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 외(역:이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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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00
2020�� 10��



■ 책 소개


금융은 왜 야만의 무기가 되었나 

1988년 10월, 미국 19위 대기업 RJR 나비스코의 최고경영자 로스 존슨은 LBO(차입 매수)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최대 식품 회사 나비스코 브랜즈와 업계 1위를 다투던 담배 회사 RJ 레이놀즈가 1985년 합병해 탄생한 이 회사의 수익과 매출액은 견실했다. 하지만 폭락한 주가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한때 70달러대까지 갔던 주가는 40달러대로 주저앉아 꼼작하지 않았다. 존슨은 LBO 추진만이 실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평가된 주가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면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누구에게든 회사를 팔아 주주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앞의 야만인들》은 로스 존슨이 시작하고 KKR,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모건 스탠리, 살로먼 브라더스, 골드만 삭스 등 금융계 큰손들이 대거 참여한 사상 최대 LBO의 전모를 파헤치고 그 의의를 추적해 낸 심층 탐사 보도의 걸작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두 저자는 100건이 넘는 인터뷰를 통해 1988년 10~11월 여섯 주에 걸쳐 벌어진 드라마틱했던 월스트리트 전쟁의 과정을 샅샅이 복원해 낸다. 

인수 전쟁에 동원된 각종 금융 기법과 전략 전술, 치열한 입찰 경쟁, 관련 인물들의 커리어와 내면 심리, 거래 참여 회사들의 역사와 성격은 물론, 사내 권력 투쟁, 경영진과 이사진의 알력 및 이들이 누리는 특전과 호화 생활, 언론과 여론의 향배, 경제 현황까지 생생히 재구성된다. 아울러 “호황의 80년대”를 기점으로 어떤 발전과 변모 과정을 거쳤기에 현대 금융과 투자 시장, 기업 경영에서 “야만성”과 “한몫 챙기기”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는지를 예리하게 천착함으로써 금융 투자의 본질과 기업 윤리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 저자  
브라이언 버로 (Bryan Burrough)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를 지냈으며 현재는 《베너티페어》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 세계 비즈니스, 금융, 경제 분야 저널리즘을 대상으로 한 제럴드 로브 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저서로 《문 앞의 야만인들》 외에 《분노의 시대: 미국의 급진적 지하 조직, FBI, 그리고 잊힌 혁명 폭력의 시대(Days of Rage: Americas Radical Underground, the FBI, and the Forgotten Age of Revolutionary Violence)》 《갑부들: 텍사스 최고 석유 자산가들의 흥망성쇠(The Big Rich: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est Texas Oil Fortunes)》 《공공의 적: 미국 최대의 범죄 물결과 FBI의 탄생(Public Enemies: Americas Greatest Crime Wave and the Birth of the FBI, 1933-34)》 《잠자리: 나사와 미르 탑승 위기(Dragonfly: NASA and the Crisis Aboard Mir)》 《복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에드먼드 사프라 비방하기(Vendetta: American Express and the Smearing of Edmond Safra)》가 있다

존 헬리어 (John Helyar)
《월스트리트저널》 《포천》, ESPN, 블룸버그뉴스 기자를 지냈으며, 현재는 투자사의 연구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문 앞의 야만인들》로 브라이언 버로와 함께 제럴드 로브 상을 수상했다. 저서 《왕국의 영주들: 야구의 진짜 역사(Lords of the Realm: The Real History of Baseball)》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100대 스포츠 도서에 올랐다.

역자 이경식
작가이자 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문샷』, 『두 번째 산』, 『플랫폼 기업 전략』,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신호와 소음』 등 120여 권이 있다. 저서로는 『1960년생 이경식』, 『나는 아버지다』, 『상인의 전쟁 1』, 『상인의 전쟁 2』, 『이건희 스토리』 등이 있다.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 , TV 드라마 「선감도」, 연극 「동팔이의 꿈」, 오페라 「가락국기」, 음악극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등의 대본을 썼다.

■ 차례
추천의 말_ 홍춘욱 
우리는 어떻게 이 책을 썼나 
서문 
주요 등장인물 

프롤로그: 로스 존슨, RJR 나비스코의 LBO를 선언하다 
1장 회사보다 거래가 더 좋은 새로운 인종의 출현 
2장 오레오 쿠키 회사와 카멜 담배 회사의 기묘한 합병 
3장 인수 합병의 황제 헨리 크래비스의 등장 
4장 주가 폭락이 RJR 나비스코 수장을 괴롭히다 
5장 사모펀드 KKR의 성장과 LBO 전성시대 
6장 모두가 돈방석에 올라앉는 그날을 꿈꾸며 
7장 RJR 나비스코가 일으킨 거대한 소용돌이 
8장 크래비스, 시어슨의 독주에 제동을 걸다 
9장 포스트먼, LBO 전쟁에 참전하다 
10장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KKR와 시어슨의 동상이몽 
11장 진영 내부 암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12장 끝내 결렬된 200억 달러짜리 평화 협정 
13장 이사회가 전면에 나서고 언론은 집중포화를 퍼붓다 
14장 임박한 마감 시한과 절정으로 치닫는 혼란과 긴박감 
15장 퍼스트 보스턴의 입찰 참여로 전황은 요동치고 
16장 크래비스의 연막전술과 퍼스트 보스턴의 악전고투 
17장 승패는 갈렸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8장 112달러 대 109달러, 끝장 승부의 최종 결과는? 
에필로그: LBO의 쇠퇴와 함께 한 시대가 저물고 

 




문 앞의 야만인들


회사보다 거래가 더 좋은 새로운 인종의 출현

1988년 가을까지 로스 존슨의 삶은 줄곧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는 회사 안에서 권력을 쥐려 했을 뿐만 아니라 낡은 기업 질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낡은 질서 아래에서 대형 기업은 느리고 꾸준하게 움직이는 존재였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은 이른바 ‘컴퍼니맨’들이 좌우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한 회사에 바치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중간 간부들과 기업의 집사 역할을 하는 고위 간부들이 바로 이 ‘컴퍼니맨’이었다. 이들이 회사를 보존하고 또 회사의 가치와 능력을 신중하게 끌어올렸다.


존슨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비컴퍼니맨’이 되고자 했다. 그는 전통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고 필요 없이 부담만 되는 조직들을 폐기했으며 경영 방침을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원숙해지는 ‘비컴퍼니맨’이라는 새로운 인종, 즉 거래와 결과를 좇아 움직이는 유목민의 한 사람이었다. 이 새로운 인종은 자기들이 부여받은 임무는 회사에 투자한 사람에게 복무하는 것이지 회사의 전통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이들은 또한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도 적지 않게 투자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비컴퍼니맨’ 가운데 존슨의 개성이 가장 돋보였다. 그는 언제나 가장 규모가 큰 거래를 했으며, 언제나 가장 큰 목소리로 때로 건방진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었으며, 또 언제나 가장 큰 즐거움을 좇았다. 그는 나중에 이른바 ‘호황의 8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세기의 인수 합병을 추진함으로써 1980년대를 호황의 꼭대기까지 밀어 올린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시도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또 가장 장엄한 한 기업을 바람 앞에 흩뿌리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회사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입니다. 최고경영자는 배의 선장이고.” 언제나 정해진 대로만 가야 마음을 놓는 이런 관점은, 1930년대의 대공황에 놀라고 두려워서 감히 풍파를 일으킬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들어맞는 윤리였다. 하지만 존슨은 동년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공황 시기를 살지 않았고,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싸우지도 않았으며, 또 한계를 인정할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낡은 개념의 팀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브로드웨이 조나 레지 잭슨 같은 인물이었다. 그들처럼 인습 타파주의자였고, 일관된 충성심보다는 자기 자신의 변덕에 충실한 냉정한 텔레비전 세대의 인물이었다.


오레오 쿠키 회사와 카멜 담배 회사의 기묘한 합병

1950년대에 레이놀즈는 하나의 거대하고 행복한 가족이었다. 경영진은 공장 노동자들이 아침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 마을에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통근차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해 긍지를 가지고 제품에 따라 맞는 담뱃잎을 골라내고 또 담배를 포장하는 기계 하나하나를 낱낱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어떤 신제품이 잘 팔릴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서는 공장 노동자 250명으로 구성된 패널들의 의견을 물었다. 윈스턴의 배합 비율도 노동자들이 250가지가 넘는 다양한 시제품을 직접 피워 본 뒤에 의견을 모았으며, 당시 판매 책임자였던 보먼 그레이 주니어가 이렇게 해서 선택된 시제품을 최종적으로 직접 피워 보았다. “바로 이거야!” 그가 무릎을 쳤고, 그렇게 해서 윈스턴이 탄생했다.


조심하세요. 스탠더드 브랜즈가 나비스코와 합병했는데, 지금은 나비스코가 남아 있지도 않아요.” 그러자 수석 플래너 폴 봇이 콧방귀를 뀌었다. “낸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회장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야?” 심지어 두 회사의 제품들조차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관계가 부자연스러운 관계라고까지 말했다.


호리건은 나비스코의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플레이시먼 마가린이 금연 운동을 강력하게 펼쳤던 미국심장학회와 손잡고 마케팅 활동을 계획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그 마케팅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다. 물론 존슨은 나비스코 전체와 레이놀즈의 ‘죽음의 상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킬킬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엄마와 애플파이’가 ‘해골과 두 개의 엇갈린 뼈’를 만났네?”


인수 합병의 황제 헨리 크래비스의 등장

월스트리트 사람들과 말이 충분히 통할 사람이 바로 존슨이었다. 물론 인수와 합병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거대한 거래, 새로운 거래……. 존슨이 경영했던 회사들은 모두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자기네 특정 사업 부문을 팔고 다른 회사의 사업 부문을 샀다. 존슨은 계속해서 회사를 재조직했다. 그것도 이미 검증된 이른바 ‘페스킷의 아이들’ 방식으로 말이다. 존슨의 문은 어떤 것이든 그 가능성을 토론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열려 있었다. 타일리 윌슨이나 로버트 섀벌이 이 문을 들어섰고, 가방 가득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 문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RJR 나비스코의 본사가 조지아의 애틀랜타로 이전하면서 투자은행가들이 마치 조지아의 더운 6월 밤에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하루살이들처럼 존슨을 만나러 달려왔다.


LBO의 기본 논리는 비교적 단순했으며 여기에 대해서는 세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논리는 이렇다. KKR와 같은 투자 회사가 한 회사의 경영진과 손을 잡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주식을 공매해 마련한 자금으로 이 회사를 사들인다. 그리고 이때 발생한 부채는 이 회사의 운영 수익으로, 그리고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 회사에 속한 일부 사업 단위들을 팔아서 갚는다.


주가 폭락이 RJR 나비스코 수장을 괴롭히다

1987년 10월 19일, 주식 시장이 붕괴했다. 금융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존슨은 쿼트론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RJR 나비스코는 일주일 전만 해도 60달러 중반에서 거래되었는데 이날 정오 무렵에 40달러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 몇 주 동안 계속 그 선에서 맥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존슨이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시작이었다. 낮은 주가가 앞으로 여러 달 동안 그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었다. 12월에 회사는 수익이 25퍼센트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의 투자자들은 이런 공시 내용을 무시했다. 심지어 그해 겨울에 식품주들의 주가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RJR 나비스코는 여전히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존슨이 아무리 애쓰며 회사의 면모를 바꾸려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주식을 담배 회사 주식으로만 바라보았다. 전체 매출액 가운데 60퍼센트를 나비스코와 델몬트가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RJR 나비스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1988년 봄이 되어도 월스트리트는 지난해 10월의 주식 시장 붕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개별 투자자들은 떼를 지어 시장을 빠져나갔다. 거래량도 줄어들었다. 사자는 주문이 지지부진하면서 주식회사 미국은 새 주식 공모에 완전히 관심을 잃었다. 다른 경제 분야에서처럼 월스트리트도 단 하나의 보장된 수입원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인수 합병이었다.


인수 합병은 궁극적으로 볼 때 월스트리트가 만들어 낸 것이다. 왜냐하면 이기든 지든 혹은 질질 끌든 간에 투자은행 측에서는 이자나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다. 이 수수료는 1980년대 내내 월스트리트가 급속 성장하는 엔진의 연료로 작용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그해 봄 주식 시장의 이익을 다시 한 번 한껏 부풀렸다.


시장 붕괴 이후 석 달 동안 찬바람만 부는 적막에 휩싸여 있다가 1월에 들어서면서 과거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활발한 인수 바람이 불었다. 주가가 떨어진 덕분에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형 인수 합병 사례만 해도 열두어 개나 되었고, 이런 열기는 한때 폴 스틱트가 다녔던 회사이기도 했던, 신시내티에 본사를 둔 ‘페더레이티드 디파트먼트 스토어스’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60억 달러 규모의 인수 전쟁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1988년 전반기에 이루어진 기업 인수 합병 시도 사례만 해도 성적이 상당히 좋았던 해인 1985년 한 해 동안의 사례보다 많았다. 월스트리트는 짧은 시간 안에 인수 합병 거래 중독증에 걸렸다.


사모펀드 KKR의 성장과 LBO 전성시대

주로 차입금을 이용해 회사를 매입했기 때문에, 나중에 차입금 상환 문제로 압박을 받지 않으려면 미래의 수익 및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태도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그에게 기업의 대차 대조표는 타로 카드였고 예상 현금 흐름은 수정 구슬이었다. 콜버그는 일단 어떤 회사에 손을 대면 그 회사의 비용 지출을 가능한 한 줄이고 필요 없는 사업 부문을 매각해서 부채를 갚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경영진에 스톡옵션이라는 인센티브를 부여했는데, 이런 조치가 경영진으로 하여금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서 회사를 더욱 효율적으로 경영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철저히 고수했다. 따라서 나중에 회사를 팔 때 회사의 가치는 살 때보다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LBO는 그때 이후로 이런 기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추잡한 속세 시장의 작업이었고, 이 작업을 ‘제롬의 아이’ 크래비스는 닥치는 대로 해치워 나갔다.


이 일로 월스트리트 사람들의 머리가 돌아 버렸다. 깁슨 그리팅스는 과거 골드러시의 계기가 되었던 서터스밀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LBO의 원리조차 모르면서 LBO를 시도하려고 나섰다. 그리고 또 실제로 시도했다. 매입된 회사의 매입 가격을 모두 합한 금액을 기준으로 할 때, 1979년부터 1983년까지 LBO 현상은 열 배가 커졌다. 깁슨 그리팅스의 사례가 있은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1985년에 벌써 10억 달러 정도 규모의 LBO가 18건이나 나타났다. 로스 존슨이 RJR 나비스코를 LBO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기 전의 5년 동안 있었던 LBO의 총 금액은 1819억 달러였는데, 이에 비해 다시 그 이전의 6년 동안 LBO의 총 금액은 110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어떤 LBO에서 조성한 자금이든 간에 약 60퍼센트의 담보 채무는 민간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이다. 그리고 전체 자금 가운데 10퍼센트만 매입자가 직접 투자한 금액이다. 그리고 햄버거 속의 고기 패티라 할 수 있는 나머지 30퍼센트는 소수의 대형 보험 회사에서 나오는데, 문제는 이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보통 여러 달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에 ‘드렉설 버넘 램버트’라는 투자 회사는 조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보험 회사의 자금 대신 위험도가 매우 높은 이른바 ‘쓰레기’ 본드를 동원했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노리고, 사냥감은 LBO 회사를 찾았다. 사냥꾼과 사냥감, 그리고 LBO 회사는 모두 그 결과에서 이득을 누렸다. 유일하게 피해를 보는 쪽은 그 회사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회사가 새로운 빚을 떠안으면서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회사가 군살을 빼려고 구조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해고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는 콧노래를 부를 뿐, 이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크래비스, 시어슨의 독주에 제동을 걸다

주머니에 여분의 돈이 한 푼이라도 있는 투자은행가는 무조건 LBO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경쟁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또 힘을 발휘하면서 크래비스로서도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그리고 단 한 번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수많은 회사들이 자신이 개척한 영토에 숟가락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어슨 리먼까지 나타난 것이었다.


KKR가 1987년 펀드를 조성하면서 설정했던 방침은 그 누구도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큰 규모의 LBO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만 하면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이런 기대 속에 길을 닦으며 RJR 나비스코를 점찍어두고 있었는데, 대출을 통한 인수와 그냥 인수의 차이도 잘 알지 못할 것 같은 피터 코언이라는 작자가 불쑥 나타나 180억 달러짜리 거래를 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니 크래비스로서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크래비스로서는 그 뻔뻔스러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뻔뻔한 모든 인간들, 특히 피터 코언에게 따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포스트먼, LBO 전쟁에 참전하다

월스트리트는 카르텔이 점령해 버렸다고 포스트먼은 믿었다. 그 카르텔이 바로 정크 본드였다. 이 카르텔의 최고 스승은 ‘드렉설 버넘 램버트’의 마이클 밀컨이었고, 가장 강력한 인물은 KKR의 헨리 크래비스였다. 이 카르텔이 이제 RJR 나비스코를 먹기 위한 싸움에서 서서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 카르텔의 상품인 고수익 정크 본드는 1988년에 자금을 모으기 위해 사용되었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주요 투자자, 증권 회사, 그리고 LBO 전문 투자은행이 참가했다. 포스트먼은 정크 본드가 LBO 산업을 나쁜 길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월스트리트까지 망쳐 놓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포스트먼은 정크 본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규모 주요 투자은행 가운데 정크 본드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포스트먼 리틀이 거의 유일했다.


포스트먼이 생각하기에 정크 본드는 하잘것없는 투자 회사도 복용하기만 하면 괴력을 발휘해서 거대한 회사를 이길 수 있는 마약과 같았다. 이 마약은 인수 합병 분야에서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이제 이 분야에서는, 포스트먼 리틀이 해 왔던 것처럼 회사를 인수할 때 경영진도 함께 인수해서 회사를 키운 다음 5년이나 7년 뒤에 되팔아서 수익을 실현시키는 형태의 사업 방식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포스트먼은 믿었다. 이제 이 분야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끊임없이 거래를 만들어 냄으로써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되고 말았다. 경영진은 회사를 팔아넘김으로써 수수료를 챙기고, 투자은행가들은 자본 수수료를 챙기고, 채권 전문가들은 정크 본드 수수료를 챙겼다. 포스트먼이 보기에 전체 LBO 산업은 이제 빠르게 한탕 치고 빠져 버리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사기꾼 기술자들이 판치는 곳이 되고 말았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KKR와 시어슨의 동상이몽

존슨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악몽 같았다. 진짜 현실 세계는 애틀랜타에 두고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은 유리 거울을 통과함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이 초현실의 세계에서는 예전의 숫자와 예전의 규칙, 그리고 예전의 금융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돈은 종이였고 종이가 돈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대가로 25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 그런 황당한 세계였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우두머리를 가장 걱정스럽게 한 것은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보통 ‘거래의 화장발’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볼 때 그 합의 내용은 터무니없었다. 이 합의 내용이 결국 일반에 공개될 게 분명한데, 그 순간 이 합의 문건은 탐욕 그 자체로 비칠 게 확실했다. 거래가 성사된 뒤에 20억 달러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기존의 경영진 일곱 명이 희희낙락하며 나누어 가진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기업 이미지가 막대한 타격을 입을 건 불을 보듯 뻔했다.


LBO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핵심적인 몇 가지 쟁점들 가운데 하나인 비용 절감 문제로 화제가 옮겨 갔다. 존슨의 말을 들은 로버츠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존슨이 지출 경비 삭감의 도끼를 휘두를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것이다. 비용 절감이라는 것 자체가 과대평가된 절차라는 게 존슨의 설명이었다. “그런 일은 돌도끼를 휘두르는 네안데르탈인이 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비용을 줄일 수 있겠습니까? 정말 제대로 효과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한테 소개 좀 시켜 주십시오.”


끝내 결렬된 200억 달러짜리 평화 협정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보다 더 철저하게 구매 대상을 살펴야 하는 게 바로 LBO 분야이다. 대상 기업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감당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비용을 삭감할 수 있고, 또 부채를 신속하게 청산하기 위해선 어떤 사업 부문을 매각할 수 있는지 등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느냐에 따라 LBO의 성패가 갈린다.


중고차를 구매하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LBO에서 구매자는 앞으로 그 자동차가 몇만 킬로미터나 더 달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지 사소한 부분까지 정확히 예측하고 파악해야 한다. 까딱 잘못해서 엔진 수명이 다 되었다거나 크랭크축에 금이 가 있는 줄 몰랐다면 그야말로 망하는 지름길이다. LBO에서도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계산이나 예측을 잘못했다가는 사는 쪽이나 파는 쪽 모두 쪽박을 차고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헨리 크래비스인데, 중고차 소유주들이 팔려고 내놓은 자동차의 엔진을 보여 주기는커녕 타이어조차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모든 것이 자존심의 문제라는 것을 린다 로빈슨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월스트리트의 고객들을 으르고 달래는 남다른 재주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피터 코언과 토머스 스트라우스, 그리고 헨리 크래비스와 나머지 사람들은 궁극적인 목표 대상, 이번 경우에는 RJR 나비스코를 완전히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RJR 나비스코가 더는 문제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들이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없었던 것은 주식의 인수 가격과 여러 조건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경쟁심 덩어리들인 파크애버뉴의 마초 실업가들 사이의 자존심과 기 싸움이 문제였다. 따라서 코언은 절대 크래비스에게 항복하지 않을 것이고 크래비스 역시 코언에게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그녀는 잘 알았다. 그리고 크래비스는 스트라우스와 협상하려 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각자 다들 자기가 최고라고 혹은 최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사회가 전면에 나서고 언론은 집중포화를 퍼붓다

존슨을 때리는 신문 기사들이 줄지어 나왔다. 5250만 달러의 ‘황금 낙하산’, 우호적인 RJR 중역들에게 나누어 준 5000만 달러 가치의 ‘양도제한조건부주식’ 52만 6000주, 존슨 자신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손해 보지 않도록 설정한 상황 등이 그런 내용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언론은, 이사 각각이 모두 1500주씩 받은 양도제한조건부주식과, 컨설팅 계약을 통해 이사들이 받기로 되어 있는 두둑한 컨설팅 수수료 등 존슨이 이사회에 부여한 온갖 혜택까지 포착했다. 겉으로 볼 때 너무나 분명한 존슨의 엄청난 탐욕과 RJR 나비스코 인수를 둘러싼 입찰자들 사이의 추잡한 다툼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연이어 일어나는 인수 합병 사태가 빚어내는 불안정한 환경에 진저리를 치던 미국 사회는 크게 요동쳤다.


임박한 마감 시한과 절정으로 치닫는 혼란과 긴박감

스튜어트가 들은 내용은 놀라웠다. 그는 RJR 나비스코의 가용 현금을 4억 5000만 달러나 더 많이 추정했다. ‘황금 낙하산’ 지불금은 3억 달러로 그가 추측한 것보다 많았다. 그리고 ‘기타 용도 현금’에 대해 그가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다. 그가 설계한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인 5억 5000만 달러가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스튜어트는 따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도 13억 달러나 되는 돈이 자기가 설계한 내용과 차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주당 가격으로 치면 무려 6달러의 차이였다.


퍼스트 보스턴의 입찰 참여로 전황은 요동치고

크래비스가 제시한 가격은 한 주당 94달러였고 총액으로 따지면 216억 2000만 달러였다.

하지만 존슨은 한 주당 100달러라는 가격으로 크래비스를 압도했다. 총액으로 따지면 230억 달러였다. 쉽게 끝날 것 같았다. 9시 정각에 앳킨스는 투자은행가들을 보내고 이사들에게도 그날은 집으로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만나 존슨이 승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로 잠정적인 결론 내렸다. 그사이 토요일에는 두 입찰자 측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불러 자기들이 동원하고자 하는 유가 증권에 대해 설명을 듣기로 했다. 양측 다 대규모의 현물지급증권을 자금 동원 계획에 넣고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 회의 때 이와 관련된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형식적인 절차일 수도 있었지만, 앳킨스는 만반의 준비를 다해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할 생각이었다.


퍼스트 보스턴의 제안서는 나중에야 앳킨스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제안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처음에는 이 제안서도 다른 ‘장난 전화들’처럼 한 번 웃고 던져 버릴 생각이었다. 그가 보기에 마의 제안은 아직 아이디어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완성이었다. 하지만 퍼스트 보스턴은 브라이언 핀의 분할불입어음 전략을 활용한 구조 조정 작업을 전제로 할 때 한 주당 105달러에서 118달러 사이에 RJR 나비스코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크래비스의 연막전술과 퍼스트 보스턴의 악전고투

입찰자들이 죽었다 살아나서 새로 월요일 아침을 맞을 때 월스트리트 전역에는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금융 시장은 조용했다. 투자은행가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고 느렸다. 월스트리트의 거대한 인수 합병 기계는 비밀리에 멈춰 섰다. 이유는 단순했다. RJR 나비스코 공매의 최종 승리자에게 150억 달러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제공하게 될(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상업 은행들이 모두 전투 준비를 하느라 RJR 이외의 다른 인수 합병은 손을 놓았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RJR 나비스코로 향하면서 대부분의 거래가 보류되었다. 정보에 굶주린 아버트라저(차익 거래자)들 역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다. 무법자들이 최후의 대결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집 안으로 몸을 숨기는 서부 영화의 한 장면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승패는 갈렸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골드스톤은 자기네가 사기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미치광이 같은 퍼스트 보스턴의 입찰 때문에 자신들의 제안이 뒤집히고, 결국 승리를 도둑맞은 거라고 했다. 1차 입찰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에 입찰 가격을 더 올릴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가격을 더 올린다는 것은 자기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할 때, 전체 입찰 과정이 공정해지기 위해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찰해야 한다고 골드스톤은 주장했다. 그는 연필 지우개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사무실 안을 서성이면서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우린 아직 진 게 아닙니다! 피터, 우리는 더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시작해 놓고선 한 시간 만에 끝내 버리는 이따위 엉터리 공매가 어디 있느냐고요! 이 공매 절차에는 규칙도 없잖아요! 우리는 입찰서를 제시하면서 더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끝내 버린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요!”


12달러 대 109달러, 끝장 승부의 최종 결과는?

최종 입찰안을 손에 든 로아틴과 투자은행가들은 회의장에 딸린 작은 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비전문가들이 보기에는 112달러를 제시한 존슨 진영이 109달러를 제시한 KKR 진영을 누르고 이길 게 뻔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경우가 정말 드물다. 코언과 굿프렌드가 리셋 조항을 거부했기 때문에 112달러에서 얼마를 빼야 했다. 과연 얼마를 빼야 할지 투자은행가들은 그 계산을 해야 했다.


몇 분 뒤 로아틴이 이사회 회의장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양측이 제시한 가격은 108달러에서 109달러 사이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고 유례없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가 증권을 놓고 보면, 나의 전문적인 소견으로 판단할 때 양측이 제시한 가격은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재무적인 관점에서도 양측 모두 아무 하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무승부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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