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건축이다

   
김희곤
ǻ
오브제(다산북스)
   
16000
2014�� 03��



■ 책 소개


스페인 건축 전문가 김희곤의 스페인 건축문화 답사기 





IMF 구제금융 당시 마흔넷의 나이로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건축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복원 및 재생건축을 전공하고 돌아온 저자는 스페인 건축은 나에게 인생의 집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영혼의 집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유학 이후 언제나 스페인을 그리워하고 틈이 나면 찾아가며 자유와 열정과 젊음을 가슴에 담았다스페인은 건축이다는 스페인의 건축물 앞에 서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건축가가 과감히 인생의 직선 주로에서 벗어나” 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움인 스페인 건축문화를 가슴이 뛰는 여행기처럼 소개하는 책이다.





■ 저자 김희곤


홍익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10년 동안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했다. 2001마흔다섯의 나이에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건축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복원 및 재생건축을 전공하고 돌아왔다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여러 현상설계공모에 당선됐으며 홍익대성균관대서울시립대 등에서 겸임교수를 지냈다현재 삼육대학교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한국건축가협회 문화아카데미위원장대한민국건축대전 심사위원, FIKA국제위원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지은 책으로 반 바퀴 돌린 꿈』『CA press』『아버지는 매일 가출하고 싶다』『스페인 문화순례』『스페인은 건축이다가 있다.





■ 차례


1장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


-솔 광장


-마요르 광장


-부엔 레티로 공원


-살라망카


-아도차역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다시 한 번 둘러보는 마드리드





2장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카스티야라만차


-소코도베르 광장


-톨레도 대성당


-알카사르


-메스키타 델 크리스토 데라 루스 사원


-유대인 지구


-엘 그레코의 집


-산토 토메 교회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


-살바도르 광장


-과달라하라


-아란훼스


-산 로렌소 데 엘 에스코리알





3장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안달루시아


-코르도바 메스키타


-알라브라 궁전


-알카사바


-카를로스 5세 궁전


-나사리에스 궁전


-헤네랄리페


-다시 한 번 둘러보는 안달루시아





4장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바로셀로나


-가우디


-구엘 공원


-카사 밀라


-구엘성지 지하제실


-성가족 대성당


-가우디 건축의 매력


-다시 한 번 둘러보는 바로셀로나





5장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빌바오살라망카발렌시아


-살라망카


-빌바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발렌시아







스페인은 건축이다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마드리드

스페인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 마드리드는 해발고도 635미터의 메세타 고원에 위치한 분지형 도시로 스페인을 점령한 무어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의 심장부에 자신들의 전략적인 요충지로 건설했다. 코르도바 왕국의 무하메드1세가 854년 건설한 도시가 오늘날 매혹적인 마드리드의 시작이다.


도시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는 곳, 스페인 광장

마드리드보다 더 매력적인 도시가 있을까? 중세의 숨결이 살아 있는 마드리드는 광장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물고 펼쳐져 있는 빛의 도시다. 알 수 없는 세월의 파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마드리드 문화 속으로 나는 막 수도원을 박차고 나온 어린 소년처럼 던져졌다.


마드리드 최대의 번화가인 그란비아 거리는 스페인 광장에서 시작해 알칼라 거리까지 이어진다. 광장의 남쪽에는 마드리드 왕궁이 위치해 있고, 서쪽 만사나레스 강을 끼고 있다.


스페인 광장에는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을 기념해서 지은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아름다운 광장 곳곳에서 수많은 연인들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앉아서 망중한을 즐긴다.


스페인 광장은 중세의 맥박이 뛰고 있는 구도심의 서쪽을 등대처럼 지키는 광장이다. 직사각형의 대지를 선과 면으로 구획하여 분수와 돈키호테 동상을 안고 있는 오벨리스크와 작은 마당과 연못을 적당한 비례로 배치했다. 교회가 신의 지혜를 배우는 학교라면 작은 광장은 신과 인간이 몸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스페인 광장은 사색의 공간이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할아버지의 수염처럼 어린 손자의 장난기를 부추기는 장난감이다. 그 나머지는 할아버지의 구수한 삶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이야기 자국에 마음을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스페인 광장은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받는 도시의 밀림에서 얻은 욕망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을 공간이며, 첨단의 21세기 공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마드리드 관광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솔 광장

마요르 광장이 밀림에 자리잡은 은밀한 수도원이라면 솔 광장은 거미줄처럼 엉킨 마드리드의 중심이자 세계로 열린 마당이다. 2011년 스페인을 강타한 금융위기에 분노한 시민들의 대규모 시민집회가 열린 곳도 솔 광장이며 마드리드 시민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장소도 솔 광장이다. 솔 광장은 교통의 요지이자 관청과 상업의 중심으로 마드리드 시민의 아고라이자 세상으로 열린 시장이다.


솔 광장의 정식 명칭은 푸에르타 델 솔이다. 푸에르타는 성문, 솔은 태양을 뜻한다. 즉 이곳이 태양의 문, 세상의 중심이란 것이다. 솔 광장에는 16세기까지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중세시대 성문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솔 광장에는 말을 탄 카를로스 3세의 동상과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곰 동상 그리고 시계탑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 역할을 하고 있다. 곰 동상 앞에서는 언제나 재미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붉은 드레스로 치장한 무희가 기타 반주에 맞추어 플라멩코를 추는 모습에서 솔 광장의 진면목을 찾을 수 있다.


솔 광장은 마드리드 주요 관광의 실질적인 중심이며 스페인 곳곳으로 통하는 9개의 도로가 시작되는 명실상부한 마드리드 관광의 거점이자 중세의 숨결이 시작되는 곳이다. 광장은 강줄기를 따라 물결이 흘러들어오듯이 방사형 도로가 단단한 도시의 제방을 깎고 조절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마드리드 현대문명의 젖줄인 그란비아 거리와 솔 광장이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지름길에 프레시아도스 쇼핑 거리가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이어지고 있다.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카스티야라만차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은 카스티야이레온 지방과 마드리드, 발렌시아, 안달루시아 등의 지역과 접하고 있다. 스페인의 자치지방 중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곳에 속한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로 널리 알려진 라만차는 바람이 많은 고원 지대이다. 포도원, 해바라기, 버섯, 올리브 과수원, 치즈와 같은 라만차의 특산물은 스페인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신비의 고도 톨레도, 소코도베르 광장

톨레도를 보지 않았다면 스페인을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톨레도는 작은 로마 이슬람의 메카 작은 예루살렘이라 불리며, 로마시대 이후의 이슬람, 유대 건축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톨레도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략적 군사요충지로 로마인들에게 점령되었을 때부터,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이룩한 서고트 왕국의 군주 아타나글리드가 수도를 세비야에서 톨레도로 옮긴 이후까지 이슬람과 가톨릭의 정신적인 요새로서 역사의 순간을 줄곧 지켜왔다. 16세기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이전하자 톨레도는 급속하게 쇠퇴했지만 스페인 중세역사 유적만큼은 화석처럼 단단하게 빛나고 있다.


멀리서 톨레도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마드리드에서 가져온 흑백지도는 2차원 평면이 아니라 3차원 입체도시로 움직이고 있었다. 못난 피라미드처럼 다소 거칠게 평야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톨레도를 하늘에서 쳐다보면 타호 강의 굴곡에 의해 윤곽이 그려진 독수리가 카스틸랴 평원으로 날아가는 모습이다. 톨레도는 거대한 협곡 위에서 조각된 해발 527미터의 장엄한 중세의 숲이다. 북쪽을 제외한 3면은 타호 강의 곡류가 조각한 천혜의 협곡으로 북쪽은 성벽으로 단단하게 가두어진 톨레도는 중세의 도시 생태학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역사박물관이다.


13세기에 착공하여 15세기에 완성된 톨레도 대성당이 손에 잡힐 듯 피라미드의 상투처럼 아스라이 손짓하는 모습은 엘 그레이코의 톨레도의 전경(A view of Toledo)을 떠올리게 한다.


로마, 서고트, 이슬람, 모바사베(이슬람문화로 편입된 기독교 문화), 무데하르(기독교 문화로 편입된 이슬람 문화), 기독교 문화, 유대 문화가 비빔밥처럼 어우러진 중세의 보물섬이 톨레도다. 톨레도의 거리는 상상력의 세계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파르고, 좁고, 이리저리 꼬이고, 비틀리고, 좁아졌다가 넓어지기를 끝없이 반복하며 중세의 리얼리티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것이 변하는 오늘날 톨레도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시간의 섬이다. 눈앞에 펼쳐진 톨레도는 오래된 미래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 자동차, 관광객 무리가 21세기 톨레도를 협연하고 있다.


스페인 중세의 모든 디자인이 살아 있는 공간, 톨레도 대성당

도시풍경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톨레도 대성당은 서고트 시대부터 대성당이 자리한 곳이다. 이슬람 지배 300년간 모스크가 있었던 곳에 톨레도 대성당이 자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톨레도 대성당 자체로 지난 시대의 역사를 오롯이 끌어안고 서 있는 도시의 정신적 지주이자 거대한 기념비다.


톨레도 대성당은 1085년 파괴되었지만 페르난도 3세의 명으로 건축가 페트루스 페트리에 의해 1227년 초석을 놓은 이후 266년간 공사를 진행하여 1493년 스페인 통일 다음해 마침내 완공되었다. 프랑스 고딕장식을 따랐지만 성당의 벽과 기둥에 반영된 웅장함을 통하여 스페인 고딕정신을 구현했다. 실내장식은 이슬람 무데하르양식이고 내부는 스페인 르네상스양식으로 다양한 시대의 손길이 고루 담긴 종합선물세트다.


성당의 초기평면은 길이 113미터, 폭 57미터에 88개의 기둥으로 5개의 주랑을 갖추고 있다. 교회의 내진부는 45미터 높이로 웅장하게 솟아 교회의 중심을 상징하며, 75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성스러운 빛을 뿌려준다. 측면으로 난 4개의 주랑과 연계된 일련의 부속예배당 22개를 연결하여 톨레도 대성당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종탑 아래 지루한 벽면에 수직으로 만곡한 아치문이 나 있다. 사자들의 문(Puerta de Los Leones)으로 불리는 이 문은 15세기에 화려한 고딕스타일로 지어졌으며 대리석에 조각된 사자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정면에 난 3개의 출입구는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좌측문은 지옥의 문, 우측문은 심판의 문, 중앙문은 용서의 문이다. 사람들은 주로 중앙 주출입구인 용서의 문으로 출입한다. 심판의 문은 하느님의 심판의 날이 올 때 열리는 문이라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다. 뾰족아치로 깊게 만곡한 주출입구 아치에는 돋을새김장식으로 드러난 12사도들의 정교한 조각이 돋보인다.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지방은 가장 인구가 많은 스페인 자치지방이며, 수도는 세비야이다. 스페인의 남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중해를 끼고 있다. 서쪽으로 포르투갈과 대서양에 맞닿아 있다. 안달루시아는 세비야, 말라가, 그라나다, 론다 등 아름다운 도시를 거느린 예술과 열정의 지역이다. 특히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문화 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알람브라 궁전

스페인 이슬람 건축의 백미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손에 꼽는 이유는 건축공간이 자연의 일부이자 거대한 도시 스펙트럼의 조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와 사라고사의 알하페리아 궁전처럼 내부공간을 파괴하고 훼손하지 않은 것도 행운이지만 알람브라 궁전이 도시의 절경에 홀로 서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점이 더 기적적이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존재는 손을 많이 타는 법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파괴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슬람 건축미의 꽃으로 알람브라 궁전이 손꼽히는 이유는 이슬람 800년 지배기간 동안 이보다 더 아름답고 온전하게 이슬람 건축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풍전등화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한 무어인의 손으로 돌에 코란을 새기듯 정성스럽게 구축한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문화의 결정체이며 당대 뛰어난 이슬람 건축술의 상징이다. 화려하다고 말하기에는 숭고함이 압도적이고, 신비하다고 말하기에는 절제미가 한층 돋보인다. 아람브라 궁전은 무어인의 눈물로 조각한 보석이다.


18세기 알람브라 궁전은 중세말의 혼란한 스페인 정국 탓으로 도둑과 거지들의 천국이었다. 1870년대 워싱턴 어빙과 같은 낭만파 작가들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덕분에 알람브라 궁전은 국가기념물로 선포되었다. 어빙은 1820년 짧은 체류기간 동안 나사리에스 궁전에서 『알람브라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를 집필하였다. 이후 파괴되고 방치되었던 알람브라 궁전의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으며 헤네랄리프 정원에 이어 알바이신 언덕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알그라나다 왕의 여름별궁, 헤네랄리페

아랍어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뜻의 헤네랄리페는 알람브라 궁전의 여름별장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알람브라 왕가 소유의 농장과 과수원은 농업용 단지와 휴식장소로서 주거건물군과 방대한 경작지를 포함하여 4그룹으로 나누어진 거대한 방목지와 두꺼운 벽체에 돌출한 테라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목초지는 말들의 방목장으로 가축사육장으로 혹은 술탄의 사냥터로 사용되었다.


헤네랄리페 궁전(Palacio del Generalife)

헤네랄리페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시골 특유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며 궁전의 경내라기보단 시골농장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서로 다른 레벨의 두 파티오들이 공간적으로 긴밀하게 상호 연계된 비밀스러운 배치에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첫 관문인 하마의 안뜰(Descabalgamiento)은 말에서 내리는 용도로 사용된 벤치에서 유래하였다. 측면으로 2개의 방이 있으며 아마도 소년 마부들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입문은 전통적인 기술에 의해 왕국의 입구로서의 인상을 주기 위해 아치 중심에 키스톤을 설치하여 풍부한 상징성을 전해준다. 계단은 궁궐의 수문장을 위한 양측면의 벤치로 이어진다. 창문이 있는 위층의 작은 방은 경비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두 번째 파티오는 궁전 내부로 오를 수 있는 중앙 쪽을 제외하고 각 측면을 따라 아치로 된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궁전으로 향하는 출입구는 대리석의 장식들과 타일로 마감된 상인방이 돋보이는 작은 문이지만 지금은 초목으로 덮여 있다.


예부터 강어귀의 안뜰로 알려진 세 번째 관문 수로의 안뜰(Patio de la Acequia)은 수압시스템의 주동맥인 좁고 가늘고 긴 통로의 한가운데로 분수를 뿜으며 물이 흐른다. 원래의 배치는 사자들의 궁전의 수로처럼 4개의 가늘고 긴 팔각형의 화단들로 이루어진 십자형이었다고 전한다. 유명한 십자형 물 분사는 19세기에 높은 위치에 설치되어 전 세계에 영감을 전해주었다. 1958년 고고학적 발굴로 흙 아래 12개의 분출구를 가진 오리지널 장치들이 드러났다. 한동안 사방이 완벽하게 막혀 있었던 이슬람 전통 파티오는 개조 이후에 이슬람적인 내밀함을 잃어버렸다.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바로셀로나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안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BC 201년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아직도 구(舊) 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는 고딕가에는 그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의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이다.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고, 피카소의 초기 작품을 모은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

가우디(1852~1926)는 친가와 외가 모두 대대로 대장간을 가업 삼아 생계를 이어온 장인의 후손이다. 그는 고질적인 질병을 안고 태어났다. 선천성 폐렴과 관절염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려 놀지 못하고 늘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며 상상력과 친구가 되었다.


가우디가 살았던 소도시 리우돔스와 레우스는 바르셀로나의 남쪽 해안도시 타라고나를 마당처럼 물고 있는 로마시대 역사유적지였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버섯과 곤충, 동식물은 모두 어린 시절 상상력 가득한 자연의 실험실에서 건져 올린 유산이다. 위대한 대자연의 책은 병약한 어린 가우디의 삶을 상상력으로 이끌었다. 그의 건축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곡선의 아름다움은 아픈 몸으로 자연에서 발견한 선물이었다.


가우디의 위대한 교과서는 레우스와 타라고나의 로마 유적과 이슬람과 중세를 아우르는 다양한 건축문화 유적이었다. 가우디는 다람쥐처럼 유적을 타고 돌아다니며 손과 발끝으로 상상력의 영감을 쌓았다. 스페인 건축의 특징은 빛이 돌에 부딪힐 때 일어나는 효과를 다루는 뛰어난 기술로 가우디 작품에 반복되는 주제가 되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이 빛의 미학을 실현한 세공 장식의 아치와 벽면 장식과 나무천장 장식은 빛의 농담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춤을 춘다. 레우스를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이 처음으로 빛의 미학을 전해주었는데, 이들은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모티프로 장식된 표면조각에 빛을 투영하여 다양하게 변하는 표정까지 놓치지 않고 돌조각에 새겨 넣었다. 이슬람적인 빛의 마술은 훗날 가우디의 손끝에서 다시 재창조되었다.


항상 몸으로 건축을 실현하는 가우디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지만 평생 자신의 경쟁자인 도메네치의 이론은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의 건축기반으로 삼았다. 로마네스크 건축과 고딕 건축 그리고 이슬람 건축이 스페인에 뿌리내린 무데하르양식의 건축이론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 민족건축을 정리한 도메네치의 이론을 건축현장에 직접 응용하였다.


가우디 없는 바르셀로나는 상상할 수 없다, 성가족 대성당

가우디 없는 바르셀로나를 상상할 수 없고, 성가족 대성당 없는 바르셀로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가족 대성당은 가우디 인생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그의 평생 프로젝트였다.


예수의 사랑을 향하여 수없이 회전하며 천상으로 올라가는 첨탑 위로 올랐다. 올라가면 올라간 만큼 회전의 깊이를 느끼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지로부터 부유한 작은 육체의 자유를 느꼈다. 가우디는 성가족 대성당을 눈으로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 진정으로 위로받고 신의 은총을 경험하며 카탈루냐의 일체감을 느끼길 기도했다.


인간이 만든 바르셀로나의 전경과 모든 건축물들이 한줌에 들어온다. 한없이 위로만 쳐다보는 인간의 욕심이 이곳 첨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삶은 장난감처럼 작고 아담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수많은 삶의 계단을 발바닥으로 밀어내며 마침내 오른 삶이 하느님의 모습이란 말인가. 살아온 인생의 마지막 모습은 발치에 내려다보이는 장난감 같은 도시의 모양을 닮았을 것이다. 가우디의 위대함은 공간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을 체험하고 신을 경험하고 느끼게 만든 것이다. 가우디는 공간을 조각하여 상상의 무대를 만들고 신을 체험하게 만드는 마술사다.

 

성가족 대성당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1882년 건축가 비야르에 의해 대성당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1883년 11월 가우디의 손에 넘어왔으며 1884년 3월 성가족 대성당의 공식건축가로 선정되어 1926년 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가우디는 전 생애를 대성당 공사에 헌신하였다. 1918년 이후 다른 모든 작업을 그만두고 몰입한 성가족 대성당 공사는 가우디의 평생 애물단지였다. 성가족 대성당 공사는 130년째 지어지고 있으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빌바오, 살라망카, 발렌시아

스페인 건축은 로마 건축과 이슬람 건축의 씨앗을 계승하여 중세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와 신고전주의를 거쳐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발전되었다. 스페인은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기념비다.


중세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 살라망카

스페인 살라망카는 도시 전체의 스케일을 결정짓는 중세의 좁은 골목, 고색창연한 저택, 낡은 성벽과 성당,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이름 모를 기둥과, 다양한 건축양식들로 가득 찬 벽, 식당과 바, 도시 문화와 역사, 도서관 신·구 대학교 건물과 대성당이 퍼즐조각처럼 중세의 문화와 전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살라망카는 마드리드 서쪽에 위치한 스페인의 가장 오래되고 역사적인 대학도시다. 인구는 고작 15만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지만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적 문화의 깊이는 스페인 중세시대를 포용하고 있다.


스페인 십자군전쟁 기간 동안 이슬람문화와 예술은 점차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 자연스럽게 새로운 스페인문화로 녹아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유럽의 변방이었던 스페인이 영국 옥스퍼드나 이탈리아볼로냐 대학과 맞먹는 역사적인 살라망카 대학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살라망카는 15세기 말, 스페인 르네상스를 꽃피운 가장 왕성한 예술, 문화, 학술활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슬람의 침입은 스페인 중세의 기나긴 겨울잠을 깨웠으며 살라망카 대학은 중세 스페인을 살찌운 정신적 발전소가 되었다. 17세기 잠시 쇠락의 길을 걸었으나 20세기 스페인의 대표작가인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에 의해 살라망카 대학은 옛 명성을 회복하였다. 이후 스페인 내전과 40년 프랑코 독재기간 동안 프랑코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대학으로 자리잡았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대학도시를 이루고 있는 살라망카의 매력은 스페인 중세역사의 중심으로 스페인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대학도시로 꿋꿋하게 살아남은 화석 같은 역사도시이다.

살라망카에는 12세기 로마네스크양식의 대성당을 비롯하여 16세기 건립된 고딕양식의 대성당과 로마 시대의 다리와 극장을 비롯하여 건축학적인 명작들이 전시장처럼 널려 있으며 고색창연한 라틴어 비문으로 뒤덮인 황토색 사암과 탁월한 기교가 돋보이는 플라테레스코양식과 르네상스양식의 건축물들이 중세의 길에 연이어 흩어져 있다.


가우디의 후예,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발렌시아

발렌시아는 예술과학도시를 목표로 해양수족관, 천체관, 과학관, 오페라 공연장, 국제회의장, 교량, 조각녹지벨트와 녹지, 체육시설을 설치하여 도시 이미지를 재창조하였다. 도시는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다.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쏟아부으며 발렌시아의 모습을 세계 속의 랜드마크로 조각하고 있는 주인공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다.


칼라트라바는 균형 잡힌 근육질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거대공간을 가로지르며 불완전함 속에 마술적인 안정감을 숨긴 건축구조를 공간의 중심으로 환원시켰다. 건축구조에 자신이 없었다면 모험적인 건축시공에 도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건축구조보다 한 수 위인 토목구조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하중을 버티는 구조다. 칼라트라바는 단순하고 기능적인 교량 디자인을 조각적이고 미적이고 역동적인 교량 디자인으로 재창조하였다. 곡선으로 아치를 그리며 뒤틀어버려 교묘하게 다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비정형의 교량으로 유명해졌다. 다리 위를 걷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감동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시적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불안한 자세로 서로 의지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안전한 자세를 취하는 칼라트라바의 다리는 도시의 상징물이자 빛나는 조각품으로 사람들에게 오감을 선물하였다.


1998년 아이맥스 천체관(LHemisferic)을 필두로 고풍스러운 발렌시아에 최첨단의 문화시설로 투리아 강변을 완벽하게 장식하였다. 천체관을 정면에서 보면 마치 무당벌레의 거대한 몸집을 그대로 건축공간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우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지혜의 눈은 사람의 눈동자를 떠올릴 만큼 밤이 되면 상상 속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투영하면서 다시 피어난다.


모던한 천체관이 물과 빛으로 무심한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입힌 것이라면 과학관은 조각적인 구조미로 마치 거대한 곤충이 하늘로 기어 올라가는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백지처럼 새하얀 페인트를 분처럼 바르고 관객들의 호기심을 무한정 조정하며 상상력의 극치를 유발하는 과학관은 이상야릇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외부계단을 오르며 느끼는 전망은 건축물에 오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공상의 조각에 오르고 있다는 가상에 빠져들게 한다.


칼라트라바의 작품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21세기 발렌시아의 현상을 이해할 순 없지만 불만 없이 천재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세는 놀랄 만하다. 천문학적인 재정부담을 지고서 발렌시아의 모습을 바꾸고 있는 그들은 분명 건축을 예술작품으로 이해하는 문화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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