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농부들

   
박근영(사진: 하덕현)
ǻ
책읽는수요일
   
13000
2012�� 07��



■ 책 소개

정직하게 꿈꾸고 소박하게 행복한 대한민국 젊은 농부들을 만나다!

양평두물머리에서 바다 건너 제주까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채소, 귤, 포도, 고추, 쌀, 감, 대추, 낙농, 차, 벌꿀, 꽃 등 다양한 작물을키우는 대한민국 젊은 농부들을 만났다. 농촌에 관한 감상적 사담 혹은 고충이 아닌, 농부의 눈을 통해 오늘 우리 삶에서 농사일이 갖는 진정한의미와 그들의 경험을 생생한 글과 사진으로 정직하게 전한다.

또한 이 책은 땀 흘리는 일의 기쁨, 자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사는 삶, 생명을 키우고 만지며 산다는 것, 결코열매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 과정의 소중함, 더 깊이 함께하게 되는 가족, 분투와 보람 등 도시에서 찾지 못한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귀농·귀촌을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평온을 찾아 행복한 사람들의 나의 삶을 위한 선택과 원칙에 관한 이야기가솔깃하다.

■ 저자박근영
전남 신안군 암태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전북 익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자라는 동안 외가가 있던 김제의 드넓은평야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했다. 이후 서울이라는 도시에 안착하기 위해 적지 않은 부대낌을 겪어야 했다. 밥벌이의 지겨움 속에서 과연 행복이란무엇이며 희망이란 또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와 같은 고민을 통해, 정직하게 꿈꾸고 소박하게 행복한 삶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었고,마침내 그 삶과 대면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전국 곳곳에 있는 열 명의 농부를 만났다. 지은 책으로는 인터뷰 에세이집 『청춘사용설명서』와『내 심장이 말하는 대로』가 있다.

■사진 하덕현
현대공화국 울산에서 현대적으로 성장, 사진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으려 했으나 녹록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나남의 이목이 두려워 계속 정진 중이며, 무용한 작업들을 통해 유용함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든다. 아니, 영화를 찍고 사진을만든다. 극단 ‘적으로’의 대표이며, 성균관대 앞 bar ‘인생의 단맛’을 운영하고 있다.

■ 차례
여는 글 - 흙, 사람, 하늘의 정성으로 쌀 한 알이익어가듯

농사는 햇빛, 달빛, 별빛으로 짓는다
양평두물머리에서 채소밭 일구는 농부 _서규섭

느리게,쉬엄쉬엄, 잘 몰라서 더 가보고 싶은 길
제주에서 귤나무 키우는 농부 _이학준, 노정은
농사는 파랑새를 쫓는 일이 아니다
충북 보은에서 대추나무 키우는 농부_우철식

속일 것 없이 바지런히 꾸려온 시간
경북 안동에서 벌꿀 뜨는 농부 _이도희, 권금순
차는 음식이다
전북 모악산에서 차밭 일구는 농부_이운재

꽃향기는 한 생명이 우리에게 건네는목소리다
전북 변산에서 꽃 가꾸는 농부 _이준희

열매보다는 뿌리가, 뿌리보다는 땅이 먼저다
경북 상주에서 포도 재배하는 농부 _박종관
젖소와 함께한 30여 년, 한순간의 꿈같던 나날들
경기도 여주에서 소젖 짜는농부 _조옥향

세상의 모든 농부는 젊다
경북문경에서 고추밭 일구는 농부 _최영섭, 권순남

26살의그녀, 농사가 희망이 되는 삶
전남 구례에서 쌀.감 농사 짓는 농부 _홍진주





젊은 농부들


농사는 파랑새를 쫓는 일이 아니다

충북 보은에서 대추나무 키우는 농부 _우철식

새벽 별 아래, 소 밥 먹이던 겨울날의 꿈

집에서는 젖소를 키웠다. 처음 세 마리로 시작해 150마리까지 늘어났다. 보통 첫차가 6시 20분에 있는데, 학교에 가려면 이 차 시간을 맞춰야 했다. 그러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소 젖 짜고 거름을 치우고 나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축사 치우는 건 우철식 씨 몫이어서 늘 새벽 댓바람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소 밥 먹이는 일은 제일 중요한 일과였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간 청주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농사를 짓고 있었다. 시아버지 봉양하며 홀로 농사짓는 어머니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묵직했다. 도시 생활도 해봤으니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 일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아이 교육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아내 입장에선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니죠. 저야 농촌에서 나고 자라 어느 정도 농사일이 몸에 붙었지만 아내는 지금껏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아내에게 농사일하라는 말은 안 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저는 저대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니 그걸 존중하는 거죠. 아내는 읍내에 작은 옷가게를 내고 싶어 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동복 가게 같은 걸 염두에 두고 있는 거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대추나무 사이를 걷는 동안 문득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사업이 잘 안 되어 이제 농사나 짓고 살자, 하는 쉬운 생각으로 고향으로 내려온 것일까. 그는 아니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소 밥 먹이는 일이며 농사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농사가 만만히 볼 일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죠. 그래도 결론은, 고향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거였어요. 시골에서도 살아보고 도시에서도 살아보니 저는 시골살이가 더 잘 맞아요. 도시 생활이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끝이죠. 새벽 4시에 나가 저녁 10시에 집에 들어오곤 했어요. 도시에서는 퇴근해서 술 먹는 일밖에 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시골은 그렇지 않거든요. 우선 내 생활이 있어요. 동네 닭집에 닭값 주러 갈 때도 걷게 되고,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도시 생활처럼 뭔가 눈에 띄게 확확 발전하는 건 아니지만 정직하게 일하고 그만큼 수확하는 기쁨이 있어요. 사람들과 경쟁하고 부대끼지 않아도 되니 좋고요. 물론 일하면서 고생은 도시나 시골이나 매한가지예요. 저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 좋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심심한 시골 생활이 좋기만 한 건 아닌 것 같고요."


일과에 치이고 뭔가에 쫓기는 기분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삶, 그는 오랫동안 이런 삶을 꿈꾸어 왔나 보다.


햇살과 바람에 익어가는 흙의 노래

서서히 가을로 물들어가는 시골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時)가 된다. 노란 은행잎으로 마을이 담뿍 물들면 그 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따끈따끈한 두부김치에 삶은 돼지고기 몇 점 놓고 마을 사람들끼리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하지만 한가로이 단풍 구경하며 쉴 짬이 많지는 않다. 농부들에게 가을은 여러모로 바쁜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철식 씨는 귀농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추 농사에 뛰어들었다. 주말마다 어머니 일을 거들러 오면서 대추나무를 키우며 어느 정도 실전 경험을 쌓은 이력이 있어 얼마쯤은 자신이 있었다.


농사를 오래 지은 사람은 땅의 색만 보아도 토질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질소질이 많으면 새까맣고, 산성 기가 많으면 붉다. 화학비료를 자주 주면 땅 자체가 산성화된다. 이는 밥을 먹으면 밥맛에 익숙해지는데 라면만 먹다 보니 라면 맛밖에 모르게 되는 것과 같다.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흡수하다 보면 땅도 조미료 맛만 맛있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이런 땅은 자연 거름에 익숙해지는 데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3~5년 정도는 공들여 땅을 가꾼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유기농 농사가 가능해진다. 농사란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었다는 식의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우철식 씨는 매해 항아리에 한약 효소를 만드는데, 바로 인진쑥 대보탕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한약재에 요구르트, 쌀뜨물, 막걸리, 당밀, 미생물을 넣고 발효시킨다. 발효되고 나면 물로 희석해 밭에 뿌린다. 9월 한 달쯤 세 단계에 거쳐 퇴비를 하고 나면 어느새 9월 말이다. 봄에는 잎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 효소, 액기, 유기 등 식물성 친환경 약재를 다시 뿌린다.


"무농약 2년을 하면 유기농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토양 자체가 유기 등록을 받아야 해요. 이게 안 되면 무농약을 오래 해도 무농약 등록이 되지 않아요. 특히 제초제나 화학성분은 검사에 다 나와요. 발견되면 5년간 유기농 재배는 어려워지죠. 저도 현재 유기농을 하는 땅이 있고 그렇지 못한 땅이 있어요. 앞으로 차차 유기농 재배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농부 입장에서 농약을 하지 않을 경우 일이 배로 힘들어진다. 하지만 농약 없이 농사짓고 그 결실을 맛보았을 때의 기쁨 또한 남다르다.


"우선 내가 마음 놓고 따먹을 수 있잖아요. 농약 걱정 안 해도 되니까요. 한번 맛보세요."


탐스럽게 열린 알 굵은 대추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씹히는 질감이며 달큰한 맛이 고소하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그 자체로 보약인 것처럼, 땅의 좋은 기운을 받고 자란 작물은 사람 몸에 필요한 에너지 역할을 한다.


"제가 알아보니 선진국의 경우 무농약 시장 점유율이 20퍼센트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1퍼센트도 안 돼요. 외국 소비자들은 처음부터 몸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몸이 안 좋아지면 그제야 농약 안 친 신선한 식재료를 찾는 거죠. 간혹 농약 써도 다 팔 수 있는데 뭐 하러 고생스럽게 무농약 하려 하냐고 묻는 분들이 계세요. 이때는 별말을 하지 않죠.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고, 남을 가르치려 들기 이전에 제 소신대로 농사지으면 되는 거고요."


복은 줍는 게 아니라 한 땀 한 땀 지어 가는 것

간혹 사람들은 그에게 귀농에 대해 묻는다. 이때 우철식 씨는 5년 동안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되묻는다. 막연하게 5년 후의 좋은 모습만 상상하고 오면 힘들어진다. 잡지나 여러 매체에서 보여주는 전원생활의 모습은 실제 농부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은 밭에 나가 풀 뽑아야 하고, 돌 하나라도 날라야 한다. 농사는 자연현상을 유심히 살피며 공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는 누가 귀농한다고 하면 3년 정도 주말농장을 다니며 직접 경험을 쌓거나 귀농을 준비하는 모임에 나가보라고 권한다.


그도 농촌 생활이 쉽기만 한 건 아니다. 그래도 고향에서 흙을 밟으며 살아가고 싶다. 무엇으로도 인간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아름다운 산하와 함께, 늙어가는 희망을 품는다. 인생 한 방이라는 로또 같은 허망한 꿈이 아닌 무던한 뚝심으로 하나하나 돌탑을 쌓아 올리듯 단단한 농부가 되고 싶다.



세상의 모든 농부는 젊다

경북 문경에서 고추밭 일구는 농부 _최영섭, 권순남

"농사란 직접 지어 봐야 알아요."

감자 볶고, 김치 꺼내고, 뚝딱뚝딱 된장찌개 끓여 아침밥 지어 먹고 고추밭으로 간다. 느릿느릿, 쉬엄쉬엄 일하는 듯해도 두 어르신의 손놀림이 젊은 사람 못지않다. 볕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서둘러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손을 거들려 하니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귀찮으신 게다. 아무래도 고추 하나 따는 일도 그리 만만히 볼 건 아니다.


"고추 심을 때는 간격이 너르면 좋지요. 이거는 5월 5일에 심은 거네. 모든 작물이 하늘 조건이 좋아야 해. 기후가 좋아서 태양이 잘 비추면 잘 되지요. 그런데 올해는 비가 와서 다 물러 빠져. 고추가 잘 될라면 알칼리 토양을 산성 토양으로 만들어야지요. 산성 토양으로 만드는 비료가 있어요. 그걸 석회라고 하지요. 석회 뿌리고 종자도 땅에 맞는 걸로 심고. 땅에 따라 맞는 종자가 있어요. 사람들이 병충해 방지한다고 한 달에 몇 번씩 약을 쳐요. 골치 아파요. 이 약 저 약 할 필요가 없어요. 비가 많이 와서 우리 고추가 다 물러 빠졌잖아요. 비가 오니 무름병이 자주 생겨. 습기가 많으니까요. 그런 거 다 방지하려면 힘들지요. 고춧값이 지금 6천 원 하잖아요. 다른 집에서 기계로 말려야 해요. 그럼 한 근에 3천 원씩밖에 안 나와요. 그래서 지금은 고추 농사 잘 안 하지요. 왜 그러냐 하면 중국산이 많이 들어오니까. 시장 사람들이 외국산을 가져다 팔잖아요. 중국산 같은 거는 꼬치가루에다 약칠을 해서 빨갛게 내다 팔고 그랬잖아요. 아는 사람은 다 촌에 와서 사가지요. 참깨도 그렇잖아요. 중국에서 들어오는 거는 반값이 안 돼요. 장사꾼들이 또 우리 것하고 섞어서 판다 카더라고요. 그거 안 하면 안 남는대요."


어떤 일에도 명암(明暗)이 따르게 마련이다. 농사지어 수확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시세가 좋아 그해 작물이 제값 받고 잘 팔리면 주름졌던 마음 한 자락이 시원하게 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그늘이 진다. 허나 농사가 잘되는 것도 하늘 조건이 좋아야 하고 잘된 농사가 묵직한 목돈이 되어 돌아오는 것도 가슴 졸여 될 일은 아니다. 열 살 너머부터 산으로 들로 다니며 농사일을 도왔으니 최씨 할아버지의 농부 경력만 해도 70여 년이 넘는다. 그사이 욕심을 비우고 또 비우는 일을 해왔다.


농사는 직접 해본 사람이 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어깨너머로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옆에서 고추 심는 걸 암만 봐야 소용이 없다. 직접 고추씨도 심고 길러봐야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요. 농사 잘 짓는 사람에게 묻고 또 묻고 하면서 배워나가는 게 옳은 이치지요. 도시 사람들이 귀농이라고 와요. 성공했다고 텔레비전에도 나와요. 우에다가 성공했지 그런 경우가 적어요. 아직까지는 농촌에서 지일(제일) 나은 품종이 젊은 사람한테는 소 키우는 거 하고, 과일 농사밖에 맞는 게 없지요. 다른 건 다 안 돼요. 외국에서 막 들어와서. 쌀도 막 들어오잖아요. 우리가 받아들여야 반대로 공장 물건을 팔아먹는다 하니 안 사올 수가 없는 기라요. 도시는 과잉인구가 되어 가지고 사는 게 힘들잖아요. 직장이 있으면 괜찮은데 없으면 참으로 고생길이지요. 고생 안 하고 사람이 살 방법은 없어요. 사람이 편안하게 사는 건 죄인이라요. 남의 고름 빨아먹고, 피 빨아 먹는 사람이지요. 안 그러면 부모 재산 가지고 피안하게(편안하게) 사는 수밖에 더 있나요. 우째 피안하게 살 수 있겠어요. 공장에서 일을 해도 고생이고 공장을 운영해도 고생이고 보통 고생이 아니라요. 고생을 해야 남의 주머닛돈이 내 주머니로 들어와요. 피나는 고생을 해야 들어와요."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어느새 귀농으로 흐른다. 귀농했다 해도 얼마 못 버티고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최씨 할아버지는 보기 안타깝다.


"무작정 자꾸 농촌 가라고 선전하면 안 돼요. 앞으로 들어올 사람은 집이 여 있고, 그런 사람은 퇴직하고 들어오는 거지, 돈 없이 농촌에서 살려고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요. 도시에서 살던 집 팔아 3~4억 정도 가지고 들어오면 부자 되는 거지만, 그런 사람도 땅을 사서 농사지으려면 계속 투자를 해야지요. 남의 땅을 부쳐 먹으면 싸지요. 그래도 기계 사야지, 뭐 이런 거 자꾸 하다 보면 힘든 기라. 나이가 많아 연금 나오고 보험 나오고 그러면, 밥만 먹고 지내려면 괜찮아. 그래도 일 년에 6~7백은 들어가요. 가만히 놀아도 그 돈은 들어간다고."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까지 챙겨야 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농촌으로의 이주는, 섣부른 시도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래저래 농촌 들어와 고생만 하다 떠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고 섭섭한 심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시 태어나도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는 일

농부는 함부로 절망을, 또한 섣부른 희망을 예견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나머지의 여분은 하늘의 뜻이기에 그렇다. 다시 태어나도 농사를 지으실 거예요, 라는 물음에 지어도 괜찮고, 상관없지, 간결한 답이 돌아온다.


"자연이 있는 거는 추운 거 더운 거 다 알고 씨 뿌릴 준비를 해요. 호박이나 열매 달리는 거 보면 먼저 달리는 건 씨 퍼줄려고 그런 기라. 꼭대기가 말라 부리요. 수박이며 꼬치(고추)며 모든 작물이 다 그래요. 과학적으로도 자연의 현상이라는 게 식물이나 곤충들이 먼저 알아요. 내가 그걸 왜 아냐면, 우리 논이 1300평이 있는데 넘의 논으로 구경을 갔어. 골뱅이가 참 많아요. 왜 이렇게 많나 하고 주워 왔는데 저 서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오더라고. 천둥번개 치더니 큰물이 나요. 그 골뱅이는 알았던 기라. 그것들이 큰비 오는 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초등학교 안 다녀도 알아요. 그래서 골뱅이가 안 떠내려가려고 알아서 움직인 기라.


우리가 소를 60년 이상을 키웠는데, 태어나면 버둥거리고 일어나면 젖부터 찾는 기라. 어미가 먹이는 게 아니라고. 지가 알고 가 먹어. 신의 조화라. 사람도 신이 지배를 해서 만들어요. 과학적으로야 뭐라 하지만 신이 만들어. 신의 형성이 어찌케 타고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종교에서는 하나님, 부처님이 만들었다 카지만 태어난 조건에 따라 타고나는 거지. 나는 농사짓게 태어난 기라. 다음에도 이리 태어나면 이리 살지요."



26살의 그녀, 농사가 희망이 되는 삶

전남 구례에서 쌀, 감 농사 짓는 농부 _홍진주

"잡풀 또한 보물이 될 수 있다니까요."

진주 씨는 지금껏 구례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80년대 생의 젊은 농부이다. 산림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제 2년 차 농부의 길로 접어든 26살의 처자이자,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도시에 가서 직장 생활을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되묻는 당찬 농사꾼. 자신의 직업을 이토록 군더더기 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신선한 일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집안일은 물론 늘 농번기 일을 거들어 왔으니, 그것까지 셈하자면 경력이 꽤 되는 농부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농사가 좋았고, 앞으로도 천직으로 여기며 살 거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농사(農事)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 번째는 곡류, 과채류 따위의 씨나 모종을 심어 기르고 거두는 일이고, 두 번째는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농사에 비유하듯 생명을 키우고 거두는 농사는, 그만큼 넓고 깊은 말이다. 인류가 가장 오래 유지해온 직업 중 하나가 농부이고 보면, 농사란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한, 지구가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이어져갈 일이다.


진주 씨네 가족은 논농사 3만 4000평, 매실 1500평, 감 농사가 8000평 정도 된다. 게다가 2000년도에 들어서부터는 수도작 쌀 농사를 무화학 농법으로 진행하고 있다(수도작은 물을 대어 짓는 벼농사를 말한다). 매실이며 감 농사도 무화학 농법으로 재배한다. 농사를 지어본 이라면 쉽게 믿기지 않을 말이다. 텃밭 농사라도 지어본 사람이라면 한 뼘 밭이라도 알게 모르게 무수한 잔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 테다. 더욱이 이 정도 규모의 농사를 지으려면 정성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다.


진주 씨네 감나무밭에 가면 풀이 무성하다. 독한 약으로 한 번에 제거하면 될 잡풀을 진주 씨는 손으로 뽑거나 베어낸다. 이 과정은 풀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그러나 잡초라고 무조건 하대 받는 것은 아니다. 잡풀 또한 튼튼한 토양을 만드는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게 진주 씨의 아버지 홍순영 씨의 생각이다.


현재 진주 씨는 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배우며 월급을 받고 있다. 하루 일당은 다른 품앗이 일군에 비해 적은 금액이다. 그래도 손해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 주니 이문이 한참 남는다는 그 나름의 셈법이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기록

봄에는 딱히 정해진 일이 없다. 못자리를 하는 경우에는 모판을 나른다. 이때는 일곱 사람 정도 있어야 일이 가능하다. 손발을 맞춰가며 모판에 씨 뿌린 뒤 오후가 되면 논에 넣는다. 이 모를 30일 정도 키워 모내기를 한다. 4월 말에서 5월 초에 모판을 만들고 5월 8일 때쯤 되면 감 솎기 작업이 들어간다. 이 작업은 진주 씨와 어머니 서순자 씨의 몫이다. 계속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있어야 하니 목에 통증이 이는 작업이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감나무 그냥 놔두면 주렁주렁 달리는 거 아니야, 하겠지만 농부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감 가지에 이파리가 열 개 있으면 가지와 이파리 사이에 감꽃이 있다. 한 가지에 많게는 두 개만 두고 모두 솎아야 감 크기가 커진다. 작은 감은 잘아서 보기는 귀엽지만 생산자 입장에서 감이 커야 따기 쉽고 포장도 쉽고 품이 덜 든다.


감 솎는 작업을 하며 틈틈이 고추 심는 일을 같이 한다. 비가 와서 땅이 질면 비닐을 못 씌우니 3월 말에서 4월 초에 미리 고추 심을 곳에 비닐을 씌워 5월에 고추 정식을 시작한다. 보통 3~4천 주 정도 심는데, 많게는 9천에서 1만 주가 되기도 한다. 3~4천 주 정도면 2~3일 안에 심는 것이 가능하다. 이 시기에 매실도 따야 하니 일이 여러 개 겹친다. 고추 심는 거며 매실 따는 일을 한 달여 만에 해결해야 하는 거다.


7월이 되면 2차 감 솎기 작업에 들어간다. 막바지 보내기까지 6월에 모두 마무리하고 바로 들어가면 2~3주가 금세 흐른다. 어느 날은 감이 눈앞에서 어른거릴 지경이다. 말없이 일만 하면 금세 지루하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간간히 수다로 추임새를 넣는다. 아무래도 여럿이서 함께 짓는 농사가 능률도 오른다.


7월 말쯤이면 하루가 다르게 고추가 크니 줄을 매준다. 그래야 비가 와도 고춧대가 넘어가지 않는다. 고추가 붉은 빛깔로 탐스럽게 익어 가면 그날부터 수확이 시작된다. 8월이 되면 주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간격으로 고추를 딴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9월이다.


작년과 재작년의 경우, 9월 10일이 조금 안 되어 쌀을 수확하고 도정해 포장작업을 했다. 소비자들이 추석 선물이나 설 선물용으로 햅쌀을 찾기 때문이다. 5킬로그램씩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고 나니 10월, 조금씩 감 따는 시기다. 벼를 다 베고 나면 10월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감 수확에 들어간다. 색깔과 크기를 봐서 1차 수확하고 11월 13~14일경 2차 수확이다.


서너 해 전부터는 곶감을 시작해서 일손이 더 바빠졌다. 곶감을 전문으로 하는 집은 10월 말부터 준비에 들어가 11월 말이면 상품이 되어 나오는데, 진주 씨네는 이즈음부터 곶감 말리기에 들어간다. 100박스 정도 만들려면 몇 만 개의 감을 깎아야 하는데, 세 여자가 2~3일 정도 바지런을 떨면 얼추 일이 마무리된다. 이때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흐른다. 잡생각조차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진주 씨의 1년 살이를 듣다 보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농사 같다. 하지만 그녀는 해볼 만하다고 표현한다.


"말로 하나씩 푸니 그렇지,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적어도 농번기라는 게 있잖아요. 겨울에는 늦잠 자면서 푹 쉴 수 있고요, 일을 겁내는 편이 아니라 그날그날 분량만큼 하면 된다고 봐요. 물론 싫을 때도 있지만 좋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고요."


진주 씨다운 답변이다. 지금 같은 의지로 농사를 짓는다면, 언젠가 아버지 못지않은 훌륭한 농부가 되어 있겠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