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무지와 편견, 오해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민표 독서 처방전!
정찬우, 정혜윤, 박지훈 강력 추천!『경향신문』 칼럼은 물론 블로그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로 기생충 박사라는 고유한 영역을 넘어 시대의 비평가로 많은 이의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 서민. 그가 이번에는 『집 나간 책』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들고 촌철살인 서평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서민에 따르면 『집 나간 책』의 의미는 이렇다. “책은 집구석에서 읽을지라도 앎을 통한 실천은 집 밖에서 해야 한다.” 흔히 독서는 개인적 차원의 취미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서민의 생각은 다르다. 독서는 개인을 넘어 사회를 향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은 자신만의 공간인 집을 나가 더 큰 세상 속에서 다른 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것이 서민의 읽기와 쓰기의 근본적인 이유이자 지향점인 것이다.
■ 저자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현재 칼럼, 블로그, 단행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의 글쓰기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학교 의대 시절, 소심함과 외모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첫 책 <소설 마태우스>를 시작으로 10여 년의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글 좀 쓰는 기생충 박사가 되었다. 2004년 알라딘 ‘서재’에서 자기비하에 가까운 진솔함과 유머로 파워 블로거가 되었으며, 2009년 경향신문 칼럼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가 큰 화제를 모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을 완성해갔다. 2012년 영국고고학학회지에 논문이 게재되면서 대한기생충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단행본 <서민의 기생충 열전>(2013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기생충학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 차례
책을 내면서
제1장 사회 | 무지에서 살아남기
양심이 더 간지 난다 『양심을 보았다』| 좌파의 앞날을 예언하다 『유령 퇴장』| 닭의 나라 『대한민국 치킨전』| 변명의 여지가 없다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당신도 고소당할 수 있다 『주기자의 사법활극』|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 『가장 멍청한 세대』| 세 번의 시련에서 살아남기 『언브로큰』|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 『부러진 화살』| 교회 비리, 고작 이 정도? 『서초교회 잔혹사』| 사라진 63조 원을 찾아서 『말라리아의 씨앗』| 2017년이 멀지 않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괴물이 되어버린 20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만나기 힘든 스승 『정희진처럼 읽기』| 우리는 평화를 사랑했을까? 『종횡무진 한국사』| 마법의 인터뷰어 『그의 슬픔과 기쁨』| 가상의 그분이라면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 『리뎀션』| 거짓말일까, 아닐까? 『텔링 라이즈』| 살아서 싸워야 한다 『멈춰버린 세월』| 다시 황우석을 생각한다 『진실, 그것을 믿었다』| 여성이여, 버티시라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제2장 일상 | 편견에서 살아남기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하석아, 미안하다 『온도계의 철학』| 아내에게 잘하자 『가트맨의 부부 감정 치유』| 베스트셀러에 내 이름이 『나의 한국현대사』| 거절을 잘할 수는 없을까?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아버지는 빨대다 『소금』| 개를 기른다는 것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글이 술술 써진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내가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도 당할 뻔했다 『유괴』| 커피는 염소도 춤추게 한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아는 티를 내자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고전을 놓치지 말지어다 『아주 사적인 독서』| 평창에는 별이 산다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그의 책을 보고 싶다 『해피 패밀리』
제3장 학문 | 오해에서 살아남기
멋진 고발, 멋진 보수 『공부 논쟁』| 명품 대사 『사랑이 달리다』| 여성에게 감사하자 『가슴 이야기』| 경제학자의 족집게 과외 『불황 10년』| 제약회사에 속지 말자 『불량 제약회사』| 파리도 기생충일까? 『투명인간』| 죽음이 다가왔다 『다잉 아이』| 우리나라 의사는 뭐해?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프로파일러는 답답하다 『프로파일러』| 의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제노사이드』| 마음속 멍울을 뱉어내자 『수박』| 사랑스러운 과학소설 『라면의 황제』| 책만 읽지 말라는 경고 『면도날』| 소주 값은 싸야 한다 『19금 경제학』| 거장의 ‘거대한’ 상상력 『신세계에서』| 우리는 세균으로 덮여 있다 『좋은 균 나쁜 균』| 노벨 생리의학상은 글렀다 『교양인을 위한 노벨상 강의』| 이 책을 찾습니다
집 나간 책
사회 - 무지에서 살아남기
닭의 나라 _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kbs 개그콘서트에서 닭치고를 제일 좋아한다. 처음에는 좀 유치하지 않나 싶었는데 갈수록 중독이 된다. 학생셋과 담임선생, 교장 선생 이렇게 5명이 주축인데, 이들의 특징은 머리에 단 볏이 상징하듯 하나같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교장이 앞문으로 들어오면서 호통을 친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떠들던 학생들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교장은 "이렇게 조용히 수업하세요."라면서 나간다. 그로부터 2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나갔던 교장이 다시 들어온다. "이 반은 조용하구만. 옆 반은 시끄러워서 말이야. 이 반이 무슨 반이지?" 담임이 대답한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입니다." 교장은 "맛있겠다"라며 나간다. 이런 유치한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현실과 닮은 점이 있어서다.
예컨대 취임 직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대통령은 공기업에 자기 사람을 심기에 바쁘다. 대한적십자에 한 번도 회비를 내지 않은 분이 총재로 임명된 것은 하이라이트. 이런 걸 보면 닭치고의 모델이 혹시 대통령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선거만 했다 하면 정부와 여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으니, 그분들이 국민을 닭 취급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또한 정부가 추진한 담뱃세 인상은 구멍 난 세수를 메우려는 고육지책이었지만, 정부는 "흡연으로 인한 국민 건강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며,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을 닭으로 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궤변이다.
다른 공약은 잘도 파기하면서 증세를 안 하겠다는 공약에만 신경을 쓰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아무리 닭이라 할지라도 모이를 줄이면 화를 낼까봐 그런 게 아닐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닭들이 우글대는 이유가 우리가 닭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닐까? 『대한민국 치킨전』을 집어든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이야기한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대접한다는 말에서 보듯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닭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집에 갈 때마다 유리벽 너머로 전기구이 통닭이 막대기에 걸린 채 돌아가는 광경을 오래도록 지켜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 있는 집 아이였던 내게도 닭은 너무 비싸고, 가게가 문을 닫을 때까지 결국 닭을 맛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닭을 맛보았던 경험은 정말이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그런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중년들에게 닭이 심심할 때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 된 작금의 풍경은 좀 생경할 것 같다. 왜 갑자기 닭이 이렇게 보편화된 것일까?
닭의 크기가 작아지고 우리의 위장이 커진 덕에 혼자서도 얼마든지 닭을 시켜 먹게 된 것도 이유이지만, 닭의 공급이 넘쳐나게 된 게 더 큰 이유이리라. 치킨은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외식 메뉴 1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18쪽)
1997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치킨집을 차렸다. "산이 저기에 있어서 올라갈 뿐이라는 어느 등산가의 말처럼, 치킨 집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고 보면 맞다. 먹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중독이 되었을 뿐."(19쪽)
우리나라는 직장에서 한번 잘리고 나면 재취업의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가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하니, 한국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30퍼센트를 넘을 수밖에. 그런데 왜 하필 치킨집일까? 첫 번째,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서다. "치킨 조리 실습에서 우리가 해본 것은 오로지 튀기고 소스 바르고 예쁘게 담는 일의 반복이었다."(90쪽)
이게 가능한 이유는 대부분의 치킨집이 프랜차이즈로, 염지 과정을 거친 닭을 본사에서 전적으로 공급받기 때문이다. 바삭한 튀김을 만들기 위한 게 바로 염지인데, 이건 "(조리교육) 참가자가 접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91쪽)
두 번째, 치킨 시장은 특정업체가 독점하지 못하는 완전경쟁 시장이다. 업계 1위인 BBQ조차 10퍼센트를 넘지 못할 정도인데, 이유인즉슨 닭을 주문할 때 소비자들이 고려하는 게 얼마나 빨리 배달되고, 서비스를 잘 해주느냐이기 때문이다. "치킨점의 성공 여부는 맛이 아니라…… 입점한 상권의 수준에 달렸다."(82쪽) 사정이 이러니 목 좋은 곳을 잡아 치킨 사업에 뛰어들고픈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 번째, 치킨집은 대부분 배달로 먹고살며, 그렇기 때문에 매장이 그다지 클 필요가 없다. "착실한 배달 알바를 데리고 있느냐가 치킨집 영업의 관건"(132쪽)이기는 하지만, 창업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킨집을 차린다.
그렇다면 치킨집을 차린 사장님들은 과연 행복할까? 치킨집 사장치고 살이 찐 사람이 없다는 게 힌트가 될 법하다. "기름 냄새 때문에 도무지 식욕이란 것이 생기지 않았다. 기름 냄새에 질려 치킨집 주인들은 오히려 살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겠구나 싶었다."(90쪽)
돈이라도 많이 벌면 그래도 보상이 되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치킨 한 마리 원가가 5,300원이고, 한 마리를 튀기는데 들어가는 식용유가 1,000원, 배달비가 2,000원에 탄산음료와 배달용 박스, 무 등을 합치면 1만 1,000원 정도 된다. 여기에 매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합치면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아가면서 닭을 튀기는 보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창업 후 3년 내 폐업하는 치킨집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게 현실을 말해준다.
이걸 알면서도 치킨집에 뛰어드는 사람이 속출하는 건 다른 길이 없어서인데, 이런 사태를 계속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9월 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했다. 여러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 대책이 작금의 현실을 바꾸어주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기야, 닭들이 내놓은 정책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일상- 편견에서 살아남기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 _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현관에 있던 대형 거울 앞에 선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너무도 실망스러웠기에, 어린 마음에 내가 아니기를 바랐으니까. 눈은 양쪽으로 처졌고, 그나마도 너무 작았다.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모르는 애한테 이런 말도 들었다. "야! 너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생겼냐?" 가장 빠른 동물이 뭐냐고 물으면 치타라고 대답해줄 텐데, 깡패처럼 생긴 그 애에게는 해줄 말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애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처럼 못생긴 애는 처음 보았어."
내가 길을 걸을 때 고개를 숙이고 걷게 된 것, 수줍어하는 태도를 콘셉트로 가지게 된 것도 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인데,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건 공부마저 못하면 인생의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괜찮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예를 들어 소개팅 자리에 나온 여자애는 나를 보자마자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선자에게 말했다. "언니,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이런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외모에 대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신경 안 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남자고, 키가 작은 편은 아닌 데다 직업도 뭐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 외모의 열세를 만회할 수단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그저 암담하다.
박민규가 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나처럼 생긴 여자 이야기다. 주인공은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여자 하나를 보는데, 그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늘 시청하는 토요일의 쇼 프로에서……느닷없이 요들송을 부르는 아저씨가 나와 요로레이리요 레이리요 레이요르리 하는 기분이었다…….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82쪽)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 여자에게 끌리고, 여럿이 보는 와중에 그녀에게 다가가 사귀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 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중에 사귀게 된 후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사실 그때 당신을 믿지 않았거든요…….이전에도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 즉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저 애에게 가서 말 걸기. 그리고 이긴 남자애들이 어딘가 숨어서 배를 잡고 웃는 거에요. 수군거리는 주변의 그 분위기를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140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나 또한 못생겨서 죽고 싶었던 아이였기에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다. 초등학교 때 우리 반의 어여쁜 여자애들은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도 그애들과 말을 하면서 웃고 싶었는데, 그때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소설을 쓰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가 어떤 섬의 왕자인데 A는 아내, B는 각시, C는 애인, D는 부인…….
여자는 자기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끊임없이 저주하며,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한다. "세상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습니다…….염치없고 이기적인 생각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들의 장애를 인정은 해주니까요. 사람들은 저의 어둠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수히,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어왔습니다."(267~268쪽)
사람들은 장애인을 대놓고 비하하지 않지만, 못생긴 여자는 마음 놓고 조롱한다. 얼굴이 무기라거나, 토가 쏠린다는 등의 말을 우리는 얼마나 쉽게 하는가? 하지만 주인공이 일하던 백화점에 예쁜 여자가 들어왔을 때의 상황은 이와 180도 다르다.
"자기소개를 하던 그 순간 고요 속에서 술렁이던 모두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질투와 부러움이 번지는 여직원들의 얼굴과 단체로 입을 벌리고 선 남자애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 사슴을 닮고자 하는 주임의 눈웃음을 볼 수 있었다."(305쪽)
물론 예쁘면 예쁜 대로 삶이 피곤할 수도 있다. 남자들이 집적거려서 회사 다니기가 어렵다거나, 스토커가 따라다녀서 무섭다거나,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안 예쁜 여자가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개그우먼 오나미의 말처럼, 안 예쁜 여자에게 12월 25일은 그냥 금요일일 뿐이니까.
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잘생긴 저자가 어떻게 못생긴 여자의 심리를 이렇게 잘 알까 살짝 궁금하기도 한데, 우리 사회에서 이미 확고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외모 지상주의에 저자가 내놓은 해법은 사랑이다.
"여자든 남자든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게 사랑이야…….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185쪽)
물론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좀 예뻐야 사랑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라는 푸념이 벌써부터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여자 외모를 보고 1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하면서 킬킬거리는 남자들, 그러는 당신은 도대체 몇 점이나 됩니까?
학문 - 오해에서 살아남기
여성에게 감사하자 _플로렌스 윌리엄스, 『가슴 이야기』
우리나라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제대로 된 교양 과학서가 드물다는 것. 청소년들을 자극할 과학서의 부재는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 중 하나다. "너도 과학자 아니냐?"라는 반박이 나올까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나는 『서민의 기생충 열전』으로 기생충학계를 천하 통일한 바가 있으니, 다른 분야를 질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나를 경악하게 만든 책이 있으니, 바로 『가슴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은 솔직한 동기는 남들이 생각하는 이유였지만, 막상 읽어보니 기대와 달랐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게 아니라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그때 받은 감동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교양서를 쓰고 싶은 과학자라면 이 책을 참고하시라."
이 책은 내가 그토록 뿌듯하게 여겼던 『서민의 기생충 열전』마저 초라하게 만드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저자인 플로렌스 윌리엄스가 과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라는 사실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과학자는 글을 못 쓴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특히 그런데, 과학 잡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과학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성토를 몇 시간이고 들을 수 있다.
교양 과학서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게 너무 어렵다는 것.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이 등장한다. 글 잘 쓰는 작가에게 과학을 가르치면 된다. 쉽지는 않지만, 최소한 전자보다는 훨씬 쉽다.
저자가 대학에서 환경저널리즘을 연구했다는 걸 알고 나면 내 견해에 동의할 수 있으리라. 오히려 저자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슴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 유방암, 사춘기 변화와 더불어 가슴의 진화와 기원 등 폭넓은 주제로 책을 쓸 수 있었다. 저서가 있어야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대접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계속 글쓰기를 게을리한다면 머지않아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전문가 타이틀을 빼앗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성들이라면 유방암과 호르몬 대체 요법, 가슴 성형에 관심을 보이겠지만, 남자들은 1장에 기술된 내용이 주요 관심사일 것이다. 나 역시 1장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는데, 몇 개만 소개한다. 가슴이 A컵인 20대 여자를 바에 앉아 있게 한 뒤 몇 명의 남자가 집적거리는지 숫자를 센다. 그다음 라텍스 패딩을 이용해 가슴을 B컵과 C컵으로 만든 뒤 다시 바에 가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여배우가 A컵이었을 때 춤추러 가자는 신청을 13번 받았다. B컵이었을 때는 19번을 받았다. C컵으로 커지자 44번이나 들어왔다."(35쪽)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의 이런 단순함에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러니 여성들이 가슴 확대 수술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갑자기 시모나 할렙이라는 테니스선수가 존경스럽다. 루마니아의 테니스 신동인 할렙은 만 17세에 프랑스오픈에 참가해 회전에서 탈락하자 테니스를 치는 데 걸림돌이었던 34인치, D컵 가슴을 축소하는 수술을 한다. 보도가 나가자 일부 남성팬들은 반대 서명까지 하는 등 결사반대했지만, 할렙은 수술 이후 제 기량을 발휘해 2014년 프랑스오픈에서 마리야 샤라포바를 상대로 준우승을 하는 등 세계 랭킹 3위에 올랐다.
또 다른 사례. 한 여성이 말한다. "짝을 찾고 아이를 갖는 일에 있어서 젖가슴 크기는 문제가 안 돼요."(42쪽) 그러면서 그녀는 유방과 매력에 과한 연구가 시간 낭비라고 주장한다. 나는 물론이고 저자도 그녀가 "작은 가슴을 가져 통념에 거스르는 세계관을 품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단다."(같은쪽) 하지만 저 말을 한 메이시아라는 여성의 가슴사이지는 36DD로, 그녀는 큰 가슴 때문에 "지적인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제게 무척 힘든 일이었어요."(42~43쪽)라고 말한다.
남성들이 원해서가 아니라면 여성의 가슴은 왜 진화했을까? 그녀에 따르면 아기의 생존과 관계가 있단다. "임신한 여성은 특별한 지방산이 필요한 큰 뇌를 지닌 통통한 아기를 위해 지방을 제공해야 한다…….여성의 몸은 체지방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지 못하면 배란조차 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결과적으로 우리는 아기를 낳기 위해 사춘기와 그 이후에 지방이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의 지방은 에스트로겐을 만들고, 에스트로겐은 젖가슴을 부풀게 한다."(44쪽) 이게 다가 아니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젖꼭지가 없었다면 (아기가) 수유를 하기가 꽤 곤란했을 것"(46쪽)이라는 주장에도 쉽게 동의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여성의 가슴에 감사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알을 깨고 나온 뒤 바로 먹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사흘은커녕 이틀도 안 되어 죽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성립된다.
"수유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먹이를 직접 구해야 하는 성체가 되는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죠."(62쪽) 즉 젖을 분비하는 포유류는 새끼들에게 맞는 먹이가 있는 서식지에 머물러야 할 필요를 없앴고, 그 결과 먹이가 별로 없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새끼를 낳는 게 가능했단다.(64쪽) 하나 더 남았다. 딱딱한 먹이 대신 젖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태어났을 때 치아가 없어도 됨음 뜻하며, 이는 출생 시 머리가 작아도 됨을 뜻한다.
또한 젖을 빨아야 하는 필요 때문에 "구개와 혀 근육이 발달"했고, 이는 "언어능력 진화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 되었다."(65쪽) 그러니, 어머니와 다른 여성들에게 잘하자. 여성들의 가슴 덕분에 우리가 언어능력을 기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저자의 모든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유방암의 원인을 너무 환경호르몬 같은 유해 물질에 국한한 점이 그렇다. 예컨대 저자는 "여자아이가 열두 살에 X선에 노출되면 세포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인용한 뒤 자신이 척추측만증으로 X선 촬영을 한 기억을 떠올린다.(193쪽) X선을 한 번 촬영했다고 유방암에 걸리기 쉬워진다면, 그보다 몇십배의 방사선을 방출하는 CT는 찍는 즉시 유방암에 걸리지 않겠는가?
또한 저자는 고지방 식단이 "젖샘에 염증이 생기게 하고 훗날 암을 일으킨다"(196쪽)라며 학교 급식에서 패스트푸드를 줄이자고 하며, 합성색소는 물론이고 "향기가 나는 제품을 피해야"(196쪽) 한다고 말한다. 이것도 부족해 "캔 음료와 통조림을 줄이고……아이들 점심이나 간식을 두꺼운 유리 용기에 넣어 천 가방에 싸준다"(198쪽)라는데, 이런 대목들은 저자가 환경 운동가라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유방암의 빈도가 해마다 1~2퍼센트씩 증가하는 것을 보면 환경요인을 무시할 수 없지만, 모든 환경호르몬을 피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유방암에 걸릴까봐 미리 유방을 절제한 앤젤리나 졸리의 예에서 보듯 유방암에는 유전의 힘도 크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여태껏 읽은 교양 과학서 중 단연 최고다. 첫 책에서 대박을 터뜨린 저자가 다음에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 궁금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분야든 나는 그 책을 사리라는 것이다.
제약회사에 속지 말자 _벤 골드에이커, 『불량 제약회사』
화이자라는 제약회사는 새로운 뇌수막염 치료제인 트로반을 개발했다. 약을 개발하면 화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해야 하는 건 필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자기 나라를 놔두고 나이지리아로 날아간다. 거기서 발생한 뇌수막염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화이자는 한 그룹에는 기존 치료제인 세프트리악손을 주었고, 한 그룹에는 새로 개발한 트로반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화이자는 정말 부도덕하게도, 트로반의 효과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세프트리악손의 용량을 반으로 줄여 환자들에게 투여한다. 트로반이 그다지 좋은 약이 아니어서 트로반 투여군 아이 100명 중 5명이 죽은 건 예상치 못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기존 치료제의 용량을 반만 투여해 살 수 있었던 아이 중 6명이 죽은 건 살인 행위라 불러야 할 듯싶다.
이들이 나이지리아로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건강에 관심이 많은 미국과 달리 못사는 나라인 나이지리아에서는 임상 시험 참가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화이자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행위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뒤 합의금을 주고 사태를 종식한다.
1996년 벌어진 이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영화가 <콘스탄트 가드너>. 여기서 제약회사는 검증 안 된 에이즈 치료제를 아프리카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하고, 그 사실을 알아챈 이들을 죽이는 테러 집단으로 나온다.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통해 트로반 사건을 뒤늦게 알고 나니 영화가 과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는 『배드 사이언스』에서 부도덕한 제약회사에 날선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비판이 한 장에 불과했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아예 책 한 권으로 제약회사를 비판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온 게 『불량 제약회사』. 520쪽으로 두껍고, 온통 약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어 선뜻 읽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기는 하다. 실제로 거의 안 팔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데, 그렇기는 해도 이 책이 이렇게 묻히는 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약이 사람을 죽인다』 등 제약회사를 비판하는 책은 꽤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만큼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제약회사의 부도덕함을 파헤치는 책은 없을 것 같다.
조직폭력배(이하 조폭)는 사람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가끔 영화의 소재가 되는 건 그들의 무식함이 관객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그들의 부도덕함과 더불어 좋은 머리까지 가졌다면 경찰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훨씬 살기가 힘들 것 같다.
제약회사는, 이 책에 의하면 부도덕함과 더불어 좋은 머리까지 갖춘 신종 조폭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제약회사들의 전략을 읽다보면 "이렇게 치밀할 수가!"라는 감탄이 적어도 20번은 나온다. 의사들에게는 물론이고 이들을 감시해야 할 규제 당국에도 치밀하게 로비를 하니, 제약회사를 제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은 약을 팔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1999년 『미국의사협회저널』이라는 훌륭한 학술지에 조사 대상 여성 중 43퍼센트가 성 기능 장애를 갖고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왜 갑자기 이런 논문이 실렸을까? 알고 보니 논문의 저자 3명 중 2명이 화이자에 자문을 해주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화이자는 "여성용 비아그라를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334쪽)
즉 멀쩡한 여성들에게 여성용 비아그라를 먹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논문을 쓴 것. 우리가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인 콜레스테롤을 악의 축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화이자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을 개발한 것과 관계가 있는데, 그 덕분에 화이자의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리피토는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 매년 15조 원가량을 벌어들이며 화이자의 효자 노릇을 해주었다.
저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질병의 인지도를 높이는 캠페인을 벌이는 모든 제약회사는 자기네가 그 질병을 치료할 제품을 개발하거나 마케팅하고 있기 때문에……"(345쪽)
제약회사에 속지 않으려면 이 책을 읽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없는 이유는 두꺼운 데다 약 이름이 많이 나와서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이 책이 우리나라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외국 제약회사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신약 개발보다는 리베이트로 먹고사는 제약회사들이 주를 이룬다.
신약 개발을 별로 안 하니 임상 시험을 할 필요가 없고, 그러다 보니 외국처럼 비열하지만 치밀한 전략을 짤 이유도 없다. 그러고 보면 부도덕함이란 것도 어느 정도 능력이 되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일반인들은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가는 반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횡령하고도 감옥에 안 가지 않는 가?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여, 일단 능력을 기르자. 그래야 부도덕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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