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김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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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북
   
13000
2010�� 07��






STRONG>■size=2> 책 소개
『공부』는 경남 고성의 한 시골마을에서 외톨박이 꼬마였던 그가 우리 시대 석학으로나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김열규 교수의 공부 인생기이다. 그의 첫 공부 스승인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 그를 국문학의 세계로 안내해준 시문학의 가르침까지, 공부와 함께한 79년의 삶 이야기가 곳곳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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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핑거(Homo Finger)까지 진화한 공부의 유래와 특징, 장르별 읽기의 역사도 담겨 있다. 또한그가 들려주는 비판적으로 글 읽는 법, 글 쓰기의 기초와 논리적으로 글 쓰는 법 등의 공부 기술과 자신의 분야에서 마이스터를 꿈꾸며 끊임없이공부하는 사람들의 사례들을 들려주며, 끝으로 21세기 IT와 글로벌리즘 시대에 필요한 공부법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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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2> 저자 김열규

1932년경남 고성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서강대학교 국문학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교수를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연구 인생 60여 년을 오로지 한국인의 질박한 삶의 궤적에 천착한 대표적인 한국학 거장이다.『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와 『한국인의 자서전』을 출간하여 한국인의 ‘죽음론’과 ‘인생론’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BR>나이 이순(耳順)이 되던 1991년에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살고자 고향으로 낙향했고, 그곳에서 해마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고 수십 차례의 강연을 해오고 있다. 특히 특성화 대안학교인지리산고등학교에서 매주 글 쓰기 특강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열정은 쉼 없는 공부의 산물이다. 그는 공부를 통해 자연과 세계와 사물들을이해할 수 있었고, 전인(全人)적인 존재로 나아갈 수 있었다. 
BR>이번에 출간한『공부』는 우리 시대 석학인 김열규 교수의 공부 인생기이다. 그는 이 책에서 외톨박이 꼬마를 한국학의 거장으로 만들어준 공부에 감사하며, 공부에대한 인연과 자신만의 글 읽기와 쓰기 원칙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핑거까지 진화한 공부의 유래와 특징, 장르별 읽기의역사와 비판적으로 글 읽는 법, 글 쓰기의 기초와 논리적으로 글 쓰는 법을 들려준다. 또한 끊임없는 공부로 자신의 분야에서 마이스터를 꿈꾸는사람들, 21세기 IT와 글로벌리즘 시대에 필요한 공부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늘 새로운 내일을 만들고자 공부하는 이들에게 지적 흥미와 더불어실용적 교양도 전해줄 것이다. 
BR>지은 책으로 『독서』『노년의 즐거움』『그대,청춘』『욕』『한국인의 화』『한국인의 신화』『한국의 문화코드 열다섯 가지』『고독한 호모디지털』『기호로 읽는 한국 문화』 외 다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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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2>차례

서문 -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프롤로그 - 내 공부의 첫 장,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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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호모 스투디오수스의 탄생 - 공부하는인간
대한민국은 공부 공화국 | 공부는 대부다? | 머리를 싸매고 쓰고 짠다는 것 | 공부의 1원칙, 공짜는 없다 |카르페 파시오, 고통을 즐겨라! | 공부의 2원칙, 배신은 없다 | “첫 페이지가 책 한 권” | ‘누어 아르바이텐’의 즐거움 | 스투디움의4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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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머리에서 발끝까지, 책상에서 책가방까지! - 공부의다양한 풍경 
머리,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 가슴, 인생 공부의 시작 | 손, 클릭과 터치가 중요한 시대 | 몸과다리, ‘감각의 인간’ | 공부의 상징, 책가방 | 책꽂이, 주인의 얼굴 같은 것 | 책상을 먹는다? | 책, 그 맛나는 음식 | 책에게 희망을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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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읽고 자라고 살다 - 글 읽기의 참맛
책 읽는 백만장자 | ‘천의 얼굴’을 가진 읽기 | 활자 책에서 전자 책까지, 읽기의 역사1 | 고전주의에서형식주의까지, 읽기의 역사2 | 소설을 소설답게 읽는 법 | 시, 가슴과 머리로 읽는 법 | 나의 시 읽기1 | 나의 시 읽기2 | 나의 독서순애보 | 나의 두보 읽기 | 소설을 못 읽게 한 어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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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쓰고 생각하고 표현하다 - 글 쓰기의 실제 
논증, 논리적 글 쓰기의 바탕 | 논리적 글쓰기의 3대 원칙 | ‘시비가리기’의 힘 | 논리적 글 쓰기가 별 건가? | 논술과 논설 | 논리적 글 쓰기의 4C | 글의 전체 윤곽과 그 세부에 관한 설계 꾸미기 |대 주제문과 소주제문의 자리 | 논리적 글 쓰기의 주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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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마이스터를 꿈꾸는 사람들 - 샐러던트 시대의 공부
‘샐러던트’의 탄생 | 공부는 때가 없다 | 학력 NO, 인력 YES!| 미셸 위의 주경야독 | 시력은 잃어도 학력은 드높아진 그녀 | “꿈이여, 나를 일으켜라!” | 조식의 공부법, 물 대접을 한 손으로 들다 |정약용의 공부법, 역경을 기회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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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호모 핑거, 정보를터치하는 인간 - 21세기 공부를 말하다 
호모 인포메이션, 정보통이 으뜸인 세상 | 공부도 이젠 모바일 | 스마트폰시대의 공부 | 글로컬리즘과 공부&nbsp& | 글로컬리즘 시대의 공부 | 호모 핑거, 정보를 터치하라 
에필로그 - ‘전인(全人)적 존재’에 이르는 길





공부


Ⅰ 호모 스투디오수스의 탄생 - 공부하는 인간

대한민국은 공부 공화국

"열심히 공부해라" 귀가 따갑고 아프도록 듣게 되는 그 얄미운 말, 그 성가신 말. 공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야단이고 아우성일까?


온통 공부로 난리가 나 있다. 온 사회며 온 세상이 아예 공부방이 되고 말았다. 집 안의 개인 공부방과 학교 교실만이 공부 자리가 아니다. 각종 모바일 기기 덕분에 손 안이 교실이고 거리가 교실이고 차 안이 교실이다. 스마트폰 따위가 흑판이 되고 책이 되고 공책이 되고 교사가 된 지 이미 오래이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학생에게는 따로 밤낮이 없다시피 하다. 야자는 어느 학교에서든 밤 12시가 고비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만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정규 대학원을 이수하는 햇수를 더하면 줄잡아서 17~18년, 넉넉히 잡아서 근 20년은 공부에 매여 있어야 한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까지 끝내고 일자리를 얻어서 사회인이 되기까지 1~2년 또는 2~3년간 전문 직종의 학원에서 또다시 공부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니 젊음도, 청춘도 온 데 간 데 없다. 오직 공부가 있을 뿐이다. 오늘의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호모 스투디오수스(homo studious), 이를테면 공부하는 인간이다. 공부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쉬고 마음껏 잘 겨를도 없이 공부에 목을 매고 있다.


이를 확인시켜주는 통계가 있다. 바로 학원에 관한 통계이다. 입시학원, 검정고시학원, 보습학원 등을 통틀어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몇 개의 학원이 있을까? 누구나 어림짐작으로 그 수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테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지금 한국은 학원 공화국이라고 해도 크게 허풍은 아닐 것 같다.


2010년 1월 12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학원 수와 학생 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1970년 1,421개이던 전국의 학원은 그 수가 1990년에 2만 9,000개, 2000년에 5만 8,000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다가 마침내 2008년에는 무려 7만 213개에까지 이르렀다. 학원 수가 38년 만에 자그마치 50.7배로 늘어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숫자를 다시 알아보면 2000년 이후 일 년에 평균 1,500개 이상 학원이 증가했고 그 수강생 수는 1970년 12만 명이던 것이 2008년에는 468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내친김에 각종 학원 강사의 수를 세어보면 더 놀랍다. 1970년에 6,000명이던 것이 1990년에는 5만 5,000명으로, 2008년에는 무려 18만 7,000명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 숫자는 각급 학교 중에서 교원 수가 가장 많은 초등학교의 교사 수(17만 2,000명)를 앞지르는 것이다. 이 같은 학원의 성장이 지닌 의미에다가 각급 학교 재학생 및 대졸자의 공부 열풍이 의미하는 바를 보태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공부 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공부는 온갖 사회 현상과 문화 현상을 선도하고 있다. 공부가 온 나라에서 판을 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부의 아수라장이다.



Ⅱ 머리에서 발끝까지, 책상에서 책가방까지! - 공부의 다양한 풍경

책에게 희망을 묻다

우리는 책가방을 촐랑대면서 어린 시절을 신나게 보냈다. 책가방이 불룩한 만큼 꼬마의 머리도, 가슴도 넉넉했다. 책이 꼼꼼히 또 곱게 꽂혀진 책꽂이 옆이나 앞에 앉으면 마음과 가슴은 늘 흐뭇했다. 그런가 하면 책상을 핥아먹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 맛을 즐기곤 했다. 그렇게 음식을 먹어서 배를 채우듯이 책을 먹어 머리를 그리고 가슴을 채우기도 했다.


배불뚝이는 배가 산처럼 불룩 솟아오른 사람을 뜻한다. 지난 시절에는 더러 배불뚝이가 잘난 척하는 데 밑천이 되곤 했다. 불룩 솟아오른 배는 부자의 상징이고 고관대작의 징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져서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배불뚝이는 욕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빈정대는 말 정도로는 쓰이는 것 같다. 그래서 배불뚝이가 되어 체중이 지나치게 나가면 결국에는 도리 없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그러나 머리불뚝이, 가슴불뚝이는 어디까지나 자랑이다. 그들은 잘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잘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은 누구든 그것을 읽는 사람을 머리불뚝이가 되게 하고 가슴 불뚝이가 되게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冊)이란 글자 그 자체는 재미있다. 한자사전에서 책 책이라고 읽는 이 글자는 이른바 상형문자(象形文字)이다. 상형문자란 실제로 특정 물건의 겉모양새를 본떠서 베껴놓은 듯이 만들어진 글자를 의미한다.


책(冊)이라는 글자는 책 세 권이 옆으로 나란히 한 줄로 꿰어져 있는 모양새를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여러 권의 책이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책자(冊子)나 서책(書冊)이라고 해도 여전히 책을 의미하게 된다. 서책이 보여주고 있듯이 더러 책(冊)은 서(書)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원래 서(書)는 글 서로 읽게 되어 있는데 그 의미가 그대로 담긴 낱말로는 서류(書類)나 서식(書式)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책이 글로 되어 있다 보니 그만 서(書)도 책(冊)과 같은 뜻을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이다. 서가(書架)니 서권(書卷)이니 하는 낱말에서 서(書)는 에누리 없이 바로 책을 나타낸다.


그런데 책에는 또 다른 멋진 의미가 들어 있다. 바로 이때의 책은 칙서(勅書)책이라고 읽어야 하고 그 의미는 왕이 신하에게 높은 벼슬자리를 내려주는 서류, 곧 칙서를 나타낸다. 아니면 높은 봉록, 곧 봉록이나 급여를 주는 것을 알리는 서류가 다름 아닌 책이다. 요즘 말로 하면 발령장이나 사령장 아니면 임명장이 곧 책인 셈이다. 그래서 누구를 왕비로 책봉(冊封)한다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책에 담긴 이런 의미는 곧 책자가 귀한 몸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누군가를 귀하신 몸이 되게 떠받드는 것으로 귀하신 몸이 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책자의 책(冊)까지도 그렇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책은 이처럼 귀하신 몸이다. 그런데 책(冊) 자는 또 다른 의미를 갖추고는 책자의 책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책(冊)은 책책이고 칙서 책인 한편 대책(對策)의 책(策)과도 그 발음이며 뜻이 통한다. 이럴 때 책(策)은 꾀할 책이라고 읽는다. 무엇을 해보고자 기도한다는 뜻이다. 책(策)은 대나무 조각이라는 뜻이지만 그것 말고도 임명장과 같은 뜻의 사령서 책이 되면서 앞에 소개한 칙서 책과 발음도, 의미는 꼭 같아진다. 그런가 하면 채찍 책이 되는 한편으로 책자나 서책과 같은 뜻의 책 책이 되기도 한다. 거듭거듭 책(策)과 책(冊)은 그 뜻이 겹친다.


칙서 책이 되어서 귀하신 몸이 된 책(冊)은 이젠 꽤할 책이 되어 책(策)과 겹치게 된다.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니 읽는 책(冊)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문제에 대한 책(策)을, 이를테면 대책과 책략(策略)을 꾀하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방책(方策)이란 말이 있는데, 무엇을 처리하고 해결할 방도와 대책을 의미하는 이 말은 방책(方冊)이라고 바꾸어 써도 그만이다.


거듭 확인하자. 우리가 읽는 책은 그 자체가 귀하신 몸이면서 그것을 읽는 우리도 귀하신 몸이 되게 한다. 뿐만 아니다. 문제며 과제에 대해서 대책을 꾀하게 하는, 소중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다.



Ⅲ 읽고 자라고 살다 - 글 읽기의 참맛

"천의 얼굴"을 가진 읽기

한마디로 읽기라지만 그 속내는 물론 겉보기조차 매우 다양하다. 읽기에 얼굴이 있다면 그야말로 거기 천의 얼굴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도, 허풍도 아닐 것이다. 읽기에는 별의별 읽기가 있다.


우리는 흔히 신문을 본다고 하는가 하면, 책을 본다고도 한다. 그런 한편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이것은 읽기와 보기가 그게 그것이고 저게 저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눈으로 보는 일이야말로 읽기라도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건 그럴 만한 곡절과 이유를 갖고 있다.


본다는 말은 단순히 눈동자에 뭔가 사물의 이미지가 찍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진 필름에 영상이 찍히듯이 눈동자에 뭔가 찍히지 않고 뭔가를 본다는 것은 가망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와 인간의 눈동자는 다르다. 인간의 눈에 뭔가가 찍히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보이고 있는 그 대상을 두고 생각을 하게 된다.


"저것이 무엇일까?", "저것은 왜 저렇게 보일까?", "저것을 보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등등을 생각하게 된다. 거의 저절로 판단하고 이해하고 풀이하게 된다. 이것이 곧 눈여겨봄이다. 이것이 바로 읽기이다. 그래서 책을 보는 것만이 읽기는 아니다.


관찰(觀察)이란 말이 이미 이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볼 관자에 살필 찰 또는 고찰할 찰이 합쳐져서 생긴 낱말이 관찰이다. 눈동자에 찍힌 것을 두고 사고하고 사색하는 것이 관찰이다. 관찰은 눈과 대뇌의 합작품이다.


우리가 잘 쓰는 눈도장을 찍는다는 말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 말은 눈으로 본 것을 머리며 마음에 새겨둔다는 뜻이다. "잘 보아둬!"라는 말을 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건 눈으로 보기만 하는 데서 그치지 말라는 뜻이다. 잘 생각해서 기억에, 마음에 아로새겨두라는 뜻이다. 이럴 경우 본다는 말은 살펴본다 또는 살핀다라는 말과 같아진다. 살피는 것은 알아본다와 마찬가지이고 따지며 생각한다 또는 소상하게 알아본다와도 같은 뜻이다.


이래서 보는 것은 읽는 것이고 드디어는 아는 것이 된다. 보는 일은 곧 앎이다. 보기와 읽기와 알기, 이 셋은 한 동아리이다. 사람은 무엇이든 보는 대로 읽게 된다. 본 것을 따지고 캐고 생각하고 판단하곤 한다. 그것이 읽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보는 것이 곧 읽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보기와 읽기와 알기의 삼위일체는 책에서도 경험하게 된다. 아니 다른 경우보다 더한층 간절하게 겪게 된다. 이럴 경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라는 말에서 알뜰한 가르침을 얻게 된다. 물론 말을 듣고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게도 되지만 얼굴을 보고도 마음을 읽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므로 거듭 우리는 보기와 읽기와 알기의 삼위일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책을 보고 읽는 것은 마침내 책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흔히 책의 내용이란 것이 책의 마음이다. 활자나 글자를 봄으로써 그 의미들을 받아들여서 읽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것들을 알고 깨닫게 되는 것이 이른바 독서이다.


책 읽기는 항상 보기 그리고 알기와 짝을 짓는다. 책을 대할 적마다 책을 펼칠 적마다 보기와 읽기와 알기의 삼위일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Ⅳ 쓰고 생각하고 표현하다 - 글 쓰기의 실제

논증, 논리적 글 쓰기의 바탕

2010년 1월 중순 논술에 관한 중대한 발표가 있었다. 서울교육청이 새로 발표한 방침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초등학교 5~6학년을 비롯해서 중/고등학교 전 학년에 걸쳐서 객관식 단답형이 아닌, 주관식 서술형과 논술형으로 시험을 치러 내신에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시책은 2010년 봄 학기부터 시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제야 교육계가 일부나마 바른길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객관식 단답형 시험만으로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온전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한 것이다. 그것은 교육계의 깨달음 같은 것이다.


따라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제부터 논리적 글 쓰기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학생 각자의 학습 능력을 높이고 학습 태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논리적 글 쓰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새삼 이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야 논리적 글 쓰기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통 글을 읽고 쓸 때 글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어왔다. 글 자체보다는 글의 구실을 따져서 그렇게 네 가지로 나누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묘사와 서사와 설명과 논증. 이들 네 가지 구실에 따라 우리는 글을 쓰고 읽으면서 공부해왔다. 묘사는 예컨대 사물이나 객체, 그 자체의 모습이나 인상을 베끼다시피 글로 옮겨놓는 것이다. 서사는 역사서나 소설처럼 사건의 줄거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설명은 사물이며 객체의 속내를 알기 쉽게 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학교 교육에 쓰이는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설명은 큰 구실을 맡게 된다.


그런데 이들 셋과는 달리 논증은 좀 성가시다. 글이나 말의 네 가지 구실 가운데 으뜸으로 까다롭고 힘겹다. 영어로는 아규먼트(argument)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누군가와 말다툼을 벌여서 결국 이기는 것이 다른 아닌 논증이다. 그것에 바탕을 두고 누구나 각자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차곡차곡 펼쳐서 읽는 사람 또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곧 논증이다. 그래서 논증은 논의하기, 증명하기, 설득하기, 타이르기 등 몇 가지 낱말과 뜻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로마의 키케로는 웅변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데, 누구의 것이든 웅변에는 으레 논증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각급 학교의 시험에서 또는 대학입시에서 논증의 글을 쓸 때는 글로 웅변하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논증을 골자로 삼은 글이 다름 아닌 논리적 글 쓰기이다.



Ⅴ 마이스터를 꿈꾸는 사람들 - 샐러던트 시대의 공부

"샐러던트"의 탄생

이제 직장을 얻기 위해서만 공부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다가 직장에 들어가면 "공부는 끝! 책 읽기도 끝!"이라 외치던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직장도 학교이다!" "회사 일도 공부이다!" 이젠 이런 구호들이 직장 내에서 현실화되어버렸다. 그래서 새로 생겨난 말이 있다. 바로 샐러던트이다. 누구나 짐작할 테지만 이 신조어는 샐러리맨(salaryman)과 스튜던트(student)라는 두 영어 단어가 하나로 엮인 것이다. 월급쟁이와 학생이 합성된 것이니 우리말로 하면 월급학생쯤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다시 말해 공부하는 직장인이 바로 샐러던트인 셈이다.


그래서 대구에서 간행되는 2009년 12월 4일자 「매일신문」은 경제면에 커다란 활자로 이런 제목을 내걸게 된 것이다.


IT융합-하이테크-직물 분해 설계…"배워야 산다"

- 섬유업계, 첨단기술 학습 열풍


어느 직장이나 직종을 지칭하면서 배워야 산다며 학습 열풍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이 지경이면 직장이 곧 학교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이것은 직장 부속으로 만들어진 연구원이나 연구기관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아예 직장 자체가 통째로 연구기관이 되고 공부하는 교실이 되는 것이다. 연구원이나 연구기관이 주관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연구원만의 일이 아니다. 직장 그 자체에서 연구원이 활동하고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IT 융합 직물 분해 설계 과정, 하이테크 패션 의류 소재 제조 기술 교육, 의료용 섬유 제조 기술 과정 등 세 개 과정에 걸쳐서 희망자를 모집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니 이 업계의 종사자들은 업무의 일환으로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교육받은 사람을 통해서 다른 직원들에게도 옮겨질 테니까 교육 효과는 기업이나 공장 전체로 파급될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체 직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교육까지 받고 있는 셈이 된다. 결국 전체 직원이 주어진 프로그램에 따라 연구도 하고 연찬(硏鑽)도 하면서 여러모로 부지런히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 직원이 샐러던트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향은 결과적으로 마이스터(Meister) 양성에 기초가 된다. 마이스터는 독일어로 어느 직종에서 또는 업계에서 솜씨와 기술이 특히 뛰어난 인물을 의미하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장인(匠人)이 될 것이다. 아니 공장(工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내친 김에 거장(巨匠) 또는 명장(明匠)이라고 하면 더 좋을 것이다.


국내의 한 신문은 고도화되어가는 우리나라의 산업 역군으로서 당연히 마이스터가 양성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마이스터가 미래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기도 했다. 그래서 실업계 고등학교가 마이스터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동시에  각 직장이 마이스터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이제 직장도, 기업도 교육기관이 되어야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제 바야흐로 직장은 일터이자 공부터이다. 일로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다. 공부로도 먹고사는 것이다.



Ⅵ 호모 핑거, 정보를 터치하는 인간 - 21세기 공부를 말하다

호모 핑거, 정보를 터치하라

IT를 모르면 이 시대의 사람으로서 ID를 곧 신분증명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IT를 모르거나 그것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21세기에서 살아갈 근거를 잃고 만다. 오늘날 IT는 각자의 자기 증명 같은 것이다. 현재를 사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IT맨이다.


IT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Information Technology)의 줄임말이다. 문자 그대로는 정보 기술이 곧 IT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IT시대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정보화 사회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회가 곧 정보로 이룩되고 또 엮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영어에서 인포메이션은 인텔리전스(Intelligence)와 같은 뜻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령 미국의 국가기관인 C.I.C.는 Counter Intelligence Corps의 줄임말인데, 그것을 흔히 정보국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텔리전스가 지능이나 지식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에서 유추되듯이 정보라는 것은 지식이다. 흔히 누군가를 두고 "그는 그 방면의 정보통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가 그 방면의 풍족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뭔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인지하고 터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보이다. 앎이 그리고 지식이 곧 정보이다. "오늘 오후에 비가 올 것이다"가 정보라면 "북한의 해군 함대가 연평도 바다에서 기동 훈련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도 정보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정보는 기능하기 마련인데 하필이면 오늘날이 정보화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IT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왜일까?


첫째는 문화가 다양해지고 사회 현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유통되고 운영되는 정보가 대량으로 증폭한 것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조직도, 사회관계도, 인간관계도 정보망으로 얽혀 있다. 정보가 곧 국가나 사회라는 공동체의 조직이고 또 기능이다.


둘째로는 정보의 운영 장치이자 관리 장치이자 생산 장치인 컴퓨터가, 또 전자 정보 장치가 대중화되고 보편화되어 있음을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각 가정이 정보 기지이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시민은 정보원이고 정보통이다. 정보로 활동하고 정보로 생활하고 정보로 직무를 수행하고 정보로 레저를 즐긴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정보에 감싸인다. 키보드를 클릭하면 정보가 나돈다. 오늘날 클릭은 삶이고 생활이다. 손가락 끝에 인생이 걸려 있다. 손가락 끝이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면 손가락 끝이 가볍게 스치는 것으로, 그 터치 하나로 정보의 그물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럭비나 미식축구에서는 터치다운으로, 이를테면 공을 땅바닥에 터치하는 것으로 경기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모바일도 결국은 터치다운이다. 그것에 따라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이기고 지고 얻고 잃는다. 그러니 결국은 정보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공부 또한 클릭으로 또 터치다운으로 그 대세가 결정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보통이 되는 것이 공부하기이다.


학업에 필요한 정보, 이를테면 교과서가 될 정보, 참고서가 될 정보, 그래서 책이 될 정보가 공부의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전자 책이 이미 조금씩 붐을 탈 조짐이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컴퓨터가 교실이 되고 도서관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인간을 정의 내릴 때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들 해왔다. 흔히 공작인이라 번역되는 말이지만 사실 이 말은 인간이 손을 놀려서 물건을 만듦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 호모 파베르는 손의 인간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클릭의 시대, 터치의 시대에는 손가락 끝이 절대적인 역할을 맡는다. 이제 인간은 손가락 인간, 아니면 손끝 인간이다. 호모 핑거(Homo finger)라고 물러도 좋을 것이다.


이제 누구나 호모 핑거로 살고 또 공부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공부는 결국 정보 요원이 되는 것이다. 정보가 공부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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