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

   
임수열
ǻ
지상사
   
13500
2011�� 10��



■ 책 소개
성공으로 비상하던 순간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수차례, 하지만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과 민첩한 게릴라정신,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저자는 언제나 다시일어섰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도전하고 기어이 성공하고야 마는 그에게 현재의 난관과 불확실한 미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며 현재진행형 삶을사는 저자 임수열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희망 가득한 삶의 이야기다. 우리네 삶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이삼십 대 청춘을수많은 우여곡절로 파란만장하게 보내며 터득한 삶을 대하는 법, 사랑하는 법, 쉽게 생각하는 법, 도전하는 법, 그리고 성공하는 법을 독자들과나누고자 한다.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망설이는 청춘들에게 그는 말한다. “쉽게 생각하자!” 그리고 “도전하자!”고.

■ 저자임수열
20대 중반 성공한 기업가를 꿈꾸며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20대 후반 야심차게 전국적인 에스테틱 프랜차이즈‘샬롱드보떼’를 기획하고 첫 점포 인테리어를 진행하던 중 선배의 사기로 하루아침에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시련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주워 든 잡지에서 영감을 얻어 노숙자신세에서 탈출, 재기를 위해 혼신을 다해 뛰기 시작했고, 단돈 500만 원으로 결혼정보회사 (주)듀비스를 창업했다. 이후 7개 언론사와 공동주최한 ‘7만 명 사랑 만들기’ 캠페인, 물물교환과 판매를 통한 수익금을 실직자들에게 전하는 ‘아나바나 미팅’, 일반인과 장애인을 연결시켜주는‘장애인 미팅’, 파격적인 ‘누드선언식(알몸미팅)’ 등 이색적인 이벤트를 통해 이슈메이커로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결혼정보회사 최초로벤처기업 인증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다. ‘알몸미팅’을 진행할 당시에는 그 파격으로 인해 국정원과 경찰의 조사까지 받았다. 이 당시 KBS‘뉴스투데이’와 ‘연예가중계’, MBC ‘도전 새로운 세상’, SBS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 등 각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에 연이어출연하며 노숙자 출신 기업가로 이름을 알리면서 주가를 올렸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코스닥 상장을 눈앞에 두고 부도로 넘어지고말았다. 두 번째 시련이었다. 

부도의 아픔도 잠시,다시 홍보마케팅회사인 (주)씽크플레이스를 창업하고 프랑스 미용 브랜드인 ‘르네휘테르’의 국내 론칭과, 주한미군사령부ㆍ한국복지재단과 협력하여불우한 어린이 1만 명에게 영어교재 및 원어민 강의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창업 2년 만에 서비스매출 70억을 달성하며 홍보마케팅 업계 1위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돈을 노린 4인조 강도에게 납치를 당했고, 생사의갈림길에서 극적으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으나 외상후스트레스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으로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세 번째 시련이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공허함과 절망감 뿐, 무력감이 몸과마음을 지배하고 삶의 덧없음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저자는 더 이상 이 땅에 미련이 없었다. 그렇게 배낭 하나 둘러메고 남미로 떠났다. 남미를정처 없이 떠돌다 이내 북미를 거쳐 유럽을 일주한 후 우리나라로 돌아와 다시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황금 같은 30대의 7년 세월을 정처없는 보헤미안으로 살았다. 그런데 전 세계를 떠돌며 보낸 세월 동안 서서히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었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와 해답을 찾을 수있었다. 
2010년 저자는 중소 벤처기업만을 돕는PR컨설팅회사인 (주)씽크이지를 창업하며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사업을 성공시킨 바 있는 저자는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지방 중소 화장품제조업체를 위해 시청과 은행 등 공공장소에 ‘사랑의 무인판매대’ 설치를 기획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이‘사랑의 무인판매대’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충주시와 (주)에네스티가 공동 주최하는 미술공모전을 기획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유명여류화가 최영란 씨의 유니세프 자선기금 마련 미술전시회를 기획하여 성황리에 마쳤다. 현재 씽크이지의 대표이자 리더십 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있다. 항상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과 민첩한 게릴라정신으로 성공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 저자는 각종 강연을 비롯해 블로그,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SNS를 통해서 자신의 경험과 인생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thinkeasy1 
<트위터&& :@limsooyeol 
<페이스북&& : http://www.facebook.com/thinkeasyman 

■ 차례
서문 : 이 책을 처음 만나는 당신에게임수열이
프롤로그 : 눈을 떠라!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제1막 게릴라 정신, 개천에서 용이 나는 법
탈출
품었노라, 부딪혔노라,얻었노라!
이슈메이커
그림은 크게 그리자
알몸미팅
결혼정보회사 벤처 1호 되다
우리 회사의 홍보모델이 되어주십시오
스토킹 안심보험
조바심, 낙관론, 그리고 실수의 이유
나는 사라져도 회사는 남기다

제2막 임수열이 만난 인연들
인연의 소중함
일과사랑, 사랑과 일
뻔뻔할 정도의 당당함
장례식장에서 웃으며 인사하다
거절은 설득의 시작
두 번째 사랑
절망과 희망에대한 이야기
즐거운 협상
나만의 브랜드
세상은 변한다
지푸라기를 놓다

제3막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
새로운시작
다시 날개를 펴다
모든 일은 거절로부터 시작
씽크플레이스 경영
평가에 연연하지 마라
기억을 잡아라
게릴라정신
성공한 CEO들을 면접보다
루머에 의한 우울증
2003~2010

제4막 Think Easy - 쉽게 생각하자
시작은 반이상
배짱과 열정의 하모니
시도가 창의를 낳는다
완벽한 계획은 없다
창의력이 샘솟게 하라
나이를 버려라. 버리지못하면 잊어라
운칠기삼을 뒤집어라
복권, 정전, 담배, 그리고 돈 봉투
창의성을 망가뜨리는 사회
차별화전략, 문화예술이답이다
하나를 보느라 열을 알지 못한다

에필로그 :행복이란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


서문 : 이 책을 처음 만나는 당신에게 임수열이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삶의 자락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졌고, 어느 때는 견딜 수 없이 평탄한 길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3개월 전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화가이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셨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고, 심지어 초등학교 입학식도 혼자 가야만 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을 나와 함께해준 것은 수많은 책이었다. 책 속의 등장인물이 되는 상상을 하는 그 시간이 내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때로는 멋진 영웅이 되고, 이따금 현실 속에서 만나지 못한 멋진 아버지를 꿈꿔보기도 했다. 아마 그 시절 많은 상상을 하던 습관이 나를 좀 더 창의적인 사람으로 훈련시킨 것 같다.


직장에 취직하고 몇 년간 마케팅이라는 것을 경험한 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에스테틱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첫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1호점을 계약하고 인테리어를 진행하던 중 사업자금을 빌려간 절친한 선배의 부도로 정신적 공황에 휩싸였고, 그 길로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주워 든 잡지 한 권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놓쳤던 희망의 끈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전 재산이던 낡은 자동차 한 대를 팔자 500만 원이 수중에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지만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 뚝심만으로 1997년 결혼정보회사 (주)듀비스를 창업했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국내 결혼정보회사 중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IMT2000 컨소시엄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창업 4년 만에 코스닥 상장을 눈앞에 두는 작은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사연 많은 30대 초반의 젊은 사업가 이야기는 매스컴을 통해 집중 조명되었고, 여러 기업과 대학으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으면서 인기 있는 성공학 강연자로도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연이은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투자처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 12월 끝내 사업체가 부도를 맞고 나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이를 악물고 2001년 (주)씽크플레이스라는 홍보마케팅회사를 창업했다. 전략적이고 도전적인 홍보마케팅은 기업들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창업 2년 만에 70억에 달하는 서비스 매출을 달성해 업계 1위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2년 12월 다시 날벼락 같은 시련이 찾아왔다. 돈을 노린 4인조 강도에게 납치되어 생사의 시련을 겪으면서 모든 꿈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끝 모를 무력감과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몇 번의 자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2003년 무작정 배낭 하나만 매고 남미의 브라질로 떠났다. 보헤미안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으로 기약 없는 방랑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간 남미에서 북미,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 전국을 발로 걸으며 방랑의 시간을 보냈다. 흘러가는 시간 동안 만나는 사람들과 낯선 거리의 풍경 등으로 마음은 서서히 치유되었다. 그저 참고 견디기만 하던 삶이 기다리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희망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방랑이 끝난 후 다시 전쟁 같은 삶의 터전인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노하우를 가지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PR컨설팅회사 (주)씽크이지를 세웠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이유로 좌절하고 실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리더십 강사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이제 나의 지난 경험을과 생각들,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의 순간들, 그리고 강의를 하며 느낀 시대의 필요들을 정리하여 한다. 인생의 시작점에 선 사람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제1막 게릴라 정신, 개천에서 용이 나는 법

그림은 크게 그리자

"나중에 고양이가 될지언정 호랑이를 생각하며 그려라."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한다. 그리고 그게 편하고 안전한 길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것은 실패했을 때의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거나 혹은 안전한 길을 가고자 하는 나약함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를 세워놓고 일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결심과 함께 모든 상황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면 기존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더 나은 방법, 더 창의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 대담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인류가 달에 가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컴퓨터로 전 세계를 연결하고……, 이 모두가 처음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창업 초기인 1998년은 IMF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해였다. 상황이 어려운 만큼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신뢰를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알려진 대기업과 제휴를 맺고 그 사실을 우리 회사 홍보물에 싣는다면, 우리 역시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단 두 명밖에 없는 직원들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업무제휴제안서를 만들어 삼성과 현대, LG, 롯데 같은 대기업의 홍보팀과 마케팅팀에 보내고, 업무제휴를 맺어 공동마케팅을 벌였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전화를 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반응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대로다. 사장 하나에 직원 둘인 회사가 대기업과 제휴를 맺자고 하니 어이없어 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고, 한 대기업의 마케팅 부서로 전화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덜커덕, 뚜뚜뚜뚜……." 돌아온 반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한국에는 많은 대기업이 남아 있고, 그들 중 어느 한 곳은 반드시 우리의 미래를 알아봐줄 거야! 힘이 빠지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스스로 격려하며 힘을 북돋았다. 계속해서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의 거절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획을 진행했다. 역시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기아자동차의 마케팅팀과 접촉이 된 것이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부도의 영향으로 회사의 존망이 불확실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기아자동차와 공동업무 협약을 하고 여러 행사들을 벌여나가고 싶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첫 행사로 기아 차 운전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드라이빙 파티 이벤트를 제안했다. 수십 대의 기아 차가 한데 뭉쳐서 주행하는 모습과 기아 차를 탄 남녀가 드라이브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설명하며, 기아자동차가 지금의 고난을 극복하고 건승하길 기원하는 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우리의 제안을 승낙했고, 업무제휴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이 사실을 언론에 발표하고 기아자동차 살리기 행사를 시작했다.


기아자동차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미혼 남녀들을 초청해 한 차에 두 명 혹은 네 명씩 동승하여 시 외곽의 준비된 장소까지 드라이브를 즐기고, 도착해서는 함께 모여서 게임도 하고 식사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미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기아자동차가 다시 불꽃처럼 일어나라는 의미로 준비한 폭죽을 하늘로 쏘며 기아자동차 파이팅!을 소리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참고로 이 행사에 참가하는 데에는 기아 차량을 소유하고 있거나 앞으로 구매하겠다는 사람으로만 자격 요건을 제한했다.


행사를 마친 후 우리 회사의 인지도와 신뢰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얼마 후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로 인수되었고, 기아자동차는 곧 안정을 되찾고 더욱 탄탄한 회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직원 둘밖에 없는 회사가 대한민국 누구나 아는 대기업과 제휴를 맺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는 달성되었으며, 기아자동차와 제휴를 맺은 우리의 광고 효과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계획이라며 자포자기했던 두 명의 직원도 이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간절히 원하고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행동할 때 그 소망은 현실이 된다.



제2막 임수열이 만난 인연들

인연의 소중함

이제까지 사업을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나의 미래를 믿어주고 함께한 사람들도 있었고, 독특한 인연으로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된 동료들도 있었다. 때때로 그들 중 몇몇이 떠오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나는 동료들을 선택할 때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개성 강한 사람을 선호해왔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한 회사 안에서 융화하는 데 불협화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려는 욕심이 많기 때문에 일에 대한 몰입도가 뛰어나고 업무적인 면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편하게 대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이일수록 오히려 서로 존중하여 일이 더욱 순조롭게 진행된다.


한편으로 나는 여러 형태로 만나는 사람들 중에 인재라고 생각되면 어떻게 해서든 함께 일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프러포즈를 했다. 그래서 나와 함께한 직원들은 저마다 사연을 하나씩 안고 있다. 한 번은 모 신문사에서 광고를 하라는 여성 영업사원의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굉장히 힘 있고 맑았다. 내가 거듭 거절을 해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는 직접 만나 자료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 대한 호감이 생긴 나는 제안을 승낙했고, 며칠 후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이십대 중후반의 그녀는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적극적인 성격에 자신의 주장이 분명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인재라고 생각했고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도리어 나의 꿈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꿈을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는 동료로 당신이 매우 탐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녀도 처음에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 후 몇 번 더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녀는 그전의 직장보다 급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우리 회사 영업파트의 핵심멤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한 월간 잡지사의 편집장이 있었다. 그와는 업무제휴 건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이디어와 감각, 기획력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속해서 그에게 기회가 된다면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비쳤고, 어떻게 하면 당신의 마음을 얻어서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그 역시 나의 열정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며, 지금의 잡지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합류하겠다고 했다. 사실 다른 유명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옮기기로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나에게 와준 것이다. 결국 우리 회사의 기획 책임자로 회사가 성장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들과 일하려고 노력하라는 말을 나는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좋은 인연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들 가운데에서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체면 불구하고 함께 일하고 싶으니 부족한 나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능한 인재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은 돈을 아주 많이 주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능력을 분명히 인정하며 확실한 비전을 보여주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후자였다.


물론 인연이라는 게 비단 함께 일한 동료에게만 해당되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 사람도 있고,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도 많았다. 또 긍정적인 깨달음을 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결국 그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인생 전체를 두고 본다면, 두말 할 것 없이 모든 인연은 나를 성장시켰다.



제3막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

새로운 시작

2001년이 밝았다. 나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내 비전을 알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한 번 실패한 나에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선뜻 새로운 기회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거절에 익숙해 있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나갔다. 그러던 중 나를 지켜보던 지인 한 분이 자신이 아는 외국계 회사가 있는데 홍보마케팅을 시도하려고 한다며 그 일을 맡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듀비스를 키운 것도 홍보마케팅이었지만, 사실 그 분야의 일을 해볼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밖에 나갈 차비마저 궁한 상태였기 때문에 잠깐 그 일을 맡아서 경비라도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르네휘테르라는 헤어 관련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프랑스 기업이었는데,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다. 프랑스 본토에서는 로레알의 경쟁자로 유명한 회사였지만, 당시 한국에서의 상황은 참담했다. 론칭한 지 1년이 됐지만, 시외 변두리 미용실 몇 군데에 외상으로 입점한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국내에서 경쟁회사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유명 미용실의 진입 장벽은 높았다. 그렇게 1년을 보냈으니 대부분의 직원들은 무기력감과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먼저 회사의 전체 흐름을 어떻게 하면 바꿔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럴 때 마침 프랑스 본사의 두피케어리스트가 교육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통해 내부 직원들의 사기도 올리고 시장에 르네휘테르라는 브랜드의 존재도 알려야겠다.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그 자리에 한국 미용업계 리더들도 초대해 르네휘테르라는 브랜드의 고급스럽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경쟁심을 유발시켜서 유명 미용실마다 먼저 입점하게 만드는 거야!


나는 곧바로 박준 미장의 박준 원장, 이철 헤어커커의 이철 원장, 유지승 헤어살롱의 유지승 원장, 미용사협회 회장단 등 한국 미용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리더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하지만 당시 직원들은 내 기획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연락을 돌리고 미팅을 갖는 모든 일을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초대장을 발송하고 며칠 후 직접 방문해서 기자간담회에 대해 설명을 했다.


"르네휘테르가 한국에 론칭되면서 갖는 첫 기자간담회입니다. 한국 미용계의 리더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OOO 원장님 같은 분이 빠지시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다시 한 번 초대 말씀 드리려고 찾아 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초대장을 발송한 모든 미용실에 찾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용인협회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미용인협회죠? 회장님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지금 자리에 안 계시는데요. 메모를 남겨 드리겠습니다."

"저는 르네휘테르의 임수열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 메모보다는 회장님께 직접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내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자 비서는 머뭇거리다가 그냥 회장님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역시 머뭇거리면서 하는 부탁은 거절당하지만, 당당하게 하는 부탁은 거절하기 어렵다. 휴대폰 번호를 받아 적고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OOO 회장님이십니까? 저는 르네휘테르의 홍보책임자 임수열입니다. 일주일 후에 ㅁㅁ호텔에서 기자들과 대한민국 미용업계의 유명 원장님들을 모시고 간담회를 열 예정입니다. 이런 자리에 회장님이 빠지시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래요? 음, 연락 줘서 감사합니다. 꼭 참석하도록 하죠."


대답을 듣는 순간 일이 잘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간담회 당일, 나는 기대감과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초조하게 호텔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명 신문사 기자들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고, 초대한 모든 유명 헤어숍 원장들과 미용인협회 회장, 부회장까지 하나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의 기자 간담회가 졸지에 한국 미용업계 최고의 리더들이 모인 자리가 된 것이다. 설마 되겠어? 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방관하던 직원들은 그 상황에 놀라며 한편으로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바쁘다고, 시간 없다고 하던 분들이 모두 눈앞에 모인 것이다.


기자간담회는 가벼운 식사를 시작으로 세계 미용업계 흐름과 르네휘테르 제품과 사용방법 등을 나누며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참석한 유명 헤어숍의 본점에 선금을 받고 입점하는 좋은 조건으로 전부 계약하게 되었다. 이 일로 회사는 유명 브랜드의 포지션을 찾게 되었고, 향후 적극적인 영업전략을 펼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더구나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비전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했고, 내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나는 홍보마케팅회사 (주)씽크플레이스를 설립해 다른 기업들의 홍보전략을 기획해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고, 창업 2년 만에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매출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제4막 Think Easy - 쉽게 생각하자

시작은 반 이상

사실 무엇인가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시작할 때의 그 일의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먼저 따른다. 또한 일단 시작을 했으며 책임소재도 분명해지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부담을 이겨내고 하는 시작, 그래서 나는 시작은 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 일본의 삼국지라는 『대망』을 읽었다. 혼란스러운 일본의 전국시대에 통일을 이끌었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이 얽힌 이 소설을 보며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난 세 명의 등장 인물 중 오다 노부나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울지 않는 새는 목을 쳐라!"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유명한 말이다. 대단한 행동파였기 때문에 그는 나머지 두 사람을 부하로 두고 일본 최초로 통일의 기틀을 놓을 수 있었다. 책에 나온 그의 일화 중에 유독 흥미를 끄는 내용이 있다. 그는 전투 후 논공행상을 하면서 적장을 죽인 병사가 아니라 제일 먼저 창을 들고 적진을 향해 돌격한 병사에게 가장 큰 포상을 내렸다. 그는 무엇인가 먼저 시도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분명하게 인정해주었다. 그 결과로 그의 부하들은 전투만 벌어지면 서로 앞 다투어 적진을 향해 돌격했고, 그의 군대는 가장 용맹하고 무서운 군대가 될 수 있었다.


시작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막연한 두려움은 가만 두면 점점 커져 더욱 자신을 부정적인 생각과 상황으로 내몬다. 그러면 결국 스스로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의 울부짖음에 동물들은 공포심으로 옴짝달싹 못 하고 그대로 먹잇감이 된다고 한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가슴 속에서 두려움의 울부짖음이 들릴 것이다. 두려움은 시작된 초기에 그 싹을 잘라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상에 빠져 있으면 공상은 두려움을 더욱 키워 마음을 잡아먹는다. 2000년에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의 위기에 몰릴 때 나는 이것을 실제 경험했다.


언론에는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알려졌는데, 부도가 나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지? 직원들은 또 어떻게 봐? 정말 부도가 난다면 난 그냥 죽어야겠다. 공상이 커지며 죽음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부도가 나니 괴롭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굳게 마음먹고 견딜 수 있었다.


어떠한 도전이든지 시작에는 분명히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상대하는 자세다. 두려움에 맞설 때 우리는 가진 능력을 모두 끌어낼 수 있다. 또한 막상 용기를 내 두려움의 실체를 보고 나면 대부분 걱정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말이 두려움을 부인하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두려움은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중요한 것은 그 두려움과 맞서는 자세다.


인생, 사랑, 일……, 무엇이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고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혹시 더 잘못되면 어쩌나?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다면,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명쾌하게 "나는 그렇지 않아." 하고 말할 수 없다면 이미 두려움의 늪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시도한다는 것, 도전한다는 것은 분명히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 그 자체가 결코 부족함의 증거는 아니다. 도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검"이라고 나와 있다. 무슨 일이든 피하지 않고 두려움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 도전하는 용기가 준비되어 있다면 인생은 긍정적인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살아오면서 참 많은 것들에 도전해왔다. 때때로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용기를 내서 잘 극복해왔다. 처음 500만 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떠오르는 걱정과 두려움들을 그대로 두었다면 아마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인가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처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을 던져버리고 가볍게, 그리고 쉽게 생각하려고 해야 한다. 결과가 좋든 그렇지 않든 시도해봤다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우리는 값진 경험을 한 것이다. 또한 그 경험은 우리를 분명히 성장시켜 준다.


"기회는 머리카락과 같아서 앞에만 있고 뒤에는 없기 때문에 지나고 나면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가 않는다."


나는 이 말에 확실히 동감한다. 문제는 기회가 우리에게 그 정체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다가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무엇인가 시도를 함으로써 기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기회를 잡거나 기회를 잡기 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작은 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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