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유혹

   
장득수
ǻ
흐름출판
   
19500
2006�� 09��



>■ 책 소개
투자의 성공 방정식은 싸게 사서 비싸게파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원리이지만 많은 이들이 자기 안에 있는 탐욕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투기의 거품에 빠져든다. 그래서 현명한 투자를하고 싶다면 ‘적어도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위기와 기회, 즉 투기와 투자를 구분해내는 것이 시장에서살아남는 선결조건이다. 


이 책은 과거 투기 사건들 속에서 투기의 위험 신호는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사람들이 그투기에 말려들어 낭패를 보았는지 보여준다. 네덜란드 튤립 투기를 시작으로, 영국 남해회사 스캔들, 영국과 홍콩의 대형 금융기관 파산사건 등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인간들의 욕심과 공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미국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투자의 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생애와 투자철학을 시대적 배경, 투자수단 등의 변화와 함께 살펴본다.


■ 저자 장득수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신영증권 조사부에 입사, 증권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코넬대에서 MBA를 마친 후 신영증권으로 복직하여주식부에서 현물 주식 운용과 선물·옵션 팀장을 맡았다. 잠시 쌍용 템플턴 투신(현 템플턴 투신)에서 리서치와 펀드 운용을 담당하다가 신영증권리서치센터로 돌아와 투자전략을 담당하며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 그 후 태광투신(현 흥국투신)을 거쳐 2006년 7월부터 영국계 투신운용사인슈로더 투신운용에서 자산운용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증권시장의 유혹』이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 시장의 두 얼굴, 투기와투자를 찾아서


1부 투기 심리와 투기의 역사
1. 동양의 거품경제
2. 신경제, 새로운 패러다임의 원조
3. 1분도 길다
4. 반짝이는 것의 유혹
5. 한국인의 투기
6. 거품의원조


2부 대가에게 배우는 투자 아이디어
7. 발로 뛰는주식투자
8. 세계는 넓고 투자할 곳은 많다
9. 투자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10. 투자 천재들의 경연장
11. 자본주의의새로운 왕
12. 뚝심 있는 가치투자의 승리
13. 성공한 경제학자


부록 ― 보충 설명과 참고한 책들





투자의 유혹

투자의 유혹


1부 투기 심리와 투기의 역사

"가격이 상승할 때는 봄바람 같지만 일단 하락이 시작되면 한 맺힌 신들의 복수와도 같이 갑작스럽고 처절하게 다가온다." 주식투자의 대가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말이다. 투자자는 천국과 지옥을 한꺼번에 경험한다. 투자는 이처럼 욕망의 칼집과 허망의 칼날 사이를 교차하는 변곡점에 자리한다.


주가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움직이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욕심과 공포로 대변되는 사람의 마음이다. 주가가 철저히 기업의 이익이나 금리, 환율 같은 경제지표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경제학자나 애널리스트들이 떼돈을 벌어야 하는데 내가 아는 경제학자 중 큰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애널리스트의 말만 믿고 투자해서 큰돈 벌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주식시장이나 상품시장, 부동산 시장과 같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모든 시장에서 심리적 요인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바로 투기와 거품, 그리고 거품의 붕괴 과정이다. 일단 투기가 생겨 가격이 상승하면 기본적인 가치 이상으로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고 거품이 생긴다. 투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본질적 가치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 투기에 빠져드는가

사실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굳이 감정적으로 구분을 하자면 내가 하면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다. 성공해서 돈을 벌면 투자고, 실패해서 돈을 잃으면 투기다. 사람들은 가끔씩 큰 투기에 빠진다. 투기의 시작은 한 국가나 사회에 어떤 외부적 충격이 가해지면서 시작된다. 이런 충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전쟁의 시작이나 종결 혹은 천재지변, 대풍년, 대흉년과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변혁이나 새로운 정권의 등장, 철도나 자동차,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과 신제품의 발명 등을 들 수 있다.


투기에는 국경이 없다

투기의 대상은 제한이 없다. 주식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에서 수입한 물품, 외국으로 수출될 물품, 유가증권, 유가증권을 사고 팔 수 있는 권리, 토지, 건물, 아파트, 외환 등 어떤 것도 투기의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들 투기 대상의 공통점은 바로 신선함이다. 진정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는 "새로운 것"이 주로 투기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증권시장에서 첨단기술 관련 주식, 인터넷과 같이 처음 등장하는 신제품이나 신약 등이 단기적으로 급등한 경우가 많은 것도 이에 대한 반증이라고 하겠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이 도입되면서 미래 수익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퍼지고 과도한 자본이 집중될 때 투기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버블 형태의 금융 위기는 일반적으로 약소국이 아니라 강대국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특정 국가가 갑자기 부를 축적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버블이 생겨나기 좋은 환경이 된다.

거품의 원조

국가가 벌인 사기극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산업혁명 직전의 영국은 갑작스레 증가한 부(富)로 저축은 많이 했지만 투자할 곳은 변변치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부유층에서도 주식을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으로 간주되었다. 1693년에는 499명의 주주만이 동인도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주식에 대한 배당에는 세금이 없었고, 특히 주식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산이었기 때문에 주식 소유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했다. 


1711년 설립된 남해회사는 전쟁으로 인한 영국 정부의 채무(연 6%의 이자로 1,000만 파운드)를 떠안는 대신 특정한 권리를 인정받기로 했다. 정부는 이 회사가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고, 미국과 태평양의 섬들을 상대로 노예무역과 각종 식민지 무역을 할 수 있는 독점권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영국 정부가 남해회사라는 대리인을 통해 계획한 사기극이었다. 실제로 이 지역은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어서 1년에 3편의 배밖에 교역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1718년 영국과 스페인이 다시 전쟁을 시작하자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조지1세는 이 회사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초창기에 이 회사는 일반 국민들에게 큰 신뢰를 얻었다. 정부가 출연하고 정부가 보증하는 회사이니 "절대로 망할 수 없는 회사"라고 믿었던 것이다. 투기 분위기가 형성되자 사람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수익에 현혹되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주식은 폭등했고, 추가로 발행된 주식의 매각대금은 정부의 추가적인 채무를 떠안는 데 사용되었다. 결국 1720년 초 이 회사는 정부의 모든 채무를 인수했다. 이 회사의 주식은 공개되기 전에 정부 각료와 의회의 주요 인물들에게 뇌물로 건네졌다.


1720년 런던 시민들은 남해회사 주식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당시 런던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마차를 몰고 증권거래소 앞으로 모여드는 바람에 그곳은 수주일 동안이나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남해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임원들은 영국과 스페인이 이런저런 계약을 맺고 있는 것처럼 그럴 듯한 소문을 퍼뜨렸다. 4월, 남해회사는 주당 300파운드로 신주를 공모했다. 지불 방법은 60파운드를 증거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8번에 걸쳐 분납하는 것이었다. 남해회사는 발행가는 높지만 지불 방법은 간편한 방식의 신주공모를 계속하며 주식 가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올려 놓았다. 1720년 1월 말 129파운드에 불과했던 남해회사 주가는 3월에는 330파운드, 5월에는 550파운드, 6월에는 890파운드, 그리고 여름이 되자 1,000파운드가 넘었다.


투기 열풍은 또 다른 형태의 남해회사를 양산해냈다. 어떤 인쇄업자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방법으로 돈벌이를 할 기업"을 설립할 계획이라며, 이 기업의 주식 5,000주를 1주당 100파운드에 발행한다고 했다. 그가 주식 공모를 위해 오전 9시에 문을 열었을 때 많은 군중들이 모여 먼저 청약하려고 경쟁을 벌였다. 오후 3시 사무소를 닫았을 때는 1,000주가 응모되었고, 각 투자자는 2파운드씩 증거금을 예치했다. 적지 않은 돈을 손에 넣은 인쇄업자는 그날 저녁 유럽대륙으로 사라진 후 아무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수십 개의 새로운 주식회사들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고, 이 회사들에는 "버블"이라는 적절한 별명이 붙었다. 남해회사 주식투기 시절 생겨난 회사를 당시 "버블회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거품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가운데 일주일을 넘긴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그보다 생명이 짧았다. 당시 이런 버블회사는 100여 개가 넘었다고 한다.


1720년 7월 정부는 이른바 "버블법"을 만들어 부실기업을 제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해회사로 투자할 돈이 다른 곳으로 새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해회사의 투기에 결정적으로 찬물을 끼얹은 것은 남해회사 임원들이 주식이 실제 가치보다 엄청나게 과대 평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밀리에 매각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부터였다.


드디어 사람들이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000파운드를 호가하던 주가가 9월이 되자 175파운드로, 12월에는 124파운드로 폭락하자, 수천 명이 파산하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피해자 중에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도 있었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해 "내가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남해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갖고 있던 은행은 문을 닫았다.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던 국왕은 급히 귀국하여 의회를 소집했다. 계속된 조사 결과 경영진의 부정 행위가 밝혀지자 그들 소유의 부동산은 거의 몰수되었다. 런던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남해회사 경영진은 거리에서 군중들에게 돌팔매를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영국의 금융계와 경제는 한동안 큰 공황기를 겪어야 했다.



2부 대가에게 배우는 투자 아이디어

투자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마이클 밀켄은 1980년대 미국 증권가에서 저질러진 탐욕, 조작, 내부자 거래, 적대적 M&A, 저축대부조합 도산을 비롯해 모든 부정적인 사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금융과 신용거래의 혼돈기였던 1960년대에 증권시장에 뛰어든 밀켄의 뛰어난 통찰력과 하루 15시간 이상을 쏟아붓는 일에 대한 집념과 열정은 필라델피아의 중형 증권회사인 드렉셀 번햄 램버트를 일약 월가의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반 보에스키나 빅터 포스터와 같이 부정적인 인물과 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터너방송, 타임워너, 메드코, 매커우통신 등을 위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해주는 등 월가에서 새로운 금융기법을 창조했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심지어 밀켄을 싫어하는 비평가들조차도 그와 드렉셀이 1980년대 기업가치와 주가의 불일치 현상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밀켄의 등장과 정크본드 시장

미국에서 발행되는 채권은 보통 무디스와 스탠더드&푸어스의 2대 대형 신용평가기관이 평가한다. 평가의 기준은 만기시까지 이자와 원금을 지불할 수 있는 발행자의 능력과 전반적인 금리 수준에 달려 있다. 1970년대에는 낮은 등급이거나 등급이 매겨지지 않은 기업에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투자회사들조차 낮은 등급의 회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 채권은 유동성 부족으로 매매하기 힘들고, 기업 평판상 위험요인이 커서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익률이 높은 채권은 일시적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한 기업이거나 과거 한두 차례밖에 평가된 적 없는 이른바 "타락한 천사"라 불리는 부실회사에서 발행한 채권들뿐이었다.


밀켄이 노린 시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밀켄은 낮은 기업 평가를 받아 높은 이자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소형 혹은 중형 회사들의 채권, 즉 정크본드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거래의 대가, 밀켄

정크본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동성 부족이었다. 때문에 드렉셀의 고객들은 이런 종류의 채권매수를 꺼렸다. 하지만 밀켄은 고객들의 거부 반응에 굴하지 않고 대상 기업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한 후에 고객들을 설득했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수익률 제고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던 연기금이나 보험회사와 같은 대형 기관투자가들도 끌어들였다.


1977년 초반 밀켄은 정크본드 시장의 25%를 장악했다. 밀켄은 시장 조성 중 주로 2차 인수 물건을 취급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일은 최초 발행된 물량을 대형 보험회사가 인수한 후 시장에 매각하면, 이를 다시 매수해 원하는 고객에게 재매각하는 것이었다. 이런 거래는 SEC의 규제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정크본드 세계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철저히 지배하는 세계였다.


밀켄 자신이 바로 정크본드 시장이었다. 채권 유통시장은 일반 주식시장과는 달리 공개 경쟁매매보다는 고객 대 고객 간에 매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가 어떤 물건을 보유하고 있고,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개인의 가장 핵심적인 노하우이다. 밀켄은 실로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누가 어떤 종류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고, 그가 얼마에 매수했으며, 수익률은 얼마이고, 누가 그것을 원하는지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투자자들은 밀켄의 분석자료를 믿게 되었고, 돈만 벌 수 있다면 밀켄이 중간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크본드와 M&A의 결합

1970년대에 단순히 정크본드 시장을 조성함으로써 시작된 밀켄의 천재성은 1980년대 M&A 붐과 더불어 만개하기 시작했다. 증권가에서 부채를 통한 인수/합병 붐은 벼락부자라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밀켄과 드렉셀 덕분에 1980년대는 "거래의 시대"로 불렸다. 1986년 한 해에만 총 3,973건의 기업 인수/합병이 이루어졌으며, 거래 금액도 2,360억 달러에 달했다. 1985년까지 드렉셀은 정크본드 시장에서 50%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밀켄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금융가에서는 그를 J. P. 모건 이후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자본구조와 기업가치

그는 자산 가치가 시장 가치에 못 미치는 경우 레버리지를 이용해 기업을 매수/합병했고, 1986년 이후 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자 그때부터는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 기존의 부채를 정리하는 이른바 디레버리지 전략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기업이 처한 환경에 따라 적절히 자본 구조를 변경시킴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의 핵심이다.


파멸과 시련이 닥치다

드렉셀의 엄청난 이익과 무법자 같은 운영방식이 계속되자 감독기관은 대상이 되는 기업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조작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SEC는 우선 내부거래 혐의로 드렉셀의 데니스 레빈을 기소했고, 이어 이반 보에스키를 내부거래 혐의로 기소해 벌금 1억 달러를 매겼다. 그리고는 이반 보에스키로부터 밀켄 기소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보에스키의 증언을 토대로 루디 줄리아니 검사가 이끄는 검찰은 98개 항목에 대해 밀켄을 기소했다. 1990년 법원은 밀켄에게 11억 달러의 벌금형과 10년형을 내렸다. 드렉셀은 곤경에 처했다. 2,000억 달러에 달하던 정크본드 시장도 공황 상태였다. 여러 가지 요인들, 이를테면 부도의 증가, 경기 침체 등의 위기로 인해 정크본드의 강제적 매각을 결의한 연방법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정크본드의 가격은 순식간에 50% 이상 하락했다. 정크본드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드렉셀은 10억 달러 이상의 평가손을 기록하며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152년의 전통과 5,300명의 종업원, 그리고 36억 달러에 달하던 자산은 월가 사상 가장 큰 파산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밀켄은 1991년 3월에서 1993년 1월까지 22개월간 복역 후 증권업계에서 다시 활동하지 않겠다는 조건과 함께 법원의 감형 결정으로 가석방되었다.



투자 천재들의 경연장

헤지펀드의 특성과 위험

퀀텀 펀드는 대표적인 헤지펀드다. 헤지펀드는 주로 부자들의 자금을 모아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외환,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로, 1949년 처음 등장했다. 헤지펀드는 미국 법의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이는 SEC가 499명 미만의 투자자들로 구성된 펀드에 대해서는 보고서 제출 의무를 면제한다는 정보 공개 예외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도 연간 소득이 20만 달러 이상이고 자산 규모가 100만 달러 이상인 인정 받은 개인투자자와 500만 달러 이상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들로 한정하고 있다.


이들은 소수정예를 표방하며, 바하마, 버뮤다 등과 같은 세금이 없는 국가나 지역, 이른바 조세 회피 지역에 형식적인 회사를 두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전통적인 투자 대상인 주식이나 채권은 말할 것도 없고 대체 투자 대상으로 불리는 상품이나 부동산, 사모주식, 외환 등 돈이 되는 것은 모두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이 펀드는 차입을 통한 대규모 신용거래를 이용한다.


소로스 투자의 성공과 실패

소로스의 퀀텀 펀드가 1969년 처음으로 설립되었을 때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기술주 공매도 덕분이었다. 출범 당시 운용 자산이 400만 달러에 불과했던 퀀텀 펀드는 1970년대 초반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하던 디즈니, 폴라로이드와 같은 소위 "멋진 50종목"을 공매도하여 모든 투자자들에게 악몽의 해였던 1973년과 1974년에 많은 이익을 남겼다. 시장의 흐름에 맞서 과감히 반대편에 선 덕분에 1973~74년 폭락기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퀀텀 펀드는 유럽 통화위기가 극심했던 1992년, 1993년에도 잇따라 68.6%, 67.4%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려 이 분야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마르크화와 달러에 대한 투자로 15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퀀텀 펀드라고 항상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1994년과 1995년 초에는 미국과 일본 간에 무역협상이 타결되면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엔화는 1995년 초반 달러당 79엔까지 치솟았고, 그는 단 두 달 동안 6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또한 영국에서 대규모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여 1994년에는 3%의 미미한 배당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5년 구조조정 등을 거쳐 적자에서 흑자로 실적이 호전된 몇몇 턴어라운드 종목에 집중 투자하여 39%라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소로스의 투자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1997년 7월 태국 중앙은행은 바트화의 달러 연동제를 포기하고, 관리변동 환율제로 이행한다고 발표했다. 헤지펀드들의 바트화 평가절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은 소로스에게 2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또 유로화의 출범과 함께 유로화의 강세를 예상한 것이 빗나가 1999년 1월 출범 이후 24%나 하락해 10억 달러 넘게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인터넷 주식의 하락에 대규모로 배팅한 것도 실패해서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난 20년간 포트폴리오의 위험측정 방법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소로스는 그런 방법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계량적 방법은 대부분 효율적인 시장을 가정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자신이 주창하고 있는 불완전한 이해와 재귀 이론에 상충된다는 것이다. 계량적인 방법은 보통 99%의 경우에는 원만하게 작동하지만 1%의 오류 가능성이 있고, 그 1%의 가능성에 소로스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소로스의 재귀 이론

그는 현대를 "기존의 모든 경제이론이 파괴된 불가측성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는 수요와 공급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는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시장 이론은 이미 죽었다고 단언한다. 증권시장은 장기적으로는 이론과 같이 매우 효율적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소형주 효과, 저PER 효과 등과 같은 정보 및 시장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시장의 비효율성이 작용한다. 또한 투자자 역시 정보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수용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비이성적인 두려움이나 군중심리, 통제력 상실 등 행동과학적인 모순으로 인해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 없다.


불균형한 시장에서 강세장과 약세장이 반복되는 "폭등/폭락 사이클"은 필연적이다. 이 불균형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가격 폭등 또는 폭락의 과정을 통해 시정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세 반전"이다. 이런 대세 전환점을 미리 포착해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소로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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