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messy)

   
팀 하포드(역:윤영삼 옮김)
ǻ
위즈덤하우스
   
16800
2016�� 12��



■ 책 소개

평범한 인생, 평탄한 비즈니스는 없다!
전례가 없는 변화의 시기에 기회와 혁신을 제공하는 무질서의 힘!

“아마존닷컴 선정 2016년 올해의 도서”
“‘경제학계의 노벨’ 2016년 바스티아 상 수상!”

 

우리는 암암리에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 질서정연한 실행이 성공을 보장하는 징검다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천재가 아닌 이상, 충동적인 판단이나 직감에 기대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책은 <파이낸셜 타임스>의 시니어 칼럼니스트이자 전 세계적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인 팀 하포드가 ‘정말로 계획과 질서는 성공으로 이어지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에 답한 책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세우는 많은 계획은 실은 실행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을 방해하는 요소이다. 또한 주변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욕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통제한다.

 

저자는 모든 계획과 질서를 파괴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앞선 일간계획과 월간계획의 사례처럼, 왜 어떤 계획은 성공의 발판이 되고 어떤 질서는 진화의 도화선이 되는지 그 속성을 안내한다. 오늘날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시기에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변화 그 자체에 숙련되는 힘이 필요하다. 저자는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인 상태를 뜻하는 ‘메시(messy)’라는 개념을 통해, 혼돈의 시기에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혁신의 비밀을 설명한다. 지금 당신이 세우고 있는 완벽한 계획을 약간만 엉성하게 바꾸어보라. 그것이 바로 혁신의 시작이다.

 

■ 저자 팀 하포드
팀 하포드는 옥스퍼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런던정경대, 옥스퍼드 등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전 세계 30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이자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니어 칼럼니스트다. 『경제학 콘서트』가 출간된 2006년에 재능 있는 경제 저널리스트들에게 수여하는 바스티아 상을 수상했고, 2016년 『메시』를 출간한 후 10년 만에 다시 한 번 바스티아 상을 수상했다. 『메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혼돈과 혼란은 타도의 대상이 아닌 적응의 대상이며, 오히려 새로운 기회와 출구를 모색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5년의 집필 기간 동안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밀도 있는 분석을 통해 완성한 이 책은,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고 혁신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유쾌한 어조로 통찰력 있게 설명해낸다.

 

그의 BBC 라이도 방송(More or Less)은 영국 왕립통계협회가 선정한 ‘방송 부문 우수 저널리즘’에 2011, 2012, 2014년 선정되었으며, 2015년 동일한 상의 저술 부문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2015년 〈인디펜던트〉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트위터리안 20인 중 한 명이며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포브스〉〈뉴욕 매거진〉〈가디언〉 등 세계적인 매체들에 꾸준히 칼럼을 기고한다. 그의 칼럼은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경제 원리와 궁금증들을 적절한 사례와 날카로운 분석, 유쾌한 위트로 버무려 유익하고 흥미롭게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은행 국제금융공사 수석 경제학자들의 집필 자문이자 영국 왕립경제협회 회원이다. 『메시』의 핵심 내용은 그의 TED 강연(How Frustration Can Make Us Mere Creative)을 통해서도 활인할 수 있으며 현재 200만 이상이 조회했다.

 

■ 역자 윤영삼
윤영삼은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40여 권을 번역했으며 출판기획, 편집, 저술 등 여러 활동을 해왔다. 대표 역서로는 『논증의 탄생』『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그곳은 소, 와이, 바다가 모두 빨갛다』등이 있따. 2007년부터 출판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한 번역 강좌를 해오고 있으며, 2015년에는 기능주의 번역이론을 바탕으로 한 번역훈련 방법을 설명하는 『갈등하는 번역』을 썼다.

 

■ 차례
들어가는 말
메시! 기적은 통제되지 않는다!

 

1. 질서는 진리가 될 수 없다
2. ‘생각하는 인간’이 완벽한 기계를 이긴다
3. 자율이 효율을 만든다
4. 기회를 만들려면 일단 내질러라
5. 찰나의 기지가 승패를 결정한다
6. 창의의 출발은 부수는 데 있다
7. 무계획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8. 다양성이 곧 생존의 힘이다
9. ‘메시’가 최고의 팀을 만든다

 

감사의 글
참고문헌

 




메시 MESSY


메시! 기적은 통제되지 않는다

1975년 1월 27일, 베라 브란데스(Vera Brandes)라는 열입곱 살짜리 소녀가 독일의 쾰른 오페라하우스의 널따란 무대 위에 섰다. 이날은 베라의 삶에서 가장 신나는 날이었다. 독일에서 가장 어린 콘서트 기획자였던 그녀는, 오페라하우스를 설득해 미국의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Keith Jarrett)의 즉흥재즈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콘서트 표는 매진되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1,400명 관객 앞에서 재럿의 연주가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피아노를 바꾸지 않으면, 오늘밤 연주는 힘들 것 같습니다. 작은 피아노는 튜닝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가운데 검은 건반은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페달은 눌러지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였다.


재럿은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브란데스에게 오늘 생애 최고의 날은 갑자기 최악의 날로 곤두박질쳤다. 브란데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에 흠뻑 맞으며 차창을 사이에 두고 제발 연주를 해달라고 사정하는 것뿐이었다.


브란데스의 부탁을 모른 척하기 어려웠던 키스 재럿은 몇 시간 후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 앞에 섰다. 그리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연주가 시작됐다. 브란데스는 이렇게 회상한다.


첫 마디를 연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들기 시작했죠.


재럿의 연주는 아름다우면서도 기묘했다. 바로 이 연주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쾰른 콘서트〉다. 이 앨범은 350만 장이 팔려나갔다.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피아노 덕분에 재럿은 깽깽거리는 고음부 대신 중간 톤을 최대한 활용했는데, 이날 연주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냈다. 모두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 덕분이었다. 결코 들어본 적 없는 명연주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상상 이상의 결과가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정확하게 완벽한 시스템과 질서정연함에 굴복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완벽한 원고를 요구하는 대중연설자, 면밀한 전략을 세우고자 하는 군사지도자, 잡생각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정확한 수치를 정책 목표로 설정하는 정치인, 책상 정리를 하지 않는다고 닦달하는 상사, 모든 팀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를 기대하는 리더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질서에 대한 욕망도 중요하다. 카테고리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계획하고 수치화할 때만 예측할 수 있는, 즉 체계적으로 잘 정돈된 세계 역시 인간에게 만족감과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깔끔하게 정돈하고 체계적으로 시스템화하기 위해 여기저기 삐져나온 혼란과 무질서를 싹둑싹둑 잘라내기만 한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선사하는 미덕을 경험하기 어렵다. 혼란과 무질서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도무지 질서와 계획이 보이지 않는 무질서한 상태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리정돈에 취약했던 벤자민 프랭클린

1726년 런던에서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긴 여행을 하면서, 젊은 인쇄업자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계발의 결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랭클린이 추구한 덕목은 13가지로, 여기에는 절약, 근면, 성실, 청결 등이 있다. 프랭클린이 추구한 덕목은 달성하기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다이어리는 어쨌든 성공했다. 프랭클린은 역사상 찬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멕시코만류의 흐름을 표시한 지도를 제작했고, 다초점 렌즈, 피뢰침, 유연한 소변줄(도뇨관)을 발명했으며, 미국 최초의 우정공사 총재를 역임했고 외교관으로 프랑스에 파견되기도 했으며 펜실베이니아 인민대표를 맡기도 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건국의 아버지로서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인물에게도 한 가지 떨쳐버릴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질서였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라. 업무의 각 부분이 제시간에 이루어지도록 하라는 단순해 보이는 이 덕목은 프랭클린을 끝까지 괴롭혔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의 덕목 중 질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고 좌절감을 표현했다. 실제로 프랭클린에 대해 한 학자는 프랭클린을 처음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중요한 서류들이 책상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모습은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썼다.


역사상 가장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손꼽히는 프랭클린은 60년 동안 그토록 노력을 쏟았음에도 자신의 집과 다이어리는 결코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토록 한평생을 무질서 속에서 보냈음에도 프랭클린은 여전히 질서를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단점을 고쳐서 덜 무질서해질 수 있기만 하면 더 존경받고 더 성공적이고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착각이었다. 더 시간을 들여 서류를 깔끔하게 정리정돈한다고 해서 그의 풍요로운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착각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질서를 찬양하지만, 무질서 속에서 좋은 것이 탄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무질서가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도 대부분 프랭클린과 비슷한 패배감을 느끼며 산다. 서류를 정리하고, 직무를 수행하고, 시간을 계획하고, 연인을 찾고, 사람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 같은 일상적인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늘 무질서를 뿌리치기 위해 노력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착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착각이다.



생각하는 인간이 완벽한 기계를 이긴다

위험천만해서 안전해진 거리 스퀘어어바웃

1980년대 중반 네덜란드의 교통공학자 한스 몬데르만은 우데하스케라는 마을로 파견을 간다. 두 어린이가 자동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몬데르만은 이 마을을 관통하는 차량들의 속도를 측정했고, 차량들이 너무 빠르게 달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신호등, 과속방지턱, 표지판 같은 전통적인 안전 시설물을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 우선적인 고려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이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효과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몬데르만은 알고 있었다. 신호등과 과속방지턱이 나오면 그때만 속도를 줄일 뿐, 그곳을 지나면 운전자들은 다시 속도를 낸다.


그래서 몬데르만은 혁신적인 방법을 시도한다. 우데하스케 마을의 도로를 원래 있던 모습대로 복원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먼저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교통표지판들을 모두 없앴다. 교통표지판은 표면적으로 운전자들에게 속도를 줄이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몬데르만이 보기에 교통표지판은 운전자들에게 자신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뿐, 실제로 감속을 유도하는 효과는 미미하다. 몬데르만은 운전자들에게 자신이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 노는 마을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통표지판을 없앤 다음 몬데르만은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붉은 벽돌로 포장했다. 또한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경계석도 붉은색으로 바꾸고 높이를 낮췄다. 더욱이 곳곳에 도로와 인도를 비스듬히 연결해 경계를 없앴다. 운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인도로 쉽게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운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유하자면 오토파일럿에 의지해 도로를 질주하던,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운전자들이 이제는 혼돈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가 차가 다니는 길인지, 어디가 아이들이 뛰어 노는 곳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영국의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의 말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당황한 운전자들은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우데하스케 마을에 들어선 자동차들은 너무나 느리게 달려서 스피드건으로 속도가 찍히지도 않는다. 얼 위너의 법칙을 적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실수가 발생할 확률을 높임으로써 큰 실수가 일어날 확률을 크게 낮췄다.


몬데르만은 비주류 교통설계전문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교통흐름을 원활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교통체계를 끝없이 정돈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세계적인 추세를 역행하는 처방을 한다.


네덜란드의 소도시 드라흐텐에 있는 라바이플라인 교차로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신호대기 중 주변을 둘러보는 대신 초조하게 신호등만 쳐다보았다(도시 교통사고의 절반은 신호등 주변에서 발생한다). 교차로 한편에는 쇼핑센터가 있고 반대편에는 극장이 있어 보행자들이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도 많았다.


몬데르만은 라바이플라인 교차로에도 혼돈이라는 마법을 적용해 스퀘어어바웃이라는 광장을 만들어냈다. 우데하스케와 마찬가지로 교통흐름을 통제하는 시설물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교차로 한가운데 잔디를 심은 둥그런 교통섬을 만들고 양쪽에는 분수를 설치하고, 자전거이용자와 보행자가 자주 다닐 만한 곳에는 바닥에 보행자 진입로 표시를 해놓았다. 횡단보도도 없고 교통표지판도 없고 신호등도 없다.


언뜻 보기에는 보행자 중심 도로설계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광장은 이전과 다름없이 수많은 차량이 사방에서 접근해 교차한다.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들도 예전처럼 무수히 사거리를 건너지만 이제는 의지할 수 있는 신호등이 전혀 없다. 매우 위험한 상황처럼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퀘어어바웃의 교통은 매우 원활하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들은 더 이상 가만히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느린 속도로 미끄러지듯이 교차로를 빠져나갈 뿐이다. 교차로를 통과하는 차량의 수는 늘었고 교통정체는 줄었다. 또한 신호등이 있을 때보다 교통사고도 절반으로 줄었다. 정확히 말해서,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더 안전한 교차로가 된 것이다. 운전자들은 교통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자전거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돌발상황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 없다.


이 교차로에 들어서면 누구나 완만하게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아야 한다.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위협이나 장애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스퀘어어바웃에서 운전자들은 이제 예전처럼, 마치 자율주행차를 타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없다. 혼돈의 광장은 그들에게 정신을 집중하도록, 복잡한 상황을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상대방을 서로 살피도록 만든다. 혼란이 유익한 이유다.



기회를 만들려면 일단 내질러라

상대를 꿰뚫는 트럼프의 우다루프 전략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공화당의 대선후보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처음에는 모두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부동산개발업자, 리얼리티쇼의 스타, 악명 높은 허풍쟁이, 아마추어 정치인인 트럼프가 훨씬 노련하고 지명도 높은 정치인들과 맞서서 이길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가 상대한 정치인 중에는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동생이며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낸 젭 부시가 있다.


하지만 예측과는 전혀 다르게, 2015년 트럼프는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젭 부시는 고사 직전에 처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한 가지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먼저, 트럼프가 불법이민과 같이 민감한 이슈에 관해 공화당 지지자의 밑바닥 정서를 자극하는 매우 선동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경쟁자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관심사에 동조한다는 것을 표시하면서도 훨씬 부드럽고 균형 잡힌 어조를 유지하지 위해 노력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발을 떼지만 그것이 도리어 족쇄가 된다.


젭 부시는 인터뷰에서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트럼프의 막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아시아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듯한 말을 하고 말았다. 그 인터뷰가 끝날 때쯤 트럼프는 트위터에 나타나 경쟁자들을 조롱하거나 또 다른 터무니없는 소리를 터트린다. 또한 자신을 인터뷰한 여기자에 대한 여성혐오적 힐난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뉴욕타임스 기자에 대해 초등학생들이나 내뱉을 만한 말을 해 여론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한 다음, 트럼프는 다시 트위터에 나타나 보스턴글로브를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다니. 뉴욕타임스는 멍청이 하고 비난하면서 화제를 확 바꾸어버린다.


평생 정치를 해온 트럼프의 경쟁자들은 깔끔하게 정리된 상황을 추구한다. 언론보도를 작성하고 인터뷰 내용을 브리핑하는 홍보전문가들이 이미지를 다듬어주고 실수를 막아준다. 하지만 그들이 공들여 준비한 연설이나 발표보다도 트럼프의 재빠른 트윗 한 줄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지지율을 이끌어낸다.


2015년 어느 날, 한 친구가 짧은 코멘트를 달아 링크를 보내주었다. 트럼프는 상대후보의 우다루프(OODA loop)를 꿰고 있다.


우다루프는 군사용어로 미 공군대령 존 보이드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사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현대군사전략의 우상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타이핑한 종이에 다시 타이핑을 하고 손글씨로 주석을 달아 《전투의 패턴》이라는 이름을 붙인 196쪽 원고로 정리했다.


젊은 시절 보이드는 공군의 최고조종사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적의 생각을 읽고 한 발 앞서 움직였다.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적의 측면을 찌르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하는 공중기동매뉴얼을 만들었다. 이 매뉴얼은 전 세계 공중전의 바이블이 된다.


1975년 공군에서 퇴역하고 난 뒤 보이드는 자신의 주장을 좀 더 일반적인 주제로 확장했다. 젊은 시절, 그는 40초 보이드라 불렸는데, 상대 전투기 에이스를 물리치는 데 40초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퇴역을 하고 난 뒤에는 여섯 시간 강연으로 유명했다. 초창기 그의 강연은 소규모로 진행되었지만,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보이드의 강연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소문이 워싱턴 DC까지 퍼졌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전투의 패턴》이 이토록 주목을 받았을까?


《전투의 패턴》에서 다루는 사례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승리를 거둔 무수한 사례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성공적인 지휘관은 혼란을 이용해 적이 상황을 파악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란은 전장에서 그냥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이자, 또 의도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무기다.


보이드는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을 우다(OODA)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Observe(관찰)

Orient(방향설정)

Decide(결정)

Act(행동)

우다는 이 네 단어의 머리글자로, 쉽게 말하자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고 난 다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보이드는 그의 여섯 시간 강연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우다루프가 치열한 경쟁국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결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면,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봐야만 한다. 그럴수록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은 더 길어진다. 상대방이 혼란을 느껴 주춤하는 사이 더 빨리 한 걸음 나아간다면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처럼 상대방의 우다루프를 꿰차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상대방은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마비상태에 빠지고 만다. 무언가 행동을 하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그때마다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우위를 넘어서, 적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트럼프를 보고 우다루프를 떠올린 친구는 그린피스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보이드의 이론을 배웠다. 그린피스는 보이드의 이론을 활용해 거대한 정유회사를 흔드는 방법을 활동가들에게 가르친다. 정치평론가 조쉬 마샬의 말처럼 고통스럽게 질질 끌려 다니며 마지못해 대응하는 젭 부시와 마음대로 활개 치며 자신만의 언어로 트위터를 활용해 공세를 퍼붓는 트럼프를 보면 상대방의 우다루프에 휘말리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트럼프의 이미지는 무수히 타격을 받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화제를 바꾸는 능력을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한다. 중대한 아이오와코커스 바로 전날 밤 열린 TV토론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선택으로 트럼프는 뉴스 헤드라인을 독차지했다. 트럼프는 상대후보와 언론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대응하게끔 만들었다. 항상 완벽하게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완벽보다는 속도를 우선하는 그의 전략은 언제나 상대방을 허둥지둥 헤매게 만든다.



무계획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최고의 시스템을 만드는 예상치 못한 질문

2015년 9월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은 미국 배기가스검사에서 속임수를 쓰다 덜미를 잡혔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주가는 폭락했고, 마틴 빈터콘 회장은 사퇴했다.


어떻게 그런 속임수가 가능했을까? 제조사들은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측정하는 배기가스 실험과정을 통과해야 자동차를 출시할 수 있다. 질소산화물은 농작물에 해를 미치고, 노약자와 아이들에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치명적인 결과를 부르는 산성비, 스모그, 검댕 등 다양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이다. 이 실험실 검사는 매우 엄격하며, 기준이 높다. 하지만 그 평가방식은 너무나 뻔하다. 러닝머신 위에 자동차를 올려놓고 몇 가지 동작만 수행하면 그만이다.


그 결과, 폭스바겐은 속임수를 발명해냈다. 우선, 오늘날 모든 엔진이 그렇듯이 폭스바겐의 엔진에는 요란한 컴퓨터와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 실험실에 들어가는 순간 그 환경을 인지해낸다. 자신이 실험실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엔진은 스스로 효율은 떨어지지만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가동해 질소산화물을 걸러주는 특별한 시험주행 모드로 전환한다. 시험장에서 나오면, 엔진은 원래대로 돌아가 굉음과 함께 높은 효율을 발휘하며 규정보다 20~30배 넘는 질소산화물을 거리에 뿜어낸다.


폭스바겐의 행태는 연방준비제도의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수익이 없는 자산을 사들인 은행들의 행태와 놀랄 만큼 비스하다. 그들은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검사에 특화된 모드를 개발했듯이 스트레스 테스트만을 위한 특수 모드를 만들어냈다. 차이가 있다면 그런 행태가 자동차산업에서는 불법이지만, 금융업에서는 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스캔들은 폭스바겐이 예측가능한 시험에서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이 아니다. 감독기관들이 이러한 속임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실험 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98년 미국 EPA(환경보호국)는 트럭제조사들이 배기가스 검사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특수한 엔진모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리고 디젤트럭을 생산하는 볼보, 르노, 캐터필러앤맥을 비롯한 일곱 개 회사에 대해 EPA는 시정조치를 내렸다. 유럽연합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미국보다 잘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규정이 훨씬 느슨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폭스바겐을 적발한 것은 EPA가 아니다. 비영리단체인 ICCT(국제청정교통협회)가 폭스바겐 차량의 배기가스를 조사해 밝혀낸 것이다. ICCT가 배기가스를 조사한 것 역시 자동차 제조사를 고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어떤 차가 가장 배기가스를 적게 배출하는지 찾아내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ICCT는 배기가스를 매우 단순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조사했다. 폭스바겐 머플러에 배기가스 측정모니터를 부착하고자 샌디에이고에서 시애틀까지 달린 것이다. 그것만으로 폭스바겐의 부정행위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도 누구나 커닝페이퍼를 가지고 시험을 볼 수 있다면 전혀 어려운 시험이라 할 수 없다.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던지는 단순한 질문이 훨씬 제대로 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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