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산에서 내려가는 연습

   
마스노 순묘(역:김지연)
ǻ
담앤북스
   
13000
2016�� 11��



■ 책 소개

 

마흔 이후, 가족‧친구‧일만 있으면 되는 걸까?

 

일, 가족, 친구. 붙든다고, 곁에 오래 머문다고 저절로 내 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 듦에 따라 관계를 재정립해야 내 사람, 내 일을 잘 지킬 수 있다. 예컨대 부부의 경우, “올라갈 때에는 오르막길에 걸맞은 부부관계가 있듯이 내려갈 때에는 내리막길에 걸맞는 새로운 부부관계가 탄생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대체로 남자들은 이런 부부관계의 변화를 알아채는 데 둔한 편이다. 아내는 이미 산을 내려가며 새로운 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남편은 알아채지 못한 채 여전히 같은 산을 계속 오르려 하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혹은 ‘생활을 위해’라는 발상에서 벗어나 부부가 함께 다음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이렇듯 하산길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다음 행동을 현명하게 취할 수 있는 것이다.

 

■ 저자 마스노 순묘
1953년 태어났다. 일본 조동종의 총본산인 소지지(總持寺)에서 수행했으며 현재 일본 겐코지(建功寺)의 주지이다. 이밖에 다마미술대학 환경디자인과 교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특별교수 등의 직함을 갖고 있다.

 

선(禪)을 주제로 한 정원 창작 활동을 펼쳐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정원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일본 예술 선장 문부대신 신인상을 받았다. 2006년에 <뉴스위크> 일본판의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에 선정되었다. 도쿄의 캐나다 대사관과 세룰리언 타워 도큐 호텔의 일본 정원 등이 그의 작품이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스님의 청소법》《온화하게 심플하게》《9할》《화내지 않는 43가지 습관》등이 있다.

 

■ 역자 김지연
역자 김지연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시사일본어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 문화와 책에 대한 끝없는 관심으로 원서를 탐닉하다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옮긴 책으로는 《흔들리는 마음 버리기》《누군가가 부족하다》 등이 있다.

 

■ 차례
1장 하산이라는 철학

내리막길에서 한 걸음 내딛는 것
‘누구를 위해’에서 벗어나다
세상으로부터 잊힌다는 쓸쓸함
하산하며 생겨나는 원숙미
체력의 쇠퇴는 마음먹기 달린 것
후회와 마주하는 법
평가보다 감사하는 삶
혼자라는 쓸쓸함
부모에게 배우는 하산의 여정
소비 패턴을 바꾸다

 

2장 하산할 때의 마음 정리
일부러 애매하게 하는 지혜
직함과 자부심을 버릴 것
푹 빠질 만한 것이 있습니까?
이제까지 깨닫지 못한 능력이 있다
불편함을 즐기는 마음을 가지다
건강 수치에 사로잡히지 않기
몸도 마음도 멋지게 살아가다
백운처럼 마음을 자유롭게
살게 하는 힘을 깨닫다
‘선의 정원’에 도달한 사람들

 

3장 기분 좋은 하산을 위하여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고픈 마음
1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다
정년 후에야말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힐 때
직함 없는 가벼움을 즐기다
‘하고 싶은 일’ 노트 만들기
분명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지 않는다
일하는 의미를 묻다
고독은 사람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든다
문득 멈춰 서 보다
추억은 인생의 보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소중히
불역과 유행으로 시선을 돌리다
제2의 인생은 연장전이 아니다
행복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4장 십우도로 보는 인생이라는 산
그림 1. 심우 2. 견적
그림 3. 견우 4. 득우
그림 5. 목우 6. 기우귀가
그림 7. 망우존인 8. 인우구망
그림 9. 반본환원 10. 입전수수

 

끝마치며




인생이라는 산에서 내려가는 연습


하산이라는 철학

누구를 위해에서 벗어나다

인생이 한창 오르막길인 30,40세대. 이 시기에는 늘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라는 생각이 따라다닙니다. 결혼을 하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이 생기면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요. 또는 회사에서 출세하기 위해 한눈 팔지 않고 일에 매진합니다. 위를 향해 끝없이 올라가는 시기입니다.


물론 그러한 동기 부여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집 대출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아무리 고달파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견딜 수 있지요. 이렇듯 인간이란 눈앞에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더욱 힘을 내는 법입니다. 만약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라는 목표가 없다면 아마 되는 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무리해서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한 순간, 인생의 발걸음이 멈춰서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앞의 동기 부여란 그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에 언제까지고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은 머지않아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쉰 살이 넘으면 자식들은 독립을 하고, 부모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더 이상 부모에게 어리광을 부리지도 않지요. 즉 자식을 위해라는 버팀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쓸쓸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에게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독립하려는 자식을 붙잡는다거나 독립하지 못한 자식을 계속해서 돌보는 것은 언뜻 보기에 자식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은 부모의 자기만족입니다.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인 것이지요.


자식이 독립을 하듯 언젠가 회사의 부하들도 훌륭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날이 옵니다. 부하를 키우기 위해라는 역할은 머지않아 끝나게 됩니다. 그런 시기가 찾아오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부부 사이 역시 이제까지와 달라져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키우기 위해 이제까지 부부가 힘을 합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오르막길의 시기가 끝나면 부부 공동의 목표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 상황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부가 헤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올라갈 때에는 오르막길에 걸맞는 부부관계가 있듯이 내려갈 때에는 내리막길에 걸맞는 새로운 부부관계가 탄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남자들은 이런 부부관계의 변화를 알아채는 데 둔한 편이지요. 아내는 이미 산을 내려가며 새로운 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남편은 알아채지 못한 채 여전히 같은 산을 계속 오르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곧 아내의 모습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혹은 생활을 위해라는 발상에서 벗어나 부부가 함께 다음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내리막길에서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요? 물론 그것을 찾아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오르막길에서는 구태여 힘들게 찾지 않아도 목표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곤 합니다. 집을 사면 대출을 갚아야 하고, 자식이 학교에 들어가면 교육비를 내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점점 중요한 일이 맡겨집니다. 이렇듯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나지요. 그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애써 목표를 찾지 않아도 되니 편하기도 합니다. 당장 눈앞의 일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뭔가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등등 이제까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장은 그 답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정말 선문답과 같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내리막길에 던져지 이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초조해하면 답을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가만히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쩐지 어렵고 철학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에 정해진 정답이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으면 됩니다. 앞으로의 인생은 이러한 것을 위해 살겠다라고 결심을 하고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다만 그 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가졌던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라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 회사 업무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것. 이 모든 것은 몹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없이 당신 앞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머지않아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바뀌어 갈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인생의 하산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잊힌다는 쓸쓸함

정년퇴직 후에 잔뜩 풀이 죽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남성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지요.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고, 집에 있어도 마땅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 회사를 벗어나지 못했던 탓에 외출을 할 때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맵니다. 양복 외에는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퇴직할 때 부하들이 "가끔 들러 주세요.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한참 많아요"라고 말하며 배웅을 해 주었습니다. 만약 그 말을 듣고 역시 내가 필요해라고 착각을 하고 회사로 찾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실에서는 성가신 존재가 될 뿐입니다. 자기 한 명 없어졌다고 해도 회사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갑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회사란 그런 곳입니다.


정년퇴직을 하면 그 회사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함께 일을 하던 동료, 부하와의 인연도 끊어지지요. 정년퇴직이라는 건 하나의 인연이 끝나는 것. 그것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새겨 두어야 합니다.


하나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나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가족 외에 평생 끊이지 않는 인연이란 없습니다. 학창 시절의 친구도, 사회에서 만난 동료도 그 인연이 평생 지속되기란 어렵습니다. 때로는 평생의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일은 매우 드물며 큰 행운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맺고 있는 인연의 대부분은 언젠가 옅어지거나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제까지의 인연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말고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지금 맺고 있는 인연이 전부인 양 느끼곤 하지요. 회사에서 맺은 인연, 일을 하면서 깊어진 인연. 물론 그것도 소중한 인연이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지금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거기에 집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억지로 인연을 끊어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전 동료가 만나고 싶다면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만나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그 인연은 옅어질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인연에 매달리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완강히 거부하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인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십시오. 그렇게 온화하게 인연과 이별하면 됩니다.


힘들게 인생이라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으니 자신의 영혼이 진정으로 찾고 있는 인연을 만나야 합니다. 직함이나 프라이드 따위는 버리고, 함께 있으면 진심으로 즐거워지는 인연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즐거운지 등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억지로 인연을 맺거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인연을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원수가 아니라 얼마나 질 높은 인연을 맺는가입니다. 오르막길에서처럼 명함을 건네며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언제 한번 술 한잔합시다"가 아니라 "다음에 술 한잔 안 할래요?"라고 부드럽게 권해 봅시다. 그 말에는 그저 상대방과 술잔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을 뿐 아무런 계산이 없습니다. 내리막길에서는 분명 그런 인연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을 맺음으로써 세상에서 잊혔다는 적막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산할 때밖에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산할 때의 마음 정리

몸도 마음도 멋지게 살아가다

불교에 삼업(三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의 업이란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을 일컫습니다.


신업이란 몸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른 행동거지와 단정한 옷차림을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행을 좇거나 비싼 명품을 입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단정하게 옷을 입고 남들에게 깔끔한 인상을 주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출근할 때는 깔끔하게 다림질을 한 와이셔츠를 입고, 구두를 정성껏 닦고, 손수건도 자주 빨아서 써야 합니다. 또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수염도 단정하게 깎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것 같지만 의외로 무관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20대나 30대라면 와이셔츠에 구김이 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관대하게 봐주곤 하지요. 하지만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20대 남성의 구두는 더러워도 사람들이 호의의 눈길로 봐 주지만, 예순이 다 된 남성의 구두가 더러우면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옷차림이 칠칠치 못하면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칠칠치 못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산을 내려갈 때에야말로 가장 멋스러워야 합니다. 설령 정년퇴직을 해서 회사에 갈 일이 없다고 해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고가의 양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무인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은 구업입니다. 이것은 아름답고 따뜻한 말투로 말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생각한 것을 바로바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했다가 말로 전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이 잘 전해질지 곰곰이 생각한 후, 단어를 잘 선택해서 전달하는 것이 구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마음이 온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온화한 분들이셨어라며. 그렇지만 이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화가 나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업을 수행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온화한 태도로 대할 수 있습니다. 구업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내리막길에서조차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 버리지요. 그것은 너무 추한 모습입니다.


젊은 사람들과 같은 장에서 싸워서는 안 됩니다. 뭐든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그들의 고민과 분노를 받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젊었을 때 그와 같은 고민과 분노를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그 경험을 살려 젊은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산을 올라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산을 내려가면서 길을 가르쳐 주는 것. 그런 역할로 변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업과 구업을 몸에 익힌 결과로서 의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의업이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만 바르게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싶다면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좌선 모임에 나오는데 그런 사람은 아무리 좌선을 열심히 해도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좌선을 해야 마음까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우선 몸가짐부터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늘 이 삼업을 명심해야 합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몸가짐에 신경 쓰면서 등줄기를 곧게 펴고 걸으십시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투를 사용하십시오.


이것을 명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흠모하여 주위로 모여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따뜻한 인간관계가 탄생할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잘 둘러보십시오. 불결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 난폭한 행동을 하는 사람, 거친 말투로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사람. 그런 사람 중에 과연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당신은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나는 싫습니다. 




기분 좋은 하산을 위하여

행복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해지고 싶다. 그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필사적으로 생각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을 손에 넣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고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행복의 씨앗을 열심히 찾아 헤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면 행복해질 수 있다, 일류 회사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수 있다, 출세를 해서 월급이 오르면 행복해질 수 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굳게 믿고, 출세와 돈이라는 씨앗을 주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씨앗을 손에 넣은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가령 그 씨앗으로 꽃을 피웠다 하더라도 금방 시들고 맙니다. 그러면 다시 다른 행복의 씨앗을 찾기 위한 여행이 시작되지요. 주우면 잃고, 꽃을 피우면 금방 사라집니다. 그 반복이 인생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이지요. 만약 무엇인가가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인생은 매우 단순하고 간단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월급이 100만 엔이 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100만 엔의 월급을 받는데도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대로 월급은 20만 엔밖에 되지 않지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자식이 없거나 혹은 독신이어도 충실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를 손에 넣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진심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빨리 깨닫기 바랍니다.


특히 제2의 인생에서는 다양한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행복해지기 위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넘칠 정도의 욕망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뭔가를 손에 넣고자 하지요. 물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인생에는 그런 시기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인생의 오르막길이 끝난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있지도 않은 도구를 찾아 헤매지 말고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 있구나 하고. 아침 햇살을 맞으며 그저 살아 있다는 행복을 느껴 보십시오. 비에 젖어 추위를 느끼는 것 또한 살아 있다라는 행복에서 생겨납니다.


산책을 하며, 길가에 핀 한 송이 꽃을 보십시오. 이제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 꽃은 해마다 그곳에 피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가련한 꽃 한 송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참 행복해 보여, 항상 웃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을 거야라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지요.


행복의 분량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누군가는 더 많은 행복을 갖고, 누군가는 적게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늘 행복해하고, 어떤 사람은 늘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지요. 그 차이는 행복을 느끼는 힘에 있습니다.


그 힘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저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행복에 대한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누구라도 그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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