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명연설 21

21 Speeches That Shaped Our World

   
크리스 애보트(역자: 홍희연)
ǻ
에이지21
   
19800
2011�� 02��



■ 책 소개
이 책은 연설문에 관한이야기인 동시에 연설문을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 상황, 연설문 탄생에 영향을 미친 사상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이야기이다. 선별된 21개의 연설문들은 우리가 오늘날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역사적 순간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이 책은‘모든 인류는 하나입니다’, ‘평화는 수단이자 목표’라는 믿음과 이와 정반대인 ‘내 편이 아닌 사람은 모두 나의 적’, ‘힘이 바로 정의’라는입장을 대조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소개된 연설문들은 전반적 서술 구조에 따라 시대순이 아니라 주제별로정리되었다.

■ 저자 크리스애보트
국제 안보와 국제 정세 전문가로, 현재 브래드퍼드 대학 내 평화연구소 명예 연구원이자 옥스퍼드 리서치 그룹에서 지속가능한 안보 분야의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다. 옥스퍼드 리서치 그룹은 유럽 내 국제 안보 관련 싱크탱크 가운데 선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저자는 이 그룹의 부소장을 역임했다. 

■역자 홍희연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동시통역 및 번역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들어가며- 세상을 바꾸는 힘
단지 말뿐 - 데발 패트릭 

제1부 모든 인류는 하나입니다 
자유냐 죽음이냐 - 에멀린 팽크허스트
나에게는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피의 강물 - 애녹 파웰
두 번째 기회 - 나폴레옹 비즐리
도둑맞은 세대에 대한 사과 - 케빈 러드

제2부 내 편이 아닌 사람은 모두 나의적이오 
분열된 세계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역사의 잿더미 - 로널드 레이건 
테러와의 전쟁 - 조지부시&nbsp& 
당신들의 안전은 바로 당신들 손에 달려 있다 - 오사마 빈 라덴&nbsp& 
기후 보안에 관한 논거 - 마거릿 베켓

제3부 힘은 곧 정의이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워야만 합니다 - 윈스턴 처칠&nbsp& 
이 어둡고 비통한 순간 - 살바도르 아옌데&nbsp&
포클랜드의 교훈 - 마거릿 대처 
국제 공동체 독트린 - 토니 블레어&nbsp& 
카인의 표지 - 팀 콜린스

제4부 평화를 위한 시도
분노로 인해 불의를 저지르면 안 됩니다 - 모한다스 간디 
군산복합체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무거운 가슴을안고 - 로빈 쿡 
제 아들 안토니입니다 - 마리 파타이 윌리엄스 
새로운 시작 - 버락 오바마 
나오며 - 미래를 찾아서




세상을 뒤흔든 명연설 21


모든 인류는 하나입니다

두 번째 기회 - 나폴레옹 비즐리

국제 사면 위원회에 따르면 아직도 약 60여 개국에서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까지도 국제법에 반하여 범행 당시 미성년자에게도 사형을 집행하는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였다.


2002년 5월 텍사스 주에서 사형이 집행된 나폴레옹 비즐리는 이들 중 하나였다. 비즐리는 범죄를 저지를 당시 17세였기 때문에 그의 사형선고는 국제적으로 높은 관심을 끌었고 각지에서 많은 유명인들이 그를 사면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1994년 4월 19일 비즐리는 차량 절도 중 45구경 권총으로 63세의 존 러티그의 머리에 총알 두 발을 발사해 그를 살해하고 존 러티그의 부인인 바비 러티그를 살해하려고 시도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백인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은 공범이었던 세드릭 콜만과 도날드 콜만(각각 종신형을 선고받았다)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증언만을 바탕으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존 러티그의 아들이 영향력 있는 연방 항소 법원 판사여서 혹은 흑인 범죄자가 백인 희생자를 죽인 사건이어서 사형을 구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검찰은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분야는 사법제도일 것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구조적 인종분리주의로 인해 감옥의 흑인 수감자의 비율은 인구 비례보다 월등히 높으며 사형이 선고된 흑인수감자의 비율은 특히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비록 비즐리가 한 가족으로부터 아버지와 남편을 앗아간 끔직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시인했지만 당시 비즐리가 사형을 선고받자 종신형이 더 적절한 징벌인 상황에서 재판 절차상의 공정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우려가 높았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비즐리는 사형수 감방에서 8년을 보냈으며 그동안 수없이 사형 선고에 대한 항소를 제기했고 마지막 순간 여러 차례 형 집행이 유예되기도 했다. 사형 집행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비즐리의 최후 진술은 그의 사형이 집행된 후 서면 진술의 형태로 공개되었다. 그의 마지막 진술은 1~2명의 증인 앞에서 이루어졌지만 너무나도 연설문처럼 읽혀 이 책에 포함시켜도 적절하다고 판단되었다.


어린 비즐리에게는 양면성이 있었다. 그는 애정이 넘치는 가정에서 태어나 지역 사회에서 사랑받는 학생이었고, 재능 있는 운동 선수였으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대표였다. 그는 마약 판매에 가담했던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전과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차량을 훔치는 과정에서 차의 소유주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한 모순들은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나폴레옹 비즐리의 이중 인생이라는 희곡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과연 무엇이 그를 살인으로 몰고 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인종과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탐색했다.


비즐리가 저지른 범죄와 국가가 사형이라는 이름 아래 집행시킨 그의 죽음은 모두 보편적인 인류애를 거스르고 있다. 징벌을 갈망하는 원시적 욕망에 몸을 내맡김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치유의 가능성과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런 치유의 과정이야말로 단순한 복수보다 희생자와 그 가족, 사회에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비즐리가 지적한 대로 오늘 밤 승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승승장구하며 오늘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그가 17살의 어린 나이에 저지른 범죄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사형시켜버렸다. 사형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형 제도가 징벌적 효과뿐 아니라 범죄 억지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형 제도는 복수를 유일한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가 단죄하고자 하는 폭력을 영구화시킬 뿐이다. 사형 제도는 정의와 갱생을 실현하지 못한다. 더 많은 희생자를 양산할 뿐이다.


2002년 5월 28일 미국 텍사스 주 헌츠빌 주립 형무소

제가 저지른 범죄는 끔찍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더 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는 물리적 속박에 저항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리 지르지도 않을 것이며 욕설을 내뱉지도 않을 것이고 공갈 협박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벌어질 일에 대해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애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주십시오. 저는 정의로움과 올바름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할 제도가 나 같은 사람과 똑같이 수치스런 실수를 하는 모습에 애통해할 뿐 아니라 실망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오늘 이 살인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처분하려 한다면 저는 큰 소리로 안 됩니다를 외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제가 받지 못하는 그 선물을 그들에게 줄 것입니다. 그들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있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오게 돼서 유감입니다. 존 러티그의 죽음에 대해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안의 그 무언가가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원인이었다는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정의의 여신의 눈에는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없음을 세상에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경우에 따라서 살인도 괜찮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이 갈등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내 편도 네 편도 없습니다. 오늘의 형 집행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숨을 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양쪽 모두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양쪽 모두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현재의 갈등은 이러한 상반된 이상과 믿음 사이의 충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희생자라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걸까요?


저는 이렇게 다른 이상들 사이에 평화로운 화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가슴속 깊이 믿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화해가 앞으로 저 같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이라면, 저를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형수 감방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감정에 호도되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지만 아직 저처럼 치유가 되지 않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바로잡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릅니다. 이들이 그 방법을 찾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승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승승장구하며 오늘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힘은 곧 정의이다

카인의 표지 - 팀 콜린스

2003년 3월 19일, 사담 후세인 실각을 목적으로 하는 연합군의 일부로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진격하기 하루 전날, 팀 콜린스 중령이 로열 아이리시 연대 소속 제1대대 장병들에게 했던 연설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콜린스의 연설은 위엄 있고 사려 깊었으며 이라크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내비치는 동시에 장병들에게 그들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엄격하게 지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전쟁에는 회의적이지만, 영국의 동지들은 지지하고자 했던) 언론의 관심이 그의 군대 주위로 몰려들었고 영국이 미국의 애완견으로 전락해버렸다고 생각하는 영국 대중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장병들에게 이라크를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방시키기 위해 이라크에 가는 것이며 그들이 이라크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스의 연설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이라크와 이라크 사람들을 존중하라는 충고였다. 또한 그는 장병들에게 항복한 적군은 국제법상으로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라고 말했다.


콜린스는 1960년에 벨파스트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뒤 군대에 들어가 23년 동안 로열 시그널스와 로열 아이리시 레인저, SAS와 로열 아이리시 연대에 복무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돌아온 뒤, 콜린스는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2004년 4월 7일 이라크 침공에서의 공로로, 다시 말해 텔릭 작전에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OBE(역주: 영국 제국 기사단의 장교)를 수여받는다. 그는 그 상을 받던 날 군대를 떠났다. 그 이후 그는 군사 행정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비판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그는 2007년에 설립한 개인 군사 회사인 뉴센트리의 최고 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미 국방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록 2009년 4월에 이라크에서 영국의 전투 작전은 끝이 났고 이라크인들은 사담 후세인 때문에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은 현재 항상 내란이 일어날 위기에 있는 나라에서 일상적인 폭력과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있다.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은 궁핍 속에서 살고 있다. 식량 부족과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실업률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사회 기반 시설들이 붕괴된 탓으로 수도와 하수도와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고 의료 시설 또한 걱정할 만한 수준이다. 역사는 이라크가 콜린스와 다른 병사들이 그곳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좋아졌는지를 심판할 것이다.


2003년 3월 19일 쿠웨이트 블레어 마인 요새

우리는 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해방을 위해 이라크로 갑니다. 우리는 이라크에 영국 국기를 꽂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민족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이라크에 들어갑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땅 이라크에서는 이라크의 국기가 펄럭일 것입니다. 이라크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보여주십시오.


우리의 적도 지금 이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계속 싸우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을 것이고 살고 싶어 하는 적도 있을 것입니다. 이 둘을 반드시 구별하십시오. 지금 이곳에 살아 있는 여러분 중 누군가는 이라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라크로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일단 이라크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가서 적군의 세계를 흔들어놓으십시오. 그들이 계속 싸우기를 원한다면 무찌르십시오. 전투에서는 사나워야 하지만 승리한 후에는 너그러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라크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곳은 고대에 에덴동산이었던 땅이고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던 곳이고 아브라함이 태어났던 곳입니다. 이곳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라크인들보다 더 관대하고 더 친절하며 더 올바른 민족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기꺼이 친절을 베풀 것이고 여러분은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이라크 사람들을 그들의 나라에서 난민 취급하지 마십시오. 이라크의 아이들은 가여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분들이 이곳에 가져온 자유의 빛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사상자들이 발생한다면, 그들이 그날 이곳에서 죽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품위있게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하십시오. 그들을 정중하게 묻고 묘비를 세워 주십시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는 이 원정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은 침낭에 넣어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적을 복수의 여신처럼 맹렬히 공격해야 하고 적으로 하여금 우리가 가져올 파멸을 두려워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영혼을 판 각 지역의 사령관들은 그를 위해서 지옥의 불길을 피울 것입니다. 사담 후세인과 그의 군대는 이라크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의 대가로 파멸할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무렵, 그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자초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동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힘든 결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나는 다른 전쟁터에서 그럴 필요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형제를 죽인 카인의 표지가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항복한다면, 그들에게는 국제법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언젠가 집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주십시오. 만약 우리와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십시오. 만약 살상의 광기에 빠져 혹은 겁에 질려 적군과 이곳의 문화재를 파괴한다면, 여러분의 가족이 그런 행동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최상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세상의 배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행동은 역사에 그대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군복과 조국에 수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화학무기와 생물학적 무기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나는 이라크가 실제적으로 이러한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라크군의 지역 사령관이 이러한 무기들을 사용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역 사령관이 이미 이러한 무기들을 사용하기로 작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라크는 이러한 무기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 그것을 사용할 것이냐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첫 번째 충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라크는 이 전쟁에서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해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연합군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러한 무기들을 생산하는 시설이나 저장 창고를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는 1990년도 중반에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들을 포기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라크에 가서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 후, 모두 함께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북쪽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평화를 위한 시도

새로운 시작 - 버락 오바마

2009년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서구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관계는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중동은 식민주의, 냉전, 세계화, 테러와의 전쟁을 차례로 겪었고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은 서구가 그들에게 가하는 억압(그것이 상상의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에 맞서 싸우기 위해 모였고 지나친 서구의 영향에 반발했다. 선거 유세 기간 중 오바마는 조지 부시 때 악화일로를 걷던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대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취임 뒤 근래에 주요 이슬람 도시에서 이슬람 군중에게 연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오바마는 2009년 6월 4일 카이로 대학 대강당에서 연설하며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저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상호 이익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라운 연설이었다. 그리고 오바마 자체도 놀라운 인물이다. 2009년 1월 오바마는 거대한 풀뿌리 선거운동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미국 대중의 지지를 받고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오바마가 미국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최근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들의 정책뿐만 아니라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라는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바마는 1961년 8월 4일 하와이에서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4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살다 하와이로 돌아와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바마는 미국 내의 흑인과 백인을 이어주는 가교임은 물론, 이슬람과 서구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친가 쪽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의 계부는 이슬람교이고 그는 어린 시절에 몇 년 동안 이슬람 국가에서 살았다. 심지어 버락 후세인이라는 그의 이름 또한 이슬람 이름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카이로에서 행했던 그의 연설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바마의 카이로 연설이 이슬람 세계에서 얻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의 연설은 전 세계 이슬람 사회에서 환영받았다. 물론 그의 연설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미국의 실질적 정책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이 점은 오바마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연설에서 폭력적 극단주의, 핵무기, 종교의 자유, 민주주의, 여성 인권, 경제 개발과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했다.(이집트 카이로 연설에서 그가 민주주의, 여성 인권, 경제 개발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연설 중에서 많은 이슬람교도에게 가장 와 닿았던 핵심 부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범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분쟁 부분이었다.



오바마는 자신의 카이로 연설을 이러한 말로 끝맺는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힘이 있습니다. 단 그것은 과거에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이뤄낼 용기가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 유대교 경전인 토라,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인용하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은 평화속에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의 비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실현시키는 일은 이 땅 위에 사는 우리의 몫입니다"라고 말한다. 중동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오바마는 2009년 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 수상 위원회가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에 외교와 협동을 강화시키려는 오바마의 노력을 지지한 것이다. 노벨 위원회가 그에게 상을 수여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상호 협력을 위해 더욱 애써달라는 격려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명백하다.


2009년 6월 4일 이집트 기자 카이로 대학

저는 오늘 두 명문 교육기관의 초청을 받아 유구한 역사의 도시 카이로에 오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즈하르는 천 년 이상 이슬람 교육의 횃불을 밝혀왔으며 카이로 대학은 이집트 발전의 원천이 되어왔습니다. 두 대학은 함께 전통과 진보의 화합을 대변합니다. 여러분의 환대에 감사드리며 이집트 국민 여러분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여러분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선의와 미국 내 이슬람 공동체가 보내는 평화의 인사를 대신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뜻의 아랍어 인사이다.)


우리는 미국과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이 서로 대립하는 갈등의 시기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갈등은 최근의 정책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이 슬람과 서구는 서로 협력하고 공존했던 적도 있었지만, 분쟁과 종교 전쟁으로 갈등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이슬람 국가들의 권리와 기회를 부정하고 식민지화를 진행했던 서구의 식민주의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고, 냉전 기간 중에는 이슬람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진정한 열망이 무시되고 이슬람 국가들이 단지 냉전의 꼭두각시로만 취급되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반면 많은 이슬람교도들은 현대화와 세계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슬람 전통을 파괴하려는 서구의 적대감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폭력적인 원리주의자들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이러한 갈등을 이용해 이슬람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과격론자들은 9/11 테러처럼 민간인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했고 이 때문에 미국인들 중의 일부는 이슬람이 미국과 서구 세계에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인권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공포와 불신이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저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와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상호 이익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미국과 이슬람이 서로 배척하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미국과 이슬람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정의와 진보, 관용과 인류의 존엄이라는 원칙입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하룻밤 새에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연설로 오랜 불신이 해소될 리가 없으며, 제한된 연설 시간 내에 여기까지 이르게 된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신념은 제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만, 저의 아버지는 수세대에 걸쳐 이슬람을 믿고 있는 케냐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몇 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새벽 동틀 무렵과 해질 석양 무렵마다 울려 퍼지는 아잔(기도 소리)을 듣곤 했습니다. 젊은 시절 시카고에 살면서는 이슬람교도들이 어떻게 그들의 종교에서 존엄과 위안을 얻는지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문명이 이슬람교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해두었으면 합니다. 이슬람교는 미국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사람이 인종과 종교, 지위와 상관없이 평화와 안정 속에 살고 싶어 하며, 교육을 받고 일할 권리가 있으며 가정과 지역 사회, 신을 사랑한다는 신념을 나누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신념입니다. 이것은 바로 모든 인류의 희망입니다.


물론 우리가 공통적 인간성을 나누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첫 단계일 뿐입니다. 말만으로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필요는 앞으로 우리가 이러한 말들을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겨야만 채워줄 수 있습니다.


최근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한 나라의 금융 체계가 약해지면 다른 나라의 경제도 위험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 사람이 해로운 독감에 걸리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21세기에 이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우리가 다른 인간에 대해 갖는 책임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까지 인간의 역사는 대부분 국가와 부족들, 그리고 종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을 정복한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러한 과거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파괴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모든 나라는 상호 의존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나 민족을 다른 국가나 민족 위에 세우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사고 관습에 묶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서 앞에 놓인 문제들을 풀어야 합니다. 진보는 공유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째서 나라 사이에 이러한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무시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갈등을 똑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함께 직면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폭력적인 극단주의

첫째로, 우리는 함께 모든 형태의 폭력적인 극단주의와 맞서야 합니다. 저는 터키의 앙카라에서 미국은 이슬람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또 앞으로도 결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과는 계속 맞서 싸울 것입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무고한 남녀와 어린이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이러한 살상을 배척합니다. 대통령으로서 미국인을 보호하는 것은 저의 첫 번째 의무이기도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미국의 목표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슬람 세계와 미국은 서로 협조해야 합니다. 7년전 미국은 폭넓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추적해왔습니다. 미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계속 둘 생각이 없으며, 그곳에 군사기지를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가능한 많은 미국인들을 죽이겠다고 작정한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더 이상 없다는 확신이 선다면 우리는 기꺼이 한 사람의 군인도 남김없이 철수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입니다. 우리가 46개 나라들로 구성된 연합군과 함께 행동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국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이 극단주의자들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은 군사력만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문제들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파키스탄과 협력하여 향후 5년간 매년 15억 달러씩을 투자해 학교와 병원을 짓고, 길을 만들고, 창업을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난민들을 돕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할 작정입니다. 현재 우리는 28억불 이상을 아프가니스탄에 제공하여 그들의 경제 발전과 국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 제공을 돕고 있습니다.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미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전쟁은 미국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많은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저는 사담 후세인의 독재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라크 사람들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더 나아졌으리라고 믿지만, 이라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미국이 가능한 한 외교와 국제적 합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힘과 함께 우리의 지혜도 자라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지혜를 통해서 힘은 적게 사용할수록 더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오늘날 미국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이라크가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돕고, 이라크를 이라크 사람들 손에 넘겨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미국은 이라크에 군사기지를 두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영토나 자원에 대한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라크의 주권은 그들의 것입니다. 제가 다음 8월까지 전투 사단 철수를 명령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라크 정부와의 합의를 존중하여 우리는 7월까지 이라크의 도시들에서 전투부대를 철수할 것이며, 2012년까지는 모든 부대를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가 치안병력을 훈련하고 경제 발전을 이뤄낼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우리는 안전하고 통합된 이라크를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지원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절대로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을 용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결코 우리의 소중한 원칙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9/11은 미국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일로 인한 공포와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이상에 반하는 행동이 저질러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확고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 어떤 경우에도 고문을 사용할 수 없다고 금지했고 내년 초까지 관타나모 기지의 감옥을 철폐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주권과 법치를 존중하면서 자신을 지킬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극단주의자들에게 위협 받고 있는 이슬람 사회와 협력할 것입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사회에서 배척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 모두는 더욱 안전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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