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능력

   
로먼 크르즈나릭(역: 김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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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15000
2014�� 09��



■ 책 소개 


자기중심적 경쟁에서 공감을 통한 협업으로  

‘호모 엠파티쿠스’가 모든 관계를 바꾼다 


이 책은 현대인에게 삶의 정수이자 인간관계의 핵심역량이 되는 ‘공감능력’의 중요성과 공감능력을 키우는 6가지 습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공감의 확실한 정의와, 공감이 이토록 중요해지게 된 심리학적/역사적 배경들 그리고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자신과 인관관계,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흥미로운 사례들이 담겨 있다. 


‘공감’을 통해 자기 자신과 조직, 사회를 바꾼 사람들이 있다. 크르즈나릭은 베스트셀러 소설가, 연기파 배우, 사회활동가, 독창적인 디자이너, 탐사보도 전문기자, 중증외상환자 담당 간호사, 투자전문 금융인, 신경과학자 등과 만나면서 전례 없는 정신적 모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어떻게 타인들과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는지, 또 어떻게 모두의 삶을 고무시키는지를 그들의 공통적인 습관 6가지를 통해 보여준다. 


미국 전역을 80대 할머니의 모습으로 전전한 패기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 갓난아기를 선생님 삼아 진행되는 영국과 캐나다 등지의 초등학교 수업 시간,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밀그램의 실험에 대한 반박, 소비자나 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한 공감을 하나의 가치로 만들어가는 기업이나 기업인 등 공감으로 세상을 바꾼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 

‘옵저버(The Observer)’지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철학자’로 거명한 철학자, 문화사상가이자 작가. ‘삶의 기술’을 주제로 다루는 런던 인생학교(School of Life)의 창립 교수진이었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공감 전문가이며, 공감과 대화를 활용해 사회변화를 창출하는 분야에서 옥스팜이나 유엔 등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다. ‘공감의 힘’을 이야기하는 RSA 애니메이션 동영상 ‘외성의 힘(The Power of Outrospection)’은 5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시드니와 홍콩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옥스퍼드, 런던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에섹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캠브리지대학교, 에섹스대학교, 런던시립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강의했으며, 중앙아메리카에서 난민과 원주민의 인권 연구조사를 수행했다. 그는 개인적, 직업적, 문화적 생활에서 용기와 독창성을 자극하는 전위단체 ‘옥스퍼드 뮤즈’의 기획책임자로 여러 해 일해 왔다. 또한 공감과 삶의 기술을 주제로 하는 블로그 www.outrospection.org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원더박스: 낯선 역사에서 발견한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 『인생학교 ‘일’: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최초의 아름다운 경기: 리얼테니스 열광의 이야기』, 시어도어 젤딘과 함께 쓴 『미지의 대학 안내서』가 있다. 주요 저서들은 10가지가 넘는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로먼 크르즈나릭은 열광적으로 리얼테니스(옛날 식 실내 테니스)를 즐기고, 정원사로도 일했으며, 가구제작에도 열정을 갖고 있다. 지금은 세계 최초의 공감 박물관을 세우려는 열망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역자 김병화 

서울대학교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다는 마음에서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번역ㆍ기획 네트워크 ‘사이에’의 일원으로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혼자 책 읽는 시간』 『투게더』 『행복할 권리』 등이 있다. 


■ 차례 

한국어판 서문 : 인간성의 정수이자 인간관계의 핵심, 공감 


여는 글 : 공감의 위력  

인간관계의 혁명 |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6가지 습관 | 공감 결핍에 도전하다 | ‘내성’의 세기에서 ‘외성’의 시대로 | 공감에 대한 이의  


첫 번째 습관 : 두뇌의 공감회로를 작동시킨다 

공감: 공상과학 이야기인가, 과학적 사실인가? | 인간의 본성이 다 그런 거지, 뭘 | 아동심리학과 호모 엠파티쿠스의 발견 | 우리 안의 영장류와 만나다 | 공감하는 두뇌를 해부하다 | 더 많이 공감하도록 배울 수 있을까? | 마음의 틀을 다시 짜다  


두 번째 습관 : ‘상상력을 발휘해 도약’한다  

공감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서, 왜 더 많이 공감하지 않는가? | 편견 | 권위 | 거리 | 부인 | 타자’에서 다시 ‘사람’으로 | 당신이 공유하는 것과 공유하지 않는 것을 알아내라 | 적과의 공감 | 박쥐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세 번째 습관 : 새로운 체험에 뛰어든다  

대니얼 데이-루이스 되기 | 몰입하기, 또는 공감주의자들의 잠입취재기 | 공감여행이 당신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체 게바라의 경우 | 동네 합창단에 지금 가입하세요! | 공감 언어 배우기  


네 번째 습관 : 대화의 기교를 연마한다  

대화의 위기 | 첫 번째 요소: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 | 두 번째 요소: 철저히 듣기| 세 번째 요소: 가면을 벗고 취약성 끌어안기 | 네 번째 요소: 타인에 대한 배려 | 다섯 번째 요소: 창조적 정신 | 여섯 번째 요소: 불굴의 용기 | 당신 자신과 공감하는가?  


다섯 번째 습관 : ‘안락의자 여행자’가 되어본다  

자기 방 안에서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 연극과 영화: 적의 눈으로 본 전쟁 | 사진: 공감적 이미지가 가진 정치적 위력 | 문학: 소설에서 공감을 배울 수 있을까? | 온라인 문화: 디지털 혁명에서 공감 혁명으로? | 엑스타시스를 찬양하다  


여섯 번째 습관 : 주변에 변혁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만국의 공감주의자여, 단결하라! | 역사상 낯선 사람들의 가장 위대한 만남 | 첫 번째 파도: 18세기, 인도주의가 발생하다 | 두 번째 파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의 확대 | 세 번째 파도: 신경과학의 시대, 인적 관계의 심화 | 생명공감의 전망 | 혁명의 파도에 올라타기  

 

맺는 글 : 공감의 미래  

공감대화 | 공감도서관 | 공감박물관  


주석 

참고문헌 




공감하는 능력


여는 글 : 공감의 위력

인간관계의 혁명

사실 알고 보면 공감은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고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낼 힘을 가진 하나의 이상(理想)이다. 공감은 혁명을 일구어낼 수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구식 혁명, 즉 법률과 제도, 정부를 새로 세우는 그런 혁명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것, 즉 인간관계의 혁명을 일으킨다.


공감은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활용해 당신의 행동지침으로 삼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동정심(Sympathy)과는 다르다. 동정심은 어떤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불쌍하다는 마음일 뿐, 상대방의 감정이나 시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공감은 "상대방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해주라."는 황금률과도 같지 않다. 이 원칙은 당신과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ow)는 특유의 문체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해줬으면 하는 방식대로 그들에게 해주지 마라.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까." 공감은 이런 서로 다른 취향을 찾아내는 이야기다.


공감 결핍에 도전하다

미시건대학교에서 실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80년에서 지금까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 수준이 대폭 낮아졌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지난 10년간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변동은 부분적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비중이 커지고, 공감적 감수성을 기를만한 사회적·공동체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좀먹는 공감 결핍과 함께, 그보다는 눈에 덜 띄지만 우리 각자의 삶 차원에서 존재하는 결핍이 하나 있다. 이는 좀 더 개인적인 형태의 결핍으로, 공감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감이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이로운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공감은 와해된 인간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힘을 갖고 있다. 관계가 와해되는 이유는 대개 한쪽이 자신에게 필요한 일과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방이 귀담아듣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공감은 우정을 깊이 있게 만들고 새로운 친구를 선사한다. 공감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창조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공감하지 않을 때는 은폐되니 채 보이지 않던 문제점과 시각이, 공감하는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내성의 세기에서 외성의 시대로

공감은 지난 세기가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자기 몰입적 개인주의를 바로잡아줄 치료약이다. 나는 20세기를 내성(內省, Introspection)의 세기로 본다. 20세기는 자기계발 산업과 심리치료 풍조가 성행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이해하는 최선의 길이 곧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의 감정·경험·욕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는 생각을 선전한 시대였다. 하지만 서구문화를 지배하게 된 이 개인주의 철학이 사람들에게 좋은 삶을 가져다준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21세기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내성이 아니라 새로운 외성의 시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외성의 시대에 우리는 내면 들여다보기와 외부 내다보기 사이에서 균형을 더 잘 잡아야 한다. 외성(外省, Outrospeciton)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자기 자신 밖으로 나가 타인들의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탐구함으로써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알아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성 시대에 필수적인 예술 형태는 공감이다. 내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첫 번째 습관 : 두뇌의 공감회로를 작동시킨다

공감: 공상과학 이야기인가, 과학적 사실인가?

자기이익과 자기보존을 위해 공격적으로 돌진하는 것이 인간의 일차적인 행동 동기라는 전통적이고 다윈적인 사상, 호모 셀프센트리쿠스(Homo Self-Centricus)라는 인간관은 잊어라. 새로 등장하는 인간관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타인들의 마음과 용해시키는 능력을 타고난 호모 엠파티쿠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의 첫 번째 습관은 두뇌의 공감회로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간 본성에 관한 더 세련된 해석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렇게 하려면 두 가지를 인식해야 한다. 첫째, 공감하는 능력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적 자질의 일부이며 인류가 진화하기 시작한 먼 과거부터 깊이 뿌리박힌 것이다. 둘째, 공감은 우리 삶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미리 걱정하지 말고 언제라도 공감혁명에 뛰어들면 된다.


아동심리학과 호모 엠파티쿠스의 발견

시각적 인지 분야의 개척자라 할 피아제의 연구를 토대로 한 공감 연구에서 현재까지 합의된 내용은 두세 살 가량의 어린아이도 자기 관점 외에 다른 관점을 상상할 기초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론(Theory of Mind, 타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읽어내는 능력) 인지적 공감 또는 관점 수용의 내용이다. 다시 말해 상상력의 도약을 감행해 다른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취향·경험·세계관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지적 공감이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어린 유년시절에 저절로 발전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공감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존재, 즉 천성적으로 사회적인 생물임을 말해 준다.


두 번째 종류의 공감인 정서적 공감은 한 인간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인지적 능력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거나 반영하는 문제이다. 내 딸이 어딘가 아파서 우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아픔을 느낀다면, 나는 정서적 공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들의 감정(정서적 측면)과 관점(인지적 측면)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활용해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현실에서 두 가지 공감 형식은 긴밀하게 뒤엉켜 있다.


마음의 틀을 다시 짜다

우리는 개인주의와 공감 두 가지가 모두 장착되어 있는 복잡한 두뇌를 갖고 있다. 개인주의라는 장치는 3세기라는 긴 시간 동안 강조되고 권장되고 앞장서서 활동해 왔다. 이제 공감회로에게 경쟁자 곁에 함께 설 마땅한 기회를 주자. 인간이 사회적 두뇌의 자랑스러운 소유자임을 인정하자!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정신적 프레임이라 부른 것을 변모시키는 일이다. 프레임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마음속 구조다. 레이코프는 그것들이 인지적 무의식 속에 깊이 묻혀 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 우리가 세우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 행동이 좋고 나쁜 결과로 판단되는 것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인간 본성론의 지배적 프레임으로 존재해 왔다.


이제 우리는 이와 다른 프레임을 흡수하고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그 프레임은 공감이 우리 존재의 핵심에, 이기심 바로 곁에서 공존한다는 견해다. 문제는 우리의 사유 프레임, 즉 세계관을 어떻게 바꾸어야 과학적으로 좀 더 정확한 인간 본성의 그림을 우리 두뇌에 새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ural Therapy)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끌어오는 것이 효과적이다. 즉, 당신 자신이나 타인들이 공감적 사유나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려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다.



두 번째 습관 : 상상력을 발휘해 도약한다

공감이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서, 왜 더 많이 공감하지 않는가?

공감은 이제 인간 행복의 필수 요소로 인정받는다. 공감은 삶을 의미 있게 해주고, 정신적 지형을 확장하는 인간관계를 창출해 세계와 자기 자신의 삶에 새로운 관점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공감이 우리에게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서, 또 그것이 우리 두뇌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면서 우리는 왜 더 많이 공감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우리 앞에 공감적 상상의 완전한 표현을 가로막는 네 가지 근본적인 사회적·정치적 장벽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장벽의 이름은? 편견, 권위, 거리, 부인이다.


편견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간단하다. 우리 중에는 타인에게 선입견을 품고 예단을 내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틀을 만들고, 첫인상을 근거로 섣부르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 상대방의 삶이 실제로 어떤지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대수롭지 않게 투사해 버린다. 당신 자신도 편견과 정형화라는 왜곡렌즈를 통해 보는 탓으로 사람들을 오판하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생각해 보라.


권위

편견과는 별개로 공감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권위에 복종하려는 인간적 성향이다. 역사 전체에 걸쳐 학살, 인종말살, 그 밖의 인권침해에 개입된 자들이 자신들을 방어한 논리는 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인간인가?보다는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일 때가 더 많다.


거리

지구가 작아지는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지구촌에서는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서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공간적 거리는 여전히 공감의 확산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친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능력에 불을 붙이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거리가 그저 공간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도 그에 못지않게 공감적 연결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가령 우리는 교육적 배경이나 민족이나 종교 등의 측면에서 자신과 사회적으로 닮은 사람들과의 공감에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 공간적·사회적 거리 외에 세 번째 형태인 시간적 거리 역시 공감의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우리는 자기 자녀나 손자의 행복에 대해서는 걱정한다. 하지만 증손자만 되어도 그런 연대감은 약해지기 시작하며, 지금부터 한 세기 뒤에 살고 있을, 친척도 아닌 사람들이 겪게 될 상황에는 거의 완전히 무관심하다.


부인

신문에서 굶어 죽어가는 먼 나라 아이의 사진이나 전쟁 이재민의 사진을 보면서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거나 공감하는 반응이 거의 생기지 않는 경우가 어느 정도 자주 있는가? 이런 현상은 보통 자비피로 또는 공감피로에 시달리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한다.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Stanley Cohen)은 저서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States of Denial)』에서 공감피로를 더 깊이 파헤쳐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잔학상과 고통에 대해 모두에게 알 것을 허용하는 동시에 그런 현실을 차단하고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게 만드는, 말하자면 못 본 체하게 만드는 것이 부인(否認)문화이며, 우리는 모두 부인문화의 산물이다. 그는 "사람들, 조직들, 정부들, 한마디로 말해 사회 전체가 너무 언짢고 위협적이고 비정상적이어서 우리는 완전히 소화할 수 없거나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따라서 그런 정보들은 어떻게든 억압되거나, 부인되거나, 외면당해 밀쳐지거나, 그도 아니면 재해석 된다."고 썼다.


장벽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면 이제 그것을 넘어갈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공감의 도약을 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인간화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사람들과 무엇을 공유하는지(그리고 무엇을 공유하지 않는지)를 알아내고,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적과 공감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습관 : 새로운 체험에 뛰어든다

몰입하기, 또는 공감주의자들의 잠입취재기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말과 그림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배우는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구문화에서는 현실을 직접 체험하면서 학습이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임이 인정되어 왔다.


우리 자신과 타인들에 대해 배우는 방법으로 체험에 견줄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공감의 역사에서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Assist)였다. 13세기 초에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한 그는 성당의 사치스러움이 너무나 역겨워, 문간에 있던 거지와 옷을 바꾸어 입고 그날 하루를 넝마 차림으로 구걸하며 보냈다. 현대에 성 프란체스코가 로마에서 했던 실험을 모방하는 것은 주로 잠입취재하는 기자와 작가들이다. 그들은 정체를 숨긴 채 한동안 슬럼가에서 살거나 공장의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거나 노숙자 생활을 하는 등 사회 주변부의 생활을 체험한다.


중산층의 생활방식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최저임금 이하 수준으로 살아보거나 실직자를 위한 구호물자로 살아보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부(富) 바꿔보기(Wealth-swap) 실험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그 대신 신(神) 바꿔보기(God-swap)을 해볼 수 있다. 특정한 종교와 신앙이 두텁다면, 한 달 동안 다른 종교의 예배와 인도주의자들의 집회에 참석해 보는 것이다. 아니면, 당신과 아주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와 직장 바꿔보기(Job-swap)를 해볼 수도 있다.


마지막 도전으로 감각 바꿔보기(Sense-swap)를 해볼 수 있다. 감각 기능을 완전히 박탈당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를 알고 싶다면 독일 사회운동가 안드레아스 하이네케(Andres Heinecke)가 창설한 세계적인 공공 체험전시 네트워크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에 가보라.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완전한 어둠 속에 들어가서, 시각장애자 안내인의 인도를 받아 체험 전시장을 돌아다닌다. 방문자들은 잊을 수 없도록 힘들었지만 무척 고무적인 체험이었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공감 언어 배우기

수많은 학습 영역에서 사람들 간의 차이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경험이다. 공감능력을 키울 때도 맟나가지다. 몰입과 탐사와 협력을 통해 경험의 세계로 걸어들어감으로써 우리는 타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


공감하기를 배우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고재를 탐독하고 올바른 구절을 여러 번 읽는 것으로 언어 공부를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원어민들과 어울리면서 날마다 그 언어로 말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공감의 연습도 다르지 않다. 안내서 없는 모험에서 우리는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네 번째 습관 : 대화의 기교를 연마한다

대화의 위기

신문에 보도될 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현재 우리는 대화 단절의 위기에 봉착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수준 높은 대화가 고갈되었으며, 소통의 와해는 서구 국가들에서 이혼의 중대한 원인이다. 2012년 전 세계에서 송신된 문자 메시지가 약 10조 통이었는데,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영감이나 위안을 주고 그들을 감동시킨 건 몇 통이나 될까? 대화 단절의 위기는 공감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대화가 타인들 내면의 감정적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 통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기교를 연마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기어업체 사장들, BBC 기자, 학생, 구전역사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화와 공감의 워크숍을 10년이 넘도록 운영해 온 결과, 나는 공감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의 가장 놀라운 습관 한 가지는 다른 인간들에 대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요소: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

호기심은 오늘날의 예술과 가학에서도 여전히 귀중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직 호기심을 인물보다는 생각과 대상에 적용해야 하는 것으로만 취급하는 계몽주의적 유산이 부과한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유산의 한계를 넘어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최고의 미덕으로 승격시켜야 한다. 그것이 공감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에 따르면, 공감은 "타인들이 그들 자체로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감수성"이다.


두 번째 요소: 철저히 듣기

공감적 대화를 막는 장애물은 얼마든지 있다. 논쟁이 팽팽해지거나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전투적이 되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사람 탓을 해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장애물을 넘어가는 데 가장 쓸모 있는 기술 가운데 하나가 듣기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 말고도 내가 철저히 듣기(Radical Listening)라 부르는 버릇을 갖고 있다.


가장 철저히 듣는 사람 가운데 비폭력 소통(NVC: Non-violent Communication)의 창시자인 마셜 로젠버그(Marshall Rosenberg)가 있다. 비폭력 소통이란 (험난한 결혼생활에서 갱들 간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으로, 타고난 자비심이 무성히 피어나도록 만들어 주는 대화법이다. 공감은 직업적 치료사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로젠버그는 생각한다.


세 번째 요소: 가면을 벗고 취약성 끌어안기

우리는 베네치아의 카니발에 참여한 사람들, 다시 말해 가면 뒤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자기 감정을 유보하고 두려움을 숨기고 불안을 내면에 파묻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적 관계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자신을 드러내고 연결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감은 상호교환 위에 세워진다. 우리가 상대방 앞에서 스스로를 개방하면 십중팔구 그들도 우리에게 자신을 개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화(Conversation)를 상호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한 쌍방향 대화(Two-Way Dialogue)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 요소: 타인에 대한 배려

가면을 기꺼이 벗어버리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잘 들을 줄도 알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자기중심적이고 실리적인 접근법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대화에 반영하며, 자기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들의 이익과 행복에도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태도의 중요성은 이른바 공감 마케팅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명백히 부각된다. 지난 10년간 공감은 광고와 마케팅 산업에서 인기 있는 개념으로 부상했다. 기업 관련 분야의 베스트셀러인 『설득력: 간결하고 강력하게 말하는 대화의 힘(Persuasion: The Art of Influencing People)』에서 제임스 보그(James Borg)는 공감, 특히 일대일 대화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기술이 "당신을 정말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는 눈에 확 들어오는 경쟁력"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영업기술이라고 설명한다.


다섯 번째 요소: 창조적 정신

대화란, 아주 잘 이루어진 경우 일종의 모험이 된다. 소크라테스적 대화의 이데아처럼 상이한 관점과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둘의 만남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어떤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다섯 번째 특징은 그들이 이런 창조적 정신을 가지고 대화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세계고나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세계관을 그들과 공유하는 경험을 거치면 나올 때는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져 있을 것이며, 참신한 생각과 관점을 주는 공감적 통찰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려면 피상적인 차원에서 머물면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와 우선 문제를 수박 겉핥기로 건드리는 대화 패턴을 깨뜨려야 한다.


여섯 번째 요소: 불굴의 용기

타인의 마음속으로 공감의 도약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것이 내가 앞에서 논의해 온 것들의 공통분모라 할 만한 불굴의 용기라는 대화 습관이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창조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타인의 관심사를 자기 것보다 먼저 다루고, 가면을 벗어던지고, 사람들의 기분과 필요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낯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는 연습을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용기는 우리가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하는 대화, 즉 정말 까다롭지만 공감에서 비롯된 믿음과 지지를 굳힐 수 있도록 넓은 시야를 제시하는 대화를 나누게 해준다.



다섯 번째 습관 : 안락의자 여행자가 되어본다

자기 방 안에서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말과 그림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고작해야 2차적인 경험밖에 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다룰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저 공감문학일 뿐이라고 소홀히 취급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예술이 안동 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이든 반전운동이든 어떤 행동을 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공감적 자아를 떠밀어 보낸 길고 뚜렷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과 예술작품을 소비할 때 어떻게 해야 분별력을 가질 수 있고, 재미만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감하며 참여할 수 있을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을 안락의자 공감, 즉 자기 집 거실에 앉아서도 해볼 수 있는 공감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소셜네트워크, 비디오게임, 채팅방, 그 밖에 여러 형태의 온라인 문화는 우리가 전 세계 수백만 명과 직접 연결되어 안락의자 공감을 추구할 가능성을 새로 열어주었다.


온라인 문화: 디지털 혁명에서 공감 혁명으로?

디지털 혁명은 안락의자 공감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를 불러들인다. 책이나 영화, 사진과 달리 디지털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있는 수백만 명과 곧바로 연결될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게다가 소셜미디어를 통하면 영화나 소설 같은 일방향 소통과는 달리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에 따르면, 인터넷 문화는 진정한 공감적 문명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면 21세기를 공감의 시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는 최고의 공감 앱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서 상대와 강력한 감정적 연대를 만들어내게 해주는 앱을 찾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노력은 내 예상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알아본 결과, 기존의 온라인 플랫폼들에는 공감혁명을 일구어낼 여지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현재 쓰이고 있는 디지털 기술과 애플리케이션들은 우리의 인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우리를 공감의 암흑시대로 도로 데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부엌에서 인터넷 문화가 공감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찾는다. 영국 옥스퍼드 시에 사는 내 아이들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잠에서 깨자마자 부엌으로 내려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사는 조부모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스카이프(Skype) 덕분에 잼과 토스트 곁에 놓인 노트북 화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시는 것이다. 스카이프나 다른 기기들이 내 부엌을 넘어서서 그런 공감적 대화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내가 만난 영국의 교사들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케냐에 있는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대화하면서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나는 부국의 커피 애호가와 빈국의 커피 경작자들 사이에 온라인 대화선을 연결하려는 단체들을 만나기도 했다.



여섯 번째 습관 : 주변에 변혁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만국의 공감주의자여, 단결하라!

사람들은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많이 입는데, 그중에서 공감혁명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공감이란 주로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 변화보다는 개인들의 인간관계와 연관되는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감을 사적 생활 영역에서 구해 내어 공적 생활도 바꿀 만한 잠재력을 발산시킬 때가 되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뭉쳐 상상 속으로 도약해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공감은 역사의 지형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공감여행의 최고 목표지점은 빈곤과 불평등, 무장폭력과 환경 파괴에 이르는 우리 시대의 긴박한 문제에 대처하는 데 한몫할 집단적 공감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첫 번째 파도: 18세기, 인도주의가 발생하다

현대 서구 역사에서는 집단적 공감의 큰 파도가 세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도덕적 관심의 범위를 넓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18세기에 일어난 첫 번째 파도는(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유럽 전역에서 인도주의 적 단체와 운동을 촉발시켰다. 이 공감혁명이 가져온 충격과 업적을 전부 다 인식하려면 1700년 이전 유럽 일상생활이 오늘날의 우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폭력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다가 그 뒤의 100년 동안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런 잔혹한 관행 가운데 많은 수가 불법화되었거나 적어도 줄어들었다. 적극적인 행동주의가 터져나왔다.


이렇게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새로운 공감문화의 등장이라는 요인이다. 그 습관의 토대 가운데 독서혁명이라 알려진 것이 있었다. 문맹률이 낮아지고 소설과 신문 읽기가 확산되자 성장하는 중산층이 어린 고아들, 가난한 농장 노동자, 고통받는 노예의 삶이 어떤지 이해할 길이 생겼고, 이런 이해가 사회적 대립을 넘어서서 인간으로서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사실 18세기와 19세기의 인도주의 혁명에 연료를 공급한 것은 독서만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운동을 구축하려는 개인과 집단의 집중적인 노력이었다. 이런 수많은 운동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놀랍게도 공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 바탕에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파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의 확대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 모든 인도주의 혁명이 이뤄낸 소득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고 잔혹성과 야만행위를 저지르는 능력이 여전히 인간 본성의 일부분임을 비극적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몇 십 년 동안 집단적 공감을 두 번째 파도가 출현하여 새로운 사회집단들에게 권한을 확대하고, 윤리적 관심의 범위가 국경이라는 한계를 넘어 뻗어나가도록 밀어붙였다.


전후에 등장한 새 세대 인도주의 단체들은 국경을 넘어 저개발국 사람들에게까지 공감적 관심이 미치게 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파도 배후에 있는 단체와 사회운동 조직들은 대규모 공감을 창출할 수 있는지 여부가 곧 감정적 개입을 실질적인 행동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특정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이 있다면 도움이 된다.


세 번째 파도: 신경과학의 시대, 인적 관계의 심화

이런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1990년대에 집단적 공감의 세 번째 파도가 나타나 전 세계에 퍼졌다. 그 전의 파도들과는 달리 세 번째 파도가 강조하는 지점은 예전에는 무시되던 사회집단에게까지 권리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힘을 풀어놓아 인간관계의 질적인 측면을 되살려내고 심화시키는 쪽에 집중되었다. 공감이라는 단어는 대중적 메시지에서 더 강조되었고,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집중 조명되었다. 이 마지막 파도는 새롭게 장래성을 인정받는 영역 세 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공감 기술을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영역, 갈등 상황을 해결하고 중재하는 영역, 기후변화에 대처하도록 미래세대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영역이 그런 곳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그 파도는 두뇌 공감회로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 신경과학과 진화생물학 연구, 그리고 공감은 평생학습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아동심리학과 교육심리학에서 가져온 증거들로부터 연료를 공급받고 있다.



맺는 글 : 공감의 미래

어떻게 살까? 무엇을 할까? 모든 문화는 삶의 기술을 위한 구상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용기, 지혜, 절제라는 덕성을 격찬했다. 초기 기독교는 신도들에게 신과 교감하려면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라고 요구했다. 계몽주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열정을 굽혀 이성의 지시에 따르라는 조언을 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개인적 욕구와 이기심을 추구하라는 메시지가 지배했다. 이런 메시지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며, 좋은 삶은 소비적 쾌락과 물질적 부에 달려 있다는 전제로 한다.


이제 그와 다른 대안에 우리 손 닿는 곳에 있다. 바로 공감이다. 자아의 영역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갈지를 알려줄 참신한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들의 눈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방도가 없을지도 모른다. 괴테가 말했듯이, 우리는 자신 밖으로 걸어나가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해야 한다.


공감의 미래는 우리가 각자의 삶을 바꾸기 위해 개인적으로 선택한 것에만 달려 있지 않다. 공감이 사회 변화를 위한 힘으로서의 혁명을 달성하기를 바란다면 더 깊은 곳에서 문화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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