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공무원 생활

   
김철원
ǻ
마인드빌딩
   
17000
2020�� 09��



■ 책 소개


의외로 다이내믹한 공직사회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과 스킬

고용 불안정의 시대인 현시점에서 신입 9급 공무원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입직한 지 3년이 되지 않아서 퇴직하는 신입 공무원,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공무원의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엄격한 상하관계, 경직되고 후진적인 조직문화, 강경하고 감정적인 민원, 낮은 기본급, 의외로 센 업무 강도가 그 주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시대의 신입 9급 공채생은 조직문화에도 일에도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아픔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우선 신입 공채생들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면서, 왜 이 시점에서 신입 공채생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회식 도중 조용히 사라져서 집에 갈 수 있는 방법, 강경 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과 같은 구체적인 스킬, 그야말로 얄팍한 처세술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신입 공채생들의 공직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소개한다. 이 책은 신입 공채생들의 정시 퇴근과 평화로운 직장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의미 있는 공직자로서의 삶과 소중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9급 공무원을 직업으로 고려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시험 준비를 결정함에 있어 공직 업무의 성격이나 일에 대한 흥미보다는, 장기간의 수험 기간을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정말 합격할 수 있을지, 합격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부 조직의 문화는 어떠한지 참고하고, 자신의 성향과 적성을 돌아본다면 청년들의 소중한 진로 의사결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철원
서울의 동 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여러 해 일했지만, 월급을 제때 받지 못했고 경력을 쌓지 못했습니다. 퇴사 후, 스펙, 경력, 외모를 보지 않는 회사가 한국에 어디 있는지 탐색했고, 그런 회사는 정부 조직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33세에 입직했습니다. 전문성을 높이고 싶은 마음에, 일하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고,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입직 후에 나름 쉽지 않은 시절을 겪었는데, 지금 공직에 입문하고 있는 신참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이 조금 덜 힘들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의외로 다이내믹한 9급 공채생의 일과 삶을 소재로 논픽션 소설을 써 보겠노라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 차례
책머리에
서장 최 서기보

1부 9급이 마주하게 될 현실
1장 생각보다 힘들어요
2장 고용 불안 시대에 선 청춘
3장 고용 불안 시대에 공무원이 된다는 것
4장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 Ⅰ
5장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 Ⅱ

2부 9급이 마주하게 될 조직과 조직원
6장 월급이 얼마인가요
7장 정부 조직은 이런 인재를 원한다
8장 너무나도 확실한 위계질서
9장 거대 관료제의 소중한 부속품
10장 고참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11장 인간관계의 정점, 회식

3부 9급이 마주하게 될 일과 손님
12장 규정 숙지, 정부 일의 거의 모든 것
13장 문서, 정부 조직의 공식 언어
14장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자
15장 특별한 고객은 특별하게 관리한다
16장 죽을 만큼 힘들다면
17장 그래도 힘들어하는 동료를 그냥 둬선 안 된다

4부 의미 있는 삶
18장 공직자로서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19장 공직자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

종장 최 주사보

추천사
부록
출처
슬기로운 공무원 생활

9급이 마주하게 될 현실
생각보다 힘들어요
‘오륙도’, ‘사오정’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봤을 것이다. ‘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45세 정년’이라는 뜻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의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49세다.

 




슬기로운 공무원 생활


9급이 마주하게 될 현실

생각보다 힘들어요

‘오륙도’, ‘사오정’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봤을 것이다. ‘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 ‘45세 정년’이라는 뜻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의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49세다.


이처럼 고용 안정성이 위태로운 이 시점에 공무원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이다. 사기업보다 낮다고 인식되는 업무 강도와 업무량, 공식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휴가 제도와 휴직 제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월급, 초과근무수당, 자기계발 지원제도, 법률로 보장된 정년, 그리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연금까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보람,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중요한 요인이 되겠지만, 짐작하건대 직업 안정성 역시 이 진로를 고려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입직 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이들의 숫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임용 3년 이내에 퇴직하는 공무원의 수는 2013년 32명, 2014년 54명, 2015년 81명, 2016년 138명, 2017년 127명이었다. 5년 사이에 4배가량 증가했다. 기사는 엄격한 상하관계, 경직되고 후진적인 조직문화, 의외로 센 업무 강도, 그로 인한 야근과 휴일 근무, 강경하고 집요하고 감정적인 민원, 낮은 기본급을 그 주된 원인으로 분석했다. 현직 공무원으로서 판단해 볼 때, 한국일보 기사의 분석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공직 업무는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국민, 사회, 언론, 정치권 등 모든 환경이 정부 기관의 투명함을 원하고 있고, 특히 현재 한국 사회는 무한 책임, 무한 친절, 무한 서비스를 정부와 공무원에게 요구하고 있다. 각종 수당은 그 수와 금액이 차차 줄어들 것이고, 공무원연금은 다시금 개혁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세대 갈등이 심화되어 신참이 고참으로부터 실용적인 조언과 따뜻한 위로를 얻기도 힘든 상황이다.


9급 공채생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다

보고 들은 것이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청년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신입 9급 공채생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은 ‘등·초본 발급하는 공무원 일이 뭐가 어렵냐’고 말하고, 20년, 30년 공무원 일을 한 재직자들은 ‘공직 업무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이 모든 것을 다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등·초본 같은 서류 발급 업무는 공무원 업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의 출생과 사망을 행정 처리하는 일이 가벼운 일인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국민의 최소 생계를 지원하는 데 앞서 신청인이 제출한 서류와 그의 재산 상황을 검토하는 일이 가벼운 일인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소득에 변화가 생겨서 수급자의 수급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 가벼운 일인가?


단언하건대, ‘신입 9급 공채생이 하는 일은,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업무 수행 능력의 기준을 단순하게 학력으로 삼은 것 자체만으로도 어폐가 있다.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없고 마음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9급 공채생 일은 못하는 것이다).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높은 수준의 법률 지식과 업무 능력을 갖춰야 하고, 고객 응대와 감정 노동에도 능해야 한다.


고용 불안 시대에 공무원이 된다는 것

9급 일이 힘든 이유 #2 시민들의 눈높이가 높다는 점

시민들이 기대하는 공무원은 이렇게 동양적 개념의 이상적인 공직자와 서양적 개념의 정형적인 사무원이 약간은 혼재되어 있다. 이 혼재된 이상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청렴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국민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면서 부당한 일에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단호한 인물.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과 최고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 스페셜리스트, 맡은바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야근과 철야를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사람.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며, 행정 절차에 사소한 장애가 있어도 재량을 발휘해서 결국 민원을 원만하게 해결해 주는 사람.’


이 정도 수준의 인격이라면 성인, 군자라 일컬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국민의 기대는 하늘 끝에 닿아 있다. 대부분의 신참 9급 공채생들은 이와 같은 이상적인 공직자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을 것이다.


동 주민센터에서 인감 담당을 맡을 때였다. 어떤 숙녀가 인감을 등록하기 위해 내 앞에 섰다. 고무인이었다. 인영이 변하기 쉬운 도장은 인감 신고를 받지 않는데, 인감증명법 시행령 제10조에는 고무와 동판으로 만든 도장이 그러한 예시로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이 있음을 안내하고, 인감 신고가 되지 않음을 최대한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나는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순간 샤프하게 바뀌었다.


"그렇게 세세한 규정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동사무소에 저런 큰 포스터를 붙일 게 아니라 그런 규정을 붙여 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사과를 드렸다. 짧고 굵게 쏘아붙이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려면 동 주민센터 벽을 모두 규정집으로 도배해야 할 텐데…….’


신참 공무원이 하는 일 Ⅰ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 전혀!

앞에서 신입 9급 공채생이 하는 일은,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본인이 본인의 주민등록표 등·초본을 발급받기 위해 자신의 신분증을 지참하고 동 주민센터에 방문한 경우, 이런 경우라면 일이 복잡해질 이유가 없다.


문제는 어떤 미비점 때문에 민원을 처리해 줄 수 없다는 여러분의 설명을 민원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형적이고 단순한 업무라 해도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복잡한 사안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일단 사안이 복잡해지면, 민원인 입장에서는 그 설명을 듣기가 싫어진다. 원하는 서류 발급을 해 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행정 서비스지만, 민원인들은 이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민 서비스를 수행해야 하는 공직자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관련 법 규정을 완벽하게 꿰차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를 근거로 민원인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말로 설명한 후에는, 말이 아닌 텍스트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텍스트는 담당자로서 미리 인쇄해 둔 관련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그리고 중앙정부가 내려보낸 지침과 편람 같은 것이다. 텍스트를 보여 드린다 해도 민원인은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표시한다. ‘이래서 해 드릴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인데, 민원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겸연쩍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텍스트를 눈으로 확인한 민원인이 그에 대해 더 길게 이야기하는 경우를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9급이 마주하게 될 조직과 조직원

너무나도 확실한 위계질서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집중된 권한

정부 조직의 장은 해당 조직에 있어 의사결정, 정책 결정, 예산 편성과 집행, 재무와 회계, 그리고 인사와 조직에 관한 권한을 갖는다. 업무 범위가 폭넓으면서도, 결정 권한은 장에게 집중되어 있다.


구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구청장이다. 구청장 휘하에 있는 간부들의 대다수는 구청장의 지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일한다. 웬만해서는 토를 달지 않는다. 구청장의 비효율적인 지시에 소신 있게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 빛의 속도로 다음 인사에서 좌천된다.


구청장에게 사랑받고 예쁨 받기 위한 간부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 내는 성과는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고 믿으면서,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조직원들을 이끌었다. 누구를 비난하랴. 우리 하급자들 역시 간부들에게 싫은 소리 듣든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조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튀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구청장과 간부가 이상한 일을 시켜도 무리해서 임무를 완수해 왔다. 잠잘 시간, 가족과 함께할 시간, 자기계발과 취미에 투자할 시간을 줄여 가면서, 그리고 건강을 잃어 가면서 말이다.


“전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과거에는 상사의 말이 부당하다 해도 가급적 상사의 말에 순응하는 것이 개인에게 이익이었다.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괴롭힘, 따돌림, 인격 모독, 승진 배제. 은근하게 벌어지기도 했고, 대놓고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인터넷, 전자문서, 스마트폰, 카카오톡이 있는 현시점에는 모든 정보가 개방되어 있어서 나중에 모든 일이 다 드러난다. 부당한 갑질이 세상에 많이 공개되었고, 노동자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시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는 근로기준법이 2019년 7월 16일 개정되어 시행되었다.

문제는 정부 조직에 상명하복의 수직적·경직적 조직문화가 여전히 주류 문화로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절대복종인데, 나 혼자 “싫어요” 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지시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을 때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있을지도 모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직장문화가 사회 전반을 휩싸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상관의 지시가 부당한지 정당한지 하급자가 판단하는 일 역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여러분이 신분 보장에 부담을 느낄 만한 수준으로 상관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여러분의 결정에 후회가 없도록, 여러분의 고용 안정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상사와 조직을 보호할 수 있도록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건강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현실에서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 두는 것이 좋겠다. 수직적 ·경직적 조직문화에 흔들리지 말고, 소신을 지켜 주길 바란다.


거대 관료제의 소중한 부속품

‘신참이 뭘 알겠어……’ 얕보는 마음

제갈량과 같은 인재가 되고 싶은가? 여러분의 조직은 여러분을 삼고초려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조직이 여러분을 일급 참모로 대우해 주기 전까지는 날개를 펴지 마라. 그럼 조직이 여러분을 일급 참모로 대우해 준 다음에는 날개를 펴도 된다는 얘기일까? 그것도 아니다.


함부로 날개 펴지 말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겸손 또 겸손하길 권한다. 날개도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과 사업을 펼칠 때에만 펼치길 권한다. 국가와 국민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취향에 맞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만 날개를 펼친다면, 훗날 씁쓸한 처지를 맞게 될 것이다. 승진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조직의 업무 효율성은 낮아지고, 자신의 건강과 평판이 나빠질 것이다. 날개를 펼치는 과정에서 동료 직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훗날 그 상처를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날개는 꼭 펼쳐야 할 때, 상관과 동료들을 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펼치는 게 좋겠다.


좋은 점도 많다

무엇보다, 정부는 모범적인 고용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 이것이 가장 좋은 점이 아닐까. 절대로 밀리지 않는 월급부터 초과근무수당, 병가와 출산휴가를 비롯한 각종 휴가 제도, 요양 휴직과 육아휴직을 비롯한 각종 휴직 제도, 인사 고충 심사 청구 제도, 그리고 노후 준비를 위한 연금 제도까지. 규모가 크지 않은 민간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서민 노동자들이 무척이나 갖기를 원하는 제도들이다.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만, 직장문화 때문에 실제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 것이다. 정부 정책의 수혜가 민간기업보다 정부 조직에 먼저 전달되는 느낌을 불편해하는 국민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서민 노동자들의 마음을 살펴 헤아린다면 더 좋은 공직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이들이 ‘법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정부 조직이라면, 자신들이 공표한 법과 정책에 어긋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여길 것이다. 정부 조직 역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당위적인 인식은 여러분의 직장 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9급이 마주하게 될 일과 손님

규정 숙지, 정부 일의 거의 모든 것

9급은 정말 여섯 시에 퇴근하는가

우선,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태풍, 홍수, 폭설, 지진, 감염, 재난 발생에 따른 비상근무와 복구 작업, 국정감사 수감이 대표적이다. 국회나 지방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할 때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이다. 행정부는 의회에 해당 부서의 예산안을 설명해야 하므로 초과근무를 감수해야 한다. 선거 업무도 마찬가지고, 국제 경기 대회와 지역 축제를 지원하는 일도 그러하다.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강조하는 업무 때문에 초과근무를 하기도 한다. 새마을 청소, 캠페인, 태극기·민방위기 게양, 민방위 비상소집 훈련처럼 업무 강도가 강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초과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사무실에서 하염없이 일해야 하고 하염없이 대기해야 할 때 신입 공채생이 물어볼 때가 있다. “주임님, 언제까지 대기해야 하나요?" 마음으로는 아마도 이렇게 묻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집에 갈 수 있나요?" 몸과 마음은 한없이 지치고, 어쩐지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하는 질문일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담당이 되어 주도적으로 일할 때보다는 다른 직원의 업무를 지원할 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물어보는 이들에게는 “아직 한참 멀었어요”, “이 비가 그치고, 비상근무가 해제됐다는 통보가 올 때”, “의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되고, 과장님, 팀장님, 담당 주임님이 사무실로 복귀하시면”과 같은 대답을 한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정시 퇴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정시에 퇴근하는 공무원이 유능한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다면, 관련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면, 문서 작성과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능숙하다면,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정시에 퇴근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재난, 국정감사, 예산, 축제, 선거 업무 지원 등 여러분의 고유 업무가 아니라고 해도, 여러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여러분이 반드시 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 임무는 업무 시간과 상관없이 반드시 완수되어야 한다.


문서, 정부 조직의 공식 언어

공무원은 문서로 말한다

공무원이 생산하는 문서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실무자가 자주 다루는 공문은 크게 계획서와 보고서, 그리고 시행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계획서와 보고서는 문서의 내용을 보고받는 사람 이 정부 내부의 상급자다. 시행문은 필요에 따라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다. 문서를 받는 사람이 기관 내부의 장일 수도 있고, 외부 기관의 장일 수도 있고, 국민 개인일 수도 있고, 회사, 법인, 단체일 수도 있다.


계획서와 보고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얄팍한 스킬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겠다. 우선 전임자 또는 상급기관 담당자가 작성한 문서를 선례 답습할 것을 권한다.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뭔가 혁신적인 계획을 수립하거나 정책분석, 정책평가, 프로그래밍 흐름도 수준의 체계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지나치게 힘 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둘째, 전임자가 작성한 문서는 관리자가 이미 결재한 문서이기 때문에 관리자도 ‘이 정도 내용이면 결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문서다. 따라서 관리자가 결재하지 않을 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별로 없다. 정기적이고 형식적인 계획서와 보고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기존 문서에 오타나 오류는 없는지 확인해서, 문장을 다듬는 정도로 작성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의미 있는 삶

공직자로서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자신만의 브랜드를 남긴 지방공무원들

순천시 공무원 최덕림 과장은 무려 8년 동안 순천만 세계정원 박람회장 조성 사업의 실무자로 일했다. 2013년 성공적으로 열린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하는 ‘소비자 선정 최고 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와 달리,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했다. 그의 저서 《공무원 덕림씨》에 그의 고군분투가 기록되어 있다.


고창군 공무원 김가성 과장은 ‘고창 청보리밭 축제’라는 이름의 지역 대표 축제를 만들었다. 이미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던 보리밭 풍광을 관광 상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에 비교하기도 한다. 3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첫 행사를 열었고, 180억 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고 한다. 국내 식품 대기업이 자사의 일부 상품에 고창 보리를 쓰기로 협약을 맺는 성과가 이어지기도 했다. 더 나아가 지역 특산물인 고창 복분자로 만든 술, 냉면, 분말을 시장에 내놓았다. 역시나 그의 저서 《180억 공무원》에 그의 고군분투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과 관계된 문헌을 살펴보면, 이들의 성공 공식을 다음과 같이 도출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전에 없었던 구상을 펼친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도 있고 오랫동안 구상해 온 아이디어도 있다. 보리밭 풍광을 팔기도 하고, 하늘의 별을 팔기도 한다.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요소가 있다. 둘째, 그의 구상에 조직원들이 눈총을 날린다. 그 현실적인 이유는 주로 예산이다.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이유가 된다. 셋째, 불굴의 의지로 조직원들의 냉소를 이겨 낸다. 이때 동원하는 도구는 상급자가 마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그만의 열정적이고 탄탄한 문서, 외부 전문가의 의견과 시민들의 성원, 마지막으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승인이다. 넷째, 이전에 없었던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 큰 보람을 느낀다. 다섯째, 한 번 더 역경이 찾아온다. 가장 주된 이유는 감사다. 조직원들의 시샘도 한몫한다. 여섯째, 문제점이 오해로 밝혀지면서 해소되고 정책이 안정된다. 시민과 동료,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공직자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

조직 안에서 주특기와 필살기를 만들자

어느 날 허무하게 고참이 된다고 했다. 도무지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과 조직에 매몰되면 순식간에 고참이 된다. 여러분이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나’ 생각했던 그 고참 말이다. 부서를 네다섯 번 정도 이동하고 나서 어느 날 10호봉 고참이 되었다고 해 보자. 1호봉 시절보다는 보수가 높아지고, 신참으로서 갖게 되는 부담은 확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 조직에서의 10년 경력이 여러분에게 과연 무엇을 남겨 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워드 실력, 엑셀 실력, 파워포인트 실력, 문서 작성 실력, 모두 어느 정도는 향상되었겠지만, 그 어느 것도 획기적으로 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실력은 본질적인 내공이라기보다는 스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고용 안정성에 만족한 나머지 자신의 주특기와 필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신참 시절에 좋게 보지 않았던 조직문화에 익숙해진 스스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대함에 있어 예의를 다하지 않았다면 좋지 않은 평판이 형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여러분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 조직에서 어떤 인재가 될 것인지, 그리고 이 조직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기왕에 일을 한다면 그 업무에 정통한 ‘통(通’)이 되길 권한다. 여러분에게 이익이 된다. 현재 자신에게 의무로 주어진 일도 열심히 하되, 경력이 붙으면 여러분의 관심사를 고민해 보길 권한다. 사·조직, 재무·회계·예산, 홍보, 문화·관광, 통계, 주민등록·인감. 가족관계등록,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여성복지, 아동복지, 건축·도시계획, 스마트시티……


‘나는 이 분야에서 통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경력을 잘 관리해서 조직 안에서 인재가 되길 바란다. 그 업무의 규정을 통달하고, 경력과 전문성을 쌓고, 사람들과의 소통에까지 노하우가 쌓인다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경력을 쌓게 된다면 일하면서도 공무원교육원이나 인재 개발원에서 돈을 받으면서 강사로 활동할 수도 있다. 여러분이 원하는 분야에서 인재가 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큰 행운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미 어느 정도 통달해 있는 자신의 업무 경력에 자격증을 추가해서 퇴직 후 새로운 인생 경로를 탐색하는 공무원도 있다. 고용노동부 공무원의 노무사 자격증 취득, 세무직 공무원의 세무사 자격증 취득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세무사 자격증이 쉬운 자격증은 아니지만, 뜻을 세운다면 여러분이 도전하지 못할 자격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공으로 조직 내에서는 물론 정부 조직 밖에서도 특기를 발휘할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아주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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