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Islamism And Islam

   
바삼 티비(역자: 유지훈)
ǻ
지와사랑
   
34000
2013�� 01��



■ 책 소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의 차이점을 부각하여 설명한 책이다. 이슬람 정치학자인 저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통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오류를 밝히며, 이슬람교를 문명의 위기로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성을 드러낸다. 특히 서양 학자나 정치가들이 둘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제시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종교를 국가질서와 정치의 구실로 삼는 이슬람주의와 무슬림의 생활양식 및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ㆍ종교적 제도인 이슬람교는 서로 다르다. 특히 이슬람주의는 종교를 빙자한 정치세력이며, 신정정치를 추구하는 폭력집단임을 거듭 설명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이 벌이는 자살테러와 같은 세계 위협 행위를 보고, 중동 이슬람세계의 정책을 결정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저자 바삼 티비(Bassam Tibi)
1944년 시리아의 무슬림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으며, 스탠퍼드 대학 코렛재단(the Koret Foundation)의 수석 연구원이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진보주의 이슬람교 학자인 그는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에 영주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과 코넬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교수와 A. D. 화이트 석좌 교수를 역임했고, 2008~09년에는 예일 대학 ‘반유대주의 학제연구계획’의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1995년에는 독일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훈장 십자가 공로상을 받았으며, 1982~2000년에는 하버드 대학 계열 기관에서 연구했다(1998~2000년까지는 보슈 특별연구원으로 재직). 2009년 출간한 『이슬람교, 근대성에 몸살을 앓다(Islams Predicament with Modernity)』를 
비롯하여 약 30권의 저서를 남겼다. 

■ 역자 유지훈
경기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왜 세계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가?』『성공의 심리학』외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 『번역의 즐거움』이 있다.

 

■ 차례
머리말 
감사의 글 

1장 이슬람주의는 왜 이슬람교가 아닌가 
2장 이슬람주의와 정치질서 
3장 이슬람주의와 반유대주의 
4장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 
5장 이슬람주의와 폭력: 신세계 무질서 
6장 이슬람주의와 율법: 전통을 꾸며낸 샤리아화 
7장 이슬람주의, 순결, 진정성 
8장 이슬람주의와 전체주의 
9장 이슬람주의의 대안 민간 이슬람교 

에필로그 
미주 
참고문헌 
이슬람 용어 정리 
인명 설명 
찾아보기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1장 이슬람주의는 왜 이슬람교가 아닌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이슬람주의는 신앙이 아닌, 정치질서에 중점을 두면서도 단순한 정치가 아니라 종교화한 정치라는 점에서 이슬람교가 아니다. 이 책에서 나는 이슬람주의를 세계에 만연하고 있는 종교적 원리주의의 유력한 사례로 다룰 것이다.


"종교화한 정치"는 이 책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 필히 알아두어야 할 개념이다. 이슬람주의에서 종교화한 정치란 국민의 주권이 아닌, 알라의 뜻에서 비롯된 정치질서를 장려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 이슬람교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이슬람교는 신앙과 종교 및 윤리적 기틀로서 정치적 가치를 내포하긴 하지만 정부의 구체적인 질서를 전제하지는 않는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를 명확하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태동한 것으로, 종교적 가르침이 뚜렷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일컫기도 한다.


따라서 이슬람주의는 자주 회자되는 이슬람교의 부흥도 아니다. 부흥은커녕 전통과는 다른 선입견을 부추겼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의 역사와 전성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애당초 "회복"을 시도하려는 국가에서는 에릭 홉스봄의 말마따나 꾸며낸 전통에 불과하다. 상상 속의 신정국가인 알라 신의 통치라는 이슬람교의 유토피아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와 꾸며낸 전통

이슬람주의는 종교가 국가와 함께 샤리아(이슬람법)에 기반을 둔 정치질서 안에서 결합된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이는 종교화된 정치적 아젠다로 영적인 것과는 무관하며, 이슬람주의가 전체적인 세계의 재건을 도모하듯, 세계는 물론 이슬람문명 국가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이슬람교의 다섯 기둥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을 가리켜서 무슬림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첫 번째 믿음의 기둥인 샤하다(shahadah, 알라 신께 순복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를 선언하고, 두 번째 믿음의 기둥인 일일기도를 드리며, 세 번째 믿음의 기둥인 라마단 성월의 금식, 네 번째 믿음의 기둥인 가난한 사람에게 구호물자 지급, 다섯 번째 믿음의 기둥인 형편이 넉넉하여 메카를 순례함으로써 진정한 순례자, 즉 남성(hajji, 하지)과 여성(hajja, 하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주의가 다섯 기둥과 관련 전통을 부활시켰는가? 이슬람주의의 주된 신조는 단연 샤리아(이슬람법)에 의거한 정교일치인데, 이는 신앙이라기보다는 신앙이라는 미명 하에 정치체제의 구색을 맞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신이슬람 질서의 민중으로 정의하는 움마도 꾸며낸 또 다른 전통에 불과하다. 움마란 이슬람교의 다섯 기둥을 준행하는 데 토대를 둔 신앙 공동체를 일컫는데, 역사가 요제프 판 에스는 이슬람교의 움마는 컨템퍼러의 이슬람주의에서 기인하는 의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혔다. 판 에스에 따르면, 7세기 무함마드가 타계한 후, 메카와 메디나의 무슬림은 부족의 지도자가 아닌 이슬람교 지도자 뒤에서는 기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움마는 정치적인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으며, 종교적 통일을 위한 정치적 경계를 추월한 수단이었다.


전통 지하드와 현대 지하드의 테러리즘

이슬람주의는 테러리즘과 별개의 개념이므로 나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폭력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대전에서 폭력을 일삼는 지하드에는 테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슬람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띤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는 폭력의 정당화를 거론할 때에 특히 부각되는 개념이다. 이슬람교는 지하드를 "자기수련"이자, 코란에 따르면, 포교의 일환으로 불신자와 벌이는 물리적 투쟁의 실천으로 규정한다. 7~17세기 사이에 이슬람문명이 고도로 발전하자 무슬림은 국제적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이슬람교의 확산을 위해 지하드를 감행했다.


전통 성전이 현대 성전주의로 진화된 데는 하산 알반나의 공이 컸다. 사이드 쿠틉이 주창한 "이슬람세계의 혁명"은 훗날 "글로벌 성전"의 일환으로 추가된 것으로, 여기서 혁명이란 칼리프 시대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지배를 회복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알반나와 쿠틉은 폭력의 정당성뿐 아니라, 이슬람국가의 정규전인 전통 성전이 이슬람의 비국가적 주동세력이 자행하는 테러로 탈바꿈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 성전주의는 단순한 테러리즘이나 폭동, 그 이상을 예고한 것으로 샤리아에 따라 세계를 재편하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했다.



2장 이슬람주의와 정치질서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교의 전통을 꾸며내기 위한 첫 단계는 이슬람교를 정교일치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민주정치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질서를 재편하여 이슬람식 샤리아국가를 추구할 목적으로 이슬람교식 해결책을 운운한다. 이 같은 사상이 바로 이슬람주의의 특징이자 필수요건이다. 이슬람주의가 명실상부한 이슬람교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서 정교일치와 샤하다(알라 신께 순복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를 거의 동등한 토대로 삼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이 이슬람주의자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이슬람교가 종교입니까, 국가의 질서입니까?"라고 물으라. "국가의 질서"라고 대꾸하면 그를 이슬람주의자로 생각해도 좋다. 미국과 유럽에서 내놓은 정치적 이슬람교 관련 논문을 읽다 보니 분석가들이 대부분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슬람주의를 "급진파 이슬람교"로 축소하는가 하면, 그것이 이슬람국가의 질서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도 했다.


지구촌의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

세계 곳곳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지역적 조직은 잊은 채, 대규모 조직을 세계화의 관점에서만 보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사실, 이슬람 전통은 공통분모가 있는, 다양한 지역적 전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주의는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가의 모습을 띤 기동성 세력의 방어 문화가 표출된 것이다. 현지의 전통 동향과 범세계적 이슬람주의 조직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 종교는 사회적 현실에 내재되어 있긴 하나 이를 반영하면서도 독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 이슬람교"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연관성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이슬람답지 못하다"고 치부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사실, 이슬람주의란 이슬람교의 원리주의 이데올로기를 가리킨다.


종교가 종교화된 정치의 탈을 쓰고 공공영역에 귀환한 것은 이슬람교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슬람교의 이데올로기는 여느 종교적 원리주의보다 세계의 정치에 중요하다. 전통적인 보편주의를 종교적 토대 위에 제기된 새로운 국제주의로 옮기는 데 이슬람주의가 다른 원리주의보다 더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원리주의 이데올로기의 이원적 세계관(무슬림과 이단)에는 서방세계의 억압에 맞선 분쟁과 신정질서를 추구하는 세계의 혁명이 수반된다. 이 같은 이원성의 특징은, 이슬람주의 서적에 분명히 드러나 있듯이, 그들이 서방세계에 집착한다는 점에 있다. 쿠틉과 알반나 및 알카라다위의 저서를 보면 이분법적 사상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원적 세계관이 세속적 그리고 종교적 개념의 질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전쟁을 대변하기 때문에 정치적 이슬람교의 이원성은 국제안보의 문제와도 관계가 깊다. 다양한 종교적 원리주의가 정치사상의 보편성을 주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이 이슬람세계의 민족을 전 인류와의 투쟁에 가담시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비이슬람주의 무슬림은 비교문화적 접근방식으로 공통된 가치관을 찾아 문명의 간극을 메움으로써 "문명의 충돌"(유명 서적의 제목처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장 이슬람주의와 반유대주의

홀로코스트 이래, 반유대주의는 문화와 문명을 막론하고 인도주의 차원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그와 관련된 살육적인 관행을 버리거나 예방하자는 목소리는 인종말살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대변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인정된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한나 아렌트는 기존의 유대인혐오증과 반유대주의의 차이를 밝혔다. 전자도 악하지만 후자는 학살을 지지할 만큼 더욱 악하다. 『전체주의의 기원』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증오하는 데 국한되지 않으며," 그 같은 선입견 외에도 유대인을 근절해야 하는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유대인혐오증과 반유대주의의 차이는 이슬람세계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입지를 연구할 때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드쿠틉과 유대인의 갈등

사이드 쿠틉에게 이슬람주의의 의미를 묻는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것과 같다. 쿠틉은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유전된 반유대주의의 배후 지도자이기도 하다. 『유대인과의 전쟁』에서 그는 이슬람화된 반유대주의의 본질적 특징을 모두 열거했으므로 쿠틉의 반유대주의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


쿠틉은 주요 운동가이자 정치적 이슬람교가 융성하면서 환골탈태한 모델로 꼽힌다. 쿠틉은 『유대인과의 전쟁』에서 무슬림이 유대인과 싸워야 하는 보편화된 전쟁을 거론하며, "물질적 소득도 없는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며 참전한 젊은이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그리고 유대인은 애당초 이슬람교의 주적인 데다 전쟁을 바라기 때문에 무슬림이라면 그들과 싸워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유대인은 이슬람교를 파괴하기 위해 사악함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진정성에 대한 주장이 매우 중요하다. 진정성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다. 쿠틉은 유대인의 "악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온주의 의정서』를 인용할 때는 이념 전쟁의 근원이 유럽에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반유대주의를 이슬람 역사에 편입시켜 그것에 이슬람의 모양새를 부여했다. 이를 반유대주의의 이슬람화라 한다. 쿠틉에 따르면, 이념의 전쟁은 622년 이슬람교가 태동할 무렵에 시작되었으며, 메디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슬람 역사에서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랍계 기독교인이나 종교색을 띠지 않는 범아랍 민족주의 무슬림과는 달리, 쿠틉은 유럽식 반유대주의 사상을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라는 꾸며낸 역사의 기원을 추가하기도 했다.



4장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

이슬람주의가 민주주의와 화합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이슬람주의 찬성파와 반대파가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반유대주의를 포함한 모든 이데올로기가 전체주의라고 주장한 한나 아렌트의 논리에 수긍한다면, 이슬람주의는 분명 전체주의적인 속성이 있으므로 비민주적인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민주주의 저널」지에도 논쟁이 게재되었다. 그때 나는 "왜 그들은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논객들 가운데 앤드류 마치는 "종교적 신념이 동기가 된" 평화주의적 이슬람주의자는 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마크 린치는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의지를 의심한다면 무슬림의 "신앙과 정체성"에 "엄청난 모욕"을 준 것으로 몰릴 수 있음을 역설했다. 내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이들의 주장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화된 정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도적 이슬람주의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도 논쟁의 중심에 있다. 지하디스트가 비민주적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제도적 이슬람주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절차에 참여하고 이를 지지할 때가 더러 있으니 어느 편인지 분간하기란 좀 어려울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이슬람주의자들은 믿지 않지만, 참여하는 정치는 찬성하고 비폭력 이슬람주의자를 범법자로 치부하는 건 반대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참여와 위임의 차이는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와도 관계가 깊다.



5장 이슬람주의와 폭력: 신세계 무질서

지하드운동은 단순한 테러도, 반란도 아니다. 첫째는 신개념 전쟁이고, 둘째는 사이드 쿠틉이 "이슬람식 세계혁명"으로 규정한, 비국가 전쟁을 위한 정치적 아젠다를 일컫는다. 무력으로 세계를 재창조한다는 개념은 이슬람주의와 폭력이라는 광범위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슬람주의를 창시한 하산 알반나는 지하드(聖戰)를 가리켜서 세계의 이슬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이슬람주의가 활용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전통 이슬람식 지하드를 다른 개념으로 바꾸었다. 달리 말하면, 정치적 이슬람교가 이슬람교에서 비롯되었으나 그와는 전혀 다른 사상이듯, 현대의 지하드운동 또한 고전 지하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면 된다.


지하디스트의 폭력성

9·11테러 공격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지하디스트들의 게릴라전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물리적 폭력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이처럼 공격에 혈안이 된 이슬람주의자들은 "발광하는 폭력배"로서가 아니라 지하드운동의 비정규전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자행하는 테러리즘은 문명적 세계관의 갈등을 구현한 것 - "세계의 질서"를 둘러싼 군사적 투쟁을 가리킨다 - 이다. 폭력배는 그런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소득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가치관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기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범죄자는 없으므로 탈레반을 비롯한 지하디스트들을 "극단적 범죄자들"로 몰아세우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양상이 달라진 전쟁에 합류한 비정규병일 뿐이다.


이 전쟁에서 지하디스트들은 대인살상을 비롯하여, 인프라와 "범세계적인 적"을 공격하기 위해 제 몸뚱이를 폭탄으로 쓰고 있다. 직접행동단(action directe, 프랑스의 사회사상가 조르주 소렐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테러조직을 일컫는다)은 세속 민족국가의 질서를 주요 목표로 삼는다. 이념의 전쟁과 지하드운동의 결합은 적의 사기를 꺾고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같은 전시상황에서는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테러의 목표는 이슬람주의자가 일컫는 "유대인과 십자군", 그리고 알제리와 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본 바와 같이 협조에 불응한 일반 무슬림이다.



6장 이슬람주의와 율법: 전통을 꾸며낸 샤리아화

율법은 항상 이슬람교 사상의 중심에 있어 왔다. 샤리아의 최고 권위자인 요제프 샤흐트는 『이슬람법 입문』 첫 페이지에 "이슬람법은 이슬람 사상의 전형으로… 이슬람법을 이해하지 않고 이슬람교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으며, 존 켈세이는 『이슬람의 정당한 전쟁을 논하라』에서 "샤리아 논리"라는 다른 방법으로 이슬람교의 정신사를 기술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샤리아를 이슬람세계의 준거법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회자되는 것이 바로 율법의 주된 역할이다. 그들이 과거의 질서를 회복하려 한다면, 왜 나는 이 같은 노력을 꾸며낸 전통으로 규정할까?


샤리아 논리는 항상 이슬람교의 중심에 있었으나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늘 다양한 의미가 결정되었다. 샤리아에 내재된 중심성과 다양성 및 역사성이 결합되다 보니 더러 혼동을 일으켜, 오늘날 샤리아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긴 경위를 사람들이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종교사를 다루는 성직자이자, 세계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수니파 교육기관인 카이로에 소재하는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학부장을 지낸 마무드 자크주크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국가 아젠다의 일환으로 샤리아의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며 분을 참지 못했다. 이슬람교 입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슬람교의 정신과 윤리, 인권, 다양성 및 정의에 관한 장은 있어도 샤리아에 기초한 정치질서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샤리아를 시행해야 한다는 구호는 샤리아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부인하는 것이오. 샤리아는 헌법의 기초일 뿐 아니라 인생의 윤리적 도의"라고 그가 내게 투정하듯 말했다. 사실,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 집권 이후, 이집트 헌법은 샤리아를 입법의 원천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 점만으로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샤리아가 자크주크의 그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7장 이슬람주의, 순결, 진정성

이슬람주의의 기본 특성들 중에는 진정성의 주장으로 표현되는, 순결에 대한 열망이 있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종교적 원리주의는 문화적 근대성이라는 과제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데, 이슬람주의의 특정 사례는 대개 실패한 근대화에서 부각된다. 약 3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학자들은 비서방 사회의 근대화를 종교화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서양화로 간주했으나, 요즘 학계에서 서양화를 입 밖에 내고도 무사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 용어가 암시하는 연결고리가 폐기되었을 뿐 아니라, 진화적 근대화의 개념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이 같은 발상에서 스스로 벗어나 이슬람주의가 개발모델의 대안을 제시한다며, 이를 서양화의 정당한 대립으로 보고 있다. 즉 이슬람주의의 모험이 근대화 위기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슬람 전통에 의거한 진정성을 찾는 것도 모험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이슬람주의의 진정성 프로젝트는 문화적 순결에 근거를 두며, 이는 비무슬림 이방인에게서 문화를 차용함으로써 좀 더 풍성해진, 열린 이슬람교의 고전 유산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사실 이슬람주의는 전통이나 진정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근대 남성으로, 과학기술(예컨대 e-지하드 같은)은 받아들이면서도 문화적 가치관은 배격한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의 "근대성"은 준근대성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교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을 정화하고 싶어 한다. 순결하고 "때 묻지 않은" 이슬람교는 최근에 부각된 사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사이드 쿠틉의 작품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그의 후계자인 무슬림 형제단의 유수프 알카라다위도 이를 분명히 밝혔다. 알카라다위는 비무슬림 이방인에게서 문화를 차용해서는 안 된다며 3부작으로 된 『이슬람교식 해결책의 필연성』중 제3권에서 서양 교육을 받은 무슬림 진보주의 엘리트를 격렬히 비난했다. 서양주의자들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또한 이방인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더는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고 알카라다위는 덧붙였다.


나는 근대성과의 마찰을 비롯하여, 아랍세계의 부실한 근대화와 관련된 개발 위기로 근대 이슬람교의 위기가 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서양화 아젠다의 음모에서 재난이 벌어진다고 보며, 원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신성한 종교의 귀환에서 근대성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종교를 탈피한 사회는 순결이라는 미명 하에 문제시될 뿐 아니라, 이슬람교를 파괴하려는 서양화의 일환으로 규탄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즉, 진정성을 추구하려면 세속적인 것이나 서방세계에서 차용한 것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세속성을 가리켜 진정한 이슬람교를 겨냥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이슬람교가 정치질서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이슬람주의자들은 정교분리가 가당치 않다고 강조한다. 순결은 신성한 질서에 있으므로, 그들이 진정성 개념을 도입한 경위는 문화적 정화라는 범위 안에서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진실이 이슬람주의의 아젠다와 정반대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이슬람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즉 문화의 차용은 중세 이슬람교의 관행이었으며 이슬람문명의 영화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었다는 말이다. 문화교류를 확대함에 따라 더욱 부요해진 이슬람교는 문화를 유산의 핵심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나는 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슬람교의 고전적 유산이 이슬람주의의 순결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고 본다. 이러한 차이는 이슬람주의의 사고방식이 순수한 이슬람교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는 방증이다.



8장 이슬람주의와 전체주의

이슬람주의는 정치적 종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기원은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두 사건에 힘입어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첫째로 1967년의 6일전쟁 당시 아랍이 참패한 사건에서 부실한 개발과 민주정치의 부재가 결합된 심각한 위기국면을 드러냈는데 모두 독재정권의 영향이 컸다는 점과, 둘째로 냉전의 종식을 꼽을 수 있다. 두 사건은 레몽 아롱이 기술한 "문명의 이종혼교성"을 순조롭게 밝히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서방세계는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전체주의적 공산주의가 사라지자, 서양은 독자적인 가치관이 우세해지는 데다, 범세계적인 민주화가 별 무리 없이 진행되리라고 기대했다.


문명의 갈등(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에 내부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슬람문명의 상황이 덧붙여졌다. 갈등은 민주정치의 부재와도 일부 관계가 있다. 이슬람세계에서 민주화의 기록은 대단히 미흡하다. AKP가 집권하기 이전의 케말리스의 터키 정부와, 수하르토가 축출된 이후 인도네시아의 민간 이슬람교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이슬람국가는 대개 독재정권이 통치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이슬람문명의 수준이 미달된 원인이 여럿 있다. 민주화의 실패와 부실한 개발도 꼽을 수 있는데, 이 둘은 서로를 보강하여 학자들이 이슬람세계의 내전을 거론할 만큼 심각한 위기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이슬람주의는 이 갈등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를 지정학적 "분쟁"으로 바꾸어놓았다.


한나 아렌트의 이슬람주의 연구

아렌트의 제자로서 그녀의 전기를 쓰고 그녀에게 지도를 받으며 박사학위를 받은 전기 작가 엘리자베스 영브륄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나 아렌트가 중요한 이유』에서 영브륄은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갖고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관심은 나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똑같았다! 그녀는 아렌트가 종교보다는 세속적인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다루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정치적 종교노릇을 톡톡히 했다. 영브륄에 따르면, 오늘날 본질이 종교적 이데올로기 중 일부는 과거의 세속 전체주의인 국가사회주의, 스탈린주의와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특성인 초감각에서 태동하여 이를 육성한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에는 그에 동조하는 사람이 반박할 수 없는 논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정치화된 종교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상관관계를 토대로, 현대 이슬람주의는 정치적 종교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경우이며 한나 아렌트의 연구 결과를 빌리자면 "새로운 종류의 전체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제프리 허프는 최근 알반나가 히틀러를 극찬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는데, 공산주의와의 전쟁으로 아이젠하워 정부의 지원을 알반나가 세운 조직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학자들은 무슬림 형제단을 "온건한 무슬림 형제단"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영브륄은 이를 믿지 않는다. 그녀는 이슬람주의를 후원한 미국을 가리켜 "전체주의와 투쟁할 목적으로 전체주의적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은 현 세계 질서를 가장 위협적인 방법으로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가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브륄은 그녀가 비판해온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처럼 이슬람주의를 이슬람교와 분리된 실체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이 둘의 차이에 근거해야만 이슬람교가 아닌, 이슬람주의 사상이 - 제도적 이슬람주의든 지하디스트든 간에 -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주장할 수 있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세속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종교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구원론에 의존하기도 한다. 아렌트의 사상을 이슬람주의에 적용하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인 "급진파 이슬람교"와 "테러리즘"에 집착하려는 작태에서 이 문제를 떼어내야 할 것이다. 근시안적 분석으로 이어져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종교성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테러로 시야를 좁힌 분석가들은 사상의 본질을 무시했고 테러리스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최근, 오바마 정부는 빈라덴을 법정에 세우지 않고 파키스탄 현지에서 비밀리에 즉결 처형해버렸다. 빈라덴이 목숨을 잃고 나면 세상이 더 안전해질 것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은 두 가지 이유에서 무지의 소치로 보인다. 첫째로 빈라덴이 죽기 전에도 이슬람주의의 지하디스트 분파는 포스트이슬람주의로 오해를 샀던 제도적 이슬람주의에 비해 영향력이 감소해왔고, 둘째로 9·11사태와 아프간 전쟁 이후 지하드를 통솔할 "지도자가 부재"하여, 결국 알카에다는 빈라덴이 생존해 있을 때도 본기능과 중앙사령부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즉 빈라덴의 죽음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한 만큼 여파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직체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말이다.



9장 이슬람주의의 대안 민간 이슬람교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의 유산이 아니라 꾸며낸 전통에 근거하여 이슬람교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교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단일 이슬람교의 전형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이슬람주의자들과 이슬람혐오증이 있는 서양 저술가들은 단순히 - 물론 의도는 다르겠지만 - "이슬람교는 하나"라고 주장하나, 실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에서 통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겪고 있다.


왜 이슬람교가 아닌 이슬람주의인가?

이 책의 주요 논지를 바꾸어 말하자면, 일부 무슬림 정치운동가들은 규범 및 구조적 위기를 겪으며 이슬람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창출해내기 위해 이슬람교의 전통을 꾸며냈다는 것이다. 하산 알반나와 사이드 쿠틉, 아부 알 알라 알마우두디, 그리고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비롯한 여러 후계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1928년에서 1967년까지 비주류 전통인 이슬람주의는 1967년 6일전쟁에서 아랍이 패배한 이후 수니파가 장악한 아랍세계에서 주류 사상으로 부상했다. 이슬람주의란 이슬람교의 비주류 요소, 특히 반유대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꾸며낸 전통의 한 사례다. 코란과 주석 및 하디트의 본문을 임의로 선택하고 문맥에서 이를 떼어내어 그렇게 된 것이고, 결국에는 국가질서와 세계의 정치 시스템을 재편하려는 반민주적이자 전체주의적인 비전이 태동하게 되었다. 이슬람주의는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이후에 등장한 기존의 주권국가를 종교법 개념을 중심에 둔 국가의 질서로 대체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유럽이 확대되자,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아래 창출된 국제 시스템은 전 세계에 확산되었다. 이슬람주의 독트린은 이 같은 역사를 뒤집는 데 중점을 둔다.


이슬람주의에 유대인혐오증이 깊이 뿌리 박힌 까닭은 "유대인"이 세계를 장악하여 이슬람교와 충돌할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주의는 민주정치를 거부하고 폭력을 정당하게 여긴다. 원칙적으로는 폭력을 반대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관행의 복귀를 대변하는 샤리아를 지지하는 것도 근대에 꾸며낸 발상이다. 이슬람주의는 개인을 전체주의라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킨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이슬람교 전통을 불러일으키며, 이슬람교의 진정성을 주장함으로써 폭넓은 무슬림에게 마수를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주의를 비주류로 치부하거나, 불만의 표출을 비롯한 사회적 관심사를 가리는 세속적인 덮개로 간주하는 서양 저술가들은 훨씬 방대해진 이슬람교의 전통을 적당히 골라서 읽으면 꾸며낸 전통도 호소력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는 사회학자로서 이슬람교의 정치화와 새로운 국가의 질서에 이르는 사상을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성을 절실히 실감하여 학계에서 마지막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기본 특징은 관련 쟁점을 분명히 밝히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다른 두 가지 주요 관심사도 이 책에서 반복해서 거론했는데, 첫째는 이슬람주의(또한 테러를 연상시키는 추한 선입견)에서 이슬람교를 수호하고, 둘째는 서양과 이슬람문명의 격차를 좁히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먼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정립하지 않는다면 두 가지 목표는 결코 실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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