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정현주
ǻ
아루카북스
   
15000
2021�� 11��



 

■ 책 소개


자신감, 열등감 극복하기, 창의력 되찾기 등 
자기계발을 위한 내용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심리학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는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나는 잘살고 있는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알기 쉬운 설명과 심리학 이야기를 통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다.먼저, 나와 내 주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남들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법, 내 마음 마주하기를 통해 내면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고 나의 약함과 강함을 찾아가는 방법들을 안내한다. 

나아가 남들과 똑같이, 혹은 남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던 삶을 잠시 멈추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동안 묶여 있던 원인을 양육방식에 따른 열등감의 형성과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생겨난 사회적 완벽주의를 통해 설명하였다. 또한, 완벽주의와 열등감의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강점을 찾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강점이 자기훈련과 성장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의적으로 빛나기 위한 도전을 제안한다.

■ 저자 정현주
정현주 대표는 화가이자 미술심리치료사이다. 2002년 이화여자대학교 환경디자인을 졸업하고, 미술심리치료가 시작된 미국 보스턴의 레슬리 대학교(Lesley University)에서 2015년 표현예술심리치료 미술심리상담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귀국 후, 미술심리치료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본격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2017년 ZoOs Art Studio를 열고, 2018년에는 내 마음마주하기 표현미술심리치료 연구소를 설립하여 개인 갤러리와 운영하고 있다. 2019년 Arukah Arts로 사명을 변경하고, 미술심리치료 뿐 아니라, 음악치료, 댄스 테라피, 드라마 테라피 등 다양한 표현예술심리치료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표현예술 심리치료 스튜디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추상화를 통한 미술심리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첫 번째, 진실 마주하기
모든 치유는 내 안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두 번째, 상처받지 않기
상처받지 않는 법

세 번째, 치유와 회복
내면에 집중하기: 눈을 외부에서 내면으로 돌려보자
치유
시련과 고난을 통해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네 번째, 창의력 되찾기
우리는 모두가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세상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창의성
당신은 이미 창의적이다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

다섯 번째, 완벽주의
완벽주의
다차원적 완벽주의 척도(MPS)
사회적인 틀로서의 완벽주의
완벽주의자들은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한다
완벽주의는 창의성을 저해한다
완벽주의와 양육 스타일

여섯 번째, 열등감
누구나 열등감은 있다
공격적 열등감
수동적 열등감
양육 방식에 따른 열등감 형성
권위주의적인 양육 방식
과잉보호형 부모
자유방임형 부모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양육 방식

일곱 번째, 완벽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완벽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과정 자체를 즐기는 몰입감
창의적인 과정은 우리를 치유로 이끈다

여덟 번째, 미술심리치료: 추상화 그리기
누구나 추상화를 그릴 수 있다

아홉 번째, 자기 훈련과 성장
세상에 거저는 없다
유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 초기
중년기(25~65세)
노년기

맺음말
삶의 의미 찾기

부록1: 매슬로의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특징
부록2: MPS
부록3: 14가지 심리 이야기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첫 번째, 진실 마주하기

모든 치유는 내 안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누구도 문제가 생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이 벌써 생겨버린 문제조차 외면하기에 바쁘다. 많은 사람이 아무 문제없고 행복한 삶이 성공적이며 그런 상태가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다. 그래서 SNS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콘테스트를 하는 모양새다. 얼마나 고급진 음식을 먹는지, 얼마나 멋진 곳에 가보았는지, 얼마나 좋은 옷을 입는지 등 온통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쉴 새 없이 찍어서 올려댄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과연 괜찮을까? 겉모습이 괜찮다고 속마음마저 괜찮은 것은 아니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내면의 상처, 인간관계의 어려움, 때때로 찾아오는 허무함을 무시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내 안에 상처와 연약함이 있는데 없는 듯이 강한 척하고 산다면 언젠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점이 오고 주저앉아버리기 마련이다. 화산이 조금씩 분출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폭발해버리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나는 것처럼 사람의 내면 또한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마주하고 치료하면 큰 병이 안 되지만 계속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리면 손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왔고 이는 우리 부모 세대의 강인한 정신력 덕분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을 터이다. 그래서 강인한 부모 세대는 우리가 힘들다고 하면 “아프리카에는 지금도 굶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이런 거 가지고 힘이 드니?”라는 말로 우리의 말문을 막아버렸던 경험을 아마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무의식중에 배운 대로 이 비슷한 말을 어린 자녀에게 내뱉고 있을지 모른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가 왜 울어.”

“그런 거 가지고 우는 거 아니야. 안 아프다! 괜찮다. 착하지, 뚝!”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당사자의 문제를 축소하고 일반화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똑같은 상처도 아픔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므로 비교하기보다는 한 사람 한사람이 느끼는 ‘아픔의 강도’에 집중하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사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는 당연히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축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만들어 외면하는 데 더 익숙하다. 그러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고 이미 있는 문제를 들추는 것은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염세주의자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좋게 생각해, 좋은 면만 봐, 잘될 거야, 실패할 리 없어." 우리 스스로, 또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고 듣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긍정적인 말들 속에서 우리는 때로 '속이 비어 있는 메아리'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면 왜 이런 좋은 피드백이나 위로의 말들이 속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들까? 그건 바로 그 말들이 진실 위에 올려진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말이지만 가식적이며 때로는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한다. 진실과 먼 말들은 우리 인생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더 쉽고 편하기 때문에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굳이 부정적인 현실을 파헤쳐봤자 마주할 용기도, 감당할 능력도 안 되다 보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덮어버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진실이 바뀔까? 내 안의 상처가, 연약함이 사라질까? 아마 그 자리에서 외면받은 채 썩어가다가 나중에는 냄새를 풍기고 다른 부분으로 전염되어 몸 전체를 썩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기에서도 외부의 상황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런 사람은 수많은 위기를 잘 헤쳐나갈수록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 더욱더 단단해 진다. 그렇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용감하게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재능이 특별히 주어진 걸까?


지금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답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들이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당신은 우리 모두가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물론 믿고 싶지만 불안해하는 당신의 막막한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도 마음만 바꾸면 점점 단단해질 수 있고 그래서 어떤 위기가 와도 맞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기보다는 불편하고 때로는 아프기까지 한 진실을 마주하며 싸워왔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남 탓, 상황 탓을 하기보다 자기 내면의 상처와 연약함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는 정말 좋은 ‘긍정적인 말’이다. 하지만 진실의 바탕 위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 진실이 불편하고 아프더라도 마주하고 인정한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소망’을 가지고 싸워나가야 한다. 이런 힘든 과정이 생략된 긍정적 사고는 언젠가 무너질 모래성과 같고 근본적인 치료가 없는 마취제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안의 연약함과 상처들을 마주하고 있는가? “나는 항상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행복해요. 모든 게 좋아요”라고 말하며 내면의 불편함은 무시한 채 무조건 긍정적으로 살려고 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불편함을 피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망 다니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온다. 억지로 끌려가 진실 앞에 마주 서기 전에 용기를 내어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진실과 마주하자.



다섯 번째, 완벽주의

완벽주의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완벽주의'라는 틀에 갇혀 산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완벽주의란 외부로부터 오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의한 일종의 프레임과 같다. 이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의 판단에 노출되어 외부의 자극에 익숙해져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서로 의식하지 못한 채 평가를 받는다.


“머리숱이 많네.”

“코가 오뚝하네.”

“몸무게가 조금 나가네.”


남들로부터의 평가와 비교에 익숙해지다 보면 우리는 점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 내면의 소리의 볼륨을 점점 줄이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좋아하는지를 놓쳐버린다. 물론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산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평가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생각조차 안 하고 보이는 데 급급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이런 현상은 정보 기술의 발달로 SNS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생각을 나누고, 또한 서로 비교하면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아무튼 완벽주의는 외부 세계의 평가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시작 될 수 있다. 아이가 자라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떠한 높은 기준을 만들어내게 된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여러 학자들이 완벽주의를 다음과 같이 ‘사회지향적 완벽주의’, ‘자기지향적 완벽주의’,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로 구분했다. 그중에서 '‘사회지향적 완벽주의’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해서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나 걱정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내가 말하는 ‘세상이 주는 틀’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완벽주의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의식’,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그 평가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포함한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업무를 처리할 때 ‘완벽주의’는 그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유로 어떤 이들은 완벽주의가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한 사람의 감정과 내면의 자유로움을 억누른다는 면에서 완벽주의는 극복하거나 경계해야 할 매우 부정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완벽주의자들은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그 사람에게서 변화시켜야 할 부분이 열 개쯤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을 먹는다.


“이렇게 많은 걸 언제 다 고치나요? 평생 해도 안 될 것 같아요” 라면서.


그 사람은 한꺼번에 열 가지를 끝내고 마술처럼 자신이 바뀌길 바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한 개 하고 그다음 두 개 하고 이런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열 가지가 다 안 바뀌었으니 한두 개 바뀐 정도는 그에게는 안 바뀐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상담치료를 통해서 점차 변해가는 과정보다는 오직 결과만을 중요시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것을 자신에게 가혹하게 요구하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기대한다. 특히 가족들에게, 부부 끼리나 자식들에게……. 그들이 노력하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주시하면서 ‘어? 하나도 안 바뀌었네, 틀렸어. 너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판적인 태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욕을 꺾어버리고 결국에는 포기하게끔 만든다.


“어차피 나는 안 돼. 어차피 너는 안 돼. 해봤는데 이게 다잖아.”


과연 그럴까? 사람이 한 번에 바뀔 수 있을까? 램프의 요정 지니가 있으면 모를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한 번에 하나씩 변화하는 데 집중해보자. 그 하나에 집중할 때는 나머지 아홉 개는 잊는 것이다. 하나를 하면서 나머지 아홉 개를 떠올리며 ‘저 나머지는 언제 하지?’라고 걱정하면 지금 하는 한 개마저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모두 할 수 없고, 어차피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일, 그 한 가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일에 있어서 시작을 주저하게 만들고 흔히들 알고 있는 ‘마감 증후군’을 야기한다. 더 좋은 평가에 대한 집착 때문에 머릿속으로 생각만 계속 하다가 마감 전날에 가서야 벼락치기로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이것이 정말 시간 부족의 문제일까? 이는 생각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은 문제이다. 마치 몸이 마비가 돼서 움직이지 못하듯 고민과 걱정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단 행동에 옮기고 무엇인가에 부딪히면 다시 고치고 또 수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대비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자.


흥미롭게도 스테판 조이(Stephen Joy)와 수잔 힉스(Susan Hicka)는 2004년에 완벽주의와 창의성 사이의 잠재적인 관계를 탐구했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완벽주의가 창의적인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다. 창의성과 완벽주의 사이의 부정적인 관계는 소위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개개인에서도 발견되었다. 또한 MPS를 도입한 플렛과 휴이트에 따르면 완벽주의는 스트레스, 불안, 실수에 대한 우려 등 다양한 요인과 관련이 있으며, 이 모든 요인들도 역시 창의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의성은 자유로움에서 나온다는 말에 동의 할 것이다. 그 자유로움은 나를 제한하는 틀이 없을 때 가능하다. 제한하는 틀이란 외부에서 오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부터 야기된다. 즉 완벽주의, 사회적인 틀이 작을수록 사람의 창의성은 더더욱 제한된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독특함은 마냥 자유로울 때 표출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면 남과 다른 당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 그 길은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당신만의 길일 것이고, 당신이 자신 안의 것을 믿고 온 마음으로 그 길을 찾는다면 당신의 두려움은 어느새 설렘과 흥분으로 바뀔 것이다.



아홉 번째, 자기 훈련과 성장

세상에 거저는 없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서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발견해서 인정하고’, ‘자신 안에 원래 있는 것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꺼내어 창의성을 되찾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과정이 원래 있던 반찬에 숟가락만 꺼내 먹는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 다루게 될 내용은 대가를 지불하고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도 모른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걸 알지 않나?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고통이 따른다. 소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싸워야 할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는 자신이라고 말한다.


25~65세 중년기

이 시기를 에릭 에릭슨(Eric Ericson)은 다음 세대를 생산하고 가치를 전수하는 단계라고 했다. 자녀를 낳아 기르며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전수하는 생산성에 집중된 시기인 것이다. 또한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희생함으로써 일시적인 자기 침체가 나타난다고 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있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한다. 많은 여성은 자신의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많은 부모는 제한적인 가계 경제로 인해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보다 아이들의 필요에 집중하기도 한다. 부모들의 시간 또한 자신들을 위한 것보다는 자녀들을 위해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부모가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다 보면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많은 것을 투자한 존재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남들이 다 부러워할 수 있게, 또는 살면서 자녀들이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안정적인 방향으로 설계하고 그쪽으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다 이게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 믿고 따라와라.”


아이들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훈육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고 아이들의 삶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면 부모는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상담치료를 받으러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자신과의 싸움은 어찌 보면 다른 시기에 비해 쉬울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이 밖으로 꺼내어져 있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우리 자신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엄마 아빠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경험을 부모라면 다 해봤을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다.


자녀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 원인을 내 안에서 찾아보자. 아이에게서 보이는 모습 중 특히나 걸리는 부분이 자신이 애써 외면하려고 덮고 덮어왔던 우리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우리가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상처나 연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변화로 인해 그렇게 바라왔던 아이의 문제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자존감을 높이며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산다고 느끼게 된다. 자기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살아 있을 이유를 주고, 또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남과 비교해 하찮게 여기거나 우월하게 생각지 말고, 자기 일에 집중하여 자신과 싸움을 하며 자기조절을 하는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결과물을 스스로 가치 있게 여기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당신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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