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찾은 자유

   
장자 원저(역:정유희)
ǻ
생각정거장
   
15400
2017�� 04��



■ 책 소개

 

지식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기 위해

 

우리는 왜 자유롭지 못할까? 장자는 ‘의존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질에 연연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지식과 예술에 기대어 살아간다. 장자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선 모든 상대적인 기준을 넘어 무위(無爲)의 경지에 올라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선과 악, 삶과 죽음, 쓸모와 쓸모없음을 초월한 단계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다투고 화해하게 되며, 문화를 향유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장자 역시 이를 간과하지 않았기에 우화의 형식으로 현실 세계의 다양한 문제와 처세술에 대해 논했던 것이다. 외부에 의존해서는 참된 자유와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없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다운 나로 살아가기 위한 ‘장자의 지혜’를 지금 만나 보자.

 

■ 저자 장자(원저)
원저자 장자(莊子)는 장자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다. 장자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부자유(不自由)’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가 ‘의존’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장자는 인간이란 자연의 운행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혼돈과도 같은 자연과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치 말고, 무한을 유한으로 그리지 않고,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았을 때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老子)의 사상을 이어받아 도가사상(道家思想)을 대성시킨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정확한 생몰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기원전 369년 즈음 태어나 기원전 300~280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장자가 저술한 최초의 『장자』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답을 아는 이는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장자』는 진나라 곽상이 정리한 것으로 총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저자 뤄룽즈
저자 뤄룽즈(羅龍治)는 국립타이완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립타이완과학기술대학교에서 부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진사과와 당나라 시대의 문학 사회』『당나라 시대의 후비와 외척』『물처럼 흐르는 정감』『광표영웅의 비극』『역사의 약서』『운수지록(雲水之緣)』『자줏빛 꿈』 등 다수가 있다. 장자 원문을 가장 충실히 살린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왕숙민(王叔岷)의 『장자교석(莊子校釋)』을 비롯해 곽경번(郭慶藩)의 『장자집석(莊子集釋)』, 왕선겸(王先謙)의 『장자집해(莊子集解)』 등을 토대로 장자의 메시지를 가장 쉽고 명쾌하게 담은 우화들을 선별해 이 책을 집필했다.

 

■ 역자 정유희
역자 정유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중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방송국 토크쇼와 인터뷰 번역, 방송 자막 번역 활동을 했으며,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맥을 잡아 주는 세계사』『유대인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장자, 지혜롭게 경영하라』『역사가 기억하는 유럽의 변화』『자화상전』『직원을 움직이는 따뜻한 말 한마디』『맛, 예술로 버무리다』『미학 산책』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들어가며

 

제1편 소요유: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거대한 새|붕을 비웃는 참새|매미와 바다거북|바람을 타고 다니는 열자|천하를 거절한 허유|고야산의 신녀|옷 장수와 월나라 사람|혜시의 조롱박|쓸모없는 가죽나무|송나라 사람의 비방
제2편 제물론: 편견에서 벗어나 세상 만물의 상대성을 깨닫다
대지의 피리 소리|하늘의 피리 소리|누가 주재자인가?|서시는 미인일까?|조삼모사|거문고 연주를 그만둔 소문|혜시가 오동나무에 기대다|장자는 말을 한 것인가 하지 않은 것인가?|왕예는 모른다|여희의 눈물|장오자의 꿈|그림자의 그림자|장주의 나비 꿈
제3편 양생주: 생명이 가지고 있는 본래 의미에 대하여
포정이 소를 잡다|다리가 하나인 사람|새장 속의 꿩|자연의 형벌불씨는 계속해서 옮겨진다|양생의 비결
제4편 인간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마차를 가로막은 사마귀|호랑이 사육사|말을 사랑한 사람|토지신의 나무|강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괴인 지리소|초나라 미치광이 접여|기름은 스스로를 태운다|안회의 심재|냉수를 마시는 사람
제5편 덕충부: 육체적 결함과 진정한 덕에 대하여
절름발이와 꼽추|사람은 무정한가?|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발가락이 없는 사람|공자의 인기|자산을 꾸짖은 신도가
제6편 대종사: 본받을 만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과 도가철학이 말하는 성인
강과 호수에서 잊다|자연은 힘센 장사|네 명의 친구|테두리 안과 테두리 밖|도의 가르침 속에서 서로를 잊다|군자와 소인|슬퍼하지 않는 맹손재|자연의 변화|앉아서 잊다|자상이 가난함을 노래하다
제7편 응제왕: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와 제왕의 자질에 대하여
마음에 얽매임이 없는 왕|바닷속에 들어가 강을 파다|현명한 군주|영험한 무당|혼돈의 죽음
제8편 변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의 중요성에 대하여
여섯 번째 손가락|도를 어지럽히는 것들|오리의 짧은 다리|양을 잃은 양치기백이와 도척
제9편 마제: 인위적인 행동으로 타고난 본성을 해치지 말라
백락의 잘못
제10편 거협: 타인의 재물을 탐하는 자는 왜 생겨나는가
도둑을 막을 대책|제나라를 훔친 전성자|도둑에게도 도가 있다|조나라의 맛 좋은 술|제후가 된 대도|지혜의 함정
제11편 재유: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유유자적한 삶
황제가 광성자에게 묻다|자연의 벗
제12편 천지: 자연의 이치에 대하여
현주를 잃은 황제|밭에 물을 주는 노인|우리 속의 맹수
제13편 천도: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특별한 경지에 오르다
북을 치며 도둑을 쫓다|성인을 소와 말로 여기다|수레바퀴를 만드는 노인
제14편 천운: 우리가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
맹수에게도 사랑은 있다|서시를 흉내 내는 동시|갈매기와 까마귀|새와 벌레의 풍화|공자가 용을 보았다|하늘, 땅, 해, 달
제15편 각의: 자연에 기대지 않고도 유유자적한 마음의 경지에 오르다
강과 바다 없이도 한가롭게 살기
제16편 선성: 주어진 본성을 닦으며 선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
주객전도|산속에 거하지 않는 은사
제17편 추수:좁은 고정관념 속에 갇히지 말지어다
물고기의 즐거움|썩은 쥐를 먹는 솔개|진흙탕 속의 거북이|우물 안의 개구리|한단의 걸음걸이|대롱과 송곳으로 천지를 헤아리다|성인의 용기|바람과 샘|하백과 해신의 대화
제18편 지락: 삶과 죽음, 인위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
장자가 악기를 두드리다|버드나무가 생긴 팔|장자가 꿈에서 만난 해골|음악을 싫어하는 바닷새|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
제19편 달생: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들에게 듣는 자연의 이치
매미 잡는 노인|배를 다루는 신기한 기술|황금을 내기로 걸다|양치기|제단에 올리는 희생|환공이 만난 귀신|기성자가 기른 싸움닭|폭포 아래에서 헤엄치는 사람|재경이 종의 틀을 만들다|동야직이 몬 마차|공수의 손가락|술에 취해 마차에서 떨어진 사람
제20편 산목: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도덕 안에서 노닐다|북궁사가 만든 종 틀|샘물이 달면 먼저 마른다|옥을 버린 임회|가시덤불 사이에 선 장자|제비가 대들보 위에 둥지를 짓다|매미를 노린 사마귀|미모의 첩은 사랑스럽지 않다
제21편 전자방: 도가 철학에 통달한 성인들의 이야기
벌거벗은 화가|백혼무인의 활쏘기 솜씨|백리해가 소를 키우다|순임금이 우물을 고치다|장장인의 낚시|진정한 유학자|머리를 감은 노자|왕이 되길 원치 않은 위문후|범국은 존재하지도 망하지도 않았다
제22편 지북유: 자유를 향한 철학, 도가에서 말하는 도의 본질에 대하여
도는 똥오줌에도 있다|허리띠 고리를 만드는 사람|광요와 무유|도를 가질 수 있을까?|지식과 도|지식을 초월하는 도
제23편 경상초: 노자의 제자 경상초를 통해 배우는 지혜
후예의 재주|도의 가르침으로 참새를 잡다|명성을 피한 경상초
제24편 서무귀: 인위적으로 살지 말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라
장석과 영나라 사람|서무귀가 개와 말을 감정하다|성현의 가르침보다 재미있는 도 이야기|황제가 목동에게 도를 묻다|구방인이 관상을 보다|오왕이 원숭이를 쏘다
제25편 칙양: 국가를 올바로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달팽이 뿔 위의 두 나라|누가 강도인가?|공자가 태사에게 묻다|환중의 도
제26편 외물: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
장주가 양식을 빌리다|임공자가 대어를 낚다|유생이 도굴하다|영험한 흰 거북이|자연의 쓸모|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
제27편 우언: 도를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
도를 얻는 단계|얽매이지 않는 마음|양주가 도를 배우다|공자, 예순에 얻은 깨달음
제28편 양왕: 헛된 부귀영화를 좇지 않고 본분에 만족하는 삶
안합의 이사|가난한 열자|양을 잡는 사람|벼슬을 거부한 안회|눈처럼 흰 자공의 옷
제29편 도척: 도둑과 공자와의 대화
공자, 대도를 만나다
제30편 설검: 검객을 좋아한 조나라 왕의 이야기
검술에 빠진 조문왕|위대한 검객 장자|장자의 세 가지 검|검객이 모두 죽다
제31편 어부: 어부에게 가르침을 받은 공자 이야기
여덟 가지 허물과 네 가지 걱정|그림자를 싫어하는 사람
제32편 열어구: 삶과 죽음을 넘어 자유로운 경지로
용을 잡는 기술|여의주를 깨뜨리다|제물이 된 소|장자가 죽음을 맞이하다|말할 수 없는 도|묶이지 않은 배|열자가 자신을 드러내다
제33편 천하: 도가사상의 철학자들에게 배우는 지혜
방술과 도|관윤과 노자의 깨달음|장주의 깨달음|혜시의 방술그림자와의 달리기 시합




내 안에서 찾은 자유


소요유: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봉을 비웃는 참새(소마작자명득의)

참새가 구만 리 하늘 꼭대기를 날아가는 봉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붕새 저 녀석은 구만 리나 되는 높은 곳까지 힘들게 날아갈 게 뭐람? 나는 땅에 있다 날고 싶으면 여기저기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다고! 어떤 때는 저 높은 느릅나무까지 날아오르기도 하고, 나무 위까지 오르지 못하면 그때는 다시 땅으로 내려오면 그만이지, 이렇게 풀밭과 숲속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는 것도 대단한 재주라고!"


→ 참새의 재주, 지식, 경제는 모두 봉과는 다르다. 참새는 자신의 경지로는 결코 봉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를 비웃은 것이다. 사람은 각기 지닌 것이 다르다. 그러니 우리도 참새를 비웃을 필요가 없고, 봉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양생주: 생명을 가지고 있는 본래 의미에 대하여

다리가 하나인 사람(일척각적인)

공문헌이 처음에 우사의 다리가 하나뿐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어찌된 사람인가! 대관절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가!"


후에 그가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하다 마침내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사는 다리가 하나뿐이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것이지 누군가 그의 다리를 잘라낸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역시 자연에 부합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다리가 두 개라는 사실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다리가 하나인 사람을 보면 그에게 인위적인 결함이 있다고 오해하기 마련이다. 장자는 이는 선입견에 따른 잘못된 판단이라고 일깨워 준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두 다리가 한 개라면,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두 개인 사람을 보면 부자연스럽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한 개, 두 개, 심지어 지네처럼 여러 개라도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양생은 어느 한쪽 다리 혹은 양쪽 다리를 가꾸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덕충부: 육체적 결함과 진정한 덕에 대하여

사람은 무정한가?(인시무정적마)

혜시가 장자에게 물었다. "사람은 무정한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다네."


혜시가 물었다. "사람이 무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람이 무정하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장자가 말했다. "내가 말한 무정은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함과 싫어함으로 양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게. 이는 자연의 정(情)과 맞지 않기 때문이네."


→ 인위적인 감정에는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다. 이런 감정은 두루 미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자연의 정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없기에 두루 미칠 수 있다. 두루 미칠 수 있으니 오래갈 수 있다.



응제왕: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와 제왕의 자질에 대하여

바닷속에 들어가 강을 파다(해중착하)

견오가 미치광이 접여를 찾아갔다. 접여가 물었다. "지난번 중시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던가?"


견오가 대답했다. "그가 말하기를 임금이 자신이 정한 법도와 관례로써 천하를 다스려야만 백성이 순순히 따르고 교화된다라고 했습니다."


접어가 말했다. "그것은 거짓된 도리이지 참된 도리가 아니다. 그렇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바닷속에 들어가서 강을 파는 것이며,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우는 것과 같아서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 인위적인 법도는 임시 혹은 과도기에 쓸 수 있을 뿐이다. 태평성대라는 이상에 이르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연의 법도로써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사회가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자연의 법도로 다스리려 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거협: 타인의 재물을 탐하는 자는 왜 생겨나는가

도둑을 막을 대책(방도술)

사람들은 좀도둑을 막기 위해 보석이 든 상자를 잠그고, 금덩이를 자루에 담아 그 입구를 단단히 묶는다. 그러고는 도둑을 막을 안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여기에 흐뭇해한다.


그러나 큰 도둑은 보석과 금이 든 상자와 자루를 통째로 등에 지고 달아난다. 도둑은 달아나면서 오히려 상자의 고리가 헐겁게 잠긴 것은 아닌지, 자루가 열리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도둑을 막는 방법은 정말 지혜로운 것일까, 아니면 어리석은 것일까?


→ 본장의 제목 거협은 상자를 연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혜로움이 오히려 재앙을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도난 대책을 세워도 도둑이 사라지지 않으면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본편은 문제를 대할 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재유(在宥):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유유자적한 삶

자연의 벗〔自然的友伴(자연적우반)〕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지극한 사람의 가르침은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에 울림이 따르는 것과 같이 질문이 있으면 반드시 대답하고,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반응을 한다.


그의 형체는 자연과 하나를 이루기 때문에 움직임을 멈추어도 소리가 없고, 움직여도 흔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미혹과 혼란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이끌어 도의 길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자기의 형체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옛날의 군자이다.

자기의 형체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자연의 벗이다.


→ 사사로움이 없고 자아가 없어야 자연의 도에 부합한다. 사람의 형체는 자연 변화 속의 한 가지 형식일 뿐이다. 만약 자신에게 형체가 있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사사로운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천운: 우리가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

갈매기와 까마귀(해구화오아)

공자가 노담을 찾아가 인의를 논했다.


노담이 말했다. "갈매기는 날마다 목욕해서 하얀 것이 아니며, 까마귀는 날마다 검은 물을 들여서 저리 검은 것이 아닙니다. 검은 것과 흰 것 모두 자연의 본질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흰 것이 예쁘고, 검은 것이 예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를 깨달은 사람이 볼 때, 인의로써 선악을 구분하는 선생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 노자의 인의는 세속의 인의를 뛰어넘은 더 높은 경지에 속한다.



추수: 좁은 고정관념 속에 갇히지 말지어다

물고기의 즐거움(자비어언지어지락)

어느 날, 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다리 위를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물속의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군.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지!"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는가?"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알지 못하네. 그렇다면 자네도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네."


장자가 말했다. "그게 아니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 보세. 자네는 이렇게 말했지.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는가? 이 말을 할 때 자네는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내게 물었던 것이지. 그러니 지금 자네에게 내가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지 알려주지. 나는 호수의 다리 위에 서서 그 사실을 알았네."


→ 마치 말장난처럼 보이는 변론 속에 매우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곱씹어 볼 내용이 많다. 사람은 타자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의문을 제기했지만, 혜자 또한 장자가 아니므로 장자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장자는 되묻는다. 혜자는 논리적인 추론 방식으로 생각을 전개했지만, 장자는 혜자의 모순을 딛고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장자는 대자연으로부터 얻은 지혜, 만물과 호응하는 능력으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지락: 삶과 죽음, 인위와 자연에 대한 이야기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인불생불멸)

열자가 산길을 걷다가 풀밭에서 해골 하나를 발견했다.


열자가 덤불을 젖히고 해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와 나만 알고 있지.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것을 말일세. 죽어 있는 자네는 고통스러운가? 살아 있는 나는 지금 즐거운가?"


→ 생사를 잊어야 즐거움을 논할 수 있다. 지극한 즐거움은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지 않은 것이며, 즐거움을 잊는 것이다.



달생: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들에게 듣는 자연의 이치

기성자가 기른 싸움닭(기성자양두계)

기성자가 주나라 선왕을 위해 싸움닭을 길렀다. 열흘 후, 선왕이 물었다.


"닭은 어떤가?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기성자가 말했다. "아직 아닙니다. 닭이 자기 기운만 믿고 투지가 높습니다."


열흘이 지나서 선왕이 다시 기성자에게 물었다.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도 안 됩니다. 다른 닭의 그림자를 보거나 울음소리를 들으면 곧 싸우려고 덤벼듭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서 선왕이 물었다.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사방을 노려보는 것이 아직도 기세가 등등합니다."


열흘 후 선왕이 물었다. 기성자가 대답했다. "거의 되었습니다. 닭이 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나무로 깎은 닭과 같습니다. 이제 외부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왕은 그 닭을 투계장에 보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이 닭을 보자 다른 닭들은 겁에 질려 허겁지겁 뒷걸음질 쳤고 어느 하나 덤비지 못했다.


→ 싸움에 무심한 닭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공격한다. 상대가 한번 건드리면 그 몸 안에 응집한 에너지가 바로 폭발한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높은 경지에 오른 검객은 검을 차고 있지 않아도 언제든 적을 제압한다.



산목: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샘물이 달면 먼저 마른다(감정선갈)

공자가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다가 진나라와 채나라 국경 사이에서 포위되어 이레 동안 밥 지을 불을 지피지 못했다. 대공임이 찾아와 공자의 안부를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거의 죽을 뻔 하셨더군요."


공자가 말했다. "그렇소." 대공이 물었다. "선생님은 죽는 것을 싫어하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소."


대공이 말했다. "일전에 죽음을 피하는 법을 알려 드리지 않았나요? 동해에 의태라는 새가 있는데 아무 재주도 없습니다. 하늘을 날려면 다른 새들이 끌어 주어야 합니다. 땅에 머물 때는 새떼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먹이를 먹을 때도 감히 다른 새들과 다투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이 새를 해치지 않습니다. 가지가 곧게 뻗은 나무가 먼저 베이고 샘물이 달면 먼저 마르는 법입니다. 이는 너무나 분명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이 하는 행동은 지혜라는 빛을 높이 들고 다른 사람의 때를 들추어서 자신의 깨끗함을 뽐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겁니다."


공자는 크게 깨닫고 제자들을 떠나 홀로 산속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 지혜를 밖으로 드러내면 사람들의 두려움과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일을 할 때 종종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지북유: 자유를 향한 철학, 도가에서 말하는 도의 본질에 대하여

도는 똥오줌에도 있다(도재시닉)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대체 도란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도는 없는 곳이 없습니다."


동곽자가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십시오."


장자가 말했다. "도는 땅강아지나 개미 몸에도 있습니다."


동곽자가 물었다. "어찌 그런 천한 곳에 있을 수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도는 돌피나 피에도 있습니다."


동곽자가 물었다. "어찌하여 점점 비천해지는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도는 벽돌과 기와에도 있습니다."


동곽자가 물었다. "어떻게 점점 더 심하게 내려갑니까?"


"도는 똥과 오줌에도 있습니다." 동곽자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제야 장자가 설명했다. "그대의 질문은 도의 본질과는 너무 멉니다. 도의 관점에서 만물을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땅강아지나 개미, 돌피나 피, 벽돌과 기와, 똥과 오줌 모두 같지요. 이것들이 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도는 없는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 세인들은 도를 지나치게 고상하게 생각한다. 사실 만물은 모두 도의 변화이기 때문에 귀천의 구별이 없다. 동곽자는 장자가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오해했다. 장자의 비유는 갈수록 비천해지는데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생한 예를 통해 설명하는 것은 도를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외물: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

장주가 양식을 빌리다(장주대속)

장자의 집은 매우 가난했다. 어느 날 그는 김하후를 찾아가 양식을 빌려 달라 청했다.


김하후가 말했다. "알겠소. 허나 내가 지금은 돈이 없으니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고 나면 그때 선생에게 삼백 금을 빌려주겠소."


장자가 말했다. "제가 어제 이곳으로 오는 도중 누군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뒤돌아보니 길가에 패인 바퀴자국에 누운 물고기가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물고기는 금방이라도 말라죽을 것 같았습니다. 물고기는 저에게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 없으니 남쪽 오왕과 월왕에게 가서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바다로 보내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차라리 내일 아침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는 게 나을 것입니다."


→ 이치는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반드시 주어진 상황에 맞아야 한다. 엉뚱하게 상황을 과장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양왕: 헛된 부귀영화를 좇지 않고 본분에 만족하는 삶

벼슬을 거부한 안회(안회불상주관)

공자가 안회에게 물었다. "회야, 이리 오너라. 너는 가난하여 거친 음식을 먹고 지내는데 어째서 벼슬을 하지 않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벼슬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게는 성 밖에 오십 무의 땅, 성 안에 열 무의 땅이 있습니다. 그 땅에 농사를 지어 죽을 끓여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성 밖에도 열 무의 땅이 있어서 뽕나무를 심어 옷을 지어 입고 신발을 만들어 신을 수 있습니다. 한가한 때가 되면 거문고를 연주하고 선생님과 도에 관해 이야기하지요. 이렇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굳이 벼슬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만족할 줄 알고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명예와 봉록을 위해 수고하지 않는 법이다."


→ 물질적인 여유를 지나치게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열어구: 삶과 죽음을 넘어 자유로운 경지로

용을 잡는 기술(도룡지기)

주평만이 지리익에게서 용을 잡는 기술을 배웠다. 그는 천금의 가산을 들여서 삼 년 만에 배움을 끝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온 뒤 천하를 두루 다녔지만 한 마리의 용도 찾아내지 못했다.


→ 주평만의 허황된 꿈은 실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졌다. 그의 검술이 정말 용을 잡을 경지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개를 잡는 수준인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의 인위적 기술을 아무리 차원이 높다하더라도 도를 가진 사람이 보기에는 무용지물이다.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쓸모없는 기술을 가리키는 도룡지기는 이미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성어이다.



천하: 도가 사상의 철학자들에게 배우는 지혜

방술과 도(방술화대도)

천하에 방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방술을 도로 여기고 자신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겠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방술은 단지 도의 일부분인데 어찌 도가 될 수 있겠는가? 고대에 일컫던 도는 어디에 있는가? 도는 있지 않는 곳이 없다.


→ 방술과 도는 다르다. 묵자, 송견, 팽몽, 신도, 혜시 등이 연구하던 학문이 모두 방술이다. 오직 관윤, 노담, 장주의 가르침만이 도에 부합한다. 종파를 나누고 지극한 도를 분열시키는 천하의 학문에 대해 세인들은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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