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김정후
ǻ
21세기북스
   
19800
2020�� 07��



 ■ 책 소개


도시재생은 소외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런던 도시재생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사람 
런던을 통해 우리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다 

흔히 도시재생을 소외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한다. 외형이 화려하고 기술적으로 정교하더라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장소는 쇠퇴하고 만다. 

런던의 도시재생이 지향하는 가치도 바로 ‘사람’이다. 런던은 전통 건축유산을 보존하면서 과거와 현대를 조화시키고, 도시 전체를 함께 발전시켜 어느 곳 하나 소외받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이는 경제적 손익만을 따져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다. 

런던의 도시재생은 현재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처음에는 ‘점’에 불과했던 파괴된 건축물의 복원은 런던의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는 하나의 ‘선’이 되었으며, 런던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까지도 걸어서 이동하며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도보 권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확장은 런던 전체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면’으로서 진화 중이다. 

런던의 도시재생은 더 이상 소외된 공간이 없는,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런던의 도시재생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정치인, 전문가,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고 그 범위도 계속 확대된다는 점에 있다.

물론 런던의 도시재생을 모든 도시가 따라야 할 해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시재생의 방법은 각 도시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 과정에서 런던 또한 크고 작은 실패도 경험했다. 그러나 런던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했으며, 반성하고 실천했다. 이것이 오늘날 런던의 도시재생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런던의 도시재생에서 우리 도시의 미래를 찾아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 저자 김정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후 런던정경대학(LSE) 사회학과에서 런던의 도시재생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과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도시학, 사회학, 지리학, 경제학을 넘나들며 도시와 건축의 본질을 탐구한다. 

자치단체, 연구기관, 기업의 도시·건축·디자인 정책과 프로젝트를 폭넓게 자문하고, 유럽 주요 도시에서 인사이트 트립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카드가 후원하는 도시재생 사회 공헌 연구의 책임을 맡아 진행 중이고, 영등포 대선제분과 부산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도시재생사업을 자문하고 있다. 

‘제32회 경기건축대전 대상’과 현실비평연구소 주최 ‘제2회 비평상 공모전 건축 부문 1등’을 수상했고,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작가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서울포럼)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효형출판) 『유럽의 발견』(2010, 동녘)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2013, 돌베개)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는 런던대학(CITY) 문화경제학과에서 유럽과 아시아 도시에 대해 연구 및 강의하고, 영국과 한국에서 제이에이치케이 도시건축정책연구소(JURL)를 운영 중이다. 또한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도시재생추진단장과 국제 도시재생심포지엄 위원장도 맡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왜, 런던인가 

1.사우스 뱅크, 모두를 위한 휴식처이자 아지트 
성공 후 예상외의 답보 
공동체를 거쳐 문화예술 활성화로 
걸으며 즐기는 복합 문화예술지구 
템스강의 발코니 
모두를 위한 런던의 휴식처이자 아지트 

2.테이트 모던, 삶과 예술을 품은 문화 기지 
수변과 산업유산의 잠재력 
역사를 존중한 건축가 
터빈 홀, 모든 것을 수용하는 무한의 공간 
미술, 음악 그리고 휴식이 어우러진 외부 공간 
일상으로 스며든 현대미술관 

3.밀레니엄 브리지, 런던 남북의 진정한 통합을 향해 
두 런던의 불편한 동행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건축, 구조, 조각의 하모니 
하나로 묶인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 
21세기 런던의 역동적인 무대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위대한 조연 

4.런던시청, 수변 재생의 꽃을 피우다 
모어 런던 
새 시대를 여는 가장 시청다운 시청 
템스강변의 공공공간 
도시재생의 새로운 이정표 

5.샤드 템스, 런던의 보물로 변한 화물 창고 
예술가의 아지트로 
창고 중심 수변 공간의 활성화 
단일함에 담긴 다양함 
샤드 템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 

6.파터노스터 광장,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공공공간 
고전과 현대의 충돌 그리고 패착 
‘큰’ 실패가 준 ‘큰’ 교훈 
조화로움과 공공성 
시민들을 위한 오아시스 

7.올드 스피탈필즈 마켓, 매력적인 도시형 재래시장 
가난한 지역에 자리 잡은 재래시장 
진화하는 도시형 재래시장 
시장을 넘어 지역의 중심으로 
현대 도시 속 재래시장의 역할 

8.브런즈윅 센터, 이상적인 도시형 주상복합 공동체 
미완의 실험 
본래의 근대건축 비전으로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개방성과 편의성 
도시재생으로 마침내 완성한 주상복합 공동체 

9.런던 브리지역, 기차역이 실어온 활성화의 원동력 
런던 브리지역의 가능성과 잠재력 
수직도시와 수평도시의 어우러짐 
새롭게 태어난 매력적인 거리들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하는 구심점 

10.킹스 크로스, 하나씩 맞춰가는 21세기 런던의 퍼즐 
최고의 역세권을 향해 
한 장으로 제시한 ‘과정’의 중요성 
두 개의 역이 연출하는 서막 
산업유산의 거듭된 화려한 부활 
콜 드롭스 야드, 런던의 새로운 아지트 
킹스 크로스의 새로운 심장부 
21세기의 런던다움을 완성해가는 

에필로그 런던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주석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사우스 뱅크, 모두를 위한 휴식처이자 아지트

모두를 위한 런던의 휴식처이자 아지트

런던시민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우스 뱅크에 오면 눈, 귀, 코, 입 모두가 즐겁다!” “사우스 뱅크에 오면 머리와 가슴이 맑아진다!” “사우스 뱅크는 언제나 새롭기에 설렌다!” 사우스 뱅크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우스 뱅크에는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영화가 있고, 문학이 있고, 축제가 있고, 음식도 있다. 사우스 뱅크의 외형은 이미 50여 년 전에 갖추어졌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이다. 즉 과거에도 음악, 미술, 영화, 문학, 축제, 음식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지금처럼 편하게 즐길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사우스 뱅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치밀하게 노력한 결과다. 그러므로 이렇게 표현하면 조금 더 정확하리라 생각한다. 사우스 뱅크에는 최고 수준의 음악, 미술, 영화, 문학, 축제, 음식이 있고, 이 모든 것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거리와 공간이 있다.


흔히 도시재생을 ‘소외된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라 표현한다. 그렇다면 사우스 뱅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이라 부를만하다.


아이, 청소년, 젊은이에서 중년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콘서트홀과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들부터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까지, 영화와 시에 대한 자료를 찾는 학생들에서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까지, 한마디로 사우스 뱅크는 모두를 위한 런던의 휴식처이자 아지트다. 



테이트 모던, 삶과 예술을 품은 문화 기지

21세기에 도시재생과 관련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는 무엇일까? 객관적인 통계는 없지만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라는 대답에 아마도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개관한 이래로 데이트 모던은 국내·외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큰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개관한 지 20년이 지났으니, 이제 테이트 모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평가가 가능하다.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과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은 오랫동안 영국을 대표해온 문화예술의 양 축이다.


1759년에 설립된 영국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국립 공공박물관으로서 전 세계 문명에 관한 800만 점 이상의 작품을 보유하고, 1824년에 설립된 국립미술관은 13세기 중엽부터 1900년대까지의 주요 유럽 회화 2300여 점을 소장한다. 명성과 소장품의 수준에 걸맞게 두 박물관은 해마다 600만 명 전후의 방문객이 찾는다. 조금은 변동은 있지만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방문객 수다.


이러한 상황에서 테이트 모던의 등장은 영국박물관과 국립미술관으로 대표되는 런던의 문화예술 지형에 변화를 몰고 왔다.


개장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연평균 방문객 600만 명을 돌파해 단숨에 2위권 대열에 합류했다. 미술관이 국제적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10여 년 이상이 필요한 만큼, 테이트 모던이 이룬 성과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름이 의미하듯 테이트 모던은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영국박물관, 국립 미술관과 함께 문화 예술의 시대적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즉 영국박물관, 국립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각기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통해 문화예술 도시로서 런던의 위상을 더욱 공고하게 확립했다.


오늘날 테이트 모던은 미술품을 전시하는 장소로서의 가치를 훌쩍 넘어선다. 문화예술공간이 쇠퇴한 장소, 나아가 지역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테이트 모던은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템스강 남북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영국의 대중지 《타임 아웃(Time Out)》을 포함한 각종 언론의 조사에 따르면 테이트 모던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 남북의 진정한 통합을 향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위대한 조연

오늘날 다리 디자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공법과 첨단 재료가 적용되는 만큼, 드러난 결과물 또한 무척 화려하다.


이에 반해 밀레니엄 브리지는 최근에 건설된 다른 다리들과 비교해 외형적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 대신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을 보행자 전용 거리로 편안하게 연결함으로써 오랫동안 단절된 템스강 남북을 어우르고 런던을 통합하는 출발점을 만들었다.


특히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런던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한 부유한 시티 지역과 가난한 서더크 지역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밀레니엄 브리지가 낳은 성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흔히 영화나 스포츠에서 ‘위대한 조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들은 주인공과 비교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영화의 성공과 경기의 승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역할을 소화한다. 포스터가 처음부터 의도했듯이 밀레니엄 브리지는 절제되고 소박한 모습으로, 런던의 상징인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 모던을 빛내는 조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만약 밀레니엄 브리지가 없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개념으로 디자인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변화와 그에 따른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21세기 런던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견인하는, 주연을 능가하는 위대한 조연이다.



런던시청, 수변 재생의 꽃을 피우다

도시재생의 새로운 이정표

전통적으로 템스강을 대표하는 수변 공간은 서쪽의 사우스 뱅크 지역이다. 테이트 모던을 중심으로 한 뱅크사이드 일대도 런던시청에서 서쪽 방향으로 아래쪽에 자리한다. 이것이 바로 템스강변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지에 런던시청이 건립된 목적이자, 그 존재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사우스 뱅크와 테이트 모던 주변은 현재 복합 문화예술지구로 성장 중이다. 따라서 위쪽에 자리한 런던시청은 사우스 뱅크에서 테이트 모던을 거쳐 런던시청까지 이르는 거대한 ‘수변 공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현 시점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템스강 남쪽 전체를 연계하는 거대한 수변 산책로다. 머지않아 런던 시민과 방문객은 템스강 남쪽 전체를 걸으면서 런던을 즐기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런던시청뿐만 아니라 주변은 관공서와 사무공간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공공공간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독창적인 도시재생의 이정표를 세웠다.


런던시민들에게 시청은 단순히 민원을 상담하고 처리하는 장소로 존재하지 않는다. 런던시청은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 그리고 건강한 세상을 위해 함께 공유하는 메시지를 얻는 장소다. 과연 전 세계에서 이보다 더 멋진 시청이 어디에 있을까.



샤드 템스, 런던의 보물로 변한 화물 창고

샤드 템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

지도와 사진으로 19~20세기 템스강 남쪽의 모습을 살펴보면 산업도시로서 런던의 위용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강변을 따라 자리 잡은 일련의 산업시설은 한마디로 장관을 이루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위성사진으로 템스강 남쪽을 살펴보면 구역별로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다. 과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예외적인 지역이 한 곳이 있는데, 바로 샤드 템스다. 적어도 외견상 이 지역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이것이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샤드 템스만의 매력이다.


도시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쇠퇴와 마주한다. 쇠퇴한 지역에 남은 과거 유산을 활용할 것인가, 아닌가는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모두 헐고 전면 재개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적어도 샤드 템스는 기존의 산업유산과 주변 공간을 보호하고 재활용하는 것으로, 완전히 새롭게 조성하는 것 이상의 장소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도시재생의 구체적인 대안과 가시적 성과를 낳았다.


살기 좋은 도시, 즐길 만한 도시, 걷고 싶은 도시, 매력적인 도시,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도시 등등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의 비전은 다양하다.


샤드 템스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시민과 방문객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 지역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샤드 템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은 도시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도 접근 방식에 따라 가능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샤드 템스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수의 산업용 건물이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이제는 대기 중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흥분되고, 설렌다.



파터노스터 광장,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공공공간

조화로움과 공공성

2003년에 새로운 파터노스터 광장과 주변 건물이 완공되었다. 기존에 18층에 달했던 건물은 모두 5층 규모로 줄어들었고, 철저하게 고전적 비례와 형태를 따랐다. 부지 내에는 단 한 대의 차량도 진입할 수 없고, 저층부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포함한 쇼핑몰을 조성하고, 상층부는 사무공간과 주거가 자리한다.


한마디로 새로운 파터노스터 광장 프로젝트의 핵심은 광장과 거리이고, 이를 토대로 보행자 중심의 장소를 철저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최고 수준의 공공성을 지향한 것이다. 저층 고밀 주상복합으로 계획된 상태에서 파터노스터 광장은 공간적 중심을 이루었고, 분절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연스럽게 여섯 개의 새로운 골목길이 조성되었다.


비록 건물 사이의 좁은 통로이지만 양옆에 자리한 건물의 충고가 높지 않고, 가운데의 열린 광장으로 향하기에 답답하기보다 숨통이 트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와 같은 공간 구성을 통해 주변의 모든 방향에서 파터노스터 광장으로 쉽게 걸어서 진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롭게 조성된 보행로가 세인트 폴 대성당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최고 수준의 공공성을 확보했다.


특히 양쪽에 자리한 건물 사이의 틈새로 드러난 세인트 폴 대성당, 특히 최상부의 돔이 발산하는 시각적 아름다움은 ‘프레임 효과’를 통해 시선을 압도한다. 이것은 단순한 건축적 감흥을 넘어 현재가 과거를 존중하는 감동적인 모습이다. 기존의 고층으로 구성된 건물군이 세인트 폴 대성당의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했었기에 현재의 모습은 더욱 값진 결과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파터노스터 광장은 세련되고 아늑하다. 파터노스터 광장을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것은 열주로 이루어진 ‘아케이드(arcade)’다.


광장의 안쪽에 만들어진 아케이드는 세인트 폴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부지로 진입하는 주 동선인 파터노스터 로우 및 보행로와 연결된다. 상대적으로 큰 스케일의 원형 열주를 이용해 아케이드를 설치함으로써 광장과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분위기를 갖추었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보행자의 흐름을 유도한다.


파터노스터 광장은 기본적으로 거주자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휴식공간이지만 특별한 기획 행사를 개최하는 공공공간으로서 더욱 각광받는다.


파터노스터 광장이 음식을 파는 장터로,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야외 공연장으로, 각종 놀이를 위한 행사장으로 사용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사회적 울림을 만드는 의미 있는 행사도 개최된다.


한편, 기존의 세인트 폴 대성당과 새롭게 조성한 파터노스터 광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또한 중요한 화두였다. 여기에는 ‘템플 바 게이트(Temple Bar Gate)’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템플 바 게이트는 도시에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구조물로서 1672년에 렌이 플리트 거리(Fleet Street)에 디자인 했다.


새롭게 파터노스터 광장을 계획하면서, 템플 바 게이트가 세인트 폴 대성당의 앞쪽에서 파터노스터 광장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문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본격적인 복원을 진행했다. 이는 파터노스터 광장 주변 건물의 대부분이 신축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렌이 설계한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그가 디자인한 문을 통해 새로운 광장으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템플 바 게이트를 통해 파터노스터 광장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신축한 건물 다음에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가 자리한다.


렌과 그의 아들이 디자인한 챕터 하우스는 1940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고전 건물이다. 챕터 하우스를 보수해 파터노스터 광장과 면하게 함으로써 주변의 신축 건물과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21세기에 새롭게 탄생한 파터노스터 광장과 주변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본 부지가 민간 소유이고, 철저하게 민간 주도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선 실수를 반복하지 않더라도 현재보다 훨씬 더 상업적이거나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런던의 위용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모습으로 재탄생했고,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에 소중한 공공공간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의미 있는 부분은 본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들이 전체의 조화를 위해 적극 협력했다는 사실이다. 각기 다른 성향의 건축가가 디자인했지만 마스터플랜을 중심으로 합의한 가이드라인을 충실하게 따랐기에 놀라울 정도의 공간적, 시각적 통일성을 확보했다.


파터노스터 광장과 주변 거리가 높은 수준의 보행 환경을 성취한 비결은 개별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하나의 장소를 만드는 데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 매력적인 도시형 재래시장 

현대 도시 속 재래시장의 역할

활성화에 성공한 재래시장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각기 다른 맥락과 조건을 가진 현대 도시에서는 재래시장의 역할이 모두 다르므로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을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리적, 공간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은 본래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연계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더욱 분명하다. 지난 15년여 동안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을 관찰하면서 시장 자체도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주변 일대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시장을 찾는 유동 인구가 늘어나며 침체된 주변 상권이 자연스럽게 활력을 되찾고, 새로운 주거와 공공공간도 계속 늘어난다. 원론적으로는 쉽지만 실제로 성취하기 어려운 도시재생이 낳은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다. 350년이 넘은 재래시장이 지역 발전의 중심에 있으니 얼마나 더 성공적일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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