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헤더 리치·로버트 그레이엄(역자: 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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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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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5��



>& ■ 책 소개


& 글을 쓸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책의 순서에 상관없이 유익하고 광범위한항목들을 구성하였다. 주요 용어들의 정의, 창작 과정에 대한 조언, 출판, 실제 글쓰기 연습, 이론·문화·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코멘트뿐만 아니라추가적인 학습과 사전 조사를 위한 정보도 함께 담았다. 


& 각 항목은 간략한 용어 정의에서 짧은 에세이까지 아우른다. 플롯, 등장인물,대화, 운율과 같이 익숙한 주제를 다루는 한편 목소리, 이행, 음소 등 생생한 용어도 함께 정리하였다. 더불어 자서전, 픽션, 독백, 각본쓰기, 단편 소설 등 일반적인 용어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작가의 삶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 저자 
헤더 리치(HeatherLeach)
 -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수년간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 유명 잡지 「The BigIssue(빅이슈)」와 BBC 라디오 등 다양한 언론에 단편 소설과 논픽션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2004년에는 "에세이 대회(TimeHigher Education Supplement Essay Competition)"에서 우승했다. 『The Road to Somewhere:A Creative Writing Companion(저 길 너머에: 창조적 글쓰기의 동반자)』의 공동 편집자이며, 스페인 레이다대학(University of Lleida)과 함께 글쓰기 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로버트 그레이엄(Robert Graham) -체셔(Cheshire)의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단편 소설이 여러 잡지와 소설집에 실렸으며 BBC 라디오4에소개되었다. 2006년에는 영국 트루바두르(Troubador) 출판사에서 『Holy Joe(홀리 조)』를 출간했으며, 키스 바티(KeithBaty)와 함께 『Elvis - The Novel(소설 엘비스)』(The Do-Not Press, 1997)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저 길너머에: 창조적 글쓰기의 동반자』의 공동 저자이자 편집자이며, 개인 저서로는 『How To Write Fiction And Think AboutIt(픽션은 어떻게 쓰는가)』가 있다.


■ 역자 윤재원
숙명여자대학교에서영어영문학 및 정보방송학을 전공하였으며, 서울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한영과 국제회의 통역을 전공하였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 개발프로젝트의통역사로 일한 경험과 다수의 유명 잡지, 관광 홈페이지, 박물관, 전시관 등을 통한 번역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통번역 활동을 하고있다. 현재 유신 코퍼레이션에서 경제자유구역 프로젝트 관련 통번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싱글즈』『한국의 축제』『인사이드 아웃 여행시리즈-베이징(가제)』『프레젠테이션 챔피언』『커뮤니케이션은 기술과 과학이다』등이 있다.


■ 차례
글 쓴 사람들
들어가며


Chapter 1 본격적인 글쓰기를 위한사전준비
Unit 1. 시작
Unit 2. 독서와 사전조사


Chapter 2 일반적인 관념과태도
Unit 1. 태도
Unit 2. 장애물
Unit 3. 자아, 마음, 그리고 의식


Chapter 3 글쓰기의 핵심테크닉
Unit 1. 등장인물, 서술자, 그리고 시점
Unit 2. 실험적 글쓰기
Unit 3. 각본쓰기
Unit 4. 플롯
Unit 5. 구조
Unit 6. 기술


Chapter 4 글의 형식과장르
Unit 1. 형식과 장르
Unit 2. 시
Unit 3. 문법과 구두점


Chapter 5 출판과 정보
Unit1. 출판
Unit 2. 정보 기술
Unit 3. 디자인과 레이아웃
Unit 4. 편집과 수정


Chapter 6 작가로서의 이념과삶
Unit 1. 사상과 운동
Unit 2. 글 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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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본격적인 글쓰기를 위한 사전준비

시작

첫 문장은 실제 출간되는 책의 시작이 될 수 없다. 글을 써 나가려면 아이디어를 촉발시키는 번뜩임이 필요하다. 청중을 사로잡는 연사의 말 한 마디, 제스처,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어떤 것 등이다. 헨리 제임스는 이러한 한 마디를 씨앗에 비유했다.


내 손에서 형태를 갖추려 발버둥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포인턴의 소장품』을 위한 우발적 힌트처럼 내 이웃이 우연히 떨어뜨린, 마치 바람에 날릴 듯 하찮고 작은 단 하나의 씨앗에서 싹튼 것이다. 그것은 말의 흐름 속에 부유하던 단순한 입자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대화, 모든 순간은 글을 시작할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항상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준비되어 있으려면 집중력은 물론 편안하고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음악을 듣거나 조용히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방 안에 혼자 있거나 시끄러운 바에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욕조에 몸을 뉘이기도 한다. 『전쟁과 평화』의 저자 레오 톨스토이는 아침 산책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아침에 글을 쓴다. 최근 루소도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산책을 다녀온 후 자리에 앉아 작업한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최고의 생각은 아침에 산책을 다녀온 후,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또는 산책 도중에 제일 잘 떠오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적어두어야 한다. 시작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백지는 갓 내린 눈처럼 유혹적일 수도, 혹은 북극처럼 황량할 수도 있다. 텅 빈 화면에서 참을성 없이 깜빡거리는 커서만큼 마음을 텅 비워버리는 것도 없다. 그러나 첫 마디는 이야기의 초안의 시작일 뿐, 완성된 작품의 시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잘못된 낱말은 다시 고쳐 쓰면 되고 엉망으로 구성된 문장은 마우스 클릭으로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위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 시, 소설, 각본, 그 밖에 다른 모든 좋은 글쓰기 작품은 적어도 세 번 시작한다. 첫 번째는 싹, 즉 앞으로 자라나게 될 무언가의 출발이며, 두 번째는 첫 번째 초안이다. 초안이란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머리도 빗지 않고 샤워도 하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괴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 번째 시작은 독자에게 속한 시작이다. 말하자면 책을 펼칠 때 당신이 처음 보게 될 문장이다. 그것은 깔끔하고 단정하고 청결한 상태로 페이지 위에서 빛나고 있다. 모든 낱말은 빗질이 되어 있고, 모든 문장은 양치질을 끝냈다. 글쓰기는 그 중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일반적인 관념과 태도

태도

- 나이

글쓰기에 나이 제한은 없다. 메리 셀리는 1818년, 20세가 되던 해에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했다. 완성한 지 일 년 만에 출간된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출판되고 있는 명작이다. 한편, 캐나다의 알리스테어 맥레오드는 65세 되던 해에 그의 첫 번째 소설 『노 그레잇 미스치프』로 국제 IMPAC 문학상을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글쓰기를 시작해서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한다. 어떤 이들은 몇 년 동안 집필을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그만 두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느지막이 글쓰기에 입문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글쓰기에 나이 제한은 없다. 그러나 나이와 글쓰기에 관련된 편견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인생에 관해 쓸 수 있으려면 충분히 성숙하고 경험도 풍부해야 한다든지, 나이든 작가는 젊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되고 젊은 작가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작품을 쓸 수 없다든지, 또는 젊은 사람들은 언제나 섹스, 약물, 로큰롤에 관한 글을 쓰고 나이든 작가들은 골프, 이혼, 죽음에 관해서만 쓴다는 선입견이 있다.


물론 나이는 성별, 인종, 계급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계관과 경험, 나아가 언어의 사용 방식에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아이디어와 기술, 의지가 있다면, 언제 글쓰기를 시작하든 무엇에 관해 쓰든 상관없다. 다시 말해, 선입견은 그저 선입견일 뿐이며, 글쓰기에 너무 늙거나 너무 젊은 때란 없다.



글쓰기의 핵심 테크닉

실험적 글쓰기

글쓰기의 역사는 실험적 역사다. 17,8세기에 처음 등장했을 당시 소설은 기존의 묘사 기법을 탈피한 참신함 그 자체였다. 단편 소설, 영화 시나리오,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 모두 한때는 혁신적인 글쓰기 형식이었다. 워즈워스와 콜리지는 이러한 글쓰기 형태가 학교 교과 과정에 정착되기 훨씬 전인 1798년에 그들의 새로운 『서정담시집』이 "실험으로 간주되어야 하며…독자는…아마도 자주 낯선 느낌과 싸워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진부하고 지나치게 전통적인 형태로 간주되는 것들에 대항하여 실험적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각 세대에는 언제나 문학의 기득권층을 우롱할 방법을 모색했던 거물들이 있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유명세를 타거나 부를 누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더 흥미를 느꼈던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적 법칙을 깨뜨릴 수많은 실험적 방법을 찾아냈다.


오늘날 이러한 법칙들은 컴퓨터와 통신 기술로 이미 깨진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틀에서 탈피해 새로운 글쓰기 영역을 창조하는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어쩌면 글쓰기 관련 책 자체마저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이퍼텍스트와 기술적 실험에 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IT 참조) 여기에서는 책 속에 나타난 문학적 실험에 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


19세기 사실주의에 대항했던 20세기 초반 작가들은 정신분석학 이론의 영향으로 마음의 본성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하루 동안 더블린 시를 오가는 수많은 등장인물의 생각, 느낌, 아이디어, 인상을 묘사한다. 마지막 장은 몰리 블룸이 침대에 누워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는 내면의 독백으로 구성되며, 그에 따라 문장도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처럼 시간의 연대기적 순서를 무시한 채 배열되어 있다.


그래 그이가 잠자리에서 계란 두 개하고 아침을 먹겠다고 하다니 시티암즈 호텔 이래로 그런 일은 그 전에 결코 한 번도 없었지 그 당시 그이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병이라도 난 듯 드러누워 있거나 고상하고 점잖은 채 뻐기면서…


보통 의식의 흐름이라 불리는 이러한 글쓰기 방법은 유용하고도 재미있는 기법으로 창작 수업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복잡한 의식 세계는 종이 위에 고정될 수 없다. 이리저리 시도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의식이 복잡한 것은 마음과 세계 사이의 경계면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또 우리는 오로지 마음으로만 마음 자체에 대해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성찰은 많은 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메타픽션이라 불리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메타픽션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작품이 허구임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자의식을 발휘하는 것, 즉 작가가 작품에 개입하는 것이 작품에 심각한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경계에 의문을 품은 작가들에게 이러한 규칙은 한계이기보다는 도전 대상이었다. 메타픽션을 써보고 싶다면 일단 이야기를 한 문단 쓴 다음 자신의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속에 직접 개입하여 글의 목소리를 바꾸어보면 된다.


실험의 또 다른 주요 영역은 선형과 비선형을 서로 엮거나 대립시키는 것이다. 퍼즐 내러티브 작품인 조르주 페렉의 『삶, 유저의 매뉴얼』은 소설의 배경이 격자 설계에 따라 층이 서로 연결된 아파트 건물이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어나가도 좋고, 띄엄띄엄 읽어도 상관없다. 또, 줄리오 코르테자가 지은 『돌차기 놀이』는 숫자가 붙은 책의 각 부분에 놀이 방법을 제시하면서 독자가 놀이를 즐길 방법을 스스로 찾게 한다. 실험적 픽션 작가인 제프 눈은 2001년 뉴스 기사에서 영화 제작자와 뮤지션은 급반전, 정지 화면, 스크래치 등을 활용해 훨씬 자유롭게 실험하고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은 내러티브 예술에도 흥미롭게 적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와 형식의 거부는 어쩌면 오늘날 실험적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최악의 경우 억지스럽고 모호하며 배타적이고 목적성이 결여된 작품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속 없는 전위예술 작품들은 항상 너무 많았다. 실험만을 위한 실험적 글은 제대로 된 실험이 아닐뿐더러 독자와의 진정한 유대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은 오늘날 시대와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빌려 우리가 살아가는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세계를 묘사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물론 편안하고 익숙한 스토리와 플롯, 명확한 대답과 깔끔한 결론의 즐거움도 누릴 필요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느슨함, 열림, 모험, 놀이가 필요하며, 워즈워스가 말한 것처럼 낯선 느낌과 싸울 때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의 형식과 장르

형식과 장르

- 장르(genre)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작품의 범주를 분류한 것이다. 소설은 범죄 소설, 공상 과학 소설 등이 있고, 영화는 느와르, 로맨틱 코미디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각 장르에는 그 장르만의 전통적인 형식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장르 소설은 다소 열등한 작품으로 취급되며, 특정 장르에 속하지 않는 작품보다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간주된다. 만약 장르 작품을 쓰고 있는 중이라면, 작품성보다는 시장성을 염두에 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모든 소설은 곧 장르 소설이며 문학 소설 또한 한 장르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 시적 장르(poetic genres)

전통적인 시적 장르는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 서사시, 희곡에서 유래하며, 서구 세계의 글쓰기 또한 여기에서 기원한다. 일례로 서정시는 단시(短時)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개인적 감정이 아닌 인간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그리스 서사시는 형식상 길이가 긴 내러티브 시였는데, 이후 자연스럽게 소설로 발전했다. 그러나 서사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의 형태로 창작되는 작품 형식이다. 시의 스토리텔링 욕구는 중세 후반 담시로 이어졌다. 한편, 그리스 희곡은 연극적 글쓰기의 기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운문 희곡과 시적 독백으로 이어졌다. 시적 언어, 톤, 내러티브를 쓸 때는 타인의 목소리로 쓰는 연습을 해보자.


시는 주요 장르 외에도 하위 장르가 매우 많으며, 특정 상황과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러한 하위 장르들 역시 나름대로 그 후손을 낳았으며,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아래에 나열한 시 장르 중 적어도 하나는 읽어보았거나 이미 써보았을 것이다.


■애가 혹은 엘레지(elegy),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결혼 축시(epithalamium)

■전원시(pastoral), 자연적 삶을 축복하는 시

■풍자시(satire), 한 개인이나 단체를 비꼬는 것(정치적 시의 핵심이다)

■패러디(parody), 다른 시나 문학 작품, 광고 등을 흉내 내는 것

■종교시(religious poem), 성가나 찬송가 등

■송시(ode), 사람이나 추상적 가치 혹은 사물을 기리는 시


문법과 구두점

- 문법

낱말이 모여 문장을 이룰 때 따라야 할 규칙이다. 문장 안에서 단어가 오는 순서의 체계를 정리한 통사론은 구두점처럼 문법의 일종이다. 만약 무심코일지라도 문법에 어긋난 글을 쓴다면 독자는 당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것이다. 물론 등장인물을 문법에 약한 사람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문법에 맞는 어투를 배척하는 식으로 글을 쓴다면, 스토리가 얼마나 강력하든지 서술자가 얼마나 공감가는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독자는 작가 자신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라고 가정할 것이다. 물론 의식의 흐름을 문법 규칙의 파괴로써 표현한 조이스와 울프 같은 작가도 있지만, 그들이 문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 구두점

린 트러스는 구두점이 속도를 늦추고 길을 우회하거나 정지하라고 일러주는 교통 신호와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신문 스타일북(철자, 약자, 구두점 등의 규칙을 쓴 편람)을 인용하면서 구두점을 "독자가 비틀거리지 않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호의"라고 정의한다. 문법 오류와 마찬가지로 구두점의 잘못된 사용은 독자에게 당신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구두점을 사용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에 관해 간단한 지침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당신이 만든 문장이 문장의 형태를 띠는지 확인하자. 그리고 콜론과 세미콜론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아두자. 콜론은 목록이나 사례를 언급하기 전에 사용하며, 세미콜론은 주로 하나의 문장을 수식어가 따라 붙는 두 개의 주절로 나눌 때 사용한다. 또 직접 화법에서는 구두점이 항상 큰따옴표 안에 온다. 의문문에서는 항상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출판과 정보

정보 기술

1980년대 이후 컴퓨터는 작가 세계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그 당시 대다수 작가는 타자기로 작품을 쳤으며, 힘들게 편집하고, 손으로 직접 써 가며 원고를 교정하고, 그러고 나서 초안을 다시 타이핑했다. 오려두기와 붙이기는 말 그대로 가위질과 접착제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는 책 전체를 클릭 몇 번만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맞춤법 검사는 사전을 대체했고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출판 기준에 맞추어 페이지 레이아웃을 정해준다. 그리고 우리 작가들은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든지 시장에서 퇴출되든지 둘 중 하나인 상황을 맞았다. 컴퓨터는 분명히 유용한 도구이며, 더 이상 잉크로 범벅된 타자기 리본과 씨름할 필요가 없어졌다. 설마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펜을 휘두르는 오랜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레일 위를 달리는 컴퓨터 기차를 멈춰 세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늘날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는 혁신의 시대에 어떠한 새로운 디지털 형식이 예술과 대중문화의 주류가 될 것인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분명히 헛된 시도이다. 인쇄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전쟁과 평화나 다빈치코드는 말할 것도 없이 내러티브 픽션이 이렇게 큰 대중의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새롭게 다가온 신선하고 창조적인 기회를 활용하는 것뿐이다. 워드 프로세서 덕분에 글쓰기 과정은 예전보다 확실히 간편해졌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쇄기나 중세 시대 필사본이 문학계에 혁명을 가져왔던 것처럼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주요 특징들도 우리가 언어,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혁신적인 형식과 장르,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가, 새로운 형태의 독서와 출판 방식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인터넷은 때로는 성가시고 압도적이며 유용한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별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수반된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도서관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인터넷과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와 같은 혼란을 느꼈다. 한편, 접근성 측면에서 인터넷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넷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화면이 있는 휴대기기에 모든 서적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시대도 멀지 않았다. 일부 오디오 텍스트는 이미 MP3 플레이어에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 리서치, 온라인 출판, 블로그, e-매거진, 채팅방, 서포터 그룹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비록 전통적인 글쓰기를 고수하고자 하는 작가라 할지라도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요소는 매우 많다. 인터넷을 문학계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비관론자들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책이 완전히 사라질 조짐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대형 서점 대부분은 새로운 서적과 열정적인 독자들로 넘쳐나며, 독서 모임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50년 전보다 작가의 수도 훨씬 많다. 그리고 인터넷은 엊그제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새로운 세대를 책과 독서의 세계에 동참하게끔 이끈다. 영화와 연극이 텔레비전, 책과 공존하는 것처럼 디지털 형태가 전통적인 인쇄 형태와 동반하여 발전하리라는 것은 거의 자명해 보인다. 과학 기술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인터넷에 어떤 종류의 보석과 쓰레기가 널려 있는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상호작용성을 강조한 글쓰기를 시도하거나 멀티미디어 게임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작가로서의 이념과 삶

글 쓰는 삶

- 작가되기

작가되기란 우리 대부분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 심지어는 아직 작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생산하지 못했을 때도 자주 입에 올리는 표현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작가가 되는 건 내가 항상 꿈꿔왔던 일이야." 잠깐 멈춰 서서, 이 말을 내뱉을 때 진정 우리가 의미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작가라는 직업과 작품 활동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위 동사는 한편으로 정적이고 소극적인 성향을 띤다. 예를 들면, 아무런 노력 없이도 20살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작가가 되는 것이란 곧 비밀스러운 사회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단지 재미있는 악수와 황금 열쇠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 비밀스러운 사회 집단에 입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밀의 문 뒤에는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이 펼쳐지고, 아이디어는 샘솟으며, 말이 거침없이 흐르고, 부와 유명세가 저절로 뒤따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되기를 위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도 예술가(작곡가, 미술가, 시인)들은 일반 사람들과 이질적인 그들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예외적 존재라는 개념이 만연하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그것이 터무니없는 생각이란 것쯤은 바로 알 수 있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배타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는 꿈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것은 바로 야망과 노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장애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자신감을 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잘못된 상을 그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 적극적인 동사 하다, 쓰다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낫다. 그러면 궁극에는 당신이 일을 하는 방식을 발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창작의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될지도 모르고,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만은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작가가 하는 일이란 사실 단순하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채 종이나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단어는 차례로 등장한다. 그중에 몇 단어는 지우고, 때로는 이미 써놓은 단어를 쳐다보기도 하면서 한 줄 한 줄 써나간다.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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