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본의 부동산 버블 형성과 붕괴 과정을 고스란히 수록했다. 샐러리맨들의 실직,기업들의 공장 이전, 계약직과 파견직의 확산, 중산층의 붕괴 등 부동산 버블로 인해 일본 사회가 어떤 충격에 빠졌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부동산 시장의 미래가 일본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지 않는다는 보장 역시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 이 책은"토지불패 신화는 거품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선례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저자 다치키 마코토
경제 애널리스트로 경제전문지에서 금융과 연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찍이 예금봉쇄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지목한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하이퍼인플레이션 서바이벌 독본』『패자 악순환에 관한 연구』등이 있다.
■ 해제 차학봉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와 건국대부동산대학원 졸업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할 때 경험한 일본의 현장을 엮어 『일본에서 배우는 고령화 시대의 국토·주택정책』이란책을 펴냈다. 논문으로「고령화와 공간구조의 변화」가 있다.
■ 역자 강신규
일본 와세다대학과 대학원, 경희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일은행, 평화은행 등에서 조사를 담당했다. 현재 출판번역 및 기획 그룹인 "바른번역"의 회원이자 경영자문이다. 한성대학교중소기업 컨소시움센터 강사, 산업인력관리공단 인터넷 원격훈련 과정 등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람을 살리는 은행혁신』『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여신심사 사후관리』『도레이, 마에다 카츠노스케의 원점』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새 은행 새 기법』이있다.
■ 차례
해제 - 조선일보 부동산 팀장 차학봉 기자가본 "地價 「最終」 暴落"(지가 「최종」 폭락)
서문 - 한국인 독자를 위하여
CHAPTER 1 되짚어 보는 버블 붕괴
세계대전패배로 시작된, 토지 변화
일본 열도를 뒤흔든 세 번의 버블
제3의 종교, 부동산불패신화
대출금 상환에 저당 잡힌 인생
텅 빈 뉴타운의 아파트
CHAPTER 2 일본의 근본을 위협하는 사회 현상
국가 위기를 부르는 저출산
일본 여성들의 결혼 조건
언제나 희생양은 중산층
급증하는 개인 파산자
인구 고령화보다 더 큰 문제는 노화된 국민 의식
CHAPTER 3 토지도 수입하는 현대 사회
토지도수입한다
기업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아파트 덤핑
일본 프로야구와 부실주택의 공통점
아파트도 갱년 장애를 겪는다
9채중 1채는 빈 집으로 방치
CHAPTER 4 개인에게 빚 권하는 대형 은행
이자를 갚기 위해 빚지는 사람들
일본 은행을 지탱해 주는 가계 이자
대출금은 곧 가계의 족쇄
"나만은 속지 않으리라"는 믿음
개인은 법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CHAPTER 5 주택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정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일본 정부
1980년대부터 남아도는 주택
다단계 구조의 연금 제도
올드타운화되고 있는 뉴타운
토끼장에 붙는 귀족 집세
CHAPTER 6 부동산 버블 후의 일본
일본인들의5대 부실 채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토지가 없는 일본
1961년 법으로 운영되는 세무평가
정부의 뜻대로 이뤄지는 "공시가격"
맺음말 - 1960년대라는 미래로 돌아가자
역자후기
참고문헌
일본을 통해 본 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
제3의 종교, 부동산 불패신화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는 비정상적인 달러 강세에 고민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세계적으로도 ‘달러화 강세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로 일본과 유럽, 미국 간의 무역 마찰이 심해졌던 1985년 9월 열린 G5는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며, 이것이 순조롭지 못할 때에는 정부의 협조 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다. 일명 ‘플라자 합의’다. 플라자 합의가 채택되자 일주일 만에 독일 마르크화는 달러화에 대해 약 7%, 엔화는 8.3% 오르는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달러 약세로 높아진 가격 경쟁력으로 1990년대 들어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했으며,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찾아갔다. 그러나 일본의 사정은 달랐다.
대장성과 일본은행은 급격한 엔고의 영향으로 일본 기업들이 입을 타격을 우려해 대폭적인 금융완화정책을 펼치기에 이른다. 1980~1983년까지 총 5차례에 걸쳐서 연 9%의 금리를 연 5%까지 감소시켰다. 1987년 연 2.5%대로 하락, 1989년 초까지 초저금리 시대를 맞게 된다. 이러한 금리인하 조치는 부동산에 대한 가격 상승을 기대하게 했고,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는 계기가 된다. 1983년 도쿄 도심 지역에서 시작된 부동산 가격의 급등은 1986년 도쿄 전체 지역으로 확산돼, 1987년 한 해 동안 무려 68.8%라는 지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대량의 자금은 ‘자본’이 아닌 ‘자산’이 되어 부동산과 주식의 상승률을 이어갔다. 마침 ‘도쿄의 오피스 면적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부동산 시장을 강타하면서 부동산업자들은 너도나도 토지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외국 기업들의 일본 진출이 본격화된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다. 빠른 속도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자 도심부의 지가는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도심의 토지를 처분해 여유 자금을 마련한 사람들은 고급 주택, 억대 아파트, 재개발 건물 등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지가 역시 연쇄 반응으로 상승했다. 일본인들이 ‘부동산불패신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광란의 시기는 1986~1991년까지 무려 51개월 동안이나 지속된다.
1990년 1월, 주식이 대폭락하고 자산 가치가 급락하면서 자산 디플레이션에 의해 금융 자산과 실물 자산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자산 디스플레이션은 버블 경제의 발단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일대의 사건으로 엄청난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했다. 버블 경제의 붕괴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만 해도 돈을 번다’는 기묘한 구조에 결정적인 전환을 초래했다. 지가상승률은 경제성장률과 소득증가율을 밑돌았으며, 도쿄의 평균 지가는 버블 붕괴 후인 1992년부터 13년간 연속 하락했다. 1997년 정부는 ‘종합토지정책 추진요강’을 발표하며 부동산불패신화가 붕괴됐음을 인정했다.
이 시기에는 토지를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반면,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 역전된 부동산불패신화로 이용 가치가 확실하지 않은 토지는 가격조차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의 토지 거래는 이용 가치를 중시하는 실수요 중심이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현재 토지의 실수요자가 기업이 아닌 개인이라는 것이다. 무서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일본 인구는 ‘개인’이라는 토지의 실수요자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위기를 부르는 저출산
일본 국립인구문제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17.34%에 불과했지만 오는 2030년 29.37%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이룩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급속한 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일본의 인구 구성은 점차 왜곡될 것이다.
현재 일본인들은 연금과 세금의 부담을 한정된 소득에 의지하고 있다. 이는 주거 비용에 제약을 주기 때문에 주택의 평수에 비해 그 안에 기거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국내?외에서 일본의 주택을 ‘토끼장’이라고 표현하겠는가. 더구나 일본의 주거 비용은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칠 만큼 비정상적으로 높다. 과거 일본은 엔고의 영향으로 주거나 토지에 비해 인구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항상 확대한다’는 고도성장의 전제 조건은 인구 감소와 경제 성장의 둔화로 무너진 지 오래다. 이 원리는 주택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식구별로 차는 장만하더라도 식구수대로 집을 사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앞으로 일본의 주택을 남아돌게 만들 것이다. 물론 일본의 저출산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70년대 전반부터 세대당 출생률이 2.08명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1970년대 후반부터는 세대수의 증가율도 정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발표에 의하면 ‘합계특수출생률’이 처음으로 1.29명을 기록했다. 2005년 1.26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던 일본의 출산율은 이른바 ‘단카이 세대’의 출산 증가로 1.29명까지 반짝 상승한 뒤, 2013년에는 1.21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감소와 더불어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 독신을 선언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그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한 명의 자녀만을 두려 한다. 이와 함께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어 세대당 인구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의 잠재적인 성장력은 ‘일 할 수 있는 생산 인구’와 ‘노동량’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데 단카이 세대가 본격적으로 퇴직하는 2005년을 기점으로 노동 인구는 눈에 띄게 감소할 것이다. 생산 노동인구가 급격한 감소를 보이는 가운데 부양해야 할 고령자 등의 종속인구는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종속인구인 고령자들이 은퇴 후 여가 생활을 위해 전원생활로 돌아가면, 그들의 주거 이전에 따른 새로운 주택의 수요가 창출된다. 하지만 이런 주택의 수요를 해결할 사람이 없는 관계로 전원생활로 돌아간 고령자들과 동일한 수의 빈 집이 생겨날 것이다. 생산 인구는 주택을 새로 구입하거나 취득하는 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구 문제만 보더라도 일본 경제는 정체 기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욱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희생양은 중산층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다. 그러나 현재 일본 사회는 기본적인 도리를 상실한 지 오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간단한데 일본의 공적 채무를 최대치로 계산하면 무려 1경 6천조 원이 된다. 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누가 갚을 것인가. 60년에 걸쳐 상환하는 국채의 특성상 우리의 자녀와 손자들이 갚아야 하는 것이다. ‘1경 6천조 원이나 되는 빚을 짊어질 아이 따위는 낳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구성하는 세대교체를 어렵게 한다.
일반적인 상속의 의미도 역전된 지 오래다. 현재 일본에서의 상속은 ‘유산’이 아닌 ‘부채’의 의미가 더 크다. 일본 사회를 유지하는 세 가지 근본적인 명제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첫째, 세대교체가 소멸한다. 둘째, 유산 상속이 부채 상속으로 역전한다. 셋째, 세대 간 부양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가족과 개인이 중시되지 않으며, ‘무덤에서 요람까지’ 국가에 의존하려는 자세가 다음 세대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채무를 조성했다.
비록 부실 토지 위에 지은 토끼장일지라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은 세대교체, 세대 간 부양, 재산과 예지의 상속이라는 신성한 인류의 의무를 유지하고 연속시켰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의 집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이전에 통계로 사용했던 ‘표준가족’이란 엄마?아빠?두 명의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이었다. 그러던 것이 21세기에 접어들자 싱글 세대와 2인 세대가 되었다. 2인 세대라 하더라도 구성원은 부모?자식이거나, 아이를 낳기에는 많은 나이의 부부이기 때문에 더욱 세대교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택 마련’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일본인들의 삶을 살펴보면, 독신 시절 목조 아파트를 거쳐 결혼 후에는 임대 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자녀가 생기면 아파트를 분양받고, 교외에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마련해 노년을 보내는 것이 순차적인 삶의 단계이다. 일본인들에게 내 집 마련은 부동산 불패신화처럼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국민성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이라는 일본 정부의 구호에 현혹되어 그것이 곧 가계를 압박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0년 전 부동산 버블기의 국민주택공고 주택자금의 대출 금리는 7%로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재테크의 방법이자 샐러리맨들의 꿈인 내 집에 눈이 먼 일본인들에게 높은 금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일 서른다섯의 나이에 35년 상환 기간인 주택자금 대출을 받았다면, 70이란 나이가 되어서야 대출상환의 늪에서 벗어나게 된다. 주택이 구입 당시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면 35년 대출도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렵게 장만한 주택은 현재 구입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지가는 하락했으나 대출금은 그대로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민들은 정부 정책에 힘입어 거액의 주택자금 대출을 했고, 그 결과 중산층은 가족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가족의 꿈’을 이룬 것 같던 내 집이 결국에는 가족 전체를 앗아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택금융공고의 ‘여유 있는 상환’은 ‘인생을 멍들게 하는 대출’이었다.
한때 일본에서는 ‘회사 인간’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샐러리맨들은 회사를 위해 제 한 몸 바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업들 역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종신고용이나 호봉제로 아낌없는 보답을 해 주었다. 당신 일본인들은 80%가 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이 사라지자 기업들은 조직의 슬림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불황의 긴 터널과 함께 거리로 내몰린 것이다.
그 결과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성인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된 신조어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리터족’이다. 프리터족이란 프리 아르바이터의 줄인 말로, 일반 아르바이트생을 말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평생직장을 찾지 못한 프리터족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포기한 ‘니트족’이 더 큰 문제다. 니트는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머리말을 딴 합성어로, 제대로 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은 젊은 사람들을 뜻한다. 수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바로 일본의 중산층 자녀라는 데 있다.
기업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아파트 덤핑
수도권의 신축 아파트 중 대다수가 상식 밖의 할인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파격적인 할인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다만 아파트 투자자 및 분양주가 신문과 잡지의 광고주였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인 D사와 M사를 비롯한 명문 기업도 가격인하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나친 가격 경쟁은 기업의 원래 목적인 이익은 뒤로 하고, 눈에 보이는 판매량 올리기에 열을 올리는 기이한 현상을 불러왔다. 마치 기업들이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경기 파악에 민첩한 부동산 투자가들은 ‘재래시장에서 값을 깎거나 덤이라도 하나 더 얻어 내려고 실랑이를 하듯’이 아파트 가격 역시 흥정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분양에서 기업의 이익은 20% 정도로 본다. 이를 초과하는 할인은 그대로 기업의 적자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이 할인되는 것은 공급 과잉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급이 넘치면 가격은 내려간다. 이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경제 법칙이다. 주거하는 사람에 비해 아파트 수가 많은데 어떻게 가격이 올라가겠는가. 그런데 무슨 일인지 실수요자가 없는 신규 주택의 공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면 그 전의 아파트는 중고가 된다. 최신형 가전제품을 선호하듯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성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부동산업자들은 새로운 물건에 자신의 물건이 밀리지 않도록 재고정리에 들어간다. 부동산업자들에게는 재고를 떠안고 있느니 적자를 감수하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파트의 대량 공급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의 부동산업계는 공급과 수요의 원칙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 법칙마저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무법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아파트가 남아돌면 그만 지으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본 경제의 근본과 직결된 뿌리 깊은 ‘집안 사정’이 있다. 일본 정부의 경기회복 기폭제가 바로 아파트 건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노동 인구 중 4분의 1이 어떠한 형태로든 건설업과 연관되어 있다. 이 중 실제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이러한 ‘준 건설업자’인 새시, 커튼, 인테리어, 가구 등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를 따져보면 더더욱 아파트 건설을 중단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오늘도 새로운 아파트는 계속 건설되고 있다.
일본 은행을 지탱해 주는 가계 이자
일본 대형 은행들은 부실 종합건설회사, 할인점 다이에, 가네보 화장품 등 문제 기업들에게 거액을 융자했다. 버블 붕괴 후 이 기업들의 대출금은 일제히 부실채권으로 변해 회수불능채권을 증가시켰다. 이는 대형 은행들의 수익 구조를 바꾸어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대형 은행들이 기업이 아닌 가계의 주택자금 대출로부터 수익을 올리고자 영업 노선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대형 은행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며 금리와 보증료 할인 공세를 강화했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2003년 7월 도쿄미쓰비시은행의 ‘연리 1.9%의 초저금리 덤핑 상품’이었다. 도쿄미쓰비시은행의 행보에 다른 은행들이 자연스럽게 담합하자 금리 할인은 고착화되었다. 하지만 은행이나 주택자금 대출을 받은 서민이나 피폐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개인들의 파산 건수가 증가하면서 회수불능채권이 늘어났고, 보증 회사가 수취하는 보증료는 금세 고갈되었다. 은행의 얼마 되지 않는 주택자금 대출 이익도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형 은행들은 주택자금 대출 경쟁을 멈출 수가 없다. 가계의 이자가 아니면 은행의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겨우 기업의 부실채권 처리에 한숨을 돌린 은행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개인 대상의 소매 금융뿐이다. 때문에 각 은행들은 주택자금 대출을 핵심 사업으로 삼고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금융청이 주택자금 대출의 채산성을 문제시하기 시작했다. 주택자금의 대출 회수불능 상태가 빈발해지면서 은행 경영이 다시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버블기에 발생했던 부실채권을 겨우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주택자금 대출이라는 부실채권이 기다라고 있는 것이다.
대형 은행들의 주택자금 대출은 몇 년 동안 크게 증가했다. 2003년 4대 은행의 신규 주택자금 대출은 전년 대비 27%나 늘었다. 저금리를 배경으로 신상품을 판매하거나 부동산 회사를 대상으로 영업 라인을 강화한 덕분이다. 일본의 주택금융공고가 대출을 축소했던 분량을 대형 은행들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감안하지 않은 상황이 하나 있다. 주택자금 대출을 받은 개인들 역시 지갑이 텅 빈 지 오래라는 것이다. 은행은 대기업으로부터 얻은 손실을 소매 금융 쪽에서 회복하려 개인 고객들을 유치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실채권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여전히 개인들의 텅 빈 지갑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직을 미덕’으로 삼는 일본의 국민성은 대부업체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은행의 돈을 갚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주택자금 대출은 받은 후 개인들의 파산 기간은 대략 5~6년 정도 소요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은행 자체도 부실화될 것이 틀림없다. 개인과 기업이 파산하면 세금을 낼 사람이 없다. 국가의 파산도 시간 문제다. 개인과 건설업체, 은행과 정부 모두 한 배를 탄 셈이다.
올드타운화되고 있는 뉴타운
무지개 끝에 묻어 있는 황금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사람들처럼 일본인들은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뉴타운으로 찾아들었다. 일본의 토지불패신화와 맞물려 뉴타운의 광풍은 한때 일본 열도를 뒤덮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친환경적인 뉴타운에 둥지를 트는 것은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요, 한층 업그레이드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기 넘치던 뉴타운이 언제부터인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의 여파로 뉴타운을 구성하는 주요 연령층이 실버 세대인 까닭이다.
땅을 사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주택을 임대로 돌리는 것에는 무지했던 사람들 탓에 뉴타운의 새로운 인구 유입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부동산 버블기에 서구적인 중?상류층의 삶을 꿈꾸며 뉴타운을 찾아들었던 1세대들은 버블 붕괴와 함께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뉴타운이 아니라 ‘베드타운’ 혹은 ‘올드타운’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뉴타운 구상 단계에서 고령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문제다. 신도시의 인기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고, 아름다운 주택만 지어두면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오리라 믿었던 것이다. 이 인기 많은 뉴타운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이제 뉴타운에 남은 사람들은 붕괴한 가족과 자산 가치가 급락한 토지 건물, 그리고 막대한 주택자금 대출만을 남겨 두었다.
1980년대에 뉴타운이 형성된 계기는 많다. 그 중에서도 정부나 언론의 영향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이라는 선진국의 멋들어진 삶’을 보여준 후 그들과 같은 생활을 누리라며 교외의 주택단지에 돈을 쏟아 붓게 했기 때문이다. 예전의 ‘찬란하게 빛났던 교외’는 도쿄 도심에서 반경 40km 정도의 위치에 분포해 있지만 현재 그곳에는 젊은 세대들이 없다. 도심으로 일하러 나갔던 장년층이 밤이 되면 잠자기 위해 돌아오는 ‘황혼 베드타운’일 뿐이다.
젊은이들이 남아있지 않은 황혼 베드타운은 소매치기, 빈집털이, 사무실털이, 빈차털이, 조폭 등의 범죄 다발 지역이 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범죄 유형 보고서’에 의하면, 금요일의 아내붐이 일었던 20년 전에 비해 강도 발생 건수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이 적을수록 범죄는 증가하며, 불안정한 치안 때문에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5대 부실채권
1998~2000년까지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냈으며, 소설 『단카이 세대』로 유명한 사카이야 다이치의 수많은 저서들을 살펴보면 대기업이나 관공서를 무사히 정년퇴직한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25년 근속’이라는 훈장과 함께 주택자금의 대출 납입도 거의 끝난 상태가 된다. 이는 편안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보장하는데, 만약 대출 잔금이 남았더라도 퇴직금으로 청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특히 단카이 세대의 퇴직 문제가 불거지는 요즘 2007년을 기점으로 주택 시장은 더 큰 난항을 겪게 될 것이다.
1980년대 말, 해외 언론은 ‘다시 침몰하는 일본’이라는 표현으로 일본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1990년대에는 ‘여전히 침몰하는 일본’, 그리고 21세기에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본’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여전히 일본 경제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다. 굳이 해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경지 불황은 서민들이 먼저 느끼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본인들의 정신적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른을 공경하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왔지만 노인을 도와드릴 여유가 없다. 개인들이 정신적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사이, 일본의 기업들은 회계혁명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연결회계 ?시가회계?감손회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위 3가지의 엄격한 회계 기준은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부동산을 순식간에 부실채권으로 만들기도 한다.
일본의 기업들이 회계혁명에 시달리고 있다면, 샐러리맨들은 벗어나기 어려운 ‘5가지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채무 면제 상태의 전업주부. 둘째, 다수의 자녀. 셋째, 주택자금 대출 상환액이 남아 있는 주택. 넷째, 부양해야 하는 부모님. 마지막으로 본인이다. 삶의 당연한 전제 조건들을 부실채권이라 부르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는 인기 있는 경제 저널리스트 모리나가 타쿠로가 ‘3대 부실채권론’을 주장하며 펼친 이론이다. 필자는 거기에 두 가지 항목을 덧붙였을 뿐이다. 이 논리는 일본 경제의 노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만큼 가계의 회계혁명도 잔인하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채무 면제 상태의 전업주부는 정기적인 소득이 없다. 집안에 앉아서 남편의 수입을 관리하며, 20년 정도 지출만 유발하는 자녀를 출산한다. 샐러리맨들은 그 부담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자녀가 생기면 양육비와 교육비 등으로 많은 돈이 들어간다.
둘째, 자녀는 성인이 되는 20년까지 한없이 지출만 하는 주체인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가정의 커다란 손해를 끼친다.
셋째, ‘내 집’은 부실 토지 위에 지은 토끼장이다. 매월 지불해야 하는 대출 상환금은 최하 80만 원 정도다. 이는 얼마든지 인생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자금이다. 돌아오지 않는 돈을 20~30년 동안 허공에 뿌려대고 있는 것이다. ‘내 집’은 어느새 ‘미래 구속 장치’이자 ‘평생 감옥’이 되어 샐러리맨들의 발목을 잡는다.
넷째,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장남?장녀?독자들이 결혼한 경우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률이 매우 높다. 자신의 노후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점에서 빠른 고령화에 비해 노후에 대책이 없는 부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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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당신 자신. 이렇다 할 시가회계도 적용할 수 없는 최대의 골칫거리다. 자신의 능력이 좋아 장부 가격이 높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시장 가치는 경우에 따라 제로일 수 있다. 그런 당신이 부실 토지 위에서 주택 대출금을 상환하는 세상은 얼마나 잔혹한가. 나아가 ‘5대 부실채권’ 중 주택 외에는 모두 살아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운 채권이라 하겠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