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감 본능

   
진 월렌스타인(김한영)
ǻ
은행나무
   
12000
2009�� 10��



■ 책 소개
쾌감은 왜 존재하는가?
감각의 즐거움, 쾌감에 관한 매혹적인 여행 

 


웃음은 왜 전염될까? 왜 우리는 즐거울 때 미소를 지을까? 왜 우리는 어떤풍경을 미적으로 즐겁다고 느낄까? 왜 우리는 바람소리, 천둥소리, 물 흐르는 소리를 좋아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더 매력 있게보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스카이다이빙, 롤러코스터, 공포영화에서 느끼는 전율과 공포에서 쾌감을 얻을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과학자들이 쾌감 본능에 대해 밝혀내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경학자이자 감정생물학 분야의 전문가인 진 월렌스타인이 위질문들에 과학적 실험 결과를 토대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쾌감본능』에서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중 특히 쾌감이란 무엇이고, 개체 발생과계통 발생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문은 먼저 쾌감의 기원을 매우 포괄적인 관점에서 설명해나가며 시작한다. 쾌감의 역할을성과 번식에 국한시켜 강조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미감, 사회적 애착, 언어 등의 논의와 연결해 설명한다. 


뒤이어 쾌감 본능이 기본적인 다섯 감각, 즉 촉각, 미각, 후각, 청각,시각의 정상적인 뇌 발생 및 성장을 어떻게 촉진하는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쾌감 본능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 가지 예(우리는배우자를 어떻게 선택하는가, 왜 우리는 리듬을 좋아하는가 등의 일상적 판단)를 제시하고, 습관성 행동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 저자 진 월렌스타인 
세계적으로인정받는 신경과학자이자 감정생물학 분야의 전문가이다. 인지신경생물학이라는 신흥 분야의 개척자인 그는, 지난 10년 동안 감정의 진화에 관한 연구성과를 주요 과학지들에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터를 닦는 저명인사로 올라섰다. 그는 하버드 대학 특별 연구원과 유타 대학 조교수를 거쳐,현재 화이자 글로벌 연구개발의 글로벌 성과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정신, 스트레스, 감정(Mind, Stress andEmotions)』이 있다.


■ 역자 김한영 
서울대 미학과를졸업했고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은 『빈 서판』『본성과 양육』『마음은 어떻게작동하는가』『사랑을 위한 과학』『디지털 생물학』『이머전스』『미국의 거짓말』『마더 나이트』『갈리아 전쟁기』 등이 있다. 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번역부문을 수상했다. 


■ 차례
감사의 말 


1부 쾌감 본능과 뇌 발생 
약점과어리석음 
우리는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무엇이 새미를 춤추게 만들까? 


2부 감각 세계의 즐거움 
접촉의 쾌감
향기를 찬양하라 
초콜릿 사랑에 대하여 
자장가의 진화 
예쁜 것들을 찾아서 


3부 쾌감본능과 현대인의 경험 
비례와대칭의 쾌감 
반복과 리듬의 쾌감 
중독의 인간 
쾌락의 해부 


옮기고 나서 


후주 
찾아보기 




쾌감본능
 
1부 쾌감 본능과 뇌 발생
약점과 어리석음

- 쾌감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학계의 울타리 밖에서 좀처럼 듣기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일에 매달리고, 자녀를 등교시키고, 가사를 돌보고, 생활에 꼭 필요한 일들을 처리할 때 우리는 쾌감의 존재를 깊이 숙고하기보다는 새로운 쾌감 추구에 더 골몰한다. 두려움과 불처럼 쾌감도 처음 생긴 이래 사람들이 이용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온 일종의 자연력이다. 쾌감 본능-우리의 번식 성공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진화의 오랜 도구-은 우리를 당황과 착각으로 이끄는 현대 생활 속에 엄청나게 다양한 인간 행동, 병리적 현상, 문화적 특질의 파노라마를 만들었다.


쾌감을 이해하려면 먼저 쾌감의 역사와 진화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 인간의 마음은 단지 형태와 색, 질감과 촉감, 신화와 이야기 등에서 쾌감을 경험할까? 왜 유머는 긴장을 풀어줄까? 다른 소리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왜 음악은 우리의 활기를 돋우어 춤을 추게 하고, 기절시키고, 사랑하게 하고, 적을 향해 돌진하게 할까? 다른 동물들도 쾌감을 경험할까? 왜 우리는 아기들을 귀엽다고 느낄까? 어떻게 해서 즐거운 감정은 갓난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에서부터 다음 번 주사를 기대하며 느끼는 마약중독자의 흥분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광범위한 사건에서 발생할 수 있을까?


수백 년 동안 철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쾌감의 가치와 본질을 두고 토론을 벌였고, 보다 지속적인 행복과 비교해왔다. 물론 둘은 형제지간이지만, 성인에서 죄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중 누가 신혼여행에 어울리는 동행인지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행복을 ’인생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재능‘ 또는 ’소박한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쾌감은 일종의 반사작용, 즉 합리적 사고를 완전히 포기하고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빠져들고자 하는 불같은 충동이다. 행복은 우리의 사회적?도덕적 정체성에서 형성되는 추상적 감정-근심 없이 해변을 거니는 것, 두세 명의 아이(미국 자녀의 평균 자녀 수-역자)와 흰색 나무 담장, 성취감-이다. 쾌감 본능은 생존 본능처럼 욕망에 기초한 순수한 생물학적 명령이고, 그 욕망을 부추기는 일시적 보상은 덧없지만 대단히 감질나고 아름다워서 우리를 종종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우리는 항울(抗鬱)의 시대, 즉 행복을 향한 끝없는 탐욕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의 근원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사회적 건강(그리고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만족을 얻지 못하고 그래서 영적 세계를 탐구하고, 좋다고 하는 책들을 빠짐없이 읽고, 헬스클럽에 가입하고, 새 차를 사고, 외식을 하고, 케이블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우리 모두는 한 줌의 희열, 우쭐함, 환호, 전율, 묘미, 감흥, 환희, 충일, 명랑, 기쁨 등을 원한다. 악, 중독, 욕망, 부정, 간통, 망상, 도착 등은 어떠한가?


우리 현대인의 뇌는 우리가 수렵-채집으로 살던 시절에 진화의 방앗간에서 나온 재료로 형성되었고 그래서 인류 역사의 97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옛날 환경과 근본적으로 다른-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인-조건들을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왜 쾌감이 진화했으며, 쾌감의 진화를 실현한 배경과 선택 요인들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 조건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그 차이의 개인적?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쾌감은 부수적 현상, 즉 뉴런들이 운 좋게 적시에 적소에서 점화하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쾌감은 우리의 먼 과거에서 매우 특수하고 적응력 있는 기능들을 보조하기 위해 진화해왔다. 쾌감과 감정을 자극하는 유전자들은 자연 선택의 성공 사례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공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세계에서 쾌감의 심리학적?생물학적?문화적 기초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쾌감이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 어떤 문제들을 해결했는지 고찰해야 한다. 만일 쾌감이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어떤 선택 요인에 대해 적절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했다면, 쾌감의 표현과 감정을 빚어내는 유전자들은 다른 대부분의 유전자들처럼 오래전에 생태학적 시간의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 ‘사회다윈주의’가 아닌 다윈주의
다윈주의와 인간 본성이 한 입에서 나오면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언짢아한다. 사실 다윈 자신은 위대한 저서 『종의 기원』에서 인간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 사고, 감정-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바로 그 요소들-이 일부분이라도 생물학적?유전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는 개념에 분개한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가 단백질에 의해 정해지는 운명에 종속해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 책 전체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다윈주의 이론은 결코 우리의 유전자가 그런 운명에 종속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왜 감정이 진화했고 특히 쾌감 본능이 진화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은 곧 쾌감이 어떻게 우리의 미적?사회적?도덕적 선택에 그리고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과학자들은 사회적?문화적 요인들이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를 연구하는 데에만 전념했다. 교수들은 대개 진화론의 원리를 이용해 쾌감 같은 -난처한 주제를 연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그런 접근법에서는 경험의 역할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점을 염려했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자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학습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에겐 타고난 성향이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고, 단지 시행착오를 통해 즐거운 것을 학습한다고 한다. 이것은 가끔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히 일반적인 선호 성향들이 출생 직후부터 드러난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자들이 입증했다. 예를 들어 신생아들은 신맛보다 단맛을, 무표정한 얼굴보다 미소를, 비대칭의 물체와 장면보다 대칭적인 물체와 장면을, 일정치 않은 소리보다 리듬을 더 좋아한다. 이 선호 성향들은 유아가 처음으로 쿠키 맛을 보거나 농담을 알아듣기 훨씬 전에 출현한다.


지난 20년 동안에 일어난 과학 혁명은 과거에 인간 행동을 연구했던 방식과 뚜렷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사고는, 인간 본성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자연 선택과 성 선택 모두에 의해 주조되었는지를 고찰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에 의존한다. 마음은 어떻게 문제 X를 해결하는가라는 식의 단순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왜 그 구체적인 마음?뇌 메커니즘이 우리가 수렵-채집을 하며 살던 시대에 선택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혁명이 지금은 고전이 된 E. O.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발표된 1975년에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사회생물학』은 선택 요인들이 번식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책이다. 하나의 과학 문헌이 그렇게 강렬한 정치적 분노를 자아낸 경우는 지금까지 매우 드물었고, 특히 사회 비판가들은 그 책을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로 보았다. 윌슨의 수업에 참석해 소음으로 수업을 방해하라고 선동하는 포스터가 하버드 대학 전체에 나붙었고, 윌슨의 많은 동료들이 언론에서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 혁명은 분자생물학, 행동유전학, 인지심리학, 문화인류학, 신경과학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견고한 토대와 지지를 확보하면서 힘을 키워나갔다. 사회생물학과 그 법정 상속인인 진화심리학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그 결과 오늘날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주요 패러다임으로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 행동과 문화를 연구한다.


2부 감각 세계의 즐거움
향기를 찬양하라

- 이끌리는 냄새
좋든 싫든 우리는 냄새를 맡고 산다. 우리가 종종-무의식적으로-주고받는 미묘한 냄새 메시지는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과 배우자 선택, 구애, 배란기 같은 광범위한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페로몬이란 말은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은밀한 냄새 언어로 소통을 하는 포유동물, 여성을 유혹한다고 장담하는 수퇘지 냄새의 향수 한 병 값으로 300달러를 지불하는 사교계의 유명 인사들, 매달 동시에 월경을 하는 기숙사 여학생들이 바로 그런 예다.


사람의 페로몬은 분리하고 확인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도 다른 포유동물처럼 페로몬을 이용해 화학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최초의 믿을 만한 증거는 예기치 않은 곳, 즉 웰슬리 칼리지 기숙사의 어느 방에서 나왔다. 1967년 마사 맥클린토크라는 이름의 학부생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여러 명의 여학생들이 같은 시기에 월경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동조 현상에 과연 생존 가치가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조사 계획에 두 개의 간단한 질문을 포함했다. “마지막으로 언제 월경을 했는가?”와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은 누구인가?”였다. 조사 결과, 함께 많이 어울릴수록 동시에 월경을 한다는 게 드러났다. 이 동조 현상을 일으키는 메커니즘(현재 맥클린토크 효과라고 알려져 있다)은 그로부터 10년 후에야 발견되었다. 캘리포니아 소노마 주립병원의 심리학자 마이클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간단한 실험에서 28일마다 규칙적으로 월경을 하는 여자의 겨드랑이에서 추출물을 얻어 1주일에 세 번씩 16명의 여자들에게 그 냄새를 맡게 했다. 넉 달 안에 모든 여자들인 똑같은 3일 내에 월경을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의 냄새가 여러 명의 월경 주기에 영향을 준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효과에 생존 가치 또는 적응 가치가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그에 대한 답은 이듬해에 밝혀졌다. 남자들도 주기가 있으며, 심부체온과 테스토르테론 같은 중요한 스테로이드 생산의 규칙적인 등락이 다른 남성들의 존재에 따라 조절될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최종 연결고리는 추가적인 실험들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한 안드로겐 호르몬의 생산이 종종 아내나 애인의 월경 주기에 동조한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들을 종합하면 규칙적으로 가까이 접촉하는 남녀 사이에는 뚜렷한 동조 현상이 나타나고, 이 모방 현상은 효과적인 유성생식에 필요한 시간 계산을 용이하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위의 조절 외에도 페로몬은 성적으로 이끌리는 사람과 형제처럼 느껴지는 사람의 구별 같은 여러 개인적인 사건에도 작용한다. 그러나 냄새를 통한 이 은밀한 소통의 신체적 기초는 무엇일까? 배우자의 소변이나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페로몬은 어디서 나오고 어떤 냄새가 날까?


아마존 열대 우림에 사는 데사나 족에게는 후각을 중심으로 구성된 우주론적 세계관이 있다. 그들 사회에서 개인의 정수(essence)는 그의 냄새로 드러나고, 그 냄새는 뼈에서 나온다고 한다. 구애와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는 관습은 다양한 냄새의 관계와 맞물려 있다. 데사나 족은 한 부족 사람들에게는 공통의 냄새가 있다고 믿으며, 비슷한 냄새를 가진 사람들 간의 결혼을 엄격한 법률로 금지하는 후각적 근친상간 금기를 따른다. 어떤 냄새는 절대로 섞여서는 안 되고, 또 어떤 냄새는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사람의 페로몬이 어떻게 배우자 선택 같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은 엉뚱한 곳, 즉 데사나 인디언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외래 조직을 이식받으면 숙주의 면역계가 종종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모든 세포에는 면역계가 ‘자아’로 인식하는 단백질이 들어 잇다. 외래 세포가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는 그것을 침입자로 분류하여 꼬리표 단백질을 붙이고 그것을 파괴할 목적으로 항체를 생산한다. 면역계는 침입자 세포를 기억하고, 다음에 똑같은 침입자를 발견할 때에는 항체를 처음부터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더 빨리 항체를 출격시킨다.


우리의 DNA 중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라는 조각은 세포에 침입한 병원체를 식별해 면역계의 최전방 수비 부대 기능을 하는 면역세포들의 유전 암호를 지정한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단 몇 개의 대체형(대립 유전자라고 부른다)이 있는 반면에 MHC 유전자는 100개 이상의 대체형이 있으며 각각의 대체형은 각기 다른 잠재적 병원체에 대해 면역성을 제공한다.


유전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대개 고전적인 단일 대립 유전자 조합-예를 들어 눈이나 머리카락의 색 같은 특성을 승자가 독차지하는 우성 대 열성 게임-을 떠올린다. 만일 한쪽 부모의 눈은 파랗고 다른 부모의 눈은 갈색이면 한쪽 유전자가 눈의 색을 지배하고 다른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는 발현하지 못한다. 


MHC 유전자는 공동우성이라는 점에서 다르게 활동한다. 당신이 아버지에게 질병 A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MHC 유전자를 물려받고, 어머니에게서 질병 B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MHC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가정하자. MHC 유전자는 공동우성이기 때문에 당신은 두 질병 모두에 저항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MHC 유전자의 이형접합성이 최대치인 부와 모의 조합이 가장 강인한 면역 기능을 가진 자식을 만들어내고 그 자식은 MHC 유전자가 많이 중복되는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에 비해 분명한 생존 이익을 누릴 것이다. 후자의 MHC 유전자는 병원체 스펙트럼의 더 적은 부분에 대해서만 저항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변이는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한 선택 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무엇이 우리를 우리 자신과 다른 MHC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에게 끌리게 만드는가이다.


최초의 단서들은 동물 실험에서 나왔다. 암컷 생쥐에게 두 구혼자를 제시하면 암컷은 MHC 유전자들이 자신의 것과 가장 적게 중복되는 짝을 선택한다. 이때 암컷은 냄새를 이용한다. 과학자들은, 각 유형의 MHC 유전자는 신체에서 분비하는 단백질 부산물의 유전 암호를 지정하는데, 그 단백질이 저마다 고유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후각 신경이나 후각상피세포에 손상을 입은 생쥐들은 이 실험에서 단지 절반의 성공률-이형접합 배우자를 두 번에 한 번꼴로 선택-을 기록했다. 따라서 당신이 영리한 설치류라면 배우자 선택 과정의 핵심은 구혼자에게서 올바른 냄새가 나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자신의 것과 다른 형태의 MHC 유전자를 가진 잠재적 배우자의 냄새에 가장 잘 이끌리는 생쥐들이 근친 교배를 할 확률이 적고 자식의 유전적 적응도를 최대로 높일 것이다. 그런 과정이 인간의 배우자 선택에도 중요할까? 여성용 향수와 남성용 향수의 매출이 연간 사치품 소비액의 12~15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우리 인간도 냄새가 매력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배우자 선택을 위해 매우 비슷한 과정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진화심리학자 크리스 베데킨트와 그의 동료들은 100여 명의 남녀들을 대상으로 실험 대상자들이 이틀 동안 입었던 티셔츠의 냄새를 맡고 점수를 매기라고 요구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한 명씩 방에 들어가면 그곳에는 냄새나는 티셔츠 여섯 벌이 각각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다. 참가자들은 ‘섹시함’과 ‘즐거움’을 기준으로 각 셔츠에 대해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즐거움과 섹시함의 점수는 냄새를 맡은 사람과 티셔츠 주인의 MHC 유사성과 관계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즐겁고 섹시한 냄새는 MHC 유전자들이 냄새의 주인과 가장 적게 중복되는 반대 성의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왜 특정한 냄새가 좋으냐고 묻자 많은 참가자들이 현재 애인이나 과거의 애인을 기억하게 했다고 대답했다. 흥미롭게도 낮은 점수는 받은 냄새들은 형제나 그밖에 친족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정반대를 매력으로 느끼게 한 사례이며,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배우자 선호 성향이 이런 선택에 근거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자식의 면역계에 이형접합성을 높일 것이다.


3부 쾌감본능과 현대인의 경험
쾌락의 해부

이 책은 단 하나의 질문, ‘쾌감은 왜 존재하는가?’로 시작했다. 고대 이래로 쾌락의 본질과 유용성에 대해 쾌락주의 진영과 금욕주의 진영 간에 열띤 논쟁이 계속되어 왔으며 서구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역사의 전 기간에 쾌락에 대한 대중의 견해는 수많은 정치, 법률, 종교, 도덕적 문제 등과 얽히고설키면서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다. 공개적으로는 쾌락 추구를 억눌렀던 보수적 시대가 지나면 어김없이 보다 관대한 시대가 찾아왔고, 그 후에는 다시 보수적 시대가 찾아왔다.


에피쿠로스학파는 흔히 이 논쟁의 한 극단, 즉 사회적 책임을 망각할 정도의 무절제한 쾌락 추구를 옹호하는 입장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원래 에피쿠로스학파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즐거움 같은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쾌락과 단지 욕망을 느끼고 추구하는 쾌락을 구분해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대의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은 더 큰 불쾌함을 피하기 위해 상당히 엄격한 생활방식을 따랐다. 이 철학은 17~18세기에 영국의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 프랑스의 프랑수아 디드로의 저작들을 지배했던 감각주의 윤리학의 토대가 되었다. 이 윤리학 운동의 중심 개념은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부정적인가를 판단하는 최종 심판관은 우리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감각에 쾌감을 불러오는 경험은 좋게 여겨지고, 불쾌한 경험은 나쁘게 평가된다. 이 맥락으로 보면 도덕성의 기초는 개인에게 있고 그래서 상대주의적이다. 이 관점은 19세기에 공리주의를 낳았다.


이 책은 쾌감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쾌락주의 관점 그리고 다양한 믿음 체계를 따르지만 그 근저에는 모두 쾌락과 불안한 휴전 협정을 맺고 있는 현대의 금욕주의와 분명히 다른 세 번째 관점을 견지한다. 쾌감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감정은 사람과(科) 원인의 진화 과정에서 때때로 발생한 과제와 기회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능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쾌감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길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엄밀한 진화적 관점에서 쾌감은 종종 성 행동과 번식에만 초점을 맞춘 짤막한 이야기로 요약되고는 한다. 섹스는 유전자 증식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자연 선택을 통해 쾌감과 연결되었다는 이야기로 논의는 끝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인간의 진화와 발달에서 쾌감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다. 현대의 쾌락 기호는 놀라울 만큼 다양하고 수많은 성격 및 문화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 쾌감은 폭넓은 경험으로 유발되고 각각의 경험은 각기 다른 감각계와 관련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공연한 행동이나 언어적 묘사로 쾌락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나름의 상황과 문화 규범 내에서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저마다 다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쾌감을 준다고 분류하는 감각에는 핵심적인 공통분모가 있다. 이 핵심적인 감각들에 대한 우리의 선호 성향은 우리가 생애 초기에 정상적인 뇌 발생에 필요한 감각적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연 선택을 통해 출현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운명적으로 똑같은 현상에 이끌린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이끌리는 자극 특징들의 일반적 유형이 같다는 뜻이다. 현대의 생활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요인들이 자연에 의해 형성된 감각적?행동적 선호 성향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라는 현대적 문제를 고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중독은 분명 우리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초콜릿과 섹스 그리고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중독에 관한 언급이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독이 헤로인, 알코올, 니코틴, 약국에서 파는 약물, 도박 또는 당신이 좋아하는 멜로드라마든 중독은 두 개의 주요소에 의해 조장된다. 약물이나 경험을 얼마나 쉽게 획득할 수 있는가가 첫 번째이고, 그것이 중추신경계를 얼마나 빠르게 활성화하는가가 두 번째다. 예를 들어 담배는 쉽게 구할 수 있고 니코틴은 도파민성 뇌 체계들을 빠르게 활성화하므로 흡연은 중독성이 높다. 그 외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세 번째 요소는 중독의 초점이 둘 이상의 쾌락 선호 성향에 맞춰져 있는가이다. 많은 형태의 중독이 복합적인 자극물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중독을 둘 이상의 기본적인 쾌락 선호 성향으로 구성된 복합 경험으로 볼 수 있다. 흡연과 알코올은 둘 다 중독성이 있고 이것이 결합하면 중독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실제로 흡연과 음주 중 어느 하나에 중독되면 다른 하나에도 중독될 가능성이 높다. 두 형태의 자극은 모두 동일한 보상 메커니즘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중독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현대 사회에서 쾌감이 행하는 역할을 이해하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쾌감이 인류의 진화에 어떤 기능을 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 쾌감이 인간의 뇌 발생-배아에서 걸음마 단계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쾌감이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자녀에게 줄 성장 환경을 현명하게 선택하려는 부모에게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행적에 따라 발달하려면 반드시 자극이 필요하지만, 모든 자극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최적의 자극 형식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쾌감 본능은 그 자질을 가진 대상과의 놀이에 아이를 반복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나머지 일을 수행한다. 물론 성인에게도 엄청난 이익이 발생한다. 쾌감은 현대 생활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많은 역할이 발생기의 본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쾌감의 본래 목적을 이해하면 중독에서 광고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쾌감의 영향을 받는 현대 생활의 주요 특징들을 꿰뚫어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경험을 올바로 이끌 수 있다.


쾌락 선호 성향은 성장과 함께 사라지는 초기 흔적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쾌락 선호 성향은 경험과 문화적 규범에 의해 구체적 형태를 갖추지만, 뇌의 깊은 곳에 닻을 내리고 여전히 우리 내면에 잔존한다. 뇌 발생이 생에 초기에 정점에 도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일생동안 꾸준히 지속하는 과정이다. 늙은 뉴런은 죽고, 새 뉴런들이 탄생한다. 청소년기 이후에는 뇌 발생이 크게 둔화하므로 쾌감의 역할은 감소한다. 그러나 발생에 중요한 여러 감각 형식을 경험할 때 발생하는 쾌감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재능이지만, 그 맛과 향은 각자의 생활과 조건에 따라 다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