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탄생

The Believing Brain

   
마이클 셔머(역자: 김소희)
ǻ
지식갤러리
   
22000
2012�� 11��



■ 책 소개
사람들은 왜 믿는가?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되고,변하고, 사라지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심리학자이자 과학역사가인 저자는 30여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이 세상에 대해믿음을 형성하는 방식에 대한 전통적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 대신에 믿음에 대한 근원을 ‘뇌’에서 찾고 있다. 
저자는 믿음의 과정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정치, 경제, 종교부터 시작해 음모론과초자연적인과 초과학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제공한다. 또한 믿음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수많은 인지 과정의 작동 방식을 살핀후, 저자는 우리의 믿음이 믿을 만한 것인지, 패턴의 행위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변하는 최종적인 탐지자 역할이 ‘과학’임을 증명한다.

■ 저자 마이클 셔머(MichaelShermer)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등과 함께 과학의 최전선에서 사이비 과학, 창조론, 미신에 맞서 싸워왔다. 그는 1997년 과학주의 운동의 본거지인 회의주의 학회 스켑틱스 소사이어티(Skeptics Society)를 설립하고 과학저널「스켑틱(Skeptic)」(www.skeptic.com)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고 있다. 가장 새롭고 중요한 생각을쏟아내는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모임 에지재단(Edge Foundation)의 회원이기도 하다. 
마이클 셔머는 회의주의를 전파하는 활발한 강연 및 저술, 대중 매체 활동을 벌이며사이비 주장을 펼치는 심령술사들, 창조론자들, 사이비 역사학자들, 컬트 집단들을 고발한다. 과학과 이성, 더 나아가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들에정면으로 맞서며 미국 대중들을 선도하는 데 앞장서 온 그는 과학계의 전사라 할 수 있다. 고(故) 스티븐 제이 굴드는 “셔머는 이성의 힘으로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행동가이며, 미국 대중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믿음의 3부작’이라 불리는『왜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우리는 어떤 식으로 믿는가』『선악의 과학』과『무신예찬』(공저)『진화경제학』『과학의 변경 지대』등이있다.

■ 역자김소희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스무살에 배웠더라면 변했을 것들』『뇌,1.4킬로그램의 사용법』『분석으로 경쟁하라』『위험한 생각 습관 20』『인코그니토』『시대를 앞서는 미래경쟁전략』『양복을 입은 원시인』『분석의기술』『심리학, 사랑을 말하다』『쇼크 독트린』등이 있다. 

■ 감수 이정모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캐나다퀸즈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와 인지과학 협동과정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인지과학회회장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인지심리학』『인지과학: 과거-현재-미래』『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모르는 것들』(공저) 등이 있다.

■ 차례
감수의 글 - 인간은 먼저 믿고, 논리분석은 후에한다
프롤로그 - 나는 믿고 싶다

1부 믿음의 여정 
01 미스터 다르피노의 딜레마
02 콜린스 박사의개종
03 회의론자의 여정

2부믿음의 생물학 
04 패턴성
05 행위자성
06 믿음에 개입하는 뉴런
3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07 내세에대한 믿음
08 신에 대한 믿음
09 외계인에 대한 믿음
10 음모에 대한 믿음
4부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 
11 믿음의정치
12 믿음의 확증
13 믿음의 지리학
14 믿음의 우주론

에필로그 - 진실은 저 어딘가에
주석
감사의 말





믿음의 탄생


1부 믿음의 여정

미스터 다르피노의 딜레마

목소리의 원천

나는 1966년 2월 새벽 내 친구 칙 다르피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경험이 이후 그의 인생을 근원적으로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믿음을 형성할 때 우리 모두에게 벌어지는 일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칙에게 벌어진 일은 초현실적, 천상적, 내세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1966년 이른 아침 조용한 목소리가 위로의 메시지 하나를 나지막이 전달했다. 내가 상상하기에는 불안으로 가득한 그의 마음이 오랫동안 듣고 싶어 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너는 더 높은 존재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 대가로 너는 단지 그 존재를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칙 다르피노가 그날 아침에 들은 열세 마디가 정확히 이런 말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다음의 내용 외에는 더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의미는 그 존재와 나와의 사랑이었네. 나는 나와 그것과의 관계, 그것과 나와의 관계를 파악했지. 우리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였어. 그것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 즉 나와 그 존재 그리고 그 존재와 나와의 상호적인 사랑이라고 하겠네."


어떻게 자연적인 설명으로 초자연적인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다르피노의 딜레마다.


이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칙 다르피노는 현실 감각을 상실한 미친 남자, 은박지를 모자처럼 머리에 둘둘 만 정신병자에 불과한가? 아니다. 130초간의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정신병자가 될 수는 없다. 자신과 인간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책과 회의, 대학 강의를 통해 과학· 신학· 철학을 추구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칙은 지나치게 포부가 크기는 하지만 미친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환경적인 스트레스로 현실과 잠시 유리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환경적 스트레스와 뇌의 일시적인 기이한 장애의 조합일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어떤 비전을 보거나 계시 같은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모세, 예수, 무함마드, 잔다르크, 조지프 스미스(모르몬교의 창시자-옮긴이) 같은 선각자와 똑같은 신경화학적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여기서 관심을 둘 것은 뇌가 믿음을 형성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모형이다. 우리는 모두 불가피하게, 가차 없이, 분명히 그렇게 하고 있다. 믿음은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칙 다르피노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 나는 우리가 믿음을 만들고 그것을 따르기로 헌신한 뒤에 우리 위에 군림하는 믿음체계의 힘에 더 관심이 간다. 어떤 식의 개인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사회문화적, 정신의학적 믿음이든 간에 말이다.


회의론자의 여정

내가 틀렸다면 나는 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쩌면 칙 다르피노가 1966년 새벽에 경험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신이든 지적설계자든 외계인이든 원천이든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우리 세계 외부의 의도적 행위자가 칙에게 말을 걸고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반가운 메시지일 것이다. 칙은 그런 경험을 일으키는 신경과학에 관한 지식을 모조리 알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저 외부에 우리를 걱정하는 개체가 있다고 믿고 있다.


신비주의자와 현자, 역사에 자주 나오는 인물 그리고 오늘날 초과학적인 것을 만나거나 영적 세계와 접촉한 사람들은 다른 차원과 더 잘 조화를 이룬다. 그들의 마음은 그러한 원천과 연결될 정도로 회의론이 줄어들어 있다. 이것은 사실 미국 프린스턴고등학문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위대한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의견이다. 그는 2004년 에세이에서 초과학적인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조리 있는 가설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환원주의자(철학에서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사상이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옮긴이)가 아니다. 초과학적인 현상들은 실재하지만, 과학의 한계 너머에 있다는 것이 수많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순전히 개인적인 일화이지만, 그의 할머니가 주술 치료사이고 사촌이 심령연구 저널의 편집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심령연구협회를 비롯한 협회들이 수집한 일화에 따르면, 그것은 특정 상황에서(가령 스트레스) 몇몇 사람들이 때때로 초과학적인 힘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 현상의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을 과학의 까다로운 도구로 이해하기에는 가변적이고 찰나적이라는 관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뇌의 외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신은 마음이거나 그것의 일부 현시일지도 모른다. 만일 마음이 신체를 초월해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신성과 연결될 수도 있다. 애초에 우주를 존재하게 한 것이 마음 자체라면 어떤가? 이 시나리오에서 신은 보편적인 마음이며, 내세는 뇌 없는 마음이 가는 곳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심한다. 나는 칙 다르피노의 경험을 스트레스가 유발한 환청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믿는다. 다이슨은 우리 시대의 최고의 지성인이다. 우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진지하게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천재의 마음도 일화적 사고를 선호하는 인지적 편향을 억누를 수 없다. 일화가 진짜 현상을 나타내는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제된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거나(혹은 초능력으로 카드를 맞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과학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했다. 


신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떻든 간에 신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세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듯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있고, 신과 그의 아들에 대한 믿음이 천국에 들어가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말이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 전지전능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신이 왜 내가 그를 믿는지 아닌지에 신경을 쓰겠는가? 그리고 어떤 경우든 신은 이미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심지어 그가 내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해도 신은 전지전능하고 시공간 밖에 있는데 왜 모든 세상사를 알지 못할까? 그리고 어떤 경우든 믿음의 여부가 왜 중요할까? 인간의 애정과 숭배를 놓고 경쟁하고 질투하는 그리스나 로마의 신이 아닌 이상 말이다.



2부 믿음의 생물학

패턴성

당신이 3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사바나 주위를 걸어가는 호미니드(hominid, 현생 인류를 이루는 직립 보행 영장류를 일컫는 말-옮긴이)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저 바람인가, 아니면 위험한 포식자인가? 대답에 따라 당신의 생사가 갈린다.


풀숲의 부스럭거림을 위험한 포식자로 추정했는데 단지 바람으로 판명된다면, 당신은 인지상의 제1종 오류(type Ⅰ error)라는 것을 범한 셈이다. 이것은 긍정 오류로도 알려졌으며, 그렇지 않은데도 그렇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패턴을 찾아냈다. 풀숲의 부스럭거림(A)을 위험한 포식자(B)와 연결했지만, A는 B와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어떤 해도 없다. 당신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곳을 벗어나 더욱 기민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목적지로의 다른 길을 찾는다.


당신이 풀숲의 부스럭거림을 단지 바람이라고 추정했는데 위험한 포식자로 판명된다면 인지상의 제2종 오류(type Ⅱ error)를 저지른 것이다. 이것은 부정 오류라고 불리며, 실제로 그런데도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당신은 진짜 패턴을 놓쳤다. 풀숲의 부스럭거림(A)을 위험한 포식자(B)와 연결하지 못했다. 이 경우에 A는 B와 연결되어 있었다. 당신은 포식자의 점심거리가 되었다. 축하한다. 당신은 다윈상(멍청한 탓에 죽어 인류의 유전자 개선에 공헌한 자에게 주는 상-옮긴이)의 수상자가 되었다. 당신은 이제 더는 호미니드 유전자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믿음 엔진이다. 뇌는 우리가 자연에서 봤다고 생각한 패턴으로부터 의미를 만들어내고 단편적인 사실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진화된 패턴 인식 기계다. 때로는 A는 B와 연결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면도하지 않은 상태(A)에서 홈런을 친(B) 야구선수는 A와 B 사이에 잘못된 연합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교적 해롭지 않다. 하지만 그 연합이 사실일 때, 우리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예측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지식을 배운다. 우리는 패턴 찾기에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자손이다. 이 과정은 연합학습(learning association 유기체가 환경 속에서 자극과 자극, 또는 자극과 반응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것들이 서로 결합함을 인식하는 것-옮긴이)이라고 불리는데, 예쁜꼬마선충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모든 동물의 행동 근원이다. 나는 이 과정을 패턴성, 혹은 의미 있는/의미 없는 잡음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으려는 성향이라고 부르겠다. 불행히도 우리는 진짜 패턴과 가짜 패턴을 구별할 수 있는 헛소리 탐지 네트워크를 뇌에서 진화시키지 못했다.


행위자성

아프리카 평원의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호미니드로 돌아가 보자. 그 소리가 위험한 포식자인지 바람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단지 생사만이 아니라 수많은 수준에서 중요한 구별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차이가 있다는 것 역시 짚고 넘어가자. 바람은 무생물의 힘을 대표하고 위험한 포식자는 의도를 가진 행위자를 나타낸다. 무생물의 힘과 의도를 가진 행위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동물은 대부분 피상적인 (하지만 중대한) 생사 수준에서 이것을 구분하지만,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하지 않는 무언가를 한다.


발달된 피질과 마음이론(theory of mind, 우리 자신과 남들의 갈망과 의도 같은 정신 상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의 큰 뇌를 가진 호미니드인 우리는 패턴에 의미와 의도 그리고 행위자를 주입하는 행위자성을 실천한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구성하는 상향식 인과 법칙이나 무작위성 대신 의도적 행위자들이 보이지 않게 하향식으로 세상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영혼, 혼령, 유령, 신, 악마, 천사, 외계인, 지적설계자, 음모를 꾸미는 정부 요원, 의도와 힘을 가진 각종 보이지 않는 행위자들이 자주 출몰해 우리의 삶을 통제한다고 여긴다. 패턴성과 행위자성은 의미 있는/의미 없는 잡음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는 성향과 혼합되어 샤머니즘, 이교도, 애니미즘, 다신교, 일신교, 각종 올드에이지와 뉴에이지 영성론의 인지적 기반을 형성한다. 그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지적설계자는 하향식으로 생명을 창조한 보이지 않는 행위자다. 외계지적생명체는 종종 우리의 임박한 자기 파괴를 경고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그려진다. 음모론은 빌더버그 회원들(Bildebergers,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가공할 영향력을 지닌 결사체로 알려져 있음-옮긴이), 로스차일드, 록펠러, 그리고 우리가 예지자(叡智者, 사물의 도리를 꿰뚫어 보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옮긴이)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출 때 정치·경제적 줄을 잡아당기는 꼭두각시 조종자 같이 이면에 작용하는 숨겨진 행위자를 포함할 것이다. 심지어 정부가 경제를 구하기 위해 하향식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도 행위자성의 일종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되었을 때 거의 구세주로 받아들여졌다.



3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믿음

인간이라는 종에는 호모 사피엔스(사유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같은 많은 학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적 인간)는 인간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명칭이다.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의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84퍼센트(2009년 말 기준 57억 명)가 조직된 종교에 속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정말 많은 영혼의 수다. 기독교는 약 20억 명의 지지자를 가지고 있으며(절반은 가톨릭 신도들이다), 무슬림은 10억 명이 조금 넘고, 힌두교는 8억 5000만 명, 불교도는 거의 4억 명이며, 민속종교(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정령 신앙과 기타 다른 종교들-옮긴이)가 남은 수억 명 신도를 차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약 만여 개의 종교가 있는데, 각각은 더 세분할 수 있다. 가령 기독교인들은 3만 4000개의 다른 명칭들로 나뉜다.


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대표하는지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달라진다. 신은 신도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인간 외적인 힘인가? 퓨 포럼(Pew Forum)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르몬교도들의 91퍼센트가 개인적인 신을 믿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82퍼센트, 복음주의자들은 79퍼센트, 프로테스탄트들은 62퍼센트, 가톨릭교도는 60퍼센트만 그렇다. 반대로 힌두교의 53퍼센트, 유대교의 50퍼센트, 불교도의 45퍼센트, 종교적으로 소속이 없는 신도들의 35퍼센트는 신을 인간 외적인 힘이라고 믿는다.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이자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행위자성과 저 밖에 뭔가가 있다는 이 원론적 믿음이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라고 자처한 사람들의 21퍼센트와 불가지론자를 자처한 사람들의 55퍼센트가 신이나 보편적 영혼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과학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에서 작동한다. 사실 초자연적·초과학적인 것은 없다. 자연적인 것, 정상적인 것 그리고 자연적인 원인으로 아직 설명하지 못한 미스터리가 있을 뿐이다. 초자연적, 초과학적 등의 단어에 호소하는 것은 우리가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원인을 발견할 때까지 언어적 대체제를 제공한 것이거나 관심 부족으로 찾기를 중단한 것이다. 이런 일은 과학에서 흔히 벌어진다. 한때 초자연적이거나 초과학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던 미스터리는 그 원인을 이해한 뒤에는 천문학적·기상학적 사건으로 과학에 통합된다. 가령 우주론자들이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을 이른바 은하의 무리와 움직임 그리고 구조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사라진 물질이라고 할 때, 그들은 이런 기술적인 용어를 인과적 설명으로 사용할 의도가 없다. 에너지와 물질의 실제 원천을 발견할 때까지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라는 용어는 단지 인지적 편의에 의해 사용된다. 유신론자, 창조론자, 지적설계 이론가는 기적과 무에서 창조가 일어났다고 호소한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수색의 끝이겠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시작에 불과하다. 과학은 신학이 떠난 곳에서 시작된다.


위대한 일신교를 창조한 청동기 시대 조상들에게 세상과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은 신과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의 기술을 알고 나면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이 된다. 나의 첫 발판은 이렇다. 과학이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은 자연적인 것으로 시공간에 존재하고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제한받는 개체다. 시공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신은 과학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는 자연계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템플턴재단의 후원으로 유신론자이자 하버드대학교의 의대 교수인 제롬 그루프먼과 논쟁했을 때 내가 했던 주장이다. 그루프먼은 논평에서 신은 형태가 없고 측정할 수 없어 과학에 의해 정량화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은 시간 외부에 존재하며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신이 존재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지각(감각)과 개념(마음)에 근거해 세상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유형적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지각과 개념의 외부에 있다고 정의되는 존재를 알 수 있는가? 어느 시점에서 신은 기도, 섭리, 기적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우리의 시공간으로 걸어 들어와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과학은 왜 그 신성한 행동을 측정할 수 없는가? 우리가 아는 다른 방식, 비법이나 깊은 명상, 기도를 통한 신실함이 있다면, 신경과학은 왜 그 과정에 대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말할 수 없는가? 명상하는 스님과 기도하는 신부의 연구가 보여주듯, 공간에서 신체의 방향과 연관된 두정엽 일부가 명상 상태에서 조용해진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자아와 비자아 사이의 정상적인 구별을 없애고 환경과 하나가 되면), 이것은 시공간 외부에 있는 존재와의 접촉이라기보다는 신경화학상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루프먼은 결국 내가 이제껏 접했던 것들 가운데 가장 정직한 진술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나는 왜 믿느냐는 질문에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 질문은 누군가를 왜 사랑하느냐와 같은 영역에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특정 요소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답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 같은 사람들이 지니고 살아가면서 종종 힘겨워하는 인지적 불협화음이라 하겠다."


나는 이런 믿음의 진술에 반박 의견이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 주장이 없다면 과학은 거의 할 말이 없다. 인생은 고통스러운 투쟁이며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우리는 행복을 찾고 마음에 걸리는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나는 그루프먼이 서양의 유대인 부모가 아니라 인도의 힌두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완전히 다른 우주의 궁극적 본질을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 역시 이성적인 주장으로 정당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화적 유산과 역사적 전통에서 걸어 나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최고의 도구인 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도덕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번영에 필요한 다양성을 허용하는 정치·사회적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 종교는 자연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그 정도의 경지로 이끌지 못한다. 그리고 경쟁적인 분파의 구성원들이 상호배타적인 절대적 믿음을 가지면, 도덕적 논의에 대한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과학과 서구 민주주의 세속적인 계몽 가치가 인간 생존의 최고 희망이다.



4부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

믿음의 정치

정치적 믿음의 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2003년 스탠퍼드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존 조스트와 동료들은 저명한 저널 「심리학회보(Psychological Bulletin)」에 "사회적 인지가 유발한 정치적 보수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2만 2818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50년 동안 출간된 88개 논문이 밝혀낸 연구의 종합이다. 연구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불확실성 회피와 공포 관리로 고생하고 질서와 구조에 대한 필요, 교조주의와 더불어 봉쇄와 모호함을 참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믿음과 실행에서 변화에 저항하고 불평등을 지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문이 일간지에 실리자, 사람들은 마침내 과학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냈다면서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사이콜로지투데이(Psychology Today)」의 한 논평위원은 이렇게 물었다. "정치적 보수주의는 미약한 형태의 광기인가?" 그리고 영국 신문「가디언」은 "미국 정부가 지원한 한 연구의 결론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심리학적으로 두려움과 억압, 교조주의와 모호함의 불관용에 근거한 신경증의 한 형태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로널드 레이건과 우파 토크쇼 진행자 러시 림보를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연결해, 그들이 모두 비슷한 불행의 원인으로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보수주의자들 가운데 그들의 정치적 믿음을 악성 종양이나 되는 양 생체 검사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왜 보수적인가? 사람들은 왜 공화당에 투표하는가? 이런 질문은 그 속에 있는 편향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전형적으로 제기된다. 민주주의자들은 명백히 옳고 공화주의자들은 확실히 잘못되었기 때문에, 보수주의는 인지 오작동으로 이어지는 정신질환이며 뇌의 흠이자 인성 장애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학자가 암을 연구하듯, 자유주의 정치학자들은 보수주의라는 암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그들의 정치적 태도와 투표 행동을 연구한다. 자유주의적 믿음 편향이 너무 깊이 배어 있다 보니 학계는 자유주의자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정치적 연못이 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상황이 그런 줄도 모르고 있다.


당파적 심장과 정치적 마음

『당파적 심장과 마음(Partisan Hearts and Minds)』에서 정치학자 도널드 그린, 브래들리 팜퀴스트, 에릭 쉬클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우선 부모나 또래집단, 교육을 통해 물려받은 정치적 입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한다. 그리고 일단 그 위치에서 헌신하다가 적절한 당을 골라 명령에 따른다. 이것이 정치적 믿음의 힘이다. 그것은 현대 정치의 부족적 본질과 각 부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나타난다.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과 잡지의 사설, 대중서적, 블로그, 브이로그(vlog, 영상물이 등록된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정치논평을 살피는 사람이라면,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표준적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허머를 운전하고, 육식을 하고, 총기를 소지하고, 작은 정부를 선전하고, 세금 감축을 주장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성경을 강조하고, 흑백논리 사고를 가진 데다, 주먹을 휘두르고, 쿵쾅거리며 걷는 도덕적으로 교조주의적인 허풍꾼들이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을 이렇게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들은 하이브리드차를 운전하고, 두부를 먹고, 나무를 껴안고, 고래 보호운동을 하고, 샌들을 신고, 큰 정부를 홍보하고, 세금 증대를 주장하고, 생수를 마시고, 요리조리 말을 잘 바꾸고, 우유부단하고, 질질 짜는 겁쟁이들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우리 문화에 매우 깊게 배어 있다. 모두가 그것을 이해하며 코미디언과 논평가는 그것을 이용한다. 다른 고정관념들처럼 이런 성향에도 진실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직관에서 나오는 다른 도덕 가치의 강조를 반영한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때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자동적인 느낌에 근거해 판단한다. 신중하게 찬반 증거를 가늠해 논리적으로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대신 직관적으로 판단한 뒤 이성적인 이유로 순간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보수적/자유적 고정관념에 반영된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이성적이라기보다 정서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도덕적으로 먼저 믿음을 형성한 뒤에 그것을 합리화한다.


조너선 하이트와 버지니아대학교의 동료 제시 그레이엄은 몇 년 동안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와 지역에서 11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도덕적 의견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의 일관된 차이를 발견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보다 1번과 2번(해로움/보살핌, 공정함/호혜성)에서 도덕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3~5번(내집단/충성심, 권위/존경, 순결함/거룩함)에서는 보수주의자보다 도덕성이 더 낮았다. 보수주의자들은 다섯 가지 차원의 도덕성이 모두 비슷했는데, 1번과 2번에서는 자유주의자들보다 도덕성이 낮았지만, 3~5번에서는 더 높았다(웹사이트 http://www.yourmorals.org 에서 직접 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들은 권위에 의구심을 품고, 다양성을 찬양하고,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위해 종종 신념과 전통을 무시한다. 그들은 심지어 정치·경제적 혼란의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변화와 정의를 원한다. 반대로 보수주의자들은 제도와 전통, 신념과 가족, 국가와 신조를 강조한다. 그들은 심지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질서의 유지를 원한다. 물론 이런 일반화에는 예외가 있다. 여기서 핵심은 우익과 좌익의 시비 대신에(당신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더 성찰적인 접근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서로 다른 도덕 가치를 강조하는 두 집단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도덕적 차이로 인한 긴장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는 1992년 영화 <어 퓨 굿 맨>이다. 이 영화는 도덕적 토대에서 보수와 자유의 차이를 잘 그려내고 있다. 법정 결말에서, 보수적인 해군 대령 나단 제셉은 동료를 죽인 혐의가 있는 두 명의 해군을 변호하는 자유주의자 해군 중위 다니엘 캐피에게 반대심문을 받는다. 캐피는 제셉이 코드레드(훈육에 필요한 오만불손한 해군 신병 산티아고를 거칠게 다루라는 비공식 명령)을 하달했다고 생각한다. 캐피는 군대의 집단적 통합을 해치더라도 의뢰인을 위한 개인적 정의를 원하고, 제셉은 개인의 자유가 희생되더라도 국가를 위한 자유와 안보를 원한다.


믿음의 우주론

과학과 가장 위대한 미해결 미스터리

내가 과학으로는 아직 해결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우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문제다. 미스터리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제시된다. 하나는 대답이 불가능하지만 다른 하나는 잠재적으로(아직은 아니지만) 대답이 가능하다. 첫 번째 구성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혹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


이런 식의 질문은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는 몇 시였는지, 북극의 북쪽은 무엇인지 묻는 것처럼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부조리하다. 무가 아니라 유인 이유를 묻는 것은 무가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유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가정한 것이다. 아마도 유는 자연스러운 사물과 같고 무는 해결해야 할 미스터리일 수도 있다. 물리학자 빅터스텐저는 이렇게 밝혔다. "현재의 우주론에 따르면, 물리학의 어떤 법칙도 우주가 탄생하는 데 위배되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은 그 자체로 우주가 무에서 출현할 때 예상할 수 있는 것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보다 유다. 유가 더욱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유신론자는 우주 이전에 신이 존재하고 창세기에서 묘사하듯 우리가 단 한 번의 순간에 무에서 존재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주 이전에 신이 존재하고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개념 자체가 시간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에서 시간은 우주의 빅뱅 창조로 시작되므로 신은 시공간 외부에 존재해야 한다. 무한한 우주에서 범위가 정해진 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그러한 초자연적 개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가 자연적 존재가 되어 기적을 행하기 위해 우리 세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미스터리의 개념을 언어와 인지로 제한한다. 우리의 유한하고 제한적인 뇌는 무한성, 무, 영원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생각 실험은 중력을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성향으로 정의한 뒤, 물체가 중력 때문에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동어반복으로 와해되는 역설로 이어진다. 시공간이 탄생한 것을 우주라고 생각하면서 우주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묻는 것은 역설이다. 신을 우주의 창조자로 정의하고 다시 우주를 신의 창조물로 설명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언어와 인지적 수수께끼는 우리를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으로 이끌지 못한다.


과학의 역사가 가르쳐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만큼 알고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라는 점이다. 그런 것들은 당분간 인지적·정서적 선호로 귀착된다. 반증만 있거나 전혀 대답할 수가 없다. 신, 다중우주 혹은 미지의 것.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당신의 믿음의 여정과 당신이 얼마나 많이 믿고자 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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