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임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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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북스
   
18000
2011�� 01��



■ 책 소개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추천!

100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한국 내에 거주하고있고 이와 맞물려 한국사회는 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고 이로 인해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를불러왔다. 이와 같은 상황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경제활동의 주체적 역할을 담당하며 한국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부침(浮沈)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한국사회에서 주변부의 문제로 인식되었던 이주노동자의 생활실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이론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집필되었다. 이를 통해이주노동자들이 끊임없는 문화변용을 통해 한국인의 생활세계와도 심층적인 상호작용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저자 임선일
건국대학교 석사(1995)졸업하고서울외국인 노동자센터 사무국장(2000~2003), 외국인 노동자 샬롬의집 대외협력국장(2006), 인문철학 연구공간 ‘여럿’ 대표(2007),이주노동자 인터넷 방송국 자문위원장(2008),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2008, 2010)를 역임하고 성공회대학교 사회학 박사(2010)를지내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노동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지구화 시대의 국가와 탈국가(공저』「에스니시티 변형을 통한 한국사회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연구(박사논문)」「재한 중국동포의 에스니시티(ethnicity) 변용에 관한 연구 -서울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산업노동학회 연구 논문)」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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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머리말 

01 서론 
1. 왜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연구인가? 
2.구로지역의 중국동포, 마석공단의 이주노동자 
3. 연구의 범위와 구성 

02 문화변용 이론과 선행연구 
1. 문화변용 이론과 이주노동자 현황 
2.문화변용에 관한 선행이론 
3. 문화변용 이론의 재구조화 
4. 한국의 이주노동자 선행연구 

03 이주노동자의 인적 속성과 생활세계 
1.한국계 
2. 비한국계 
3. 국내 정착 과정의 진행과 실태 
4. 소결 

04 국내 적응과정의 문화적 변수들과 에스니시티 변형 
1. 문화적 변수의차원에 관한 고려 
2. 한국계의 생활세계와 문화적 변수 
3. 비한국계의 생활세계와 문화적 변수 
4. 에스니시티 변형에 따른이주노동자의 유형 분류 
5. 소결 

05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유형화와 전략 
1. 한국계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2. 비한국계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3. 에스니시티 변형수준에 따른 문화변용 전략과 궤적 
4.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과한국사회 
5. 소결 

06결론
 

참고문헌 
부록 1-설문지
부록 2-국적법 시행령 




한국사회 이주노동자의 문화변동


서론

왜 이주노동자의 문화변용 연구인가?

1980년대 후반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제3세계의 노동력이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91년까지 전국의 영세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1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이입되어 국내의 노동인력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국내 노동시장의 변화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아시아 저개발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했다. 이때부터 가족과 친지 방문 목적으로 입국하였다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를 감수하는 중국출신의 교포가 점증했다. 동시에 한국에 입국해 불법체류 상태에서 돈을 벌고 있는 비한국계 이주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가족들과 친지들이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정주기간의 장기화로 인해 탈노동자화하는 한국계 이주노동자가 생겼으며 한국정부가 취하는 어떠한 방법에도 단속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비한국계 이주노동자도 생겼다.


한국계와 비한국계 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하는 과정과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과 강화의 문제, 그리고 이들이 한국사회라는 구조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에스니시티(ethnicity)를 변형시켜 문화적 변용을 하는가와 같은 주제는 학계의 연구 문제에서 소외돼 있었다. 본 책에서는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넘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에스니시티 변형과 문화변용에 대해 집중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민족적 정체성이 상이한 한국계와 비한국계 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와의 관계 설정을 동일한 수위에서 하는가, 관계 설정방법의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들의 삶에 이러한 관계 설정이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생활세계를 통해 변형되는 이주노동자의 에스니시티가 어떠한 유형으로 분화되는가에 관한 논의가 중요한 분석 내용이 될 것이다.



문화변용 이론과 선행연구

문화변용 이론과 이주노동자 현황

뵈닝은 국제 노동력 이동을 통해 형성되는 이민사회 형성 과정에 관한 논의에서 이주시작, 이주지속, 가족 재결합, 영구정착의 네 가지 형태로 이주모형을 설계하였다(Bohning, 1984; Castle and Miller, 1998). 뵈닝의 네 단계 모형은 이민의 일반적 모형을 설명하는 데 적당하고 한국사회의 이민 형태를 설명하기에도 용이하므로 본 연구에서도 이 모형을 이용해 분석하였다.


국제 노동력이 한국으로 본격적으로 이입된 시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가 이주시작의 단계가 될 것이다. 물론 1988년 이전에도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있었으나 그 수는 극히 미미했고 88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동남아시아에 알려지게 되면서 이주노동자의 이주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93년 산업 연수생 제도에 의해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이입되었는데 이때부터 두 번째 단계인 이주지속의 단계가 시작되는 시기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사회적 연결망 이론과 조직결성 이론에 의해 이입되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이주의 속도가 가속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필자는 뵈닝의 네 가지 이민사회 형성과정에서의 세 번째 단계인 가족재결합 단계는 한국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에 의해 이주노동자 가족들의 입국이 사전에 차단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아직까지 존재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해 아이들이 한국 내에서는 정상적인 교육환경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뵈닝의 4단계 모형에 비추어 볼 때 1, 2, 4단계는 분명하고 거대한 사회현상으로 발현되는 데 비해 3단계의 상황은 극소수의 사례일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불투명한 전망의 맹아로 정리하면서 3단계 모형은 한국사회에서 적용되지 않는 단계로 분류하고자 한다.


뵈닝의 4단계 모형은 영구정착의 단계로서 누적원인 이론과 세계체제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관계이론의 하나인 국제노동력 이동 체계 이론은 송출국과 이입국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상호작용하는 연결 구조를 밝히고, 하나의 체계 안에서 파악되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의 상황과 괴리가 있다. 한국은 이입되어 있는 이주노동자 출신국과의 관계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밀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노동력 체계 이론은 한국의 이주노동자 이입과 적응에 관한 설명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주노동자의 내적 정체성을 고찰하는 데 있어 에스니시티(ethnicity)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에스니시티는 체형적, 문화적 유사성, 혹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실재 혹은 상상의 혈연관계에 대한 주관적 믿음을 가지는 집단으로 정의하는 코넬(Cornell, 1998)과 하트만(Hartmann, 1998)의 넓은 의미의 정의를 받아들여 기존의 문화적·역사적 특성만을 강조하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에스니시티라는 용어는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강조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적 변화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을 연구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즉, 에스니시티 개념은 인종이 가지는 차별주의적 관념을 넘어서고, 민족·종족을 포괄하는 정치적 정체성의 기초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박종일, 2006).


문화변용에 관한 선행이론

선술한 에스니시티의 정의를 참고하면, 에스니시티의 변형을 통해 문화변용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문화변용(acculturation) 또는 문화적응(adaptation)의 개념은 문화 간 접촉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에서 탄생하였다. 이는 문화접촉 상황 초기에 나타나는 집단수준의 변화를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문화적 근원이 다른 사람들 간의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접촉의 결과로 일어나는 변화로 정의 할 수 있다(Redfield, Linton & Herskovits, 1936). 문화변용은 상호작용을 하는 두 집단 모두에게서 나타나는데 실질적으로는 두 집단 중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Berry, 1990).


최근의 문화변용에 관한 연구들이 보여주는 장점은 첫째, 문화변용 과정의 정서, 행동, 인지적 요소 등을 광범위하게 다룬다는 점, 둘째, 문화접촉의 부정성을 능동적 대처 방식의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점, 셋째, 문화접촉 과정에서 보이는 정서, 행동, 인지 요소를 살핌으로써 시간에 걸친 변화 과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문화적 적응의 측면을 심리적 적응과 사회적 적응으로 구분하여 각 변인들의 측정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바람직한 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변인들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정진경, 양계민, 2004). 특히 베리의 문화변용 모형에서 보이는 다양한 측정의 유용성은 유럽이나 북미의 이민자나 난민연구에 적합하여 한국의 경우 북한이탈 주민에 대한 연구에 적합하다(홍순혜, 이순영, 2008). 그러나 이와 같은 최근 연구경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나 중국동포의 사례를 적용하여 분석하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신분이 이민자와 난민, 탈북자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문화변용 이론의 재구조화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에 적응을 하고 있고 더 나아가 정착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에스니시티가 변형되는 사람들과 또는 그렇지 않은 부류가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이 문화변용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할 것인가 아니면 출신국으로 귀환할 것인가에 대해 등록·미등록신분, 가족관계, 이익 수취의 크기를 포괄하여 결정의 시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결정을 하는 데에는 이주노동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신분에 대한 고려, 한국사회에 대한 적응 정도, 에스니시티의 변형정도와 같은 조건을 척도로 하여 판단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입국 사회의 구조적인 특수한 상황이나 이민자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 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베리의 기존 문화변용 모형에서는 이주민이 처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개인 행위의 심리적 상태만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주민 개인이나 집단이 하나의 모델을 선택하기까지 진행되는 문화변용은 이입국의 문화, 환경, 전통, 관습과 같은 구조적 상태를 배제할 수는 없다. 베리는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입국 주류사회의 구조적 상황과 이주민과의 관계를 상호작용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모델을 유형화시켰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선행연구

단일민족 신화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질적 존재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저개발국 출신의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이 회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였고 작업장에서는 한국인의 지휘감독을 받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에는 언어 소통 애로로 인한 갈등, 작업과정에서의 미숙련에 의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식은 언어와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나는 일이 빈번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작업장뿐 아니라 생활세계에서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주노동자의 일터와 생활공간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유형의 시·공간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되고 생활공간을 옮긴 이주노동자가 본국 출신의 이민자들과 국지적 및 탈지역적 네트워크와 본국 가족 및 친지들과의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대응하거나 해소한다(최병두, 2009;319~343).


인권적 차원의 노동문제와 의료문제 등으로부터 출발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사회·문화적 적응의 문제까지 폭넓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구는 작업현장에서의 육체적 건강 문제(오상우 외, 2000; 전수경, 2005)를 배제할 수는 없으며 문화적 갈등과 대응(김수재, 2008)에 대한 정신적인 문제, 그리고 사회문화적 적응에 관한 문제(김영란, 2008)까지 다양하다.



이주노동자의 인적 속성과 생활세계

한국계

1980년대에 친척 방문을 목적으로 입국하던 재중동포가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이후 1992년 개혁개방정책을 표방한 중국과 한국정부는 수교하였으며 재중동포의 본격적인 한국으로의 이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인에 있어 재중동포는 상징적일 뿐이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고 혈연관계의 친족관계였으며 에스니시티를 일정 부분 공유하는 집단이었다.


한국으로의 이입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는 2003년 재외동포법 개정 발의를 거쳐 2004년 법이 국회에서 가결된 시기로서 재중동포들의 한국 이입을 촉진하는 계기였다. 2004년 재개정된 재외동포법에 의해 법률상 혜택에 포함되었는데 주로 친족 방문을 위한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입국하였고 재외동포 3세까지는 비자를 발급받는데 문제가 없었다.


임채완과 김경학이 1999년 6월부터 2001년 1월에 걸쳐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일대에서 연구한 연변 조선족의 민족 정체성 조사연구에 의하면 연변조선족들은 상호 친밀감이 높으며 높은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있다(임채완 외, 2002). 그러나 생활양식은 중국에 가깝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연변 조선족의 정체성을 조선족 정체성과 한족 정체성으로 나누어 비교 연구한 신승철의 연구에서도 감정적 측면에서는 한족 정체성이 높은 반면 행동적·인지적 측면에서는 조선족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신승철 외, 1994). 이 결과는 조선족이 조선족으로서의 민족의식과 중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중 정체성(dual identity)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행동적, 실체적, 인지적인 측면의 정체성이 본연의 정체성이라고 상정한다면 재중동포는 중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재중동포들은 중국의 공민이라는 정체성과 한민족의 정체성 속에서 갈등하며 하나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으며 한국사회와 유연하게 대처하려 한다는 점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적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민족 정체성을 근거로 친척이 살고 있는 한국사회의 주류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한 재중동포들에게 중국 공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한국사회에 적응을 시도한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필자의 에스니시티 변형 유형에 대입해 보면 귀화지향형 개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비한국계

한국 이입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출신국은 대부분 국민소득이 연간 $1,000 내외의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제3세계 국가라 일컬어지는 이들 국가들은 산업기반 시설이나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 산업의 발전 정도가 미미하다. 실업률이 증가하고 총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자국에서의 생활을 영위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 취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해외로의 취업은 그들 준거집단에서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해외 취업을 결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정 수준의 학력과 정보력이 뒷받침된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해외 자본 시장이나 다른 국가의 사회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저학력자에 비해 고학력자가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적 정체성을 근거로 한국행을 결행하는 한국계 이주노동자의 이주과정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2007년 고용허가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지만 제도적 틀에 맞추어 마석 공단에 유입되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다. 이곳에서 정착하여 생활세계를 경험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관광비자(tourist visa)나 사업비자(business visa)를 받아 입국했거나 한국정부가 산업 연수생 제도를 외국인력의 기본 정책 기조로 삼았을 당시에 연수생 신분이었다가 연수생 신분을 버리고 불법체류를 선택하여 스스로 제도권 밖으로 이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외국인력 정책의 근간일 당시에는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입국하는 이주노동자가 많았다. 물론 관광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도 처음부터 불법체류를 결심하고 입국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들 부류 역시 브로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미 한국에 이입되었던 이주노동자가 한국을 그들의 본국에 소개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으로의 이입을 결심하게 되는 본국의 이주노동자도 브로커의 도움 없이는 한국으로의 이입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이입되는 비한국계 이주노동자의 초기 에스니시티는 한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인적·사회적 네트워크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에스니시티를 지키려는 자발적 의지를 동향의 이주민 집단을 통해 구현하려 한다. 이는 필자의 에스니시티 변형모델에 의하면 귀소지향형(Homing aim type)의 개념에 속하며 초기 이입 시 한국사회에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는 상황에서 돈을 벌면 귀국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국내 정착 과정의 진행과 실태

한국은 실정법상 이주노동자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이 제한적이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에 등록을 필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국적법 시행령에 의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나 한국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미등록 상태에서는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의 유·무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정착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본 책에서는 적응과정을 통한 정착의 척도를 제시하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첫째, 비록 신분이 미등록 상태일지라도 이주노동자는 현실적 상황 속에서 한국인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서서히 본국의 인적 네트워크보다는 한국 내에서의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 친구나 직장동료, 또는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한국 국적을 소유한 인적 네트워크의 유무에 따라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 둘째, 본국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화를 거는 횟수이다. 이주 초기에는 본국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화로 본인의 안부나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는 횟수가 빈번하지만 한국 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본국과의 전화 소통의 횟수가 감소하게 된다. 셋째,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의 액수와 횟수이다. 이주 초기에는 본국에 송금하는 돈이 월 임금의 80~90%를 본국으로 송금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월 임금의 몇%가 아닌 정해진 금액만을 송금하는 행태를 보이게 되는데 30~40만 원 정도의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넷째, 출신국의 문화를 일부분 상실하게 된다. 적응기간이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종교와 관습, 음식 등 자국에서 체득했던 문화적 관습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변용시키게 된다. 다섯째, 한국어나 문자생활(한글)의 익숙함의 정도이다. 정주기간이 장기화되고 한국사회로의 적응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한국어 활용의 능력이다. 한글을 포함한 한국어의 활용도 능력의 높고 낮음에 의해 정착의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계 이주노동자가 중국으로의 귀환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의 귀환은 한국사회와의 제한적 네트워크의 연결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로부터 임대받은 토지나 아파트와 같은 생활기반이 중국에 있으며 동포 3세들의 한국 정주 여부에 대한 회의적 반응은 40~50대 한국계 이주민들이 중국으로의 귀환, 비귀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들의 노동력이 상실되는 시기가 도래하게 되면 자녀와 생활기반이 실재하는 중국으로 귀환하게 되고 한국사회와의 네트워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계 이주노동자들은 잠정적·단기적 에스니시티 변형만 일어날 뿐 정주화 현상은 발생되지 않고 이들의 귀환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외부에 존치할 뿐 아니라 더는 민족적 동질감을 공유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한국계 이주노동자는 그들만의 약한 에스닉 그룹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의 단속에 검거되지 않는다면 미등록 상태일지라도 한국에 거주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본국으로의 귀환을 상정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이들이 제도권 밖에 위치하여 불안한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생활세계는 한국사회에 매우 밀착되어 있어 정착의 과정에 위치하고 있다.



국내 적응과정의 문화적 변수들과 에스니시티 변형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서 경험하는 문화적 변수에 의해 이들이 가지고 있던 에스니시티는 변형을 하게 된다. 변형되는 에스니시티의 유형은 한국계와 비한국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등록된 신분과 미등록된 신분과 같이 처해진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계의 에스니시티는 이주 초기 귀화지향형의 상태였으나 체류기간이 경과하면서 현지적응형, 귀소지향형, 상황선택형으로 변형된다. 그러나 비한국계는 귀소지향형에서 체류기간이 경과하더라도 동일한 유형의 에스니시티를 유지하는 그룹과 상황선택형, 현지적응형으로 변형되는 그룹으로 나뉜다.


두 그룹 간의 에스니시티 변형 방식을 비교해 보면 한국계는 초기에 가지고 있던 귀화지향형의 유형에서 세 가지의 유형으로 변형되는데 비한국계와 달리 초기의 귀화지향형 에스니시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비한국계보다 역동적인 에스니시티의 변형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이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한국계보다 비교적 적응하기 쉬운 제도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에 반해 비한국계는 초기의 에스니시티를 유지하는 사람들 이외에 두 가지로 변형되는데 특이한 점은 귀화지향형으로 변형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는 비한국계 이주노동자가 자신들의 문화정체성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사회와 적극적인 관계 유지를 원하고 있더라도 한국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한국정부도 마찬가지로 이들을 받아들일 제도적 장치를 아직 마련해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계에 비해 문화변용의 스펙트럼이 협소할 수밖에 없다.



결론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인과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핵심적인 문제라는 현실에 동의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인종·다문화 시대의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의 상호 동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이주민에게 강요되는 한국문화의 강습이나 관습의 강제적 요구보다는 상호 존중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 상호동화가 상생의 생활세계를 완성하는 데 우선되어져야 한다.


한국정부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미래에 이주노동자 문제는 미봉책으로 해결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고 장기적 목표를 전제로 하는 정책의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미시적으로는 노동부의 노동인력 배정 기능의 강화와 직업안정 행정의 효율성 제고가 요구되며 출입국 행정과의 보다 긴밀한 유기적 관계 형성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등록과 미등록의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일정기간 체류한 이주노동자에 대해 영주권 부여나 한국 국적 취득에 관한 특례법 제정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야말로 한국사회가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시민권 형성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도 이주노동자는 지속적으로 이입되고 있으며, 이입된 이주노동자들은 에스니시티 변형을 통해 문화변용이 되고 있으며 빠르게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이입되는 속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정책 입안의 제도지체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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