의 좌충우돌 야생 귀환기 《야성의 부름》
‘생태적 이상향’은 단지 꿈일까? 《에코토피아》
고래와 사람이 함께 쓴 감동의 생명 드라마 《지구 끝의 사람들》
아마존의 평화는 어디에?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이 책에 나온 도서 목록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


지구에 울리는 비상벨

지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가이아》

런던의 방공호 속에서

러브록은 지구 전체를 덮친 환경위기를 예민하게 감지했다. 그 위기의식의 산물이 이 책 《가이아》다. 1979년에 처음 출간됐을 때 이 책은 큰 충격을 던진 동시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구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지구를 그저 거대한 물질 덩어리쯤으로 여기던 현대 인류의 지배적 관념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구를 ‘가이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하며 지구와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혁명적 전환을 촉구했다. 오랜 고정관념에 돌팔매를 날리는 아주 과감하고도 선구적인 시도였다. 이 책이 환경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다. 이 책이 나온 뒤 ‘가이아’란 말은 생태주의자들이 지구를 지칭할 때 즐겨 쓰는 상징적인 용어가 되었다. 나아가 이 책이 제시한 가이아로서의 지구 개념은 이후 펼쳐진 다양한 환경 담론의 중요한 밑바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가이아란 뭘까?

가이아(Gaia)는 본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일컫는 말이다. 러브록의 지인으로서 《파리대왕》이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골딩이 이것을 책 제목으로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골딩은 책의 내용을 듣고서 왜 ‘대지의 여신’을 떠올렸을까?


러브록이 주창한 가이아란 한마디로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토양, 대양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다.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은 지구란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라고 역설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생물의 능동적인 조절작용이다. 책에 따르면 지구 생물권은 단순히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을 이어가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지구의 여러 물리적화학적 환경을 활발하게 변화시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다. 러브록은 앙상한 주장만 늘어놓지 않았다. 자신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와 사례들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가이아의 존재를 보여주는 유력한 방증의 하나로 내세우는 것은 지구 기후의 역사다.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35억 년 동안 지구 기후는 단 한순간도 생물이 생존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예컨대 과거 한때라도 바다가 완전히 얼어붙거나 또는 그 반대로 펄펄 끓었던 적이 있는가? 없다. 생물의 역사가 끊긴 적이 있는가? 없다. 35억 년 전 태양은 빛의 강도가 오늘날보다 약 30퍼센트나 약했다. 만약 지구의 기후가 오로지 태양열로만 결정된다면 생물이 맨 처음 탄생한 이래 약 15억 년 동안 지구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혹독한 기후 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화석기록은 물론 지금까지 생물이 지속해 생명을 유지해온 사실 자체가 그 증거다.


가이아는 스스로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주위 환경을 조절해왔다는 얘기다. 그것도 지구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정교한 조절 수단들을 두루 동원하면서 말이다. 생물계는 자신의 상태를 정상이나 최적으로 유지하려고 다양한 생리작용을 한다. 이 작용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도 복잡하고 미묘하다. 생물 자체뿐만 아니라 그 생물에 속한 신경계, 순환계, 소화계, 감각계 등은 모두 완벽하게 협력해 작동하며 신체를 정상 상태로 유지시킨다. 이것이 ‘항상성’(homeostasis)이다. 가이아도 마찬가지다. 가이아 또한 끊임없이 최상의 온도 조절 메커니즘을 추구해왔으며, 그 결과 아주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가이아 가설의 주장이다.


가이아를 둘러싼 비판과 논쟁

앞서 말했듯이 가이아 가설은 곳곳에서 비난과 반대에 부딪혔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주류 과학계와는 판이한 주장을 내놓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특히 진화학자들은 생명체가 지구 환경을 바꾸었다는 주장이 진화론의 검증된 이론와 모순되는 비과학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사악한 종교” “신비주의 사이비 과학” “종교의 탈을 쓴 과학” 등과 같은 비판도 쏟아졌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 욱 교수는 2018년 2월 <머니투데이>에 이렇게 썼다.


“1970년대를 통해서 가이아 가설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과학자가 아니라 신학자였다. 신학자들은 지구의 환경이 조화롭게 유지되었다는 사실에서 신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1970-1980년대에 유행했던 신비주의 신봉자들인 뉴에이지 그룹이었다. 이들은 마치 지구가 영적인 존재처럼 살아 있다는 주장에 끌렸다. 가이아 가설에 매료되었던 또 다른 그룹은 (역설적으로) 환경오염을 정당화하려던 기업가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조절하는 가이아는 인간의 산업 활동이 만들어낸 오염물질을 정화시키고 다시 평형과 균형을 되찾으려는 자체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가이아 가설은 이런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았다.”


가이아 가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이 책이 생태사상과 환경이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이아 가설은 지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끄는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가설에 기대서 말하자면, 최근 전 지구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살아 있는 유기체인 가이아가 자신을 망가뜨린 인간들에게 내린 ‘징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생태학과 환경 공부의 길잡이 《원은 닫혀야 한다》

환경문제를 명쾌하게 알고 싶다면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배리 카머너가 1971년에 펴낸 이 책은 환경이론의 강령적 지침을 제시한 ‘환경 교과서’의 전범으로 꼽힌다. 환경문제에 얽힌 중요한 사항들을 명료하고도 알기 쉽게 해설한 책이다. 책에는 모두 13편의 글이 실렸다. 출간된 지 제법 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 많다. ‘고전’의 면모를 갖췄다는 얘기거니와, 이는 이 책이 환경문제의 ‘근본 메커니즘’을 밝힌 덕분에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는 보편적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환경문제가 더 넓은 사회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환경위기는 정치적 위기이며 환경문제는 정치적 문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대목도 환경문제에 대한 저자의 이런 차원 높은 통찰이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그 덕택에 우리는 환경문제가 과학기술, 자본주의, 민주주의, 시민행동 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환경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해야 그 본질과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생태학의 네 가지 법칙

환경위기란 무엇인가? 이를 정확히 알려면 먼저 ‘생태권’(ecosphere)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장구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며 그 수와 다양성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이 네트워크는 주변 환경과 정교한 관계를 맺었다. 이 네트워크와 관계의 총체가 생태권이다. “생명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지구의 외피에 지은 집”인 셈이다. 생태학이란 이들 생명체 사이와, 생명체와 물리적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을 책은 “지구 환경의 살림살이에 관한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환경위기란 생명이 주변 환경과 맺은 이런 정교한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전체 생태권을 유지하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삐걱거리거나 심한 경우 완전히 멈춰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환경위기의 본질이다.


이 환경위기의 뿌리를 더듬다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생태학의 네 가지 법칙이다. 일찍이 카머너가 제시한 이 법칙들은 지금까지도 환경 공부의 길잡이 구실을 톡톡히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므로 잠깐 책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첫 번째 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everything is connected to everything else)는 것이다. 이 법칙은 자연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토대인 생태권에 존재하는 온갖 생명체, 개체군, 생물종과 그 주변의 물리화학적 환경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교하고 다양한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를 반영하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이 법칙이 설명하는 생태적 관계의 연결고리가 망가지는 것이 환경위기의 본질이다.


두 번째 법칙은 “모든 것은 어딘가로 가게 돼 있다”(everything must go somewhere)는 것이다. 이는 물질은 사라지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물리학 법칙을 쉽게 풀어쓴 것이다. 곧 자연에는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어떤 자연 시스템이든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배출된 노폐물이나 배설물은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생산과 소비 같은 인간 활동은 이 법칙에 어긋난다. 수많은 물질이 그냥 내버려진다. 그 결과가 환경위기다.


세 번째 법칙은 “자연에 맡겨두는 것이 가장 낫다”(nature knows best)는 것이다. 자연이 가장 현명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생물종은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쓸모 있는 유전적 부속품의 복잡한 집합체로 발전해왔다. 때문에 현존하는 생물종이나 이들이 살고 있는 자연 생태계는 오랫동안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해로운 것들이 계속 제거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최적’ 상태에 근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공적 변화는 그 규모와 범위가 크고 속도가 빠를수록 생명체의 생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살충제나 제초제 같이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기화합물이 대량으로 뿌려진 결과 일어난 생태 재앙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법칙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는 현대 기술이 환경위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해명해준다.


네 번째 법칙은 “공짜 점심 따위는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free lunch)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뭔가를 얻었다면 다른 어딘가에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앞의 세 가지 법칙에 담긴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 즉 지구 생태계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는 하나의 거대한 전체이고, 그 안에서는 어떤 것도 새롭게 형성되거나 사라질 수 없으며, 인간이 그로부터 뭔가를 끄집어내 사용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다른 뭔가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게 있다면? 그것은 단지 그 지불 시기가 연기된 것일 뿐이다. 지금의 환경위기는 그 지불 시기가 너무 늦어졌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생태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태원칙에 토대를 두고 사적 이윤의 창출보다는 사회적 효용이라는 새로운 기준에 맞추어 경제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책은 “생태적 사고가 경제적  정치적 사고를 이끌고 갈 때 비로소 우리의 생존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인류도 서로 연결돼 있으며 공동의 운명을 가진다. 세계가 환경위기로부터 살아남는 것은 인류 전체의 문제다.”


책의 메시지는 제목에도 담겨 있다. 원은 닫혀야 한다(원제도 ‘The Closing Circle: Nature, Man & Technology’다).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키게 된 것은, 생태계의 완전한 원을 이루는 순환의 연결고리 안에 있는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거기서 빠져나와 자연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예전에는 생태계의 일부였지만 이제는 그로부터 분리되었다. 둥글게 순환하는 원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말해 그렇게 원이 뚫려서 열리면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다시 원을 닫아야 한다. 지금 요청되는 것은 이를 위한 신속하고도 단호한 행동이다.



굿바이, 경제성장

자본주의 너머의 대안, 정치생태학 《에콜로지카》

파괴가 부의 원천이라고?

‘정치적 생태주의’쯤으로 해석되곤 하는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이 책에는 고르스가 역설한 정치생태학의 고갱이가 담겼다. 정치생태학의 출발점은 자본주의 비판이다. 고르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함으로써 인간으로부터 ‘주체’를 빼앗아간다. 이에 맞서 인간은 자율성을 회복하고 주체를 되찾기 위한, 즉 참된 인간해방을 위한 실존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 투쟁의 과정에서 그가 도달한 것이 정치생태학이다.


지구를 망가뜨리고 모든 생명의 자연적 기반을 훼손하는 행위를 막으려면 자연과 인간의 노동을 비롯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기존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변혁해야 한다. 그는 특히 탈(脫)성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변화에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 다른 생활방식, 다른 사회적 관계, 다른 문명이 전제된다. 이를 위해 전면적인 생태혁명, 사회혁명, 문화혁명, 삶의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 전략이 정치생태학이다.


《에콜로지카》는 고르스가 다양한 자리에서 발표한 6편의 텍스트(머리말을 포함하면 7편)를 자신이 직접 골라서 엮은 책이다. 그 내용을 내 나름으로 재구성해 분류하면 크게 세 덩어리의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의 실체 규명과 비판이고, 두 번째는 인간 주체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이 두 가지 논의의 결론이자 대안인 정치생태학에 관한 구상이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통합돼 있다.


그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지본주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무언가를 많이 필요로 하기를 요구한다. 나아가 필수적인 것 속에 불필요한 것도 최대한 집어넣고, 상품의 폐기 속도를 가속화하고, 그 내구성을 감소시킨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필요를 가능한 한 최대의 소비로 충족시키라고 강요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일회용 포장, 폐기처분된 기계와 금속, 쓰레기와 함께 태워버린 종이, 깨져서 수리 불가능한 도구, 노동재해를 입은 사람들과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필요로 하는 보철구나 의료 서비스로 인한 생산 증가 등”을 포함해 생산과 구매가 양적으로 늘어나기만 하면 무조건 국가적 부가 증대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해서 파괴는 부의 원천이 된다. 부서지고 폐기되고 내다 버린 모든 것은 새것으로 대체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생산과 상품 판매, 화폐 거래, 이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GDP 증가와 경제성장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몸을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것마저도 그것이 약과 의료 서비스 소비를 증가시키는 한 부의 원천으로 계산된다. 파괴가 늘어날수록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 이런 ‘괴물’이 필연적으로 망하지 않는다면 이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리라. 이것이 고르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이다.


덜 일하고 덜 소비하자

다음은 정치생태학의 인간 이야기.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자본주의 아래서는 인간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 고르스는 “우리는 주체로 태어난다”고 선언한다. 인간이란 “남들이나 사회가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허용하는 존재로 축소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에게 자본이 강요하는 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다. 한편으로는 자본에 복무하여 보상받는 기능적 노동의 자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에 복무하는 소비를 위한 자리다.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지급받는 월급과 구매하는 상품에 동시에 의존하는 자본의 ‘고객’으로만 규정”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사람들은 자본에 의해 매개되는 실존 외에는 어떤 사회적  공적 실존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고르스가 제시하는 인간론의 바탕이자 전제는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이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뜻하는 바는 뭘까? 그것은 자본이 소비에 대해 행사하는 장악력에서, 또한 자본의 생산수단 독점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들은 거대기계를 이룬다. 모든 사람은 그 기계에 종속된 노예다. 그는 기계가 우리에게 어떤 목표를 추구해야 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정해준다고 표현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


생태문명을 위한 민주주의의 길

그러므로 다시 중요한 것은 돈벌이 경제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신 사회 전체적으로 늘어나야 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이 적용되지 않는 활동 영역이다. 이에 고르스는 그 자체로서 목적인 활동에 바칠 수 있는 ‘자유시간’을 부의 진정한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가 내놓은 대안이 ‘생존소득’이다. 이는 최근 큰 주목을 모으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개념이다. 생존소득의 목적은 인간의 활동을 고용의 독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즉 실업자나 고용 불안정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을 팔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정신적 풍요와 참된 행복을 위한 활동들을 훨씬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고르스는 이런 활동의 하나로서 이른바 ‘내재적 부’를 만들어내는 것을 중시한다. 그가 언급한 내재적 부란 생활환경의 질, 교육의 질, 연대관계, 상부상조 조직, 공통의 상식과 실질적 지식의 확산, 일상의 상호작용 속에 반영되고 펼쳐지는 문화 등을 가리킨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게 있다. 고르스가 기존의 주류 환경보호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유가 뭘까? 정책을 시행하는 주체인 국가는 기업이나 소비자 개개인에게 자신의 조치에 따르라고 생태적 규제를 가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각종 금지, 행정적 법제화, 세금 부과, 보조금과 범칙금 부과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규제에는 물론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고르스가 우려하는 것은 그럴 때 발생하는 효과가 사회적 삶에서 타율 규제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녹색자본주의’는 없다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자본주의는 ‘녹색’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녹색성장 따위와 같은 사이비 환경주의의 본질과 실체를 파헤쳤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생태사회주의자 혹은 ‘녹색 좌파’라 부름직한 저자들이 겨냥하는 과녁은 자본주의 자체다. 수많은 환경주의자가 외쳐대는 생태위기의 뿌리에는 자본주의가 있으며, 그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태혁명’이라고, 이들은 힘주어 말한다.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본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이윤 추구와 자본의 무한 축적을 위해 경제를 끊임없이 팽창시켜야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성인 탓이다. 이를 이루려면 자연을 끝없이 착취하고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노릇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환경문제는 인간의 무지나 탐욕의 결과가 아니다. 기업의 소유자나 운영자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도 아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얼마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환경문제는 또한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없거나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무엇보다 ‘구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책에 따르면 생태 파괴란 자본주의의 생산 및 분배 체제의 내적인 본성과 논리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이 역설하는 생태혁명이란 뭘까?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을 바탕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 인간과 환경 사이의 합리적 물질대사를 통해 생태적 가치를 실현하는 동시에 경제적  사회적 정의를 고무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생태혁명이다. 이는 사회관계를 변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태혁명은 경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문화도 변혁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다른 이들과 인간으로서 관계 맺는 방식과, 더 넓게는 우리가 지구와 관계 맺는 방식 또한 변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문제에 대한 기술적인 접근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를테면 탄소배출거래제나 온실가스총량거래제, 보다 효율적이고 청정한 에너지의 생산과 이용,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선전되는 핵발전, 마법의 탄환과도 같은 신기술 도입 등은 실제로는 생태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이 모두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논리를 따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지적한다.


“끊임없이 더 큰 규모로 자본 축적을 추구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 체제, 따라서 지구상의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가격을 지닌 상품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이 체제에 영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생태혁명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 책은 이 혁명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생태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결합시키는, 그리하여 평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말이다. 생태위기를 극복할 급진적인 체제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


‘녹색소비’에 얽힌 불편한 진실

함께 읽기에 잘 어울리는 책이 있다. ‘녹색소비’와 녹색자본주의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 《에코의 함정》(Green Gone Wrong, 이후)이 그것이다.


기후변화니 에너지위기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당신은 살짝 이런 생각을 떠올릴지 모른다. 음, 환경위기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군. 그러면서 주위를 쓱 둘러본다. 이른바 ‘친환경’ 제품이 차고 넘친다. 유기농 먹거리와 공정무역 제품을 비롯해 녹색건축, 녹색자동차, 녹색패션, 녹색투자 따위로 녹색 상품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긴 하다. 하지만 나름 교양 있고 양심적인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당신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러고는 만족감이나 자부심 비슷한 걸 느낀다. 그래, 나도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야.


그럴까? 이 책에 따르면 그건 착각이다. 자신의 생활방식 자체를 희생할 마음은 없이 단순한 소비 행위로 손쉽고 편안하게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건 ‘게으른 환경주의’ 혹은 ‘안락의자 환경주의’다. 쓰레기 문제를 심층 추적한 《사라진 내일》(Gone Tomorrow: The Hidden Life of Garbage, 삼인)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저자 헤더 로저스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의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녹색 탈을 쓴 소비 자본주의’의 실체를 해부했다.


이를테면 유기농을 한번 따져보자. 파라과이의 대규모 유기농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화학물질을 뿌리지는 않지만 유기농의 본령에 어긋나는 단일경작을 한다. 유기농 작물 재배지를 확장하느라 숲을 파괴하기도 한다. 반면에 유기농 정신을 충실히 지키는 소규모 생산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다. 이는 유기농 시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자본논리에 유기농이 종속된 탓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구조와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혁이다. 앞의 책이 주장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이를 위해 중요한 일은 성장의 개념 자체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중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다. 책이 소개하는 하나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독일 프라이부르크 생태마을이다. 이곳의 성공 비결은 다른 게 아니라 주민들의 능동적 참여와 자치를 골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참된 ‘녹색’을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은 삶의 전환과 단호한 정치적 실천에서 나온다.


‘녹색’과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녹색성장’이 그렇듯 ‘녹색자본주의’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둥근 삼각형’이 가능한가? ‘뜨거운 얼음’이 가능한가? 이 책은 자신을 그런대로 괜찮은 ‘녹색시민’이라고 안이하게 자족하거나 허술하게 착각해온 우리의 타성적 사고에 끼얹는 한 바가지 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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