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

   
구자련
ǻ
다섯번째사과
   
16000
2014�� 11��







■ 책 소개
플라톤 이후 2,500여 년 동안 풀지 못한 텍스트 코드, 텍스트 메커니즘!
현대인의 필수 능력은 논리적 글읽기와 글쓰기 능력이다. 하지만 기존 학교문법적 접근만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완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저자는 텍스트 메커니즘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논리문법을 선보이고, 이 책에 글읽기와 글쓰기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은 학교문법을 많이 아는데도 텍스트를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들에게 확실한 설명서가 될 것이다.






- 문단은 없다.
- 주어보다 부사가 더 중요하다.
- 한 문장만 보고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 문장에도 등급이 있다.
- 학교문법만으로는 안된다.
- 한 문장은 구슬이고 논리문법은 실이다.
- 논리문법은 국제적인 언어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일본어 등 세계의 많은 언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더불어 논문, 보고서, 리포트, 에세이, 소설, 시, 신문기사, 드라마 대본, 영화 시나리오, 가사, 쉬운 글, 어려운 글 등 이 모든 텍스트 역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를 다루는 단 하나의 원리가 있다.



■ 저자 구자련
저자는 텍스트 메커니즘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텍스트를 다루는 기존 학교문법의 한계를 발견하고, 글읽기와 글쓰기의 보완 체계로 논리문법을 선보이고 있다. 






출간 도서로는 "국어의 원리" 시리즈가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언어의 지역성과 보편성 






프롤로그 읽기와 쓰기의 오해
1. 배경지식은 답이 아니다 
2. 통념에 기대지 마라 
3. 문단은 없다
4. 학교문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5. 영어와 한국어는 공통점이 있다 
6. 글쓰기 고수는 "그러나"를 사용하지 않는다 
7. 문장을 말하는 사람 명제를 말하는 사람 






제1부 텍스트의 이해
1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표현한다
2장 텍스트는 논리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다
3장 논리의 핵심은 연결이다
4장 쓰기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고, 읽기는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다
간지 스토리 1, 몇 어찌; 논리와 감성, 이성과 인내심






제2부 한 문장의 오해, 문장과 문장의 이해
5장 한 문장의 범주와 한 문장의 단위 
6장 한 문장의 연결, 한 문장은 수평적 연결이다 
7장 문장과 문장의 연결, 문장과 문장은 수직적 연결이다 
8장 연결의 방향성은 주고받음 개념으로 결정한다 
9장 중심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간지 스토리 2, 논리문법과 랑그






제3부 논리문법으로 읽고 쓰기
10장 주어, 목적어는 중요하지 않다
11장 텍스트 유형을 파악해라
12장 문장에도 등급이 있다 
13장 중심내용 표시, 찾지 말고 빼라 
14장 문단은 없다. 그러나…
15장 원리는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에필로그 논리력, 평가력, 집중력 그리고 기억력
1. 텍스트와 인간의 능력은 밀접하다
집중력 | 이해력 | 기억력 | 논리력 | 판단력과 평가력 | 응용력과 창의력
2. 텍스트는 비전이다 
지식의 소비와 생산 | 문제는 콘텐츠다 | 다섯번째사과






부록 찾아보기



 





글쓰는 사람 글읽는 사람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모두가 잘 읽고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혹시, 문제가 문제인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문제와 고민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것들을 극복하고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곤 한다. 그 시간 중에서 공부하는 시간 다시 말해 텍스트를 읽고 쓰는데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놀이방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평균 20여 년이라는 절대적 비중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고민인 듯하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모두가 잘 읽고 잘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집중하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읽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읽고 난 후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읽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혹시 내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글 읽기는 왕도가 없으며, 많이 읽다 보면 잘 읽게 된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또는 시험 상황에서 텍스트를 읽고 쓰는 데 불편함을 느꼈는가? 더불어 그 불편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았는가? 그렇다면 일단 성공이다. 적어도 문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읽고 쓰는데 무슨 왕도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다 하는 것이지. 하지만 틀렸다. 텍스트를 읽고 쓰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이다. 다시 말해 읽기와 쓰기는 인위적으로 의식하며 훈련해야 하는 것이지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독서법, 속독법, 문장론, 글쓰기 방법론 등 출간된 많은 독서·독해 관련 서적과 연구들은 이미 텍스트를 능숙하게 다루는 입장에서 결과적으로 숙달된 상태의 글 읽기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그 과정을 너무 복잡하게 설명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생략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숙한 상태의 설명이 아니라 능숙하게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명시적 설명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많은 독서·독해 방법이 배경지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텍스트를 다루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무한대의 지식을 흡수하기 전에 그 지식을 담는 텍스트 자체의 이해와 구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언어의 지역성과 보편성

성서에 따르면 태초에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하늘에 닿고자 하자, 하느님께서 인간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그 결과 탑은 완성되지 못했고, 인간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잘 알려진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인간에게는 일반적, 보편적 사고 체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생각의 방식 또한 공통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후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한편 하느님이 인간의 언어를 뒤섞어 놓은 시점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인간의 보편성과 더불어 인종과 민족의 개별적 사고 체계 즉, 언어마다 특수성과 지역성이 반영된 다양한 학교문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특히 영어를 잘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영문법을 열심히 공부하고도 원서 읽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인의 입장에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어를 넘어 언어차원에서 텍스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자는 항상 인간을 짓누른다." 이 말속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영어가 됐든 한국어가 됐든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잘 다루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워 한다. 왜 인간이면서도 텍스트를 누구나 잘 다룰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고를 해야 하는지? 국어의 지역성을 넘어 언어의 보편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은 연결이다

“저 사람은 논리적이다.”에서 「논리」가 무엇인가?

논리의 핵심은 연결이다

인간이 만든 객체는 다시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인간을 정의하기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명제로 표현 한다. 이때 생각은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를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관점에서 보면 생각은 텍스트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이다.라고 정의하겠다. 플라톤과 데카르트가 생각을 정리한 수단, 아카데미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주요 수단, 법정에서 논증을 위해 요구되는 주요 수단은 바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텍스트를 통해서 법전을 담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텍스트로 시험을 보는 것이다.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텍스트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매체이다.


데카르트의 제 1원리의 핵심은 이성적 사고이다. 그리고 이성적 사고를 표현하는 방법의 결정체는 텍스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적인 텍스트를 잘 다룬다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잘 독해한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이성적 사고는 무엇일까? 쉽지 않다. 이성이라는 개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이성적인(rational)에서 이성이 의미하는 것은 우선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 또는 철학에서 진위,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더불어 영구불변의 진리, 보편타당한 법칙, 필연적 증거, 체계적 완결성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왠지 더 어려워진 듯한데 그냥 톱니바퀴를 상상해 보자. 앞쪽 톱니가 돌아가면 필연적으로 뒤쪽 톱니가 돌아가죠? 이러한 필연적 관계가 형성되는 이치가 바로 이성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성적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말하고 들어왔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이성과 밀접한 개념이 바로 논리(logic)라는 것이다.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봤을 때 이성과 논리는 같은 의미라 봐도 무방하다. 이게 바로 이 책에서 규정하는 이성적 사고 즉, 논리적 사고이자 텍스트 메커니즘(text mechanism)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물질적 결정체는 기계(machine)이고, 관념적인 표현 수단은 바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텍스트와 메커니즘은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이다.


그럼 인간과 이성적 사고, 그리고 텍스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적 사고 능력은 지식의 생산자(필자)와 지식의 소비자(독자)의 상호보완 작용을 통해 발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자기 생각을 텍스트를 통해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다시 독자는 표현된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지식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이성적 사고력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이처럼 사고의 메커니즘과 텍스트의 메커니즘은 상호보완적 관계뿐만 아니라 본질적 속성 또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결국, 사고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텍스트를 통해 자기 생각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텍스트 메커니즘을 알아야 텍스트로 표현된 필자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독서·독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 메커니즘은 사고의 메커니즘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둘의 공통점은 연결로 귀결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감성적인 매체도 이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아주 쉽다. 아마도 여러분은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못하고 중간부터 보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 드라마는 앞뒤 내용의 연결이 되지 않아 집중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왜 그럴까? 미디어라는 감성적 매체는 사실 작가의 시나리오(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머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있을 때 웃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전과 더불어 연결 코드가 있어야 한다. 주말에 즐겨보는 개그 프로그램 코너에서 여성이 "내가 비키니 입고 걸어가면..."이라고 말하자 남성 왈 "남자들이 비키지."라고 받아치자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연예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가수로서 바람이 있다면?" 질문에 "가장 오래 활동한 가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변하자 바로 "오래 사실 건가 봐요."라고 받아치자 객석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어의 앞 음절, 중간 음절, 끝음절 중 하나를 매칭하는 방식으로 연결 고리의 관계가 직설적이고 가끔은 억지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웃음이 터지는 시점은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연결 고리가 있다. 아무리 반전이 있어도 연결이 안 되면 웃음이 아니라 침묵이 흐르게 된다.&


텍스트도 같은 맥락이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고리를 찾아야 집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한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 따라서 읽고 쓰기의 핵심은 마침표로 단절된 문장과 문장의 연결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고수는 ‘그러나’를 사용하지 않는다.

좋은 글의 조건은?

좋은 글, 완성도가 높은 텍스트의 조건은 다양하다. 내용의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하고, 중복을 피하고, 독자의 관점에서 간결하고 쉽게 읽혀야 한다. 그렇다면 내용을 떠나 형식적인 관점에서 완성도가 높은 텍스트의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가시적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표지어가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문장 간에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장 간의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시이다. 시인이 위대한 직업인 이유는 짧은 문장으로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표지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매끄럽게 여러 문장을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표지어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문장과 문장을 연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텍스트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시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사례로 시 몇 편을 분석해보자.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짧은 두 문장으로 내용상으로 의미상으로 참 많은 생각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아주 단순하다. 섬을 주고받음 대상으로 두 문장 간에 연결 고리가 형성돼 있다. 그리고 두 문장 사이에는 표지어가 없다.


풀꽃 [나태주]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 역시 세 문장 사이에 표지어가 없다. 하지만 보아야와 예쁘다+사랑스럽다=그렇다를 주고받음 대상으로 짧은 문장과 문장이 연결 되어 있다. 이게 바로 이 시가 기억되는 하나의 이유이다. 이뿐만 아니라 논리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내용도 표지어 없이 시로 표현할 수 있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시 / 지구(地球) 한 모퉁이 [나태주]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이 시 또한 표지어 하나 없이 지구 한 모퉁이와 깨끗해졌습니다, 아름다워졌습니다를 주고받음 대상으로 문장과 문장 간의 수직적 연결 고리를 짓고 있다. 그럼 이 시의 중간 중간에 표지어를 넣어 일반 문장으로 바꿔 보자. "마당을 쓸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더불어 꽃 한송이 피었습니다. 그래서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한편으로 마음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이처럼 일반문장과 시는 같은 내용이지만 전달되는 힘이 다르다.


물론 모든 시가 이처럼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표지어도 없을뿐더러 앞뒤 관계 파악이 어려운 시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친근하게 읽고 듣고 기억하는 작품은 이처럼 문장과 문장 간에 연결 고리가 형성되는 공통점이 있다.


언제까지 ‘한 문장’만 쓸 것인가?

주어, 목적어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문단은 없다.

문단은 글에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짤막한 단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장이 몇 개 모여야 문단이 될까? 5개? 아니면 10개? 아이러니하게도 텍스트 단위에서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문단은 없다. 다만 형식적인 문단만 있을 뿐이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텍스트 단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단어, 구, 절, 문장, 문단, 한 편의 주제 아니면 한 권의 책,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면 모두 맞다. 단어와 단어가 모이면 구가 되고, 단어와 구, 안긴문장(절)이 모여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여기까지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배울 수 있는 영역이다. 또한, 문장과 문장이 모여 하나의 문단을 만들며 이러한 문단과 문단이 모여 한 편의 주제 단위를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편들이 무수히 많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한 문장에서 문단(문장+문장+...)으로 건너뛰는 부분이다.


얼핏 정량적으로 보면 한 문장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문단이 되고 편이 되고 책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는 것은 정성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한 문장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형식과 내용이 갖춰진 문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락 또는 문단은 문장과 문장 단위를 기능적으로 나눈 가상선일 뿐이다. 마치 연속적인 땅의 특정 부분을 인위적으로 자른 행정구역 선이나 국경선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문 사설이나 또는 책에 담긴 텍스트는 끊임없이 이어진 문장+문장+...이다. 결국 독서·독해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텍스트는 문장과 문장 단위만 존재한다. 나머지는 현상에 불과하다. 텍스트를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구조적으로 텍스트를 읽기 위한 대전제이다. 정리해 보면 텍스트의 본질적 단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한 문장 단위이고, 두 번째는 문장과 문장 단위이다. 그리고 이 둘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국가마다 또는 언어마다 학교문법이 다르다는 것은 한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논리문법이 같다는 것은 다르게 만들어진 한 문장과 한 문장을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원리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논리와 더불어 논리문법 역시 국제적인 언어이다. 또한 한 문장의 완성은 학교문법을 통해 배우는 것이고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논리문법을 통해 더욱 객관적이고 명시적으로 발달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장과 문장 단위를 읽고, 한 문장을 읽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우선 한 문장부터 살펴보자.


What is written without effort is in general read without pleasure.

이 한 문장을 보면 자동으로 어법이 맞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문장에서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가 무엇인지 시간 표현은 맞는지 주어와 동사가 일치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텍스트를 읽는 목적이 문장의 주요소를 찾는 것인가?


‘학교문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보완 체계는?

학교문법의 미션은 ‘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국어나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한 문장이다. 얼핏 보기에 간단한 것 같지만, 평생을 공부해도 어려운 것이 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언어별로 학교문법의 범위는 다양하다. 한국어는 문장구조, 문장 성분, 문장의 종류, 문장의 확대, 시간 표현, 높임 표현, 부정 표현, 사동·피동, 양태 표현 등으로 학교문법을 분류한다. 영어는 문장 구조, 문장 형식, 부정사, 동명사, 분사, 조동사, 시제, 법, 태, 일치, 명사, 관사, 대명사, 관계 대명사, 형용사, 부사, 비교, 접속사, 전치사, 특수구문 등으로 학교문법의 큰 틀이 정리하고 있다.


영어든 한국어든 국어의 관점에서 문장을 정확하게 읽고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문법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문장을 완성하고 이해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예를 들면 영어의 경우 문장의 형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동사의 이해를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치사, 조동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영어를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법에서 다루는 범위가 어떠한가? 바로 단어, 구, 안긴문장(절)을 포함한 한 문장 단위이다. 하지만 한 문장을 잘 읽고 쓴다고 텍스트 논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문법을 마스터하고도 텍스트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학교문법의 태생이 한 문장을 정확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문장의 완성은 학교문법의 종착점이다. 하지만 두 문장 이상으로 구성된 문장과 문장 단위 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한 문장을 완성하는 능력과 그렇게 만들어진 한 문장과 한 문장을 연결하는 능력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학교문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보완 체계가 논리문법이다. 따라서 논리문법의 적용 대상은 문장과 문장 단위이며,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에 초점을 맞춘다. 독서·독해력이 능숙하다는 것은 두 문장 이상으로 구성된 단위를 능숙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왜? 학교문법만으로 복잡한 텍스트의 논리를 설명할 수 없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논리문법이 필요한 것이다. 학교문법은 한 문장이라는 구슬을 만드는 것이고 논리문법은 구슬과 구슬을 연결하는 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논리문법의 시작점이다. 독서·독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작점의 이해와 숙달이 필요한 것이다.


텍스트를 다루는 새로운 패러다임, 논리문법

텍스트 단위의 구분과 연계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한 문장을 완성하는 단계이다. 한 문장은 총체적인 학교문법을 통해서 완성된다. 정확한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지식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완성한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단계이다. 여기서 글을 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책을 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텍스트 단위는 한 문장 단위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글쓰기의 핵심은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읽고 쓰기의 진짜 의미는 반복적으로 문장과 문장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고 짓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한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과, 문장과 문장 단위 즉,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은 구분되어야 한다. 한 문장은 학교문법적 내용과 표현력 등을 중점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반면 문장과 문장 단위에서는 논리적 연결이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이다. 결국 글쓰기는 한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와 완성된 문장과 문장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두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따라서 읽기와 쓰기는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듣기는 읽기와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이며, 말하기와 쓰기 또한 같은 맥락에서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는 주체와 형식만 다를 뿐 속성의 본질 면에서는 논리문법적 사고로 통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행위의 핵심은 바로 연결이다. 만일 여러분이 이 네 가지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생각의 연결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텍스트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이고, 이성적 사고의 핵심은 연결이다. 텍스트 단위는 한 문장 단위와 문장과 문장 단위로 구분된다. 한 문장은 수평적 연결이고, 수평적 연결은 학교문법을 통해 완성된다. 문장과 문장은 수직적 연결이고, 수직적 연결은 논리문법을 통해 완성된다. 결국, 텍스트는 논리문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TM-


모든 텍스트는 이 TM 명제를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으며,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뼈대이자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결론이다.


논리문법은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사고의 장치이다.

텍스트 논리는 한 문장 단위를 만드는 논리와, 문장과 문장 단위를 연결하는 논리가 있다. 이 중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최종 목적은 한 문장을 잘 읽고 잘 쓰는 것이 아니다. 한 문장 단위와 더불어 문장과 문장 단위 텍스트를 논리적으로 읽고 쓰는 것이 목적이다. 모든 텍스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문장과 문장 단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텍스트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문장과 문장 단위의 보편적 특징을 이해하면 된다.


문장과 문장 단위는 수직적 연결이다.라는 명제 또한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 체계를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정의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즐겨온 끝말잇기 게임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동요 속에 수직적 연결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끝말잇기는 여러 사람이 삥 둘러앉아, 한 사람이 한 낱말을 말하면 다음 사람이 그 말의 끝음절을 첫음절로 하는 낱말을 불러 이어 가는 게임 형식이다. 일례로 사과→과도기→기술자→자생력... 에서 과, 기, 자가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가 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적용 단위가 단어와 단어 중심이며 연결 요소는 단어의 음을 단순하게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끝말잇기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독서·독해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게임으로 끝난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 노래의 적용 단위는 구 와 구를 중심으로 단어와 단어가 연결 고리를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연결이다. 독서·독해에서 필요로 하는 사고의 연결은 적용단위가 문장과 문장 단위 중심이며 연결 요소는 단어, 구, 안긴문장절, 한 문장 전체 등 다양한 단위로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단어, 구 차원의 다양한 요소들이 수직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연결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한 문장의 주요소인 주어, 목적어, 보어 등이 될 수 있으나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꼭 주요소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직적 연결은 문장의 주요소를 넘어 모든 경우의 수 차원에서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직적 연결 코드를 알아볼 수 있는 논리문법적 사고는 무엇일까? 바로 주고받음, 방향성, 순서지움 개념이다.


한 문장은 유형이 있다. 영어는 5형식 한국어는 기본 문장의 형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문장과 문장 단위에서도 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텍스트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다.라는 명제를 시작으로 논리문법 개념을 도출했다. 그리고 다시 이 논리문법을 텍스트에 적용함으로써 논리적 사고 패턴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성적 사고의 패턴을 세부적으로 따지다 보면 그 유형은 무한대일 것이다. 하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생각을 연결해가는 방식은 몇 가지 유형으로 좁힐 수 있다.


구조적·객관적 글 읽기는 인간이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이러한 사고 유형에 논리문법을 적용함으로써 중심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결론이 바로 논리적 사고의 유형이다. 통상 텍스트를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문학·비문학, 설명문·논설문과 같이 글의 종류에 의한 구분 또는 글의 전개 방식에 의한 구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및 구분은 글의 중심내용을 파악하는 과정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텍스트를 내용적 관점에서 규명한 결과형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 내용의 전개 방식을 넘어 사고의 전개 방식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이성적 사고는 반복하며 집중한다. 그리고 확장하며 뻗어 나간다. 반복하며 뻗어 나가는 사고는 다시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의 전개를 반복, 확장 그리고 매트릭스 유형이라 규정하겠다.


"텍스트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현상 즉 표현 방식이고 이성적 사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텍스트의 본질이다. 그리고 본질인 이성적 사고의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 현상에 불과한 텍스트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결국 반복, 확장, 매트릭스 등 텍스트 유형은 사고의 유형이고 사고의 유형은 다시 문장 간의 주고받음 대상들이 수직적으로 연결 고리를 만드는 유형이다.


문장과 문장 단위 텍스트를 읽으면서 예측한다는 것은 배경지식 측면의 내용이 아니라 이렇게 사고의 유형을 예측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고의 유형 자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유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유형을 알아보고 적용할 수 있을 때까지 논리문법을 체화시키는 것이다.


텍스트와 인간의 능력은 밀접하다

인문, 사회, 정치, 예술 등 많은 학문의 시작점은 통상 그리스 시대를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여전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 맹자, 순자 등 관련 고전을 읽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자의 기원은 문명마다 그 시점이 다르다. 그래서 시간적 범위를 확 좁혀서 플라톤 이후 현대까지 2,500여 년의 시간, 여러분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는 텍스트에 코드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여기서 텍스트 코드는 한글의 코드가 아닙니다. 라틴어 또는 영어의 코드도 아닙니다. 국어가 아니라 언어 차원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의 코드를 의미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고민을 시작으로 텍스트 코드가 문제였고 고민이었고 궁금했었습니다. 정말 답이 없는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말입니다.


기술과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천 년 넘게 교육의 주된 방법으로 텍스트를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텍스트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능력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영화를 많이 봄으로써 창의력이 발달할 수도 있고, 그림을 감상함으로써 집중력이 향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필 텍스트일까요? 그 이유는 텍스트를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많은 능력을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집중력, 이해력, 기억력, 논리력, 판단력, 응용력 등 많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 인생이라는 시간을 채워갑니다. 안타까운 것은 갖추고 싶은 능력은 많은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텍스트의 본질과 능력과의 관계를 이해하면 분명 이전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콘텐츠다</P>우리는 위대한 인물을 묘사할 때 100년 또는 1,000년에 한 번 나올법한 천재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시대별로 장소별로 천재는 항상 있었고 현재도 많이 있다. 다만 고민하고 몰입함으로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천재가 드물 뿐이다. 시대별로 사회가 선호하는 능력은 변한다. 사서삼경을 달달 외워야 하는 기억력이 중요한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앞으로는 더 많은 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이 기억하려고 했던 이유는 확인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만큼 불안한 것은 없다. 이처럼 사회가 변하면서 천재성의 의미도 변화하고 있다. 그것도 소수에서 다수를 향해서 말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은 갖추고 타고날 수는 없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핵심적인 능력을 갖출 수는 있다. 바로 사고력과 텍스트를 다루는 능력이다. 이제는 암기는 최소화하고 확인하자. 그리고 남는 에너지로 텍스트를 읽고 쓰며 생각에 집중해보자. 그러다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당신은 보통사람입니까? 그것도 고민과 문제가 많은 보통사람입니까? 문제와 고민거리는 콘텐츠다!!! 역설적으로 현재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 그만큼 많은 과정을 담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정리해 보십시오. 그것은 분명 누군가를 위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과정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결과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그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현재 내 문제와 고민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그 실체를 표현해 보자. 그림이든 텍스트든 상관없다. 만약 텍스트로 표현한다면 문장보다는 명제로 정리해보자. 처음에는 거짓 명제가 되더라도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참 명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참 명제를 많이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거짓 명제 하나를 만드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명제들의 연결 고리를 찾아 하나의 텍스트로 만들면 내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고가 깊어지고 다듬어지는 것이다. 이제 남의 지식을 소비하지만 말고 자신의 지식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번째사과<
/P>서양에서 사과는 과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상을 바꾼 사건과 생각의 발단에 사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과에 대해 프랑스 미술평론가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는 역사를 바꾼 3대 사과로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 폴 세잔의 정물화 속 사과를 꼽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모리스 드니의 발언을 확대해서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을 추모하며 로고로 만든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네 번째 사과라고 칭하기도 한다.


딴 사과, 떨어지는 사과, 떨어진 사과 그리고 추모한 사과. 그런데 여기까지는 만들어진 사과이고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만들어질 사과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번뜩였던 생각!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말 트임과 동시에 누구나 다 아는 노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저자는 이 동요에서 다섯번째사과의 힌트를 찾았습니다. 바로 수직적 연결의 코드, 텍스트 메커니즘입니다.


세상을 바꾼 네 개의 사과 그리고 앞으로 세상을 바꿀 다섯번째사과. 그 사과는 만들어진 사과가 아니라 텍스트를 극복한 여러분이 만들어갈 사과입니다. 모든 사람이 품고 있는 무한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꺼낼 수 있다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창조적인 생각들이 텍스트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세상은 또 한 번 바뀌지 않을까요? 세상을 바꿀 70억 개의 사과. 그 사과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