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속시원히 풀어낸 여성의 좌절과 재도약 과정!
희망교육개발원 김경희 원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 저자는 도전과 사회적 준비를 거쳐 새로운 세상을 열고, 삶을 이룬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미스코리아에서 전업주부가 된 후 전업주부에서 명강사, 교육 사업가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여느 여성들처럼 결혼 후 출산을 하면서 경력 단절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자기계발로 미스코리아라는 화려한 옷을 벗고, 현실에서의 성공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 책은 그녀가 겪은 그러한 좌절과 재도약의 숙련과정을 여과 없이 날것의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동시대를 사는 여자들의 현실, 즉 일상적 삶, 사랑, 성공 이야기를 오롯이 여자들의 언어로 풀어냈다.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친구 혹은 친언니와 말하듯이 동치미처럼 속시원한 필체로 써 내려갔다.
■ 저자 김경희
1987년 미스코리아 광주·전남 ‘진’으로 2011년 자랑스런 명강사 대상, 2014년 신창조인 대상, 2014년 대한민국 명강사 33인에 선정되었다. 교육기업인 <희망교육개발원>, <희망교육연수원> 원장과 <소나무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KBS1「아침마당」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해 시청자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으며, 행복한 가정 만들기, 현대 여성의 성공과 사랑, 매력 소통법, 사랑을 부르는 대화법 등의 주제로 지자체와 기업체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년차 강사이다. 『괜찮아, 희망이 있다면』도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많은 여성들에게 변화와 발전, 희망을 주려는 마음에서 집필했다.
■ 차례
추천사
저자 서문
1장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1. 신데렐라는 행복하지 않았다
2. 당신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3. 꿈이 있는 여자가 아름답다
4. 재테크보다 시테크
5. 배우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6. 지금 막 마음속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7. 학습지 교사의 인생수업
2장 다시 봄, 봄, 봄
1. 나는야, 미스코리아!
2. 미스코리아에서 웨딩 도우미로
3. 전업주부에서 사업가로
4. 잊지 못할 맨발의 첫 강의
5. 어느 초짜 강사의 운수 좋은 날
6. 세상에 나를 외치다
7. 거위의 꿈
3장 나이 대신 사랑을 먹는 여자
1. 스토리 없는 결혼이 어디 있으랴
2. 내 생애 최고의 남자
3. 남편이 ‘남의 편’인 줄 아는 남자들
4. 사랑하니까 악처다
5. 아내의 줄에 서라
6.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4장 길을 걷다 문득, 행복을 줍다
1. 70점짜리 내 인생
2. 가슴속에 묻었다면 잊어야 한다
3. 시대의 자화상 같은 내 친구의 일기
4. 벤츠에 사랑을 싣고
5. 친절이라는 위대한 선물
6. 황금보다 지금이 좋다
7. 봄꽃 같은 미소를 간직한 그대에게
5장 여자의 일생
1. 여자, 행복의 조건
2. 화장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3.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산다는 것
4. 너무 착해서 슬픈 여자들
5. 축복이 내리는 시간
6. 그 여자의 슬픈 갱년기
7.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엄마라는 이름
6장 모든 삶은 역사다
1. 경순아, 미안해!
2.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3. 질투는 나의 힘
4. 아버지의 기침 소리
5.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에 대한 대처법
6. 고모님의 빛바랜 분홍 재킷
7.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8. 괜찮아, 그만하면 살아!
괜찮아, 희망이 있다면
신데렐라는 행복했을까?
당신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어느 무더운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청소를 하다가 남편이 지인에게서 선물받은 도자기를 깨고 말았다. 아주 값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시장 바닥에서 살 수 있는 싸구려 도자기도 아니었다. 남편은 조심성 없이 도자기를 깨트렸다고 나에게 버럭 화를 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속이 상했던 터라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하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고 한 번 묻지도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내 가치가 고작 이 도자기만도 못하냐? 싶어 울컥했다.
우리 때의 한국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른다. 내 고교 동창들 중에는 광주로 유학 온 친구들이 많다. 자신의 학업을 위해서라기보다 오빠에게 밥이나 해 주라며 부모님이 함께 딸려 보내셨다. 하물며 공장에서 돈을 벌어 오빠들을 공부시킨 여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공부한 오빠들은 지금 누이들에게 얼마나 은혜를 갚고 사는지 궁금하다.
이처럼 여성을 가벼이 여기고 남성들만 떠받들던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라 온 남자들이 장성해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으니 아내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아내를 우습게 여기는 근성은 그들이 자라 온 가정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남편이 변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아내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존재가 귀하고 어려운 줄 안다면 왜 안 변하겠는가?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여자들은 또 자신을 얼마나 존중할 수 있을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서 존중받고 살아온 사람만이 스스로를 존중할 줄도 안다. 자신의 가치가 그만큼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냉대를 받으며 지내 온 사람들 역시 자신의 가치가 딱 그만큼인 줄로만 알고 산다. 실제로는 자기 안에 반짝이는 보석이 숨겨져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시어머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우리 시어머님은 완전히 아들 바보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아들은 실수를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가 문제다."라며 무조건 아들편을 드시는 분이다. 행여나 며느리인 내가 당신 아들을 얕보거나 함부로 하지 않을까 감시를 하시듯 지켜보셨다. 그런데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군대에 보내면서 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상당 부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딸의 애교에 살살 녹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것 같다는 듯 예쁜 딸을 바라보는 남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과연 어떤 사위를 얻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사위였나?"라고. 또한 "사위가 당신 딸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가?"고 말이다. 그리고 딸을 아끼듯, 그 반만 아내에게 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들은 귀한 딸을 데려와서 며느리를 만들고 엄마를 만들고 아내를 만들고 아줌마를 만들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미운 시누이라고 하지만,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철없는 시누이가 얄미울 때도 있겠지만, 딸이 없는 시어머님보다는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 보낸 시어머니가 조금 더 며느리를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우리 친정어머니도 "너희 올케들은 너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도 며느리들한테 한마디하고 싶은 때가 많았지만, 너 생각하고 꾹 참았다."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약한 습성이 있어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함부로 대하곤 한다. 자신이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귀하게 대접 받을 기회도 흔치 않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당신의 가치를 깨닫고 세상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란다.
다시 봄, 봄, 봄
미스코리아에서 웨딩 도우미로
작은 아이가 백일이 지날 무렵, 친구의 시댁에서 운영하는 예식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다닐 때도 친구들과 놀고 싶어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던 내가 결혼하고 처음 하는 직장생활이었다. 대학전공이 의상학이라 드레스실을 지원했다. 화려한 예식장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첫 출근을 하고 난 후에 모든 게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식장에서는 드레스를 제작하지 않았다. 홍대나 이대 근처의 드레스 숍에서 구입한 드레스를 대여해 주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예식장의 주요 수입은 드레스 대여업이었다. 홀 대여비는 정해져 있지만, 드레스 대여료는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홉시에 출근해서 전날 촬영 때문에 더러워진 드레스를 세탁해야 했다. 드레스는 한 번 입고 나면 반드시 세탁을 해야 한다. 커다란 통에 세제를 풀어서 드레스를 넣었다가 때를 조금 불린 다음, 본격적으로 오염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세탁하기를 여러 번 한 후에 깨끗한 물로 몇 번을 헹군 다음, 온 힘을 다해 물기를 짜 주어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팀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림질까지 해야 비로소 드레스 한 벌의 빨래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서너 벌을 빨고 나면 어깨와 팔이 후들거렸다. 그 풍성한 드레스가 물을 먹었을 때의 무게를 상상해 보라. 웬만한 장정에게도 결코 가벼운 상대가 아니다.
그렇게 오전 11시까지 드레스 세탁을 마치면, 그날 웨딩 촬영할 커플이 드레스실로 들어왔다. 신부는 미용실에서 한 신부 화장에 올린 머리를 하고 드레스실로 왔다. 그러면 나는 신랑에게는 턱시도를 입혔다. 피부가 검은 신랑에게는 아이보리 턱시도를, 피부가 흰 편인 신랑에게는 검은색 턱시도를 입혔다.
그러고 나면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에게 촬영용 드레스를 입혔다. 그런데 드레스가 예쁘지 않다며 짜증을 내는 신부들이 의외로 많았다. 덕분에 반짝반짝 비즈가 달린 화려한 드레스를 기대했던 신부들에게 공단 드레스가 사진이 잘 나온다며 신부들을 달래 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드레스는 절대 혼자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이다. 곁에서 드레스의 주인공이 빛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누군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 도우미 역할이었다. 나는 신부의 머리에 베일을 씌웠다.
예비 신랑과 신부는 예식장에 오면 왕자와 공주로 대접받으려 한다. 그런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왕자와 공주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들이 세상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만큼 나는 자세를 낮춰야 했다. 카메라 기사분이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고 나면 나는 한쪽에서 기다려야 했다. 예쁜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면 화려했던 내 젊은 날이 떠올랐다.
한때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쓰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던 내가 지금은 웨딩 도우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친정어머니가 본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그럴 때면 갑자기 내 처지가 서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친정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더욱 눈물이 솟구쳤다. 하도 많이 눈물을 흘려서 눈 밑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신부들 뒤치다꺼리도 힘들었지만, 그런 내 모습이 기가 막혀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인생이란 내리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길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주저앉을 김경희가 아니지. 나는 내 인생의 더 찬란한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겠노라.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처럼 때로는 오기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나이 대신 사랑을 먹는 여자
사랑하니까 악처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한 친구가 있다. 법원에서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남편이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친구를 원망하더란다. "왜 이렇게 쉽게 나를 포기한 거야? 내가 나쁜 길로 가면 못 가게 어떻게라도 잡아 줬어야지.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거야." 친구의 남편은 순순히 이혼해 준 내 친구에게 도리어 이렇게 원망했다.
미성숙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사랑해 결혼을 한다. 힘들 때는 당연히 서로 안아 주고 위로하며 한편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남편이나 아내가 비뚤어진 길을 가려 할 때도 있다. 물론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서 참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부부 사이에는 무조건 참거나 못 본 척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부부 중 한 사람에게 독한 악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노련한 간호사들조차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아픈데, 따끔한 주사를 맞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병이 나으려면 잠깐의 따끔함은 감수해야 한다. 부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쪽 배우자가 방황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려 할 때 나머지 한쪽은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습게 여겼던 감기를 방치하면 큰 병이 되는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보기만 해도 아찔한 주삿바늘을 배우자의 가슴에 푹하고 찌를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겉보기에는 참아 주는 듯, 봐주는 듯, 너그러운 듯 포기 반, 체념 반으로 사는 부부들이 많다. 작은 예방주사 한 방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던 것들을 처음부터 방치하면 그 병은 점점 악화되어 가정은 시름시름 앓게 된다. "우리 아내는 나를 포기했나봐."라고 말하는 남자보다 "우리 아내는 반 점쟁인가 봐.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귀신같이 눈치를 챈다니까. 나는 우리 집사람이 무서워서 아무 짓도 못하겠어."라며 엄살을 부리는 남자들의 표정에 오히려 행복의 윤기가 흐르는 이유다.
현대의 부부들은 자유로움을 원하지만, 흔들리는 자신을 꽉 잡아 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배우자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뜯어말릴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부라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포기는 부부를 결코 행복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부부는 서로 참는 것과 포기하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이생에서는 사실 악역이 더 힘든 법이다. 자꾸만 이상한 길로 가려는 사람을 바로 세우는 것은 무척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악역은 진짜 독을 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악역을 자처한 당사자가 더 아프고 괴롭다.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지금 악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면 하루빨리 가슴에 품은 독을 해독해 줘야 한다. 배우자가 품은 독을 해독하는 방법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다.
아내가 원하는 남편이 되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남편이 원하는 아내가 되어 주는 게 사랑이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내 고집대로 산다면 가족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은 져줄 때 행복해진다. 끝까지 내가 이기려 할 때 행복은 도망간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악역을 맡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악역을 맡은 배우가 행복한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불행해지던지 빨리 죽는다. 아내가 술 먹는 걸 싫어한다면 남편은 술 먹는 것을 멈춰야 하고, 남편이 쇼핑하는 걸 싫어한다면 아내는 쇼핑을 멈춰야 한다. 지금이 내 아내, 내 남편, 내 가족을 위해 싫어하는 것을 멈추어야 할 때다. 사랑한다면 더 늦기 전에.
길을 걷다 문득, 행복을 줍다
가슴속에 묻었다면 잊어야 한다
오늘은 별일도 없는데 앤지 기분이 우울하다. 하늘도 찌뿌둥한게 금방 비라도 뿌릴 것만 같다. 나는 이불을 깔고 누워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내 안에 묵혀 있던 미움, 섭섭함, 억울함 같은 못난 감정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나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무겁게 내리감았던 눈꺼풀을 위로 추켜올렸다. 눈물이 터져 버리면 못난 감정은 더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여성이라 가슴속에 맺힌 한이 이리도 많나 보다. 일명 울화통이라고 하는 그것 말이다. 가끔 믿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무섭게 돌아서거나 배신을 할 때면, 내 가슴은 이렇게 무너지곤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속 분노를 모두 폭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 그런 감정들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면 대부분 상황은 악화되었고, 그럴수록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간장 종지를 채워 놓고 다 채웠다며 나는 할만큼 했어.하고 어린 아이처럼 버티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정작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큰 대접에 간장을 채우는 일인데 말이다. 울면서 떼쓴다고 해서 봐주는 나이는 지나갔다. 이미 오래전에 어른이 된 것이다.
작년 추석이었다. 바로 아래 동서에게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을 퍼부어 버렸다. 시댁 행사 때마다 상습적으로 늦게 오는 동서가 괘씸해 심하게 퍼부었다. 가족들 모두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지."라며 내 편이 되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꾹 참고 살 때는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동서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동서도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만,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며느리들 때문에 시댁 분위기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냉랭해졌다. 참은 김에 더 참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속내를 이렇게 모두 털어 내고 나면 시원할 것 같아도 사실은 별로 시원하지 않다. 오히려 빈털터리가 된 것처럼 허전하다.
또 상대방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가슴속에는 상처 하나를 새기게 된다. 관계는 소원해지고, 사람들은 멀어진다.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주워 담을 수 없다. 한 번 틀어진 관계 역시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가슴속에 묻어 둔 말을 꺼내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묻어 둔 말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묻어 뒀을 것이기 때문이다.
섭섭한 감정을 묻어 두면 보물이 되지만, 파헤쳐 버리면 관계는 끝이 난다. 내가 잘못했어도 상대방이 자꾸 들추면 마음이 달아난다. 파헤치면 시원할지는 몰라도 남는 게 없다. 오히려 묻어 두면 보배가 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 그 사람이 많이 참아주었구나 어떻게 그걸 참았지. 정말 미안한데."라고 깨달을 때가 분명 있다. 훌훌 털어 버리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사람도 떠나고 돈도 떠난다. 묻어 두면 오히려 큰 재산이 된다.
여자의 일생
축복이 내리는 시간
나는 스물넷의 나이에 겁도 없이 덜컥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올해 나이 마흔아홉으로, 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람의 일생을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었을 때 초반에는 보통 어떤 가정, 어떤 부모님 밑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그러고 나면 중반에는 결혼, 직장, 출산, 양육 등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진장한 어른이 된다. 친정에서 온갖 사랑과 귀여움만 받던 철부지 같은 여자들도 시집가서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어머니 노릇을 하며 살다 보면, 인생의 알딸딸한 맛을 알게 된다. 이렇듯 여자 일생의 중반에는 많은 기쁨과 행복은 물론 아픔과 갈등, 상처들을 시시때때로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자신보다는 남편과 아이들, 시댁을 위해 스스로를 비우면서 좀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 보면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일들도 많았을 텐데, 좋았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더 나이를 먹으면 모를까 지금은 아쉽게도 몹시 힘들었다거나 섭섭했던 기억들이 더욱 선명하다. 그래서 여자의 한이 무섭다고 하는 모양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잘 닦인 고속도로만 달릴 수는 없다. 어제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국도를 따라 여유 있게 달려왔다면, 오늘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날 수도 있다. 그리고 내일이면 제한속도가 없는 독일의 아우토반처럼 쭉쭉 뻗은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껏 살아 보니 50년을 살아도 잘 모르는 게 바로 인생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한 번은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렵고 힘든 고난은 큰 축복을 주기 위한 준비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축복을 받기 위한 그릇을 만드는 시기라는 것이다.
어느덧 화려한 젊은 날은 가고, 거울을 보면 지난날의 상처와 회환으로 인해 자꾸 소심해져만 가는 한 중년 여성이 서 있는 것을 본다. 왠지 서글퍼지려고 한다. 이럴 때 나는 어렵고 힘든 고난은 큰 축복을 주기 위한 준비 단계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청춘의 아름다움과 당당함, 객기 같은 것은 어렵고 힘든 고난과 함께 내 인생에서 유유히 사라져 갔다. 이제는 중년의 연륜과 여유, 따뜻함과 넉넉함이라는 그릇을 준비한 내게 축복이 내려질 때다.
모든 삶은 역사다
질투는 나의 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우리 동서다. 형제들이 있는 집안에 시집간 여자들 중에는 내 말에 공감하는 여자들이 꽤 많을 것이다. 한 집안에 시집온 같은 며느리지만, 비교를 안 당하려야 안 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인 나와는 달리 동서는 간호사라는 전문 직업이 있었다. 당신이 오랜 세월 직장생활을 해서 그런지 시어머님은 유독 동서를 많이 이해해 주시는 것처럼 내게 느껴졌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맞벌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나는 무척 예민해지고 열등감에 시달렸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큰아들은 공부하느라 수입도 없고, 어린 큰며느리의 살림 솜씨도 성에 차지 않으셨을 테니 우리 시부모님에게 있어 큰아들 가족은 집안의 짐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남편의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힘들어지고 예민해졌다. 또한 그럴수록 동서와 더욱 비교가 되는 느낌이 들어 견디기가 힘들었다. 같은 며느리로서 동서가 많이 부러웠다. 동서는 집안의 제삿날이나 명절날에도 직장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었다. 집에서 살림하는 큰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하는 것은 나에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서가 행여나 눈치를 볼까 봐 어머님이 먼저 동서 편을 들어 주시는 것 같아 나는 서운함이 더 커졌다.
동서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았다. 나이는 내가 더 어리지만, 얄밉게도 동서가 훨씬 더 어려 보였다. 게다가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해 오며 동갑내기 남편과 살아온 동서는 패션은 물론이고 마음도 젊게 사는 것 같았다. 반면에 나이는 어리지만 큰며느리로 20년을 살며 많은 일들을 겪어 내고, 남편의 오랜 공부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나에게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동서는 젊었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서인지 지혜롭고 모든 일에 야무지게 대처했다. 동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시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했다. 그에 비해 나는 눈치코치가 없었다. 어머님께서 서운한 말씀을 하시면 그것만 떠올리면서 발을 동동 굴렸다.
현재는 나도 강사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상황에 맞는 대화법은 지금도 우리 동서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동서의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할까 하고 혀를 내두르며 부러워했다.
이래저래 동서에게 질투가 났던 나는 어느 날부턴가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타고난 소질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때로는 나를 돌아보고,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동서에 대한 질투가 어릴 적 말하기를 좋아했던 나를 기억하게끔 했고, 그 기억이 발판이 되어 강사라는 목표를 향해 내가 질주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었으니 말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동서에 대한 질투심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켰던 것 같다. 동서에 대한 질투심이 없었더라면 나는 훨씬 게으르게 살았을 것이다. 물론 경쟁을 한다는 건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주지만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고마워해야 할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동서다. 아직 표현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나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 준 사람 중 하나도 동서다. 어쩜 내 삶의 가장 큰 스승 중 한 명이 동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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