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역자: 고병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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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
   
16500
2006�� 11��



>■ 책 소개
미국의 언론인이며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는지금부터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할까요?라는 쇼리스의질문에 비니스 워커라는 이 여인은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은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 강연과 같은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의 교수진들이 모였고,20명의 예비 수강생 중 13명이 강의를 신청했고,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갔다. 끝까지 강의를 들었던 17명은 대학에 진학하거나취직에 성공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것이다.


클레멘트 코스는 빈민들을 동원하여 훈련시키는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도와준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밑천으로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며 더 나아가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한 사회의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다. 공공근로와 같은 사회적 일자리나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 같은 제도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직접 도움을 주지는않지만, 빈민들이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해줌으로써 직업 훈련의 효과를 주는 것이다. 


책은 클레멘트 코스의 필요성과 이론적 배경, 코스의 전체적인 전개과정과 확산, 응용과정에서 겪은 문제들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무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일상을자율적이고 자신감 있게 새로 시작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말한다. 다시 "인문학이 희망이다"라는 것을 실천적 사례로 보여주는책.


■ 저자 얼 쇼리스
소외계층을 위한 정규 대학 수준의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립자이다.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언론인, 사회비평가, 대학강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뉴 아메리칸 블루스』『위대한 영혼의 죽음』 등이 있다.


■ 역자 
고병헌
 - 영국 GlasgowUniversity(박사과정)와 런던대학교 Institution of Education(특별과정)에서 수학하고, 고려대 교육학과에서 박사학위를받았다. 2006년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화, 평화교육의 종교적 이해』『대안학교의 모델과 실천』『참자유인을 기르는학교』 등을 책임 편집하였으며, 옮긴 책으로 『평화교육의 이론과 실천』 등이 있다.


이병곤 - 광명시 평생학습원 전 원장으로, 현재 성공회대학교교양학부 대우교수이다.


임정아 - 평생학습사회연구소 부소장으로, 현재 성공회대학교교양학부 대우교수이다.


■ 차례
한국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제1장 록펠러보다 더 부유하게 
제2장 빈곤의 게임: 정의 
제3장 서로를 위해태어나다 
제4장 빈곤의 황금시대 
제5장 무력의 포위
제6장 무력의 반작용 
제7장 노동에 대한 그릇된 생각
제8장 배제된 시민의식 
제9장 문화를 넘어서
제10장 정치적 삶의 확립 
제11장 감옥에서 클레멘트 코스의 영감을 얻다
제12장 급진적 인문학 
제13장 클레멘트 실험이 시작되다 
제14장 바드대학 클레멘트 코스 
제15장 교육과정
제16장 응용과 자기비판 
제17장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제18장 결론: 위험한 추론


옮긴이의 말





희망의 인문학


록펠러보다 더 부유하게

1999년 가을, 말 그래도 엄격한 대학 수준의 인문학 강좌인 "클레멘트 코스"에 400명이 넘는 수강생이 몰려들었다 수강생 자신들은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강생들은 모두 가난했다. 수강생들 중 다수는 도시 사람들이었지만 오지 출신들도 있었다. 나이는 대부분 20대로 젊었고, 그래서인지 비록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지만, 자기 인생이 아직은 완전히 끝장난 것이 아니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교수진은 일류 대학에서 가르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가들로 구성되었다. 클레멘트 코스 교수들은 일류 대학의 조교수들이 받는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만큼 보수에 상응하는 실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미국에서 클레멘트 코스가 처음 시작된 것이 5년 전이고, 캐나다는 3년, 유카탄은 2년이 되었다. 클레멘트 코스는 뉴욕의 남동부 지역에서 처음 시작해 17개 지역으로 퍼져나갔지만, 여전히 처음의 그 뜻을 잃지 않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가족에서 이웃과 지역사회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로 이어지는 "공적 세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이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그런데 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난"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기존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기존 관점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클레멘트 코스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무력과 "힘"이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클레멘트 코스 그 자체가 답은 아니다. 클레멘트 코스는 그리스의 인문학에서 대안을 모색한 것으로, 깊고 오랜 아테네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치와 인문학이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발달, 그리고 도시국가의 민주적인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플라톤의 "철학자-왕"이라는 개념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국내외의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성찰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철학자-시민"이라는 놀라운 존재가 고대 아테네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논쟁의 여지없이 분명한 사실은 "철학자-시민"은 그리스의 시, 드라마, 미술, 철학, 수학, 역사 등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테네 이전의 국가들 중에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던 나라는 없다. 인문학이라는 지적 동력 없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도 인문학은 존재할 수 있다. 현대 세계에서도 인문학 없이 살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평론가 상트 뵈브가 "상아탑"이라고 이름지었던 세계 안에 정말로 편안하게 안주하면서 인문학이란 모름지기 상아탑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문학이 공적인 삶과 서로 소통하지 않고 분리돼 있는 상태일지라도, 인문학은 비록 쓸모없거나 낭비적인 것으로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상황에서는 인문학의 영향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을 뿐이다.


고등교육기관이 "교육하는 곳"에서 "준비시키는 곳"으로 전락해서 인문학 교육을 완전히 포기하기 이전에도 교육이라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잘 사는 사람들의 일일 뿐이었다. 록펠러 가문(지금으로 치면 빌 게이츠 가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의 자손들은 당연히 역사와 예술, 문학과 철학에 관해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오늘날에도 그들이 받는 학교 교육은 더 복잡하고, 덜 반복적인 일을 하는 데 적합한 교육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머리를 덜 써도 되는 단순한 직업을 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받는 보수는 가령 거리 한 모퉁이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들의 벌이보다도 늘 적을 수밖에 없다.


국가는 어떤 이유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이 생길 때마다 "훈련"을 택했다. 복지정책이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란 일반인과 뭔가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 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가진 존재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겠다는 발상을 가당찮게 여길 것이다. 이런 편견에 기초한 복지정책은 그 사회에 분명 이득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쥐꼬리만한 임금으로 부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키면서 말이다.


이것보다는 덜 분명하지만 "힘"의 배분과 관련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적 이득이 있다.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도 다른 사람들과 공평하게 힘을 나누어 가질 만한 경제력도, 지적 능력도 없다. 그래서 인문학을 부자와 중산층이 독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훈련만 시킴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순종적인 사람들로 묶어놓는 것이 가능해진다.


클레멘트 코스의 예비수강생들에게 강연할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여러분을 록펠러처럼 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여러분은 록펠러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면 여러분은 "부"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빈곤의 게임: 정의

미국에서 알려진 빈곤이라는 것은 근대 사회에 귀속된다. 신석기 시대의 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부"는 전체 사회 모두의 것이었다. 신석기 공동체들의 규모가 커지고, 사냥과 채집 대신 농업과 축산이 정착됨에 따라 사적 소유의 개념이 발달했고, 불평등은 더욱 두드러졌다. 소유권은 기억의 한계나 상식을 넘어 확장됐고, 소유권자들은 자기 가축과 토지의 경제를 표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불평등은 사회에 갖가지 변화를 불러왔다. 무엇보다 의식(儀式)이 무너졌다. 공유되어 평준화된 경험이라는 기억을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을 불러모으고 결속시켰던 의식이 무너지자 경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트로이 전쟁으로부터 1천 년 전부터 이집트에는 간단한 보드게임들이 있었다. 게임이 등장한 정확한 시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게임에 본래 내재된 "평등의 손실"에 주목해야 한다. 게임 참가자들은 동등하게 시작해 동등하지 않은 상태로 끝이 난다. 다시 말해 게임은 참가자들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의 발생은 게임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게임 참가자들은 자연 안에서는 동등한 존재로 출발했는데도 사회 안에서는 결코 동등하지 않은 존재로 결말이 나기 때문이다. 이 대부분은 아마도 자본주의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규칙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게임은 모든 현대 사회에 존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자료를 보면 미국은 연구 대상국인 15개 선진국 가운데 부자와 빈민 사이의 수입 격차가 어떤 나라보다도 컸다. 국내총생산으로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경쟁 때문에 최대의 불평등이 양산된 것이다. 현대 문명에서 이뤄지고 있는 게임은 패자에게 궁핍을 경험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절망적인 가난 따위엔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평등이 논리적으로 엄밀한 평등을 의미하기란 불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경쟁은 무승부로 끝날 것이다. 현대 미국에서 평등의 개념은 모호하다, 평등의 주요한 쓰임새는 승자와 패자의 게임을 정당화한다. 결과가 미래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감춤으로써 승자에게는 자부심을, 패자에게는 수치심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미국에서 불평등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다른 방법이 있다. 

① 만약 정의내리는 사람이 게임이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뤄져온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는 게임의 중요한 변수를 도덕이라도 여길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국 패자들은 승자들과 도덕적으로 동등하지 않다는 뜻이다.


② 만약 정의내리는 사람이 평등한 게임이 평등한 결과를 생산한다고 짐짓 이야기한다면, 그는 패배자들이 선천적으로 불평등하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③ 게임 그 자체에 결함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선 결과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패자는 게임의 결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승자와 대등하거나 더 뛰어나야 할 것이다.


④ 혼합주의적 견해로 "빈곤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것은 빈곤한 사람과 게임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긴 하지만 빈곤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⑤ 승자에게 잘못이 있다는 믿음은 대부분 성자, 구원자, 몇몇 승려들의 것이다.


만약 빈곤이 분화할 수 없는 하나의 것이었고, 그것에서 많은 것들이 파생되었다면, 단순하고 정확한 정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빈곤은 물질적 결핍과 숱한 도덕적 좌절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복합성 그 자체다. 전적으로 소득에만 기초한 빈곤선은 중산층의 삶을 발견한 사람들로부터 빈민을 가려내는 데 적합할 수 없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시카고 24번 구역을 예로 들겠다. 지금은 그 지역의 어느 누구도 절대빈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굶주리는 사람들과 무단 입주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절대빈곤 상황에 직면해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빈곤이란 외국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곳 사람들은 집세를 내거나 약값을 치르기 위해, 식탁 위에 올려놓을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이제 24번 구역에서는 어떤 정치활동도 이뤄질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경제가 지배 규칙이 된 것이다. 세계는 경주만큼이나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빈곤은 견디기가 어렵다. 이것은 인류 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기존중에 대한 모욕이다.  



노동에 대한 그릇된 생각

노동! 노동은 선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노동의 반대말은 "죄"이다. 게으름! 게으른 손! 가짜 생활보호자들! 노동은 지갑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영혼에 위안을 주고 정신을 안정시켜준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신조인 노동 그 자체는 미국인들의 상상력을 붙들었다. 미국의 권력자들은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 대통령도 "우리가 알고 있듯이 복지제도의 종언"을 원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복지개혁법에 서명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복지제도의 혜택에서 밀려났다.


복지개혁에 따른 희생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이 나라 극빈층의 아이들이다. 식량 배급표를 받는 사람의 수가 1995년에는 88퍼센트였는데, 1998년에는 55.9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복지 수혜자 명단에서 탈락됐지만, 2001년에 이르러 가혹하기 짝이 없는 5년 제한 규정까지 적용될 경우, 적절한 의복이나 주거지, 의료 혜택 없이 굶주리는 아이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도덕적 문제는, 아이들의 굶주림과 한 부모 가정 엄마들의 게으름 가운데 신과 인간에게 무엇이 더 모욕적인가 하는 점이다.


미시시피 그린빌에 사는 위든 씨 가족의 경우를 보자. 로버트 위든이 미시시피의 그린빌에 정박한 도박선에서 밤을 새워 일해서 벌어들이는 돈은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의 아내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한다. 보육비를 아끼느라 서로 일정을 조정해왔는데도 그들은 늘 너무도 가난하다. 도대체 왜 그들은 "미국에서의 삶"이라는 게임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패배만 하고 있는가? 어떤 도덕적 결함이 그들을 무력의 포위망 안으로 밀어넣어 버렸는가? 위든 씨 가족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쌀과 콩, 돼지비계와 빵 위주의 식사마저도 꾸준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윤리는 이론의 영역에 속한다. 노동윤리를 실생활에 구현하기 위해서, 노동윤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동 그 자체에 신성한 영감이 깃들어 있다는 주장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 주장이 세기 말 미국의 세속적인 특성에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기주의와 상식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은,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과 가족에게 적절한 경제적․ 사회적 삶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다.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은 노동윤리 이론이 가지는 "신의 관점"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노동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특성을 시급히 고려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경제적인 문제제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와 그것을 누리는 자가 누군지에 대해 썼으며,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오래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정치와 경제를 가르쳐서 그들을 조직화했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오래된 법칙이란 노동자들에게는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즉 죽지 않고 살아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만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은 현대 미국 사회의 노동윤리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한다. 노동윤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한 노동도, 그리고 그 일을 비록 혼자 한 게 아니라 할지라도, 정치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면, 이중적 노동시장의 맨 밑바닥에 놓여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 노동이란 꽉 막힌 포위망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강제력에 불과한 것인가? 이미 무력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노동을 뭔가 새로운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건전한 노동에 내재하고 있는 도덕적 특성이 "무력→단순반응→무력→단순반응→무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또 하나의 큰 무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빈곤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보장되기만 한다면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실업률은 겨우 4퍼센트를 조금 웃돌 뿐이었고, 경제학자들은 낮은 실업률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지만, 3천4백만이나 되는 미국인이 1년 내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미국 과학학회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새로 제시한 수치는 4천7백만이며, 통계조사국도 이것을 참작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안을 원한다면 노동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 물론 빈곤에 대한 가장 큰 해독제가 "노동"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빈곤의 포위망 안에서 하는 노동은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무력은 다른 종류의 해독제가 필요하다. 그 안에 노동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실상 착취의 요소를 담고 있는 "노동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력에 대한 해독제가 발견된다면 노동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자연스레 뒤따르게 될 것이다.   

 


클레멘트 실험이 시작되다

1995년 봄, 하나의 이론이 등장했다. 그 이론은 이런 질문들 해왔다.


A.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제도화할 수 있는가?


B. 인문학은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적 삶"을 사는 데 있어서 필수 단계인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가?


C. 만일 A, B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가난에 찌들려 살아온 사람들 역시 인간이고, 동등하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인가?


D.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을 공적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 과연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가? 아니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면 그 사람들은 다른 행동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인문학 강좌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인가?


실험적인 인문학 교육과정에 대한 생각이 구체화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제이미 인클란 박사와 상의했다. 나는 허친스 총장 시기의 시카고대학교에서 이뤄진 많은 코스들을 모델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한 번에 90분씩 일주일에 두 번 수업, 소크라테스식 방법론, 배 모양 탁자에 앉은 학생들, 한 해 마지막에 종합시험 한 번, 질서정연한 외양 속에 자리한 자연스러운 기운 등에 관해서 말이다. "좋아, 자네의 그 생각을 한번 실현하도록 해보세나." 클레멘스 코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음은 클레멘트 코스 설립을 위해 "교사와 학생"을 충원해야 했다. 기금은 하나도 없는데 예산 규모는 자꾸 늘어났다. 코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강생들에게 버스나 지하철 승차권을 무료로 제공해줄 필요가 있었다. 한 번 수업을 듣기 위해서 차비가 대략 한 명당 3~5달러 정도 드는데, 이 코스에 등록할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한 달에 30~60달러 정도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저녁 6시에서 7시 30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저녁식사나 가벼운 간식거리도 제공해야 했다.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의 어떤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쳐올 때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공부입니다. 인문학은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단,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는 의미에서의 진정한 부자로 말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에게서, 그리고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에서 나오는 진정한 힘, 합법적인 힘을 갖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통비도 지불해드리고, 자녀가 있는 분들의 경우에는 우리가 그 아이들을 돌봐드리겠습니다. 빵과 간식도 준비할 생각이며, 필요한 책이나 다른 교재들도 마련해드릴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전보다 훨씬 더 마음 쓰는 일에 열중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책을 읽으셔야 할 것이고, 하버드나 예일 혹은 옥스퍼드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사상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철학, 시, 미술사, 논리학, 수사학, 그리고 미국의 역사, 아마도 이런 분야들을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할까요? 이 일은 사회를 향한 일종의 "본보기" 프로젝트입니다. 미국에서는 교양과목이나 인문학이 오로지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야말로 그 엘리트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보여주려 합니다." 첫 번째 시도와는 달리 이번의 반응은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코스에 등록했다.


졸업을 남겨놓은 마지막 모임에서 학생들은 예비교육을 받을 때 작성했던 것과 똑같은 설문지에 다시 한 번 응답했다. 표본의 크기가 작아서 인문학의 힘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에이즈와 임신, 구직문제와 악성 빈혈, 병적인 우울증, 정신분열증을 앓는 자녀, 그리고 가난 때문에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도 많았다. 그러나 뭔가 변화가 일어나긴 했다. 


인클란 박사가 작성한 보고서를 요약하면, 박사가 보고한 의미 있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① 자존감 향상 (p<.05)

② 공격적인 말투의 감소 (p<.05)

③ 문제를 정의하고 간명하게 하는 능력의 향상 (p<.001)

④ 다음 가치들에 대한 인식의 증가

박애정신 (p<.05)

영성 (p<.05)

보편주의 (p<.10)

공동체의식 (p<.10)


* p는 그런 우연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인클란 박사는 그 가능성이 .05 이하일 경우는 결과를 거의 믿어도 좋다고 말했다. p가 .10 이하일 때도 신뢰도가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유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결론: 위험한 추론

미국의 성공은 언제나 빈민들을 "위험하지 않은 상태"로 묶어둠으로써 가능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른바 혁명을 통해서 세워졌는데도 빈민들은 세대를 거듭해 빈곤을 대물림해왔는데, 이것이 미국과 다른 나라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혁명을 치렀던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국민들, 그 중에서 빈민들이 부자들한테서 권력을 빼앗아왔다. 그런 여러 혁명이 전해주는 교훈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 빈민들은 위험하다. 빈민들을 경계하라.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영국 식민지들에서 저항을 일으켰던 계층은 빈민들이 아니라 귀족들이었다. 항상 그래왔지만 빈민들은 전장에서 전투를 하고 죽어갔으되 정작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위험하지 않았다.


신생국가 미국에서,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빈민에 대한 관점은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허버트 스펜서의 입장을 따른다. 스펜서를 추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빈민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유일한 이유를 기증자의 품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즉, 빈곤에 대한 관심은 도덕적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 후 남북전쟁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경제 문제였는데도 말이다. 미국에서는 제도화된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위협을 통해 빈민들이 무엇인가를 획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빈민들은 무력의 포위 안에 갇혀 소심하게 길들여져 있었으며, 서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폭동에 대한 대응 자체가 부자와 빈민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여주지는 않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당원이라는 이유로 국회의 결정에 동의했고, 빈민에 대한 국가의 정책 기조를 루스벨트 시대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는 빈민들을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빈민들은 정치를 배우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자유와 질서의 양극단 사이에서 협상을 통해 안전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과 성찰에 근거해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바로 빈곤을 벗어나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성찰할 수 있는 능력과 정치적 기술을 터득함으로써 빈민들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게임의 법칙이 근간을 이루는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또는 무력의 포위망에서 탈출해 좀 더 안락한 삶을 누리기 위해 정치를 이용할 수 있다. 또는 게임 자체에 맞서는 길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공적 세계로 진입한 수만 혹은 수백만의 빈민들이 기존에 확립된 사회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통해 18세기 이래로 미국 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빈민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드시 바꿔놓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시민들도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고, 이때 비로소 빈민들도 자신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무력을 관대하게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제 더욱 많은 빈민들이 개인적인 삶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영향력을 인정받는 공적 세계로 더욱 쉽게 이행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는 빈민들을 위험한 사람들로 만들 것이다. 정치라는 행위가 시도된 이래 이런 확실성 때문에 온 세계의 엘리트들은 골치아파했다. 하지만 과거에 플라톤은 정치에 대해 오류를 범했다. 오늘날 그를 따르는 근본주의자들도 오류에 빠져 있다. 타자의 행복을 보장하는 일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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