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행복에 관한 수많은 담론과 주장, 각종 처방이 넘쳐나는 시대에 철학자의 시각에서 행복 방정식을 풀어낸다. 저자는 진정한 행복은 무한대의 욕망 충족이나 다수가 원하는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완전한 자유에서 출발한 ‘실험적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가능함을 역설한다. 즉, 인간 존재의 완전한 개별성이야말로 행복의 제1조건이다. 풍요로운 삶, 걱정 근심이 없는 삶, 다수가 원하는 삶이 행복의 표준처럼 굳어진 시대에, 이 책은 정말 행복하려면 먼저 다수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 저자 김요한
저자 김요한은 전북대학교 철학과에서 서양 고·중세철학, 예술철학, 사회철학, 프랑스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전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그리스 아테네대학교에서 서양 고대철학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벨기에 루벵대학교K. U. Leuven 고·중세 연구소에서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 철학을 주제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지은 책으로는 《단숨에 이해하는 자유론》 《예술의 정의》 《서양 고대 그리스와 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감정이해》(공저) 《명예란 무엇인가》(공저) 《인문고전읽기》(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숀 세이어즈의 플라톤 국가해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입문》 《롤스의 정의론 입문》 《밀의 자유론 입문》(공역)이 있다.
■ 차례
저자의 말
서론_행복, 인간의 궁극적 목적
1부 행복의 조건
01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02 삶의 부조리와 행복
2부 행복과 자유
03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
04 자유와 권위의 투쟁사
05 관습의 힘
06 물려받은 유산으로서 신념
07 단순한 하나의 원칙
08 자유와 강제
3부 행복의 본질적 요소로서 개별성
09 개별성과 행복
10 개별성과 관습
11 개인의 가치
12 창조성
13 삶의 선택
14 관습의 독재
15 행복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라
주
참고문헌
행복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라
행복의 조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나는 소비한다, 고로 행복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길 싫어한다. 물질적인 욕망과 그것의 충족을 통한 만족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돈, 음식, 권력 등)을 어느 정도 소유하게 되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받아들인다. 욕망의 실현은 만족을 주며 이런 만족이 축적되면 행복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욕망은 고통을 주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더 많은 욕망을 가질수록, 그 욕망을 채울 능력이 크면 클수록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욕망이란 좋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행복의 이상이 되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행복하다.
욕망의 충족은 쾌락을 가져다주고 쾌락은 행복을 구성한다.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쾌락을 하나의 권리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성적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병으로 간주되어 여러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그런 성적 불감증을 치료하는 데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이를 매우 중요한 권리나 인간의 정체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에는 인간의 본질에 이런 말초적 쾌락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인간의 삶에는 다른 고차적인 목적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완수해야 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살면서 자신의 구원을 얻기 위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위대한 일을 성취해야 하며, 지상에서 신의 대리자인 왕을 섬겨야 했다.
공격성과 순수성
욕망의 좌절은 지나친 억압으로 인해 생겨난다. 우리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이 풍부하다면 남의 것을 훔칠 필요도 없고 남을 해칠 필요도 없다. 또한 자연스럽게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인간은 성폭력을 자행하거나 사디스트처럼 성적으로 타락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사람은 절대로 폭력적일 수 없다. 이 때문에 인간에 내재한 악의 근원은 가부장적인 사회,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의 강요된 권위적 교육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적인 교육은 사람들의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우리를 순종적으로 만들고 노동을 강요한다.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려면 도덕적 억압이나 검열을 제거하고 물질적 풍요와 부의 균등한 분배가 실현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좌절과 폭력이 사라진다. 악한 행동을 금지하기 위해 더 이상 도덕이나 법이 요구되지 않고 사람들도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지 않는다.
억압적 교육
야생동물들은 오직 먹을 것을 찾거나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서만 파괴적일 뿐이다. 동물들은 인간처럼 재미로 또는 개인적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는다. 요즘에 분노 조절 장애로 일어나는 묻지마 폭행 사건들을 보면 이런 인간의 공격 충동이 제어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인간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려면 교육을 통해서 이런 공격 충동을 억제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도덕이나 윤리 의식, 종교가 존재한다. 교육은 공격 충동을 억압하는 훈련이며 이 공격성이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도록 유도한다.
또한 인간은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도덕 교육만으로는 타인을 존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적인 강제나 물리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그 결과 교육과 문명은 강제적일 수밖에 없다. 억압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정글이 되거나 폭력과 공포가 난무하는 아노미 사회가 될 것이다.
행복과 자유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서 행복
무엇이 기쁨이고, 어떤 상태가 불행일까?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는 물질적인 쾌락을 기쁨의 출발점으로 제안한다. 즉 물질적 만족을 기쁨의 원천으로 생각한다. 물질적 만족을 높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밀은 물질적 만족이 행복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자기 존재에 긍지를 가질 때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때 가장 행복하다. 이 자긍심은 각자의 내면세계가 성장하면서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또한 밀은 자기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자립적인 능력, 이성적 자세, 관용적인 태도, 다양한 방면에 대한 관심, 타인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과 동정심을 갖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조건들을 관통하고 있는 밀의 행복 개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행복이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생각이다. 독일의 휴머니즘 철학자 훔볼트는 "이성이 명령하는 것, 즉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각자가 타고난 능력을 가능한 끝까지 최대한 발전시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밀과 훔볼트는 여기서 두 가지를 가정하고 있다. 첫 번째로 인간의 발전이 삶의 목표이면서 동시에 행복 그 자체라는 점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 그 자체다. 두 번째는 인간의 발전은 각자가 타고난 개성대로 자유롭게 추구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능력들이 발전되어야 할까? 밀은 우선 지적인 능력을 제시한다. 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내재적인 가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감각적인 기쁨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 하지만 밀은 지식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능력의 발전도 중시한다. 또한 밀은 인간의 도덕적 성숙을 발전의 한 요소로 제안한다. 지성과 감성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도덕적 의식이 발전할 때 진정한 자기 발전이 완성된다.
자유의 중요성
밀은 자신의 행복론을 이렇게 규정한 뒤 <자유론>에서 개체성과 사회성이라는 두 발전 개념에 주목한다. 개체성과 사회성은 밀이 정의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 조건들이다. 그런데 지성과 감성, 그리고 도덕성을 포괄하는 능력의 계발이 행복의 요체라고 할 때, 개체성이 좀 더 중요하다. 인간은 제각기 타고난 소질에 맞게 정신적, 도덕적, 미학적 능력을 발전시켜야 행복해진다.
다시 말하면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특별한 삶의 계획을 실현해나갈 때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첫째, 각 사람은 스스로가 그 계획을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각자가 자기 힘으로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밀의 행복 개념은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밀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때, 즉, 인간 본성의 완성을 통해서 행복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밀은 인간에게 행복은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특유한 소질과 능력, 즉 개체성을 발휘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훔볼트의 입장을 더 옹호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밀은 개체성이 갖는 자유가 행복에 이르는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행복의 구성 요소라고 주장한다.
관습의 힘
밀은 어떤 사람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얼마만큼 강제로 제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는 법을 통해 또는 여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일정한 행위 규칙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로 부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행위 규칙들 때문에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회사의 회식에 가야 하나, 근무시간 외의 미팅에 참가해야 하나, 다들 야근을 하는데 나만 정시에 퇴근해도 될까와 같은 수많은 갈등이 생겨난다.
살다 보면 주변과의 조화 때문에 몇 가지 행위 규칙들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과연 어떤 행위 규칙들이 강제되어야 할까?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여태껏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변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다양한 사회들이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간섭의 규칙들을 세우면서 자신에게 익숙한 규칙들을 자명하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밀은 이 보편적 착각을 관습의 마술적 효과라고 부른다. 이 마술적 효과는 그 관습들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관습은 어떻게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밀은 철학자들의 책임이라고 싸잡아 비난한다.
철학자들은 이런 주제들에 대해 감정적 판단이 이성적 판단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며, 이성적 판단은 완전 불필요한 것이라고 대중들이 믿도록 조장한다. 그 근거로, 우리가 서로 유사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이 감정들은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보편적인 것으로 쉽게 믿기 때문에 그런 감정들이 우리 행위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치적 이념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일단 편견을 갖게 되면 쉽게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 편견을 정당화하는 핵심적 근거를 논박하는 증거를 제시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라고 요구할 때 그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실은 단 하나뿐이다.
일단 이와 같은 정당화가 시작되면 반증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우선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인 변명을 붙여 그것을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한다. 만일 우리가 반드시 올바르다는 생각을 고집하면 불가피하게 독선에 빠지게 된다. 자신감과 확신이 오류 가능성의 수용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건전한 자기 확신과 오만을 가르는 선을 쉽게 넘게 된다.
자유와 강제
개인적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
밀은 인간 자유의 고유한 영역으로 불리는 세 가지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자유의 영역은 의식의 내면적 영역이다. 예를 들어 양심의 자유, 사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실천적/사색적/과학적/도덕적 또는 신학적 주제 등에 대한 모든 의견과 감정의 절대적 자유를 요구한다.
두 번째 자유의 영역은 기호를 즐기는 자유와 목적을 추구하는 개인적 행동의 자유다. 비록 우리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스럽거나 기이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보일지라도, 우리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서 우리 자신의 개성에 적합한 인생 계획을 설계하고 초래될 결과를 감수한다는 조건하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한다. 세 번째 자유의 영역은 개인 간의 결사의 자유다. 타인을 해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든 단결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밀에 따르면 이런 자유들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자유라는 이름에 합당한 유일한 자유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을 탈취하려고 시도하거나 행복을 성취하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다.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념들을 근거로 일정한 형태의 제약들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예를 들어, 청교도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이 생각할 때 어떤 것이 우리에게 좋을 것이라는 호소는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아주 교활한 방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개별성에 가해지는 실제적인 피해가 모호하게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조건 개인주의적 가치를 숭상해야만 할까? 밀은 혹시나 개별성과 기괴함(eccentricity)을 구분하고 있지 못한 걸까? 우리는 독특한 개성과 다양한 삶의 방식을 모두 편견 없이 바라보고 전부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자신만의 선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각자가 알아서 선을 판단한다면, 과연 확실한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인간을 개나 돼지처럼 미련한 동물로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참된 이익을 찾는 일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행복의 본질적 요소로서 개별성
개별성과 행복
밀의 <자유론> 3장은 개별성의 예찬이라는 별칭을 붙일 수 있다. 그는 인간과 사회가 다양한 형태의 품성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하며, 서로 상충하는 수많은 방향으로 인간 본성을 확장하기 위해 완전한 자유를 허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다. 밀의 견해에 따르면, 개인들은 관습적인 규범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같은 것을 읽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것에 희망을 걸고 공포를 느끼며, 같은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그것들을 같은 방법으로 주장하면서 살아간다.
차이와 개별성의 힘
밀은 <자유론> 3장에서 인간이 갖는 차이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지 주장하고 있다. 그런 차별화된 개별성의 발전을 위해 자유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문명의 조건은 우리로 하여금 남들과 똑같이 살도록 강요하고 사회의 일반적 합의에 복종하도록 위협한다.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문명 속에서 경제적 이익 추구라는 좁은 영역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 문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하며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명의 성장을 통해 권력은 개인으로부터 대중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개인의 중요성은 점차 약화되었다. 대중이 개인의 삶을 지배하면서 개인은 더 이상 행위 주체가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 시대는 본질적으로 타산적이고 반이성적이며 정열이 없는 시대요, 일시적으로는 열광에 휩쓸리지만 영리하게도 태만 속에 빠진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생존하고 싶어 하지만 인간으로서 실존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자유론> 3장에 제시된 개별성의 증진은 어떻게 우리가 행복을 발전시킬 것인지 제시하는 <공리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누리려면 사회는 각 개인이 자신의 개별적인 능력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항상 타인이 규정한 전통과 관습을 따르도록 강요받는다면, 개인적/사회적 진보의 구성 요소뿐만 아니라 인간 행복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결여하게 된다.
이를 위해 밀은 다양한 실험적 삶들이 시도되어야 하며, 다양한 품성이 사회 안에서 자유롭게 수용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성격과 자유로운 시각을 통해 누구나 자신에게 적합한 생활양식을 시도함으로써 그 가치를 실천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결국 개인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 타인이 세운 전통과 관습이 행동규범으로 지배하는 곳에서는 인간 행복의 주요 요소이자 개인과 사회 발전의 핵심 요소인 개별성을 상실하게 된다.
개별성과 관습
관습과 전통 vs. 욕구와 충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자발성이 어떤 본질적 가치를 갖거나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재 살아가는 생활양식에 만족하기 때문에 왜 그런 생활양식이 모든 사람에게 나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간의 목적이란 "이성의 명령에 의해 인간의 능력을 최고로 가장 조화롭게 발달시켜 완전하고 일관된 전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빌헬름 폰 훔볼트의 주장에 공감할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들의 품성과 행동이 서로 동일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다양성을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양성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개인이 자신의 인생행로를 선택할 때 앞선 인간 경험을 참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은 다양성보다는 일반성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관습과 전통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는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들은 여전히 그것들의 옳음과 지혜를 평가해야 하며, 그것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적합한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나아가 관습과 전통은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관습은 좁은 범위 내에서 형성되었거나 올바르지 않은 해석에 기초할 수 있다. 둘째, 관습의 일반적 해석은 정확하지만 나 개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관습이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고 나 개인에게도 적절하더라도, 관습은 관습이기 때문에 그것에 단순히 순응하는 일은 인간의 특징으로서 어떤 자질도 교육하거나 발달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욕구와 충동에 따라 열정적으로 행동하라고 충고하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욕구와 충동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따라서 강렬한 충동이 잘못된 목표나 연약한 성향 속에서 발달한다면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강한 충동은 전통적으로 위험과 함정으로 간주된다. 적극적인 자기표현보다는 자기 절제가 좀 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욕구가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제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은 강한 충동을 가진 사람들이 약한 충동을 가진 사람보다 더 많은 선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좀 더 많은 선은 나태하고 무감각적인 본성이 아니라 활동적인 본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을 가진 사람은 항상 자신의 수양된 감정을 가장 강력한 감정으로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욕구와 충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은 개별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욕구와 충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은 속도는 빠르지만 공장에서 똑같이 만들어진 자동차처럼 개별성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한발 더 나아가 충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활력적인 개별성을 가진 것이다.
삶의 선택
올바른 삶은 다양한 형식으로 변형될 수 있으며, 이 세상은 엄청나게 다양한 삶들을 담아내기에 유익한 장소다. 밀은 또한 오직 천재들만이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상당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때, 그가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방식대로 설계하는 일이 최고인 이유는, 그것이 그 자체로 최고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한 기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모형에 따라 획일화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 발달을 위해 역시 다양한 조건을 요구한다. 모든 다양한 식물들이 동일한 물리적 환경과 기후에서 똑같이 건강하게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도 동일한 도덕적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고귀한 본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에게는 방해가 될 수 있다.
밀은 여기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들에게 적합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둘째, 한 사람에게 좋은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셋째, 한 사람이 선택한 삶은 그 자신이 그것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이다.
밀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동물과의 차이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다와 선택을 잘한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 혹은 그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에 대해서 잘못 판단할 수 있다. 또한 항상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에게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객관적으로만 좋은 생활 방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밀은 한 사람의 선택이 바로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선택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자율성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선택의 가치를 가장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율성의 행사라는 조건하에서는 그 어떤 기괴한 삶의 선택도 모두 허용되고 그 선택지들이 선택 주체들에게 최선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까? 밀은 "만일 어떤 사람이 꽤 많은 정도의 상식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에"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따라서 무의미하거나 도가 지나친 선택은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좋은 것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가정도 세 번째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된다. 밀은 한 사람의 선택이 실천적 지혜를 결핍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은 타인이 말한 선의의 충고보다 자신의 실수를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일상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어떤 삶의 방식은 실험적인 삶을 위해서, 즉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측면에서 아주 새롭고 값진 탐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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