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최병건
ǻ
푸른숲
   
13000
2011�� 05��



■ 책 소개
마음, 스스로 읽을 수 없는지도!

서점에 가면 심리학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오늘날 마음과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에 대한 수많은 책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의식과 무의식이뒤엉킨 복잡하고 오묘한 마음의 작동 원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감기를 앓다 낫듯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 이유다.게다가 마음이란 것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기에 각자의 마음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또한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동시대,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 나아가 세상과의 갈등이 시작되며 마음의 병이싹트게 된다. 게다가 마음의 존재를 잊거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마음의 공작은 정교하고치밀하다. 웬만해서는 알아차릴 수 없기에 더욱 치명적이다. 저자는 이런 마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의 진짜 생김새를 알아보려는 태도가필요하다고 말하며, 마음을 바라볼 수 있도록 22가지 예시를 보여준다. 이 책은 더 이상 마음에 속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안내서이다.

서로의 마음은커녕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볼수 없는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영화 속 인물들을 스크린 밖으로 데려온다. 이 책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22가지 장면을통해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 마음이 속이는 방식, 마음이 속이는 이유를 경유해 궁극적으로는 ‘행복’ ‘나답다는 것’ ‘우리’라는 개념에 듬뿍뿌려진 기대와 신념의 정체를 살펴본다. 자신의 마음과 마주해 보기를 다시 한 번 일러주는 것이다. 

■ 저자 최병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정신과전문의가 된 후 L.A. Psycho-analytic Institute and Society(LAPSI, 현재 명칭은 New Center forPsycho- analysis)에서 정신분석 수련과정을 마쳤다. ‘일산병원’에서 잠시 근무하고 지금은 신경정신과 ‘공감’에서 진료하고 있다.대한분석치료학회와 미국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다.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분석 교육과 다른 분야와의 소통에도 관심이 많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정신분석 공부 카페 ‘공감’을 운영하고 있다. 
*cafe.daum.net/itsallmind&nbsp&
&nbsp&
■ 차례
1장 마음이 당신을휘두른다
Introduction : 마음에 대한 정신분석적 시각 
1. 당신 마음은 당신 게 아니다 - 무의식,10분 전 레너드의 음모
2. 자유? 당신에게 그런 것이 있을까? - 정신결정론, 당신이라면, 방아쇠를 안 당겼을까?
3. 지금 못놓는 건 평생 못 놓는다 - 정신결정론, 당신의 매일이 똑같은 이유
4. 당신의 미련은 당신의 결심보다 강하다 - 정신결정론, 이번에는진짜 사랑을

2장 당신이 사는 세상은현실이 아니다
Introduction : 방어와 정신적 현실
1. 마음이 당신을 속이는 법 - 방어, 그레이스가 죽을수 없었던 이유
2. 당신만의 세상 - 정신적 현실, 그 ‘부부’는 왜 그렇게 처절하게 싸웠을까?
3. 마음의 약속은 사채 빚보다지독하 - 정신적 현실, 린과 셀비의 막장 드라마

3장 세상에서 제일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Introduction :초자아
1. 세상에서 제일 냉혹한 당신의 천적 - 초자아, 호머의 규칙
2. 정의? 과연 그럴까? - 초자아, 트래비스의사명감

4장 타인은 없다, 대상만 있을뿐
Introduction : 환상 그리고 대상
1. 바랄 건 못 바라고, 못 바랄 건 바란다 - 환상과 대상, 윌헌팅이 사는 법
2. 당신 마음속의 무시무시한 세상 - 환상과 대상, 클라인의 공포, 에이리언
3. Nobody 또는 Anybody- 환상과 대상,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4. 사람은 사람에게 마음으로 남는다 - 환상과 대상, 복수가 정혜의 마음을 풀어줄수 있었을까?

5장 마음에도 유행이있다
Introduction : 우리의 모습, 편집성과 자기애
1. 적과의 동침 - 편집성, 보수 꼴통,잭
2. 만족은 없다, 숨이 붙어 있는 한 - 자기애, 배 터진 복어, 패트릭
3. 흔들리는 것의 아름다움 - 자기애, 레스터 번햄의특별한 밤 
4. Playing god - 자기애, 팀이 죽기로 한 이유

6장 이유가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다
Introduction : 행복의 조건,인간의 조건
1. 무슨 영화를 이 따위로 만드는 건가? - 행복의 조건, 라스 폰 트리에의 불편한 진실 
2. 배고파야 소크라테스?- 행복의 조건, 신애와 앨리의 신념
3. 질투는 너의 힘? - 불행, 조커가 빼앗고 싶은 것
4. ‘나’라는 환상을 버리 - 인간의조건, 쿠사나기 소령의 선택
5. ‘우리’도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 인간의 조건, 네빌이 마주한 인간의본질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마음이 당신을 휘두른다

지금 못 놓는 건 평생 못 놓는다 - 정신결정론, 당신의 매일이 똑같은 이유

적응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는 동화와 조정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동화는 이미 갖고 있는 도식에 근거해서 새로운 정보를 판단하는 방식이고, 조정은 기존의 도식을 벗어나는 정보를 수용해서 새로운 도식을 만드는 방식이다.


동화는 세상을 빨리, 효율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동화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도식을 이용해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과일과 채소라는 개념에 대한 도식이 생기고 나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사과, 배, 바나나, 딸기 등이 과일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한 명 한 명 외우지 않아도 존대해야 할 사람과 말을 놓아도 될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장례식장에 청바지를 입고 가지는 않는다.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신용카드가 사용되었다는 둥 헛소리를 하면 끊어버린다. 출근했는데 뭔가 살벌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게 상책이다. 어떤 상황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반면에 조정은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이다. 기존의 도식에 들어맞지 않는 정보를 접했을 때 우리는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 새로운 정보를 아울러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식을 만들어 낸다.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과일과 채소에 대한 도식은 수정된다. 나보다 어려도 직장 상사에게는 존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누군가 먼저 금발로 염색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따라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도식이 수정되는 예다. 물론 수정된 도식은 다시 동화에 이용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 그 모든 상황을 일일이 심사숙고할 수는 없다. 일상적인 일들은 빨리 처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늘 조정보다 동화를 먼저 택한다. 달리 표현하면, 웬만하면 주어진 상황을 동화로 처리한다. 그게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절대적으로 동화를 편애한다.


거기서 삶의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동화의 다른 이름은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동화 때문에 우리는 늘 섣불리 판단한다. 백인은 멋있고 흑인은 무지하고 아랍인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괴팍하고 O형은 단순하다고 판단한다. 남자는 다 그렇다고, 여자는 또 다 그렇다고 판단한다. 경상도 사람은 어떻고 전라도 사람은 어떻다고 판단한다. 어디서 누굴 만나든 우린 일단 판단한다. 각자의 조건반사대로. 뇌 속 신경회로의 연결 패턴에 따라, 그 결과, 마술이 일어난다. 매일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물론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주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우린 늘 매일 똑같은 현대인의 무미건조한 일상 같은 이야기를 구호처럼 외치며 살지 않는가? 이 영화 속처럼 똑같은 하루는 불가능하지만 다른 의미의 똑같은 하루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지겨운 것, 벗어나고 싶은 것. 입버릇처럼 우린 때려치우고 싶다, 떠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끝은 늘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돈이 얼마만 있으면, 딸린 식구만 없으면, 이것만 되면, 저것만 되면, 이것만 아니면……  지금과 다른 상황이 되면 마치 해탈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말 그런가? 천만에, 알면서. 지금 못 놓는 건 평생 못 놓는다. 


일상이 늘 똑같은 건 세상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솥뚜껑이야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자꾸 놀란다. 깜짝깜짝. 그러곤 투덜댄다. 이놈의 세상엔 왜 이렇게 솥뚜껑이 많으냐고, 오늘도 또 놀랐다고. 매일 자기가 시비를 걸면서 오늘도 또 싸가지 없는 놈을 만났다고 투덜댄다. 자극적인 사회면 기사를 탐독하면서 세상 무서워서 살겠냐고 투덜댄다. 조선일보를 보면서 빨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매일 클럽에 가면서 오늘 만난 애도 마찬가지라고, 왜 난 이런 애만 걸리냐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운이 없을 거라고 불평한다.


우리의 하루는 동화로 시작해서 동화로 끝난다. 고집스럽게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선입견은 편리할 뿐더러 내 문제는 돌아보지 않고 세상 탓만 하기에 그지없이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조정해야 할 때도 우리는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서 동화 쪽을 택한다. 각자의 선입견에 따라. 그렇게 우린 누구를 만나도 내 마음속 대상을 끄집어내고 또 그런 인간을 만났다며 억울해한다. 왜 내 인생에는 이런 인간들뿐이냐고 분개한다. 그렇게 우리의 매일은 똑같이 반복된다.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똑같은 일을 당하고 똑같은 기분이 되어 똑같이 투덜대고 똑같이 벼른다.


동화의 다른 이름은 반복이다. 그리고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정신결정론이다. 세상은 정확히 우리가 생겨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이다. 매일 똑같이. 내일도 모레도 똑같을 것이다. 당신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의 블랙홀>(1992)



마음에도 유행이 있다

흔들리는 것의 아름다움

길지 않은 내 삶이 어떻게 끝났는지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폭우가 퍼붓던 그 밤에 일어난 희한한 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밤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으며 총알이 내 머리를 꿰뚫기 직전 내 기분이 어땠는지 짐작이 가시는지?


남들처럼 나에게도 평범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남들처럼 나도 착하게 살라고 배웠고, 열심히 살라고 배웠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라고 배웠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배웠다.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누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그렇게 될 거라 다짐했고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남들처럼.


그로부터 30년, 삶은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한심한 루저, 아이에게는 징그러운 변태 아저씨, 직장에선 정리해고 대상, 그것이 마흔한 살의 내 모습이었다. 세상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 권위는 부정됐고, 내 남성성은 거세됐고, 내 존엄성은 짓밟혔다.


세상은 진지하고 성실한 자들의 것이 아니었다. 뺀질대는 자들, 가벼운 자들, 떠벌이는 자들, 나서는 자들, 완장 차기 좋아하는 자들, 몰려다니는 자들, 부추기는 자들, 편승하는 자들, 휘두르는 자들, 이간질하는 자들, 남의 돈으로 장난치는 자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자들, 세상은 그런 자들의 것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속았다는 걸.


분노했다. 나를 속인 세상에, 멍청한 내 자신에.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복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미 난 볼록한 배, 늘어진 피부의 중년이었다. 새로 꿈꾸기엔 이미 늦어버린 중년. 좌절감과 무력감이 몰려왔다. 내 젊은 날이 허망하게 지나가 버렸음이 억울했다. 나는 애도했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 내 삶에서 스러져버린 것들을.


그때, 운명처럼 그 아이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처럼 멍청하지 않은 아이들, 나처럼 순진하게 속지 않는 아이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 통렬하게 제멋대로인 아이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아이들.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젊은이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아이들.


파티 날 저녁, 리키는 내가 머릿속에서만 수백 번 그렸던 장면을 눈앞에서 보여줬다. 그 박력, 그 당당한 무례함. 그는 내게 문자 그대로의 영웅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일을 벌일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안젤라. 그녀는 내게 없는 모든 것이었다. 세상 어떤 남자라도 애걸복걸하게 할 섹시함,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당돌한 자신감, 세상의 비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발칙함. 그녀는 내게 잃어버린 젊음이고 누리지 못한 쾌락이자 가져본 적 없는 권력이었다. 그녀가 내 것이 되면, 내가 그녀에게 선택되면, 복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무시한 아내에게, 날 비웃은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빨간 장미 꽃잎은 침울한 흑백이었던 내 삶의 구원이었다.


그 아이들을 통해 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았다. 근육, 록, 대마초, 빨간색 파이어버드. 다시 내 안에서 욕망이 꿈틀댔다. 분노라는 감정에 마땅히 수반되어야 할 아드레날린의 기운이 비로소 느껴졌다. 그 힘으로 나는 일어났다. 나는 다짐했다.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 순진하게 살지 않겠다고. 이 개판인 세상을, 나도 너희들처럼 학대하고 유린해 주겠다고. 나는 복원되었다. 주눅 든 나를 벗어버리고, 참된 나를 찾았다. 그런 줄 알았다. 그 이상한 밤 전까지는.


어수룩하게도, 우리는 세상에 속았다. 속았다는 건 분하기도 하지만 창피한 일이었다.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무안해서 우리는 남에게 화살을 돌렸다. 병신같이 세상이 그런 거라는 걸 몰랐냐고 서로 비웃고 모욕했다. 멍청하게 속았다는 걸 들킬까 봐, 놀림감이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행여 얕보일까 봐, 센 척, 사나운 척, 포커 판의 블러핑 같은 허세를 부렸다. 잔뜩 겁먹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가면 뒤에 숨기고, 속지 않은 척,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척. 내가 되찾았다고 생각한 건 내가 아니었다. 또 다른 가면 하나를 주운 것뿐이었다. 잃어버린 건 애초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런 거였다. 알 수 없는 것, 흔들리는 것, 표류하는 것. 사람은 그런 존재였다. 무력하고 어리석은, 그래서 잘 속는 존재.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창피할 것도 없었다. 나 자신을 멍청하다, 한심하다 경멸할 이유도 없었다. 어쩌겠는가, 인간이 그런 거라면. 사는 게 그런 거라면.


사진 속 그때, 우린 행복했다. 내 아내와 내 딸을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나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캐롤린과 제인에게 내가 바라는 것이 있었던가? 내 사랑에 조건이 있었던가? 삶이 아프면, 사람이 야속하면 내팽개칠, 내 사랑은 그런 것이었던가? 지금 이런 내 모습을 그때의 내가 본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때의 순수했던 나를, 지켜주고 응원하지 못할망정, 지금의 내가 어찌…….


마음이 따뜻해지는 슬픔이 있다. 그때의 내 기분이 그랬다. 한바탕 주먹다짐 뒤에 마음이 열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밤이 지나면 새로운 아침을 맞을 것이었다. 그 아침에, 캐롤린과 제인에게 말할 것이었다. 사랑한다고.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삶이지만, 그래서 또 서로 증오하고 넌덜머리 내겠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랑한다고.


그때 피츠 대령의 총알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밤에 그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그러니 또 어쩌겠는가. 그렇게 내 삶은 끝을 맺었다. 조금은 우습게, 아이로니컬하게.


삶이란, 흠집 없는 실크 같은 것이 아니다. 찢어지면 꿰매고 구멍 나면 덧대는 누더기 같은 것이다. 합리적인 것도,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가혹하고 변덕스럽고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하지만 질서 속에만 아름다움이 있는 건 아니다. 깨끗해야만, 화려해야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혼란 속에도, 더러움 속에도, 초라함과 비참함 속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서든 존재한다. 추레한 우리 삶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메리칸 뷰티>(1999)



이유가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다

나라는 환상을 버리자

성형이 보편화되고 있다.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심지어는 안면 이식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누구든 옷 갈아입듯 얼굴을 갈아치울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볼까? 목소리? 글쎄. 목소리 또한 성형이 가능하다. 이러다간 만나면 반갑다고 지문 감식부터?


겉모습으로 사람을 식별할 수 없게 되어가는 현실에 사람들은 잘 적응해가는 듯하다. 얼마간 보이지 않던 연예인이 딴 사람이 되어 나타나도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습의 변화에 점점 관대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진취적이 된 걸까? 천만에. 그냥 언제부턴가 섹시하다는 말이 찬사가 된 것처럼 스르륵, 성형도 용납할 수 있는 게 되어버린 것뿐이다. 대중의 심리란 그런 것이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묻어가는 것.


사람들이 모든 변화에 관대한 것은 아니다. 겉모습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과는 달리, 마음의 문제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히 매우 완고하다. 그 완고함은 정신과 약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약을 처방할 때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의존성에 관한 것인데, 널리 퍼진 의견과는 달리 정신과 약이 의존성을 야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항불안제의 경우에도 실제 의존성이 생길 확률은 미미한 수준이다. 뇌에 대한 효과가 항불안제와 매우 비슷한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아마 수백 배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술에는 관대하고 약에는 인색하다. 알코올 의존이 명백한 사람들마저 술은 자신의 의지로 마시는 것이라 괜찮고 약은 의존하는 거라 나쁘단다.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심지어는 약을 복용해서 불안이나 우울함이 나아지는 것조차 치료가 아니라 의존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아지는 건 진짜 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을 끊으면 더 나빠질 거라 생각한다. 몸에 쓰는 약은 평생 먹어도 의존이 아니지만 마음에 쓰는 약은 잠깐만 써도 의존이라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정신분석에 대한 생각에도 나타난다. 분석 과정에서 치료자의 관점 또는 정신분석 자체의 관점에 영향을 받아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마치 세뇌를 당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에 관한 이런 상반된 태도는 몸은 변해도 되지만 마음은 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나를 규정하는 뭔가가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나라 불러보자. 나를 나이게 하는 나. 이를테면 나의 본질을 규정하는 나. 그러므로 변해서는 안 되는, 그런 나. 그런 게 있을까? 우리 마음에? 아니, 어디에라도?


고스트? 마음?

그런 건 없다고 <공각기동대>(1995)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말한다. 미련 없이 나를 버리고, 그녀는 네트워크 속 일개 프로그램에 불과한 인형사와의 결합을 택한다. 결합 후에는 쿠사나기도 인형사도 남지 않는다. 네트워크 속에 새롭게 태어난 이름 없는 자의식이 있을 뿐이다. 그녀가 택한 것은 쿠사나기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소멸이었다. 이 선택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녀를 이해하려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이 영화의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끔찍하게 발전한 2029년. 사람들은 공장에서 제작된 의체로 원래의 몸을 교체한다. 적게는 일부분, 많게는 몸 전부를. 뇌도 예외는 아니다. 전두엽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컴퓨터로 교체된 인간의 뇌는 컴퓨터의 기능을 흡수한다. 다른 수단 없이도 원격 소통이 가능하고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해서 막대한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검색하고 학습할 수도 있다. 뇌와 컴퓨터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것을 <공각기동대>에서는 고스트라 부른다. 그렇다면 고스트는 마음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마음을 가진 인간이 컴퓨터의 기능을 흡수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마음을 가진 인간이 컴퓨터의 기능을 흡수한 것인가? 아니면 공장에서 생산된 로봇에 인간의 전두엽이 이식되어 마음 비슷한 것을 가진 로봇이 탄생한 것인가? 무엇이 마음이고 무엇이 아닌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과정으로서의 나

당연히 나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어떤 순간의 나에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이 반영된다. 뭔가 잘했을 땐 훌륭한 나, 못했을 땐 한심한 나, 위험할 땐 겁먹은 나, 감기에 걸리면 귀찮아하는 나가 출현한다.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을 경험해도 지금의 나가 남아 있을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수많은 나가 파괴되는 걸 우리는 목격한다.


나는 매 순간 달라지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매 순간 달라지는 과정이다. 우리 마음은 순간, 순간 몸으로 느끼는 것과 시공간의 개념을 포함하는 환경으로부터의 무수한 정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느낌 등을 모두 포함하는 나를 구성해낸다.


마음을 갖게 된 이상 인간은 나 없이 살 수 없다. 나 없이 느낄 수 없고 판단할 수 없고 행동할 수 없다. 또한 마음을 갖게 된 이상 어느 정도의 일관된 나가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의 우리는 그 나를 당연한 것, 변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늘 같은 것이 아니다. 계속 변하는 것이다.


변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라는 게 그런 거라면, 소멸한 나 같은 건 없다고 쿠사나기는 생각했다. 인형사와의 합체를 결정한 것은, 그러므로 쿠사나기에게는 나의 소멸이 아니라 확장이었다. 그녀가 택한 것은 나의 대규모 업그레이드였다. <공각기동대>의 관점은 다른 SF영화들보다 더욱 급진적이다.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하면서 이 영화는 묻는다. 쓰레기차 운전사처럼 해킹당할 것인가. 쿠사나기처럼 능동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우리의 세상도 <공각기동대>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같은 물리적 플러그인이 없을 뿐, 우리 뇌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고 해킹은 이미 진행 중이다. 세상에는 세상을 보는 시각만 있을 뿐, 진실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남의 시각, 남의 논리에 의해 해킹되고 있다. 식탁 위의 조간신문이, 9시 뉴스가, 드라마 시리즈가,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정치인들이, 경제 전문가들이 우리 뇌를 해킹한다.


사람들은 정신과 약에 마음을 조종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한편으로는 늘 제 마음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한다. 알코올은 말할 것도 없고 니코틴과 카페인 등 뇌에 작용하는 여러 물질을 탐닉한다. 엔도르핀 분비의 짜릿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도박을 하고 명품 가방을 산다. 게임과 인터넷에 빠져든다. 답답하면 점을 보고 자기 암시에 빠져든다. 삶의 돌파구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술은 괜찮고 약은 안 되고, 점은 괜찮고 정신분석은 위험한가?


모든 학습 또한 인위적 노력이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우리 마음은 바뀌어간다. 당연히 나도 변해간다. 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을 보는 특별한 관점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달라진다. 그건 괜찮은가? 공부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건 훌륭하고 정신분석으로 달라지는 건 큰일 날 일인가?


내가 판단하고 선택해서 주체적으로 나를 만들어간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변화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런 자신감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나가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나다. 변하지 않는 나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나는 경직되어 있으면서도 허약한 나일 뿐이다.


어차피 변해가는 것, 어차피 내가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 나라면 두려움을 떨치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어떨까?

- <공각기동대>(1995)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원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원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