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람들은 말의 8할이 부정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역자: 정선희)
ǻ
스마트비즈니스
   
11800
2010�� 05��



>& ■ 책 소개
부정보다는 긍정이,비난보다는 칭찬의 힘이 세다!

& 베스트셀러 작가, 알베로니교수의 『실패한 사람들은 말의 8할이 부정이다』는 전작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에서 강조한 ‘칭찬’보다는 사람을 가혹하게 실패로내모는 ‘부정’이란 단어에 포커스를 두었다. 실패한 사람들을 공통으로 지배하고 있는 부정이란 심리를 이겨내기 위한 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이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인간의 행동 이면에 숨어있는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알베로니의 글은 타성에 젖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 저자프란체스코 알베로니(Francesco Alberoni)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다. 1929년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에서태어났다. 파비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정신분석학과 통계학,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1964년부터 밀라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 교수로재직했으며, 1986년부터는 밀라노의 이울름대학교에 재직하면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총장을 지냈다. 


■ 역자 정선희
전문번역가. 역서로는 『왜 이 사람 주위엔 사람이 몰릴까』『광기와 우연의 역사』『제2차 세계 대공황이 온다』등 다수가 있다.

■ 차례
옮긴이의글 - 부정보다는 긍정이, 비난보다는 칭찬의 힘이 세다!

& &STEP 1 어떻게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볼까?
피곤함이 아닌 힘을 주는 사람이되라
화해를 나약함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그때그때 기분에 좌우되지 마라
언제나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속셈
남을 위험에빠뜨리는 비겁자들
겉은 웃지만 속에는 칼을 품은 사람들
순수한 마음으로 큰일을 꿈꾸는 사람들
아주 사소한 것들에 눈을돌려라
무절제함은 모든 것을 들통나게 한다
무엇이든 단순화시키는 경향에 대해서
은혜를 선물로 착각하지 마라
약한 모습은악을 부른다

STEP 2 어떻게 미움 없이세상을 이겨낼까?
실패, 이겨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비겁한 이기주의자 
똑같이 서 있어도, 의자가 아니라 자전거라 되라
권력의 맛에 빠지지 마라
친구와 적이 있는 곳에 영광이있다?
악의가 없는 경쟁에서의 차이
나만의 장소, 나만의 일이 있다
인생에서 당신은 늘 리더이다
당신의 비상을 도와주는것들과 만나라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경시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킨다
마음의 지주가 되는 위대한인격
불가능에 도전하는 질문을 계속하라

& &STEP 3 어떻게 시기 없이 인생을 가꿀까?
남이 안 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질투와시기를 구별하라
욕심 없이 베풀고 있는가?
악은 생각보다 저지르기 쉽다
상대방은 허점투성이! 자신은 완벽주의자?
몸은늙어도, 비상하려는 꿈은 버리지 마라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듯 신중하게 사람을 골라라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울 수는 없다
왜 중요한자리엔 무능한 사람이 앉아 있을까?
‘언젠가’ 하겠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있지않은가?
누가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인가?
편견을 풀면 자유로워진다

&STEP 4 어떻게 상처 없이 사랑을 이룰까?
사랑은 또 하나의 우주와만나는 것
인생길을 열어줄 진정한 사랑을 구하라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하라
인생을 설계하듯 사랑도 설계하라
사랑이 깨지면본성이 드러난다
좋은 사람 찾기,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나가는 손님이 되지 마라
매일매일사랑하고 있음을 느껴라
자식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마라




실패한 사람은 말의 8할이 부정이다


STEP 1 어떻게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볼까?

피곤함이 아닌 힘을 주는 사람이 되라

가까이 하면 상대에게 피곤함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반면 힘이 솟게 해주는 사람도 있다. 피곤함을 주는 사람과 같이 있거나 같이 일을 하면 완전히 지쳐 질려 버린다. 반면 활기를 주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헤어질 때는 그전보다 훨씬 힘이 솟고 생기가 돈다.


때로는 어떤 장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서 앉으면 피곤해지는 그런 장소가 있다. 좁거나 어두침침해서가 아니다. 밝고 현대적인 환경이라도 마음이 침울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건물이 낡아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도 자신감이 솟아나게 하는 곳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사람과 나누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소 역시 과거에 있었던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개개인의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물론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우리가 지쳐 있으면 걱정해주고, 고민이 있으면 기꺼이 얘기를 들어준다.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풀어놓을 수 없는 경계심과 주의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놓게 해준다. 도움도 구하고 약한 모습도 안심하고 속속들이 드러낼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해 상처 입히거나 짓밟거나 이용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와 고민을 나누고 싶어한다.


그런데 친구가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이나 동료, 또는 처음 본 사람 중에도 기분을 가볍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혈기왕성한데다 친절하기까지 하다. 또한 우리의 자질을 인정해주고, 하고 있는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며, 내면의 성장을 도와주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린 듯 자유로운 기분에 젖는다. 그 반대로 친절한 태도 이면에 시기심이나 적의, 탐욕을 숨기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피곤해진다. 눈앞에 두꺼운 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의 기분을 직감하는 능력이 있다. 색깔이나 소리를 분간하는 것처럼 남의 마음속을 볼 수 있다. 웃고 있으면 기쁘고, 훔쳐보는 눈초리면 경계하고, 신이 나 있으면 마음이 들뜨고, 심술을 부리면 미워하고,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 가볍게 본다. 물건을 움켜쥐고 있으면 탐욕스럽게 생각하고, 욕설을 퍼부으면 싫어하고 비관적인 말을 하면 이쪽의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상대가 거짓말을 해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속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관대한 사람은 남을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상대가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한다. 이 경우 우리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든 일을 해나간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 깊이 있는 감정적 지성은 끊임없이 "믿지마! 믿지마!"를 외친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무의식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다. 우리가 거북한 존재와 같이 있으면 지쳐 버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장소가 거북한 것은 그런 유형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장소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라 인적 환경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STEP 2 어떻게 미움 없이 세상을 이겨낼까?

실패, 이겨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

인생을 살다보면 세운 목표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뛰어난 재능이 있는 소년이 있다. 소년의 꿈은 과학자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부모의 죽음으로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쓴맛을 다시며 생각한다. 이제 모든 게 끝이다. 과학도 음악이나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없어지니까.


기업인의 경우 중소기업에서 시작하여 평생을 걸고 그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워놨는데, 느닷없는 경제위기에 발목을 잡히거나 외국 기업의 참여로 쓰러지기도 한다.


신문사의 주간이라면 그의 방침에 따라 성공을 거두어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주가 바뀌고, 신문의 명칭도 바뀌고, 편집 방침도, 정치적 신조도 전혀 딴판이 되어 버려 하루아침에 퇴물 취급을 받는다. 또는 한 여자가 가정과 자식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났다.


예를 든 것은 불과 네 가지뿐이지만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그것이 결정적이고 복구 불가능한 실패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저항하고 싸워봤자 어쩔 수가 없다. 실의를 느낄 뿐 아니라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완전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장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마음도 잃어버리게 된다. 우울하고 암담한 나머지 자살까지도 생각한다.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금융업의 토대를 구축했던 라울 가르디니도 그 중 한 사람으로, 계획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체포당할 것을 감지하고 자살했다. 사랑이 깨지자 자살하는 남녀도 수없이 많다. 10대나 20대는 학교 성적이 나쁘거나, 연인에게 차이는 등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살아갈 힘을 잃기도 한다.


이러한 절망적인 좌절을 앞에 두고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이 절망 속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자신이라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몸도 마음도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으면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그런데 어떠한 좌절이나 실패도 우리의 모든 것에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이나, 연애, 꿈 등의 단편적인 부분의 좌절일 뿐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는 자각하지 못할지라도 실패는 계획이나 희망 이상의 존재이다.


성적이 나빠 절망한 소년도 위기를 극복해낸 후에는 소녀에게 입맞춤하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할지 모른다. 희사를 잃은 기업가도 그때까지 몰랐던 자신의 가능성이나 흥미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이보다 더 비참하게 파국을 맞아도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구원의 길이 열린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실패 그 자체이다. 이것은 무섭게도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심연의 바닥에서 자아가 해체되고 그때까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생각하며 온 힘을 기울여 왔던 일의 굴레에서 해방된다.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모든 걸 잃은 상태가 재생의 길을 열어준다. 신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해방되어 홀가분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적성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STEP 3 어떻게 시기 없이 인생을 가꿀까?

욕심 없이 베풀고 있는가?

남에게 끊임없이 베푸는 사람이 있다. 반면 늘 남에게 받기만 하려는 사람도 있다. 베푸는 사람은 자신의 것을 다 주고도 아직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남을 배려하고 같이 걱정해주며 그들의 요구와 성급한 부탁을 다 들어주고서도 아직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자기 일에 얽매어 있으면 마치 자신이 이기주의자가 된 것처럼 여겨진다. 결국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끝이 없는 남의 욕구를 다 들어주면서 일생을 보낸다.


한편 받기만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다. 남들은 모두 이기주의자처럼 자기 일에만 전념하고 자신의 사정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이런 유형은 자신의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자신은 늘 부당한 대우만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에게 끊임없이 받으려고만 한다. 남이 자신에게 무언가 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의 도움조차 만족스럽지 못한다. 받는 데만 익숙해져 고마움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는다.


위의 두 유형은 아주 극단적인 부류다. 그러나 누구든 인생의 한 시기에는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한다. 아이는 클 때까지 부모에게 받기만 한다. 아이는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이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습득하는 시기에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받기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양육할 의무가 있다. 성장하는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걱정하고 때로는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을 때도 있다. 충분히 돌보지 못할 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의지한다면 문제다. 부모가 나이를 먹고 병이 들어도 자신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받기만 하는 입장에서 졸업할 수 없다. 부모 또한 죽을 때까지 베풀기만 하는 입장을 면할 수 없다. 아이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며 책임을 다하지 못했노라고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이 나빴다고 스스로 꾸짖는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같이 사는 자식, 특히 딸을 혹사시키는 부모도 있다. 언제나 딸의 도움이 필요하고 조금만 소원해도 기분 상해하며 집요하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이 경우 베푸는 입장에 놓인 딸은 자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연인관계에서도 상대에게 끊임없이 베풀기만을 바라는 남자나 여자가 있다. 흔히 일하는 남자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내를 은근히 깔보며, 쓰기만 할 뿐 벌지 않는다고 무시한다. 한편 권리를 갈취 당했다고 믿는 여자도 있다. 자신은 능력도 없으면서 모든 짐을 남자에게 떠넘기려 한다.


이데올로기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과 상반되는 관계에 놓이면 베풀기만을 강요한다. 칼뱅주의자인 자본가들은 부와 성공을 신에게서 받은 선물로 여긴다. 미국인은 부자를 숭배하고 가난한 자를 경멸한다. 이런 시각은 가난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칼뱅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마르크스주의 신봉자들에게 끝없는 권리의식을 심어주었다. 자본가가 무엇을 하든, 부가 어떻게 생산되고 분배되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자는 단지 사회에 부를 돌려주어야 할 입장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들도 여자는 남자에게 인간성을 빼앗겼다고 항의한다. 그러므로 요구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고 한다.


요구할 권리, 베푸는 게 당연하다고 상대를 몰아넣는 권리는 기득권자의 논리일 뿐이다. 영원히 베풀기만 하는 입장과 영원히 받기만 하는 입장에 놓인 관계에서는 힘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베풀기만 하는 입장과 받기만 하는 입장은 일종의 권력 구조를 만들어낸다. 즉, 베풀기만 하는 입장을 받기만 하는 입장의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경제, 이데올로기,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협박하고 억압하는 우위성과 지배성에 눈을 돌리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본 경우에는 베푸는 입장과 받기만 하는 입장 중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베푸는 입장이 옳다. 이들은 모든 것을 주고도 아직 모자라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베풂의 의미를 몸으로 보여준 마더 테레사 수녀를 보라. 그가 받으려고 했다면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을 실천할 때, 더 많은 사랑의 씨앗들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반면 자신의 권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남이 자신에게 성심성의껏 대해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야비한 이기주의자이다. 공주병, 왕자병에 빠져 있는 젊은 세대들은 받는 데에만 익숙해 있다. 남들에게 지나친 칭찬과 사랑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세상일에 중심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노고를 잘 모른다. 이들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는 무심하다.


인생이란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의 삶도 소중함을 배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베풀어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베풂이란 계산해보아 손해가 없을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늘 자신을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반대로 자신 이외에는 모두 욕심많은 이기주의자라고 탄식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이기주의자이다. 윤리는 권력과 경제와 지배의 법칙을 뒤엎는다. 만약 남을 생각하는 넓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것에는 척도가 없기 때문에 흡족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 이만큼 해주었으니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주기만 한다. 마음이 관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더 잘 해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곤란하게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중간은 없다. 마음 넓은 사람이 그동안 너무 많이 줬으니 이제는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관대한 마음을 잃고 받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연인 사이에도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주었나, 사랑해서 얻은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상대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받기만을 원하게 된 것이다. 관대함과 이기주의, 사심없는 마음과 탐욕은 공존할 수 없다. 관대함과 이기적인 마음이 공존하면 이기주의자이고, 사심 없는 마음과 탐욕을 동시에 품고 있다면 욕심쟁이다.


이데올로기와 경제, 권력의 측면에서 볼 때의 승자는 받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승자는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다. 그리고 남에게 잘 베푸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에 대한 긍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베풀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일 경우가 많다.



STEP 4 어떻게 상처 없이 사랑을 이룰까?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하라

나는 오랜 세월 연애, 연애와 비슷한 것, 상사병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랑을 연구해왔다.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성숙기의 사랑이라는 사랑의 발전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노년기의 사랑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았으나 수집한 자료를 살펴보면 연애의 유형은 일정한 연령대를 넘어서도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7, 8살부터 시작되어 80살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청년층이나 중년층은 아이들이 서로 좋아하는 모습에는 소리 죽여 웃지만 노인의 사랑에는 눈살을 찌푸린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은 따지고 보면 웃긴 일이다. 어린아이는 사랑을 해도 마음은 아직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어서 연인을 만들거나 성적관계를 맺지 않는다. 노인도 자신의 몸에 자신을 가질 수 없는데다 세상의 비난이나 비웃음을 받는 게 무서워 첫발을 내딛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어느 세대건 연애 감정은 똑같다. 흥분, 전율, 희망, 기대, 절박한 욕망, 만날 때의 이를 데 없는 행복감, 쓰디쓴 실망까지. 인간 마음의 기본적인 특성은 연령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다. 다만 육체적, 사회적인 가능성이 변화될 뿐이다.


흔히들 노인은 몸이 구부정하니까 정신도 구부정하고 움츠러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예전과 다름없이 기억력도 좋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도, 꿈도, 희망도 여전하다. 신체의 기능 저하는 물리적인 장애를 낳을 뿐이다. 노년기가 되면 자아가 변화되는 게 아니라 말을 안 듣는 사이에 신체에 가두어진 정신의 부자유를 느낄 뿐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이것을 더욱 고통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여자의 외모에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여자는 어릴 적부터 사람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배워 왔다. 13살 소녀가 50살의 바스코 로시(이탈리아의 팝 싱어)에게 열을 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순을 넘은 로버트 레드포드나 로버트 드니로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스무 살 처녀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요즘 지나 롤로브리지다(<노틀담의 꼽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피노키오의 모험>에 출연한 배우)나 브리지트 바르도(<경멸>, <샬라코>, <화려한 유혹>에 출연한 배우)에게 열을 올리는 사내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욕망이라는 것은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리가 없는 사람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잊지 못하고, 팔을 잃은 사람도 껴안고 싶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몸이 불편해져도 사랑이나 시기심, 질투, 공포는 달라지지 않는다.


감금되어 있는 사람은 해방을 꿈꾸는 법이다. 노인이란 타인의 몸에 감금된 젊은이다. 그래서 파우스트처럼 젊음을 되찾기를 끝없이 갈망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보기 흉하고, 미숙했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꿈도 욕구도, 쌓아 올린 지식도 갖춘 현재의 자기 자신을 전혀 잃지 않고 젊음만을 되찾고 싶다는 바람이다. 몸만 힘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렇듯 모두가 다시 태어남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욕구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애는 단순히 사람에게 미치는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다시 태어남과 삶에 대한 각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면 주위를 보는 눈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되어 모든 것이 신비롭게만 느껴진다. 인생을 누리고자 하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기쁨이 용솟음친다. 그 마음은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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