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한문소설에 나타난 통속화의 한 경향 연구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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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정보
   
13000
2007�� 08��



■ 책 소개 
조선후기인 18세기후반부터 소설의 통속성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국문소설의 독자층이 궁중 및 일부 사대부가 여성들에서 여항과 서민층으로까지 확대되면서양적인 팽창을 보인 시기이다. 동시에 세척점의 성행과 방각본의 상업적 출판을 배경으로 소설의 상품화가 급격히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작품들은 완성도가 떨어지게 되고 선행 작품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의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작품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받아온 통속 한문소설에 주목해 조선후기 소설사의 다양한 갈래를 짚어보고 있다. 

■ 저자 권도경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2년1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선문대학교 중한번역연구소에서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육성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후 2005년 8월까지동의대학교에서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저서인 『조선후기 전기소설가의 전변과 새로운 시각』은 2005년도 문화관광부선정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차례
제1장 조선후기 한문소설사의 전개와 통속적 지향 
1. 서론 
2. 조선후기 한문소설사의 전개와 통속화의문제 
3. 조선후기 한문소설의 통속적 실험, 그 전개 양상 
4. 조선후기 통속적, 한문소설의 서사적 특성 
5. 통속적한문소설의 소설사적 의의 
6. 결론 

제2장 조선후기 한문소설과 국문소설의 교섭, 새로운 국문소설의 탄생: 『홍랑전』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위상 
1. 서론 
2. 창작 경위와 직업적 작가의 존재 
3. 구성적 특징과 그 의미 
4. 개화기소설사의 지형도와 『홍랑전』의 위상, 결론을 겸하여 
5. 결론 

참고문헌 





조선후기 한문소설에 나타난 통속화의 한 경향 연구

  

조선후기 한문소설사의 전개와 통속적 지향

서론 

조선후기 한문소설에 대한 연구는 주로 상층의 사대부 지식인들에 의해 19세기에 집중적으로 창작된 19세기 장편한문소설 작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편향된 연구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한문소설 작품들의 존재를 논외로 함으로써 조선후기 한문소설사의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본고는 기존의 조선후기 한문소설 연구사에서 국문영웅소설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폄하되어 온 『김전전(金銓傳)』, 『운향전(蕓香傳)』, 『봉래신설(蓬萊新說)』을 대상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본고는 이러한 작품들이 19세기 상층의 사대부 식자층에 의해서 한문소설 작품들이 활발하게 창작되었던 동일한 시기에 한문소설사의 한켠에서 창작되고 향유될 수 있었던 문학적 실상 그 자체에 주목한다. 곧, 독자 대중을 위해서는 국문소설이 상업적으로 유통되고, 상층의 독자를 위해서는 장편한문소설이 창작되었던 시기에 한문소설의 형태 안에서 국문영웅소설의 내용과 구조를 구현하는 한문소설 작품들이 창작되었다면 그 역사적 의미는 과연 무엇이며 조선후기 한문소설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조선후기 한문소설사의 전개와 통속화의 문제

조선후기 소설사에서 이른바 통속서(通俗性)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국문소설의 독자층이 궁중 및 일부 사대부가의 여성들로부터 여항과 서민층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양적인 팽창을 보인 시기이다. 동시에 18세기 중엽을 전후한 세책점의 성행과 18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한 방각본의 상업적 출판을 배경으로 소설의 상품화가 급격히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작품들은 완성도가 떨어지게 되고 선행 작품들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의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상업화된 방각본 국문소설들이 내용이나 구성상 통속성을 띨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방각본 소설의 독자층인 서민들이 전통적으로 소설을 향유해왔던 방식에 기인한다. 문자해독이 불가능했던 서민들은 강독사들의 낭독을 통해서 작품을 향유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대상 작품들의 형식과 내용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렇게 낭독되던 작품들은 주로 즉흥적으로 흥미나 감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단편의 형태를 띠게 되었고 그러한 방식으로 유형화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방각본은 출판의 영리를 목적도 있지만 전통적인 서민층의 소설 향유방식에 부응하여 동일한 유형의 단편들을 양산해 내거나 원래 장편이었던 소설들을 흥미로운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하는 방식으로 축약본을 생산해 내게 되었다. 이러한 소설의 상업화, 대중화 경향 속에서 그 중심에 있었던 영웅소설 계통의 국문소설이 통속화의 경향을 나타내게 된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영웅소설의 통속성 문제는 주로 영웅의 일생 또는 영웅의 일대기라고 하는 공식화된 유형구조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영웅소설의 구조는 형식면에서 단순화되고 규격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유형성이 바로 대중적 인기의 요인이 된다.


가정소설은 해당 유형의 후대적 변모과정에서도 통속화가 이루어졌다. 가정소설은 주로 처첩 사이의 갈등과 계모와 전처자식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당시 소설의 주된 독자층이었던 부녀자들의 현실적인 관심사와 맞아 떨어지면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정소설은 17세기 후반에 처음 출현하였으며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는데, 문벌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적 소지를 단속하고 규범적 의식에 입각하여 다루었던 초기 가정소설의 문제의식이 흐려지면서 18세기 이후의 가정소설은 통속화 경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통속적 가정소설들은 우선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멜로드라마적 성격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통속적 가정소설은 선악의 대조를 극대화시키거나 독자들의 동정심과 증오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무절제한 감정의 노출이 이루어지게 된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통속적 가정소설들은 가정소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처첩갈등이나 계모-전처자식 간의 갈등에 군담이나 애정담을 합성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독자들은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종류의 사건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통속적 한문소설은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통속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비록 그 내용과 구조에 있어서 통속화의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통속소설처럼 직업적 작가에 의해서 창작되거나 독자 대중에게 향유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통속적 한문소설은 통속소설 가운데서도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 대상으로 하고 있는 통속적 한문소설은 한문 소양을 갖춘 식자층 가운데서도 한문소설의 형태 속에서 국문영웅소설의 통속적인 내용과 구조를 구현하고자 한 일부의 작가들에 의해서 창작된 작품이라 정의할 수 있다.


조선후기 한문소설의 통속적 실험, 그 전개 양상

『김전전』은 그동안 학계에서 단편적인 해설 수준의 언급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깊이 있게 검토된 적이 없는 작품으로 국립도서관에 유일본으로 남아 있다. 단권 60면, 매면 10형, 각행 21~22자 내외로 되어 있다. 1797년 12월에 응천에 사는 어떤 사람에 의해 필사된 작품이다. 이 시기를 고려하면 『김전전』에는 정유재란에 대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주인공 김전이 과거에 급제하고 나자 부친 김할이 김전을 불러보는 자리에서 저는 어려서 부모를 정유년 난리 중에 잃고라는 김전의 말과 정유년의 난리 중에 나 역시 아들을 잃었는데라는 김할의 말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을 서사단락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대명 희화 연간 절강부에 사는 김할은 대대로 명문의 자손으로 벼슬이 이부상서에 있다.

2. 평소 김할을 시기하던 최자성이 김할을 무고하자 관직을 삭탈당하고 낙향하다.

3. 김할이 40이 되도록 자식이 없다가 보경사 화주승에게 시주하고 화주승의 상좌를 점지 받아 이름을 전(銓)이라 하다.

4. 남만의 침입에 천자가 김할을 부르고, 곽씨가 피란하던 중 도적들이 김전의 귀상을 알아보고 데려가다.

5. 김전이 전승상 위지열의 구함을 받아 양육되고 그의 딸 형옥과 혼인하다.

6. 승상이 죽으매 계모 설씨의 구박이 심하자 김전이 집을 떠나다.

7. 김전이 반하수 가에서 어부들에게 잡힌 거구(巨龜)를 보고 불쌍히 여겨 오십 냥을 주고 사서 강물에 놓아주다.

8. 김전이 유리걸식하다가 한 강변에 이르러 건너지 못하고 있으니 전날의 거북이 와서 구해주다.

9. 김전이 한 절에서 유숙하고 우연히 김할의 친구 허욱의 집에 이르러 머물게 되면서 학업에 힘쓰다.

10. 나라에서 태평과를 실시하니 김전이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를 제수 받고 김할과 상봉하다

11. 김전이 금의환향하여 위승상의 묘에 제사지내고 모친, 형옥과 상봉하다.

12. 김할 부부가 나이 95세이 이르러 한 날에 죽고 김전도 3자를 낳고 나이 97세에 이르러 죽다.


『김전전』의 주인공 김전은 명문가의 만득자(晩得子)로 태어난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게 되는데, 부친은 남만의 난을 평정하러 떠남으로써 헤어지고 모친과는 도적의 난을 피난하다가 김전이 도적에게 끌려감으로써 헤어지게 된다. 이에 김전은 의탁할 곳이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나 김전은 곧 구출자를 만나 의탁하고, 과거에 급제하는 동시에 부친과 만나게 됨으로써 헤어졌던 부모와 상봉하게 된다.


이처럼 『김전전』은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인 김전의 영웅일대기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영웅일대기를 온전하게 구현하고 있지는 않다. 고귀한 혈통-비정상적 출생-탁월한 능력-기아와 죽음-죽음에서의 극복-자라서의 위기-투쟁에서의 승리의 7개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웅일대기의 구조에서 볼 때, 『김전전』에는 후반부의 외적의 침입과 같은 자라서의 위기 단락이 없고 투쟁에서의 승리는 과거급제로 인한 고귀한 지위 획득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① 고귀한 혈통 - 이부상서 김할의 아들

② 비정상적 출생 - 만득의 독자

③ 탁월한 능력 - 서역 천축국 보셩사 화주승의 상좌

④ 기아와 죽음 - 고아

⑤ 죽음에서의 극복 - 위승상의 구출

⑥ 자라서의 위기 - 없음

⑦ 투쟁에서의 승리 - 한림학사 제수

 

따라서 『김전전』은 영웅일대기 구조를 수용하고 있지만 군담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은 곧 주인공의 영웅성 약화를 의미한다. 보통 영웅소설에서 주인공의 행적은 입신출세하여 몰락한 가문을 구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김전전』의 김전은 단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부모와 만나는 것으로 그의 일대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에 출정하여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가문의 실세를 회복하는 다른 영웅소설의 주인공에 비해서 영웅성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


때문에 작품이 수용하고 있는 영웅일대기 구조는 미완으로 끝나고 있으며, 작품은 영웅소설의 일반이 보여주는 실세회복 의지를 구현하지 못하고 단지 잃었던 부모 찾기로만 마무리되는 것이다.


조선후기 통속적, 한문소설의 서사적 특성

조선후기에 오면 한 작품의 인기를 업고 그 작품의 각 인물들을 독립된 주인공으로 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독립시키는 창작방식이 유행하게 된다. 이러한 창작방식에 의해서 독립된 작품으로 성립된 작품을 파생작이라 하는데, 파생작의 창작은 일찍부터 장편가문소설의 창작에서 이루어져 왔다. 최근에 장편소설에 관한 연구에서 연작과 구분하여 파생작을 따로 정의하는 논의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장편가문소설에서 파생작은 전체 이야기 구조나 주제에 일치를 보이지 않고 부분적인 삽화나 인물, 사건을 제재로 취해서 이야기를 확장시켜 새로운 독립작품을 형성한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장편가문소설에서 파생작 창작의 의미는 본전(本傳)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가문에서 개인으로 관심이 옮겨져 있다는 데 있다. 17세기에 창작된 작품으로 알려진 『소현성록』은 『한씨삼대록』, 『옥환빙』, 『설씨이대록』, 『영이록』 등 이례적으로 많은 파생작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모두 본전에서는 그 역할이 미미했거나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들이 다른 가문에 시집가서 겪는 수난과 갈등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이들 『소현성록』 파생작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한 여성독자들의 욕구가 확산되면서 본전의 전체 흐름과는 무관하게 독자의 흥미나 통속적 관심에 따라 부분적인 이야기를 확대해서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숙향전』의 주인공 숙향의 아버지 김전을 독립시켜서 국문영웅소설과 같은 작품으로 만들어낸 『김전전』 역시 이러한 전작의 인물이나 삽화를 끌어와서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어낸 파생작에 속한다. 그런데 『숙향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애정소설로서 주로 18세기의 소작으로 연구되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김전전』과 『숙향전』의 파생작 관계가 인정된다면 18세기 말에 필사된 이본인 유일본 『김전전』의 존재는 『숙향전』 창작 시기의 하한선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 두 작품의 상관성을 논할 수 있는 근거는 이 두 작품에 모두 김전이라는 동일한 이름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과 두 작품 모두 방구보은(放龜報恩) 모티프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를 중심으로 두 작품의 파생작 관계를 살펴보고, 전작(前作)의 파생작으로서의 작품 창작이 통속적 한문소설에서 가지는 의미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숙향전』에서 김전은 숙향의 아버지로 송나라 남양 땅의 선비로 되어 있다. 그런데 김전은 젊은 시절에 친구를 전송하러 반하수가에 이르렀다가 어부들에게 잡힌 거북을 구해줌으로써 은혜를 베풀게 된다. 이후에 김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자 전날의 거북의 구함을 받고 목숨 수(壽) 자와 복 복(福) 자가 새겨진 구슬을 받게 된다.


그런데 『숙향전』에서 김전이 거북에게 은혜를 베풀고 보은(報恩)을 받는 것은 김전 일대(一代)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숙향의 문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가난하여 혼인을 하지 못하고 있던 김전은 거북에게서 받는 구슬을 폐백으로 하여 장씨와 혼인을 이루게 되고 이로 인해 숙향이 태어난다. 그리고 숙향은 이 구슬을 계기로 남편인 이선과 결연하게 되고 헤어진 부모와 만날 때에도 바로 이 구슬이 신물이 된다.


한편 『김전전』의 주인공 김전은 당나라 절강부 이부상서 김할의 아들로 되어 있다. 비록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김전전』에는 반하수가에서 거북을 구해주고 다시 구함을 받는다는 식의 『숙향전』과 똑같은 모티프가 구성에 동일하게 들어 있다.


먼저 김전은 설씨의 박대를 받다가 형옥과 헤어져서 위승상의 집을 나선다. 변수강(汴水江) 가에 이르러 김전은 한 마리의 거구(巨龜)가 어부들의 그물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불쌍히 여겨 형옥이 마련해준 오십 냥 은자를 모두 써서 거북을 놓아준다. 거북을 사서 놓아주고 난 후, 김전은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민가에서 밥을 빌어먹고 들판의 초막에서 몸을 의지하는 신세가 된다. 변수강을 떠난 지 여러 달 만에 한 계곡에 이른 김전은 갑자기 불어난 물길 속에서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 전날의 거구가 나타나서 김전을 태우고 무사히 계곡을 건너게 해준 후에 갈 곳을 몰라 하는 김전에게 갈 길까지 제시해준다.


이 장면 이후로 김전은 부친 김할의 옛 친구인 허욱을 만나서 과거를 볼 때까지 그 집에서 몸을 의탁하기 때문에, 김전이 겪어야 할 고난은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러한 방구보은 모티프는 『김전전』의 영웅일대기 구조상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는 『김전전』의 서사전개에 있어서 이 모티프가 생략되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김전전』의 방구보은 모티프가 작품 내에서 강한 결속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숙향전』과의 파생작 관계를 입증한다. 작품의 서사구조상 필수적이지 않은 모티프가 삽입되어 있는 것은 모티프 그 자체가 주는 흥미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본전과의 관계에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김전전』은 『숙향전』에서 주인공 숙향의 아버지를 독립시켜서 국문영웅소설의 구조에 따라 하나의 작품으로 창작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파생작이 아니라 연작(連作)으로서의 성격도 함께 가진다. 그런데 가문소설에서 연작은 보통 자손들의 이야기를 원작에 이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한 것인데, 『김전전』은 오히려 원작에 나타난 주인공의 앞세대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숙향전』의 한 인물을 독립시켜서 영웅소설의 구조를 지닌 『김전전』을 창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숙향전』에서 김전은 주인공 숙향의 아버지로서 비중이 없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혼인하여 숙향을 낳기까지의 과정은 상당한 소설적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일단 김전은 가난한 선비로 혼사에 쓸 폐백을 마련할 만한 돈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한 김전이 미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거북을 구해주었다가 그 보답으로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되고, 그때 거북으로부터 얻은 구슬로 혼인까지 이루게 되는 과정은 우연한 선행으로 인한 보답과 소원성취라는 흥미진진한 소설적 재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숙향전』의 독자이자 『김전전』의 작가는 이러한 김전의 굴곡 있는 인생의 행로에 흥미를 느끼고 그를 독립된 주인공으로 하나의 작품을 창작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속적 한문소설의 소설사적 의의

본고에서 다룬 통속적 한문소설은 한문을 문자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작가층이 한문을 아는 식자층에 제한된다. 이러한 면모는 작품에 삽입되어 있는 다양한 한문학 양식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전전』에는 사(詞) 5편, 한시(漢詩) 7수, 서간문(書簡文) 1편, 제문(祭文) 2편, 유서(遺書) 2편, 시부(詩賦) 1편으로 총 1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작품에 삽입되어 있는 다양한 한문학 양식들은 통속적 한문소설 작가층이 자신들이 익숙한 전통적인 한문학 장르들을 작품 속에 나열하며 즐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일단 작품 내에 삽입된 한문학 양식, 특히 한시는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보다 절실하게 전달하거나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관습적인 기능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한문학의 양식들을 나열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한문 소양을 과시하는 동시에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시 창작 자체를 즐기고 있는 양상까지도 보여준다.


특히 작중인물들이 서로 재회한 자리에서 서로 돌아가면서 시를 지으며 즐기는 것을 한 장면으로 구성하는 부분에서 이러한 점들이 두드러진다. 『김전전』에서는 이러한 작품이 약 3페이지에 걸쳐 확대되고 있는데, 주인공 김전이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부친을 만나고 아울러 이별했던 모친 형옥과 재회하는 기쁨을 서로 돌아가며 시를 짓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장면은 『김전전』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통속적 한문소설은 국문영웅소설의 영웅일대기와 그에 따른 세부 내용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 지식인 작가층의 새로운 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속적 한문소설에는 당대 지식인 작가층의 전형적인 보수성과 함께 국문영웅소설 내용의 수용에 따른 하층 또는 중인층 의식과의 동질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전전』에서는 김전을 데려다가 택서하려는 자신의 뜻을 반대하는 설씨에게 위승상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본래 씨가 따로 없다는 논리로써 이를 물리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혼사가 자기 가문의 세력 유지나 확보를 위한 수단이 되었던 당대의 신분관념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에서 길거리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한 주인공을 사위로 맞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전전』에서 위승상이 설씨의 반대를 물리치기 위해 왕후장상이 본래 씨가 따로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지인지감으로 신분에 관계없이 뛰어난 인물을 사위로 발탁하는, 다분히 설화적인 함의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혼사를 정할 때 신분계급을 따지지 않겠다는 논리를 넘어서 작자가 양반층의 보편적인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를 가지는 동시에 하층이나 중인층의 의식과도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전전』은 국문영웅소설의 영웅 일대기를 수용하고 동시에 그 작품세계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국문영웅소설 향유층의 의식세계에 견인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국문영웅소설 향유층의 의식세계가 한문 교양을 가진 지식인 작가층의 의식세계와 함께 작품 내에서 공존함으로서 통속적 한문소설 작가층의 이중적인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 

본고는 기존 연구에서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혹은 국문영웅소설과 내용상 유사하다는 이유로 무시되어 왔던 한문소설작품들을 분석함으로써 조선후기라는 소설사의 한 단계에서 존재하였던 한문소설의 또 다른 흐름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본고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한문소설이 단선적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다양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에 국문소설의 흥미소를 상층의 계층의식에 맞게 수용함으로써 고급 독서물로 창작되었던 장편한문소설과는 다른 층위에서 국문영웅소설의 구조와 작품세계를 한문소설로 구현해낸 통속적인 한문소설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통속적 한문소설 작품들은 의식면에서도 한문 소양을 가진 전형적인 지식인의 보수적인 계급의식과 보다 하층의 의식세계가 공존하는 이중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는 국문영웅소설과 유사성을 보이는 작품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본 연구는 다양한 통속적 한문소설 작품들을 발굴하여 논의를 확충할 때, 비로소 보다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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