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우리를 대신해 손혜원이 묻고, ‘공 선생’ 주진형이 답하다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퇴행하는 한국 경제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높았을 때는 국가와 대기업 주도, 관원 대리 체제의 모순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IMF 위기 이후 20년간 다시 성장을 꿈꾸며 방황한 결과가 청년실업, 원청-하청 간 임금 격차, 저출산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다. 성장만 앞세우느라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지워냈던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은 국가 경제를 초월하는 심각한 문제다. 보통 사람들, 특히 청년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오지랖 넓은 손혜원은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 삶과 우리 삶을 바꾸는 단초를 찾기 위해 ‘까칠한 남자’ 주진형을 불러냈다.
주진형은 진보 경제학자이자 CEO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혼탁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 실천해왔다. 그의 평소 소신이 드러난 자리가 바로 국정농단 청문회였다. “한국의 재벌은 조직폭력배와 똑같습니다.” 또한 그는 금융사 대표 중에 유일하게 국민연금이 삼성 세습을 지원하는 일에 반대표를 던졌다.
한마디로, 주진형은 서민의 든든한 우군이다. 한국경제의 권력집중과 재벌 문제,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언론과 정당, 그들만의 세금 구조, 금융업계의 진실 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러는 한편, 보통 사람들이 집값이나 국민연금, 세금 등에 갖는 왜곡된 시선도 교정한다. “우리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열쇠를 밖으로 던졌어요. 저는 그 열쇠를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 저자 주진형
경제학자 출신의 기업경영인.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세계은행을 다니다 귀국하면서 삼성전자로 옮겼다. 이어 외국계 전략컨설팅 회사, 삼성증권, 우리금융지주 등을 거쳐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를 마친 뒤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을 맡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원래 앞뒤 안 보고 뛰어내리는 게 특기다. 한화투자증권에서는 개혁 조치로써 주식 매매를 부추기는 영업방식을 억제하고, 업계 금기 사항인 매도(Sell) 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쓰지 말라는 그룹 지시에 반기를 들어 사임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일축하고 임기를 마쳤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재벌그룹 총수들을 앞에 두고 “재벌은 조직폭력배와 똑같다”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페이스북 LIVE 방송 <경제알바>에서는 한국 경제를 쉽고 예리하게 분석한 결과, 방송 시작 3개월 만에 1,6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진보에 가깝지만 진보 진영 내에서도 쓴소리를 내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공(空) 선생’이란 별칭이 있다.
■ 차례
기획자 서문
저자 서문
1장 똑같은 일 하는데, 왜? *일자리
2장 법 위에 재벌 *재벌과 사법개혁
3장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생 *경제민주화
4장 중소기업은 괜찮고 대기업은 안 된다? *구조조정
5장 위험한 약속, 금융산업 *금융
6장 ‘도장’만 찍는 상급자가 너무 많다 *직장민주화
7장 빈부격차의 주범, 부동산 정책 *부동산
8장 교육개혁으로 경제성장 *교육
9장 가난한 노인이 넘치는 나라 *연금
10장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어떻게? *저출산
11장 우리가 낸 세금, 우리에게 써야 *조세
12장 성장 콤플렉스 *경제성장
에필로그
경제, 알아야 바꾼다
똑같은 일 하는데, 왜? *일자리
지난 10년간 청년 실업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7~8%였던 청년실업률이 2013년부터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10%에 달합니다. 전체 경제구조는 보지 않고 청년문제로만 국한해서 대책을 찾으려고 하면 아무 효과도 없는 대증요법만 나올 수밖에 없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청년실업 문제는 경제 전체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고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졌기 때문이고요.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일은 지금처럼 가계부채가 엄청나고 내수가 죽어 있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경제의 독과점 구조와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로 더욱 경직되어 있어요.
게다가 근래에는 한국 특유의 인구구조 문제도 겹쳐 있습니다. 우리는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라고 하는데 이들이 700만 명(전체 인구의 14.3%)이 조금 넘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도 그 못지않게 많습니다. 어느 기업을 가더라도 직원들 중 이들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연령 분포가 역삼각형인 곳들이 많지요. 이들은 연공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에 월급도 많이 받습니다. 솔직히 기업들로서는 이들이 은퇴하지 않는 한 신규 고용을 늘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인구구조 문제는 단기간에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이런 문제는 총선 공약이나 대선 공약 한두 가지로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공약으로 내걸고 표를 얻고 싶어 하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별로 나아지는 것도 없고 나중에는 자칫 경제 전체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언론까지 포함해서 남에게는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막상 자기는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사실은 여기에 있어요.
정치권에서는 사람들 입에 한번에 넣어줄 수 있는 달콤한 공약을 원하거든요. 국민들이 그것만 믿고 기다렸다간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는데 말이죠.
원청-하청 구조의 이중구조 사회
우리 사회는 크게 봤을 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원청 조직에 속해 있고, 다른 하나는 하청 조직에 속해 있어요. 대기업은 원청회사이고 중소기업은 하청회사이기 쉽죠. 원청회사는 일만 따내거나 기획만 하고 실제 일은 하청회사에서 합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서 일하는 외주업자(프리랜서)와 비슷하죠.
대기업뿐 아니라 공무원, 공기업도 원청에 해당하고 나머지는 거의 다 하청입니다. 원청에 들어가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느냐와 상관없이 월급을 많이 받지만 원청에 처음부터 못 끼거나 하청으로 추락하는 순간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히 일해도 보수가 적어요. 이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생깁니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IMF 위기 이전에는 80% 정도였는데 요새는 50%까지 내려갔어요.
원청회사와 하청회사의 급여 수준이 다른 것은 이윤 차이 때문인가요?
이윤 차이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 관계 때문에 급여 수준이 다른 이중구조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힘 있는 소수가 시장을 장악하는 독과점 경제입니다.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처럼 권력을 쥔 조직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식을 포기하지 않아요. 한 나라의 경제가 만들어내는 부를 나눌 때 원청회사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가져갑니다.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도 일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가져가고요.
이것은 꼭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얘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비정규직이 중소기업의 정규직보다 훨씬 더 많이 받습니다. 흔히들 노동시장이 양분되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분화를 얘기하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임금 격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슈라기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입니다. 즉 원청과 하청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다들 대만처럼 중소기업을 활성화해야 우리 경제가 산다고 말하면서 왜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을까요? 문제가 되는 이런 구조를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경제운용 방식을 따랐습니다. 대만 역시 일본 방식을 따르긴 했지만 인구가 우리의 반밖에 안 되다보니 우리와 달리 중소기업 위주로 경제발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경제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경제발전을 할 때 급하니까 대기업 위주로 시작했는데 그때는 그 폐단이 눈에 잘 안 띄었습니다. 대기업 위주로 고속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은행을 압박해 대기업에 돈을 쉽게 빌려주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가 발전하면서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흥청망청 썼죠. 그때는 이익이 안 나도 매출이 빠르게 늘어나니까 이자 갚을 돈은 나왔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위기 이후에는 은행에서도 수익성을 보지 않고는 돈을 빌려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대기업들도 힘들어졌죠. 자기들이 힘든데도 이익은 내야 하니까 가장 쉬운 방법으로 중소기업을 더 쥐어짜는 것이죠.
이런 대기업 위주의 독과점 경제체제는 한 번 굳어지면 바꾸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 부문 간 임금 격차나 이익률 격차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용지원 예산을 들여다보자
요즘 많은 이들이 살림이 어렵잖아요. 그중에서도 노년과 청년이 가장 힘들 텐데요. 그래도 여러 가지 정책으로 직접 돈을 줄 수 있는데, 청년 빈곤층은 어떻게 하나요? 취직은 안 되고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청년 빈곤층.
청년 빈곤층은 노년 빈곤층과 성격이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원래 복지는 아동, 노인, 병자 등 돈을 벌 능력이 없는 이들을 위해 만든 거죠. 청년실업 대부분은 애초에 노동시장에 진입을 안 하거나 못해서 생깁니다. 자기가 원하는 직장이 아니라도, 보수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적어도 일하려면 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예 취직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청년실업 중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을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더라도 청년실업자가 많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단순히 일시적이고 마찰적인 요소 때문에 실업 상태에 있다고 하기엔 너무 많습니다. 경제성장률의 장기 침체에 사람들이 미처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있고, 직장 수요와 교육을 미리 맞추어놓지 못한 어른들 탓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조적 실업이라고 하는 것이죠.
서양에서는 청년수당을 주는 곳이 많습니다. 그것만으로 먹고살기는 어렵지만 그런데로 버티는 데에는 도움이 되도록 일정한 나이까지는 줍니다. 그 덕에 나에게 알맞은 직장이 무엇인지를 찾는 데 시간을 쓸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착취를 당하는 직장을 그만둘 여유도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청년수당 같은 것이 없으니까 너무 험한 대우를 받는데도 당장 먹고살 길이 없어서 못 벗어나는 면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렵지만 정치가가 자신의 강한 에너지로 장기적으로 해나간다면 풀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원청-하청은 권력 집중에서 생기거든요. 국가 정치권력의 집중, 경제권력의 집중에서 생깁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뿌리가 깊습니다. 그것에 따른 제도가 산처럼 쌓여 있고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정부 예산에서 국회의 권한이 지극히 작습니다. 현재 법으로는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면 감액은 해도 증액을 할 수는 없어요. 증액하려면 정부가 동의해줘야 합니다. 결국 돈줄은 원청에 속한 공무원과 공기업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체제가 자율화/분권화되어야 정부가 통제하는 지출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공정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국민이 자기가 주권자라는 의식을 깨달아야겠지요.
빈부격차의 주범, 부동산 정책 *부동산
>정부 규제가 집값을 올린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답답함을 느끼고 버거워하는 문제가 부동산 아니겠습니까? 둘러보면 저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거기에 내 집은 없다고 생각하면 참 막막하죠.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10년을 모아도 내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렵잖아요.
부동산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이지만 우리나라 경제사회 체제가 갖고 있는 어려움의 핵심에 부동산이 있습니다.
공 선생은 세계은행에서 근무할 때 여러 나라의 도시와 부동산 문제를 경험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이 유별나긴 한 거죠?
제가 세계은행에 취직했을 때 처음 발령받은 부서가 도시발전, 말하자면 도시경제학을 연구하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도시경제학자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부동산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그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도시나 주택 문제에 관해 연구와 자문을 했는데, 모두 저에게 한국 집값이 왜 그렇게 오르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중 한 사람은 배우자가 한국인이어서 한국 사정을 잘 알았는데 한국 정부의 주택정책, 특히 아파트 분양가 제한과 추첨 분양정책을 매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되고 돈 많은 사람들 주머니만 채운다고요.
지금은 전보다 관심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파트 청약통장이 웃돈 주고 거래되기도 하고 아파트 분양가는 여전히 내려가지 않잖아요.
우리나라 부동산은 왜 이렇게 가격이 높아졌을까요? 수요와 공급으로 나누어 얘기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땅 넓이에 비해 인구가 많아서 그렇다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국 토지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면적은 3%밖에 안 되고 공장부지와 도로를 합치면 6% 정도밖에 안 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많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집값이 비쌀까요? 정부가 주택으로 사용 가능한 땅의 공급을 경직적으로 통제하고 가격 부양정책을 쓰기 때문입니다. 토지 사용 규제가 너무 경직적이고 대규모 택지개발 지정권을 정부가 독점하지요.
우리는 그동안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경제발전 속도가 빠르다보니 주택 수요도 빠르게 늘었지요. 인구가 늘고 소득이 많아져서 조금 더 나은 주택에 대한 욕구가 당연히 커지게 되면 수요가 늘게 마련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설사 정부가 정책적으로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는다 해도 부동산 가격이 뛸 수밖에 없어요.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집값이 내려가지 않아요. 집값이 버블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한국이 일본화된다는 심각한 얘기도 나오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집값은 요지부동이에요.
수요의 문제인데요,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도 줄어들고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신용 확대를 해서 가격이 내려가지 못하게 막았고, 그 결과 가격이 인위적으로 유지되었어요.
어느 분이 10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다고 예측했는데 실제로는 안 내려가서 욕을 먹었다고 합니다. 실은 저도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계속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락 시점은 알지 못하고, 내려간다 해도 천천히 장기적으로 내려갈 거라고 했지요. 버블은 설사 버블인 줄 알아도 언제 꺼질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인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지 않도록 온갖 정책을 써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겹쳐서 부동산 가격이 꺼지지 않는 현상이 지속되는 거죠.
너무 낮은 부동산 보유세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보유세로 시가 대비 연간 0.15% 정도 냅니다. 제대로 된 국가는 부동산 보유세가 연간 1%에 가까운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무척 낮죠. 다른 나라보다 장기적으로 1% 정도 수익률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자산수익률이 지난 100년간 4%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최근 크레딧스위스 은행 보고서에서도 지난 100년간 서구 국가들에서 주식투자 장기수익률이 평균 4~6%, 채권수익률이 2%로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보다 부동산 세금이 1% 낮은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1주택 이상 보유한 사람들의 부동산세만 올려도 부동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거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열쇠예요. 그런데 열쇠를 바깥으로 던졌잖아요. 열쇠를 도로 주우려고 긴 막대기로 열쇠고리를 끌어당기려 했더니 돈 많은 사람들이 난리를 쳤잖아요. 이것도 말하자면 가진 자들이 조종하는 언론에, 경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대중이 휘둘린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돌이키려고 어떤 과정을 택할지는 찬찬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할 때 부동산 투기 억제에 너무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 경제는 좋아지지만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고 우선 당장 내 집값이 내려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우려를 틈타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종부세 기준과 세율을 조정하면서 일부분 무리한 점을 시정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종부세를 지나치게 무력화했습니다. 그 결과 2007년에 2.8조였던 종부세 수입이 2015년에는 1.4조 원으로 거의 반 토막 났어요.
저는 부동산세를 올리는 데는 적극 찬성합니다. 다시 종부세를 부활하기는 하되 노무현 정부 방식과는 좀 다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과세기준금액을 지금 9억 원 이상에서 6억 원 이상으로 낮추거나, 아니면 과세기준금액을 9억 원 이상으로 유지하되 장기보유에 따른 공제는 폐지하고 연령에 따른 세액공제는 지금처럼 유지하면 어떨까 합니다.
실제 공시지가를 보면 더 어이없는 일도 있더군요. 아파트 공시지가는 그래도 거래가격에 근접해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돈 있는 사람들이 소유한 땅이나 건물들은 엄청나게 싸요. 서민아파트에는 실거래가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는데, 건물주들은 30~40%도 못 미치게 세금을 내는 겁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리하고 가진 사람에게는 유리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체제는 설계 자체가 돈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사람들이 잘 모르지요. 물론 부자들이 살기 좋게 하려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전체 시스템을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죠.
일반 국민은 자기들이 왜 이렇게 부동산 가격 때문에 허덕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니까 쉽게 속아 넘어가고, 그 덕분에 이 문제는 계속 쌓여왔습니다. 경제체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19%밖에 안 됩니다. 매우 낮은 거예요. 다른 나라는 세금도 소득에 연동한 비중이 무척 큰데 우리나라는 이것이 아주 낮습니다. 돈 버는 사람이 투자하면 그것에 따른 이득을 더 많이 보는 성장 위주 체제입니다. 성장 위주로 정책을 짜는 과정에서 부동산 제도는 돈 많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고, 일반 국민을 위한 복지제도는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일반 국민은 어떻게 중산층이 되었을까요? 사실 지난 40년 동안 우리 정부의 중산층 민생정책의 핵심은 부동산 부양정책이었습니다. 고도경제성장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 시기에 정부가 토지를 독점 수용해서 개발한 후 싼값에 건설업체에 분양하고, 건설업체는 아파트 추첨 분양제도로 중산층 이상에 주택을 공급했습니다. 말하자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를 건설업체와 분양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어요. 다른 나라들은 경기조절은 재정정책과 조세정책으로 했고 중산층 육성을 복지와 교육정책으로 했습니다. 선거할 때 경기가 나쁘면 조세를 어떻게 했느냐, 아니면 재정정책을 잘못 세워서 그런 거냐고 싸웁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경기조절을 조세나 재정으로 하지 않고 부동산 경기로 해왔습니다.
다른 나라는 선거정책으로 조세와 재정을 논한다는 건데요. 우리는 그런 부분이 너무 형식적으로 진행돼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책을 진지하게 비교하지 않기도 하고요. 비슷비슷한 정책을 내놓는 정당의 문제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경기조절을 다른 국가처럼 조세나 재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으로 해왔다는 건 그 편이 쉽고 간단해서 그런 거죠?
그렇죠. 정부가 땅 공급 권한에 대출까지 쥐고 있잖아요. 거시경제정책과 금융정책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해야 하다보니 임의로 컨트롤하기 어려운데 부동산과 대출은 자기들이 목줄을 쥐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걸로 경기조절을 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는 편리하지만 분명 부작용이 쌓입니다. 그렇게 폐단이 쌓여도 관료들은 괜찮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작년 대비 지표만 신경 쓰면서 잠깐 하고 다른 부서로 옮기면 되니까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들면 그동안 높은 부동산 가격 덕을 보았거나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합세해서 격렬히 반대하니까 그 안에 갇혀 있는 거죠.
가난한 노인이 넘치는 나라 *연금
국민연금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걱정도 많이 하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가 걱정이죠. 사람들은 자기가 나이 들었을 때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걱정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많은 사람이 자기가 받는 돈이 너무 적어서 그걸로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오해 역시 크게 봐서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내고 있는 돈을 나중에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오해는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낸 돈을 내가 받는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죠. 즉 설계가 이상하게 되어서, 지금 장년층과 노년층은 자기가 낸 돈보다는 훨씬 많이 받지만, 워낙 낸 돈이 적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노후를 걱정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국민연금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수십 년 후 돈이 고갈될 거라고 걱정하는데 이는 잘못된 시각입니다. 원래 국민연금은 세대 간 사회적 부양제도입니다. 그러니 꼭 미리 쌓아놓은 돈으로만 지급할 이유는 없지요. 지금은 설계를 그렇게 했으니 미리 돈을 쌓았을 뿐이고요. 예를 들어 독일도 진즉에 쌓아놓은 돈이 고갈된 후 그때그때 젊은 세대가 낸 돈으로 노인을 부양하는 체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전환했습니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제도가 원래 목적대로 노인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국가가 공적으로 운영하는 연금은 노년층의 빈곤을 막으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각자가 낸 돈으로 나중에 잘 먹고 잘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럴거면 굳이 강제로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서 노년 준비를 하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나중에 노년이 되었을 때 소득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개 자식에게 의존했어요. 그러나 산업화/도시화에 따라 대가족제도가 해체되고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층 빈곤문제가 가족을 넘어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인층의 빈곤을 막으려고 최저한의 소득보장제도를 만든 것이죠. 물론 국민연금만으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은 아닙니다.
노인 빈곤을 얘기하려면 먼저 여기서 빈곤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우리가 말하는 빈곤은 상대적 빈곤입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순서대로 줄을 세워서 딱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 즉 중간값 소득에 비해 각 사람의 소득이 얼마인지 본 다음 그 소득이 중간값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빈곤하다고 봅니다.
이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일본이나 미국도 국민연금이 없으면 노인층의 반이 빈곤층에 속할 텐데, 국민연금 덕분에 그 나라들의 노인 빈곤율은 20%입니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국민연금이 노인 빈곤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의 경우 노년층에서 소득순위가 50% 이하인 사람들의 소득은 대부분이 공적 연금에서 받는 돈입니다. 우리는 이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저출산 해소에 국민연금 활용
국민연금법을 바꿔야 합니다. 국민연금은 민간보험처럼 내 돈을 불려서 돌려받는 제도가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서 개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국민의 개체 수가 줄어서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 불가능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 거예요.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잖아요. 국민연금이 유지되려면 연금을 붓는 국민이 계속 많아야 하는데 국민이 줄어들어요. 국민연금이 2040년부터 내려가서 결국 고갈된다고 하죠? 왜 고갈되는지 아세요? 그동안 낸 돈에 비해 급여를 너무 많이 주어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 고갈되는 거예요.
연금을 내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문제라면 국민연금을 낼 국민을 늘리는 데 연금을 쓰자는 거잖아요. 주택을 지어서 신혼부부가 애를 낳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안에는 또 뭐가 있을까요?
아동수당을 늘리고 보육원을 짓는 일 등이지요. 나중에 국가경제가 커지고 국민이 많아지면 후대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지금으로선 국민들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국민연금이 위헌자산인 주식 같은 데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것도 맞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없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일시적으로는 빚이 늘겠지만 정부가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임대주택과 보육원을 짓는 데 쓰고, 국민연금이 그 국채를 사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죠.
돈이 있으니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어려운 일은 기본적으로 돈이 없는 거잖아요. 연금이 쌓여 있으니 정권을 바꿔서 치밀하게 연구하면 이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적어도 5년 단임정권으로는 어렵습니다. 우선 국민의 동의와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걸리지요. 우리나라가 연대의식이 약하다고 말했잖아요? 지금 노인 빈곤율이 50%인데도 정치적 이슈가 안 되는 게 참 안타까워요. 선거 때나 잠깐 얘기하다 말지요. 국민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니까 함께 풀자는 움직임이 안 보여요. 결국 아직도 취약한 민주주의의 문제죠. 사회의 지배세력이 빈곤한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그 때문에 정권을 빼앗겨야 겁을 내는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우리의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의식수준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국민연금 제도가 잘못 만들어져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세대는 현재 노년층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 정권을 도리어 더 지지하잖아요. 지금 노년층은 민주주의 교육을 덜 받으며 자라서 그런 것 같으니 참 안타깝죠.
공 선생과 연금 이야기를 이렇게 깊이 있고 길게 하는 이유는 연금 설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대중과 공감하려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국민들이 설계를 잘 모르니 소모적인 논쟁에 휘둘리고 기득권 언론들의 주장에 혼란만 가중됩니다. 설계를 제대로 알면 잘못된 제도를 고칠 수 있습니다.
김성회: 국민연금을 없애자. 매달 나가는 돈이 아깝다라고들 많이 말하는데요. 국민연금을 처음 만들 때 국민 합의가 없었던 탓이군요.
주진형: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되었을 때부터 설계가 잘못되었습니다. 돈을 받아서 동시대 노인들에게 주었어야 하는데, 쌓아놓는 방식으로 갔어요. 관료들은 연금기금을 고속성장을 위한 투자 재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 돈을 국민한테 주는 대신 자기들이 쓰고 싶은 데다가 쓸 돈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트라우마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복지산업에 국민연금을 쓰면 안 된다는 착각에 빠졌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마냥 쌓이고만 있는 국민연금을 빨리 허물어야 해요. 국민연금이 지속되려면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관료들은 그런 장기적인 시각이 없어요.
손혜원: 이런 얘기를 듣고 한 분이 제 것은 내려놓겠습니다 하더군요. 이런 의견이 촛불처럼 시민운동으로 번질 수 있지요. 내가 내는 돈이 우리 부모한테 간다고 생각하면, 내 자식이 내는 돈이 나중에 나한테 오는 것 아닙니까? 참 간단한 이야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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