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처럼 사고하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표현하라

   
에드워드 코벳 외(역자: 신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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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북스
   
13000
2011�� 12��



■ 책 소개
혼자서든 단체로든, 혼자살든 다른 사람과 함께 살든, 언어를 활용하여 추론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만 문제없이 살아갈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못하든 누구나 매일 매시간 논쟁거리에 휩싸여 지내며 끊임없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질적인 추론 입문서로서 일상생활에서 독자들이스스로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추론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 책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언어폭력의대안으로서 추론을 능동적이면서도 생산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수사학을 핵심으로 삼아 능동적으로 시민 정신을 고양하려는 시대적 소명의식이나 목표를 내세웠다.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기를불어넣는 방법의 하나로서 독자들이 사회 공동의 관심사에 관한 다양한 추론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돕는다. 또한 대중이 중재하는 공적 담론, 담론의 오류, 본질 흐리기 책략 등을 한층 비판적으로 지켜볼 줄 아는 청중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것이다. 

■ 저자
에드워드 P.J. 코벳 (Edward P. J. Corbett)
 -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로 글쓰기 분야의 전문가로서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Classical Rhetoric for the Modern Student』『The Writing Teacher"sSourcebook』『The Elements of Reasoning, Style and Statement』『The Little EnglishHandbook: Choices and Conventions』 등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로사 A. 에벌리 (Rosa A. Eberly) - UT오스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Citizen Critics: LITERARY PUBLIC SPHERES』를 저술하기도했다.

■ 역자신예경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교 영문과에서박사과정을 수학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번역에 매혹되어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옮긴 책으로는 『3초간』『우정이라는 이름의가면』『우리 아이도 음악 천재로 키울 수 있다』가 있다. 

■ 차례
서문

1. 추론: 찬성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추론의 힘
기본적인 질문들
명왕성과플라톤
미사여구와 기하학
에토스, 로고스 그리고 파토스
추론의 목적
내재적 추론과 외재적 추론: 사례 
수사학적착상: 찬성 혹은 반대의 개념을 넘어서
추론 연습

2. 착상: 추론의 장소, 경로, 구조
구체적인 요소 일러두기
추론의 장소:토포이
추론의 경로: 단계
추론의 구조
·귀납법과 예증법·연역법과 생략삼단논법·생략된 전제와 생략의 주체 
·툴민: 확장된생략삼단논법
착상에서 판단까지
단계와 시간
추론 연습

3. 추측: 출발 장소
첫 번째 단계
추측 주장 모음
추측 주장을 알아차리는방법
세 가지 종류의 추측 주장
·관찰·감정표현·서사
추론 연습

4. 정의: 정의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수사학과 정의
사전적정의
신조어
약정적 정의
정의를 내리는 구체적인 방법
·유의어·어원학·묘사·분석·분류·부정·은유와 직유
추론연습

5. 원인과 결과: 세상이 돌아가는이치에 대한 감각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결과에서 원인으로 추론
원인에서 결과로 추론
전건과후건
원인 오판의 오류
인과관계 요소로서의 우연
우연과 인과관계, 신화와 우주론
인과관계 추론을 위한 몇 가지지침
인과관계와 추론의 목적
추론 연습

6. 가치: 본질과 결과에 기반을 둔 판단
가치에 관한 추론
평가의 근거가 되는기준
가치 주장의 한 가지 사례: 음악
가치 주장의 또 다른 사례: 가족 농장
가중치 기준
가치 추론을 위한지침
추론 연습

7. 절차와 제안:변화 가능성을 실현하기
준비되었는가?
휴스턴, 여기 문제가 생겼다
겸손한 제안
실행가능성, 그럴듯함,신뢰성
절차와 제안 추론을 위한 지침
추론 연습

8. 시민 논객되기: 수사학이 길을 만나는 곳 
민주주의의 근간: 시민 논객
추론의 본질흐리기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인신공격의 오류 
·위지위그 오류·잘못된 유추의 오류·감정에 호소하는 오류·원인오판의 오류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논점 이탈의 오류·얼버무리기·거짓 딜레마의 오류 
·미끄러운 비탈길 오류·허수아비의오류·책임전가의 오류
관찰자 문화, 소비자 문화, 민주적인 문화
시민 논객에게 호소하는 추론
시민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의시민인가?
이 책의 생략삼단논법
추론 연습&>





비트겐슈타인처럼 사고하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표현하라


추론: 찬성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추론의 목적

추론의 목적은 판단이지만, 추론한다고 해서 항상 판단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판단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선, 궁극적이거나 최종적인 의미에서의 판단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거나 최종적인 지식을 얻지는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 크리시스(krisis)를 뜻한다. 크리시스는 결정이 내려진 순간, 그리고 결정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추론의 과정과 체계는 세웠지만 판단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때에는 이렇게 판단할 것이다. "아직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어, 나중에 다시 하지 뭐."


크리시스가 어느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시간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검토해야만 한다. 두 가지 시각에는 각각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고대 그리스어 이름이 붙었다.


우선 크로노스는 현대 영어에서 연대순을 뜻하는 크로놀리지(chronology)로 파생되었으며, 시작-중간-끝으로 구성된 시간을 나타낸다. 연대순의 시간이란 흘러가는 시간이므로, 그저 양 끝에 화살표가 달린 수직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하나의 시간 개념인 카이로스는 같은 뜻을 지닌 현대 영어가 없지만, 그래도 추론과 판단을 검토할 때 효과적인 개념이다. 카이로스는 정확한 순간이나 적절한 순간을 의미한다. 수직선상의 한 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연대순의 시간에서도 분명 판단을 내려야 할 특정한 순간들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적절한 순간인 카이로스와 크라이시스 또는 판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개별적으로든 단체의 일원으로든, 우리는 결정을 내릴 적임자가 없거나 충분한 정보가 없다고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결정조차 일종의 판단인 셈이다. 여럿이 내린 공통의 판단이야말로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행동할 타당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최고의 희망이다.


그러나 판단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비판적 독서와 듣기처럼 이해력에 관한 판단을 생각해 보자. 이 과정은 자기 내면에서 전개하는 대화를 통해 진행된다. 집 근처의 공원에서 새파란 새 한 마리를 보았다고 상상해 보자. 새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이 새가 파랑지빠귀인지 피리새인지 궁금할 것이다.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은 내재적 언어를 사용하여 새의 종류를 확인하는 방법에 관해 스스로 추론해야 한다.


새가 얼마나 큰가?

날짜는 며칠인가?

새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

새의 몸통이 전체적으로 파란색인가, 아니면 갈색 무늬가 있는가?


질문에 모두 대답해 보면 공원을 찾아온 새의 종류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형태의 판단을 내재적 판단이라고 한다. 내재적 추론이라고 해서 외부와 단절된 추론으로 착각하지는 말라.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는 반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담론과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한 채 추론할 수 없다.


다른 형태의 판단도 존재한다. 내재적인 수용과 이해 이외에, 추론은 자아의 외부에 글과 말로 존재하는 담론이자 개인 차원과 공동체 차원으로 존재하는 담론, 즉 모든 외재적 담론을 생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사실, 언어로 추론을 하고 혼자서나 다른 사람과 함께 담론을 생산하는 일은 사람들이 환경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제, 이미 파란 새를 관찰하여 정체를 알아냈다고 상상해 보라. 여러분은 새의 종류가 피리새이며, 다른 사람들도 피리새가 동네에 찾아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지역 주간신문 편집장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토요일 아침에 지역 방송국의 원예 코너에 전화를 걸어 피리새가 인근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모두에게 알린다.


이런 종류의 추론에도 대화가 수반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청자나 독자가 텍스트와 나누는 대화의 수준을 넘어선다. 두 번째 형태의 판단, 즉 외재적 판단은 분명히 공동의 것이며 여러분 이외의 누군가를 겨냥하고 있다. 두 가지 목적은 모두 판단에 관한 것이며, 판단이야말로 추론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재적으로 추론하는 법과, 전보다 훌륭한 외재적 추론가가 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또한, 추론과 판단의 결실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라고 권유한다.



정의: 정의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사전적 정의

정의는 하늘이 결정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대신, 정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에서 창조된다. 우리가 사전에서 찾아낸 정의는 특정한 단어에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부여한 의미를 기록한 것이다. 단어의 의미는 대체로 사전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중 몇 가지 의미는 오직 특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 특정 문화나 하위문화의 사람들, 특정 직업의 사람들만이 알아본다. 그리고 사전에 결코 등재되지 못한 정의도 수없이 많다. 펜실베이니아 동부에서 소다라고 부르는 탄산음료는 펜실베이니아 서부에서는 팝(pop)이라고 부른다. "음료에 김이 빠졌네!(My pop has gone flat!)"라는 말은 다른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쓰러지셨어!"라는 비극적인 내용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의도 달라진다. 단어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거나 예전의 의미가 사라지기도 한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예는 화장수(toilet water)라는 단어인데, 여러분이 떠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화장수는 일종의 향수로서, 화장실이 한때는 몸을 씻고 단장하는 모든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었음이 이름에 반영되어 있다.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말은 목욕하고 빗질하고 장식하며, 일종의 좋은 냄새가 나는 혼합액을 바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향수의 한 종류인 화장수는 프랑스 단어인 뚜알렛, 즉 화장대보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제 여러분도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전에 실린 단어 풀이에 구식이라는 표시가 붙어있다면, 한때는 여러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더 이상은 일반적으로 통하지 않는 뜻이라는 표시이다. 만일 새로운 의미나 구식 의미가 논증의 근거로 제시되었다면, 추론 당사자들은 논의 과정에서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해야 할 것이다.



원인과 결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감각

전건과 후건

추론가들은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 추론과 전건(前件) - 후건(後件)에 기반을 둔 추론을 구분할 때 신중해야 한다. 전건과 후건의 관계는 흔히 인과관계와 비슷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전후관계 추론은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 성향 등이 갖추어지면 어떤 일이 뒤따라 발생한다는 원칙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나 앞서 발생한 일-전건-이 반드시 뒤따라 발생하는 일-후건-을 초래하거나 유발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18세가 되면 투표할 자격이 생긴다. 특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자연히 투표권이 생기지만 나이를 먹는 일이 투표권이 생긴 원인은 아니다. 법적인 정의에 따라서, 특정한 나이에 도달하여 투표할 자격을 자연히 얻은 것이다. 나이를 먹는 일은 그저 시간에 달린 문제일 뿐이지 다른 일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 수반에 담긴 물이 얼었다면, 이 일은 인과관계의 원칙을 보여주는 예인가 아니면 전후관계의 원칙을 보여주는 예인가? 날씨가 특정한 온도까지 떨어지면 자연히 물이 언다. 그러나 온도가 섭씨 0도 아래로 내려가면 순수한 물은 언제나 얼기 때문에, 낮은 온도가 결빙 현상의 원인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화학의 법칙이 지속하는 한 물은 얼 것이다.


까마귀가 울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미신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이런 예를 곧잘 끌어대지만, 까마귀가 운다고 해서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증거는 절대적이지 않다. 어쩌면 불행한 일은 우연히 생겼을지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불행한 일은 그저 나중에 일어났을 뿐, 결코 결과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원인에서 결과를 추론하든 결과에서 원인을 추론하든, 인과관계를 지배하는 특정한 원칙들은 잘 알아두어야 한다. 원칙을 잘 모른 채 제시한 추론은 다른 사람들에게 논박 당하기 쉽다.



가치: 본질과 결과에 기반을 둔 판단

가치에 관한 추론

필자는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면 남편 키이쓰와 함께 그날 온 우편물을 열어본다. 몇 개의 봉투를 살펴보던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우와. 은행 내역서가 마음에 드는데." 필자가 잠시 기다렸다가 커다란 소리로 물어본다. "은행 내역서가 마음에 든다니, 대체 무슨 말이야? 무슨 근거로 은행 내역서가 좋다는 거야? 어떻게 은행 내역서가 좋아?" 혹시 수사학자와 결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인가?


어쨌든 남편이 은행 내역서를 좋아하는 이유를 놓고 우리는 몇 가지 추론을 펼친다. 이런 경우, 남편은 대개 은행 내역서의 새로운 디자인이 좋다고 말한다. 필자는 미학적 기준이 은행 내역서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냐고 묻는다. 결산서에 적힌 순익 표시 부분의 정확도야말로 은행 내역서에서 중요한 항목이 아닌가?


남편은 그래픽 디자이너 입장에서 필자의 질문에 반박하며, 당연히 은행 내역서를 좋아할 권리가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좋은 디자인이란 아름다운 동시에 기능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필자에게 일깨워줌으로써 추론을 중단시킨다. 그러면, 다음 우편물로 시선을 돌린다.


어떤 대상이 좋은지 나쁜지, 비교적 좋은지 나쁜지, 기능적인지 기능에 장애가 있는지, 아름다운지 불쾌한지를 판단하는 추론-그리고 사물의 특성에 대한 주장 모두-은 가치에 관한 추론이다. 가치 추론은 수사학으로 착상하여 용이하게 만든 모든 것의 중심에 존재한다. 서로 다른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추론하려 하거나 함께 추론할 필요가 있다면, 수사학에서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정의 단계 명제는 서술부에 명사를 사용하지만, 가치 단계 명제는 대체로 서술부에 형용사를 쓸 때가 많다. 은행 내역서를 정의한다면 다음과 비슷할 것이다.


은행 내역서는 일종의 서식이다.


일종의 서식이 명사구임을 주목하라. 그러나 은행 내역서를 평가하면 다음과 비슷할 것이다.


이 은행 내역서는 읽기 쉽다.


쉽다라는 형용사 덕분에 이 주장이 확실히 가치에 관한-평가적인-주장이 되었음을 주목하라. 서술부에서 사용된 평가 구는 형용사와 명사로 구성될 것이다. 다음 예를 보라.


그 여자는 최고의 수리공이다.

그 남자는 능력이 없는 중개인이다.


평가 용어는 명사만으로 구성될 때가 많지만, 그 안에 가치가 함축될 것이다.


엘모는 악당이다.

진은 구세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치 단계의 주장은 이런 형태를 띨 것이다. "명사는 형용사이다." 추론을 하다 보면 가치 단계와 절차 단계로 직접 넘어갈 때가 많다. 매일 여러 가지 평가적인 주장을 제시하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한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아스트로스 팀은 대단해!

그 영화는 시시했어.

머리 모양이 멋진데.


한동안 미국의 청년 문화는 이미 정해진 평가 주장에 의지해왔다. "정말 별로다." 이런 평가 진술을 할 때 우리는 대부분 오래 생각하지 않은 채 의견을 표현하며,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때로 우리의 평가 진술은 그저 개인적인 취향을 나타낼 뿐이다.


이 살사 소스가 저것보다 훨씬 맛있어.

저 장미는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예뻐.

푸른 토마토 튀김은 절대 안 먹어.


취향 표현은 때로는 가치 질문에 대한 추론의 기반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공중에 떠돌다가 소득 없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우리가 내린 평가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그 근간을 이루는 가치를 이해받고 싶다면, 이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할 논증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런 정당화와 뒷받침을 기준이라고 부를 것이다. 기준은 가치 논증의 기반이며, 기준이 없다면 다양한 가치를 믿고 여러 가지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거나 생산적으로 추론을 펼칠 방법이 없다. 



시민 논객되기: 수사학이 길을 만나는 곳

민주주의의 근간: 시민 논객

수영장을 고쳐주세요 - (엘리자베스 밈즈)

저는 두 살 때부터, 아니 수영복을 입을 나이부터 램지 수영장에 다녔습니다. 저는 지금 열 살인데 아직도 램지 수영장에 다닙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는 텍사스의 찌는 무더위를 뚫고 집에서 수영장까지 걸어갔는데, 그만 양수기 고장으로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이 너무 더러워서 수영장 바닥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얼굴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우리 가족은 물이 수영할 만큼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수영장에 갔다가 그대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소원은 수영장에서 양수기를 고쳐 이번 여름까지 준비를 마치는 것입니다. 작년 여름에 일어난 일이 올 여름에도 똑같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999년 2월, <오스틴 아메리칸 스테이츠맨>에서 발행한 이 편지는 시민 비평의 한 사례이다. 편지를 쓴 엘리자베스 밈즈는 일종의 시민 논객이다. 엘리자베스를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편지를 들여다보면 -비록 열 살짜리 아이의 편지지만- 일종의 암시를 읽을 수 있다. 즉, 엘리자베스가 공적 담론으로 세상이 달라지기를 소망한다면, 누구나 진심으로 노력하여 아이의 세상이 달라지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 논객이 되는 것은 습관의 문제이다. 추론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시민 논객이 되는 일도 습관적인 실행의 문제이다. 어른의 제안이나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엘리자베스 밈즈는 어린 나이에 자기의 신념을 추론, 글쓰기, 공적 담론에서 분명히 증명했다. 다만 공통의 정치조직이나 기관들이 엘리자베스의 신념을 제압하거나 뜻을 꺾어버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해서 모두 시민 논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 비평을 하려면 대중적으로나 공동체에서 논의되는 문제에 일종의 신념을 품어야 한다. 다음 글 역시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의 하나로, UT 오스틴 대학의 학생 일간지 <데일리 텍산>에 실린 글이다. 이 코너에는 최전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글을 읽으면서 엘리자베스 밈즈가 보낸 편지와 비교해 보기 바란다.


흔한 동호회일 뿐 - (아담 디맨드, RTF 신입생)

펜 보우만, 다니엘라 드와이어, 스티븐 스테트슨은 어쩌면 이렇게 건방진지, 대학의 낭비벽이라면 익히 알고 있지만 이런 속물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특별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자신의 조직(UT 오스틴 대학 변론 팀)이 평범한 동호회가 아니라 대단한 집단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기도 힘들 텐데 말이다.


동료 학생들에게 자신의 일을 대신 맡기다니, 변론 팀은 어찌나 관대하신지. 학생들의 가입을 허락하지 않는 수많은 동호회들과는 달리, 학생들의 가입을 허락해주시다니 어찌나 친절하신지. 일전에 대학 단체 간의 토론에 참석해 보았더니, 그야말로 따분함과 저속함이 적절히 조합된 행사였다.


여러분의 단체처럼, 대학이 오로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학생들 조직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자부심 강한 조직은 정말 신물이 난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소식을 들려주겠다. 우리들 일부는 여기에 학업을 배우러 왔으니, 어떤 종류의 조직에 가입할 수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겨우 70명 정도만이 가입한 조직에게 줄 자금을 위해 나머지 학생들 일부가 20센트 정도를 내는 셈이다.


어쩌면 그 70명이 그 별 볼일 없는 동호회를 위해 자금을 대주기 시작해야 하겠지. 나는 대학이 동호회에 할당한 자금을 삭감하고, 변론 팀이 UT오스틴 대학에서 경험한 또 하나의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 불성실하고 위선적인 헛소리를 듣고 싶다면, 차라리 대학 교수들에게 찾아가 이야기하고 말겠다.


엘리자베스와 아담이 보낸 편지는 많이 다르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엘리자베스가 편지에서 보여준 것은 희망이며 아담이 보여준 것은 절망이라는 것이다. 강의 시간에 이 편지에 대해 논의했을 때 필자의 수강생 중 한 명이 고른 표현은 적대감이었다. 역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담이 왜 대학에 들어갔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변론 팀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동호회 운영 자금으로 얻어서는 안 되겠지만, 왜 아담은 변론 팀의 회원들을 개인적으로(오만하고 어리석은 속물이라고 묘사하면서) 비판하고 그것도 모자라 교수진들까지 전부 끌어들여야만 했을까? 만약 교수들에게 얻는 것이 고작 불성실하고 위선적인 헛소리밖에 없다면 왜 아담은 이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원했을까? 그런 헛소리는 틀림없이 배울 만한 내용은 아니다.


아담은 교수들과 동료 학생들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특정한 대학이나 일반적인 대학에서 실시되는 학부 교육의 질에 대해서 공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분명히 아담의 편지에는 토론을 하기 위해 공유할 만한 기준 -예를 들면, 교수나 강의 규모, 교육과정의 분석-이 전혀 없다.


아담의 편지는 글쓴이의 빈정거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유형의 공적 담론 사례이다. 사람들이 편지에 반응을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 쟁점에 관해서는 어떤 생산적인 추론도 진행하지 않을 듯하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공격 때문에, 논증의 원인이나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아담이 어떤 논증에도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비록 일부 독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담의 편지는 사리에 맞는 반응을 일으키거나, 대중이 반응을 보이도록 격려하거나,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공동의 판단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 대한 공적 토론이 어떻게 아담의 추론으로 지속되거나 개선되는가? 아담의 편지와 추론의 관계는 난폭 운전자와 운전의 관계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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