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피하기 기술

   
롤프 도벨리 지음(역:유영미)
ǻ
인플루엔셜
   
15800
2018�� 01��



■ 책 소개


불행을 피하면 좋은 삶은 저절로 온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영리한 행복의 기술’!

어떻게 해야 바람직하게 살 수 있을까? 운명은 어떤 역할을 할까? 돈은 어떤 역할을 할까? 행복의 정체는 뭘까? 이런 질문에 수많은 답이 있었지만, 많은 답들이 결국엔 실망스러웠다. 왜 그럴까?

사실 좋은 삶은 대단한 뭔가를 추구하기 이전에 멍청한 것, 어리석은 것, 잘못된 것 등을 피할 때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안 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의 모든 CEO들의 서류가방에는 이 사람의 책이 있다”는 평을 듣는 롤프 도벨리.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식경영인인 그가 이번에는 ‘불행을 피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재치와 유머, 따끔한 통찰력이 가득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맨날 빠지는 인생의 함정들을 잘 피해가는 비밀을 알아보자.

■ 저자 롤프 도벨리
저자 롤프 도벨리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식인, 경제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경영인, 냉철하고 능력 있는 투자가, 인기 있는 강연자이다. 스위스 장크트갈렌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항공 그룹 산하 여러 계열사에서 CEO를 역임하면서 경영인으로서 높은 성과를 냈다. 현재는 과학, 철학, 예술, 경제 분야에서 대표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세계적인 지식 교류 커뮤니티인 월드마인즈(WORLD.MINDS)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세계 최대 전자도서관 겟앱스트랙트(getAbstract)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돌며 강연, 토론 등을 통해 분야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독일 블룸버그 TV에서 ‘도벨리 쇼’를 진행했고, 독일, 스위스 등에서 인간의 심리적 오류에 대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전작 ≪스마트한 생각들≫과 ≪스마트한 선택들≫은 전 세계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2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현재 스위스 베른에 거주하고 있다

■ 역자 유영미
역자 유영미는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감정사용설명서》, 《가문비나무의 노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부분과 전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등이 있다. 

■ 그림 엘 보초
그린이 엘 보초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공공예술가. 그래픽을 전공했으며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일러스트를 그렸다. 특히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대형 일러스트 작업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며, 일본, 러시아, 브라질 등에서도 전시회를 여는 등 전방위적 예술가이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PART 1 좋은 삶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1.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마음의 기술: 심리 계좌
2. 완벽한 설정은 없다: 수정의 기술
3. 디저트 거절하기: 타협 없는 전략
4. 세상은 당신의 감정에 관심 없다: 블랙박스 사고
5. 그것은 내 삶에 정말 유익한가: 역생산성
6. 틀린 것을 피하면 옳은 것이 온다: 부정의 기술
7. 과연 성공이 노력 때문일까: 난소 복권
8. 부정적인 감정들을 날아가게 하는 법: 자기관찰의 착각
9. 솔직해서 좋다는 거짓말: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른 동물
10. 성공한 이들은 ‘아니오’를 말한다: 무조건 5초 세기
11. 카리브해에 산다고 행복하지 않다: 초점의 오류
12. 사들인 물건은 어떻게 공중분해 되는가: 마이너스 행복
13. 연봉이 얼마나 되면 행복할까: 재정적 완충장치

PART 2 가치 있는 것만 남기기
14. 언제 게임을 멈출지 아는 것: 능력의 범위
15. 투기와 투자의 차이를 이해하라: 꾸준함의 비밀
16. 맹목적 열정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소명에 대한 믿음
17. 생각보다 평판은 중요하지 않다: 내면의 점수표
18.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는 진실: 영리한 기업가가 사람을 뽑는 법
19. 이룰 수 있는 목표와 그렇지 않은 목표: 삶의 작은 의미
20. 당신의 삶이 사진첩이 아닌 이유: 두 개의 자아
21. 체험이 기억보다 낫다: 기억의 계좌
22. 당신의 인생은 인과적이지 않다: 자기 위주 편향
23. 죽음에 대한 생각은 시간 낭비: 제임스 딘 효과
24.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면: 자기 연민의 소용돌이
25. 즐거움과 의미는 양립할 수 있을까: 행복의 기본 요소

PART 3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법
26. 타협할 수 없는 원칙 정하기: 품위의 범위
27. 세상은 언제나 당신의 취향을 공격한다: 품위의 방어
28. 돈을 주어도 팔지 않을 것들이 있는가: 악마의 계약
29. 진짜 걱정만 남기고 해결하는 법: 만성적 두려움
30. 모든 것에 뚜렷할 필요는 없다: 의견의 과부하
31.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 정신적 요새
32. 언제나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은 있다: 질투의 독성
33. 애초에 문제를 피하는 것이 이익이다: 예방의 지혜
34. 지구의 불행에 대한 대처: 사회적 무책임성
35. 소중한 ‘나’를 어떻게 다룰까: 주의력의 함정
36. 두뇌에 흔적을 남기는 독서법: 두 번 읽기의 원칙
37. 당신이 속한 집단이 대중은 아니다: 도그마의 함정
38. 가지고 있는 행복을 의식하는 법: 뺄셈의 기술
39.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도 된다: 최대 숙고 지점

PART 4 세상의 말에 속지 않는 법
40. 머리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의 신발
41. 세계사는 위인이 쓰지 않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
42. 스스로를 떠받들지 말라: 우연한 역할
43. 우리의 인생이 추리소설이 아닌 이유: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믿음
44. 후드티를 입어도 저커버그는 되지 않는다: 카고 컬트
45. 교양을 몰라도 됩니다: 전문가 바보의 탄생
46. 전쟁터를 피해야 하는 이유: 군비경쟁
47. 괴짜를 옆에 두라: 고흐가 되기보다 고흐의 친구가 더 좋은 이유
48. 더 많이 만날수록 더 좋은 연인을 만난다: 수학적 해답
49. 이룰 수 없는 소망도 있다: 기대 관리
50. 모든 것의 90퍼센트가 쓰레기라면: 쓰레기 탐지기
51.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지 않을 때: 겸손의 찬양
52. 결국은 내적 성공을 위한 것: 성공의 다른 정의

에필로그
감사의 말
참고 문헌

 




불행 피하기 기술


좋은 삶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 삶에 정말 유익한가: 역생산성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걷거나 마차를 타는 것보다 자동차를 타는 편이 엄청나게 빠르고 효율적이다. 시속 6킬로미터로 산책하거나 시속 15킬로미터로 덜컹거리며 가는 대신, 오늘날 우리는 (최소한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00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속도로 달린다. 정체될 때도 있고 신호에 걸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서 말이다. 당신 자동차의 평균 주행속도는 대략 어느 정도 될까? 계속 읽어나가기 전에 책 여백에 그 값을 적어보자.


자, 어떻게 계산했는가? 한 해 동안의 주행거리를 한 해 동안의 대략적인 운행시간으로 나누면 평균값이 나온다. 차량 계기판에도 대략적인 평균 주행속도가 나온다. 내 차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50킬로미터 정도다. 하지만 이 계산은 틀렸다. 그 외에 다음 시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A) 차량값을 지불하기 위해 들인 노동시간. B) 보험, 차량 관리, 기름값, 과태료 등을 지불하기 위해 들인 노동시간, C) 교통정체에 쓰인 시간을 포함해서 A)와 B)에 들어가는 돈을 벌기 위해 들인 시간.


가톨릭 사제인 이반 일리치가 미국 자동차들을 대상으로 이런 시간들을 감안한 값을 계산해본 결과, 미국 자동차들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6킬로미터 정도였다. 걸어다니는 속도와 맞먹는 것이다. 고속도로 네트워크는 거의 비슷한 상태에서 미국 인구가 지금보다 40퍼센트 적었던 1970년대에 계산한 결과이니, 오늘날의 평균속도는 아마도 시속 6킬로미터에 못 미칠 것이다.


일리치는 이런 효과를 역생산성(counterproductivity)이라고 칭했다. 이 개념은 많은 신기술들이 시간과 돈을 아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가를 계산해보면 이런 절약 효과는 물거품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역생산성은 가능하면 피해가면 좋은 의사결정의 함정이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출시되었던 때를 기억하는가? 와, 이런 해방이 다 있을까, 당시 우리는 모두 그렇게 느꼈다. 비싼 필름을 사지 않아도 되고, 현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온 사진은 곧장 지워버리면 되고, 잘 나온 사진을 건질 때까지 계속 찍어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진 찍는 작업이 엄청나게 쉬워질 것 같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역시 역생산성을 조장하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99퍼센트 쓸데없는 사진과 동영상 더미 위에 앉아서, 그것들을 분류하고 걸러낼 시간을 내지 못한다. 그리로 로컬 백업이나 클라우드에 집어넣고는, 인터넷 거대 기업에 노출시킨다. 이에 더하여 포토샵으로 사진을 꾸민다. 이제 포토샵 없이는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줘야 하고,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이 모든 자료들을 힘들게 옮겨야 한다.


기술이 효용성을 높여줄 것처럼 말하지만, 오히려 삶의 질에 역생산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좋은 삶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들이지 말라. 기술발전의 산물인 경우 특히나 그렇다. 그러므로 새 제품을 구입하려 할 때는 뇌를 일단 켜야 한다.


틀린 것을 피하면 옳은 것이 온다: 부정의 기술

오래된 경비행기(1975년도 제작)의 조종석에 오를 때 나는 스펙터클한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다. 추락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어떤 원인이 추락을 부르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악천후에 비행하기, 안전 점검을 하지 않고 비행하기, 피로한 상태에서 비행하기, 충분한 연료 없이 비행하기 등등.


투자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종종 ‘업사이드(upside, 상방)’와 ‘다운사이드(downside, 하방)’를 이야기한다. 업사이드는 (평균 이상의 수익률 등) 투자의 모든 긍정적인 결과들을 말하고, 다운사이드는 (파산과 같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결과들을 말한다. 이 개념은 비행에도 적용할 수 있다. 비행하기 전과 비행하는 동안 나는 다운사이드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며, 어떻게 해서든 다운사이드를 막고자 한다. 반면 업사이드에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알프스의 설경이 얼마나 장엄한지, 구름 모양이 얼마나 예쁜지, 공중에서 먹는 샌드위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이것들은 그때 가보면 알게 된다. 다운사이드를 제거하면, 업사이드는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


워런 버핏이나 찰리 멍거처럼 장기적으로 성공한 투자가들이 알려주는 사고 습관이나 멘탈 트릭, 정신적 도구는 우리의 삶에도 탁월하게 적용된다. 그중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다운사이드를 피하는 것이다. 버핏과 멍거는 투자에서 업사이드를 주시하기 전에, 우선 무엇을 피해야 할지, 즉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주의한다.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업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걸 배우지 않았다. 우리가 배운 건 그런 문제들을 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꼭 똑똑할 필요가 없다. 멍거는 “대단해지는 건 고사하고 멍청해지지 않으려고만 했을 뿐인데 이런 태도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성공을 가져왔는지 놀랍다”라고 말했다.


좋은 삶은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멍청함이나 어리석음, 유행 따르기를 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 절제하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어디서 죽을지 알고 싶다. 그러면 그 장소에 결코 가지 않으면 되니까.”라고.



가치 있는 것만 남기기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면: 자기 연민의 소용돌이

자기 연민은 삶의 역경에 대한 가장 비생산적인 반응이고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냥 감정적 소용돌이일 뿐이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오래 허우적거릴수록 더 나빠지기만 한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빠르게 망상에 빠진다. 주변 사람들, 아니 온 인류가 혹은 온 우주가 자신을 힘들게 하기로 공모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 둘러싸고 악순환이 일어나,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 모두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서 자기 연민의 기미가 감지되면, 곧장 이 위험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당신이 구덩이 안에 있다면, 구덩이 파는 걸 중지하라”는 모토로 말이다.


자기 연민은 집단적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 예를 들어 ‘과거사 처리’의 문제도 그렇다. 과거사 처리는 몇십 년 때로는 몇백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희생자들을 다루는 문제다. 대학의 많은 연구자들은 이런 피해의 역사적 뿌리를 노출시키고, 세밀하게 분석한다. 문제는 ‘과거사 처리’를 위해 그 사건의 희생자를 자처하는 집단들의 자기 연민을 강화할 때 벌어진다. 물론 오늘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정책의 후손들이다. 여성, 원주민, 유대인, 동성애자, 이민자 모두가 그런 과거와 관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자기 연민적 사고는 매우 유해하다. 자기 연민적 태도 자체는 오늘의 집단을 과거의 희생자와 동일화할 것을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동일화가 강한 이와 아닌 이들의 차이만 부각시킨다. 이로 인해 오늘의 시점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갈라진다. 과거사 처리에 대한 더 많은 이들의 동의가 필요한 때에 동의하는 이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인정하고,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연민적 태도는 이 두 가지 태도 중 어느 것에도 도움이 안 된다. 심지어 그냥 견디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집단적인 자기 연민은 개인적인 연민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득이 없다.


‘처리’의 두 번째 형태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심리치료사의 소파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파헤치며, 망각하는 편이 좋았을 온갖 일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 현재의 달갑지 않은 상황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이런 일은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다른 사람, 특히 자기 부모의 잘못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부모의 탓을 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싸다.


둘째, 연구에 따르면 유년기의 트라우마(부모의 죽음, 이별, 방치, 성적 학대)와 성인이 되었을 때의 행복감이나 성공 여부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미국 심리학회 전 의장 마틴 셀리그만은 몇 백 개의 연구를 분석하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유년시절의 사건들과 성인의 인격 사이의 빈약한 상관관계조차 입증하기 힘든데, 하물며 크고 중대한 영향이 있다는 암시는 없다.” 과거사보다는 유전자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며, 유전자의 구성은 우연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유전자에 돌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결론을 내려보자. 자기 연민의 진창을 뒹굴지 않는 것은 정신건강의 중요한 규칙에 속한다.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당신의 인생이나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한 번 불행했다고 계속 불행하게 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지금 삶이 힘들다면 뭔가 조치를 취하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 그 상황을 견뎌라. 한탄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불행을 극복하는 데 도움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 연민은 원래의 불행에 더하여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행을 추가하는 행위다.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법

타협할 수 없는 원칙 정하기: 품위의 범위

능력의 범위처럼 품위의 범위도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경계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품위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계몽의 정신과는 상관이 없다. 품위의 범위는 평소 내가 대변하던 명확한 사고, 이성, ‘더 나은 논지’의 승리 등에 배치된다. 그래도 될까? 진보란 모든 것을 의문시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는 데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좋은 삶을 위해서는 불가침성을 띠는 품위의 범위가 필요하다. 나아가 그 범위 안의 것들에는 이성적으로 이유를 붙이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이유를 따지기 시작하면, 결코 잠잠해질 수가 없고, 당신의 삶은 기초를 잃게 된다. 당신의 기호, 원칙, 확신을 뒤엎을 더 나은 논지가 나올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품위의 범위에 이르게 될까? 머리로 생각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범위가 생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년 즈음이면 그렇게 된다. 품위의 범위가 생겨나는 것은 인격적 성숙의 중요한 단계다. 그때까지는 약간의 경험을 해야 한다. 잘못된 결정도 내려보고, 실망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위기도 겪어보고...... 어떤 원칙을 고수하고 어떤 원칙을 포기할 것인지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품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기초가 없다 보니 밖에서 밀려드는 영리한 논지들에 늘 끌려다닌다.


그러므로 품위의 범위를 꼭 붙들어라. 작은 범위가 큰 범위보다 더 강하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그 범위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으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12개의 우선순위에 모두 부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품위의 범위에 들어 있는 것이 적을수록, 더 진지하게 확신하게 되고, 더 잘 지킬 수 있게 된다. “약속은 신성한 것이라, 절대 남발하면 안 된다”고 워런 버핏은 경고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약속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약속에도 해당한다. 그러므로 협상 불가능한 원칙을 정할 때는 굉장히 잘 선별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각오해야 한다.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을 붙잡고 나가면, 분명 몇몇 사람들은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줄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모욕과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 모든 감정들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품위의 범위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값이다. 꼭두각시만이 갈등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법이다.


값을 지불할 수 있겠는가?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다. 지불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에는 가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은 “뭔가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삶을 살 만큼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좋은 삶을 살 만큼 성숙하지 않은 건 분명하다.


두뇌에 흔적을 남기는 독서법: 두 번 읽기의 원칙

우리는 너무 선별하지 않고, 또 너무 대충 읽는다. 주의력을 뛰어다니는 강아지라고 한다면, 우리는 독서를 할 때 강아지가 맛난 먹이를 먹는 훈련을 하게 하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배회하게 놔둔다. 그렇게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원을 가치 없는 것에 쏟아버리는 것이다.


이제 나는 몇 년 전과는 다르게 독서한다. 전처럼 많은 책을 읽지 않고, 적은 책을 읽는다. 대신에 더 좋은 책은, 두 번씩 읽는다. 나는 굉장히 까다롭게 책을 고르게 되었다. 어떤 책은 손에 들고 10분 정도를 할애해서 살피고는, 판결을 내린다. 읽을 것이냐 읽지 않을 것이냐. 그리고 괜찮은 책이라고 판단한 경우 나는 그 책을 두 번 읽는다. 연속으로 두 번 읽는다. 그것이 원칙이다.


책을 두 번 읽는다고? 왜 안 되겠는가. 음악의 경우 우리는 트랙들을 여러 번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초견으로 악보를 연주해본 뒤, 그냥 그렇게 미숙한 상태로 끝내지 않고, 여러 번 집중 반복해서 연습을 하고 꽤 숙달된 다음에야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독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두 번 읽기를 시행해보면 그 효력은 한 번 읽기의 두 배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몇 배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 열 배 정도의 효력이 있는 것 같다. 한 번 읽었을 때 3퍼센트 정도의 내용이 남는다고 한다면, 두 번 읽으면 30퍼센트 정도가 남는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집중해서 읽는 중에 얼마나 많은 내용을 흡수할 수 있는지, 첫 번째 읽을 때 눈에 띄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는지, 세심한 읽기를 통해 이해의 범위가 얼마나 확대되는지 나는 놀라곤 한다. 표도로 도스토옙스키가 1867년 바젤에서 한스 홀바인의 미술작품 <그리스도의 시신>을 보았을 때, 그는 이 회화에 매료되어, 30분 뒤 그의 아내가 간신히 잡아끌어서야 겨우 그 그림 앞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뒤 자신의 소설 《백치》에서 이 그림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재현해냈다. 아이폰으로 간단히 사진을 찍었다면 그런 효과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소설가가 이를 창조적 소재로 삼을 수 있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림에 이렇듯 잠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 잠기는 것! 서핑하는 것이 아니라 잠수하는 것이다.


몇 가지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여기서 자꾸 효력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너무 건조한(기술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책에 대해 그런 식으로 판단해도 될까? 그렇다. 이런 식의 독서는 유용성을 지향하고, 낭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낭만은 다른 활동을 위해 남겨두라. 나는 책이 (나쁜 책이든지, 나쁘게 읽었든지 해서) 두뇌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책을 읽은 시간은 그냥 낭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추리소설은 제외다. 스릴러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애초에 두 번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살인자를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셋째, 개인적인 독서카드에 몇 칸을 만들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는 다음 10년간 100권으로 제한했다. 1년에 평균 10권 정도인 셈이다. 이 적도면 작가로서는 상당히 적은 양이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했듯이 나는 훌륭한 책들을 두 번 읽는다. 때로는 세 번도 읽는다. 이것은 상당히 만족스러우며, 열 배의 효력을 낸다.


넷째, 당신이 아직 젊다면, 독서 인생을 3등분했을 때 아직 첫 1/3의 단계에 있다면 가능한 많은 책들을 먹어치우는 것이 좋다. 소설, 단편소설, 시, 실용서, 교양서 등 갖가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라. 왜 그럴까? 이것은 소위 ‘비서 문제’라 불리는 수학적 최적화 문제와 관계가 있다. 이 문제는 많은 지원자들 중 최고의 비서를 골라야 한다는 것인데, 그 해법은 일단 지원자의 37퍼센트를 인터뷰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전체 지원자풀의 기본적인 분포에 대한 표본을 추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구잡이 독서를 통해, 또는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독서 인생의 첫 1/3은 많은 임의의 책들을 통해 당신은 책들의 기본적인 분포에 대한 표본을 대략 머릿속에 만들 수 있고, 그렇게 판단력을 연마해서, 훗날 굉장히 선별적으로 책을 고를 수 있다. 40세쯤 되면 개인적인 독서카드를 마련하다. 그러고 나서는 엄격하게 그것을 준수하라. 40세가 넘는 사람은 나쁜 책을 읽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세상의 말에 속지 않는 법

결국은 내적 성공을 위한 것: 성공의 다른 정의

각 나라마다 부자 랭킹이 있다. 스위스 경제전문지 《빌란츠》에는 300대 부자 명단인 ‘빌란츠 300’이 있고, 독일에서는 매년 《매니저 매거진》이 500명의 최고 부자 명단을 발표한다. 프랑스 경제전문지 《샬랑주》는 매년 프랑스의 부자 명단을 공개하며, 미국의 《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를 집계한다. 이 명단들에서 받는 느낌은 늘 같다. ‘이 명단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명단이로구나!’ 명단에 낀 사람들은 모두가 기업가(혹은 그 후계자)들이다.


영향력 있는 CEO들, 가장 인용이 많이 되는 학자들, 베스트셀러 작가들, 고소득의 예술가들, 성공한 음악가들, 몇백 억대 연봉의 운동선수들, 최고 출연료를 받는 배우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순위가 존재한다. 모든 분야마다 성공의 랭킹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성공한 것인가? 성공이 무엇이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성공을 판단하고 찬사하는지에 따라, 개개인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조종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이렇게 썼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소규모 사회에서 가장 많은 단백질을 가져오는 사람(사냥)과 가장 많은 적을 죽인 사람(전사)을 추앙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성에 대한 예찬도 사회가 인구를 증가시킬 필요가 있는지에 따라 오르내린다.” 현대사회는 (이를테면) ‘포브스 순위’를 빛나는 깃발처럼 흔들며, 우리에게 ‘이쪽으로 가야 해!’라고 신호한다.


현대사회는 왜 사람들을 물질적 성공 쪽으로 몰아가고자 하는가? 어째서 한가로이 사는 쪽이 아니라 물질적인 성공 쪽인가? 어째서 만족감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 최고 부자들의 명단만 작성되는가? 간단하다. 경제성장이 사회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가 사티야지트 다스는 “언젠가 물질적으로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으면, 그런 전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와 상관없이 재산의 사회적 분배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며, “경제가 성장하는 한 희망이 살아 있고, 이 희망은 엄청난 수입의 격차를 견딜 수 있게 해준다”라는 전 미국 중앙은행장 헨리 월리치의 말을 인용했다.


포브스 명단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선 성공에 대한 정의는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 1천년 전에는 포브스 명단 같은 것이 없었고, 1천 년 뒤에도 없을 것이다. 워런 버핏은 빌 게이츠와 더불어 오래전부터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석기시대 포브스 명단’에는 결코 들지 못했을 것이다. 버핏도 “몇천 년 전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느 동물의 완벽한 간식거리가 되엇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어떤 시대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회는 서로 다른 성공의 깃발을 흔든다. 성공에 대한 사회의 정의를 당신에게 주입시키려는 의도다. 그러므로 그 깃발을 명목적으로 따라가지 말라. 좋은 삶은 다른 곳에 있다.


또한 물질적 성공은 100퍼센트 우연에 달린 문제다. 어떤 일을 우연으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로 우연이다. 우리는 유전자, 태어난 지역, 지능, 의지력 등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물론 성공한 사업가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스마트한 결정들을 내린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 역시 다시금 그들의 유전자와, 사회적 배경과 비오토프(biotope, 도심에 인공적으로 만든 생물 서식 공간-옮긴이)가 작용한 결과다. 그러므로 포브스 명단을 우연적인 명단으로 보라. 그리고 그 명단에 오른 사람들을 너무 추앙하지 말라.


성공을 완전히 다르게 정의해보면 어떨까? 2천 년이나 된 성공에 대한 정의가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성공은 사회가 무엇을 추앙하는지와 무관하며, 천박하게 순위로 표시할 수도 없다. 진정한 성공은 내면적인 성공이라는 정의다.


내면적 성공은 향을 피우거나, 자신에게 침잠하거나 요가를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내면적인 성공에 대한 노력은 이성적인 행동인 동시에 서구적 사고의 뿌리다.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성공을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평정에 도달한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평온을 유지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고공비행을 할 때도 불시착을 할 때도 평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어떻게 내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초연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인풋은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아웃풋은 조절할 수 없다. 아웃풋에는 계속해서 우연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돈, 권력, 인기는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 노력을 기울이다가 이들을 잃으면 불행해진다. 반면 평정과 의연함, 침착함을 훈련하면 운명이 당신의 발에 무엇을 던져주든지 대부분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요컨대 내적인 성공이 외적인 성공보다 더 안정적이다.


자, 솔직해보자. 100퍼센트 내면의 성공만 추구하고 외적인 성공은 깡그리 무시해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의 연습을 통해 아타락시아라는 이상에 가까이 갈 수 있다. 하루를 마치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항로로 가고 있었는지를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라. 어떤 부분에서 넘어졌는가? 무엇 때문에 하루를 또 씁쓸하게 보냈는가? 통제 밖에 있는 어떤 일이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었는가? 앞으로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어떤 심리 도구를 꺼내야 할까? 묘비에 당신이 억만장자였다고 기록되는 것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 되는 편이 백 번 좋을 것이다.


사실 외적인 성공(금전적 성공이나 CEO자리, 금메달, 명예)를 지향하는 사람들 역시 내적 성공도 지향한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느 CEO가 보너스를 받아 값비싼 IWC 그랑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구입했다고 하자.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뿌듯함을 맛보려고 그 시계를 구입했을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려고 구입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기분 좋게 지내기 위해 IWC 시계를 구입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외적 성공은 결국 내적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이쯤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다. 어차피 내적인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굳이 외적인 성공을 경유할 필요가 있을까? 우회하지 않아도 된다. 행복으로 직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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