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변화경영 전문가 구본형의 마지막 유작!!
저자의 수업을 듣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수업!
암 투병 과정에서도 구본형 저자가 마지막까지 방송했던 EBS FM 라디오 "고전읽기"를 책으로 엮은 책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까지, 『삼국유사』에서 『다산문선』까지. 그에게 변화경영의 화두를 안겨준 동서양 문학과 철학 고전 17편을 담고 있다.
저자는 변화와 자기경영의 핵심가치로 거침없는 "도전"과 세상을 향한 "정의"를 내세우며, 자신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 ‘고전’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도전, 젊음, 성장, 사랑, 자유, 관용, 화해, 운명,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꼭 필요한 고민과 가치들을 담고 있는 다양한 고전들을 통해 내면을 일깨우고,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한다.
■ 저자
구본형
변화경영사상가. 1980년 한국 IBM에 입사하여 20년간 경영혁신 총괄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0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1인 기업인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설립했다. 인문학과 경영학의 다양한 접점을 연구하면서 10년 넘게 연구원 100명, 꿈벗 400명과 함께 자기 내면의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그의 수업은 대부분 신화와 고전으로 이루어졌다. 조셉 캠벨과 제임스 조이스를 사랑했으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정약용을 흠모했다. 특히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한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 변화의 시작은 자기혁명이어야 함을 갈파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의지를 실천하며 자기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2012년 8월부터 총 19주 동안 EBS 라디오 ‘고전읽기’를 진행했으며, 두 달 후에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은 17편의 EBS 라디오 ‘고전읽기’와 604편의 「구본형 칼럼」, 375편의 「마음편지」에서 해당 고전의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고전읽기’ 때부터 두 연구원과 함께 책 출간을 논의했고, 3,000년 동안 생명을 이어온 주옥같은 고전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잠든 도전과 열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지은 책으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낯선 곳에서의 아침』 『월드 클래스를 향하여』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깊은 인생』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등이 있다.
박미옥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6기 연구원.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이후 국책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직장생활 10년차 되던 해에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고전 탐독과 삶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엄마를 위한 자기경영 프로그램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www.happymomceo.com)’을 진행하며 동료 엄마들과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자신과 가정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
정재엽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2기 연구원.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를 거쳐 연세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월간 『피아노 음악』에 「일상에 스민 클래식」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맡고 있다. 문학과 예술, 그리고 기업에 대한 관심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사유한다. 근간으로 『작가들: 문학을 속삭여줄게(가제)』가 있다. j.chung@hanmail.net
■ 차례
1부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이룰 수 없는 꿈 하나를 별처럼 품다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음’에 대하여
다산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 『다산문선』 ‘배움’에 대하여
천 개의 운명과 변신… 모험을 선동하라! · 『그리스 로마 신화』 ‘도전’에 대하여
미친 듯이 사랑하고 미친 듯이 이별하라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뇌’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찾는 삶 · 『허클베리 핀의 모험』 ‘성장’에 대하여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에 대하여
비범한 사람들이 많으면 세상은 정의로울까? · 『죄와 벌』 ‘정의’에 대하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 『데카메론』 ‘성’에 대하여
새로운 인간학의 탄생 · 『향연』 ‘사랑’에 대하여
2부 거침없이 모험을 선동하라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법 · 『오디세이아』 ‘인생’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날개가 있다 · 『탈무드』 ‘지혜’에 대하여
사랑을 준다는 것의 의미 · 『사랑의 기술』 ‘사랑’에 대하여
한국인을 말하다 · 『삼국유사』 ‘전통’에 대하여
토크빌은 어떤 민주주의를 보았는가? · 『미국의 민주주의』 ‘선택’에 대하여
보다 완전한 세계를 그리다 · 『동방견문록』 ‘여행’에 대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다 · 그리스비극1 『오이디푸스 왕』 ‘운명’에 대하여
배려를 통해 다름을 껴안다 · 그리스비극2 『안티고네』 ‘화해와 공존’에 대하여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이룰 수 없는 꿈 하나를 별처럼 품다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음에 대하여
간절하다면 그 일을 계속하라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말 그대로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시인 지망생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보낸 10여 통의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카푸스는 이 귀한 편지들을 20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릴케 사후에 릴케 박물관에 기증했고 1929년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던 릴케가 시인 지망생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도 시인 지망생의 열정에 부응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릴케는 시인 지망생이 보낸 시와 편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자신의 시가 어떤지를 묻는 시인 지망생에게 밖을 향한 시선을 안으로 돌리라고 충고한다. 릴케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 그 일이 간절하다면 계속해라. 그리고 그 위에 네 미래를 건설해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
스위스 역사학자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과거가 아무리 친절해도 그다음 세대가 읽을 때는 불친절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전혀 다른 문화를 이루며 전혀 다른 어투로 대화했던 조상들의 기록들은 필연적으로 잘 읽히지 않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100여 년이 지나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럼에도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울림이 있다. 그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한다.
릴케는 슬픔을 일컬어 무언가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슬픔과 고독은 우리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체험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경제적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모든 즐거움과 기쁨을 유보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즐기고 느끼고 감탄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으면 삶은 아주 행복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릴케도 늘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 바로 여기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니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라
그렇다면 릴케는 슬픔과 고독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까? 릴케는 고독을 "자기 방에 있다가 어떤 준비도 없이 느닷없이 산꼭대기에 세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갑자기 벽도 지붕도 사라지고 홀로 깊은 산속에 서 있는 불안한 느낌. 그래서 뭔가 파멸에 몰린 것 같은 느낌.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체험해보아야 한다고 릴케는 말한다. 릴케는 불안도, 고통도, 우울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즐기라고 카푸스에게 친절하게 충고한다.
조언을 구하는 카푸스에게 릴케는 1904년 11월 4일 스웨덴의 후른보리 욘세레트에서 여전히 친절한 편지를 띄운다. 다른 사람의 비판과 비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사관학교에 다니며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허우적대는 카푸스에게 릴케는 충실한 멘토가 되어 의구심을 잘 길들이면 아주 좋은 특성으로 만들 수 있으니 잘 빚어보라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닮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라는 충고를 하는 것이다. 릴케의 조언은 한결같았다.
이 책의 제목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결국 카푸스는 시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꿈은 이루지 못했어도 젊은 그의 방황이 아름답다. 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현재 이루어질 수 없는 꿈 하나를 별처럼 품자." 가슴속의 별이 언젠가는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리얼리스트가 되어 현실 속에서 분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아니 젊음의 조건이다.
다산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 『다산문선』 배움에 대하여
패기 있는 청년 다산
1762년생인 다산은 네 살에 천자문을 익히고 일곱 살부터 한시를 짓는 등 어린 시절부터 대학자로서의 싹을 보였다. 다산은 당시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28세에 문과에 급제한다. 이 시기에 다산은 한양에 있던 자신의 집을 사랑방 삼아 동년배의 남인 관료들과 죽란시사라는 문예 창작 모임을 결성했다. 이 시 모임은 1797년 다산이 곡산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다산 시의 특징을 몇 가지 정리하면 우선 사실적이고 세세하고 정교하다. 그다음으로 파리를 조문하는 내용 등의 우화시가 눈에 띈다. 그리고 중국을 따르지 않는 주체성이 두드러진다. 다산이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중국의 고시들을 인용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며 한국의 중요한 고전들을 열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조선 사람이니 조선 시를 쓸 것이라고 말한다.
독서, 인간의 으뜸가는 깨끗한 일
다산이 유배 중에 보낸 편지들은 대부분 수신인이 두 아들이었다. 홍씨와 결혼해 6남 3녀를 두었지만 4남 2녀가 어려서 죽고 2남 1녀만이 남았다. 유배를 떠날 당시 큰아들 정학연은 19세였고 둘째 아들 정학유는 16세였다.
오늘날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훌륭한 집안 자제들이 관직에 올라 집안을 크게 일으키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폐족이다. 만약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해서 처음의 가문보다 더 온전히 아름답게 만든다면 이 또한 기특하고 아름다운 일일 아니겠느냐. 폐족의 처지에 잘 대처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느냐.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뿐이다. 독서야말로 인간의 으뜸가는 깨끗한 일이다.
과거를 보지 못하게 되어 실망했을 아들들에게 다산은 이제 과거를 잊고 오직 스스로의 인격을 도야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말한다. 평생 솔선수범해 공부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던 다산은 아들들에게 몸소 스승이 되어주기도 한다. 두 아들은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뜻을 이어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큰아들에 비해 재능이 떨어졌던 둘째 아들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남기며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다산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시대를 앞서나간 개혁가 정약용은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같은 실학자인 박지원의 북학파가 상공업을 중시했다면 정약용은 선비로서 백성의 삶과 직결된 농업에 관심을 쏟았다. 다산은 당시 군정의 비합리성을 풍자하는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다산은 이 시를 지어 군적에 올라서는 안 되는, 죽은 사람이나 어린아이에게까지 군포를 거둬들이는 부패한 사회상을 비판했다. 다산은 시를 지어 부조리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학자의 면모를 발휘해 「신포의(身布議)」라는 글을 짓는다. 군정의 불합리를 개혁할 정책적 대안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군포는 군역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내야 했던 세금이다. 그런데 양반이 아닌 양인만 부담하다 보니 양인들은 군포를 면하기 위해 양반이 될 수 있는 편법들을 꾀하게 되고 결국 양반의 수가 늘어나면서 국가 전체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었다. 그러니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자는 것이 다산의 제안이었다. 군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다산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미친 듯이 사랑하고 미친 듯이 이별하라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뇌에 대하여
젊은 청춘의 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1년 5월 4일 베르테르가 빌헬름이라는 친구에게 쓴 편지로부터 시작되는 서간체의 소설이다. 레오노레의 동생을 사랑하던 베르테르는 레오노레 역시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불편한 마음으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면서 자신의 일상과 감정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베르테르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편지로 알린다.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다. 이 굉장한 사건이 나와 다른 사람을 섞어버리면서 나와 그 사람의 경계가 없어지고 그의 눈 속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나를 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자기의 모습에 접근해 간다. 첫눈에 로테에게 반해버린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그녀와 커플이 되어 춤을 추고 사랑이 시작된다. 로테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기에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하면서 그 비극적인 운명을 어느 정도는 예감하는 듯하다.
이후 그는 로테를 너무 사랑해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오직 사랑만 하게 된다. 사랑의 열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베르테르에게 서서히 운명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돌아온 것이다. 베르테르가 격정적이고 순수하고 하나에만 몰입하는 사람이라면 알베르트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세속적이다. 베르테르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알베르트를 칭찬하면서도 질투한다.
청춘을 위로하려 들지 마라
청춘은 쉽게 위로를 원치 않는다. 청춘은 격정과 고뇌를 거쳐서 성숙된다. 청춘의 격정과 고뇌를 다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대 새로운 문학사조였던 질풍노도 문학을 대표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이성주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새로 불어오는 슈트름운트랑(Sturm und Drang), 즉 질풍노도 운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성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리히텐베르크, 레싱, 칸트 등은 질풍노도 운동에 우려를 표하기까지 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질풍노도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성을 보인다. 봄과 여름에 사랑이 싹터서 불타오르다가 가을과 겨울에 베르테르가 로테의 곁을 떠나 지루하고 모멸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에 로테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알베르트와 결혼해 신혼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베르테르가 떠나 있는 동안 로테의 마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베르테르가 좋아했던 호두나무가 잘린 것이다. 이성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질풍노도 운동이 벌어지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루소(Jean Jacques Rouseau)였다. 루소의 주요 주장은 문명의 사슬을 끊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을 상징하는 호두나무는 베르테르에게 굉장히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베르테르는 그런 호두나무가 베어진 것을 보고 자기가 믿었던 무언가가 어이없이 잘려 나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결말에 대한 강력한 복선이 된다.
상처 없이는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없다
결혼 전이나 후나 베르테르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던 로테는 베르테르를 멀리하기로 마음먹는다. 로테에게서 자신을 단념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베르테르는 그다음 날 로테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나중에 봉인된 채로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되어 로테에게 전해진다.
결심했습니다, 로테. 난 죽으려고 합니다. 그리운 사람이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무렵에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는 어떤 즐거움도 맛보지 못했던 불안하고 불행한 사나이의 굳어버린 시체는 이미 싸늘해져 무덤 속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어제 당신과 헤어질 때 내 마음은 무섭도록 흥분해 있었고 착잡한 감정이 내 마음에 사무쳤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없이 당신 곁에 머무는 내 신세가 처참하게 느껴졌습니다.
수많은 계획과 희망들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지만 결국에는 단 하나의 생각이 아주 굳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죽어버리자는 생각이! 나는 죽을 것이다! 절망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다가 당신을 위해 이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어느 아름다운 여름날 저녁 그 언덕에 오르게 되면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렇게도 자주 골짜기를 통해 그 언덕을 오르던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무성한 풀들이 석양의 햇빛을 받으며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릴 때면 멀리 교회 묘지에 있는 내 무덤도 한번 바라봐주세요.
한때는 사랑으로 온 세상이 환했지만 이제는 점점 암흑으로 변해간다. 마치 꽃봉오리가 폈다가 떨어져 시드는 것 같다. "사랑이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욕망으로 욕망하는 것"이라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말처럼 베르테르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욕망과 열병에 빠져들어 한때는 꿈같은 행복을 누렸지만 이제 그에게는 절망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사랑은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이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 그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랑하는 사람은 겁쟁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처 없이는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해낼 원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정말 중요한 건 사랑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날개가 있다 · 『탈무드』 지혜에 대하여
불행을 이겨낸 지혜의 원천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은 『탈무드』를 읽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읽었던 짤막짤막한 내용을 『탈무드』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한 번쯤은 그 의미를 깊이 새겨볼 만한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다. 『탈무드』는 5000년 동안 유대인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온 불굴의 방패이자 절대의 가치로서 일상의 모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원천이다.
『탈무드』는 인간 삶과 동떨어진 저 꼭대기의 신을 경배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더 높은 윤리적 차원을 확보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책이다. 『탈무드』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실제적 삶에서 거론되어온 문제를 주제로 삼아 역경을 극복하는 지혜를 담은 실용적 인문서다.
그렇다면 『탈무드』의 지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수천 년의 물음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본성과 고뇌에 대한 물음, 문제의 근원과 해결법에 대한 물음 등을 논쟁하면서 얻은 지혜의 책이란 뜻이다. 『탈무드』는 유대인들에게 "계속 질문하라"고 말한다. 질문이 답보다 위대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탈무드』는 정답을 알려주는 상식 책이 아니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
『탈무드』는 누군가에게 잘못했으면 반드시 용서를 구하고, 만약 용서를 빌기 전에 그 사람이 죽었다면 그 무덤에서라도 잘못했다고 얘기하라고 한다. 또한 『탈무드』는 잘못에 대한 보복이나 비난이 아닌 용서를 권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유대인은 용서하고 있을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친위대의 중령으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그는 전후 도주했다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붙잡혀 재판정에 선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은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죽일 의사도 없었고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일을 했을 뿐이다. 신에 대해서는 죽음을 방조한 죄를 지었지만 인간에 대한 죄는 짓지 않았다."
아렌트는 이런 평가를 남긴다. "누구에게든지 악의 평범성이 있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악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생각하는 것에 무능력한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흔히 원수를 사랑하라, 죄를 용서하라,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데 이 말을 실천하려면 생각의 힘이 따라야 한다. 사유하는 사람은 우선 잘못하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고, 만약 잘못하더라도 뉘우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아마도 유대인 중에는 나치의 대학살을 용서한 사람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모두는『탈무드』가 말하는 용서에 대해 한 번 이상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가치를 만들어 내는 능력
고난과 시련이 역사이고 일상이었던 유대인들이지만 그들만큼 자연스럽게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민족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영화 속의 찰리 채플린을 보며 웃지만 그 안에는 많은 울음이 섞여 있다. 이처럼 유대인의 유머는 슬픔의 땅에서 싹튼 웃음이기 때문에 그 속에 눈물이 고여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유대인의 유머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역발상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황제가 "내 얼굴을 100번 보기 전까지는 일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경고했더니, 아들이 동전에 새겨진 자신의 아버지를 딱 100번 쳐다본 다음에 얼른 발설했다고 한다.
이런 유머는 급속한 성장을 거듭한 한국 사회에서도 더없이 필요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굳은 표정으로 작은 일에 죽을 듯이 화를 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에게 나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정식적 근육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신적 근육을 키워주는 가장 훌륭한 운동기구가 바로 유머다. 눈물을 웃음으로 닦아낼 수 있다면,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탈무드』는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서기 300~500년경에 편찬한 것이다. 1500년 전쯤의 이야기인데도 지금 우리의 씁쓸한 모습을 담은 내용들이 눈에 띈다. 세월이 흐르고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은 개화해도 바뀌지 않은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들 말이다.
늙은 구두장이가 홀로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가정이 있어서 토요일 밤에만 찾아왔다. 토요일 밤에 찾아온 아들들은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침대 옆에 앉기 위해 상자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 상자가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이 속에는 아버지가 평생 모은 금과 은이 들어 있는 게 틀림없어. 그들은 생각했다. 형제들은 한 사람씩 돌보면서 그 보물을 지키기로 했다. 이윽고 노인이 숨을 거두었다. 여드레째 그들이 상자를 열자 산산 조각난 유리만 가득 들어있었다. "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우리가 그걸 지키도록 이런 일을 했으니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 맏아들이 말했다.
그나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성공했다. 아들들의 부양을 받았고 아들들도 아버지에게 속았다고 화를 내기보다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으니 말이다. 가끔 사회 면 뉴스를 보다 보면 재산이 많은 부모는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싸우고, 가난한 부모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방치되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온다. 점점 더 계산적이고 타산적으로 바뀌어가는 부모 자식 관계가 왠지 씁쓸하다.
사랑을 준다는 것의 의미 · 『사랑의 기술』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괴테보다 150여 년 늦은 1900년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난 에리히 프롬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로 서구에 사랑학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에리히 프롬의 아버지는 상인으로, 자기 자신에게 자존감을 갖기보다는 아들이 존경받는 학자나 랍비가 되길 바랐던 소심한 인물이었고 실질적으로 에리히 프롬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것은 어머니였다. 프롬은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까지 수많은 여성 편력을 거치며 상실과 상처를 겪어야 했다. 1956년에 나온 『사랑의 기술』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 머리말에 "이 책에서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라고 적고 사랑은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이라기보다는 기술이기 때문에 그 본질을 파악하고 걸맞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롬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오류는 우리가 사랑하는 법이 아니라 사랑받는 법을 먼저 배우려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오류는 자신이 사랑을 오래 못 하게 되면 환경을 탓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 내 눈을 감동시키는 운명 같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그런 여자나 남자가 왜 안 나타날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말이다. 사랑에는 인내도 있어야 하고 책임도 있어야하고 존경도 있어야 한다.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분리되어 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가 되는 방식은 똑같지 않다. 피학대성 음란증이라고 어렵게 번역되는 마조히즘은 다른 사람의 일부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지 않고는 분리감과 고독을 극복할 수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수동성이 수반된다. 피학대성 음란증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가학성 음란증, 영어로는 사디즘이라는 것이 있다. 사디즘은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서 자신의 껌딱지처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 방향이 다를 뿐 마조히즘과 마찬가지로 공서(共棲, symbiosis)적 합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의 미숙한 형태다. 그렇다면 공서적 합일에 속하지 않는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성숙한 사랑은 개인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사랑은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자신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는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받기보다는 주면서 행복해하는 것이 성숙한 사랑이다. 그래서 공서적 사랑이 미성숙한 사랑이라면 성숙한 사랑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랑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에리히 프롬은 생산적 활동과 비생산적 활동의 유일한 기준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시사적인 것은 시장형인간이다. 그들은 준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교환가치만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묻는다. 준만큼 받아야 하는 사랑이라면 과연 생산적인 활동이냐고, 결국 지금 뭔가를 주면서 다시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은 시장형 인간일 것 같다.
토크빌은 어떤 민주주의를 보았는가? · 『미국의 민주주의』 선택에 대하여
"나는 미국에서 미국 이상의 것을 보았다"
1805년 노르망디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토크빌은 프랑스의 유명한 정치 사회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끝난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났다. 토크빌은 16세에 왕립대학에 들어갔고 이후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1827년 하급 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가 몰락하면서 토크빌의 장래도 불투명해졌다. 그는 법관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친구 보몽과 함께 미국의 교도소 시스템을 연구할 목적으로 미국 여행을 신청했다. 토크빌은 자비로 미국을 여행하면서 신생 국가에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행을 마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책을 출판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민주주의』 서론에서 토크빌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 한다. 그에 따르면 귀족은 자신들의 특권을 정당한 것으로 믿고 농노는 자신의 열등한 처지를 당연한 자연 질서의 결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평등과 비참함이 있어도 두 계급 모두 타락하지 않고 안정, 힘, 영광을 구가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어 계급 차별이 사라지고 인류를 갈라놓았던 장벽들도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토크빌은 이런 추세에 맞춰 미국을 연구함으로써 프랑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와 경험을 찾아보고 연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두려운 점으로 다수의 횡포를 꼽았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가 자유롭기 때문에 무질서로 흐를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해악에 지나지 않고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진행되는 노예화 과정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물처럼 촘촘한 규칙들 속에서 사람들이 창조력을 잃어가며 소시민화 된다는 것이다.
누가 위대한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평등 없이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평등만으로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너와 내가 같다는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자꾸 작아지면서 전체 국민은 존재하지만 개개인은 자꾸 사라져간다. 토크빌은 평등을 옹호하면서도 우리가 스스로 선출한 통치자들,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훨씬 커다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조건 복종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주 쉽게 전체주의 국가로 흘러가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도 민주정치가 독재정치로 변질하는 과정을 겪어왔다.
민주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통찰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 그래서 장점만큼 위험도 많이 내포되어 있다. 민주주의 시대가 안고 있는 해악 중에 대표적인 것은 물신주의와 세속주의다. 세습적인 신분이 돈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신분으로 바뀌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토크빌의 시대 납세 능력이 있는 21세 이상의 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선거권은 백인 여성을 거쳐 1966년 선거세 부과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흑인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상위 1퍼센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미국 정치, 아니 민주정치 아닌가. 그래서인지 장 자크 루소의 말이 비범하게 느껴진다.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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