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사라 베이크웰(역자: 김유신)
ǻ
책읽는수요일
   
18000
2012�� 01��



■ 책 소개
200년 동안 햇빛을 보지못했던 금서(禁書).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들과 생의 지혜를 갈구한 무명 독자들의 애독서.


몽테뉴는 기존의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참신한 시각으로 『에세』라는 불굴의 고전을 써냈다. 『에세』는 후대의 사상과 예술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니체는 그를두고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가장 위대한 영혼”이라 칭송했고,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는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몽테뉴를 읽지 마라.또한 야심가들처럼 교훈을 얻기 위해 읽지도 마라. 오직 살기 위해서(to live) 읽어라”라고 격찬했다. 


■ 저자 사라 베이크웰
1963년 영국 남부 해안 도시본머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호주 시드니에서 성장하였으며, 수 년 동안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였다. 영국으로 돌아와 에섹스대학에서 수학하고, 1990년대 초 런던 웰컴 도서관에서 초기 인쇄술로 만든 고서적 담당 학예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어린 시절에 열심히 글을 쓰던 습관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10년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live)』를 펴냈다. 2012년 현재 세계 14개국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아마존닷컴 올해의 책 등에 선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전미비평가협회상, 영국 더프 쿠퍼상, 코스타 전기상, 마쉬 전기상 등 논픽션 부문과 전기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그녀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면서시티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희귀본 소장품 목록을 작성, 관리, 보존하는 일을하고 있다.

■ 역자김유신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학교 법학 전문 대학원에서 전문 법학 석사(JurisDoctor)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법령집을 영문으로 옮기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새뮤얼 스마일즈의 자조론』『피크앤드 밸리』『BBC 구하기』『부의 이동』『적극적 사고의 힘』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어떻게 살 것인가 

2. 주의를 기울여라 
3. 태어나라 
4.책을 많이 읽되, 읽은 것을 잊고 둔하게 살아라 
5. 사랑과 상실을 이겨내라 
6. 작은 요령을 부려라 
7. 의문을 품어라
8. 나만의 뒷방을 마련하라 
9. 즐겁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라 
10. ‘습관’이라는 잠에서 깨어나라 
11. 절도있게 살라 
12. 인간성을 지켜라 
13.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것을 해보라 
14. 세상을 보라 
15. 너무 잘하지는마라 
16. 철학적인 사색은 우연한 기회가 있을 때만 하라 
17. 성찰하되 후회하지 마라 
18. 통제를 포기하라
19.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20. 인생 그 자체가 해답이 되게 하라




어떻게 살 것인가


프롤로그 - 어떻게 살 것인가

대부분의 당대 저자들과는 달리 몽테뉴는 자신의 위대한 행적이나 업적을 기록하기 위해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희망적인 이상주의를 강탈당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생활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사회를 온통 혼란에 빠뜨리던 재난에 적응해나갔다.


그가 쓴 에세이는 107편에 달한다. 그는 펜을 들었을 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간결하게 적어 내려가면서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사물과 정신 상태를 포착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묘사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던진 질문들 가운데 가장 큰 질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 것이었다. 그 질문을 영어로 옮기면, 비록 어법에 맞지 않지만, 단어 세 개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


이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질문과 다르다. 몽테뉴는 사람을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즉 올바른 삶 또는 명예로운 삶뿐만 아니라 완전히 인간적이고,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이 물음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가장 현실적인 이 문제에서 실질적인 문제가 무수히 파생된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몽테뉴도 존재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매우 당혹스러웠다. 죽음의 두려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녀나 무척 다정했던 친구를 잃었을 때, 그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자신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매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인생을 인정받지 못한 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몽테뉴는 추상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사례마다 자신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대처할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는 생생하고 실감나게 각 사례에 대하여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들려준다.


몇 구절을 써 내려가다가 사물을 바라보는 길이 새로 열리면, 그는 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생각이 아주 비논리적이고 몽환적이면, 글이 그 생각을 따라간다. "나는 이야기의 주제를 고정할 수 없다. 주제는 본래부터 술에 취한 듯 정신없이 비틀거린다." 독자는 가고 싶은 만큼만 몽테뉴와 함께 거닐고, 더 이상 함께 가고 싶지 않으면 몽테뉴 혼자 어슬렁거리게 내버려두어도 된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몽테뉴는 이처럼 새로운 문체로 에세(essais)라는 장르를 창조했다.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어떻게 몽테뉴에게 접근해야 할지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그 책은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읽지 마라. 야심 찬 사람처럼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라. 그 책은 살기 위해서 읽어라."


플로베르의 이 명령에 감명을 받아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물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몽테뉴의 생전과 사후의 덤불을 헤쳐 나갈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로 택했다. 이 물음이 이 책 전반에 걸쳐서 계속 제기되지만, 각 장은 몽테뉴가 주었으리라고 짐작되는 스무 가지의 해답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한 가지 물음에 대하여 더 많은 물음들과 풍성한 일화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해답을 대신했는데, 그 물음들과 일화들은 각기 방향이 다르고 서로 모순되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 물음들과 일화들이 그의 해답이거나 그 물음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몽테뉴가 훗날 『에세』에서 고백한 바로는, 어떤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는 자기 주변에 뭐가 있는지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잔치 분위기에서도 그는 최근에 들은 무서운 소식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며칠 전에 열이 약간 있다고 하면서 모임 도중에 슬며시 자리를 뜬 젊은이가 친구들이 숙취에서 깨기도 전에 열병으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소식 말이다. 죽음이 그렇게 교묘한 방법으로 다가온다면, 순간순간마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은 얇디얇은 세포막 하나로 분리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목숨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 살아 있다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몽테뉴는 이렇게 병적인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20대를 보냈다. 30대에 이르면 누구나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기 마련이지만, 몽테뉴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강박 관념이 점점 더 심해져 바로 자신의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죽음이 추상적인 문제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바뀌었으며, 그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하나씩 베어 넘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몽테뉴의 이러한 강박 관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40대 50대에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살았다. 인생을 사랑하는 부드러운 에세이를 쓸 수 있게 되었고, 젊은 시절의 병적인 정신 상태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죽음은 단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겪게 되는 몇 가지 나쁜 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말년에 『에세』에 이런 말을 추가했다. "무슨 일이든 걱정할 가치가 없다." 몽테뉴는 한때 친구 중에서 가장 비관적인 사람이었으나 중년에 접어들어 가장 태평스럽고 행복하게 살 줄 아는 기술을 터득한 달인이 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몽테뉴가 죽음을 강렬하게 체험한 때는 1569년이나 1570년 초 어느 날이었다. 그 사건이 벌어지던 날도 몽테뉴는 다른 사람들과 말을 타고 숲길을 평화롭게 달리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자기에게 총을 쏘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인가 그를 "벼락처럼" 밀치는 바람에 말이 쓰러지면서 몽테뉴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몇 미터 떨어진 방바닥에 세게 떨어져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는 회복되면서 인생관이 차츰 바뀌었다. 그는 죽음에 관한 에세이에서 전혀 철학적이지 않은 철학적 교훈을 생각나는 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라"가 그에게 가장 기본적인 신조가 되었다. 이 신조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 중에서 가장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 해답은 살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삶은 죽음보다 더 어렵다. 삶에 수동적으로 굴복하지 않고, 주의력을 집중하고 삶을 관리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는 말년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사는 것이 좋다." 정처 없이 미끄러지듯 흘러가듯 사는 지혜를 터득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사라졌다. 몽테뉴는 특히 몸을 관통하는 생명이 세밀하게 관찰해볼 만한, 아주 흥미로운 대상이라는 점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감각과 경험에 계속 주의를 기울였다.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거나 감각과 경험을 통해서 철학적 교훈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과 경험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이며 감각과 경험의 흐름을 끊임없이 추적했다.


이것이 그에게 새로운 규율이 되었다. 집필은 그의 일과를 차지하고 그에게 일종의 영원한 생명을 주었다. 몽테뉴는 인생 중반에 종전까지의 삶의 태도를 버리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책을 많이 읽되, 읽은 것을 잊고 둔하게 살아라

몽테뉴의 독서 원칙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배운 것, 즉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나는 그걸 놓고 고민하지 않고 그냥 건너뛰어 버린다. 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몽테뉴는 책장을 몇 페이지 휙휙 넘기다가 하품을 하면서 책을 던져버리는 게으름뱅이로 자신을 묘사했다. 그에게 걸맞은 표현이지만, 그가 글로 묘사하려고 한 적이 있는, 학문을 취미로 삼는 호사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는 싫증이 나면 어떤 일이든 포기해버렸다. 그런 식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피에르는 무슨 일이든 "맹렬하게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이 말은 몽테뉴가 평생 신조로 삼은 것이다.


몽테뉴는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어도 방금 읽는 내용을 금세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몽테뉴가 건망증이 심해서 머릿속에 갖가지 이야기들을 담아두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필시 진실일 것이다. 그는 기억력이 나빠서 말을 짧게 하고 일화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일화를 소상하게 기억할 수 없어서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그의 뇌는 다행스럽게도 텅 비어 있어서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걸림돌이 없었다.


기억이 자연스럽게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는 버릇은 대자연에 그의 행동을 맡긴다는 그의 일반적인 정책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그는 어린 시절에 게으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런 점이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에게 동기를 부여하려고 꾸준히 노력했지만, 그는 "아주 둔하고, 게으르고, 늘 맥이 풀려 있고, 게으름을 떨쳐버리지 못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장점은 있었다. 일단 파악한 것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어렸을 때에도 그는 "본 것은 무엇이든 정확하게 알았다." 그는 게을러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대담한 의견이나 자유분방한 견해를 숨기는 위장막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겸손한 그의 태도를 보면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얼핏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판단을 내려 말하는 것 같았다.


느림은 그에게 지혜로 통하는 길을 열어주었고, 그 길은 당시 프랑스를 휩쓸던 과격한 행동과 광적인 열정을 상쇄시키는 절제의 정신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지나친 행동과 광적인 열정에 천성적으로 면역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열풍에 쉽게 휘말리지 않았다.


"배운 것을 될 수 있으면 잊어버려라." 그리고 "우둔한 사람이 되라." 이 두 가지 말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몽테뉴가 주는 최상의 해답이 되었다. 이 두 가지 해답으로 그는 자유로워져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이 꼼짝없이 빠져드는 광적인 생각과 어리석은 속임수를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 생각을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참으로 원하던 생활 방식이었다.


느림과 건망증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현명한 대답이었다. 느림과 건망증은 적절한 위장막이었으며 사려 깊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격정에 휩싸이게 될 때도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또 다른 해답을 얻게 된다.



즐겁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라

몽테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 어느 쾌락보다 대화 나누기를 즐겼다. 그는 귀나 입을 잃는 것보다 눈을 잃는 것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대화가 책보다 좋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예리한 재담을 불쑥 던지는 것이다. 유쾌하고 친숙한 분위기 속에서 재담을 한 마디 던지면 친구들 사이에 기지가 넘치고 예리하면서도 정감 어린 농담이 한바탕 이어진다." 다정하고 우정 어린 것이라면 어떤 대화라도 좋다. 이렇게 세련된 사교술을 어렸을 때부터 익혀서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어린이들에게 장려해야 한다. "사람들을 알고 지내면 사람을 판단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유익한 슬기를 얻을 수 있다. 자기 안으로 웅크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시야가 자신의 코 길이로 줄어든다."


몽테뉴에게는, "느긋함과 붙임성"이 유용한 소질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소질은 행복하게 사는 데 필수적이다. 그는 이런 소질을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지혜"라고 불렀으며, 이 지혜를 연마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말은 니체가 내린 유명한 철학의 정의, 즉 철학은 "즐거움" 또는 "기쁨"의 과학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리베르탱과 마찬가지로, 니체는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몽테뉴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정작 니체 자신은 그렇게 처신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다. 그의 인간관계는 고통스러운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그의 초기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감동적인 글을 남겼다.


"철학이 위대하고 희귀한 것들보다 더 유념해야 할, 작지만 끝없이 풍성하여 매우 효과적인 것 중에는 호의가 있다. 호의란 눈웃음, 악수, 그리고 거의 모든 인간적인 행동에 일반적으로 배어 있는 편안함 등 우호적인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교사와 관리는 누구나 자기 직무에 이 요소를 양념으로 집어넣는다. 우리의 인류애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행위, 그런 행위에서 발하는 빛줄기, 모든 것은 이런 행위 속에서 성장한다. …… 좋은 성격, 친절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호의……. 이런 것들은 이른바 동정심, 자비심, 자기희생 등을 표현한 명언보다 문화에 훨씬 더 많이 이바지하였다."


몽테뉴는 거의 언제나 친절한 호의를 쉽게 베풀었다. 그에게는 친절한 호의가 집에서나 직무 수행을 위해서나 많이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성향은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종교적 광신으로 눈이 먼 반대 세력과도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일이 잦았다. 영지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도 교분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만, 늘 쉽지는 않았다. 이웃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곁들여져 『에세』에 수시로 등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몽테뉴의 세계는 그 자체가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 사사로운 우주였으며, 그 세계에는 독자적인 가치와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성을 요새로 만든 적이 없다. 그는 성문에 다다른 사람은 누구라도 따스하게 맞아들이도록 분부했다. 물론 위험한 결정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고, 때로는 잠든 사이에 떠돌이 군인이나 부랑인에게 살해당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원칙은 너무 중요했다. 몽테뉴는 이렇게 썼다. "나는 모든 것을 터놓고 보여준다." 이 말은 사교적인 잡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다른 인간들과 자유롭고 정직하게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루앙에서 브라질 원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몽테뉴는 그들이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의 반쪽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자기 반쪽이 자기 집 문턱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배불리 먹고 있는 부유한 프랑스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몽테뉴는 인간은 모두 존재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했다. "존재의 과정은 동일한 본성에 따라 진행된다." 실제로 동물은 인간과 비슷한 요소가 많은데도 인간과 비슷하지 않다고 취급 받고 있지만, 동물도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에게도 동료 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무는 생사를 가르는 사건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다른 존재를 상대로 하찮은 짓을 할 때에도 인정과 공감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니체는 이런 인정과 공감을 호의라고 했다. 몽테뉴는 이 구절에 자기가 기르는 개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천성적으로 마음이 여리고 어린애처럼 단순해서 개가 내게 장난을 걸거나 밖에 나가자고 조르면 뿌리치지 못한다."


윌리엄 제임스, 레너드 울프, 몽테뉴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 방에 스스로 갇혀 있는 데카르트처럼 각자 다른 관점에 갇힌 채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투과성(透過性)과 사회성이라는 기질이 있어서 서로 교감하고 어울리며 살아간다.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관점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이러한 능력이 바로 진정으로 "남들과 흥겹게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이 장이 주는 해답이자 문명사회를 향한 최선의 희망이다.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것을 해보라

1570년대 내내 평화와 전쟁이 번갈아가며 되풀이되는 동안, 몽테뉴는 그럭저럭 살면서 집필을 계속했다. 그는 거의 십 년 동안 썼다가 고치기를 반복한 끝에 1580년 보르도에 있는 출판업자 시몽 밀랑주의 인쇄소에서 『에세』 첫 권을 출판하였다.


『에세』 초판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것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호기심 많고, 모든 사물에 물음을 던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몽테뉴의 성격은 초판에서도 드러나고 있었고, 인간의 행동에서 엿보이는 수수께끼나 기이한 특징을 터놓고 화제에 올렸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열렬한 독자층이 형성되었다.


애독자 중에는 앙리 3세도 있었다. 몽테뉴는 1580년에 파리를 지나던 길에 관례대로 왕에게 『에세』 한 권을 바쳤다. 앙리가 자신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몽테뉴는 "폐하, 그러면 폐하께서는 저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 책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늘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성공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매일 관찰한 내용과 내면적인 삶에 대하여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몽테뉴는 금기를 깨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는 위대한 업적이 있으면 그런 업적이나 기록해야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시시콜콜 기록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몽테뉴가 비로소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 받게 되었다. 특히 영국 해협 건너편에 있는 독자들이 매료되었다. 영국 작가 베일 세인트 존도 진정으로 "몽테뉴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몽테뉴의 조리에 맞지 않는 "허튼소리"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허튼소리가 그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독자들은 그런 몽테뉴의 모습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독자들에게 "바로 그 사람", 그 자신의 "알맹이"를 보여주었다. 『에세』에서는 "내면세계가 명료하게" 보인다.


정치적으로 보수파였지만, 몽테뉴는 문학계에서는 처음부터 혁명가였다. 그의 집필 방식은 종래의 방식과 전혀 달랐으며, 그는 전통적인 구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리듬에 맞추어 글을 썼다.


1570년대는 몽테뉴가 처음으로 집필에 몰두한 위대한 시기였지만, 1580년대는 그가 저술가로서 명성을 날리는 시기가 된다. 십 년 동안 『에세』는 배로 두꺼워지고 몽테뉴는 무명 인사에서 일약 스타가 된다. 동시에 1580년대는 귀옌 지방의 조용한 농촌 지대를 벗어나 유명 인사 대우를 받으며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를 장기간 여행하고, 보르도 시장에 선출된다. 이 시기에 몽테뉴의 위상은 문필가이자 공인으로 상승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건강을 해쳐 탈진 상태에 빠지기도 하지만 영원히 기억될 인물이 된다.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몽테뉴에게 접근하여 그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묻는 현대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몽테뉴 자신도 세네카와 섹스투스, 루크레티우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으며, 이들도 그들보다 앞서 살다간 선대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마음의 사슬이다. 이 사슬은 학문의 전통은 물론,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에 자기중심적으로 사로잡혀 있지만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사슬이다. 이 모든 사람이 인간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질,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잘 이어나가야 하는,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몽테뉴는 마음과 마음의 결합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종에게까지도 확대했다. 몽테뉴는 아무리 평범한 존재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잘것없고 찬란하지 않은 내 삶에 대하여 쓰고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평범하고 사사로운 삶도 부유한 이들의 삶 못지않게 모든 도덕 철학과 밀접하게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부유한 이의 삶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삶, 그것이 평범하고도 사사로운 삶이 아니겠는가.


몽테뉴는 말년에 건강이 나빠져서 죽기 전 몇 년 동안은 삶과 죽음의 경계지대를 넘나들었다. 그는 한창 때 낙마 사고를 당하여 그 경계 지대를 잠시 드나든 적도 있었다. 불과 5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늙었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신장결석 발작이 일어나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발작이 일어나면 극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더블릿을 쥐어뜯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의 영혼은 태평했다. 낙마 사고를 당한 경험이 다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나는 이미 고통스러운 삶을 감수하고 있다. 나는 고통에서 위안과 희망의 양식을 얻는다."


그는 늙어간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교훈을 얻었다.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늙은이에게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허영심과 결점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어리석고 낡은 자존심에 빠지고, 따분한 수다나 떨고, 쉽게 발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미신에 사로잡히고, 터무니없이 재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향이 틀렸다. 나이 먹음의 가치는 그러한 결점을 수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의 결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쇠퇴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도 한계가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다고 슬기로워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결국 일종의 지혜를 얻는다. 결국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고 결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는 갖가지 역겨운 특성이 단단히 들러붙어 있다. …… 그러나 누군가 이런 특성의 씨앗을 인간으로부터 제거한다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여건이 파괴될 것이다."


철학도 실생활에 적용할 때에는 "투박하고 애매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을 속속들이 밝힐 필요는 없다." 자신의 천재성에 눈이 먼 타소처럼 산다면 무엇을 얻겠는가. 온건하고, 겸손하고, 다소 흐리멍덩하게 사는 게 더 낫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이 해결해줄 것이다.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몇 년 동안 몽테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느긋하게 『에세』를 계속 썼다. 그는 집에서 지내면서 앙리 4세를 비롯하여 여러 지인에게 편지를 썼다. 보르도 등 각지에서 찾아오는 지인들, 작가들, 예전 동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집필을 계속하면서 평범함과 불완전함과 조화롭게 사는 법에 대한 그의 마지막 생각과 더불어 마지막 공상, 마지막 일화를 보충했다. 그는 점점 사는 법을 깨달은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갔다. 아니, 여느 때처럼 태평하고 무심한 그의 태도가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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