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은 고전 읽기

저   자
명로진
출판사
비즈니스북스
가   격
15.000원(324쪽)
출판일
2015년 10월






짧고 굵은 고전 읽기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는 고전

《논어》_공자 : 신이 되길 거부한 성인聖人의 어록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먼 데서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

《논어》<학이>편


아, 정말 심하게 초라하지 않나요? 다른 경전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계보를 읊고, 이슬람은 오직 하나뿐인 신을 찬양하고 있는데 여기에 배우고 익히면 기쁘다는 둥, 친구가 찾아오면 좋겠다는 등, 이런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공자를 예수, 무함마드, 부처와 더불어 인류 역사의 4대 성인이라고 했나요?


문제는 이것이 2,500년 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했다는 겁니다. 이것 하나만으로 《논어》는 위대한 인문 정신의 승리입니다. 《논어》와 《논어》에 수록되지 않은 공자의 언행을 실었다는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아무리 뒤져 봐도 공자가 신에 대해 언급한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자가 아팠을 때 제자인 자로가 "귀신한테라도 좀 빌지 그러셨어요?"라고 묻자 "안 해봤겠냐?"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건 농담 수준이지요. 또 번지가 지에 대해 묻자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혜롭다 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대략 그 정도입니다.


공자의 제자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네 가지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괴상한 것, 폭력적인 것, 문란한 것, 신에 대한 것.


자 불어 괴력난신

子 不語 怪力亂神

《논어》<술이>편


서양철학의 효시라 할 만한 소크라테스에게도 신의 문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고대 그리스 시대는 신과 함께 사는 시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아주 인간적인 신이었지요.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마치 우리가 지금 대통령이나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미래가 궁금하면 신전에 가서 무녀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는 게 일상이었죠. 이것을 신탁神託이라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발당해 사형을 당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뭔 소리야, 나는 제우스를 비롯해 신을 믿는 독실한 사람이야."라고 변호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신에 대해서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습니다. 귀신, 주술,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입니다. 복을 내리든, 재앙을 내리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만큼 공자는 인간적이었고 이성적이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더불어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공자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지, 신의 아들이나 사도가 아니었으며 종교의 교주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2,500년 전 공자의 제자들은 왜 공자를 신적인 존재로 기록해 놓지 않았을까요? 그건 바로 공자가 자신을 철저히 '인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학적인 인물이 아니라 인문학적 인물이었습니다.


설사 제자들이 선생님의 공적을 기적으로 바꾸어 기록하려 해도 공자가 나서서 말렸을 겁니다. 공자라고 물 위를 걷고 싶지 않고, 신의 아들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500생을 윤회하고 온 여래라고, 천사의 음성을 들은 신의 사도라고 하고 시지 않았겠습니까?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 지켜 나갈 한마디 말씀을 해주십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마라."

《논어》<위령공>편


정말 소박하지 않습니까? "내가 못다 이룬 꿈이 있으니 너는 꼭 재상이 되어라."라고 해도 모자랄 텐데, 겨우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니요? 어떻게 보면 이 공자 선생님, 참 답답합니다.


부처님은 "그대가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이 그대에게 줄 것이다."라고 했고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마치 비슷한 내용을 세 분이 수사만 달리 해서 나눠 가지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성인의 말씀은 알아듣기 어렵고 힘든 게 아닌가 봅니다. 실천이 문제지요.



지성과 교양에 목마른 당신에게 꼭 필요한 고전

《한비자》_한비자 : 권력에 대한 통찰을 담은 가장 현대적인 고전

《한비자》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긴장하라'는 것입니다. 군주와 신하 사이는 믿음보다는 구조(시스템)로 유지되어야 하며 구조의 내용은 경계와 통찰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위나라의 부부가 기도를 드리는데 부인이 말했다.

"저희가 무사하게 해주시고 베 백 필을 벌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남편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조금만 달라고 하는 거요?"

그녀가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은 그 돈으로 첩을 살 테니까요."

《한비자》<내저설 하>편


위의 에피소드에 대해 김원중 교수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한 이불을 덮고 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산다는 말이다. 인간의 성품은 선하지 않고 모든 것이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처럼 한비의 비유는 허를 찌르는 묘미가 있다. 그러니 한 이불 속의 부부도 아니고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닌 군주와 신하, 백성과 백성 사이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김원중, 6P


《한비자》는 난언(말하는 것의 어려움), 주도(군주의 도리), 팔간(여덟 가지 간사함) 등 제목이 붙은 55편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권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인문 고전으로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역저입니다. 한비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왕'은 한나라의 마지막 왕인 한안입니다.


저에게는 말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기를 꺼려 망설이는 까닭은 다음에 있습니다. 말투가 순순하고 매끄럽게 거침없이 줄줄 이어지는 것 같으면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말하는 태도가 고지식하고 신중하면서 빈틈없이 완벽하면 도리어 서투르고 조리가 없어 보일 것입니다. (...) 이익을 타산하여 상세하게 말하고 자상한 수치를 들면 고루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또 세속적인 말솜씨로 남을 거슬리지 않는 말만을 가려서 한다면 목숨을 부지하려고 아첨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 오자서는 계략을 잘 꾸미는데도 오왕이 그를 죽였고 공자는 언변이 우수하였는데도 광인이 그를 에워쌌으며, 관이오는 정말 현인이었음에도 노나라가 그를 죄인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이 어찌 현명하지 못했겠습니까? 이는 세 군주가 사람을 보는 눈이 밝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난언>편. 《한비자》, 이운구 옮김, 한길사, 2002, 67~70p


한비는 《한비자》 곳곳에서 '군주가 다른 사람에게 절대 양보해선 안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크게 다음 세 가지인데 이것들은 꽉 틀어쥐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1. 재정: 돈 문제

2. 형벌: 벌, 견책, 경고에 대한 문제

3. 보상: 상, 보너스, 덕을 베푸는 것에 대한 문제


한비가 말한 '군주'라는 개념은 현대의 '리더'로 바꾸어 읽어도 무관할 것입니다. 회사나 단체 등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돈 문제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형벌권을 쥐고 있어야 하며 덕을 베푸는 일도 직접 해야 합니다.


돈, 상, 벌, 이 세 가지는 절대 놓쳐선 안 된다는 겁니다.


한비는 <이병二炳>편에서 덕德과 형刑에 대해 역사적 사례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덕은 상이고 형은 벌이지요. 이병이란 두 개의 칼자루란 뜻인데, 군주는 이 두 칼을 잘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군주가 덕을 오용한 예를 살펴봅시다. 제나라의 전상이란 사람은 엄청난 부자였는데 덕을 베풀기를 좋아했습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들에게 곡식을 꿔 주는데 말로 주고 되로 받아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게 정상이었던 시절인데 많이 빌려주고 적게 받는 겁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민심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누군가에게 1억 원을 꿨는데 1년 뒤에 갚으로 갔더니 1,000만 원만 갚으라는 겁니다. 당연히 그에게 고마워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있으며 저는 투표합니다. 일단 한 10억쯤 꾸고 나서요.


전상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의 덕을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상이 이런 자선사업을 베푼 이면에는 야망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제나라의 정권을 쥐려는 야망이었죠.


결국 전상은 당시의 왕인 제간공을 시해합니다. 제간공은 자기를 대신해서 백성들에게 직접 덕을 베푸는 전상을 제지했어야 합니다.


다음은 형을 잘못 다룬 예입니다. 송나라의 자한이란 자는 송왕에게 "포상은 백성들이 좋아하니 왕께서 직접 내리십시오. 형벌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니 제가 맡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형벌권을 쥡니다.


왕은 그 말을 믿고 사법권을 완전히 자한에게 넘겨주었지요. 나중에 자한은 잘못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으로 왕까지 위협하기에 이릅니다.


한비는 "호랑이가 개를 복종시키는 까닭은 발톱과 이빨을 지녔기 때문이다. 개에게 발톱과 이빨이 있다면 호랑이가 개에게 복종하게 된다."면서 군주가 형과 벌의 권한을 잃고 나라를 망치지 않은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한비는 "군주는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선 안 된다. 군주가 뭔가를 하겠다는 뜻을 내보이면 신하는 그 의도에 따라 잘 보이려고 일을 꾸밀 것이다."라고 충고합니다.


권력은 지키는 것은 어려우나 잃는 것은 쉽습니다. 한비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상황에서는 권력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괄호 안은 저희 현대식 해석입니다.


1. 군주는 눈과 귀가 가려졌을 때(언로가 막히는 것).

2. 신하가 나라의 재정을 장악했을 때(부정부패로 인해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3. 신하가 마음대로 상벌을 행사할 때(리더가 상벌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 상벌이 공정하지 못하는 것).

4. 신하들이 멋대로 패거리를 이룰 때(분열과 차별로 내부 붕괴가 일어나는 것).

5. 신하들이 멋대로 패거리를 이룰 때(분열과 차별로 내부 붕괴가 일어나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해야 권력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일단 리더가 심지가 굳어야 합니다. 그런데 힘 있는 자의 주변에는 늘 그에게 빌붙어 한 몫을 챙기려는 간신들이 있습니다. 한비는 군주를 현혹하는 여덟 가지 요인을 '팔간'이라 이름 붙입니다.


그 첫째는 동상, 즉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군주의 정실부인, 후궁, 미녀 등이지요. 이들에 대한 신하들의 로비가 대단했나 봅니다. 《열국지》《사기》를 보면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 곁에는 그녀들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신하들이 반드시 있었습니다.


둘째는 재방으로 배우, 난쟁이, 심부름꾼을 말합니다. 이들은 오직 군주의 마음을 풀어 주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재방을 가까이하여 그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했다가는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합니다.


셋째는 부형으로 군주의 적자와 자식들이죠. 한마디로 친인척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겁니다. 넷째는 양앙, 즉 궁궐과 누각, 연못 가꾸기를 과하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다섯째는 민맹, 신하가 공적인 재물로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별로 이용하지도 않는 도로나 다리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유행(유세객의 언변으로서 잘못된 소통, 언로의 불통을 말함)과 위강(신하들이 군주의 위세를 업고 공포정치를 펼치는 것), 사방(강대국을 의지하는 것, 사대주의)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2,300년 전 한비의 주장이 어쩌면 이렇게 오늘날에도 들어맞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드라마적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고전

《일리아스》_호메로스 : 분노로 시작해 용서로 끝나다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은 10년이 넘는 긴 전쟁을 《일리아스》를 통해 단 며칠로 축약해서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를 다룬 서사시들은 모두 8편입니다. '트로이아 서사시권'이라고 해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그중《일리아스》는 두 번째, 《오디세이아》는 일곱 번째 서사시입니다. 나머지 6편의 서사시는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만 온전히 전해졌다고 합니다.


호메로스는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지금의 터키 서해안 지역)에서 태어나 기원전 9세기경에 활동한 시인입니다. 그가 하도 유명하니까 그리스 지역에 호메로스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데만 해도 일곱 곳이나 있다고 해요. 호메로스는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문학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란 말은 사실 잘못된 것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호메로스는 글을 쓴 적이 없고 다만 낭독했을 뿐입니다. 호메로스의 탄생이나 활동 시기에 이견이 있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글로 옮겨진 시점도 명확하진 않지만 처병희 선생의 해설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추측됩니다.


1. 호메로스는 서사시를 외워서 읊었다.

2. 그의 서사시들은 한동안 구전되었다.

3.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글로 옮겨진 것은 그의 사후 20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왜 소설이 아니고 시일까요? 사실 소설이라는 장르는 문학사적으로 볼 때 매우 뒤늦게 나타났습니다. 셰익스피어도 소설가가 아니라 희곡 작가였지요. 세르반테스 시대쯤 되어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타났으니 소설의 역사는 빨라야 16세기쯤에 시작합니다.


그리스 시대에는 아무리 긴 분량의 이야기도 호메로스처럼 시로 만들어 암송했습니다. 시가 곧 이야기였지요. 그래서 이야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교과서의 제목이 《시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호메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서사시는 (...) 비극의 모든 요소들을 공유한다. 서사시 역시 뒤바뀜, 깨달음, 고통의 장면이 필요하다. (...) 이 모든 것을 호메로스는 최초로, 또한 완벽하게 성취했다. 《일리아스》는 단순한 유형의 플롯으로서 고통의 요소를 담고 있으며 《오디세이아》는 복합적 유형의 플롯을 썼으며 성격을 부각시킨다. 호메로스의 탄복할 만한 여러 능력 가운데 하나는 서사시인들 중 유일하게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는 점이다. (...) 호메로스는 짧은 서설 다음에는 곧 무대 위에 한 남자, 여자 또는 어떤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 의 인물들은 언제나 완전히 성격이 부여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상섭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 80~82p


한마디로 호메로스는 캐릭터를 아는 작가였습니다. 작중 인물 중 어느 누구도 무미건조한 자가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이로운 것은 서사시의 주된 요인"이라며, 경이로움을 통해 쾌감을 얻으려면 그럴듯하고 과장된 거짓말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호메로스야말로 거짓말을 기술적으로 제대로 하는 법을 다른 작가들에게 알려준 사람"이라고 칭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때문에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지만요.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트로이 전쟁은 신화라고만 여겨졌으나 19세기 말에 슐리만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트로이 유적을 살펴보니 기원전 1250년경 외부 침입자에 의해 여러 주거지가 파괴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는데, 이 시기가 그리스 기록에 트로이 전쟁이 있었다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겁니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침략 전쟁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와 신화를 버무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라는 서사시로 창조한 겁니다.


《일리아스》에는 수많은 전투 장면이 등장합니다. 등장인물도 수십 명에 이르지요. 밀고 밀리는 전투 끝에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패해 죽임을 당하고,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가서 헥토르의 시신을 받아 오면서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끝을 맺습니다.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는 장면 역시 압권입니다. "그대에게도 부친이 있지 않소? 전쟁터에 아들을 내보내고 한시도 편히 잠 못 드는 부친이, 그분을 생각해서라도 내 아들의 시신을 내어 주시오." 이 말을 듣고 프리아모스는 아들 생각에, 아킬레우스는 아빠 생각에 꺼이꺼이 웁니다. 그리고 이 남자들의 울음이 독자를 눈물짓게 하지요. 영화에서도 피터 오툴의 명연기가 빛났지만 책에서도 가슴이 아릴 정도로 슬프게 묘사됩니다.


결국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용서로 끝납니다. 프리아모스가 이야기할 때, 아킬레우스의 눈에 비친 프리아모스는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그저 자식을 걱정하는 늙고 지친 아버지일 뿐이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형제 이상으로 사랑했지만, 결국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내줍니다. 용서의 행위지요. 그리고 헥토르의 장례를 치를 동안 휴전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평화가 도래한 것입니다. 한 아버지의 눈물이 살기 가득한 세상에 만연했던 분노를 용서로, 전쟁을 평화로 바꾸는 순간입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용서해야만 합니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끝내 용서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전장에서 죽인 수많은 트로이 병사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남편이요, 누군가의 아들이며 누군가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식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이 나타나자

이름난 헥토르의 장작더미 주위로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다 모였을 때

먼저 그들은 반짝이는 포도주로 불기가 닿은 장작들을 빠짐없이 모두 껐다.

이어서 그의 형제들과 전우들이 비탄에 잠겨 그의 흰 뼈를 주워 모았고

그들의 볼에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

천병희, 682~683p


이렇게 《일리아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아마도 호메로스가 여기까지 낭송했을 때 관객들은 잠시 말을 잊었을 것 같습니다. 감동적인 영화가 끝나면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듯이 3,000년 전 그리스인들도 여운을 느끼며 앉아 있었을 겁니다. 호메로스도, 그들도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생각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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