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와인에서 경영을 얻다

   
진희정
ǻ
마젤란
   
12000
2007�� 10��



>■ 책 소개
와인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비즈니스맨과CEO들을 위해, 와인 마니아로 알려진 우리시대 리더 15인의 짧은 와인 강의를 실었다. 동시에 "와인"으로 대변되는 비즈니스맨들의 고민과성공에 대한 그들의 경험담과 조언도 전한다. 


지금은 와인에 대해서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매니아인 15인의 명사들도 처음에는 와인 때문에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국내 와인비즈니스를 정착시키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이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어렵지 않게 와인을 공부하고 즐기는 법, 와인을 선택하는 법 등을 담았다. 


더불어 책은 성공한 15인의 히든카드를 밝힌다. 별책부록인 와인 가이드 "How ToWine"에는 책에 담지 못한 와인 비즈니스의 실전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전 세계 와이너리는 물론 포도 품종, 와인에 대한 매너 등이 알기쉽게 Q&A로 설명되어 있으며, 부록의 저자인 은대환 소믈리에가 비즈니스에 추천하는 와인도 소개한다.


 저자 진희정
한양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KBS의 방송작가로 일했다. 이후 "한경자동차신문"을 거쳐, "오토타임즈"에서 자동차 전문 객원기자로, 한겨레 "이코노미21"의 객원기자로일했으며, 2007년 현재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우리 아이 인터넷에서 이렇게 떴어요』『성공한 CEO 12인의 아침식사를 활용한인맥관리』『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배우는 성공한 사람들의 7개의 습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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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저자의 말_인생과 와인에 담긴 히든카드


척박한 포도밭 주인처럼 경영하라
먼저 불타지 않으면남을 불태울 수 없다 ―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사장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아라 ―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사장
‘오늘’은 인생의 가장 큰 선물 ― 김영철 가야미디어 회장


‘도전’이라는 인생의 코르크를 열어라
극복하지 못할어려움은 없다 ―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삶은 늘 ‘선택’과 ‘결정’의 연속 ― 구삼열 외교통상부 문화협력대사
모든 일에는 다 의미가있다 ― 최동주 현대아이파크몰 사장


와인 생산자처럼 창의적으로 생각하라
인생에서 가장중요한 것은 ‘경험’ ―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
인생에는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 박효남 힐튼 호텔 총주방장
행복하려면 먼저 희생하라 ―지성하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


신대륙 와인들처럼 멘토를 찾아라
당신은 지금 최선을다했는가? ― 백롱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큰 부자가 행복한 진짜 이유 ― 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변화를 두려워하는사람에게는 발전이 없다 ― 박상환 하나투어 사장


와인처럼 때로는 삶의 여유를 가져라
언제 그만둘지결정하라 ― 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
항상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라 ― 김원배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황순하 GE코리아 전무




CEO, 와인에서 경영을 얻다


Management 척박한 포도밭 주인처럼 경영하라

‘오늘’은 인생의 가장 큰 선물_ 김영철 가야미디어 회장

※ 김영철 회장은?

미국 캔자스대학교를 졸업한 뒤 1969년 괌에 진출하여 자동차 사업을 벌였다. 1980년 영국의 팬더 자동차를 인수, 우리나라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시장에 스포츠카를 생산, 판매하여 명성을 얻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동탑산업 훈장을 받았다. 1988년 자동차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1990년 (주)가야미디어를 설립하였다. 「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의 발행인이다.


와인, 사람들과의 대화를 부른다

김영철 회장을 떠올리면 ‘자유인’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열정적으로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정장에 넥타이 대신 젊은 감각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와 수염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다. 그런 김 회장에게 와인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누군가가 와인을 권한다면 ‘할 말이 있다’는 표시_

“와인 한잔할래?”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은 “나, 뭔가 할 말 있어”라는 이야기의 다른 표현이다. 또한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와인을 함께 마시면서 “싸다” “비싸다” 또는 “누가 준 것이다”등 다양한 말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을 함께한 와인의 추억_

그가 제대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캔자스대학교로 유학을 갔을 때다. 당시 미국 역시 와인 붐이 일기 전이었기 때문에, 특히 농부가 많은 캔자스 주 사람들은 맥주나 버번위스키를 즐겨 마셨다. 대학가에서도 맥주가 주를 이뤘고, 간혹 버번 종류의 위스키에 콜라를 탄 칵테일을 마시는 부유한 학생들이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살라_

“내일이 끝없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에는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았습니다. 오늘 힘들어도 내일을 위해 참자, 오늘 못 먹고 못 입어도 내일을 위해 아끼고 참자, 오늘 노력하면 내일이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인생을 돌아보니 내 생각이 틀렸더군요. ‘오늘’을 재밌게 보내야 ‘내일’에는 ‘어제’가 좋았다고 말할 것이고,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오늘’을 즐겁게 살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잔에 따라 마실 ‘제때’를 놓치면 아낀 보람이 없으니까요.” 김 회장은 그렇기 때문에 와인을 마실 때에도 그 순간을 즐긴다고 한다.


팬더 자동차에 꿈을 싣고

김회장이 스위스 여성과 결혼하고 두 아이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어엿한 기업인이 되고 나서 생활에 여유가 생겨 겨울 휴가에 가족과 함께 스위스의 스키장에 간 적이 있었다. 묵게 된 호텔은 손님을 다섯 팀만 받는 작은 곳이었다. 저녁식사 때 방값에 포함된 와인을 주문했다. 아내가 시킨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을 가져온 웨이터가 코냑 잔처럼 아주 불룩하고 큰 잔에  2~3cm정도 높이로 와인을 따르고 마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내 돈으로 산 와인인데 너무 인색하게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 웨이터에게 좀 더 따르라고 했다. 그러자 웨이터는 “더 이상 부으면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작아지니까 그만큼만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순간 그는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와인을 마시며 즐기는 의식 또는 방법 즉, 리추얼Ritual의 낭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지를 이은 자동차 사업_

미국 유학을 마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와 함께 버스제조회사를 차렸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으며 자라왔던 일을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때 잘 나갈 것 같았던 사업은 1년 만에 도산하고 말았다. 제품의 품질과 상관없이 차가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인생의 첫 번째 실패였다. 하지만 패배감에 빠져 있기에는 아직 젊었다. 김 회장은 버스 사업의 좌절을 딛고 1972년 괌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렌터카 회사를 세워 다시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미 허츠Herts같은 세계적인 회사들이 선발주자로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서비스와 철저한 고객 관리로 10여 년 만에 괌 최대의 렌터카 회사를 일굴 수 있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스포츠가 사업_

1980년 그는 영국의 어느 시골마을을 지나다 도랑에 처박혀 있는 차 한 대를 발견했다. 팬더panther라는 회사에서 만든 ‘리마Lima라는 이름의 작고 예쁜 클래식 스포츠카였다. 한눈에 반한 그 차를 사려고 중고차 가게에 갔더니, 주인이 “이 차 몇 대 가격이면 아예 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콧대 높은 영국인들에게서 혈혈단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동양남자가 선뜻 회사를 넘겨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의 김 회장은 자동차 제조 경험도 없었고, 영국에서 일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김 회장의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에 마음을 움직였다. 채권단은 31만 파운드(약 7억 원)에 회사를 그에게 양도했다.


*작고 예쁜 차, 칼리스타_

김 회장은 자동차의 연간 생산능력을 2년 만에 100대에서 800대까지 늘렸다. 24명이던 직원은 130여명까지 늘어났다. 영국과 미국에 일부 수출하던 리마 스포츠카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자동차 이름을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는 뜻의 ‘칼리스타kallista로 바꿨다. 한때 휘청했던 팬더는 이제 기사회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8년 동안 그는 팬더 자동차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쌍용자동차로부터 “팬더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고민 끝에 그는 팬더를 쌍용에 넘겼다. 인수할 회사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 회사였기 때문에 쾌히 승낙한 것이다. 어쨌든 회사를 쌍용에 매각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쉬면서 글을 쓰는 것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때 쓴 글들이 그에게 잡지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생의 세 번째 기회를 잡은 것이다.


틀에 박힌 것에서 벗어나라

김 회장은 프랑스 패션 잡지인 「마리 끌레르Marie Claire」를 1993년 국내에 창간하면서 잡지업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마리 끌레르 본사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도 와인을 마실 일이 많았다. 프랑스인들이니 와인에 대해서는 정통했고, 최고의 와인만 시켰다고 한다. 와인이 없어지는 줄도 모르게, 연애하는 것처럼 살살 마시다 보면, 대화가 잘 진행되었고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사랑과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더라_

팬더 자동차 사업을 접고 일단 한국에 들어왔던 그는 형제들이 하는 회사의 사보에 ‘나의 이야기’로 실었던 글을 정리했다. 원고지 3,000매가 넘는 분량이 되었다. 마침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란 책이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글로벌 비즈니스와 스위스 여성과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원고 역시 큰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개인사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원고를 본 한 출판사에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게다가 인세도 없이 책을 출간하자고 해 김 회장은 책을 내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관련 서적을 사서 읽어보고, 시어에 대한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호기심이 생겼던 것들을 관찰하고 머리에 새겨두었다가 어느 날 그 느낌을 꺼내 시를 썼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시가 50편 정도 됐지만 제대로 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주변에 국문학을 전공한 친구가 있어서 시를 보여줬다. 그 친구는 출판사에 다녔는데, 시를 편집장에게까지 보여줬다고 한다.

“시가 신선합니다. 그런데 책으로 내려면 좀 더 써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수필을 써놓은 것은 없습니까?”

그는 3,000매 써놨던 원고를 내밀었다. 그랬더니 출판사 사장이 자신을 찾아왔다. 계약금이 들어 있는 흰 봉투와 계약서를 가지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그냥 묻혀버릴 뻔했던 그의 책 『사랑과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더라』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팬더 인수와 스위스인 부인과의 사랑을 다룬 내용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단숨에 40만 부가 팔렸다. 그는 이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었다.


*제대로 된 잡지를 해보겠다_

책이 히트하자 각종 여성지에서 인터뷰가 밀려들었다. 대부분의 여성지에서 그의 이야기를 톱기사로 다뤘다. 텔레비전 출연도 하는 등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명사가 되었다. 마침 인세도 많이 받았고, 내친 김에 제대로 된 여성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잉카나 마야 등의 문명을 좋아했던 그는 한국에서 잃어버린 문명인 ‘가야’를 떠올렸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도 좋은 이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가야미디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스튜디오도 정하고 「여성춘추」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잡지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뭘 하겠어? 금방 망할걸”이라며 그를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간호에는 광고도 싣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잡지를 만드는 일은 또다시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고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해서 책을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라

“저희와 함께 일해보시겠습니까?”

잡지를 1년 6개월 정도 했을 때쯤, 파트너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리 끌레르」본사 사람들이 그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마리 끌레르의 한국판 발행권을 따냈고 이후 「바자Bazzar」「메종Maison」「에스콰이어Esquire」「모터트렌드Motor Trend」등 외국 잡지의 한국판을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잡지 사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 「마리 끌레르」「메종」을 매각시켰다. 여러 개의 잡지를 하는 것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남성지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에스콰이어」, 전통 패션지인 「바자」, 미국 자동차 잡지 1위인 「모터트렌드」로 각 잡지의 내용이 겹치지 않게 하면서 수익을 내는 게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는 세계잡지연맹(Federation of International Periodical Press)의 이사가 되었다. 한국 잡지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튄다’는 말을 그동안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튀고 싶어서 튀는 게 아니라 남들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틀에 박힌 것은 재미가 없어요. 뭔가 내 것을 만들기 위해 튀는 것입니다.”


김 회장은 와인을 마실 때도 스스로 선택해서 좋아하게 된 것을 고른다. 무엇을 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체성이다. 튀면서 인생을 즐기는 데는 그만의 비결이 있다. 누구든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가슴 설레는 와인, 가슴 뛰는 일, 두근거리게 만드는 사람, 이런 것들이 주변에 늘 가득하기에 그는 오늘도 즐겁게 일한다.



Mento 신대륙 와인들처럼 멘토를 찾아라

당신은 지금 최선을 다했는가?_ 백롱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백롱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UCLA메디컬센터 연수를 마치고 인제대학교 백병원 성형외과 교수로 일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고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성형외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세민얼굴기형어린이돕기회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어린이 4,500여 명, 베트남 어린이 2,000여 명 등 불우한 환경을 가진 어린이들의 얼굴기형 치료를 해왔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주위를 채워라

백롱민 교수는 대학교 1학년 때에 처음 와인을 마셔봤다고 한다. 정말로 포도를 재료로 해서 만든 와인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와인을 정식 수입하지 않을 때였고, 사과로 만든 와인 ‘애플 파라다이스’를 마시는게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종의 멋과 낭만으로 자리했던 때였다.


*늘 ‘처음 같은’ 그 마음 그대로_

누구나 그렇겠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백롱민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형님이 이미 성형외과 의사로 미국에서 10여 년을 일하고 있었지만, 부모님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누가 의사가 되라고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마치 인생의 끌림처럼 ‘나도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인생의 10계명을 말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주위를 채워라’였다. 누구든 비슷할 것이다. 꼭 멘토로 여기지 않더라도 내 가까이에 훌륭한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자연스레 따라하게 된다. 백롱민 교수도 그랬다. 백 교수의 경우 누가 성형외과를 택하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대학 졸업 후 자연스레 성형외과로 택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성형외과는 첨단 분야였다. 일반 외과에서는 관절염이나 교통 사고 등 어떤 문제가 생긴 뒤에 수술을 하지만 성형외과는 이와 달랐고, 국내에서 막 시작하는 상황이어서 전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연수 시절에 알게 된 와인의 맛_

1994년 미국 UCLA의 메디컬센터로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미국은 와인 붐이 한창이었다. 1993~97년 사이의 와인 판매량이 이전보다 1.5배나 증가했을 정도다. 어쩌다가 슈퍼마켓에만 가도 와인이 굉장히 많은 데에 놀랐다고 한다. 만화 『신의 물방울』의 영향으로 와인 한 잔 마시고 색깔부터 시작해서 맛까지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아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와인은 즐기는 것이다. 소주나 양주처럼 경쟁하듯 들이켜지 않고 천천히 마시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혹은 다른 이유로 그저 한 잔씩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아하게 되면, 백 교수의 경우처럼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고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추가로 생긴다. 하지만 덮어놓고 이론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접근하면, 와인에 대한 즐거움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 얼굴기형 어린이 돕기_

‘성형’이라고 하면 보통 미용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백롱민 교수의 활동은 새로운 감동이다. 그는 지난 1989년부터 국내는 물론 베트남의 불우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로 얼굴기형 수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얼굴 기형 어린이를 돕게 된 것 역시 형님인 백세민 교수의 영향 덕이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후에, 형님이 있는 곳에 합류하게 되었고 형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작한 일이다. 그는 이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일하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지만, 준비하고 지원하는 과정은 비용 때문에 늘 어려웠다고 한다. 처음 시작 할 때만 해도 ‘왜 저런 일을 하나’ 또는 ‘얼굴 기형이 뭐야?‘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눠라

미국에서 와인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된 백 교수는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처럼, 한국 역시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붐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큰 보람 없이 지난 10여 년 동안 와인을 즐겨오고 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_

그는 캘리포니아 와인처럼 젊은 느낌이 있으면서 밝은 것을 좋아한다. 포도 품종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쉬라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메를로나 피노 누아도 즐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품종이라도 프랑스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미국 등의 신대륙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맛이 더욱 밝다는 것이다. 그는 무거운 것을 마시며 심각한 것보다는 젊고 가벼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와인을 즐긴다. 그는 비싸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와인은 비싸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러니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것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간혹 자신이 살아온 자취에 대해 후회할 수도 있지만 백 교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단다. 때로는 고단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늘 자랑스럽고 행복한 기억이 많다. 한번은 어릴 때 턱관절을 다쳐 턱이 자라지 않고, 아래턱이 심하게 비뚤어진 사람을 만난적이 있었다. 입이 안 열려서 먹는 것은 물론 말도 제대로 못해 유동식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20년 넘게 고생하던 사람이 치료를 받아 증상도 많이 좋아진데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 교수가 됐을 때에는 자신의 일처럼 기뻤단다. 


*진실한 마음은 사람을 감동시킨다_

그의 방문 앞 책꽂이에는 어린이 그림 하나가 놓여 있다. 얼굴기형을 의미하는 반쪽짜리 얼굴로 방긋 웃는 소녀가 그려져 있다. 그의 봉사활동에 감동을 받은 디자이너가 무료로 그려준 것이다. 이 그림은 이제 얼굴기형어린이돕기회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SK텔레콤, 샘터사, KT&G 등의 기업들이 그의 활동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가슴이 아플때는 아무리 수술을 해도 나아질 가능성이 적은 경우입니다. 때로는 어린이의 부모님들과 함께 눈시울을 적신 적도 있습니다. 수술실에서 가장 냉정한 사람이 의사라고 해도, 의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환자를 대할 때에는 늘 가슴이 아파옵니다.”

살면서 어떤 이익도, 관계도 없는 이들을 무작정 돕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진심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그의 진심이 다른 이들까지 감동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교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_

밤낮 없이 어린이들을 돕다 보면, 집에서는 불평을 할 만도 하건만 인턴과 레지던트를 할 때 연애하고 결혼하게 된 아내는 이런 생활에 단련 돼 있다며, 그가 멋쩍게 웃는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아내 역시 얼굴기형어린이 돕기에 적극 나서고 있어, 언제나 백 교수의 든든한 마음의 후원자가 되어준다고 한다.


“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물론 항상 일이 잘되는 건 아닙니다. 그럴 때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라고. 아무리 주워 담지 못하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반성하고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 자체가 늘 그런 일들의 반복이 아닐까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더욱 발전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

“와인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모든 게 다 있거든요. 오크통에 숙성시킨 것, 그렇지 않은 것, 좋은 맛, 나쁜 맛이 다 존재합니다. 우리 인생도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내리막으로 돌아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와인도, 인생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백롱민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소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내 인생 최고의 멘토는 ‘형님’_

백 교수를 만났을 때, 두 장의 명함을 받았다. 하나는 분당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과장, 또 하나는 어린이를 돕는 법인의 대표였다. 어느덧 나이가 드신 형님이 은퇴를 하면서 그가 자연스레 물려받았다고 한다. 백 교수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형님’으로 꼽는다. 세상에 대해 잘 몰랐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줬다는 백세민 박사다. 또한 전공을 선택할 때도, 얼굴기형 어린이를 돕는 일에도, 마치 나침반처럼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형님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형님이 없었더라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이유로 형님 이름을 딴 ‘세민얼굴기형어린이돕기회’ 법인이 생겨난 것이다. 때때로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형님을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한단다. 대표직을 물려받았을 때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는 해도 좋은 일에 나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의사는 수술할 때는 냉정해야 하지만, 환자에게는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합니다. 계속되는 수술과 각종 업무로 아무리 몸이 고단하더라도 환자에게 의사는 믿고 다가갈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의사는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한낱 월급쟁이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평생 동안 의사로서 지켜온 신념이다. 환자들은 몸이 아프면서 마음까지 약해진다. 의사는 단지 눈에 보이는 몸만 낫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파악해서 함께 치료하는 사람이다.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지내왔기에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마음에 매료된 것이리라.


*어떤 아이도 축복 받으며 태어나기를_

백롱민 교수가 얼굴기형 어린이를 도와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외환위기 때였다. 자신이 하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만, 불우한 어린이를 돕는 일은 의료장비나 각종 소모품 등 늘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를 돕던 기업들이 지원비용을 상당부분 줄였다. 도와줄 아이들을 많은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지원 기업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아픈 때였다.


그는 자신이 수술해준 어린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상태를 확인한다.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봤던 모든 환자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얼굴을 보면 금방 생각난다. 몸과 마음이 지쳐 보이던 아이들이 수술을 통해 한결 밝아지고 잘 크는 것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나눠라, 그러면 행복은 더욱 커진다_

그는 1984년부터 23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 10년 수련의 과정은 길고 지겨운 시간이었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의 연봉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언제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있고, 마음을 나눌 이들이 자꾸자꾸 늘어나면서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마음의 풍요를 얻었다.


백 교수는 와인을 좋아하지만 모으지는 않는다.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산 와인이라도 집에 오래 둔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와인이 다 오래 놔둔다고 좋은 게 아니다. 100병 가운데 5년 이상 둘 수 있는 것은 1%나 될까? 그래서 좋은 와인이 생기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신다. 마음을 나누고 와인을 나누면서, 사람들은 더욱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관계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와인을, 사람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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