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ǻ
베이직북스
   
13000
2010�� 04��



>& ■ 책 소개
책은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수단이요, 만남의 열린 공간이다!

& 예나 지금이나 독서는자기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또한 삶에 대한 통찰력과 안목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여행과 매우 닮았다. 한편으로는 참다운 삶의 가치를 깨닫게한다는 공통분모도 지니고 있다. 

& 그럼, 우리가 어떻게독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독자들마다 책읽기의 방법이나 태도가 서로 판이하며, 또한 책을 선택하는 기준과 종류가 저마다의 기호에 따라천차만별이다. 시중 서점에 가보면 독서법과 관련된 책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데 막상 책 읽는 법을 터득하려면 결코 만만치 않음을이내 실감하게 된다. 

& 이 책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것인가’라는 독서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까지 독서에 관한 전방위적인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자아 형성, 자기 단련, 세계관의 확장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독서의 효용을 말하는 저자는 제대로 된 책읽기야말로 생존과성장을 위한 최고의 자기계발이라 말한다. 

& &■ 저자 정제원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제련소에서 근무했으나얼마 후 직장을 그만두고 동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마쳤다. 1999년에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했다. 

& 서울대학교와 백제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가르쳤으며, 글쓰기 입문서인 『설명문 쓰기의 이론과 실제』, 시집인 『사랑을 지키는 사람들』, 에세이인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등의책을 펴냈다. 돈키호테처럼 현실에 어깃장 놓기, 에리히 프롬처럼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람 되기, 신영복 교수님처럼 겸손하게 글쓰기를 희망하고있다. 반대로 1주일에 1권 이상 책 읽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기, 1개월 이상 서울에 머물기를 가장 혐오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과 헨드리크 빌렘 반룬의 『반 룬의 예술사』를 읽고 글 쓰며 사는 인생을 결심했지만,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역부족인 것을 알지만, 그 일이업장(業障)이어서 그런지 분필이 손에서 떠날 날이 없다. 또한 가끔은 경기도 여주 깊은 산골에 있는 ‘귀담재(歸淡齋)’라는 산장에서 책 읽고 글쓰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은둔자로 살기도 한다. 하지만 은둔을 위한 은둔에 머물지 않고 ‘인생 공부’를 위한 글을 쓰며 끊임없이 세상과소통할 궁리를 하고 있다

■차례
제1장 나는 누구인가? 
1.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책을 읽는다
2.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읽는다
3. 같은 테마의 책을 읽는다 (1)
4. 같은 테마의 책을 읽는다 (2)
5. 같은 번역자의 책을 읽는다
6.같은 ‘이즘’류의 책을 읽는다
7. 같은 출판사 혹은 같은 시리즈물의 책을 읽는다
8. 정치•사회 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읽는다
9. 두껍고 난해한 책에 도전한다
10. 과거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제2장 지식을 어떻게 확장하는가?
11. 잡학 상식을늘려주는 책을 읽는다
12.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구미가 당기는 책을 선택해 읽는다
13. 어떤 분야든 입문서부터 읽는다
14.같은 분야의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책을 읽는다
15. 용어(개념어) 사전 혹은 지식사전을 읽는다
16. 통섭의 책을읽는다
17. 한 분야의 전문 작가의 책을 읽는다
18. 같은 장르의 고전을 읽는다

&제3장 작가는 누구인가? 
19. 베스트셀러를 선택한다
20.작가의 이력을 보고 책을 선택한다
21. 서점 직원에게서 책을 추천 받는다
22. 책 속의 책을 읽는다
23. 인터넷 서점에서‘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중 하나를 읽는다
24. 머리말이 좋은 책을 읽는다
25. 부족함을 느끼는 지식을 담은 책을읽는다
26.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다
27. 가까운 지인에서부터 처음 보는 사람까지 타인이 사랑하는 작가의 책을읽는다
28.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권씩은 과학책을 읽는다
29.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권씩은 시집을 읽는다
30. 자신의기준으로 자신이 선택한 책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독서의 즐거움

독서의 즐거움


제1장 나는 누구인가?

정치/사회 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읽는다

자기계발서나 명상서 등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나, 세상은 그리고 세계는 한가로이 덕담을 주고받고 명상에 잠기는 일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2007.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땅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조종(弔鐘)]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존 던(Donne, John),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문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또 얼마나 사회적인가? 위의 존 던의 위대한 시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서의 온전한 독립체가 아니며,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 지구상의 타인의 죽음도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 타인의 죽음을 위로하는 조종(弔鐘)은 바로 나를 위해서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시인 존 던(1572~1636)은 수백 년 전 사람이면서도 21세기의 정치적 무관심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이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 혹은 행동이 결여되어 있는 태도를 말한다. 현실 정치의 비정상성에 대한 냉소주의가 만연하면서, 그리고 사회환경이나 소비문화가 급변함에 따라 비정치적 관심사가 늘어나면서, 우리의 정치적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나 국가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배타적인 개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정치적 무관심도 분명 정치적 태도의 하나다. 무관심이라는 태도가 대단히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정상배를 제외하고,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보람 있는 업으로 정치를 택한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는 우리 시민들의 무관심만큼 부담스러운 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무관심이 정치인들에게 타격을 주고, 정치인들의 자각을 촉구하는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순기능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역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서 진정한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기에, 그 역기능은 정치인들보다는 오히려 우리 시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무관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를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유리시키는, 소위 공동체의식의 상실이다. 내 이웃, 심지어 내 가족의 죽음에도 무관심해 고독사(孤獨死)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 참혹한 현실도 정치적 무관심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제 정치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 국내 정치 상황에조차 무관심한 사람이 국제적인 정치 문제에야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야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고 있는 환경운동가나 반전 혹은 빈곤퇴치 관련 NGO 단원들의 활동이 한가로운 봉사활동쯤으로 생각될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읽어볼 책으로 기아에 관한 국제 전문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선택한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세계 진실을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이 책은 장기간 정치/사회 분야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재 기아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있고, 그런 이득이 어떻게 더욱 더 많은 어린이들을 굶주림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지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들은 제2장 8억 5,000만의 굶주리는 사람들에 이르러 벌써 이 책을 읽는 일을 계속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을 받게 된다. "전 세계에 걸쳐 현재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요?" 하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장 지글러의 답변의 일부를 옮겨 본다. 실로 처참한 현실에 그만 망연자실하게 될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은 1999년 한 해 동안 3,000만 명 이상이 심각한 기아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 여기에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숫자까지 합치면 기아 인구는 8억 2,300만 명 정도가 된다는 얘기야. 이들은 영양부족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로, 서서히 죽음을 맞거나 평생 시각장애나 곱삿병, 뇌기능 장애 같은 중증 장애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단다.


시각장애를 예로 들어볼까? 1980년 이후 영양실조나 저개발로 인해 매년 평균 700만 명이 실명하고 있어. 그 대부분이 아이들이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는 맹인의 수가 5,000만에 달하고 1억 4,600만 명이 트라코마(눈의 결막 질환)에 감염되어 있단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할렘 브룬트란드 사무총장은 1999년 제네바에서 <비전 2020>이라는 플랜을 소개하면서, 시력 손상의 80퍼센트는 간단하게 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말했지. 그들에게 규칙적으로 비타민 A를 복용시키기만 해도 그런 상태를 비약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구나.


1990년에는 8억 2,200만 명, 그 후 1999년에는 8억 2,800만 명(2005년에는 8억 5,000만 명)이 기아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어.


우리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불편한 진실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존 던의 위대한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눈을 감는 불편한 진실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얼마나 사랑이니 인류애니 박애주의니 하는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있는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세계 인구의 두 배(120억 명)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지, 이 불합리하고 살인적인 세계 정치 질서는 왜 형성됐고 누가 그 질서를 만들었는지, 우리는 똑바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왜 마음에 위로를 주는 처세서나 명상서만으로는 "나는 누구인가?"에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지 자각하게 해 준다.



제2장 지식을 어떻게 확장하는가?

어떤 분야든 입문서부터 읽는다

지식을 확장하는 훈련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모든 분야에 입문서가 있지만 철학 입문서를 먼저 읽어야 한다.

- 조성오 지음, 『철학에세이』, 동녘, 2007.


어떤 분야의 지식을 쌓으려거든 우선 그 분야의 입문서를 읽어야 한다. 이 말은 너무나 타당하여 진부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입문서를 읽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입문서는 그 분야의 절반의 지식인데, 어찌 만만히 읽히겠는가? "입문서는 쉬운 책이다." 혹은 "입문서는 쉽게 읽히는 책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우리가 흔히 갖게 되는 막연한 편견이자 안일한 태도다. 실제로 입문서를 쓰는 작가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어야 하고, 막상 최고 전문가들조차 입문서 쓰기는 가장 꺼리는 작업이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쓰기엔 입문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고, 제대로 쓰기로 작정하고 집필하다 보면 어느새 난해해져 입문자들의 수준을 넘어서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입문서는 그 입문서를 제외하고 그 어떤 책에도 의존하지 않아도 쉽게 읽혀야 마땅하다는 선입관을 갖기 쉬워, 만족스러운 입문서가 없다고 투덜대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입문서는 없다. 설사 있다 해도,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그런 책을 쓰지는 않는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는 입문서가 아마추어들의 손에 의해 허술하게 씌어지는 경우가 허다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물이나 사태는 관련되어 있고, 그 관련 양상은 끝없이 변화하며, 변화의 근본은 그 사물이나 사태 내부에 이미 그 원인이 있고, 변화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발전을 낳으며, 아무리 변화한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원칙은 존재한다. 이런 근본적인 이치에 대한 사유의 훈련 없이는 그 어떤 분야의 그 어떤 입문서도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며, 설사 입문한다 하더라도, 그 입문이 이후 지식 확장의 토대가 되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입문서 중 가장 먼저 철학 입문서를 읽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이치에 대한 사유의 도구가 되는 것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지식에 관한 지식 혹은 지식에 접근하는 지식이다.


철학은 어감 혹은 선입견과는 달리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철학은 일찌감치 상아탑을 나와 우리네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책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사람들 혹은 세계와 치열하게 부딪치며 성찰하는 삶이야말로 진짜 철학인 것이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요즘에는 성찰하는 삶이 더욱 필요한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갈수록 병들어가고,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버린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조차 대답하기 힘들어졌으며, 사랑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들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또한 과학의 발달에 따라 생명 윤리 문제가 대두되고,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대중문화가 무차별적으로 생활 속에 유입되면서 문화 향유자들은 주체적 자아를 읽고 획일화돼 가고 있으며, 환경과 기술 문명 사이의 공전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도무지 성찰하려 들 엄두조차 내기 힘든 복잡하고 위험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21세기형 소크라테스, 21세기형 제자백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제 철학은 혹은 철학자는 상아탑에서 뛰쳐나와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며 우리의 고독을 위로해 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철학 입문서는 두 가지다. 조성오 씨의 『철학 에세이』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 삶을 묻다』가 바로 그 둘이다. 고등학생 수준의 독자에겐 전자를, 그 이상의 독자에겐 후자를 권하고 싶다. 하지만 단 하나만을 권한다면 역시 전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기초부터 다져서 나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철학 에세이』는 그야말로 유서 깊은 책이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뜨겁던 1980년대 대학가에서 이 책은 일종의 철학 교과서로서 읽혔다. 1983년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4차례나 개정되었다. 『철학 에세이』는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책이 아니다. 어쩌면 주류 철학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1980년대와 지금의 시대 차이가 현격하다보니 이 책이 갖는 의미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반민주적 억압에 대한 분노나 민주화에 대한 절실함 같은 것을 찾기 어려운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 이 책은 이미 낡은 철학 입문서라고 폄하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 나온 지 27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 같다.


어려운 철학 이론을 쉽게 풀어 쓰면서 지나친 단순화 혹은 도식화의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지만, 철학 입문자에게 베푸는 친절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철학자에 기대어 설명하기보다는 삶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으로부터 무거운 철학 개념들을 유도해 내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모든 책은 특정한 지식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책을 읽어 많은 지식을 섭취한다 해도, 그 섭취한 지식을 소화시키는 위장의 운동 에너지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지식을 확장할 수 없다. 이 운동 에너지는 때로는 자신감을 요구한다.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 같은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도 그 여러 권의 책에서 건진 지식들이 따로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 이 두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한다. 독서 욕구를 꺾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지식을 확장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지식과 지식, 지식과 사회현실을 한데 엮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다. 그리고 독서가로 성장하는 데도 그러한 능력의 부재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철학 입문서를 통해 그러한 능력을 배양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도 선행되어야 하는 공부라 할 수 있다.


이런 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철학 입문서인 『철학 에세이』를 읽고, 성찰하는 삶의 의미도 깨닫고, 독서를 통해 지식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가져보자.



제3장 작가는 누구인가?

베스트셀러를 선택한다

베스트셀러를 우습게 알면 안 된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푸른숲, 2009.


중국 진(晋)나라의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10여 년 각고의 노력 끝에 위, 촉, 오 이 세 나라의 서울을 노래한 <삼도부(三都賦)>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 <삼도부>가 당시의 일류 명사들로부터 대단한 찬사를 받게 되자, 문사(文士)들이 앞을 다투어 이를 베꼈다. 그리하여 진나라의 도읍인 낙양(洛陽)에 종이가 부족해져서 종이의 가격이 뛰어오르게 됐다.


"낙양의 지가(紙價)가 오른다."는 말의 유래는 본래 이러한데, 훗날 그 의미가 다소 변해 소위 베스트셀러의 등장을 이르게 되었다.


낙양의 종이 가격을 오르게 만드는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말들이 많다. 물론 대부분 부정적인 말들이다. 베스트셀러를 읽지 말기를 당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해 굳이 엉터리로 수치화해 보자면, 베스트셀러 중 7할은 허섭스레기요 3할은 정말 좋은 책이다. 특히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특성상 그 허섭스레기에 해당하는 7할은 대부분 유치한 자기계발서들이다.


확률적으로 보면 베스트셀러만 보는 사람은 3할에 해당하는 정말 좋은 책을 보는 셈이니 굳이 그런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불필요하게 오른 낙양의 종이 가격이다. 그렇게 종이 가격이 올라 정말 좋은 책을 찍지 못한다면 이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좋은 책이 서점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 책들을 외면하고 허섭스레기를 원숭이처럼 남들 따라 읽는다면 이 어찌 시간 낭비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저 확률만 믿고 덮어놓고 베스트셀러에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 베스트셀러를 살 때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다.


실력 있는 독서가는 결코 베스트셀러를 함부로 사지 않으면서, 동시에 좋은 베스트셀러를 함부로 얕보지 않는 사람이다. 수십만의 독자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는 기쁨도 챙기고, 마땅히 올라야 할 낙양의 종이 가격을 올려 주어 출판 풍토를 바르게 이끌어갈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제대로 된 독서가다.


우리 독자의 수준이 더 높아져 베스트셀러에 대한 편견이 아예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좌사의 <삼도부> 같은 명작이 베스트셀러 Top 10에 즐비해 우리 모두가 안심하고 베스트셀러를 구입해 읽을 수 있는 그런 날, 마땅히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할 책만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런 날을 말이다.


베스트셀러를 사 보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요즘 썩 훌륭한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다. 세계 오지 여행가, 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한비야 씨의 『그건, 사랑이었네』가 바로 그 책이다. 도대체 이 대단한 신지식인 여성이 사랑이었다고 고백하는 그건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사의 정년퇴임식 날 뜻밖에 이루어진 첫사랑과의 만남, 개인적인 일상사나 식습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늘어놓는가 하면, 30년째 1년에 100권씩 책을 읽어 온 다독가답게 24권의 책을 짧은 서평과 함께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한 지난 9년 동안의 현장 이야기들을 작가는 하고 싶은 것 같다. 이는 그저 담담하게 씌어진 이 책이 2시간이면 거뜬히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면서도 그 2시간의 밀도가 만만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구호 현장의 참상을 담담하게 전하는 작가의 마음이 어찌 그리 담담하기만 했을까? 수단 남부의 한 영양급식 치료소. 이미 영양실조로 사망한 아이를 업고 밤새 사막을 가로질러 온 아이 엄마가 "우리 아이가 힘이 없나 봐요.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잠만 자고 있네요."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볼 때의 심정이 어찌 담담하기만 했을까? 더러운 물을 마셔 기니아충에 감염된 아이들의 발과 다리와 엉덩이에서 하얀 실 같은 기생충이 살을 뚫고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심정이 어찌 담담하기만 했을까?


익히 아는 바대로 한비야 씨의 삶의 체험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면 그녀는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그녀를 작가라고 부르는 우리도 왠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는 바로 그녀의 삶의 체험이 그녀의 책보다 더 깊이 우리 기억 속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판매부수로만 따지면 그녀는 대한민국 1등 작가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그녀의 책을 애독하는 마니아는 10대부터 70대까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른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 작가라고 불리기 어색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대한민국 1등 작가에게 우리는 왜 작가라고 부르기 어색하며, 그 작가는 또 왜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작가임을 쑥스럽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이 사실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작가의 심연은 바로 이런 어색함에, 손사래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작 속에 존재한다.


작가연하는 사람과 진짜 작가를 구별하는 진정한 잣대는 작가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불리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체험의 깊이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지구를 몇 바퀴씩 돌고, 지구촌 곳곳의 극단적인 재난 현장 한복판에서 사투를 벌이는 데 필요한 두 다리 외에 작가연하는 사람들이 일상 쓰는 뇌와 근육이 발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두 다리만이 그녀의 체험의 깊이를 증언한다.


진정한 작가인 한비야 씨는 살았지, 쓰지 않았다. 그리고 쓰지 않고 살았던 그 삶 속에서 언제나 똬리를 틀고 그녀를 지켜주었던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비야 씨가 『그건, 사랑이었네』의 들어가는 말 마지막을 장식한 아름다운 고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쑥스럽고 어색해서 여태껏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과 소소한 속사정과 내밀한 신앙 이야기 등 정말 이런 것까지도 말해도 되나 할 정도로 너무나 편안하게 나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다 털어놓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세상과 나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보였다. 세상을 향한, 여러분을 향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또렷하게 보였다. 그건 사랑이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 삶이, 그 삶의 주인인 작가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이 활자 속으로 녹아들어가 한 뭉치의 원고가 되기도 하고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과정을 회고한다. 그건 사랑이었다고. 그런 사람이 작가라면, 그 작가의 삶을 읽으며 우리도 고백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책을 읽는 마음, 그것도 사랑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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