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셔먼 영
시드니에 있는 맥쿼리대학교의미디어학과 조교수로, 이 대학에서 멀티미디어 학위 프로그램을 주재하고 있다. 대학교수가 되기 전부터 새로운 미디어의 설계자이자 제작자로서 기업고객과 출판사를 대상으로 멀티미디어 제작물을 만들었던 그는 이 제작물로 상을 수여 받은 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기술과 그것이 사회와 문화,정치 분야에 끼치는 영향력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 역자 이정아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주)엔터스코리아의 전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더 라이트네이션』『페미니즘연극사』『셰익스피어 비평』『100인의 위인』 등이 있다.
■ 차례
감사의 글
프롤로그
Chapter 1. 책은 죽었다
Chapter 2. 책이란무엇인가
Chapter 3.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
Chapter 4.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
Chapter 5. 출판사들은어떤 일을 하는가
Chapter 6. 욕망의 대상
Chapter 7. 재구성하기
Chapter 8. 천국 같은도서관
주요 참고문헌
책은 죽었다
책은 죽었다
지난 백 년 동안 영화와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번갈아가며 책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왔다. 지금은 한두 달 간격으로 새로운 관심거리들이 등장해 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가장 최근의 예로 구글이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던 것은 드디어 책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책은 이제 북 클럽 회원이나 작가들의 낭독회를 찾아다니는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문학적 소품쯤으로 취급된다. 떠도는 소문이나 통계 수치 모두 더 이상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도 있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책들은 진짜 책이라기보다는 책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안티 책’에 가깝다. 물론 가장 가까운 보더스(미국의 대형 서점 중 하나) 서점에 가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어느 슈퍼마켓을 가도 사탕이나 과자 따위를 파는 통로에는 어김없이 책들이 진열돼 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그저 이름만 책일 뿐이지 진정한 책이 아니다. 현재 출간되는 책들의 상당수는 5백 년 역사를 지닌 진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책들은 ‘사상’을 탐구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는 문화, 이른바 ‘책 문화’에 낄 수 없는 것들이다.
책이 세상에 나오려면 반드시 돈이 들어가야 한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파는 과정 또한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달리 책을 쓰는 것은 적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만으로도 가능하다. 저자가 개인 시간을 전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것 말고는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는 데다 많은 저자들이 책을 쓰는 이유도 돈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불균형은 두 가지 결과로 이어진다.
첫째로 책 산업은 항상 문화와 상업의 접점에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책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문화를 개조하는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과 책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수익을 많이 남기는 것만이 문화와 상업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는 길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당하게 균형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특수한 공예품으로서 한결같은 노력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됐다. 따라서 당연히 저자들을 지원하고 양성해야 하며, 가치 있는 사상이 세상에 나오려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상은 일단 형성되고 나면 오랜 시간에 걸쳐 사후 시험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책 문화에서는 문학적 천재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평가받는 데다 출판사의 재고 도서 목록(몇 십 년 전에 쓴 책들도 종종 들어 있다)에 올라가는 책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정통 고전 목록에 오르려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러나 책과 시간의 이런 특수한 관계는 지난 일이십 년 동안 딴판으로 변해버렸다. 현대에 와서 출판사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한두 개의 멀티미디어 기업들에 소속된 일개 군소 집단으로 전락하면서 시간도 더 이상 특전을 받지 못하게 됐다. 출판사들은 가면 갈수록 새로운 책들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런 변화는 현대의 사회 활동과 경제활동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현대는 바야흐로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라서 출판업도 분기별 재정 보고와 주간 판매 수치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
전자 매체는 책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을 뿐 책을 죽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자 책 역시 여러 가지 선택 사항 중의 하나인 매체가 된 반면,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른바 인쇄 책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출판업계가 새롭게 바뀐 출판 환경에 맞춰 책 내용을 기꺼이 바꾸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종이 책은 TV 쇼와 아주 비슷해졌다. 발 빠르게 유행을 쫓아 그때그때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다 보니 지금처럼 출판업 전반에서 안티 책이 판을 치는 결과가 빚어졌다. 요즘은 특정한 시점에 돈이 된다 싶은 책을 기획해서 만들어낸다.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나?
대다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2년 전부터 자주 인용되는 미국국립예술기금의 조사에 따르면 종류를 불문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 확실히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는 학교 수업의 연장선에 있거나 일종의 일처럼 간주된다. 독서가 즐거움이 아닌 허드렛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 양육법’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들에게 매일 밤 잠들기 전 세 권의 책을 읽어줘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갈수록 독서의 중요성도 줄어드는 것 같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오락거리들은 훨씬 더 많아지기 때문에 어른이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억지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출판계는 책 판매량이 여전하다고 항변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어김없이 수백만 권씩 팔려나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은 책이 정말로 죽었다면 댄 브라운과 조앤 롤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런 판매 부수는 문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호주에서 2005년에 열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의 판매 부수는 5만5천 부가 넘었다. 언뜻 보면 상당히 많이 팔린 것 같지만 이 정도 수치가 비 오는 날 멜버른 크리켓 구장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의 ‘한 경기당’ 관중 수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더구나 겨울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이만큼의 관중이 축구를 보러 온다. 아니면 어느 때든 심야 시청 대의 TV 쇼 프로그램이 상위 10위 권 안에 들려면 시청자 수가 ‘백만’이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독서가 틈새 활동이 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책이 몰락했다고 해서 읽기 자체가 끝났다고 혼동해서는 안 된다. 분명 책이 갈수록 덜 팔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과 잡지들을 읽는다. 심지어 여드름이 숭숭 난 십 대 소년들도 비디오게임을 하기 위해 게임 방법이 적힌 안내문을 읽는다. 이제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옛날 방식으로 책을 출판하는 방식 말고도 더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을 고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책은 진정 무엇인가
‘책이 죽었다’는 말에 책을 측은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책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찬미하고 새롭게 맞이하게 된 기회들을 기꺼이 활용해야 한다. 많은 점에서 이 책은 책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좀 더 소중하게 대접받도록 만들자는 일종의 탄원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에 들어 있는 낱말을 널리 퍼트리고 텍스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만 괜찮다면 책은 계속해서 인간인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줄 것이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줄 것이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
영국 맥밀런 출판사의 CEO인 리처드 차킨은 유럽인들의 40퍼센트가 책을 읽지 않으며,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여가 시간에 책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쓰고 있다. 미국에서 2004년에 나온 ‘위험 수준에 도달한 독서’라는 제목의 국립예술기금 조사서에 따르면 1992년에는 미국인의 60.2퍼센트가 책을 읽었다. 그러나 2002년에는 이 수치가 56.6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 가서는 전체 미국인의 절반 이하의 사람들이 한 해 동안 읽는 책의 수가 한 권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두 권도 아닌 한 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읽는 것’이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여전히 읽는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읽고 쓸 줄 알며 수준 높은 글쓰기를 자랑한다. 우리는 그저 ‘책’을 읽지 않을 뿐이다. ‘기능적인 읽기’와 ‘책 읽기’는 엄연히 다르다. 초등학교에서 우리는 기능적인 읽기를 배운다. 교육 과정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다른 형태의 읽기를 새롭게 발견해나가기 시작한다.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에 빠져든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단지 ‘기능적인 목적으로’ 읽는다.
읽기는 가독성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띤다. ‘정보 목적’의 독서 외에도 완전히 다르면서 근본적으로 좀 더 야심 찬 독서가 있다. 이런 독서는 사적인 동시에 공적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에서 말했듯,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변화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 독서는 자기 반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에게 치료의 효과가 있다. 따라서 좋은 책은 다른 예술 양식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사람들은 왜 책을 읽지 않는 걸까? 그것은 책이 너무 어렵고 너무 무거우며 너무 길고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인쇄 책과 디지털의 관계는 퀸엘리자베스 2세호와 보잉 777기의 관계와 같다. 대서양을 횡단할 때 사우스햄튼에서 출발하는 위풍당당한 퀸엘리자베스 2세호를 타면 축제의 기분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여행이 야회복과 고급 위스키가 포함된 일종의 행사였던 시절을 경험하게 해준다. 호화 여객선을 타고 가는 이런 여행은 시차로 인한 피로도 없을뿐더러 1분에 약 16킬로미터의 속도로 하늘을 쏜살같이 날아가는 비행기 여행보다 만족감이 더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섯 시간이 걸리는 여행과 5일이 걸리는 여행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더구나 비용 면에서도 몇 백 달러 대 몇 천 달러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기능적인 독서 영역에서는 책을 대신할 좋은 대안들이 많다.
웹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면서 독서 문화, 즉 사람들이 책을 읽는 방식 또한 바뀌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읽고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읽는다. 한 자리에 앉아서 두꺼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가던 것을 이제는 쭉 훑어본 뒤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다. 따라서 긴 글보다는 아주 적은 분량의 짧은 글을 선호한다. 출판사들은 이렇게 짧아진 주의력에 맞추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책값도 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값이 싸 보이는 것은 작은 단위로 살 때 드는 돈이 적어 보이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20달러짜리 책을 일주일에 한 권 사는 것과 대형 화면 TV를 살 경우를 비교해보자. TV를 사면 TV를 보는 것은 거의 공짜다. 심지어 TV의 기본 시청료는 한 달에 책 한 권을 사는 값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는 책이 수천 권이나 된다. 이 책들 중에서 10달러 이하짜리는 한 권도 없다. 대부분 30달러 안팎이며 훨씬 더 비싼 책들도 있다. 우리가 책을 사느라 쓴 돈을 모두 합치면 가정용 차량을 새로 살 수 있을 만큼의 액수가 된다. 어쨌든 책은 싸지 않다. 책을 읽으려면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책 읽기를 힘든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읽고 만족감을 느껴본 사람만이 일순간의 희열을 기대하며 기꺼이 책 읽는 수고를 감내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책을 읽을 때 일어나는 내적 활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 뭔가 괜찮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책 읽기는 수동적일뿐더러 매력도 없어 보인다. 새로워진 미디어 형식에 둘러싸여 자란 세대에게 일방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책의 대화 방식은 전혀 매력이 없다.
호주 태생의 전직 모델이자 영화배우인 엘 맥퍼슨은 “당신이 직접 쓰지도 않은 것을 왜 읽어야 하죠?”라고 반문했다. 그녀의 질문은 결국 월드와이드웹과 채팅방, 마이스페이스, 야후 메신저, 인터넷 실시간 대화와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의 시대에 ‘직접 쓸 수 있는데 왜 읽죠?’라는 말로 들린다.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
새로운 미디어, 새로운 글쓰기
인터넷은 수백만에 달하는 작가들에게 생산 수단을 제공해왔을 뿐만 아니라 이런 작가들을 어마어마한 독자층을 확보한 ‘저자’로 만들어왔다. 출판사는 더 이상 저자들의 사상과 표현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실시간으로 검증받는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웹에서는 작가에서 저자가 되는 모든 단계가 공개된다. 실력만 있으면 작가는 곧바로 저자로 대접받을 수 있으며, 저자의 실력을 바로바로 입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 과정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소비’에서 ‘생산’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미디어에는 독자들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있다. 즉, 일부의 표현법에 의하면 새로운 미디어의 이용자들은 ‘생산하는 소비자’ 또는 ‘프로슈머’다. 인터넷 덕분에 이용자들은 미디어 산물에 반응하고 진행 중인 담론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미디어 산물을 비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재창작하고 있다.
그럼 출판은 어떻게 되는가
새로운 온라인 미디어 형식들은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 뿐만 아니라 분명 글쓰기와 출판의 경계도 모호하게 만든다. 이런 일은 웹사이트 덕분에 가능해졌지만 블로그의 등장으로 두 배는 더 쉬워졌고 위키의 출현으로 최고점에 달했다. 어떤 이들은 이제 글쓰기가 곧 출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이 전적으로 옳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와 웹사이트의 글을 출판하는 것은 유용하고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고 공유하기 위한 탁월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블로그와 웹사이트는 대개 책과 달리 출판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와 웹사이트를 ‘공개적인 글’로 부르길 더 좋아한다.
공개적인 글은 책 출판과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그저 다르다는 뜻이다. 공개적인 글은 책에는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빠른 반응 시간과 즉각적인 의사 전달, 인간적인 대화로 진입하기가 더 쉽다는 장점 등이다. 그러나 책에는 다른 장점이 있다. 때문에 책과 공개적인 글은 공존해야 한다. 책은 인간적인 대화를 더욱 사색적이고 명상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좀 더 천천히 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천국 같은 도서관
유니버셜 뮤직의 회장이었던 에드거 브론프먼 2세는 모든 정보 산물을 상대적으로 쉽게 디지털화할 수 있는 미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우스 몇 번만 클릭하면 당신은 어느 언어로 쓴 것이건 상관없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책들과 지금까지 나온 모든 영화들 그리고 지금까지 제작된 모든 TV 쇼 프로그램과 지금까지 녹음된 모든 음악들을 호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들을 현실로 만들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문화적 습성과 법적 장애물은 물론 제도적 타성과 경제적 제약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천국 같은 주크박스를 현실에서 경험하게 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우리는 ‘천국 같은 도서관’을 세계에 소장된 책들을 즉시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런 도서관에서는 얼마든지 쉽게 검색할 수 있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다른 독자들과 저자들 그리고 비평가들의 추천과 제안을 참고로 책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화제가 되는 책을 놓고 벌어지는 토론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쇄 책으로 출간되기 어려운 책들은 전자 도서관에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도서관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는 저자들이라면 무수한 책들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천국 같은 도서관이 실현되면 책에 담긴 사상이 책이라는 사물보다 더 중요해지는, 전적으로 새로운 ‘책 생태계’가 출현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서평과 비평이 문제의 책에 직접 연결될 수 있으며, 인쇄라는 단절 과정 때문에 억눌려 있던 활발한 대화의 장이 조성된다. 전체 재고 목록을 즉시 이용할 수 있고, ‘절판된’ 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도서관을 상상해보자. 이런 도서관에서는 어떤 책이건 거의 다 찾을 수 있고, 가장 정통한 영업 사원조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책들을 지능적인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아마존의 도매점이나 지점에서 책이 배송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구입한 책을 즉시 컴퓨터나 읽기 장치를 통해 읽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책들을 문고판 크기의 읽기 장치 하나에 전부 담을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자신이 보유한 전체 도서 목록을 언제 어디에서나 즉시 검색할 수 있고, 피지 섬에서 휴가를 즐기면서 지금까지 출간된 특정 작가의 모든 책을 받아볼 수도 있다.
이렇듯 음악 영역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이미 가능한 일이 됐지만) 책 영역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더구나 이런 천국 같은 도서관이 실현된다면 책도 시간의 사치를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수년 동안 전혀 판매가 안 되던 작가의 책들이 다시 인기를 끌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천국 같은 도서관이 실현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은 책들이 출간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출판 수익 구조가 완전히 바뀜으로써 다른 책들이 출판될 가능성이 커진다.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독점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과거에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던 책들을 재고함으로써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팔릴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기회가 될 수는 있다. 지금까지 고전으로 분류된 일부 책들은 처음에는 초판 인쇄 부수를 턱없이 적게 잡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출판할 가치가 없는 책으로 간주되곤 했다. 또한 나이폴(트리니다드 출생의 작가. 2001년 노벨 문학상 수상) 같은 저자들이 요즘에 등단했다면 이들의 책은 전혀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 같은 도서관이 실현되면 거래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출판의 근거가 되는 적정 비용도 훨씬 낮아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현대판 나이폴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천국 같은 도서관이 실현되려면 제도적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예를 들면 출판사들이 좀 더 실행 가능한 실험적 시도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책을 파는 것은 틈새시장 내에서 독자와 작가를 연결해주는 일과 관련이 깊다. 여기서 틈새시장이란 극소량을 유통시키기는 아주 어렵지만 소량을 유통시키기는 아주 쉬운 시장을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 천 명에 불과하더라도 백 군데의 서점에 각각 몇 부씩 배포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적당한 ‘관심 공동체’를 찾아 이들에게 각각 한 부씩 배포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지역을 넘어서 전 세계에 있는 공동체까지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장비가 잘된 도서관이라면 독자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고, 새로운 책이 나오면 그에 따른 적절한 암시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과거 전설적인 서적상으로 통했던 사람들은 자기네 책방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누구인지 훤하게 꿰뚫고 있어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을 귀신같이 추천해주었다. 천국 같은 도서관은 바로 이런 전설적인 서적상들을 닮아야 한다. 이전에 구입한 사항을 자세히 알고 있다가 새로운 책이 나오거나 기존의 책을 홍보할 때 현명하게 적절한 암시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마존에서 이미 놀랄 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심스러운 제안
물리적 형태에 주력해온 종래의 출판 방식은 책의 내용물에 주력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간단한 몇 가지 단계만으로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첫째, 출판사는 자신들이 출판한 책을 전부 적당한 가격에 디지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조금씩 전자책을 출시하다 보면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출판사들은 특수한 독서 시장을 겨냥해 전자책 전용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 역시 음반 산업을 참고할 만하다. 워너의 코들리스와 유니버설의 유미는 소규모 밴드들이 발표하는 신곡을 위주로 하는 다운로드 전용 앨범이다. 이는 출판사들이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유용한 사례로서 전자 출판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이미 대학 출판부들이 이런 과정을 모색하고 있다.
셋째, 출판사들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들을 활용할 방법을 놓고 세심하게 잘 따져봐야 한다. 책이 우리 시대의 문화적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매체로 남으려면 출판사가 나서서 독자들이 모여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독자와 작가 그리고 출판사가 언제 어느 때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훨씬 더 시각적인 온라인 책 문화를 보강하면 더욱 풍성한 축제가 될 수 있다. 사회적 망을 창출함으로써 책을 사랑하는 개인들은 함께 모여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고, 바로 이런 공동체에서 책 문화가 번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들은 책 문화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책을 읽는 독자층을 늘리고 읽기와 쓰기를 주제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를 만들어 더욱 값진 인간적 대화를 꾸준히 지속시켜야 한다. 이런 협력 방안에는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자타가 공인하는 온라인 업체들과 협업해 자사의 전자책이 온라인에서 쉽게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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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계들을 밟는다고 해서 반드시 특별한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출판 산업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으면서 다시 책 문화가 상업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지한 독서를 하는 진지한 독자들에게는 천국 같은 도서관이 모든 틈새 책들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독자와 작가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연결해줄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