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역자 : 이현경)
ǻ
스마트비즈니스
   
10000
2006�� 02��



>■ 책 소개
사상 최악의 경제 불황에 빠진 일본 열도에충격과 희망을 동시에 주었던 책이 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프란체스코 알베로니가 ‘칭찬’과 ‘비난’, ‘낙관’과‘비관’을 주제로,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유형을 심도 있게 통찰한 책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에서만 100만 부를 돌파하는기염을 쏟으며, 독자들의 요구로 저자가 일본을 방문해 강연을 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여러 가지 유형의 인간상을분석해, 자기 내면에 숨어 있던 한계와 비관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고 바람직한 삶의모델이 되는 사람은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칭찬’은 낙관주의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며 ‘나’뿐만이 아니라 ‘너’와 ‘우리’모두를 성공으로 이끄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구구절절 설명하며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다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 관해 철저하게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분석의 칼날을 들이댄다. 아주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을 분류한다. 마치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하며 설명하고있다. 


저자가 나눈 56가지의 인간 유형은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다름 아닌, ‘반드시본받아야 할 사람’과 ‘절대로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던 사람, 아픈 상처와 눈물을주었던 인간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인간 분류 작업’을 눈으로 좇고 가슴으로 되새기다보면, 마침내 ‘나는 어떻게 살아야성공할 수 있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FrancescoAlberoni)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다. 1929년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에서 태어났다. 파비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뒤 정신분석학과 통계학,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1964년부터 밀라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6년부터는 밀라노의이울름대학교에 재직하면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총장을 지냈다. 탁월한 사회학자로서 집단행동과 사회운동의 이론을 다룬 『소비와사회』『운동과 제도』 등 여러 권의 주목할 만한 이론서를 출간했고, 동시에 뛰어난 저술가로스마트비즈니스 신간안내서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하는것』 『우정』 『에로티시즘』 등 인간의 심리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석한 저서들을 출간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아왔다. 또한 그는 매주월요일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 1면에 ‘공(公)과 사(私)’라는 제하의 고정 칼럼을 18년 동안 연재하고 있는최고의 칼럼니스트이다.


■ 역자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와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비교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에 출강하면서 촉망 받는 전문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는 『마음 가는 대로』 『사랑의 학교』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카드무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 『싯다르타』 『알렉산더 대왕』 『바우돌리노』 『미의 역사』 『단테의 모자이크살인』 등이 있다.


■ 차례
제1부 칭찬을 즐기면 인생이즐겁다 
칭찬하지 않는 불행한 시대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 배고파하는 사람이 되라 -선의를 낭비하는 사람
동정보다 어려운 일, 진실로 칭찬하기 -타인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 
칭찬은 회사를 즐겁게 한다 -아랫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사람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라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 
질투를 이기는 힘, 칭찬 -질투심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 
세상 모든일이 다 가능하다고 말하라 -냉소적인 사람과 열광하는 사람 
마음의 빛을 죽이는 바이러스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 
잘못은 먼지속에, 칭찬은 대리석에 새겨라 -분노를 극복하는 사람 
절망과 실패를 친구로 삼는 사람 -니힐리스트 
동정이라는 알리바이를 허락하지말라 -자신의 약함을 이용하는 사람 
접시를 깨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 
자신에게, 자신의 용기에,자신의 능력에게 -말을 다 끝맺지 않는 사람 
게으르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성숙함 -미숙한 사람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관심-참된 교양을 지닌 사람 
습득하고 훈련할수록 강해지는, 인내라는 무기 -인내할 줄 아는 사람 
새로움의 희미한 신호들 -새로운 것을꺼리지 않는 사람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으로 살아라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 


제2부 사람을 읽으면 회사가 즐겁다 
성공을 씨앗을뿌리는 밭 -회사와 연대하는 사람 
사람 노릇, 어른 노릇 -자기 역할에 전문적인 사람 
보이지 않는 질서가 시장을 움직인다-자본주의를 살리는 사람 
홀로서기가 아닌 마주서기 -기업과 한 몸이 되는 사람 
실패를 딛고 일어설 때 실패에서 벗어난다 -부적응을인정하는 사람 
가면을 벗은 맨얼굴을 바라보는 시간 -전화 통화에서 성의를 보이는 사람 
변화 없이는 진화도 없다 -창조적으로 배우는사람 
부드러워야 극과 극을 융화시킨다 -양극의 미덕을 겸비한 사람 
스포츠는 삶의 은유이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 
성공의주문, 새로움과 모험 그리고 의외성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 
불확실함이라는 시험에 항상 대비하라 -시험을 피하지 않는 사람 
옳은답을 위한 물음, 창조성 -집단의 창조성을 이해하는 사람 
다시 태어나는 능력, 모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사람 
포기하지 않으면언제나 꿈은 유효하다 -꿈꿀 줄 아는 사람 
현명한 사람이 실망시킬 때 -혼란을 받아들이는 사람 
혁신하는 사람은 승리한다 -혼자도전하는 사람 
영감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는 운 좋은 사람 -영감을 발견하는 사람 
정보가 아닌 세상을 읽는 힘이 필요하다 -깊이있는 인식을 하는 사람 
차이점과 소외감은 이해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을 둘러싼 벽을 깨는 사람 


제3부 세상의 관계가 부드러우면 사람이 즐겁다
사랑이라는 본능이 세상을 움직인다 -대가를 구하지 않고 베푸는 사람 
우리의 삶이 즐거운 이유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찍어 놓은 사진, 첫인상 -첫인상을 꿰뚫어보는 사람 
악마와의 계약, 자기기만 -양심을 굳게 지키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권력을 쥔 사람 
동의와 토론이 없는 불량배들 -전제적인 사람 
생각하는 모든것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동의를 이끌어내는 사람 
“예”라는 치명적인 길들임 -아첨하는 사람 
자유, 존경, 신용에 빚지게 하라-성과만을 중시하는 사람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기 -남을 끌어주지 않는 사람 
용기를 잃으면 다 잃는다 -비겁한 사람
비밀스러움이 많으면 의심도 많다 -무질서한 사람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다 -훼방놓는 사람 
무관심이 주는 힘 -남을 당황하게하는 사람 
오지랖이 넓으면 근심이 많다 -어리석음으로 지배하는 사람 
동기와 정열 없이는 위대한 일도 없다 -자신의 감정을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생각의 반전을 만들어주는 위기 -위기를 포용하는 사람 
절대 항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라 -정열적으로사는 사람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여행 -진정한 여행을 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제1부 칭찬을 즐기면 인생이 즐겁다

칭찬하지 않는 불행한 시대 -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모두 남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인정과 칭찬은 사람에게 있어서 음식과 물처럼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 혹은 그런 일을 하도록 정해진 기관을 통해 칭찬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는 엄마에게 "잘 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만, 엄마의 칭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선생님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을 달성했을 때 우리는 항상 많은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 심사위원들은 각기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전력을 다해 일한 끝에 어려운 임무를 달성하고 성공해서 모두에게 박수를 받아도,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박수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일부러 칭찬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우리를 손에 넣기 위해, 또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유명한 심판이 있었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공손한 인사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여봐란 듯이 무례하게 굴었는데, 아버지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전 세계에 공장을 세운 뛰어난 사업가도 생각난다. 그는 사업상의 동료, 예술가, 정치가, 지식인들을 접대하기 위해 멋진 별장을 지었다. 하지만 접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별장에서 파티를 열었더니 그의 아내가 "자기 남편은 항상 출장만 다닌다"고 불평하는 등 계속 남편을 비난하면서 손님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인정을 해주고 칭찬을 해주는 권력은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권력, 고통스럽게 만드는 권력과 같다. 변덕을 부리는 이들도 그 점을 알고 있다.


재롱과 애교를 기대하는 부모 앞에서 아이는 발을 구르며 뭔가 해달라고 울면서 떼를 쓴다. 그리고 버티고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기가 불쾌감과 분노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게 바로 아이가 노리는 것이다. 부모의 저녁식사를 완전히 망쳐놓고 누나의 생일파티를 엉망으로 만드는 장난꾸러기를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빈번히 이런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어린아이들, 청소년들, 성인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칭찬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한 마디 말도 건네주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복수심을 유발시키는가.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탈리아 학교에는 1년 동안 좀 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어린이에게 "잘한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 선생님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엄격하고 신뢰할 만한 태도라고 믿지만, 사실은 연약한 아이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토해내는 것일 뿐이다.


또한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제대로 되어 가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이 힘세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힘과 권력과 자유의지에 취해 있지만 힘은 악용되고, 권력에는 규율이 없으며, 자유의지는 시기심에 충동질당한다.


이런 유형의 심술이 넘쳐나서, 이것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장애물이 되었던 불운한 시대도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일이 아니라, 시기심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쓸데없는 전투 때문에 지쳐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했다.


동정보다 어려운 일, 진실로 칭찬하기 - 타인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

우리들은 모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자신을 존중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부여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갓난아기 때부터 시작된다. 엄마가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입을 맞추며 "넌 정말 예쁜 아가야"라고 말해주기 때문에 아기는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은 일평생 지속된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해줄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의 말을 정기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가치 있는 인정을 해줄 만한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들 또는 어떤 특정한 사회적 범주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럴 자격이 있다.


어린아이가 친구에게서 "너 똑똑하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은 별 쓸모가 없다. 선생님과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 운동선수가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는 아버지가 별 도움이 안 된다. 그 선수에게는 트레이너의 판단이 필요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그 사람으로부터 삶과 행복의 본질 그 자체를 직감하게 된다. 이런 경우 사랑하는 사람의 판단과, 신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설 수 있게 하는 그의 사랑이면 족하다. 우리는 두 범주의 사람들에 의존해서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특수한 전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정과 회사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대부분 인정받고 싶은 데서 비롯된다. 온갖 권력은 사실 몇몇 사람의 능력, 즉 좀처럼 사람들을 인정해주지는 않으면서 사람들이 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몸이 달게 만드는 능력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 이들은 "당신에게 만족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칭찬이나 상장, 호의적인 평가 같은 것을 바라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그들 마음속에서는 그런 기대를 꺾으려는 욕구가 돌연 힘을 발휘한다.


때로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장난으로 그럴 경우가 있다. 어떤 아이가 뛰어난 점수로 상을 받았을 때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약올리며 놀린다. 또는 학교에서 아들이 좋은 점수를 받아왔을 때 어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저 "네가 해야 할 의무를 한 것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사랑과 인정을 원하는 그 사람들의 소망을 이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상대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면서 우월감을 즐기는 거짓된 우정도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친구의 관심을 끌고 다정한 행동, 눈길, 칭찬을 얻어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런 지배의 메커니즘은 가족 내부에서 자주 이용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인정받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망 때문이다.


칭찬이나 감탄의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남편을 가끔 볼 수 있다. 아내는 한껏 멋을 내서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한 뒤 완벽하게 머리 손질을 하고 남편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아내에게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나무라면서 자신의 지배권을 재확인한다.


이와는 반대로 밖에서 인정받는 남편을 가정에서, 아이들 앞에서 무시하는 아내들이 종종 있다. 직업 세계에서 그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경외감을 주며 높은 평가와 찬탄을 받는 성공한 남자다. 그는 아내에게도 똑같이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가 아내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아내는 남편의 결점을 찾아낸다. 그녀는 자기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결점을 강조한다. 그는 밖에서는 중요한 인물인지 모르나 가정에서는 무가치한 존재이다. 이런 식으로 아내는 남편을 손에 넣는다.


종종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별거 중이거나 이혼을 할 경우, 상대방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경쟁한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다루는 방법은 예술적인 삶, 전문적인 삶, 학문적인 삶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성공할 가망이 있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명성을 얻는 비평가들이 있다. 기업에서 평가절하의 메커니즘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기업을 소유한 한 가문의 힘을 모두 빼앗고 그 기업을 거의 손에 넣을 뻔했던 이사 한 명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아주 어려운 시기를 잘 이용해 소유주 가문의 호의를 샀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사들과 고문들을 모두 제거해나갔다.

그는 언제나 엄격하고 완고했으며 항상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서든 결점을 찾아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잔인하게 그 결점들을 공공연히 밝혔다. 몇 해가 지나도록 그의 입에서는 감탄이나 칭찬의 말이 절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간부들이 처음에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전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똑똑한 사람들과 재능 있는 사람들은 놀이의 내막을 파악하고는 그의 곁을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그런 간부들과 함께 남아 일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뿐이다.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이런 간부들은 범속한 사람들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맞이하는 운명이다.


결국은 무가치한 것만이 그들에게 남는 것이다.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으로 살아라 -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

어려운 사업에서 성공을 하려면 꼭 해내야 한다는 강한 동기와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 몇 달 몇 년을 약해지지 않고 쉬지 않으며, 주의 깊고 겸손하게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며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든 게 너무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학생이 매번 좋은 성적만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시험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에 완전히 빠져들어 전력을 다하고 전념하여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언제든 때려치울 준비가 되어 있고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설 수 있다면, 성공에 필요한 강인함과 주의력을 절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경쟁 체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맞서야만 하고 이기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매번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원시 사회에서 남자들은 사냥꾼이자 전사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생명을 걸었다. 오늘날에는 그런 식으로 피 흘리는 일은 없지만 경쟁은 경제, 정치, 심지어 예술과 문화 조직의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러한 경쟁에서 우리는 모두 박수갈채와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우리의 탁월함을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 피할 수 없는 이런 법칙들을 현실이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이런 것들에 빠져든다면 정신적 균형을 잃고 말 것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의 가치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성공에, 타인들의 박수갈채에 맡겨버리는 것만큼 어리석고 무서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고 우리는 우연, 행운, 불운에 좌우된다. 수많은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죽고 난 뒤에야 인정을 받았다. 함정에 빠져서, 훨씬 못한 사람들의 음모에 걸려서 파멸한 위대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훌륭한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데 자신을 바치고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하고, 한편으로는 영혼의 깊숙한 곳에 보호 구역을 두고 초연할 수 있는 능력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것,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공적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납득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예상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 하더라도 결투를 앞두면 그게 마지막 시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죽는 때가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아킬레스는 자신이 젊은 나이에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는 이것이 바로 겸손이다. 겸손은 움직이고 있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는 것, 불안정한 게 당연하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비록 불안정하다 하더라도, 결과가 실패일지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행동을 하는 바로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힘은 용기와 성공이 아니라 완벽을 탐구하는 데 있었다. 유태인들의 위대한 힘은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데 있었고, 유복함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루터에게는 구원이나 천국조차도 우리 인간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공적과 관계없이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특별한 무엇일 뿐이었다.


종종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인 기반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곤 한다. 아니면 도덕 같은 것은 이제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인가? 우리 중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의견, 판단, 그들이 무책임하게 떠드는 소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도덕적인 행동의 차원에서만 도덕의 기반을 찾을 수 있다. 실패와 부당함과 고통으로 타격을 받은 우리는 도덕적으로 고무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칭찬 속에서 살아라. 그것이 우리를 구하게 될 것이다.



제2부 사람을 읽으면 일이 즐겁다

홀로서기가 아닌 마주서기 -기업과 한몸이 되는 사람

1980년대에 우리는 편견 없는 자본가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기업을 단계적으로 분할하고 해체시키는 마술사들에게 감탄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 실직, 그리고 힘겨운 국제 경쟁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최고의 품질에 낮은 가격, 최고의 서비스가 보장되는 유용한 상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훌륭히 해내는 기업가는 다름 아닌, 제품을 위해 살고 기업과 소비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생산된 상품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그것을 손에 들고 만지고 연구하는 태도에서 그런 기업가들을 알아볼 수 있다.

당신은 그런 기업가들이 제품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고통을 나누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그들이 직접 제품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비스킷이든, 신발이든, 오토바이든 간에 그들은 사랑과 애정으로 그것을 검사한다. 없애야 할 아주 작은 결점이라도 찾아낼 준비를 갖추고, 불안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한다. 또 그와 똑같이 맹렬한 관심으로 감탄하고 모방할 준비를 한 채 모든 경쟁 제품들을 연구한다.


예전에는 이런 태도가 수공업 수준의 기업에만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기업가는 총괄적인 전략과 재정 계획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기술자나 생산 관리자들에게만 관련된 세부적인 일들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관리자들과 연구원들을 믿는다 하더라도, 기업가는 자신과 기업을 동일시해야 한다. 계속해서 지칠 줄 모르고 최선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에는 신기하게도 기업가의 성격이 구현되어 남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장점, 모든 덕성, 관심, 정확성이 그대로 기업에 전달되게 되고 모든 결점과 부주의, 무관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꾸며낼 수 없다.


자신의 제품을 사랑하는 기업가들은 대부분 소비자들에게 대단히 신경을 쓴다. 그들은 소비자의 정신 상태와 반응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소비자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쓰며 높이 평가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투명한 관계를 구축하고자, 신뢰를 받고자 애쓴다. 상품의 배달에서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신경을 쓴다.


인간을, 그들의 반응을, 그들의 기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런 기업가들은 거느리고 있는 관리직 직원들이나 근로자 개개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모두에게 공동의 기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그 어떤 수단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을 고무하는 일이다.


특히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든 정직한 얼굴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능력과 책임감과 성실함을 볼 때에만 안심하게 된다.


부드러워야 극과 극을 융화시킨다 - 양극의 미덕을 겸비한 사람

현대 세계를 특징 짓는 것은 거대 조직이다. 공기업, 대기업, 다국적기업 같은 것들이다.


이런 조직들 안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미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조직에 공헌하게 해주고, 동시에 조직으로부터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게 해주는 미덕들은 무엇인가?


어떤 형태의 사회이든지 각기 어떤 미덕들은 필요로 하고, 어떤 미덕들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쟁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신체적인 용기가 높이 평가 받는다. 궁정 사회에서는 우아함이,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는 신속함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렇다면 조직에서는? 어떤 사람은 거대한 조직에서는 정확성, 세심함, 체계성, 질서에 대한 사랑, 복종과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직에 정통한 현대인들은 독창성, 창의력, 기업가 정신 같은 자질을 강조한다. 그들은 현대 조직은 관료형의 인물들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경영인들을 필요로 하며, 경영인은 근본적으로 기업가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영인은 특별한 유형의 기업가이다. 한 조직 안에서 일을 하고 보고를 올려야 할 상관이 적어도 하나, 보통은 여럿씩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직접 만나는 인간은 과거에는 아주 정반대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자질과 미덕들을 한몸에 겸비해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다.


여기 한 예가 있다. 경영인은 창조적이어야 하고, 새로운 문제들과 새로운 해결책들을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계속 새로운 것들을 제안해야 하고 돌진하고 의욕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또 단념할 준비도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 역시 똑같이 중요한 점이다. 대기업의 전략들은 먼 곳에서, 때로는 저 먼 외국에서 결정된다. 결정을 할 때에는 무수한 요인들과 셀 수 없이 다양한 요구들을 고려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조적이고 의욕적이며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의기소침해지면서 의욕을 잃고 폐쇄적이 된다. 거부가 좌절로 바뀌는 것이다. 차츰 그는 제안을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경영인이라면 그러한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계속 제안해야 하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경영인의 미덕이 갖는 이런 이중적이고 양극적인 성질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경영인은 야심과 경쟁심이 있어야 한다. 그는 자신과 기업을 위해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또한 동료들과 부하직원들과 협력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호적인 분위기가 사내에 흐르지 않는 기업은 절대 크게 성장할 수 없다. 경영인은 경쟁심이라는 재능과 함께 친절한 마음씨와 사과하고 화해하는 능력을 필수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은 스포츠 세계와 다소 비슷하다. 경기가 끝난 뒤 두 운동선수는 서로 화해하고 악수를 하고 친구가 되려고 애쓰며 대결은 잊어버린다.


회사 내에서 생긴 우정은 깨질 때가 많고, 위선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야망에, 경제적인 이익에 계속 자리를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정은, 그것이 없다면 건조하고 공허할 수도 있는 관계에 섬세함과 인간성이라는 빛을 비추어주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아주 소중하기도 하다.


여기 또 세 번째로 양극을 이루는 미덕이 있다. 경영자는 한편으로는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하며 진행 과정과 엄격한 방법들을 결정하고 세세하게 장래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포착하고 매일 그에게 도착하는 거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중요한 것을 구별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천 가지의 강력한 신호들 속에 숨어 있는 아주 미약한 신호를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직관과 감수성을 요구한다. 새로운 것은 절대 요란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리 없이 몰래 나타난다. 그것은 아주 작은 미립자이고, 잔물결이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그것을 잡아내려면 머리를 비우고 눈을 감은 채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양극을 이루는 또 다른 것은 결정하고 명령하며 복종을 요구하는 능력과, 거래를 하고 설득시키는 능력이다. 현대의 기업은 한 라인의 위계 체계로 짜여 있지 않고, 보고해야 하는 상관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컨설턴트, 전문가, 신문 기자와의 관계는 재치를 요구한다. 협력자들 및 부하직원들과 맺는 관계에는 인내심과 헌신, 그리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제 설명이 필요하다. 양극의 미덕은 중도, "황금 같은 중용"을 지키는 게 아니다. 치우침이 없도록 이쪽에서 조금, 저쪽에서 조금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와 반대로 제안하는 능력과 포기하는 능력, 경쟁과 화해, 방법과 직관, 강인함과 재치 같은 양면을 다 포함한다. 이건 아주 힘든 일이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만들고 훈련시켜야 하지만 또 믿을 만한 인간적 섬세함과 도움을 주려는 믿음 있는 태도가 자리잡을 수 있는 여백을 가꾸어야 한다.


기업 경제학을 철저히 공부한 어떤 젊은이들은 최상의 준비와 적극성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현대 사회는 변화가 아주 심하고 복합적이다. 어떤 태도든지 경직되어 있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과신, 오만함, 권위주의는 모두에게 파멸을 안겨준다. 



제3부 세상의 관계가 부드러우면 사람이 즐겁다

사랑이라는 본능이 세상을 움직인다 - 대가를 구하지 않고 베푸는 사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착하고 올바르고 관대하며 의욕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할까? 무엇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고, 헌신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하면 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결국 보상을 받게 될까?


정직한 대답은 딱 하나, "아니다"이다. 공적을 세운 대가로 상을 받고 훌륭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관대한 사람들은 도둑들에게 강탈당하고, 온순한 사람은 참을성 없는 사람들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남에게 준 사람은 그에 상응할 만한 보답을 받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천연두를 몰아낸 제너는 고통스럽게 죽었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인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가들에 의해 목이 잘렸다. 산후병에서 여인들을 구해준 젬멜바이스는 미치고 말았다.

과거의 일들이라고? 천만에 말씀!


정치계에서는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감탄의 대상이며 텔레비전에서는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토론에서는 위압적인 사람이 감탄을 받는다. 누군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 오면 평범한 사람들은 시기심 때문에 그를 마구 욕한다. 마음속으로 그를 놀랍게 여기면 여길수록 더욱더 그를 비방한다. 일에 전력을 다해 당신의 귀중한 지성과 인내심을 모두 쏟아본 경험이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아주 굉장한 일을 완성했을 때, 당신은 인정을 받는 대신 경멸의 눈초리와 비웃는 말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런 비난 뒤로 당신이 너무나 훌륭히 해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미움을 샀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된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런 무서운 질문은 성경과 탈무드에도 울려 퍼진다. 유태인들은 서로 물었다. 이렇게 온순하고 국법과 율법을 잘 지키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난폭한 자들에게 억압과 박해를 당하는 것일까? 왜 옳은 사람은 고통을 받고 잔악한 인간들은 평온하게 사는 것일까?


그들은 해답을 종교적 믿음 속에서 찾았다. 하느님은 마침내 선한 사람에게 보상을 내릴 것이며 심판에 따라 악한 자들을 벌 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모든 시대마다 이런 질문이 되풀이되고 답을 찾으려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지옥도 천국도 믿지 않는, 꿈에서 깬 이 시대에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옳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보여주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손익 계산 방법은 전혀 없다. 착하게 살아서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유일한 대답은 이렇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착한 행동을 선물로 주는 것이다. 우리 아들, 내 친구, 우리 도시, 자연, 찾아오게 될 사람을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다. 근원적이고 자유로우며 아무런 동기나 대가도 없는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들의 인간성과 자유에서 곧바로 생겨 나오는 이 선물에는 그 어떤 도덕성도 들어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이 선물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인간의 진보는 이루어졌다. 이 세상의 모든 도덕성은 이기주의적인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활동하며, 더 많이 갖기보다는 주도록 인간들을 이끌어 간 원초적인 에너지에서 나온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본능으로 자연은 그 자신과 자신의 법칙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개인 및 집단의 이기주의에 대항한다. 그것은 저 너머로 나가는 것, 초월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제너(천연두 백신을 발견-옮긴이), 젬멜바이스(산욕열의 전염에 관해 연구-옮긴이), 그리고 일을 하고 창조를 하며 자신의 목숨을 읽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것이다.


유태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세상은, 서른여섯 명의 올바르고 겸손하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과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세상에 올바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 서른여섯 명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절대 항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라 -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

강렬하게 바라고, 꿈꾸고, 계획을 세우고, 좌절과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계획들을 실현시키려고 애쓰는 것과, 자신에게 만족하고 포기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걸까?


격렬한 감동을 맛보고, 그래서 영광과 함께 절망을 만날 가능성도 무릅쓰는 게 더 나을까, 아니면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지는 게 더 나은 것일까?


열정을 받아들여 한 사람을 완전히 의지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신중하게 몸조심을 하는 게 나을까?


아름다움, 완벽, 조화를 열망하고 세상의 추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아니면 습관에 길들어 완고해지고 통속성을 받아들이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


개인, 대중, 문화, 종교 모두 청년기에는 첫 번째 것, 열망, 정열, 모험을 선택한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사랑하고, 증오하고, 즐기고, 절망하고, 전투와 죽음을 준비한다. 그후 철학자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와 회의론자들은 욕망과 정열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초기 기독교 신앙은 확신에 차서 천년왕국의 도래를 기다렸고 순교를 준비했다. 무르익은 기독교 신앙은 귀족적이고 외교적으로 변했다.


탄생할 당시의 움직임들은 모두 순수한 희망과 열정과 열의와 믿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차츰차츰 합리적으로 변화하면서 신중해진다.


모든 기업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유연하고 대담하지만 그후 경직된다. 하지만 그 기업들이 계속 살아남고 싶다면 개혁하고 젊은이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내부로부터 찾아야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항상 열망과 정열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것 자체가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삶의 역동적인 요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열렬히 무엇인가를 바랄 능력이 없는 개인은 더 이상 아무것도 실현할 수 없다. 꿈꿀 줄 모르는 사회는 의례주의 속에서 경직되고 쇠퇴하게 된다. 그래서 완벽을 목표로 삼는 강렬한 삶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위험과 고통이다.


이런 위험과 고통은 우리가 완벽한 그 무엇인가를 실현해가면 갈수록, 목표에 가까이 도달하면 할수록 더 커진다. 의도했던 것을 거의 성취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루어놓은 일을 망가뜨리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눈앞에 나타날 때 우리는 아주 쉽게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장애물은 병, 사고, 경기 변동 같은 게 될 수 있다. 경쟁자의 적의나 질투일 수도 있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그 마지막 몇 미터가 가장 어렵다. 훨씬 더 많은 정신력을 요구한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들이 그것을 해내려는 사람들과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의 방해로 실패할 수 있다.


완벽한 모든 것은 바로 완벽이라는 높은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통속적인 사람들에 의해 더욱더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두 가지 선택의 여지 중에서 포기보다는 열광이, 냉소주의보다는 믿음이, 무미건조함보다는 정열이 더 선택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야만인들이 파괴해버릴 수 있는 것일지라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나가는 게 훨씬 더 낫다고 믿는다. 이게 바로 문화가 갈 길이며 그 가치라고 생각한다. 절대 항복해서는 안 되고 다시 시작하고 계속 싸울 필요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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