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미학 이후의 미학인 디지털 미학, 미디어 미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쉬지 않았던 진중권. 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등장한 제2차 영상문화, 제2차 구술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미지 인문학』을 출간하였다.
『이미지 인문학』은 ‘무한한 이미지’의 세계를 이미지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미학을 횡단하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을 기술적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회화, 사진 등 전통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생물, DNA, 비트, 나노까지도 포함한다.
■ 저자 진중권
2014년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올드미디어는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뉴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로 정의해야 한다’는 기획으로 교육, 연구,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생각의 지도』 『미학 오디세이 1∼3』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호모 코레아니쿠스』 『아이콘』 『미학 에세이』 등이 있고, 공저로 『크로스 1∼2』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진보의 재탄생』 등이 있다. 역서로는 『청갈색책』 『컴퓨터 예술의 탄생』 등이 있다.
■ 차례
지은이의 말
1장 디지털의 철학
디지털 가상
탈역사적 마법
2장 리얼 버추얼 액추얼
파사드 프로젝트
프레임의 미학
역사적 현재
리얼 버추얼 액추얼
3장 파타피직스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패러다임 게임
웹캐스트에서 팟캐스트로
디지털 성전(聖戰)
4장 지표의 상실
사진 이론의 역사
밝은 방
회화적 사진의 귀환
사진은 회화처럼
물신적 숭고
사진 이후의 사진
5장 실재의 위기
다큐멘터리의 종언
허구로서 과학
역사란 무엇인가?
주
초고 수록 지면
찾아보기
이미지 인문학 1
디지털의 철학
디지털 가상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896)의 단편 「원형의 폐허」에는 밤마다 꿈을 꾸어 아이의 형상을 빚는 어느 늙은 사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제가 모시는 불의 신은 어느 날 계시를 내려 노인의 소원대로 그 형상을 현실로 바꾸어준다. 그 아이가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은 오직 불의 신과 꿈꾸는 자만이 안다. 꿈으로 빚은 아들은 아비처럼 또 다른 사원에서 불의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노인은 행인으로부터 저 아래의 사원에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 현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노인은 그가 아들임을 직감하지만 아들이 자신 때문에 스스로가 환영임을 깨닫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어느 날 그의 사원에도 화재가 일어나고, 이것이 이야기의 반전을 가져온다.
그는 불길로 다가갔다. 그것들은 그의 살을 물어뜯지 않았다. 그것들은 열기가 없이 그를 태우지 않고 보듬듯이 지나갔다. 안도와 굴욕과 공포 속에서 그는 자기 역시 그저 다른 어떤 사람이 꿈꾸어 만든 하나의 환영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들어 사는 이 세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상의 복권
"왜 가상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가?"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이 도발적 물음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가상을 불신하는 것은 물론 대안적 세계가 주어진 것(Datum)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Faktum)이기 때문이다. 플루서에 따르면 가상에 대한 불신은 곧 "모든 인공적인 것(Kunstliches)과 모든 예술(Kunst)"에 대한 불신이라고 한다. 독일어에서 가상(Schein)과 아름답다(Schon)는 어원이 가다. 그리하여 "예술은 아름답지만 거짓이다. 그것이 가상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의미다." 이어서 플루서는 오래된 관념을 의문에 부친다. 그렇다면 현실은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플라톤은 현실이 감각에 비친 가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참된 것은 이데아의 세계요, 현실은 그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플라톤처럼 이데아를 믿는 관념론자만 현실을 가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이데아를 믿지 않는 데모크리토스 같은 유물론자 역시 현실을 가상으로 간주했다. 현실은 그저 감각에 비친 이미지의 향연이요, 이 허깨비의 진정한 실체는 원자의 배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사의 위대한 두 전통이 모두 현실을 가상으로 간주한다. 그들의 말대로 현실도 거짓이라면, 플루서를 따라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속이지 않는 것도 있는가?"
플루서의 논변에는 위에서 인용한 보르헤스의 단편과 유사한 반전이 있다. 우리는 가상을 현실과 대비해 거짓이라 비난하지만 그러는 현실도 위대한 철학자들에 따르면 또 다른 가상일 뿐이다. 이렇게 가상과 현실의 차이를 상대화하는 것은 물론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을 설정했던 기존의 형이상학을 전복하고, 가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를 설명할 새로운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이리라.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플루서의 사유는 철학적 인간학의 지평 위에서 –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방불케 하는 - 실존(Existenz)과 소외(Verfremdung)의 변증법으로 전개된다.
존재에서 실존으로
실존(Existenz)이라는 말이 있다. 철학에서 이 말은 존재(Sein)와 달리 어떤 것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제 본질에 합당하게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실존이라는 말은 밖을 의미하는 접두사 ek과 서 있다를 의미하는 동사 sistens의 합성어다. 결국 어원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 즉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의 바깥에 서 있는 것(ek-sistiert)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의 바깥인가? 물론 자연의 바깥이다. 인간은 자연의 밖에서 자연과 마주 섬으로써 비로소 제작능력이나 언어능력 같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자연의 바깥으로 나온 인간은 이제 자연의 낯선 힘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서 싸우며 살아야 한다. 성서는 이 힘겨운 과정을 신의 형벌로 묘사한다. 낙원에 살던 인간들이 죄의 대가로 그곳에서 추방되어 노동의 수고를 하게 된다. 이 <창세기> 설화는 주어진 세계에서 만들어진 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의 신학적 반영이리라. 인간의 실존을 타락사로 간주하기는 헬레니즘 문화도 마찬가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죄로 코카서스 산에서 사슬이 묶인 채 독수리에게 매일 새로 자라나는 간을 쪼아 먹힌다.
이른바 원죄는 어떤 의미에서는 위대한 범죄였다. 신을 거역하는 바로 그 범죄(hybris)를 통해 인간은 언어능력과 제작능력 등 오늘날 인간의 유적(類的) 속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에 의해 주어진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대안적 세계를 만들어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실존이라는 의미다. 오직 신이 창조한 세계만이 참되고 인간이 고안한 세계는 가상이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한, 우리는 그 가상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라. 이미 모든 것이 가상, 즉 인공환경이다.
리얼 버추얼 액추얼
리얼 버추얼 액추얼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남이 본 것을 보고, 남이 들은 것을 듣는다. 반면 미디어에 매개되지 않은 체험은 대부분 사회적 의미가 없는 사소한 것이 되고 말았다. 권터 안더스(Gunter Anders, 1902~1992)는 이 매개된 체험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실(fact)이라 부르는 것의 어원은 만들어진 것(Faktum)이라는 라틴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이미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얘기다.
잠재성으로서 가상
가상을 실재-비실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플라톤주의라면, 니체주의는 그것을 잠재-현재의 관계 속에서 사유한다. 이 맥락에서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질 드뢰르(Gilles Deleuze, 1925~1995)의 철학이다. 그의 사유는 잠재(virtual)와 현재(actual)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상태의 사이에는 물론 현재화(actualization)가 있을 것이다. 플루서가 현재화를 기획(Projekt)으로서 인간의 능동적 활동으로 본다면, 들뢰즈는 주체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것을 하이데거의 의미에서 사전으로 파악한다.
잠재적인 것은 현재화를 통해 현재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태는 마치 씨앗 안에 나무의 형상이 들어 있듯이 미리 규정된 상태지만, 들뢰즈의 잠재성은 광활한 미규정의 지대이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것이 현재화하는 사건을 절대적으로 일회적이어서 들뢰즈는 그것을 단독화(singularization)라 부른다. 플루서에게도 가상은 잠재성의 지대다. 들뢰즈의 현재화가 예술가에게 사건으로 엄습하는 것이라면, 플루서의 현재화는 기술자가 자신의 기획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실현하는 것에 가깝다.
들뢰즈에게 잠재와 현재는 동일한 사물의 두 양태다. 둘은 자리를 맞바꾸며 그저 시간성을 통해서만 구별될 뿐이다. "순전히 현재적인 대상은 없다. 모든 현재적인 것은 잠재적 형상의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적인 것은 마치 안개처럼 잠재적인 것들을 주위에 발산하며, 잠재적인 것들은 점점 농밀해져 현재적인 것으로 전화한다.
하나의 입자는 덧없이 짧은 것(ephemerss)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지각은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반대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그 순환들이 더 밀접해져 잠재적인 것이 현재적인 것에 근접해 점점 더 그것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에는.
이는 앞서 소개한 보르헤스의 단편 「원형의 폐허」에서 꿈으로 아이를 빚어 낳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잠재적인 것이 현재적인 것에 근접해 그것과 구별할 수 없게 될 때 탄생하는 것이 바로 "팬덤"(안더스)이요, "시뮬라크르"(보드리야르)요, "대안적 세계"(플루서)다. 팬덤은 가상도 실재도 아닌 제3의 존재층이다. 시뮬라크르는 가상이면서 동시에 실재보다 더 실재적이다. 대안적 세계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물질로 실현된 가상이다.
가상현실과 현실가상
들뢰즈의 은유는 오늘날 글자 그대로 사실이 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사진은 지표성(indexicality)을 잃었다. 디지털 사진은 복제가 아니라 생성이나 합성의 이미지다. 전통적 의미의 지시체(=피사체)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기에 실재와 일치하라는 인식론적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사본이 아니다. 그것을 여전히 재현이라 부른다면 그것이 재현하는 현실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합성 이미지는 우리 현실을 열등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사진은 피사체를 과거로 보낸다. 복제 이미지의 원천이 과거("우리 현실")에 있다면, 합성 이미지의 원천은 미래("다른 현실")에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열등한 재현이 아니라 도래할 미래의 사실적 재현이다. 주어진 것이 만들어진 것으로 대체된 세계에서는 가상의 지위도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에 가상은 미리 존재하는 현실을 자신의 원상으로 갖지 않는다. 그것의 원천은 플루서가 말한 "대안적 세계", 즉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과거의 모상이 아니라 미래의 모형이다.
플라톤은 가상(virtual)을 비실재(irreal)로 간주한다. 니체라면 가상을 그것의 어원인 비르투스(virtus)와 연관 지을 것이다. 덕(德)을 의미하는 이 라틴어 낱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레테(arete)는 제 잠재력을 남김없이 실현하며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디지털 이미지는 그 어원에 걸맞게 비실재가 아니라 잠재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경우 가상(virtuality)의 상관자는 현재(actuality)가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현재와 잠재가 어지럽게 뒤섞인 혼합현실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어느새 현실가상(real virtuality)이 되고 있다.
파타피직스
웹캐스트에서 팟캐스트로
MTV의 VJ이자 인터랙티브 미디어 개발자였던 애덤 커리(Adom Curry, 1964~ )는 인터넷으로 영상과 음성 스트림을 내보내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 브로드밴드가 항상 온(on)의 상태에 있다는 데 착안해 밤에 잠자는 동안 파일이 자동으로 다운로드되고 완료되면 유저에게 이를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상하게 된다. 2000년에 그는 RSS의 개발자 데이브 와이너(Dave Winer, 1955~ )를 만나, RSS를 이용해 뉴스 헤드라인만이 아니라 음성과 영상 파일을 내보내는 방법을 개발하기로 합의한다. 웹캐스트(webcast)와 구별되는 새로운 개념의 방송은 처음에는 오디오 블로그라고 불리다가 2004년경 팟캐스트(podcast)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디지털 구술문화
한국에서 팟캐스트는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맥루언은 라디오·텔레비전의 전자매체와 더불어 구텐베르크 은하는 종언을 고했다고 말한다. 문자문화의 종언 후에는 새로운 영상문화·구술문화가 찾아온다. 문자문화가 정보를 텍스트로 전달했다면 전자매체는 정보를 시각화하거나 음향화한다. 과거 정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상서나 시사지를 읽어야 했다면, 오늘날 정치 관련 콘텐츠는 이미지나 사운드로 전달된다. 이것이 디지털의 제2차 영상문화, 제2차 구술문화다. 나꼼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복귀시킨 새로운 구술문화라 할 수 있다.
윌터 옹(Walter J. Ong, 1912~2003)에 따르면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러시아의 학자 알렉산더 R. 루리아(Alexander R. Luria, 1902~1977)는 혁명 직후 아직 문자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촌락공동체로 들어가 필드워크를 했다. 그의 설문조사는 구술문화가 문자문화와는 그 의식이 확연히 다름을 보여준다. 이는 문자 사용이 우리의 의식을 급진적으로 재구조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다시 구술문화로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 의식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 변화가 얼마나 급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문자 문화에 밀려났던 구술문화가 대중의 의식 속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구술문화에서는 로고스(logos)보다는 뮈토스(mythos)가 중요하다. 거기에는 객관적 기술보다는 주관적 상상이, 논증의 정합성보다는 플롯의 개연성이, 이성적 비판보다는 정서적 공감이 더 잘 어울린다. 구술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제공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한 사태를 영웅적 스토리로 압축·변환하는 능력이다. 토론토 학파 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전자매체는 문자문화가 무너뜨린 공동체의식을 복원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나꼼수 청취자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독특한 손동작으로 같은 상상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무언의 교감을 낯선 이들과 나누곤 했다.
복귀한 이 구술문화는 물론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 때문에 디지털 특유의 분위기에서 이야기는 동시에 게임의 성격을 띠게 된다. 과거의 이야기와 달리 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그저 허구로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리얼리티 게임이다. 게임은 진·위와 선·악의 피안에 있다. 거기에서는 진리보다 승리가 중요하다. 디지털 구술문화는 한마디로 낡은 새로운 것(old new)이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문자문화 이후로 진화할 진보적 가능성이 언제라도 문자문화 이전의 의식으로 퇴행할 반동적 가능성과 아슬아슬하게 공존한다.
상상력은 환각으로
나꼼수에서 내놓은 주장의 상당수는 음모론의 형식을 취했다. 음모론에는 크게 네 가지 상황이 존재한다. 첫째, 유포자도 안 믿고, 청취자도 안 믿는 경우. 이는 놀이의 상황이다. 둘째, 유포자는 안 믿고, 청취자만 믿는 경우. 이는 선동의 상황이다. 셋째, 유포자도 믿고 청취자도 믿는 경우. 이는 종교의 상황이다. 넷째, 유포자만 믿고 청취자는 안 믿는 독특한 경우. 이는 광우(狂愚)의 상황이다(허경영 신드롬을 생각해보라). 나꼼수는 놀이의 상황으로 출발했으나 현실에서 정치적 중요성을 띠면서 파타피지컬 모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경우 그것은 선동이나 종교의 모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음모론은 흔히 특정 사안에 대한 공식적 설명을 부정하는 비공식적 견해로, 특정 인간집단이 비밀스러운 공모를 통해 사회를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정의된다. 칼 포퍼에 따르면, 음모론의 원형은 인간사의 모든 것이 올림포스 산정에서 꾸미는 신들의 모의로 결정된다는 그리스 신화적 사유다. 음모론은 사실 올림포스의 신들을 특정 인간집단으로 교체한 것에 불과하다. 이 시대에 음모론이 창궐하는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문자문화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신화적·주술적 상상력을 다시 소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플루서는 거기에 뒤따르는 위험을 지적한다. 기술적 형상은 문자숫자 코드로 그린 그림이기에, 대중이 현상의 바탕에 깔린 기술적 코드를 올바로 해독하지 못할 경우 "상상력은 환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성이 박약할 때 기술적 상상은 환각으로 퇴행한다. 음모론은 문자 이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자 이후의 이야기다. 유사이성을 사용하기에 음모론도 언뜻 보기엔 기술적 코드로 작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선관위 음모론을 주장한 것은 대학교수를 포함한 IT전문가들이었고, 박주신의 병역기피 음모론을 제기한 것 역시 현직 전문의들이었다. 음모론의 주창자들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기술적 코드를 동원했고, 대중은 자신들이 기술적 독해를 통해 현상의 깊은 의미를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지적 만족감을 느꼈다. 이로써 "서사적 열정은 편집증적 집착(paranoiac obsession)으로 전환한다."
지표의 상실
회화적 사진의 귀환
1839년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 1787~1851)가 최초의 사진인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를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 이듬해에 또 다른 선구자인 이폴리트 바야르(Hippolyte Bayard, 1802~1887)가 익사한 사내의 시체를 찍은 사진을 발표한다. 그 사내는 바야르 자신이었다. 바야르는 다게르와 비슷한 시기에, 하지만 다게르와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발명했다. 하지만 학술원 회원 프랑수아 아라고(Frnacois Arago, 1786~1853)로부터 발표를 늦춰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청을 들어주었다가 다게르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렸다. 아라고는 다게르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바야르는 자신을 익사한 시체로 연출한 사진을 찍은 후 그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이 여기서 보는 시체는 무슈 바야르, 즉 당신이 보는 사진을 발명한 이의 시체입니다. 내가 아는 한 이 불굴의 실험자는 약 3년 동안 발견에 몰두했습니다. 정부는 오직 다게르에게만 너무 관대했고 바야르를 위해서는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 불쌍한 사람은 스스로 물에 몸을 던졌지요. 오, 인간 삶의 알 수 없음이여! 며칠 동안 시체 안치소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사체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악취를 피하려면 그냥 지나쳐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이 신사의 얼굴과 손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예술이냐 기록이냐
바야르는 미처 의식되지 않았던 사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즉 사진은 진리를 말할 뿐 아니라, 동시에 허위를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표제로만 하는 게 아니다. "신사의 얼굴과 손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거짓말은 사진 속의 어둡게 변색된 얼굴과 손의 지원을 받는다. 여기에 표제와 사진은 공모를 한다. 사진이 허구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한 사진의 새로운 기능이다. 바야르의 사진은 사실의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표현이었다. 사진의 발명자라는 타이틀은 다게르에게 빼앗겼지만,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바야르는 예술 사진의 발명자가 될 수 있었다.
바야르의 일화는 사진이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얼굴은 1839년 프랑스 학술원에서 다게르의 발명을 공표하는 아라고의 연설 속에 나타난다. 여기서 그의 이 발명품의 과학적 용도를 강조한다. 즉 사진은 천문학, 물리학, 측광(photometry)의 유용한 수단이며, 앞으로 자연탐구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세계를 보여주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진은 진리를 말하는 과학의 수단이다. 하지만 이듬해 사진은 바야르의 「익사한 남자의 자화상」(1840)을 통해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바야르의 사진은 사실상 작가가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표현매체로 기능한다. 여기서 사진은 예술의 한 장르다.
이처럼 사진은 예술과 기록 모두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사람들은 굳이 이 두 방향 중 어느 쪽이 매체의 진정한 기능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에서 사진의 기록적 기능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일군의 작가들은 1860년대 말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이라는, 회화를 닮은 사진의 유형을 만들어낸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픽토리얼리즘을 "현실의 기록보다는 제재, 명암, 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사진에 대한 접근방법"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카메라를 마치 붓이나 끌 같은 예술적 진술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도구처럼 다루며", 그렇게 제작된 사진은 "미적 가치를 갖고 예술의 세계와 비슷해질 수 있다."
픽토리얼리즘
픽토리얼리즘의 전형적 인상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분위기다. 이 때문에 픽토리얼리즘 사진은 종종 인상주의 사진이라 불린다. 이미 1853년에 영국의 미니어처 화가 윌리엄 존 뉴턴(William John Newton, 1785~1869)은 렌즈의 초점을 살짝 흐리는 것만으로 그림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초점을 흐리거나 노출을 늘리면 사진의 고유한 특성인 윤곽의 날카로움이 사라져 사진에 마치 붓으로 터치한 듯한 효과가 발생한다. 회화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예 감광물질을 바른 울퉁불퉁한 화면에 직접 인화함으로써 캔버스 효과를 흉내 내는 경우도 있었다.
픽토리얼리즘 작가들은 세트를 갖춘 스튜디오 안에서 모델의 연출된 포즈를 촬영하곤 했다. 제재 선택, 인물 포즈, 화면 구도 등 모든 면에서 픽토리얼리즘 사진은 철저히 고전 회화의 미적 규약에 따라 제작되었다. 성격상 그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환상의 그림이었다. 화가들이 화면 위의 모든 요소를 미적 구성의 원리에 따라 배치했듯 픽토리얼리즘 작가들은 구성에 어긋나는 요소는 지우기도 하고 허전한 부분은 다른 필름에서 오려낸 이미지로 채우기도 했다. 이는 화가들이 늘 캔버스 위에서 붓을 들고 해왔던 작업이다. 사진사들은 그 일을 네거티브 위에서 했을 뿐이다.
픽토리얼리즘 사진은 언뜻 회화를 복제한 석판화처럼 보인다. 사진과 회화의 이 친화성은 두 가지 근원을 갖는다. 쿠르베, 마네, 드가 등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진을 드로잉에 활용했었다. 이들을 통해 카메라의 시각은 회화 속에 침투해 들어와 있었다. 한편 오스카 G. 레일랜더(Oscar Gustave Rejlander, 1813~1875), 게트루드 케제비어(Gertrude Kasebier, 1852~1934), 에드워드 스테이첸(Edward Steichen, 1879~1973) 등 상당수의 픽토리얼리스트가 전직 화가이거나 회화와 사진 작업을 병행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당연히 사진 역시 자신들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관습, 즉 회화의 미학에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실재의 위기
다큐멘터리의 종언
프랑스의 작가 뤽 들라예(Luc Delahaye, 1962~ )는 분쟁지역을 다니는 포토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에 그는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 루안다, 체첸 등 전장을 돌아다니며 매그넘과 『뉴스위크』를 위해 보도사진을 찍는 데 전념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스타일에 변화를 주어 전쟁의 참상을 대형·중형·포맷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그렇게 큰 장비는 물론 전장의 급박함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촬영된 사진들은 디지털 보정을 거친 후 커다란 사이즈로 출력되어 미술관에 전시된다. 이로써 보도사진과 예술사진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지고, 그의 사진은 "기록-기념"(document-monument), 즉 역사적 기록물인 동시에 회화적 기념비가 된다.
회화적 기념비로서 다큐멘터리
『역사』(History, 2003) 연작 중 하나인 「카불로 가는 길」은 미군에게 사살당한 것으로 보이는 두 구의 탈레반 사체를 보여준다. 사체 주위에 아프간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마치 남의 일 보듯 하는 무심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첫눈에는 전형적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사체를 바라보는 두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촬영자를 바라본다. 이는 촬영자는 마치 거기에 없었떤 듯 사건의 객관적 관찰자로 남아야 한다는 원칙의 위반이다. 사진의 제재는 매우 끔찍하지만 사진 자체는 마치 한 폭의 타블로처럼 보인다. 여기서 사진은 보도를 넘어 구스타브 쿠르베(Jeon Desire Gustave Courbet, 1819~1977)의 「오르낭의 매장」(1849~1950)에 견줄 만한 회화적 기념비가 된다.
대형 포맷이나 파노라마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 "결정적 순간"이라는 브레송/매그넘의 원칙은 유지될 수 없다. 대형 포맷 카메라로 회화적 질을 추구할 때 사진사는 예상 못 한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기대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보도사진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카르디에 브레송의 사진은 미술관에 걸릴 정도의 질(archival quality)을 갖추고 있다. 뤽 들라예는 "브레송이 그 방향으로 더 나아갔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브레송보다 멀리 나아가기로 결심한 들라예는 2004년 매그넘을 떠나며 포토저널리즘을 포기한다. "나는 포토저널리즘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들라예는 "실재의 복합성"과 더불어 "이미지의 자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은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완결성을 갖는 미적구조물이라는 뜻이다. 이는 칸트의 미적 자율성 명제를 연상시킨다. 문제는 그의 제재가 결코 외적 고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역사」연작에는 사살된 탈레반 병사의 사진이 있다. 죽은 병사의 주머니는 털려 있고, 누군가 그의 신발마저 벗겨갔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실제로는 끔찍한 장면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유미화(唯美化)는 이 참상마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제시한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런 사진을 미수로간에서 돈 받고 판다는데 윤리적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그 문제는 논하지 않겠다"라고 그는 대답한다.
데드팬에서 더블클릭으로
2006년 뮌헨에서 열린 전시회 클릭, 더블클릭은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경향을 소개한다. 제목 속의 클릭은 셔터를 누르는 것을, 그리고 더블클릭은 마우스 조작을 의미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전시회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시기, 사진에 일어나는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기획자들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의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객관적 기록에서 벗어나 작가의 주관적 표현을 지향한다. "현재 사진은 다큐멘터리 요인에 관한 새로운 개념이 출현하는 변화의 국면에 있다. 사진은 더는 현실의 초상 혹은 재현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잘 근거지은 세계의 관념이다." 한마디로 디지털이 다큐멘터리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데드팬의 객관적 엄밀주의와 더블클릭의 주관적 표현주의가 상충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두경향이 실은 사진의 유미화(Aesthetizierung)라는 흐름의 두 갈래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데드팬 사진은 더는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제시하는 현실에 무관심(indifferent)하다. 그 엄밀한 객관주의를 가지고 현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을 보도라고 할 수도 없다. 한편 더블클릭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의 객관적 기록에서 벗어나 작가의 주관적 표현이 영역으로 넘어간다. 사진은 회화와, 사실은 허구와, 기록은 표현과 하나가 된다. 따라서 이 역시 보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데드팬의 객관주의와 더블클릭의 표현주의가 공유하는 특성은 고전적 의미의 사진적 현실을 사라지게 한다는 점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브레송/매그넘의 다큐멘터리 원칙은 이미 힘을 잃었다. 현실이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현실은 주어지지 않고 만들어진다. 데드팬은 이 상황에 대한 차가운 냉소이고, 더블클릭은 이 상황에 대한 뜨거운 환영이다. 데드팬은 사진적 사실(fact)이란 결국 만들어진 것(factum)에 불과하다고 냉소한다. 더블클릭은 주어진 세계를 기록한다는 인식의 환상과 윤리적 의무에서 벗어나 사진으로 세계를 꾸며댈(fabrication) 자유에 열광한다. 디지털은 니체의 말을 다시 불러낸다. "진리보다 중요한 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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