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역지: 홍성민)
ǻ
뜨인돌
   
13000
2009�� 10��



삼성경제연구소 SERI 추천 
2010년 CEO가 휴가때 읽을 책!

책 소개
세계사를 사유하고 통찰하는 다섯 가지 코드!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욕망’이라는 중요한 코드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으로‘커피와 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가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더 나아가 모더니즘, 제국주의,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가 어떻게 인류 역사를 이끌어왔고, 또 인간의 삶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다.


또한 인류역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칫놓치고 있었거나, 혹은 짐짓 외면해왔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질문들로 빼곡하다. 그러한 통찰력은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답습하는 이른바 ‘통사(通史)류의 역사 책’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 책만의 강점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는 어째서 필연적으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없었는가?”,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라는 ‘녹슨 기관차’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역사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은브랜드가 되고, 경제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고,기본적으로 관용적인 이슬람교가 전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학창시절 누군가에게 쫓기듯 강박관념을 가진 채 세부지식에 연연하며 세계사를공부한 것이 전부인 사람은 이 책에서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저자 사이토 다카시 
메이지대학문학부 교수. 1960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났고, 도쿄대학교 법학부 및 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1년 출간된『신체감각을 되찾다』로 ‘신초 학예상’을 수상한 그는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는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획기적인 교육 방식론을 주창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는 1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밀리언셀러가되어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 후 그는 교육학, 신체론, 경제경영학, 커뮤니케이션론 등을 기초로 통합적 지식을 담은 관련서적을 다수 집필했으며, 최근 NHK와 테레비도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특정 분야의 틀에 갇히지 않은 열린 시각과 날카로운 분석으로 수많은마니아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의 관심과 노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인문학, 그중에서도 역사에 대한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분석과 연구로나아간다. 학창시절 누구나 배운 세계사. 하지만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자기 나름의 분명한 관점을 바탕으로 논리정연하게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것은 학창시절 역사를 공부할 때 연호나 용어 암기에만 그치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일을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역사공부는 세세한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세계사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암기력’이 아니라 흐름을 이해하는‘문맥력’이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열정과 노력의 값진 열매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펴낸책으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질문의 힘』『절차의 힘』『독서력』 등 다수가 있다. 


■ 역자 홍성민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뒤 일본 교토 국제외국어센터에서 일본어과를 수료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천재의 시간』『물은답을 알고 있다』『스타벅스에서는 그란데를 사라』『뇌력사전』『세계사 칵테일』『세계지도의 비밀』『세계명화의 수수께끼』 등이있다.


■ 차례
Desire
1장 욕망의 세계사 - 물질과동경이 역사를 움직인다
1.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 - 커피와 홍차
2. 세계사를 달리게 하는 양대 바퀴 -금과 철
3.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Modernism 
2장 서양근대화의 힘 -모더니즘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

1.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2.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생겨났다
3. 경시된 근대의 ‘신체’


Imperialism
3장 제국의 야망사 - 군주들은 왜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는가

1. 야망이 만들어낸 ‘제국’이라는 괴물
2. 성공하는 제국 실패하는 제국
3.세습은 제국 붕괴의 첫걸음


Monsters
4장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이 일으킨 격진
 
1.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2. 20세기 최대의 실험,사회주의
3. 위기가 만들어낸 파시즘이라는 괴물


Religions
5장 세계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교가있었다 - 신들은 과연 세상을 구원했는가
1.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2.암흑이 아니었다! - 재인식되는 중세
3.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것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Desire

1장 욕망의 세계사 - 물질과 동경이 역사를 움직인다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

사람의 욕망을 부추긴다는 의미에서는 세계사에서 브랜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는 일종의 기호(표상)입니다. 브랜드 인기의 측면에서 보면 실질보다 기호가 우선시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찬 디오르, 샤넬, 루이뷔통 같은 브랜드 물건을 구매할 때 가장 중시되는 것이 바로 마크(로고)입니다. 물건의 품질 자체는 사실 그다지 문제되지 않죠.


프라다 핸드백은 원가를 생각하면 웬만한 사람은 절대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가죽으로 된 작은 백 하나에 백만 원 가까이 되는 거액을 기꺼이 지불하는 까닭이 바로 그 삼각형 마크 때문입니다. 물론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물건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그 마크가 품질보증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정말 품질에 대해서만 돈을 지불하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브랜드 상품은 가격이 지나치게 비쌉니다. 이런 사례의 하나로 들어서 미안하지만, 가령 에르메스 수첩의 경우 속지(리필)만도 몇만 원에서 시작해 종류에 따라 십만 원 가까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이즈도 독특해서 내키지 않아도 매년 에르메스의 속지를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에르메르니까"라는 한 마디로 용서됩니다. 오히려 비쌀수록 다른 사람이 쉽게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사회적인 지위로 이어지고,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도 그만큼 높아지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에르메스라면 브랜드로서 전통이 있지만 최근 급성장한 브랜드들 중에는 품질조차 검증이 안 된 것도 더러 있습니다. 그 까닭은 최근의 브랜드 전략이 품질보다는 다른 측면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브랜드 전략이 성립하는 것은 광고에 의해 기호가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와 같은 기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는 기호를 소비하는 생활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현대에는 거의 모든 것이 기호를 소비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텔레비전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가운데 출연한 연예인에게 고가의 물건과 저가의 물건을 맞추게 하는 등급 매기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누구나 자신의 지식과 감각만으로는 품질의 우열을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와인인 로마네 콩티와 이만 원짜리 싸구려 하우스와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이만 원짜리 하우스와인이 백 배 가량 비싼 로마네 콩티보다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취향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단, 그런 사람이 가령 오늘은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으니까 이십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자, 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 됩니다. 기호를 소비함에 있어서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브랜드가 갖는 힘을 인정하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면 기호는 그 자체로서 실질적인 가치를 갖게 됩니다.


Modernism 

2장 서양근대화의 힘 - 모더니즘이라는 멈추지 않는 열차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 딜레마의 근대화

우리는 하루하루 다양한 형태로 압력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으로부터의 압력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날마다 들려오는 소식은 미국이 어쨌다, EU가 어쨌다, 그래서 국내 정치와 경제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하는 것들입니다. 그들, 앵글로색슨족을 중심으로 한 백인문화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하는 압력의 총량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어쩌면 전 지구적인 이슈가 되어 있는 이산화탄소의 문제보다 더 심각할지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애당초 산업화로 인해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기 시작한 것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 역시 백인사회가 전 세계에 가하는 압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우리는 어째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그토록 강한 압력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고, 그 본모습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근대화의 본질 또한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대해나간 근대화란 무엇일까요? 일본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일본인은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오랜 세월 쥐죽은 듯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중국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켜 온통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억지로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타자에 의해 흔들려 깨어 어쩔 수 없이 미국과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대항하다 보니 어느새 이쪽도 그들의 침략 방식을 배워 이웃나라들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근대화란 녀석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딜레마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산화탄소 문제 역시 본질적으로는 근대화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환경이 파괴되고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세계를 시끄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의 대부분은 이러한 근대화의 딜레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근대화를 만들어낸 유럽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이 세계를 소란스럽게 만든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 근대문명의 딜레마를 만들어낸 가속력

유럽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유럽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둥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유럽의 기둥은 무엇일까요? 유럽의 기둥은 고대 그리스 로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대 이집트를 포함한 그리스 로마, 즉 지중해 문명이 유럽의 출발점이자 원천입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는 나라로서 유럽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의 이집트는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마케도니아계의 그리스인이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므로 인종적으로는 분명한 유럽계입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이라고는 해도 바다 하나만 건너면 바로 로마입니다. 바다 건너라고 하니까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서로 오가며 사귀었을 정도니까 상당히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중해는 문명의 요람입니다. 지중해를 에워싸듯이 다양한 문명이 탄생했을 뿐 아니라 그 문명들이 서로 충돌하고 발전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다른 문명들을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유럽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지중해 문명의 특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중해 문명을 통합하는 형태로 생성된 로마제국의 그칠 줄 모르는 확장에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럽이 지중해 문명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이어받은 이 가속력이 근대문명의 딜레마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근대화가 만들어낸 가속력에 쫓기고 있습니다. 라이트형제가 인류 최초로 발동기가 달린 비행기로 비행(59초 동안에 243.84미터)에 성공한 것이 1903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가 우주공간을 38만 킬로미터 이상 이동해 달에 착륙한 것이 1969년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처음 날기 시작해 달에 발을 내딛기까지 불과 66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 그칠 줄 모르는 좀 더, 좀 더라는 압력이 바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생겨난 압력의 정체입니다.

  


Imperialism

3장 제국의 야망사 - 군주들은 왜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는가

세습은 제국 붕괴의 첫걸음

- 현대세계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제국

오늘날 어떤 나라든지 다른 나라를 무역으로 제압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제국주의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국의 야망은 영역을 바꿨을 뿐 지금도 엄연히 살아 있습니다. 특히 제국의 야망이 가장 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은 경제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애플과의 패권다툼에서 승리한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주를 해왔는데, 지금은 구글이 상당 부분 그 영역을 잠식했죠. 패권을 둘러싼 그들의 싸움은 과거 제국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모든 것을 자신이 장악하겠다는 야망은 제국주의의 본질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제국주의에 의한 패권다툼은 금융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불리고 있습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 하에 시장 개방에 거세게 내몰리고 있습니다. 시장을 개방하라는 것은 좀 거칠게 말해 나의 먹이가 돼라, 내가 너를 먹게 해달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의 영토적 침략은 줄었지만 그 대신 금융기관들이 탐욕스럽게 먹이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력이 아닌 돈의 힘으로 침략하는 시대입니다. 금융 하면 흔히 유대계 국제자본을 말하는데, 실제로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금융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 땅을 갖지 못했던 그들에게 금융자본이 유일한 영토였고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제 영토의 확대라는 유대계의 방식이 지금의 세계 정서와 절묘하게 들어맞은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국제적인 대규모 자본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일본의 경우, 다른 민족으로부터 영토를 침략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경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일본이 비록 경제대국 중 하나라고는 해도 다른 나라나 어떤 거대한 금융 집단으로부터 직접적, 간접적으로 지배를 받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런 상태가 당사자인 일본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제국주의의 최대 문제입니다. 지금 전 세계로 확대되어가는 제국은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전쟁의 이면에는 국제금융자본의 존재가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납득이 됩니다. 아무튼 전쟁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자본은 국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질수록 돈을 벌고, 어느 쪽이 이기든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국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이제는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제국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라이브도어 사건(포털사이트 라이브도어의 주가조작 사건 -옮긴이)과 하게타카 펀드(하게타카는 죽거나 병든 동물을 잡아먹는 검독수리로, 기업사냥꾼인 벌처펀드를 의미한다 -옮긴이) 등이 보이지 않는 제국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Monsters

4장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 -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이 일으킨 격진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 마르크스가 간파한 자본주의의 본질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빈부의 격차입니다. 자본이 자본을 만들어내는 이 사회에서는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더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는 반면, 가지지 못한 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부를 축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속적으로 강요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본은 늘 새로운 시장을 찾아 자신을 확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초기 자본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확대해나가며 제국화한 것도 탐욕적으로 시장을 원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의 본질과 문제점을 간파한 것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의 창시자인 카를 마르크스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책 『자본』에서 자본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구조를 날카롭게 파헤쳤습니다. 이 책의 요점은 "자본은 자기 증식을 행하는 가치의 운동체다"라는 것입니다. 즉 사회에 투하된 화폐가 유통하는 과정에서 보다 큰 화폐가 되어 회수된다는 자본이 이윤과 잉여가치를 낳는 사회 시스템을 자본주의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자본이 자기 증식한다는 것은 매우 뛰어난 통찰력입니다. 돈을 은행에 맡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투하하면 자본은 점점 불어납니다. 예컨대 100억 원을 은행에 맡기면 그 이자만으로도 부유한 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운만 따라준다면 그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땀 흘리며 일하지 않고 자본의 힘과 자기 증식력만으로 얼마든지 막대한 부를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본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매우 좋은 시스템이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보다 불공평한 시스템이 없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바로 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불공평함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덕분에 자본주의의 함정을 깨닫게 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통찰은 당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사회주의가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은 지금도 빚을 잃지 않습니다.


- 자본주의라는 녹슨 기관차는 왜 멈추지 않을까?

이렇듯 문제가 많고 모순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기관차는 도대체 왜 멈추지 않는 걸까요? 완전히 설명이 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그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던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실험이 명백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자본주의는 수많은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데 반해 사회주의는 백 년도 버티질 못하고 붕괴해버리고 말았을까요? 우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인 데 반해 사회주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맨 처음 문명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미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욕망을 바탕으로 인간은 부를 축적한 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그것을 더욱 크게 만드는 방식으로 부를 늘려왔습니다. 그런 오랜 시간을 지나며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자체가 수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하나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전면 부정하고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든, 인공적인 시스템으로 바꾸려고 한다면 반드시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싸움은 시대의 발전과 시스템의 차이로 인한 다툼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과의 투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처럼 뛰어난 인간의 두뇌도 그 발상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고, 수천 년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에는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욕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여기에서의 욕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욕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 오래 살고 싶은 마음, 좋은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 이런 것이 모두 욕망입니다. 그런 다양한 욕망들이 모여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며 시나브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고자 했기 때문에 사람들 하나하나의 근본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무시한 채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무시한 채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은 여전히 욕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세력을 확장해가고 머지 않아 세상이 공산화될 거라고 믿었던 20세기 전반기는 인간이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진 나머지 극도로 교만해진 시대였습니다. 즉, 이제까지 인간이 자연발생적으로 키우고 발전시켜온 시스템보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낸 인공적인 시스템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을 만큼의 엄청난 자신감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근대라고 하는, 자연은 본능적이고 인공은 이성적이라 여겼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근대는 이성 신앙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성으로 욕망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이 무리였다고 해서 욕망을 자유롭게 해방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두면,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 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현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상황에 따라 아군도 될 수 있고 적군도 될 수 있는 몬스터를 적절히 길들이는 지혜입니다.



Religions

5장 세계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 - 신들은 과연 세상을 구원했는가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 근대에 되살아나는 신들

근대화가 진행되었어도 종교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환상에 불과한 종교가 어떻게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금까지도 세력을 떨치고 있는지 신기합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기독교 원리주의자가 늘고 있습니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는 성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기적까지 포함해서 전부 사실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슬람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원리주의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급속히 힘을 얻는 등 최근에는 마치 근대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처럼 종교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건전한 종교는 사람들이 고달픈 현실을 견디며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데 그 환상이라는 것이 갖는 힘은 때로는 세계의 역사를 바꿔버릴 만큼 엄청납니다.


- 남미 정복의 첨병 역할을 했던 기독교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서양근대는 악의 화신입니다. 서양근대에는 제국주의 하에서 전쟁과 침략이 이루어졌고 대량 학살까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이제까지 저지른 범죄는 무엇인가, 근대화라는 죄를 짓지 않았나, 라는 것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해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독일과 일본 등의 현대 제국주의 국가들은 제대로 반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서양근대가 낳은 제국주의와 기독교가 하나가 되어 정복을 추진했다는 냉혹한 현실이 있습니다. 제국주의적 침략의 희생이 된 잉카제국의 최후를 기록한 도미니크파의 신부이자 수도사인 라스 카사스의 『인디언 파괴에 대한 간결한 보고』에는 인디오에 대한 기독교도의 잔혹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정복자들은 인디오가 한 명의 기독교도를 살해하면 그 대가로 백 명의 인디오를 죽여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보면 미국의 동시다발 테러 9.11의 보복으로 감행된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이라크 전쟁이 떠오릅니다. 당하면 백 배로 돌려준다, 하는 당시 정복자의 잔인한 모습을 지금의 미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라크의 경우, 전쟁의 명분으로 제기되었던 대량살상무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라크 전쟁 발발 후 3년 동안(2006년 6월까지)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 수만 해도 약 15만 명(세계보건기구 발표)으로, 9.11테러 때의 희생자 수 3천여 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일신교 3형제의 집안다툼이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되었고, 이슬람교는 한편으로 관용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전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유대교라는 일신교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유대교가 말하는 메시아(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라고 믿는 것이 기독교, 아직 메시아는 왕림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유대교, 예수도 모세처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의 하나로, 무함마드가 최후의 예언자라고 주장하는느 것이 이슬람교입니다. 따라서 이 세 종교가 말하는 신은 사실 같은 신입니다.


당연하게도 세 종교의 경전을 보면 공통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일신교들 가운데 가장 침략 행위와 궁합이 잘 맞는 것이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서양의 세계 침략에서 하나의 무기, 혹은 구실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복자들도 단순히 무력을 제압하고 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보급하는 것으로 미개한 사람들에게 신의 구원을 가져다준다며 정복의 명분으로 종교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악용한 이 방식을 예수가 보았다면 통탄할 일이죠.


일신교의 힘은 강해서 기독교, 이슬람교는 결과적으로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받아들여졌고, 유대교도도 전 세계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 세계의 역사, 특히 전쟁의 역사의 대부분은 이 종교 삼형제의 집안싸움이라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종교가 싸움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인간세계의 복잡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이 종교를 소생시킨다

고대부터 세계사를 보면 인간이 자기 존재의 왜소함, 불안정함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대상에 의존해온 결과가 오늘날의 문화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언어가 생기고, 문자가 생기고, 종교가 확립되고, 또 다른 방향으로는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무질서를 견디지 못하고 질서와 안정을 원하는 인간의 감정이 이 세상에 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을 갈망하는 마음이 수많은 다툼과 분쟁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새삼 종교라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현대는 종교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계의 움직임과 종교는 왜 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애초의 문제는 인간이 자기 속의 회로로는 자신을 안정시키기 어려워 타인의 승인을 필요로 하게 된 데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존재로서의 불안, 그것을 보충하는 존재로서의 신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필요로 해왔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한때 인류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과학이 신을 대신해 자신들을 안정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는데, 최근에는 그 과학이 지구환경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결과, 과학과 이성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 틈을 노려 재빠르게 치고 들어온 것이 일찍이 과학에 그 지위를 위협받은 적 있는 신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신의 이름 하에 지금까지 종교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세계사를 통해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냉철한 눈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어 가면 앞으로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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