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당신은 지금 어떤 수를 두고 있는가!
언뜻 신선놀음처럼 보이는 바둑 안에는 상대를 읽고 상황을 내다보는 비책이 숨어 있고, 삶에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교훈들이 적지 않다. 『위기십결』은 ‘바둑을 둘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10가지 비책’을 뜻하는 말로, 이 책에서는 삶 속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하고 물러나야 하는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고적 전문가이자 역사서 및 경전들을 오늘날의 시각에 맞게 재조명하고 현대적으로 풀어쓰는 데 탁월한 저자 마수취안이 제시하는 인생의 한 수를 살펴본다.
원서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며 위기에서 벗어나는 비결을 공격과 수비라는 큰 틀로 소개했는데, 번역서에서는 이를 세분화 해 위기십결이라는 10개의 장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자신을 돌보는 방법에는 부득탐승(不得貪勝), 입계의완(入界宜緩), 공피고아(攻彼顧我)로, 어떻게 선수를 취하여 선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기자쟁선(棄子爭先), 사소취대(捨小就大)로, 위험에 처했을 때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비책은 봉위수기(逢危須棄)로, 상대의 힘과 반응을 읽어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해 신물경속(愼勿輕速), 동수상응(動須相應), 피강자보(彼强自保), 세고취화(勢孤取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 저자 마수취안
저자 마수취안(馬樹全)은 중국 출신의 고적(古籍)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역사서 및 옛 경전들을 오늘날의 시각에 맞게 재조명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쓰고 있다. 길림성 기슭에서 생활하며 집필에만 몰두해 ‘21세기 중국의 기인’으로 불리지만, 고적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지적 탐구심과 정치, 사회, 철학 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폭넓은 식견은 고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학(止學)』 『수약학(守弱學)』 『권모잔권(權謀殘卷)』 『비상지(非常智)』를 비롯해 출간될 때마다 중국 내에서 큰 화제를 몰고 왔으며, 국내에는 권모술수의 세계를 파헤친 『모략의 즐거움』, 측천무후 시대 재상인 이의부의 〈도심술〉을 재해석한 『제압의 기술』,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처세술을 다룬 『네 약함을 내세워라』 등이 소개되었다.
이 책 『위기십결』(원제 : 人生攻守進退智慧書)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하고 물러나야 하는지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알려준다. 인생의 한 수로 성공과 실패가 갈린 사례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상황에 따라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는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비책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 역자 이지은
역자 이지은은 중앙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중국 요녕사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 석사를 졸업했다. 역사, 문화적으로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중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달리 정작 현실에서는 구체적인 연구나 소개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보다 정확하게 중국을 이해하고, 독자가 중국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자연스레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방적인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이 아닌, 독자와 함께 공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독자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자세야말로 양질의 번역을 위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샤오미 CEO 레이쥔의 창업 신화』 『중국의 미스터리』 『벼랑 끝에 선 중국경제』 『누가 중국경제를 죽이는가』 외에 여러 권이 있다.
■ 차례
1장__부득탐승(不得貪勝) : 이기려면 이기기를 탐하지 마라
말로써 이기려 하지 마라
분노가 나를 굴복하게 하리니
그 길이 옳다면 그 길을 가라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는다
좋은 일이 쉽게 온다면 경계하라
우리가 정말 부러워해야 할 것은
“다만 옳고 그름을 구할 뿐”
만족함을 알아야 진정한 부자다
사사로운 이익에 휘둘리지 마라
2장__입계의완(入界宜緩) : 경계에 들어갈 때는 완만하게 하라
경계를 넘어설 때에는 완만하게 하라
상대의 착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나치면 반드시 넘친다
뿌리가 깊어야 바람을 이긴다
이기려면 내 돌부터 지켜라
향기로운 난초는 향이 천리에 이르듯
잠시 멈춘다고 늦은 것은 아니다
화려함보다 강직함을 배워라
4장__공피고아(攻彼顧我) : 공격하기 전에 나부터 돌보라
세상을 세우려면 나를 다스려야
앞날을 보고 오늘을 다질 때
평범함과 무능을 자랑하지 마라
운명을 탓할 시간에 나를 돌보라
나를 바로 세워야 세상이 나를 찾는다
출발점에서 자신을 돌아보라
나를 알고 상대를 이겨라
누군들 올곧고 싶지 않으랴
동탁의 최후를 잊었는가
5장__사소취대(捨小就大) :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조조와 육순에게 배워야 할 것
치사해도 독하게 살아남아라
작은 돌을 버리고 대마를 잡을 때
길이 멀어 보여도 뜻만은 가까이
역사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앞날을 내다보고 오늘을 품어야
“그래도 나는 내일을 믿는다”
나부터 바로 세우고 나아가라
6장__봉위수기(逢危須棄) : 위험에 처하면 모름지기 버려라
마음이 바로 섰는지 걱정할 뿐
세가 약하다면 세를 끌어들여야
어긋난 한 수에 대마도 무너진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물부터 짜라
어지러울수록 길은 하나다
뿌리지 않고 거두기를 바라지 마라
올라갈수록 내려갈 길을 염려하라
7장__신물경속(愼勿輕速) : 경솔하지 말고 신중히 행동하라
진지함은 결코 모자라지 않다
남다름을 함부로 과신하지 마라
작지만 그 무엇보다 강력한
편할 때일수록 위기에 대비하라
경솔할수록 다치는 건 자신뿐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그것이 정말 최선인가
바람 앞에서도 늘 처음처럼
8장__동수상응(動須相應) : 상대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여라
그 길이 아니어도 길은 있다
그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성배를 들 시간은 아직 멀다
믿어 줄 사람, 믿음을 지킬 사람
마주해야 바람의 깊이를 안다
가장 뛰어난 묘수는 정석이다
뜻은 깊더라도 마음은 넓게
강한 군대도 불만은 이길 수 없다
9장__피강자보(彼强自保) : 상대가 강하면 나부터 돌보라
나를 알고, 나를 지킨다는 것
때를 알고, 때를 다스릴 줄 알아야
상대가 강하면 나부터 돌보라
어리석지만 그래서 더 날카로운
서두를수록 이용당할 뿐이다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미루지 마라
10장__세고취화(勢孤取和) : 세력이 약하면 조화를 도모하라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
앞날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
능력은 결코 홀로 설 수 없듯이
의심한다면 그런 자신을 의심하라
왜 그 길만 고집하는가
상대를 읽고 나를 다스릴 때
위기십결
말로써 이기려 하지 마라
"무릇 말로써 망할 것을 두려워해야"
명나라 무종 때, 득세한 유근(劉瑾)에게 눈도장을 받으려고 문무백관들은 창피한 줄도 모른 채 앞다퉈 유근을 치켜세웠다. 인격을 내놓을 정도로 조정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섬서 출신이었던 유근에게는 강해(康海)라는 고향 친구가 있었다. 강해는 보잘것없는 관직이었지만 뛰어난 학문과 군자다운 풍모를 자랑했다. 누군가 그에게 권신들에게 아부해야만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시서에 능통한 내가 배운 것 하나 없는 소인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지 않아 그러는 거네. 한낱 부귀영화 때문에 어찌 양심을 버릴 수 있겠나."
유근은 남들에게는 잔인하기로 유명했으나 유독 강해만은 예외였다. 자신이 먼저 강해를 보러 가기도 했을 정도로 강해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자네의 됨됨이는 내가 잘 알지. 그런 자네와 친분을 맺는 것이 진짜 소원이었네. 같은 고향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나를 좀 도와주게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뿐인데 자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자네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구려."
유근의 제의를 거절한 그는 조심스럽게 충고를 건넸다.
"자네가 나를 아무런 욕심 없는 고향 사람으로 봐줄 수 있다면 자네에게 이 말만은 해주겠네. 언행을 조심하게. 특히 말로써 흥하기를 바라지 말고, 말로써 망할 것을 두려워하게.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분노를 살 수 있으니 도움 될 게 없지."
그 후 그의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황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유근은 음험하고 악독한 자이니, 진심 어린 충고도 그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만일 그가 마음을 돌린다면 아버님께서 화를 당하실 수도 있으니, 결코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악인을 말로 가르치는 것 역시 군자의 미덕이다. 하지만 엄하게 질책하고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면 자신의 품행만 망칠 뿐이다."
대신 이몽양(李夢陽)이 유근에게 모함당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강해는 유근을 찾아가 이몽양을 석방시켜 달라고 사정했다. 훗날, 유근이 실각한 후 누군가 강해가 유근과 한패였다고 비난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해는 굳게 침묵을 지켰다.
"사람을 구하려고 내 발로는 처음으로 유근을 찾아간 적 있었다. 그 일에 대해 모두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저들은 양심을 속이고 나를 모함하고 있지. 이 역시 공을 세우기 위한 수작이니 나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강해의 말에 놀란 아들이 황제께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사정해 보시라고 청했다.
"예전에 유근은 황제를 기만하는 큰 죄를 지었다. 조정에 있는 소인배들은 언사에 능한 데다 황상께서는 아첨하는 말만 들으려고 하시니 저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구나. 내가 저들과 논쟁을 벌인다면 나 역시 소인배로 전락하고 말 것이야."
그 후 강해는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했다.
말이 많으면 어리석음만 드러낼 뿐
명나라 신종이 통치하던 시절, 자녕궁에 큰 불이 나자 젊은 대신인 추원표(鄒元標)는 향락에 취한 신종을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늘이 큰 불을 내린 것은 경계하라는 뜻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황상께서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시고 다시는 향락에 빠지지 마십시오."
화가 난 신종은 그를 사형시키려 했으나 대신 신시행(申詩行)의 적극적인 만류로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추원표는 남경으로 좌천되어 온갖 고난에 시달려야 했다. 무려 삼십여 년 동안 집 안에 갇혀 살아야 했던 그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며 반성했다.
"명확한 일은 감정을 버리고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해야 한다. 말은 논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온화한 태도로 상대를 감화시켜야 한다. 남다른 지혜를 지녔다면 자신의 학식을 무턱대고 팔려고 들지 않는다. 그런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고백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광종이 왕위를 잇자, 다시 조정에 복귀한 그는 날카로운 발언을 최대한 절제하며 모두와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광종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지금 중신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만 드러내려고 할 뿐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황상께서는 침묵할 줄 아는 이를 등용하십시오.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를 결코 기용하지 마십시오. 그리하면 중신들이 일을 진지하게 처리할 테고, 나라 또한 평온할 것입니다."
추원표의 변화에 평소 알고 지냈던 이들은 그가 겁쟁이가 되었다며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추원표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나는 말로 남을 이기려 했네. 그러다 보니 마음만 급해져 오랫동안 화를 자초했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란 말인가. 지금 내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남들과의 말싸움을 피했기 때문이네. 결과적으로는 언행을 신경 쓴 덕에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거네. 그러니 그들이 나를 어떻게 오해하더라도 개의치 않네."
조정 소인배들은 일부러 그를 도발하며 시비를 걸어왔지만 그는 계속 물러났다. 한번은 누군가가 추원표가 있는 앞에서 심한 비난을 쏟아 부었지만 그는 묵묵히 그 자리를 떠났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추원표에 대한 공세는 점점 누그러들었고, 그는 무사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앞날을 보고 오늘을 다질 때
아무리 배워도 사람을 읽지 못하면
북송시대, 재상의 자리에 오른 왕안석은 여혜경(呂惠卿)을 유독 총애하고 신임했다.
"그는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해내고 성실히 처리하니 조정에서도 보기 드문 인재로다. 이런 인재를 잘 키운다면 훗날 나라를 떠받칠 기둥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안석의 이런 평가와 달리 여혜경은 음흉한 소인배에 불과했다. 왕안석의 호감을 사려고 일부러 열심히 일하는 척했을 뿐이다. 어느 날, 여혜경은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씩씩거리며 왕안석을 찾았다.
"지금 많은 이들이 새롭게 세운 법에 맞서고 있으니, 이는 나라를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관리라는 것들이 사리사욕만 있고 애국심은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왕안석은 그의 말에 속아 그를 더욱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왕안석은 그에게 속에 담아 두었던 말도 망설이지 않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신법에 반대하는 대신 사마광이 조정에서 쫓겨났다. 사마광이 경성을 떠나기 전에 왕안석에게 서신 한 통을 남겼는데, 여혜경을 조심하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면 화를 입습니다. 여혜경이 지금은 군자처럼 행동하지만 이는 순전히 경의 환심을 사려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합니다. 그자는 경을 이용한 뒤 가차 없이 버릴 것입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우국지사가 아니라 벼슬과 재물을 노리는 소인배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시면 그 시커먼 속내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마광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왕안석은 자신과 여혜경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더러운 술책이라고 치부했다. 심지어 여혜경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자네를 안 좋게 말하지만 나는 자네의 됨됨이를 믿네. 더 과감하게 일하게. 자네가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네."
여혜경은 평소 온갖 핑계를 대고 왕안석과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마시며 왕안석이 꺼낸 급진적인 발언을 기억해 놓았다가 훗날 왕안석을 공격할 소재로 삼았다. 또한 왕안석이 자신에게 보낸 서신을 일일이 모아 두었다가 그중에서 문제가 될 만한 소지의 말을 뽑아 책 한권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왕안석은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에서 여혜경을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성품을 알려면 성장한 이후의 인생 역정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금 대신께서는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고 권력도 휘두르고 있으니 당연히 많은 이들에게 추종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얻은 친구를 과연 진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왕안석은 자신의 안목이 정확하다고 믿었다. 얼마 뒤, 신종을 찾은 여혜경의 손에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만든 책이 들려 있었다. 불경한 왕안석의 발언을 낱낱이 기록한 책을 본 신종은 왕안석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왕안석이 사퇴하자, 여혜경은 공개적으로 왕안석을 공격했다. 왕안석의 두 동생을 외지로 좌천시키는 한편, 왕안석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인맥으로 국정을 관리했다고 모함했다. 이에 왕안석은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왜 그와 한 무덤이기를 바라는가"
원나라 초기. 노세영(盧世榮)은 세조의 총애를 받고 조정에서 대권을 휘둘렀다. 간사하고 악독한 성격인 그는 특히 자신을 감추는 능력이 뛰어났다. 왕운(王惲)이라는 인물이 학식과 재능 모두 뛰어나지만 조용히 은거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자신을 보좌하라며 사람을 보냈다. 그가 보낸 심부름꾼이 왕운을 적극적으로 꼬드기기 시작했다.
"우리 대인께서는 뛰어난 인재를 매우 아끼신답니다. 일찍부터 선생의 이름을 들으시고는 한 번 뵐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셨지요. 선생처럼 재주가 뛰어나신 분이 초야에 묻혀 지내는 건 선생 본인은 물론 나라에도 손해입니다."
"저에 관한 이야기는 다 헛소문입니다. 대인께서 뭔가 단단히 오해하신 것 같군요.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저는 관직에 오를 생각이 없습니다."
심부름꾼이 아무리 달콤한 말로 유혹해도 왕운은 노세영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심부름꾼이 돌아간 뒤 왕운의 처가 굴러 들어온 호박을 왜 찼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노세영의 두 손에 권력이 쥐어졌으니 소인배들이 눈앞의 이익에 정신이 팔려 몸을 의탁하고 있을 뿐이오. 내가 보기에 그는 권력을 독점하고 횡포를 일삼는 소인배에 불가하오. 그런 자는 얼마 못 가 사라지고 말 것이오. 일할 때에는 현재만 봐서는 안 되고, 사람 역시 지금 상황만 봐서는 안 된다오. 반드시 그 미래를 봐야 하는 법이니, 그가 실각할 것이 분명한데 어찌 나더러 그런 자와 손을 잡으라고 하는 것이오?"
그 후로도 노세영은 심부름꾼을 여럿 보내고 선물 공세도 퍼부었지만 왕운은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고 번번이 거절했다.
"대인께서 저를 이리 좋게 보신 것은 저에 관한 소문을 제대로 듣지 못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사실 저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변변한 재주 하나 없습니다. 감히 대인을 기만할 수 없어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지적에 왕운은 문제 될 게 없다고 대답했다.
"이렇게까지 나를 비하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노세영과 함께 묻히는 팔자가 될 걸세. 그의 됨됨이를 보아하니 험한 꼴로 생을 마감할 게 분명하네. 그런 자와 손을 잡는다면 나중에 나 역시 연루되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걸세."
왕운의 예언처럼 훗날 황제의 신임을 잃은 노세영은 죽임을 당했고 그의 무리들도 모두 처벌을 받았다.
조조와 육순에게 배워야 할 것
"내다볼 줄 모르면 근심만 생기는 법"
조조는 어린 시절 영리한 철부지 도련님이었다.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체하며 마음대로 날뛰는 그를 향해 많은 이들이 큰 그릇이 되기는 글렀다며 혀를 찼다. 주변의 이런 반응과 달리 교현(校玄)은 그를 높이 평가했다.
"미래는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거지로 판단해서는 안 되네. 그보다는 얼마나 큰 뜻과 견식을 가졌는지를 봐야 하지. 방탕하고 비열하다고 하지만 조조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네. 강직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날카로운 견해는 누구나 지니는 게 아니네. 게다가 세속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기도 하니, 그런 능력을 갖춘 그는 훗날 큰 그릇이 될 것이 분명하네."
그에 대한 교현의 평가에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 치기도 했다. 심지어 조조 자신조차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조조를 만난 교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천하가 곧 혼란에 빠질 거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영웅뿐이지. 내 눈에는 그대가 바로 그 주인공이네. 부디 앞으로는 자중하게나."
훗날 조조는 제남의 국상으로 부임했다. 당시 제남군은 현이 열 개로 쪼개져 있었는데, 권문세족들이 각 자리를 꿰차고 뇌물로 제 주머니를 채우기에 바빴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조조는 그들의 죄행을 조정에 고발하는 상소문을 작성했다. 권문세족에게 미운털이라도 박힐까 노심초사한 한 측근이 사색이 되어 그런 그를 말렸다.
"지금 조정의 혼란은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은 더 더러울 수밖에요. 허나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대인께서 어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세파를 좇지 않거나 애써 건드리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건 나리일 수 있습니다."
측근의 간곡한 만류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조정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내가 솔선수범하려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만 잡으면 황상께서도 나를 탓하지 않으실 게다. 하물며 나라의 녹을 먹는 내가 어찌 그들과 한패가 된단 말이냐!"
조조로부터 제남 권문세족들의 죄를 보고받은 조정에서는 이들을 모두 파면했다. 이때부터 저마다 조조를 무능한 귀족에서 유능한 지도자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조의 위엄이 날로 알려지면서 그가 다스리는 제남은 안정을 되찾았다. 조조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면서 많은 인사들이 앞다퉈 그와 친분을 맺으려 했다. 한번은 익주 자사 왕분(王芬)이 그에게 사람을 보내 영제를 폐위하는 데에 동참하라는 뜻을 전했다.
"대인의 용맹함과 뛰어난 안목을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큰일을 함께하자는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지금의 황제는 무능하니 머지않아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나리께서 힘을 보태 주십시오."
이번 일이 성사된다면 관직을 내리겠다는 회유책과 함께 은근슬쩍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조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에도 상대의 뜻을 거절했다.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추지 못하면 가까운 곳에서 근심거리가 생기기 마련이오. 물론 지금 천하가 혼란하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거사를 일으킬 때도 아니오. 그대들은 형세를 엉뚱하게 보고 있구려. 지금 당장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화를 당하고 말 것이오."
조조의 충고에도 왕분 등은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붙였지만 그의 예상대로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그와 싸워야 한다면 머리로 맞서야"
삼국시대 오나라의 육손(陸遜)은 해창현 현령에 임명되었다. 당시 병역을 피해 현 내로 도망쳐 온 외지인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이들을 전부 잡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육손은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지금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소. 그런 자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다면 반란이 일어날 수 있소. 뭐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든단 말이오. 차라리 이들에게 산적을 소탕하라는 임무를 내리면 어떻겠소? 나라에서 이들을 부른다면 자신의 지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물론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육손은 이런 내용을 조정에 보고한 뒤 병역을 피해 달아난 이들을 병사로 소집해 산적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시켰다. 이들은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던 산적들을 깔끔히 제거하며 해창현을 안정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훗날 여몽(呂蒙)을 대신해 장군 자리에 오른 그는 명장 관우(關羽)와 맞붙었다. 전투력 면에서 자신이 관우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육손은 관우의 교만한 성격을 이용하여 승리를 거머쥐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낮추며 관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육손이 오나라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며 주변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손은 그런 그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우리의 목적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다!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그깟 체면이 대수란 말이냐! 상식에서 벗어나 상대의 허점을 찔러야만 승산이 있는 법. 세상의 지식에 사로잡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어찌 큰 공을 세울 수 있겠느냐!"
육손은 사람을 시켜 관우에게 서한을 보냈다.
"장군의 존함은 온 천하가 알고 있으니, 그 공로를 누가 감히 비교하려 들겠습니까. 일개 서생인 제가 장군과 친분을 쌓을 수만 있다면 제 생에 더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장군의 가르침을 따를 터이니 이런 저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관우는 육손의 서한을 읽고 매우 뿌듯해했다. 그 뒤로 육손을 무시하기에 이른 관우는 결국 경계심마저 버렸다. 그런 관우를 지켜보며 미소를 지은 것은 무시당한 육손이었다. 얼마 뒤에 관우를 급습한 그는 형주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관우의 목까지 벴다.
남다름을 함부로 과신하지 마라
한 수가 모자라 내쫓긴 백거이
당나라 때, 대신인 백거이(白居易)는 뛰어난 재주는 물론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했다. 조정에서 관리로 일하던 시절, 그는 부덕하고 못난 소인배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대는 글 솜씨도 뛰어나고 성품도 강직하거늘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대를 비난하는지 알 수 없구려."
"황상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말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만, 제 생각으로는 제가 저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제 재주와 충성을 시기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어찌 소신을 모함하겠습니까."
자신이 소인배와 같이 어울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무능한 대신들을 인정사정없이 비난했다. 어느 날 조정 대신 한 명이 시를 지어 황제에게 바쳤다. 이를 본 이들마다 글재주가 훌륭하다며 크게 칭찬했지만 백거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좋은 시라면 세상의 개나 소를 다 시인이라 하겠소!"
이 일이 있은 후, 한 친구가 그에게 충고를 건넸다.
"관직에 있다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누구라도 비웃어서는 안 되네. 조정은 친구들과 시를 짓거나 논쟁을 하는 곳이 아니네. 조정에서 속에 있는 말을 있는 그대로 하다가는 주변에서 미음을 받기 십사이라네."
"아는 체하는 놈들이 제일 싫네. 나도 참으려고 하지만 잘난 체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입이 근질거려서 말이지……."
자신의 재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백거이는 말이나 행동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의지를 드려냈다. 황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일에 그는 서슴없이 직언을 올리기도 했다.
어느 날 하동 지역의 절도사 왕악(王鍔)이 출세하고 싶은 생각에 백성들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조정에 바쳤다. 헌종이 그를 재상 자리에 앉히겠다고 하자, 조정 대신들은 별다른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백거이 혼자만 반대의 뜻을 밝혔다.
기분이 상한 헌종이 백거이의 오만한 태도를 지적하며 화를 내자, 평소 그를 내쫓지 못해 안달이었던 반대파가 일제히 백거이를 공격했다. 순식간에 고립된 처지에 내몰린 백거이를 대신 이강(李絳)이 조용히 타일렀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주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행동은 고쳐야 하오. 그대가 남다른 재주를 지닌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주변의 반감만 살 뿐이오. 그것이 관리 된 자의 도리이니 부디 허투루 듣지 마시구려."
결국 백거이는 간언을 올렸다가 주변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조정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잘될 때일수록 적을 조심하라
당나라 현종은 출중한 재능을 자랑하던 양신긍(楊愼矜)을 눈여겨보고 그를 조정에 발탁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양신긍은 당시 조정을 휘어잡은 세도가 이임보(李林甫)가 자신을 핍박 할 수 있다는 걱정에 차일피일 관직을 고사했다. 이때 양신긍의 조카 왕홍(王鉷)은 나중에 뒷배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양신긍에게 하루속히 입궁하라고 권했다.
"황상께서 이처럼 대인을 귀하게 여기시니 이는 다시없는 기회입니다. 황상의 뜻을 계속 거절하면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인의 재주를 썩힐 뿐입니다."
"이임보가 재주 많은 자를 질투한다고 하던데, 나를 가만히 놔두겠느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게 칼을 들이댈까 겁이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왕홍은 그에게 이임보의 문하에 들어가면 후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켰다.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한 그는 즉시 이임보에게 달려가 자신의 뜻을 밝히며 충성을 맹세했다.
"하늘에 맹세컨대 다른 마음을 품거나 후회한다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이임보로서도 제 발로 찾아온 양신긍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임보는 앞으로 잘 봐주겠다며 그를 냉큼 자신의 편에 세웠다. 그제야 양신긍은 마음 편히 관직을 받으며 이임보를 위해 충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매사에 완벽한 일처리 솜씨를 자랑하는 그는 이임보의 최측근 자리를 꿰찼다. 이임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태자를 무고하는 일에까지 가담했다.
이임보의 앞잡이로 전락한 양신긍을 바라보는 왕홍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원체 뛰어난 재주를 지닌 데다 큰 신임을 받고 있어 손쉽게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양신긍을 모함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 양신긍이 왕홍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네 말을 듣고 이임보에게 몸을 의탁해 많은 죄를 지었구나. 모든 것이 들통 나면 나는 끝장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 같구나.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도 없겠지만……."
왕홍은 이 말을 냉큼 이임보에게 전했다.
"양신긍은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야심이 대단합니다. 제가 대인께 그를 추천한 것은 대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충성을 다하라는 것이었는데, 설마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리 뛰어난 자가 대인께 못된 마음이라도 품고 있다면 보통 사람보다 더 큰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미리 손봐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사실 이임보도 재주가 너무 뛰어난 양신긍이 내심 걱정스러웠다. 결국 왕홍에게 양신긍을 잘 감시하도록 한 뒤 양신긍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제거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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