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남/여

   
조세핀 최 외
ǻ
두앤북
   
14000
2019�� 03��



■ 책 소개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모른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전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승진의 기회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나 사회적 이슈가 된 성희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자주 그리고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는 ‘함께 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남녀가 함께 일하니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견해도 있지만, ‘참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성과 일하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물론 아예 기피하는 이들까지 있다. 이유가 뭘까?

 

깊고 오랜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여자들은 ‘남자가~’라는 프레임으로 서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차이를 강조하고 단절과 차별을 내면화했다. 남직원들은 ‘여자들은 복잡해, 시야가 좁아, 감정적이야’라며 같이 일하기가 피곤하다고 말하고, 여직원들은 ‘남자들은 단순해,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해, 왜 그렇게 서열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책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회사의 남녀관계에 메스를 들이댄다.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남녀의 차이가 어떻게 갈등으로 번지고, 오랫동안 조직에서 묵인되어온 왜곡과 차별의 작동 원리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낱낱이 밝힌다. 더 나아가 회사의 남녀가 서로를 대해왔던 생각과 태도에 숨어 있는 뿌리 깊은 인식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쉽지 않은 남녀관계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차이를 장점으로 승화시켜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직,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 놀라운 성과를 창출하는 팀워크를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 저자 
조세핀 최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후 패션잡지 에디터로 경력을 쌓았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지만, 한곳에 안주하는 것을 참지 못해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제과기능사가 되어 빵을 만들고, 대한민국 제1호 슈퍼모델의 홍보책임자로 일하는 등 다방면에서 끼와 재능을 발휘했다. 모 국책연구소의 대외홍보 담당자를 끝으로 공식적인 직장생활을 접은 뒤로는 프리랜서 마케터로 활동하며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를 비롯한 유수 기업들의 국내 론칭을 주도했다. 지금은 서래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산책을 즐기며, 프리랜서 마케터로, 잡지 기고자로 살고 있다.

 

신이지
20여 년간 외국계 기업과 국내 대그룹 계열사의 HR부서에서 실무와 이론을 축적해온 전문가. 직원들을 이끄는 책임자로, 직장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로 전방위적 활동을 해오면서 기업들의 성차별적 문화와 리더들에게 부족한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의 문제가 심각함을 절감하고, 양성평등의 문화 구축과 남녀의 파트너십 형성에 관한 연구와 강의에 힘써왔다.

 

‘남녀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협력하는 문화가 개인과 조직을 성장으로 이끈다’는 믿음으로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곰처럼 뛰고 있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아빠들의 모임-대디베어’를 운영 중이다.
 
■ 차례
프롤로그 / 우리가 ‘하나’ 된다면…

 

1. 아마조네스로부터의 편지
CARTA DO AMAZONES

# 수상한 아이코서히드런
01 쉽지 않은 시작
02 여왕의 전략
03. 두 인간의 대립
04. 중재의 손길
05. 소문의 정체
06. 불만 폭발
07. 부회장의 초대
08. 누가 옳은가
09. 위기의 순간
10. 그들의 신경전
11. 꼬임에 넘어가다
12. 새나간 비밀
13. 편견과 위안
14. 결전의 날
15. 이탈자
16. 차이를 넘어
17. 찾아온 평화
18. 변화를 앞두고
19. 그와 함께 춤을

 

2. 우리는 어떻게 원팀이 될 수 있을까?
HOW CAN WOMEN AND MEN BE ON ONE TEAM?

 

PRELUDE
왜 ‘여검사’라 하는가
‘벤츠 여女검사’의 불편한 진실 / 고위직은 남자들의 전유물?

여자랑 일하기 힘들어요
“레크리에이션 대형으로 앉아주세요” / 단일팀, 혼성팀, 더 강한 팀은? / 파워맨들의 고민

 

WORK
남직원은 사람을, 여직원은 내용을 본다
우리가 회의를 한 적이 있었나요? /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 남자들이 좋아하는 회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회의 / 창의적인 조직을 만든 이것

거시남, 미시녀의 진실
구글을 발칵 뒤집어놓은 문건 / 386컴퓨터 vs 태블릿PC / 다투게 만드는 ‘읽기’의 차이 / 남자는 살피고, 여자는 알리고

‘수다’를 떨게 하라 수다를
우리는 왜 이야기하지 않을까? / 수다떠는 여성은 에너지 충전 중 / 남녀 집단에서 대화의 리더는?

오빠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갈등에 대처하는 남녀의 자세 / 공감하려는 여자, 통제하려는 남자 / 여자의 감각으로 이해하고, 남자의 심장으로 해결하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다름
짜장면으로 통일? / 같아지려는 남자, 달라지려는 여자 / 틀림에서 다름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PEOPLE
여자들은 의전에 약하다?
능력의 차이는 없지만 인식의 차이는 있다 / 줄 서는 남자들, 손 잡는 여자들 / F팀과 M팀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차이

여자 상사는 불편하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 현대판 ‘살리카법’ / 삐딱한 남자들에 대처하는 방법

누나가 지켜줄게
남자는 지시하고 여성은 따른다? / 호봉제가 낳은 이상한 풍경 / ‘누나’와 결혼하는 남자들 / 기적의 승리를 이끈 후배의 발칙함

남녀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7년의 성희롱 재판 / 회사는 강간의 왕국? / 남자들, 펜스를 치다 / 펜스룰? 팬시룰!

‘여자의 적’은 여자?
L팀장이 K상무를 밀어냈다고? / 운전이 서툰 여자는 모두 ‘김여사’ / ‘여적여’의 프레임을 깨려면

멘토-멘티는 동성끼리?
여성 직원-여성 리더 멘토링의 문제점 / 체 게바라를 만든 여성들 / 사람을 성장시키는 관계의 조건

 

LIFE
모여서會 먹는食 회식, 뉘우치고悔 탄식하는息 회식
등산은 먹으러 가는 거지요 / 회식은 업무의 연장일까? / 장점은 살리고 문제는 없애는 그들의 방식

‘집사부일체’가 꿈의 직장을 만든다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 ‘가정적인 남자, 일도 잘하는 여자’는 위험해 / ‘최고의 직장’을 만든 프로그램

남자는 당황했고, 여자는 침착했다
아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알파걸’은 이미 있었다 / 위기에 대응하는 남녀의 자세

여자가 일하면 출산율이 떨어진다?
먼 나라 여성 나라 / M자형 탈모를 막아라 /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

 

POSTLUDE
왜 ‘여성 1호’는 사표를 썼을까?
‘여자’라는 스트레스 /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 남녀관계 문제의 근본 해법

원팀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바퀴벌레 숫자의 비밀 / 얼굴 빨개진 아르바이트생을 위하여 / 최 이사가 북카페로 간 까닭은…

 

에필로그 / 다르지만 즐거운, 몰랐지만 놀라운
참고자료

 




회사 남/여


우리는 어떻게 원팀이 될 수 있을까? - HOW CAN WOMEN AND MEN BE ON ONE TEAM?

왜 ‘여검사’라 하는가

2011년 말, 대한민국은 한 사건으로 들끓었다. 30대 후반의 여성과 50대 초반의 남성이 저지른 불륜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간통죄라는 것이 있어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난리를 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그냥 때가 되면 있을 법한 유부남 유부녀의 치정 사건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세간의 화제가 된 이유는 두 사람이 단순히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업무상 청탁이 오갈 수 있는 관계라는 점과,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한 것이 그 이름도 찬란한 벤츠라는 점이었다.


‘벤츠 여女검사’의 불편한 진실

그런데 일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바로 사건 당사자인 여성에 대한 여론들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였다. 불륜상대인 남성에 대해서는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 ‘로펌을 운영하는 모 변호사’, ‘스폰서 변호사’ 등의 표현을 쓰면서 여성에 대해서는 유독 한 가지 표현만 쓴다는 것이었다. ‘벤츠 여女검사’


벤츠는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업무상 청탁이나 금품수수를 부각시키려고 썼다 치더라도 ‘여女’라는 수식어를 꼭 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모습은 주위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여사장, 여의사, 여비행사, 여성 임원 등 직업 앞에 성을 구분하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해당 직업에서 여성이 의외의 존재임을 강조하는 표현을 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간호사는 여간호사로 표기하지 않고, 안내와 진행을 맡은 이들 역시 여안내원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여자랑 일하기 힘들어요

단일팀, 혼성팀, 더 강한 팀은?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서던캘리포니아대의 산업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웬디 우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남성 또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학습조직과 남녀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는 학습조직에 동일한 과제를 부여한 뒤 그 성취도를 평가하는 실험이었다. 성별 구성만 달랐을 뿐 나머지 조건은 똑같았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양한 직군의 직장인들에게 이 실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를 질문해보았다. “남자들만으로 짜인 조직이 효율적 토론을 통해 과제의 해답을 가장 먼저 찾았을 것 같다.” “여자들만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가장 창의적인 답을 찾아냈을 것 같다.” “남녀가 섞인 조직은 의견이 엇갈리거나 서로의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해 과제의 답을 찾는 데 가장 고생했을 것 같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남녀가 고루 섞여 있는 조직이 단일한 성으로 이루어진 조직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각도에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그러한 시도가 월등히 나은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이와 관련해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에서 조직학을 강의하는 프랜시스 밀리컨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남성 또는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에서 여성 또는 남성은 성적으로 소수집단이 되는데, 이러한 소수의 성별 집단 구성원들은 직무 불만족, 정체성의 혼돈, 차별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해결책은 소수 집단을 의도적으로 성장시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소수 집단을 건강하게 성장시켰을 때 두 집단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서로 발전적인 경쟁을 하며 단일 성별 또는 다수의 성별로만 이루어진 집단에 비해 높은 수준의 성과를 창출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직업군을 선택하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랫동안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진 군대와 경찰에 여성들이 진출하여 활약을 펼친 지도 오래되었고, 금녀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남성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법조계와 의료계는 물론 토목, 기계공학 영역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여 뚜렷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남직원은 사람을, 여직원은 내용을 본다

우리나라에서 도금 순위 10위 안에 드는 대형 건설사의 주택건축사업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김정철(가명, 50세 남성)이사는 해외에 파견되어 나갔던 3년을 제외하고는 24년여의 직장생활 대부분을 본사 내근 없이 건설 현장에서 보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다 보니 여성 동료라고는 거의 없었고, 직원 역시 현장 공무팀에서 사무를 보조하는 여직원을 제외하고는 남자 직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건설 현장은 온갖 위험물이 가득하고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중장비가 휙휙 지나다녀 자칫 방심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터와 흡사한 환경이라 한순간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었고, 회의 분위기 역시 살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가 회의를 한 적이 있었나요?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컨테이너 가건물인 현장 사무실 뒤편에 모여 담배를 나눠 피거나 일과를 마치고 근처의 부대찌개집에서 모둠스테이크에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게 모든 것이 이전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가 이사로 승진하여 다른 현장의 소장으로 나가기 전에 잠시 본사 TFT의 리더를 맡으면서 발생했다. 채 한 달이 안 되어 그는 CHO Chief Human-resource Officer 에게 불려가게 되었다. CHO의 경고를 받은 그는 굳이 누가, 무슨 내용으로 투서를 했는지 묻지 않아도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회의 때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 별다른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두 여자 과장, 도대체 회의의 기본도 모르는 직원들이었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 두 여자와 마주쳤다. 참아야 했지만 김 이사는 감정이 북받쳐 따지듯 물었다. “자네들은 내가 진행하는 회의가 그렇게 못마땅했나?” 그의 질문에 두 사람은 잠깐 당황한듯하다가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사님, 언제 저희가 회의를 한 적이 있었나요? 이사님 공지사항 전달 말고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회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회의

여성 직장인들이 회의시간을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이유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핑퐁게임을 하듯 말과 말, 의미와 의미를 서로 주고받으며 뜻을 모으거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반면 남성들, 그 중에서도 일정 직급 이상의 남성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유형은 대체로 일방향이다. 흔히들 남성적 커뮤니케이션을 일컬어 ‘건배사 커뮤니케이션’, 여성적 커뮤니케이션을 ‘계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데,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남성들이 중심인 심야 술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떠올려보자. 먼저 나서기를 좋아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대화를 주도한다, 그가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다음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으면 처음에는 앞서 말한 사람과 비슷한 주제의 말을 하는 것 같다가 전혀 다른 맥락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말들이 오가며 늘어지는가 싶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날 술자리를 만든 사람이나 최고 연장자 또는 그날의 물주에게로 향하게 된다. 거의 건배사가 끝남과 동시에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자리를 뜨게 된다. 이른바 건배사 커뮤니케이션의 대략적인 스케치다.


이와 달리 여성들이 주고객층인 대낮의 퓨전한정식집이나 커피가 싸고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이들이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깔깔대고 웃는다. 이야기에 집중해서 듣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말을 끊고 자신의 이야기를 끼워 넣기도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계속해서 저마다의 경험과 의견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머, 시간이 이렇게 됐네? 다음은 언제 모일까?”라는 멘트와 함께 자리가 마무리 된다. 계주 커뮤니케이션이다.


개인별 차이가 있지만, 남성들은 대체로 ‘물 흘러가듯’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 별다른 이견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의사가 결정되면 ‘좋은 회의’였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은 다르다. ‘물이 출렁거리듯’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한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런 분위기와 방식을 중시한다. 결론이 났어도 서둘러 끝내는 회의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회의에서 요구받는 리더의 역할도 서로 다르다. 남성들 사이에서 리더는 회의의 대미를 장식해주는 역할, 즉 논의를 마무리하고 논쟁의 마침표를 찍어주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반면 여성들은 리더가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중간에 끊어지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해주기를 바란다.


오빠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공감하려는 여자, 통제하려는 남자

얼마 전 H그룹의 연수원에 강의하러 갔다가 겪은 일이다. 점심식사를 마친 연수생과 교육 진행자, 강사 들이 커피를 손에 들고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30대 남성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걷다가 컵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반들반들한 화강암 바닥 위로 커피를 쏟아버리고 말았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고를 친(?) 당사자보다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먼저 50대 남성 : 저,저,저, 봐라. 길 가면서 전화기 들여다보더라니!

곧이어 40대 남성 : 어벙한 녀석. 내 그럴 줄 알았다. 저걸 다 언제 닦냐?

이어서 30대 남성 : 어이쿠! 대형 민폐 등장이요. 미화원 여사님한테 걸리면 죽었다. 큭큭

그렇다면 여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반응은 굳이 연령대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하나였다. “어머, 어머, 어머, 저걸 어떻게 해!”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그들이 보인 반응에서 우리는 남녀가 문제 상황에 반응하고 해결하는 방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남성이 문제 또는 갈등의 책임(또는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재빨리 찾아내어 제거하는 방법에 몰두하는 반면, 여성은 먼저 문제적 상황에 깊이 공감하여 감정적 톤을 맞춘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차커우디언(Lorig Charkoudian) 박사는 <갈등 해소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라는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남녀 간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어떤 갈등 상황이 생기면 남녀를 불문하고 그것을 조정하려고 하는데, 세부적으로 활용하는 조정 스킬은 기존의 관념과 달리 남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갈등을 빚은 양측의 주장을 ‘요약하여 다시 말해주기’, 양측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재구성하기’ 등이 그것이다. 여성은 위와 같은 스킬을 발휘하여 양측의 입장을 보다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반면, 남성은 전반적인 해결 과정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자들은 의전에 약하다?

능력의 차이는 없지만 인식의 차이는 있다

호텔에 가보면 여성 리셉셔니스트(receptionist)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각종 국제회의나 행사에서 진행과 의전을 총괄하는 기획자들도 여성인 경우가 적지 않다. 여자가 의전에 어둡고 서열에 둔하다는 남성들의 말은 실상과 다르다.


이에 대해 특급 호텔인 S호텔의 컨시어지(concierge) 서비스를 총괄하는 이정인(가명, 43세 여) 매니저는 자신의 의전에 대해 잘 알고 사회조직의 위계에 밝게 된 것은 그저 단순한 계기로 학습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ROTC 교육을 받고 장교로 군생활을 마치고 온 남자 신입사원들 중에도 어리바리한 경우가 많고, 외동딸로 자라 해외유학을 마치고 갓 귀국한 여자 신입사원들 중에도 몇 번 가르쳐주면 의전 잘하고, 조직의 위계질서도 훤하게 꿰뚫는 경우가 많아요. 전 남녀 간의 차이는 크게 없다고 봐요.”


“다만 이런 건 있어요. 비슷한 수준의 남성 호텔리어와 여성 호텔리어를 비교해보면 의전, 서열 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남성 쪼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뭐랄까. 실제 의전 업무 능력에서는 성별 간 큰 차이가 없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는 확실히 남성이 여성보다 앞서 있죠.”실제 수행 능력에서는 성별의 차이가 없지만, 그것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정도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남녀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남자들, 펜스를 치다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고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자 처음엔 납작 엎드려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남자들이 절묘한(?) 반격의 무기를 들고 나왔다. 이름하여 ‘펜스룰(Pence Rule)’.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2002년 하원의원 시절에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룰(rule)을 밝히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단어다. 느낌은 거창해 보이지만 의미는 단순하다.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여자와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남자들이 이에 열광했다. 여성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던 남자들이 미국의 한 정치인이 밝힌 단순한 원칙을 기막힌 반전의 카드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2018년 초, 한국은 ‘미투(Mee Too, 나도 당했다)’ 열풍에 휩싸였다. 사회, 정치, 문화계의 권력자, 지인, 동료 선후배 등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희롱과 접촉,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제보와 증언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시작은 여성인 S검사가 한 TV방송의 뉴스에 나와 과거에 검찰과 법무부의 실세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상관 A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하면서부터였다.


며칠 뒤, 황당한 기사들이 신문에 뜨기 시작했다. “불 꺼진 서초동, 회식하자고 말도 못 꺼내죠.”, “오해받을 만한 자리는 아예 만들지도, 참석하지도 않아요”, “조직과 팀워크가 중요한 대규모 수사, 어려움 겪을 수도” 여기서 한술 더 떠 “인원이 아무리 모자라도 신임 검사로 여성 검사는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익명의 검찰 간부 인터뷰까지 실은 신문도 이었다. 이때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펜스 (fence)를 치고 스스로 고립되어버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펜스룰? 팬시룰!

인간은 어울려 사는 존재다. 어울려 사는 가운데 갈등도 있고 다툼도 일어나지만, 그런 ‘비용’을 들여 다양성이라는 귀한 가치를 얻고, 이를 토대로 역동성과 창의가 생겨나 사회를 더욱더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비용을 치르는 것이 두려워 아예 펜스를 치고 남녀가 함께 어울려 살아갈 기회를 포기한다면 그것만큼 멍청하고 한심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펜스룰 대신 팬시룰(FANCY Rule)을 정해 지켜보면 어떨까? 팬시룰도 펜스룰처럼 신조어다. 이 말은 여성 인재들과 함께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내고 양성평등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조직들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 그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을 모아 만든 것이다.


F는 ‘Finding Common Poin, 공통점을 찾자’다. 직장에서는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남녀를 떠나 구성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적극 공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A는 ‘Asking First, 먼저 묻자’이고, N은 ‘Not Guess, 짐작하지 말자’다. 이 둘을 같이 묶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남녀 직원들 간의 문제가 상대에게 묻지 않은 채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 기준으로 예단하여 상대의 생각을 넘겨짚지 말고 먼저 묻고 확인하여 피할 것은 피하고 도울 것은 돕는 것이 상책이다.


C는 ‘Check in Advance, 사전에 점검하자’다. 회사의 규정이나 행사에서 성차별을 야기할 만한 요소가 없는지, 양성평등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소지는 없는지 미리 살펴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Y는 ‘Yes is not Yes, 예를 오해하지 말자’이다. ‘예(Yes)’는 진짜 긍정이 아닐 수도 있다. 여성의 Yes는 단지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차원의 수용이거나 적극적인 거부가 아닌 정도의 의미일 수 있다. 남성의 Yes 역시 상대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여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예’라고 말하는 사람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 적절하게 처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사부일체’가 꿈의 직장을 만든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의 가사 노동 분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2014년 기준). 가사 분담시간이 일평균 45분이었는데, 26개국 중 최하위인 것은 물론 유일하게 1시간 미만이었다. 조사 결과가 알려지자 여성단체와 관련 시민단체에서 즉각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노동 분담의 심각한 불균형을 지적하며 그래서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가 부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에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내 남성들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OECD 자료를 근거로 삼았던 것인데, 해석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14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용 현황을 보면, OECD 회원국 평균은 ‘전일제 맞벌이’, 즉 부모 모두 아침에 출근하여 종일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형태가 41.9%로 가장 많았고, ‘외벌이’가 30.8%로 그다음이었으며, ‘전일제+시간제’인 경우가 16.6%로 가장 적었다. 반면 한국은 외벌이가 46.5%로 가장 높았으며, 전일제 맞벌이가 20.6%, ‘전일제+시간제’가 8.8%였다.


남성들은 이 같은 수치를 근거로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피곤해서 쉬다 보면 가사 노동을 조금밖에 도와줄 수 없다.”, “남자들은 밖에서 일하니 여자들이 집에서 가사노동을 도맡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식의 논리를 폈다. 이렇게 남녀 간 의견은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다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환경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남녀가 힘을 모아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특히 가사와 육아에 전일제 노동까지 감수해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주부, 즉 여성의 피로도는 우리 모두가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사회적 문제다. 정부와 언론에서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저출산 문제도, 미래의 경쟁력 강화도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왜 ‘여성 1호’는 사표를 썼을까?

조직문화 관련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는 1인 기업을 설립한 정지희(가명, 51세 여성)대표는 전에 재직했던 모 글로벌 기업 한국법인에서 매번 ‘여성1호’라는 타이틀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퇴사하기 2년 전에는 그토록 꿈꾸던 ‘한국법인 최초의 여성 CHO(Chief Human Resource Officer) 타이틀까지 달았다. 그러나 그는 과감하게 조직생활을 정리하고 창업의 길을 택했고, 그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


‘여자’라는 스트레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가 창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무슨무슨 1호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과 그에 따라붙는 온갖 시선과 편견 때문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항상 주위에서는 ‘여자가~’라는 말을 앞에 붙였다. 처음 한때는 여성에 대한 배려이거나 신기해서 그러는 거려니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적 스트레스가 커졌고, 결국 퇴직 후 개인 사업을 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개방적인 성격에 문제가 생겨도 마음에 담지 않고 바로 털어버리는 성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가 이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다른 여성 직장인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남녀관계 문제의 근본 해법

고정관념 자체도 그렇지만 입 밖으로 나온 고정관념의 표현은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무언가를 단정지어 ‘이건 이렇다’라고 하거나 ‘이건 이래서 안 돼’라고 하면 그것이 일반의 상식이 되고 사회적 통념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굳어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수십 년 간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아온 지역감정이 그랬고, 학력 차별을 불러온 학벌주의가 그랬으며,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직장 내 남녀 문제 또한 그랬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여성은 저래’, ‘남성은 이래’라고 단정지어 내뱉는 말이 우리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넘어서기 힘든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한때 남자와 여자가 함께 다니면 무조건 사귀는 사이로 간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미혼의 남녀는 물론 결혼한 남녀도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남사친(남자사람친구)’,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이다. 그런데 바로 이 남사친, 여사친에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의 답이 들어 있다. 상대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없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을 남녀로 갈라서 다르게 대하려 하는 것에서부터 남녀관계의 문제가 파생된다고 볼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으로 부르고 대하면 될 일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따로 구분하지 말고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 우리가 하는 일로 바라보고 협업의 파트너로 여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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