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안쪽

   
김태형
ǻ
갈매나무
   
14000
2012�� 07��



■ 책 소개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하거나난해한 심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심리학자이며 특히 인물 분석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작가 김태형은 이책에서 이런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층적인 심리, 그중에서도 ‘감정’에 주목한다. 탄탄한 심리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다양한 감정의 면면들, 인간 심리의 근원들을 흥미롭게 풀어낸 저자는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매체인 영화를 통해 우리 마음의 작동 원리를 깊이있게, 하지만 어렵지 않게 탐구하고 있다.

■ 저자 김태형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심리학자로서 기존 심리학의 긍정적인 점을 계승하는 한편, 오류를 과감히 비판하고 극복함으로써 올바른 심리학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또한 그러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 여러 인물들, 특히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심리학 연구 및 상담,집필, 강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교보문고 <북모닝 CEO&& 북멘토, 한경 HiCEO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분석하다』『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불안증폭사회』(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로미오는 정말줄리엣을 사랑했을까?』『세계사 심리코드『베토벤 심리상담 보고서』(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2008년 올해의 청소년도서) 등이있다.

■ 차례
프롤로그 - 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Part 1 감정의 안쪽 
감정: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2002) - 감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동기: 인셉션(Inception, 2010) - 해결되지못한 무의식적 동기 
왜곡: 메멘토(Memento, 2000) - 기억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자기혐오: 미녀는 괴로워(2006) -“왜 너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해?” 
심리적 게임: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 2001) - “실제 상황이라는거 아직도 모르겠나?” 

Part 2감정의 대결 
트라우마: 박하사탕(1999) - 자기를 용서하는 법 
양가감정: 대부(Godfather, 1972)- 아버지와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억압: 러브 레터(Love Letter, 1995) - 잊고 싶은, 잊혀지지 않는… 
양심:도가니(2011)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합리화: 매트릭스(Matrix, 1999) - 고통스러운 진실을 피할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

Part 3 극단적 감정
사이코패스: 추격자(2008) - 감정능력의 손상이 가져오는 재앙 
합리화: 헬프(The Help, 2011) -어머니를 배신하다 
망상: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 2001) -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다중인격장애: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 “이 상황은 네가 감당해.” 
공황: 해운대(2009) - 재난 앞에 드러나는 속마음

Part 4 감정의 치유
소통: 파수꾼(2010)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거절에 대한 공포: 굿 윌 헌팅(Good WillHunting, 1997) -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자존감: 해피 엔드(1999) - ‘해피엔드’는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소망: 아바타(Avatar, 2009) - 소망은 아름답다 
전이: 완득이(2011) -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의 위력





생활의 달인을 통해 대한민국 주부들

감정의 안쪽


감정의 안쪽

자기혐오: 미녀는 괴로워(2006) - "왜 너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해?"

예뻐지고 싶은 욕망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강한나는 매사에 어리숙하고 의기소침하지만 마음씨만큼은 아주 착하다. 게다가 그녀는 뛰어난 노래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녀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강한나는 엄청나게 뚱뚱한 데다 못생긴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외모 때문에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한 채 아미라는 여가수의 목소리 대역을 해야만 했고,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기는커녕 노골적으로 무시를 당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아들까지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는 만큼, 외모가 좀 떨어지는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다소 과장되고 코믹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세상 사람들이 상대방 외모의 차이에 따라 얼마나 판이한 태도를 드러내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강한나는 싸구려 중고차를 사서 운전하다 실수로 택시를 들이받는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나온 택시 기사는 "아줌마, 당장 내려!"라고 고함을 치고 길에 드러눕는 시늉까지 해가면서 불같이 화를 낸다. 뚱뚱하고 못생겼던 과거의 자신에게 세상 사람들이 보였던 냉담하고 험악한 반응에 익숙한 강한나는 겁이 나 얼굴을 숙인 채 차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택시 기사의 거듭된 독촉으로 할 수 없이 차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온갖 불평과 악담을 늘어놓고 있던 택시 기사는 강한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린다. "괜찮아요?"


수술로 마음까지 고칠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외모의 아름다움이 마음의 아름다움과 정비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외모 때문에 사회적인 차별과 멸시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마음마저 병들기 쉽다. 강한나 역시 열등감과 자기혐오감이 심한 반면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턱없이 부족하며, 타인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무조건 남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잘해주려고만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거의 사랑하지도 돌보지도 않는다.


강한나가 건강하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외모 콤플렉스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성형수술을 통해 예뻐진 후에는 이런 부정적 심리들이 모두 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가 않았다. 비록 강한나의 외모는 가수 제니로 완벽하게 탈바꿈했지만, 부정적인 자아상은 그리 쉽게 교정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뚱보 강한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는 육체와 내면의 불일치로 제니가 되고 나서도 계속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고, 그 결과 자신의 강점인 뛰어난 가창력까지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상준은 그런 제니에게 뚱보였던 강한나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못 해? 왜 제니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해?"


가장 중요한 자산

멀고 먼 길을 돌아 그녀는 마침내 예전에는 그저 혐오스럽게만 여기며 미워하고 부끄러워했던 뚱보 강한나를 온전히 수용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혐오가 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학대와 자기파괴 성향이 강하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감과 혐오감 등이 세상을 향해 분출되기도 하므로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성향도 강한 편이다. 또한 자기혐오가 심한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까지도 혐오하게 된다. 예컨대 못생긴 자기 얼굴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이는 못생긴 사람을 싫어하고 잘생긴 사람을 선망한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흑인인 것을 싫어하는 이는 흑인을 싫어하고 백인을 선망하며, 자기의 가난을 비관하는 이는 가난한 사람을 배척하고 부자를 선망한다.


자기혐오는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계급배반적인 투표를 하게 만드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자기혐오는 이렇게 단지 자기를 혐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까지도 혐오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공격하는 자살골을 넣게 만든다. 비록 잘못된 세상이 자기혐오를 반복적으로 강요할지라도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정의 대결

양심: 도가니(2011)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

최근의 유행어로 정의하자면 영화 <도가니>의 주인공 강인호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영악하게 세상살이를 하지도 못하는 영락없는 루저이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좇느라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했고 돈도 벌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내마저 천식을 앓고 있는 딸을 남겨두고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절박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스승 김 교수는 다행히도 무진에 있는 한 장애인 학교(자애 학원)에 미술 교사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강인호는 딸을 어머니에게 맡기고는 그곳으로 향한다.


자애 학원은 강인호가 예상했던 장애인 학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그는 교무실에서 박보현이라는 선생이 전민수라는 학생을 잔혹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하는가 하면, 자애 학원 설립자의 수양딸 윤자애가 김연두라는 여학생의 머리를 세탁기에 집어넣는 끔찍한 장면까지 보게 된다. 김연두를 구출해서 병원에 입원시킨 강인호는 예전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 무진 인권운동센터의 간사 서유진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런데 김연두와 얘기를 나눈 그녀는 강인호에게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준다. "연두가 성추행을 당했어요. 그것도 교장한테."


선택의 갈림길에 서다

교장의 추악한 정체를 알게 되어 고뇌하고 있던 어느 날, 강인호의 어머니가 그의 딸 솔이를 데리고 찾아온다. 어머니는 교사 생활이 어떠냐는 물음에 아들이 신통치 않은 태도로 대답하자 그저 참고 견디라고 타이른다. 그리고는 교장이 화초를 좋아한다기에 화초를 사왔다면서, 교장이 아주 발이 넓은 사람이라 그에게 잘 보인 교사 여러 명을 서울로 보내주기도 했다는 김 교수의 말을 전한다. 강인호는 어머니의 말을 듣다가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머니는 전세방까지 빼서 5천만 원을 만들었다며 "니는 그저 니가 가르치는 아이들처럼 입 닫고 귀 닫고 니 할 일만 하면 되는 기라"라고 충고한다. 그리고는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말고 오로지 딸 솔이만 생각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양심의 목소리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출세는 둘째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교사 자리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에 그는 결국 어머니의 충고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다음날 학교에 출근한 강인호는 어머니가 사 온 화분을 들고서 교장실 문 앞으로 간다. 그러나 교장실 안에서 또다시 박 선생이 전민수를 폭행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그만 문 앞에 선 채로 얼어붙고 만다. 강인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을 때, 한 손에는 골프채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피범벅이 된 전민수의 멱살을 잡은 박 선생이 교장실을 나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는 교장에게 바칠 화분을 들고 서 있는 강인호를 힐끗 쳐다보며 비웃고 있고, 교장실 안에서는 교장과 행정실장이 반갑게 웃으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박 선생에게 짐승처럼 질질 끌려가고 있는 전민수를 외면한 채 교장실로 들어가 화분을 바치면 강인호는 그럭저럭 편한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반대로 교장실 문턱을 넘지 않고 뒤돌아서면 예전처럼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순간 강인호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린다. 그것은 절규하는 양심이 토해내는 피눈물이었을까? 강인호는 돌아서서 학생을 끌고 가던 박 선생에게로 걸어가 화분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친다. 양심이냐, 생존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분연히 양심을 선택한 것이다.


불의가 정의를 심판하는 세상

한편 서유진은 교장 형제와 박보현 선생을 처벌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찾아갔으나 번번이 거절당한다. 교육청에서는 방과 후에 발생한 사건이므로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지역 유지인 교장을 두둔하기에 바쁜 검찰은 경찰에 수사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강인호와 서유진은 사건을 매스컴에 폭로함으로써 겨우 세 사람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으나,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던 악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거세게 반격한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세 사람의 죄질이 매우 나쁘므로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이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이 장면은 중형을 선고받아야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와 권세가들에게 사법부가 번번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라는 이유를 들어 풀어주는 장면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실제로 <도가니>에 나오는 자애 학원, 검찰과 경찰, 사법부와 같은 국가기관들, 광적인 교회 신도들 사이의 끈끈한 결탁과 횡포가 연출하는 장면들은 가히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권력자와 부유층의 부도덕한 동맹이 지배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 말이다.


강인호는 왜 양심을 선택했나?

그는 병에 걸린 어린 딸과 늙은 어머니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부도덕하지만 강력한 권력과 타협하지 않은 걸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밥도 먹여주어야 하지만 정의로운 아버지라는 자부심도 주어야 한다. 양심을 저버리며 불의와 타협하는 아버지는 자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으며, 아이들에게 지워버리기 힘든 부끄러움, 열등감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심을 외면하는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늪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늪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듯이, 한 번 양심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두 번 세 번 양심을 저버리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미 죄를 지은 몸인데 또 죄를 지으면 어떠냐는 식의 자포자기적인 생각, 그리고 부도덕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자기처벌과 자기학대의 심리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결국 양심의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외면하면 성공과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신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내면적인 삶은 붕괴되어갈 뿐이다. 양심을 저버리는 삶에 물질적 풍요는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양심과 생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마다 강인호처럼 밥그릇이 아닌 양심을 선택한다면,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극단적 감정

공황: 해운대(2009) - 재난 앞에 드러나는 속마음

경고를 무시하는 심리

재난영화에는 재난이 닥쳐오고 있다는 경고를 무시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로 대중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급이다.


영화 <해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재난방지청 청장은 메가쓰나미가 닥쳐올 위험이 있다는 김휘 박사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다.


왜 사람들은 그의 타당한 경고를 무시했던 것일까? 김휘 박사가 시민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거듭 경고하던 그 무렵, 해운대에는 100만에 달하는 피서인파가 몰려와 있었고 외국인들이 참가하는 해운대 문화 엑스포까지 열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운대로 거대한 쓰나미가 올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할 경우, 문화 엑스포가 무산되고 부산시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방지청장은 혹시라도 쓰나미가 안 오면 어쩔 것인가? 행사를 취소시킨 그 뒷감당을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해운대 문화 엑스포의 책임자인 김휘 박사의 전 부인, 이유진이 남편의 말을 무시했던 것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재난방지청과는 달리 그녀에게는 다른 원인도 있었다. 김휘 박사와 이혼한 이유진은 남편에 대해 그다지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이유진이 김휘 박사의 경고를 무시했던 데에는 이렇게 전 남편에 대한 불신을 비롯한 여러 악감정이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재난영화에 꼭 등장하곤 하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원인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재난과 심리적 공황

재난이 갑자기 닥쳐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사회심리학의 공황 이론에 의하면, 이런 경우 군중은 더 큰 재앙을 초래하는 비이성적이고 부적응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영화 <해운대>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운대를 향해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하자 해변에 있던 피서객들은 일제히 도주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장면은 공황 이론이 묘사하고 있는 그대로다. 영화는 대부분의 피서객이 다른 사람들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쓰러진 사람을 짓밟고 넘어가면서 아비규환을 연출하는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해운대>에는 공황 상황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예컨대 최만식은 물에 떠내려가는 와중에 연인인 강연희의 목숨부터 구하려고 노력했으며, 급기야 자신이 물에 휩쓸려가게 되자 "연희야, 잘 살으래이"라고 외친다. 재난방지청 본부에 있던 김휘 박사는 물이 차오르는 호텔에 딸이 혼자 있다는 아내의 연락을 받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딸을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또한 건물 옥상에 있던 사람들을 헬기로 구조하던 군인들은 노약자와 어린이부터 우선적으로 구조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 군중, 즉 타인은 안중에 없고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하다가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해운대>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공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친밀하면 공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극장이나 공연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화재가 나면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부터 살려고 할 것이다. 반면에 어떤 집단 내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 친밀한 관계에 있다면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하기보다는 집단 전체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도 있다.


둘째, 집단이 조직화되어 있을 경우에도 공황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 가령 극장에서 불이 난 경우와 군대 막사에서 불이 난 경우에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크게 다르다. 전자는 대부분 공황이 발생하겠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군대의 지휘체계에 따라 군인들이 조직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많은 인명을 구해낼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전자의 집단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반면, 후자의 집단은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공황 이론은 사람들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없으며,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군중에게 해당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죽음 앞에 선 사람들

사람의 진면모는 죽음 앞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들 한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인 재난과 같은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그동안 감춰왔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뜻이리라. 이런 맥락에서 보면 건강한 마음과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재난 앞에서도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추한 행동을 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파도가 해운대를 강타한 다음, 호텔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김휘 박사 부부는 먼저 것보다 훨씬 더 큰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구조헬기에 간신히 딸을 태운 두 사람은 그 거대한 파도를 쳐다보고 나서 상대방에게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서로 힘껏 부둥켜안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앞에 두면 더 잘 살았더라면……, 더 잘해줬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후회가 깊을수록 죽음은 더 애달프고 두려워진다. 어쩌면 거대한 재난이나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은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더 가치 있게 살라고 충고해주는 소중한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치유

전이: 완득이(2011) -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의 위력

완벽하게 불쌍한 아이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학교로부터 정기적으로 수급품을 타 먹어야 하고, 아버지는 난쟁이에다 꼽추이며, 젖먹이 시절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었다면…. 누가 보더라도 참으로 불우한 환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완득이도 한때 갈등을 빚었던 담임선생님인 동주에게 스스로를 조롱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완득이처럼 비참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 완벽하게 불쌍한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될까?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불량 청소년이나 범죄자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 얼핏 보면 완득이 역시 그런 정해진 수순을 밟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완득이는 원천적으로 비뚤어질 수 없는 아이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불량 청소년은 완득이와는 달리 어른, 나아가 사회에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반해 어른들을 대하는 완득이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공손하고 우호적이다.


감정 전이의 위력

완득이가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도덕적이며, 성실하고 용감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완득이가 궁극적으로는 엇나갈 수 없는 이유, 착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완득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완득이가 백방으로 아버지를 찾아나서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가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자 평소의 무뚝뚝함을 벗어던지고는 온화하고 다정한 태도로 아들을 대한다. 그는 아들의 등에 업힌 채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뇐다. "멋있다, 우리 아들, 완득이, 우리 아들, 멋있다. 멋있다……."


이 장면은 이들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완득이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좋은 아들이었다.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건강했다는 것은 완득이가 화내지도 주눅 들지도 않으면서, 아버지나 어른들에게 항상 자기가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는 단지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아버지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은 자식은 어른들, 특히 남자 어른들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바로 감정 전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다른 남자 어른에게 무의식적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과거에 경찰관에게 큰 도움을 받아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길을 가다가 제복을 입은 다른 경찰관을 만나도 미소를 지어보이거나 일부러 다가가서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 특정한 경찰관에게 가졌던 좋은 감정이 다른 경찰들에게 옮겨가거나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완득이가 단지 아버지뿐 아니라 동주 선생, 킥 복싱 체육관 관장 등에게 일관성 있게 우호적이고 공손한 태도를 보인 것, 그들의 충고를 사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과의 화해

어느 날 저녁, 한 필리핀 여성이 집 문밖에서 완득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어머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천만 번 다짐했을지 몰라도, 애초부터 완득이는 어머니를 냉정하게 쫓아낼 만한 위인이 못 되었다.


제대로 된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 하나는 죄를 지은 당사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피해자의 너그러운 마음이다. 이런 점에서 사정이 어떠했든 17년 동안 아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담긴 어머니의 편지는 그녀가 용서를 받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준 셈이다.


완득이는 자기가 어머니와 화해한 데서 멈추지 않고 아버지까지 어머니와 화해시키려고 노력한다. 비록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다툼만 하고 헤어졌지만, 두 사람이 어떻게 아들의 갸륵한 마음을 모를 수 있을까? 그들은 다시 합치기로 한다.


이제 완득이는 외국인 어머니를, 완득이 어머니는 꼽추 남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적으로 수용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온전히 수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완득이는 행복하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그는 이제 킥 복싱 스파링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두드려 맞아 다운을 당해도 체육관 관장과 마주보며 즐겁게 웃을 줄 안다. 완득이네 가족들 역시 행복하다. 완득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좁은 옥탑방에 잔칫상을 차려놓고 동주 선생과 이웃들을 초대하여 덩실덩실 막춤을 추며 논다.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다운 사람들, 착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온 세상에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가혹한 현실의 무게, 그리고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가난에도 착하고 바르게 살고 있는 어른들의 보살핌이 있으면 완득이 같은 행복한 아이는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이는 심리학 측면에서 보아도 분명한 진실이다. 행복과 불행은 물질이나 돈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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