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

   
토머스 조이너(역자: 지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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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북스
   
15000
2011�� 01��



■ 책 소개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자살에 대한 그릇된 행동을 억제하는 계기로 삼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는 이들이고뇌할 때 곁에서 어루만져 주고 함께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공화국’이라는불명예를 얻게 되면서, 자살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자살에 대한 대책이나 해답을 찾는다는 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 원인과 현상이 매우 복합적이고 다면적이어서 이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자살을 주로개인적인 취약성이나 정신건강 차원에서만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옳은 접근법인지, 아니면 개인을 넘어 사회병리적 현상 문제로 이해해야 하는지 그관점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자살을예방하는 첫단추가 바로 자살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일이며, 또 한편으로는 자살에 대한 유혹이나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마음가짐과,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들에게도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야말로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다. 

■ 저자 토머스 조이너(Thomas Joiner)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플로리다 주탤러하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이너 박사의 연구 분야는 심리학, 신경생물학, 자살과 관련된 행동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조사에 의하면 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왕성한 학술 저작활동을 하는 임상심리학자로 인정받고있다. 저서로는 『사람들은 왜 자살하는가?』(2005)가 있다. 미국 심리학협회 회원이며 「남성건강(Men"s Health)」 잡지 고문이며,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관한 논문으로 국립연구연합회에서 ‘젊은 연구원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역자 지여울 
한양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토목 설계 회사에서 일하다가 번역의 길로 뛰어든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한동안 요가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있는 책을 발굴하고 번역하기를 꿈꾸며, 현재 펍헙 번역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행복 유전자』『위대한 몽상가』 등이있다.

■ 차례
서문- 가장 근원적인 공포, 가장 비극적인 생각

1장 자살 심리
오해와 편견 1 “자살은 손쉬운 탈출구며, 비겁한 사람이 쓰는방법이다.”
오해와 편견 2 “자살은 분노, 공격성, 복수심의 발로이다.”
오해와 편견 3 “자살은 이기적인 행동이며, 지나친자기애의 또다른 표현이다.”
오해와 편견 4 “자살은 자기통제를 실천하는 수단 중 하나이다.”
오해와 편견 5 “자살하려는 사람은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오해와 편견 6 “수많은 사람들은 종종 ‘충동적’으로 자살한다.”
오해와 편견 7 “자살하는 사람은벌써 겉모습부터 다르다.”
오해와 편견 8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살할 것이다.”
오해와 편견 9 소속 욕구의 왜곡현상

2장 자살행동
오해와 편견 1 “죽음의 현장을 둘러보면 자살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오해와 편견 2 “자살하는 사람은대개 유서를 남긴다.”
오해와 편견 3 자살 행동과 전염성
오해와 편견 4 “자살하려는 사람은 말릴 도리가 없다.”
오해와 편견5 “자살하겠다는 말은 도움을 바라는 외침에 불과하다.”
오해와 편견 6 자살 행위의 치료와 입원
오해와 편견 7 “이성적인”자살
오해와 편견 8 “느린” 자살

3장 자살의 원인과 결과
오해와 편견 1 “동물은 자살하지 않는다.”
오해와 편견 2“어린이는 자살하지 않는다.”
오해와 편견 3 “다른 사람, 특히 어린이에게는 자살에 대해 숨겨야 한다.”
오해와 편견 4 자살과유전
오해와 편견 5 “가슴 확대 수술이 자살을 유발한다.”
오해와 편견 6 “약물의 지나친 남용이 자살을 유발한다.”
오해와편견 7 수면과 자살 행동
오해와 편견 8 “크리스마스 무렵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


감사의말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


1장 자살 심리

오해와 편견  "수많은 사람들은 종종 충동적으로 자살한다."

진실과 먼 충동적 자살

2008년 6월 뉴욕 주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을 언론에서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살펴보면 충동적인 자살이 흔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뿌리 깊게 퍼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십 대 후반의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갔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그 남자는 다이빙을 하지 않고 비행기에 혼자 남아 사진을 찍었다. 그 남자는 애초부터 스카이다이빙을 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훈련도 받지 않았을 뿐더러 낙하산이나 다른 장비를 갖추지도 않았다. 그런데 고도 3킬로미터의 상공에서 낙하산을 맨 다른 세 사람이 뛰어내린 다음 이 남자는 뒤를 이어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남자는 어느 집 위에 떨어져 지붕을 망가뜨리고 자신은 사망했다.


언론에서는 이런 사건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자살에 대한 수많은 오해를 부추긴다. 이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째 언론의 보도에서는 이 남자가 함께 스카이다이빙에 나선 다른 사람들과 마치 친구인 것처럼 암시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그 남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었고 혼자 따로 비행기에 탄 것이었다. 다른 스카이다이버들과는 친구도 뭣도 아니었다. 둘째, 이 사건의 초기보도에서는 언론은 세 스카이다이버가 차례대로 뛰어내린 다음 비행기에 남아 서서 돌아다니던 남자가 갑자기 뛰어내린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남자는 마지막 스카이다이버가 뛰어내리는 순간까지도 안전벨트를 맨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종사가 문을 닫기 시작하자 그 남자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풀더니 거의 닫혀가는 문을 바람에 맞서 힘껏 밀어 제치고는 놀란 조종사가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 사건의 초기 보도에서 가장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이 남자가 단순히 충동에 휩쓸려갔다고 암시하는 부분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좀더 조사한 결과, 그런 암시가 대부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충동적인 자살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내 주장과 일치한다. 후속 보도에 따르면 "자살한 남자는 몇 달 동안 자신의 직장인 스키넥터디(미국 뉴욕 주의 도시)에 위치한 슈퍼마켓의 해산물 판매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진을 뺐다. 부매니저는 그 남자가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해댔다고 회상했다. 자살하려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편이 나을까요, 낙하산 없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편이 나을까요?"


그 남자는 이미 그 전주부터 활주로에 나와 수업 과제로 항공사진을 찍어야 하니 비행기를 탈 수 없겠냐고 물어봤다. 그 남자가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조종사는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오라고 말했고, 결국 그 남자는 자살 비행을 위해 다시 비행장을 찾았다. 이런 증거들에 따르면 이 남자가 미리 자살할 계획을 다 세워두고 세세한 부분까지 곱씹어 생각해 둔 것이 분명했다. 조종사의 말에 따르면 남자는 떨어지는 순간 발버둥치지도 않고 차분했다고 한다.


충동적으로 보이는 자살

호주의 한 연구에서는 자살과 충동성의 연관성을 다루면서 이 연구 분야에서 전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즉 귀중하고 흥미로운 자료를 모으고 나서 그 자료를 해석하는 데 있어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호주의 연구원들은 자살하려다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들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인터뷰했다. 이 연구 결과 자살을 기도한 환자의 51%가 자살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데 최대 십 분밖에 고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고민한 시간이 십 분보다는 길지만 삼십 분은 채 되지 않았다고 말한 환자는 16%였다. 선임연구원은 "이 연구로 자살이 사전에 심사숙고된 행동이며 오랫동안 계획된 행동이라는 편견이 무너졌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연구로 어떤 편견도 무너지지 않았다. 우선 자살을 삼십 분 넘게 생각했던 33%를 제쳐두고 삼십 분도 고민하지 않은 나머지 67%에 초점을 맞춰 보자. 이 연구에서 증명된 사실은 이 67%의 사람들이 자살을 실행하기 앞서 자살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길어봤자 삼십 분이었다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사람들의 진술을 전부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점을 제쳐 두고서도 이 연구에서는 결정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넘어갔다. 이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 왔을 몇 시간, 며칠, 몇 주, 몇 달, 그리고 어떤 경우 몇 년의 시간이다.


사전에 미리 계획을 세워두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유언장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죽기 몇 십 년 전에 유언장을 작성해 두고 그 유언장에 대해서는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에게 유언장은 이미 처리된 일이기 때문이다. 휴가 계획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휴가 계획을 미리 세워둔 사람들은 허둥지둥 짐을 싸서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휴가 계획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두 가지 예에서 충동성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미리 계획을 잘 짜두고 나면, 그 계획에 대해서 잊고 있다가도 나중에 언제든지 그 계획을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것이다.


선반 위에 준비된 자살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살하는 방법과 장소 같은 세부사항을 미리, 어떤 경우 몇 년 전부터 잘 생각해 둔다. 최근 내가 접한 사례에서는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오십 줄에 접어든 남자가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울증이 가장 기승을 부리던 무렵 남자는 약을 먹거나 총으로 자살할 궁리를 했다. 심리 치료사와의 상담 시간에 남자는 자살 계획에 대해 상당히 상세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자살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심리치료에 회의적이었던 남자는 심리 치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그만두었다.


그 후 삼 년 뒤, 계속 우울증에 시달리던 남자는 다시 상담에 등록했지만 이번에는 겉으로 보기에 자살 위험이 전보다 높아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남자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했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은 충동적인 자살 사건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우지 않은 사람이, 비교적 짧은 시간 후에, 죽는다. 이 남자가 실제로 죽기 전에 자살에 대해서 삼십 분도 채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남자는 충동적인 자살을 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남자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하려는 생각을 몇 년 동안이나 품고 살아왔다. 이 남자의 계획은 사전에 준비되어 완성된 채로 선반 위에 모셔져 있었고 준비된 계획을 다시 꺼내 쓰는 데는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 요컨대 이 남자는 몇 년 간에 걸친 과정 끝에 자살한 것이다. 이 남자의 자살을 충동적인 자살로 보는 일은 그 자살 행위만을 인정하고 그 이외의 요소를 모두 무시하는 행위이다. 자살 행위는 실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과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충동적 자살이라는 뿌리 깊은 오해

2006년 언론 보도에서 세계보건기구의 정신장애 및 뇌 장애 책임자는 비슷한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잘못된 해석을 내놓았다. "우리는 살충제를 복용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훌륭한 연구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 중 95%가 넘는 사람들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 말은 상당히 정확하다. 죽음을 직면한 두려움에서 절망감이 피어난다. 담당관은 그 뒤에 자살한 사람의 거의 대다수가 충동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상당히 잘못되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는 저명한 사람들조차 이런 잘못된 편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며 우리는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켜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을 자각한다.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는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게 퍼져 있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2004년 메인 주의 「케너벡 저널」에는 한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실렸다. 이 의사는 메인 주의 어거스타에 있는 한 다리에 자살 방지용 철책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중보건에 큰 위험을 끼친다는 말과 함께 자살의 속성에 대해 이런 저런 현명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의사는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흔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덧붙였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편견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질 것이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 다리를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충동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조차, 뛰어내릴 생각이 들거나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다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을 구분 짓는 기준은 충동적인 성격이나 변덕스러운 기질이 아니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인 사건은 자살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수년간, 수개월간 축적되어 온 결과이며, 자살에 대한 욕망이 기분 장애나 정신분열증, 경계성 인격 장애 같은 정신장애로 더욱 부채질된 결과이다.


결론 ―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는 사람은 자살이라는 행위를 몇 십 번, 몇 백 번 곱씹어 생각하며 세부 사항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도 한다. 오직 이런 과정을 겪고 난 다음에야 과격하고 치명적인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정도의 준비로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실제로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적다.


하지만 몇몇 자살 사례의 세부 사항에서 충동적인 면모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소한 사항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필자는 이런 혼란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느닷없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는 생각은 자살을 연구하고, 알아가고, 치료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을 일시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살 행동을 이해하고 추적할 수 있다면, 자살 행동을 막고 예방할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자실이 신비스럽게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행위라면 이런 연구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자살을 막을 수 있으며, 이미 자살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래에 자살할 위험을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자살을 막고 예방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2장 자살 행동

오해와 편견 "자살하는 사람은 대개 유서를 남긴다."

바로 진실을 밝혀보자. 어떤 연구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를 남기는 비율이 50%를 넘기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서를 남기는 비율은 0%에서 40% 정도이다. 평균으로 따져 대략 25%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가장 낮은 비율을 보인 연구를 살펴보자.


「미국 법의학 및 병리학 저널」에 발표된 1997년 연구에서는 덴마크에서 10년 동안 일어난 분신자살 사례들을 조사했다. 모두 합쳐 마흔 세 건의 분신자살 사건이 있었고, 모두 정치적인 시위나 종교적인 순교와는 상관없는 자살이었다. 여러 모로 볼 때 분신자살한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살한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이를테면 십중팔구는 정신장애에 시달렸고 과거에 자살을 기도한 전력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다른 공통점도 있었다. 마흔 세 건의 자살에서 아무도 유서를 남기지 않은 것이다. 유서가 불에 타버렸을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연구는,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유서를 남기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자살하는 사람 네 명 중에 세 명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일로 불필요한 심적 고통과 혼란을 벗어버릴 수 있다. 어떤 경우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자살한 사람의 가족을 비롯하여 이따금 숙련된 조사관들조차 유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자살하는 사람이 본래 유서를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가족들은 마음의 정리를 하기 쉬울 뿐더러 비싼 조사에 돈을 낭비할 일도 없을 것이다.


완전히 다르게 작동하는 사고체계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를 남기는 경우가 드문 까닭은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 가족, 친구, 인생까지 모두 버리기로 결심하고 작별 인사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충분히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이런 식의 논리에 따라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이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자살하는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로는 그 이면의 진실을 아주 어림잡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바다를 단지 물이 많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외로움, 소외감, 단절감, 거부당한 기분, 추방당한 기분이라는 표현은 좀더 진실과 맞닿아 있지만 그조차 진실을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실로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을 말로 완전하게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일은 우주 끝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하는 일만큼 일상의 경험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서에 나타나는 인지제한 현상

그럼에도 죽음을 앞두고 유서를 남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다른 이와 소통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소속되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소속과 연결의 욕구는 말소되어 버린 다음에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한다. 자살하기로 완전히 결심을 굳힌 사람들의 마음에 삶과 죽음을 향한 이중적인 심리가 존재하는 것도 이런 욕구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사람들이 유서를 남길 때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무시무시한 짓을 실행할 만큼 단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서에 뒤에 남겨진 사람과의 감정적인 유대를 나타내는 내용이 쓰여 있다면 그것대로 놀라운 일일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유서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무적인 내용을 사무적인 말투로 전달한다. 유서에는 흔히 열쇠를 어디 두었다든가 세금을 내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내용이 많다. 「자살 연구 기록」의 2007년 4월호에 실린 연구에서는 유서의 사무적인 말투와 관련된 한 가지 변수를 밝혀냈다. 바로 문장의 길이이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자살을 가정하고 유서를 써보라고 했다. 실험에서 가상으로 작성된 유서와 비교하여 실제 자살한 사람이 남긴 유서는 문장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서의 짧은 문장은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 지시하는 사무적인 말투와도 일관될 뿐더러 인지 제한(cognitive constriction)이라 알려진 현상과도 일치한다.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 사람의 인지력은 바로 눈앞의 구체적인 생각이나 목표, 감각, 행동에만 집중된다. 이런 인지 제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수준이 높은 사고의 회로가 끊어진다. 이를테면 지금 현재 하고 있는 행동에서 발생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심리 상태는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자살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심리적이고 물질적인 노력 때문에 주의력이 고갈되어, 자살하려는 사람은 유서를 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하거나, 혹은 유서를 남긴다 해도 먼 미래의 감정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 대신 열쇠나 청구서 같은, 상대적으로 낮은 사고 수준에서 비롯되는 하찮은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결론 ― 기억할 것은 유서에 담긴 외로움이 아니라 외롭지 않았던 수많은 순간이다!

이 장에는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를 남기는 경우가 생각처럼 많지 않으며, 남겨진 유서에는 통념과는 달리 일상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이 많다는 점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아는 일만으로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현실 세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경찰은 물론, 가족들도 유서가 없다는 사실에 너무 신경쓸 필요가 없다. 보통 자살하는 사람은 유서를 남기지 않으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마음 깊이 단절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유서가 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유서에서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유서는 보통 사무적인 말투로 일상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며, 결심이나 확신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표현되기도 한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유서에서 책망이나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유서에 무엇이라 쓰여 있든지 가족들은 그 유서를 쓴 사람이 당시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심리 상태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지 않는다.



3장 자살의 원인과 결과

오해와 편견 "어린이는 자살하지 않는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편견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어린이가 죽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지금은 어린이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혹한 운명의 화살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장 질환으로 죽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 노화로 인한 질병은 나이가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에게 자살 위험-즉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감각, 짐이 된다는 의식, 사회적 소외감이 나타나는 경우는 어른에 비해 흔치 않다.


세 가지 위험 요소는 모두 어린이에게 드문 현상이지만, 그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는 어린이는 상당히 많으며, 특히 방임되는 어린이가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의식을 가진 어린이는 소외감을 느끼는 어린이보다 많지는 않지만 전혀 없지도 않다. 특히 학대 받는 아이들, 면전에서 너희는 짐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 중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반면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감각은 어린이에게 아주 드문 현상이다. 고통과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지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는 일도 그리 흔하지 않을 뿐더러, 그럴 마음이 들었다 해도 어린이가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어른과 비교해서도 한참 더 어려운 일이다.


어린이 자살에 대한 과소평가

하지만 그런데도 자살하는 어린이가 있다. 2005년 미국에서는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272명 자살했다. 하루에 한 명 꼴로 자살한 셈이다. 자살한 아이들은 대부분 열 살에서 열네 살 사이였지만 아홉 살이나 더 어린 아이들이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이 중 204명이 남자 아이였고 68명이 여자 아이로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이 3:1이었다. 1962년에 미국에서 실시된 어린이 자살 연구에서도 같은 성비율이 나타났다.


자살하는 어린이의 성비율은 자살하는 성인의 성비율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미국 전체 자살의 성비율은 2005년 기준으로 남녀 비율이 4:1에 가깝다. 남자가 살아가면서 폭력과 고통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승리이다. 필자는 남자가 여자보다 인생에서 폭력과 고통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훨씬 더 무감각해지며, 따라서 자살률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한다.


2005년 미국에서 자살한 272명의 어린이 중에 약 65%가 질식에 의해 사망했다. 다시 말해, 목을 매어 자살한 것이다. 272건의 자살 중에 목을 매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 총으로 자살했다. 남자는 총기를 사용하여 자살하는 비율이 높은데, 그 특징이 이 연령의 집단에서 벌써부터 드러난다. 남자 아이 중 3분의 1이 넘는 아이들이 총으로 자살했다. 여자 아이가 총으로 자살한 비율은 5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어린이에서 나타나는 이런 연령의 차이는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점점 더 커진다. 나이에 상관없이 미국에서 자살하는 남자 중 3분의 2 정도가 총으로 자살하는 반면 총으로 자살하는 여성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이다.


어린이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편견

수년 전, 정신 의학 박사인 제임스 툴란은 「미국 정신 의학 저널」에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어린이와 사춘기의 아이들이 자살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고 썼다.(1962년, 719쪽)


어린이가 자살할 리 없다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람들이 어린이가 자살하려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잘못된 믿음은 일부분 정신 분석학이 책임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어린이가 우울해질 수 없다고, 그러므로 자살할 리도 없다고 본다. 어린이에게는 과도한 죄책감과 자기비판의 원천인 초자아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과도한 죄책감과 자기비판은 우울증의 원인이다.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던 마가렛 말러는 1961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는 체계화된 기분장애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유아나 어린이의 경우 성격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증 상태를 유발할 능력이 없다는 결론에 최종적으로 도달했다."


오늘날 이런 관점의 신뢰성은 무너졌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이런 관점을 신봉하는 사람이 많다.


어린이 자살에 대한 언론의 태도

실제로 언론에서는 어린이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면서 대개 어린이가 자살을 하던 당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2003년 9월 「피플(People)」지는 뉴욕주에서 여덟 살짜리 소녀가 목을 매어 숨진 사건을 보도했다. 검시관은 소녀의 죽음을 사고사로 판정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에서는 소녀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다는 가능성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기사에서 인터뷰를 한 전문가는 소녀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을 수 있다는 가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했으며 절망에 빠진 소녀의 어머니는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7년 5월 「에번스빌 인디애나 쿠리어」 지에서는 인디애나 주에서 발생한 4학년 소년의 자살 사건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보도했다.


소년은 자살하는 어린이가 으레 그렇듯이 침실 옷장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이 소년이 자살한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다른 어린이 자살 사건과 달랐던 점은 검시관이 자살을 인정했다는 점과 사건이 정확하게 보도되었다는 점이다. 기사에서는 소년의 행동이 악화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소년은 어머니가 하지 말라고 하는 데도 몰래 집 밖으로 빠져나갔고 어머니에게 자주 대들었다. 한편 학교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소년은 또한 누구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소년은 행동에 문제가 있었을 뿐더러 동시에 자신감이 없고 외로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등 우울증의 증상을 겪고 있었다. 이런 증상은 어린이나 성인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자살 행동의 전조이다.


결론 ― 고통스럽다 해도 꼭 알아야만 할 진실

필자는 자살의 원인을 모방 같은 이유로 치부하려는 주장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때때로 모방 자살이 실제로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1986년 4월 일본에서 대중가수인 오카다 유키코가 자신의 녹음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 이후 자살 사건이 몇 건 발생했다. 하지만 유명 인사의 행동과 상관없이 자살률이 봄철에 최고조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카다를 따라 자살한 사례도 분명히 존재했으며 그렇게 자살한 사람 중에는 어린이도 있었다. 오카다가 자살하고 일주일 후에 한국의 16세 소년은 친구에게 오카다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얼마 뒤에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틀 후 아주 비슷한 사건이 도쿄에서도 일어났다. 이번에 죽은 아이는 아홉 살 소녀였다. 어린이도 자살할 수 있다.


어린이의 자살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인의 자살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이 책에서 논의한 수많은 편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편견보다 진실이 낫다. 자녀의 자살을 겪고 절망에 찬 부모를 비롯하여 남겨진 사람들은 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 여정이 아무리 길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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