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터널

   
박상준
ǻ
매일경제신문사
   
15000
2016�� 05��



■ 책 소개
와세다대학교 국제학술원 박상준 교수의 책. 이 책은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일본이 버블붕괴 이후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인 ‘세 대의 화살’은 무엇인지 살펴보며 궁극적으로 이것이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한국에 산재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다. 예컨대 일본에선 도쿄23구를 제외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사는 이들의 심리를 살펴보고, 반면 비싸도 너무 비싼 한국의 집값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선한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청년실업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는 상황에서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선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단 것을 설파한다.

 

일본과 한국 경제에 대한 냉철한 시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경제용어에 낯선 대중들을 위해 어려운 경제용어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 일본 경제는 물론 오늘날 한국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저자 박상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 일본 국제대학교(International University of Japan) 조교수를 거쳐 2005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부교수로 부임했다. 2008년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교 국제학술원 정교수로 재임 중이다.

 

2010년에는 미국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Ann Arbor)에서 1년간 한국경제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아시아 경제’, ‘환율’, ‘경제주체의 비합리성’ 등을 주요 연구 테마로 「Journal of Economic Dynamics and Control」, 「China Economic Review」, 「Journal of The Japanese and International Economies」 등의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일본 경제에 관한 국문 연구서로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한국 경제에의 시사점』 (서울대학교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시장의 변화와 진출전략』(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등이 있다.

 

■ 차례
프롤로그

 

제1장 불황의 그림자
01. 한국은 일본식 장기불황에 진입하는가
02. 일본식 장기불황 1 - 경제성장률의 변화와 GDP 갭에 주목하라
03. 일본식 장기불황 2 - 너무나 빠른 고령화 속도
04. 일본식 장기불황 3 - 디플레이션, 초 저금리 그리고 유동성 함정
05. 터널에서 나오는 일본 터널로 들어가는 한국

 

제2장 장기불황 원인과 처방 - 일본은 지난 20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01.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02. 미국인 천재의 제안이 일으킨 파문
03. 디플레이션이라는 악마
04. 총수요가 문제냐 총공급이 문제냐
05. 떨어지는 소비 둔화되는 생산력

 

제3장 터널에서 탈출하기 - 고이즈미 개혁에서 아베노믹스까지
01.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
02. 고이즈미 극장 - 관방장관으로 무대에 등장한 아베
03. 제1차 아베 내각 - 1년 만에 퇴장한 주연 배우
04. 금융공황과 대지진 - 아베, 위기를 기회로
05. 제2차 아베 내각 -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일본

 

제4장 아베노믹스 세 번째 화살 - 장기 성장 전략
01. 아베노믹스에 대한 오해
02. 기술력의 일본
03. ‘원샷법’, 일본에서는 왜 반발이 없는가
04. 여성 인력 활성화 지원하다
05.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을 노리다

 

제5장 아베노믹스 두 번째 화살 - 기동적 재정정책
01. 엔이 안전자산이라는 근거
02. 일본 정부부채의 비밀
03. 증세 없는 복지의 실패
04. 증세가 먼저냐 성장이 먼저냐
05. 한국 정부부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제6장 아베노믹스 첫 번째 화살 - 대담한 양적완화
01. 양적완화를 외치는 시장
02. 일본은행, 모든 건 당신들 책임이야
03. 특명! 시장에 돈을 풀어라
04. 금융완화의 숨겨진 의도
05. 엔저, 정말로 아베노믹스 덕분인가

 

제7장 어제의 일본에서 내일의 한국을 찾다
01. 버블에서 버블 이후까지 일본 경제 20년
02. 한국도 양적완화를 해야 하는가
03. 한국도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는가
04.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왜 일본보다 높은가
05. 누가 청년실업률을 낮출 수 있는가
06. 너무 비싼 집값 월세가 해결책

 

에필로그
참고문헌




불황터널


불황의 그림자

한국은 일본식 장기불황에 진입하는가

한국의 암울한 청년실업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졸업생들의 취업 여부에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마음이 한참 무겁다가, 그 학생에게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는 메일을 받게 되면 또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다.


일본에는 제미라고 불리는 수업이 있다. 한국이나 미국 대학에는 없는 조금 특이한 제도다. 대학마다 그리고 학부마다 조금 다르게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상급 제미라는 타이틀의 수업은 대개 졸업을 앞둔 고학년을 위한 세미나 수업이다. 내가 교편을 잡고 있는 와세다대의 국제교양학부에서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상급 제미의 담당 교수에게 수강신청서를 내게 된다. 지원자가 너무 많지만 않으면 교수들은 대부분의 지원자를 자기 제미에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한 제미에는 대개 15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3학기를 계속 같은 제미에 있다 보니 동급생들과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고, 또 선배들과도 교류할 수 있다. 그렇게 만난 선후배들은 졸업 후에도 그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4학년 학생들은 같은 제미 출신의 직장인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취업에 관한 조언을 듣고, 가끔은 졸업한 선배들이 제미 수업에 찾아오기도 한다. 일본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같은 대학 출신인 것을 알게 되면, 몇 년도에 어느 학부를 졸업했는지에 이어 거의 대부분 어느 교수님의 제미 출신인가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담당 교수 역시 그 제미를 통해 학생들과 우정을 쌓고, 취업에 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는다.


최근 일본에서는 신규 대졸자의 고용시장이 호황이다 보니 최종 면접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이메일이 오기 시작한다. 어디에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학생들의 간단한 이메일에서도 나는 그들이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감사하다.


그러나 한국인 유학생들에게는 일본인 친구들의 취업 소식을 듣는 것이 결코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지만 한편으론 초조한 마음이 당연히 들 것이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우선 일본 기업에 지원을 할지 한국 기업에 지원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취업시장의 성격이 서로 달라 두 군데를 다 염두에 두고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외국인이라는 한계가 있다. 외국인을 뽑는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규 대졸자의 경우 일단은 일본인 위주로 시장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군복무를 위해 장기 휴학을 해야 하므로 4년을 연속해서 일본에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취업에 더 부담을 느끼게 되고 대개의 경우 한국 시장에 도전하게 된다. 한국의 취업시장이 너무 어렵다 보니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직장을 잡는 학생이 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국에서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학생이 많아 보인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은 청년실업률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실업률이 높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한국은 실업률이 낮은 나라로 국제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지금처럼 고용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라는 말이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실업률 통계만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20대 청년의 실업률만을 본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청년 실업률만큼은 한국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자, 청년 실업률 역시 급등하여 한국과 일본 모두 거의 8%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경기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일본에서는 청년실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반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급기야 2014년 한국의 20대 청년실업률은 9%까지 증가하여 일본의 5.7%와 큰 대조를 이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2015년 일본의 공식 통계가 나오지 않아 2015년의 데이터까지는 비교하지 못하였지만, 그간의 자료를 종합하여 볼 때, 2014년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일본식 장기불황 1 - 경제성장률의 변화와 GDP 갭에 주목하라

갈수록 떨어지는 한국 경제성장률

지금 40대 이후의 세대 중에는 나처럼 1997년의 외환위기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적지 않을 터인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변화의 기점이 된 것 역시 1997년 외환위기다. 1996년까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던 우리 경제는 1997~1998년의 극심한 침체와 1999~2000년의 예상을 뛰어넘는 신속한 회복에 이어, 2001년부터 눈에 띄게 성장률이 저하되었다.


1998~1999년, 2008~2010년과 같이 금융위기를 겪거나 금융위기에서 회복되던 예외적인 해를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1~1996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6.7%였는데 반해 2001~2014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3.5%에 불과하다. 오일쇼크 이후 버블 붕괴 전까지의 일본과 비슷한 수치다. 2000년대를 다시 2008년의 글로벌 위기를 기점으로 나누어 보면 2001~2007년의 연평균 성장률 4.4%에 비해 2011~2014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2.5%에 불과하다. 버블 붕괴 후 일본의 0.6%에 비한다면 높은 성장률이지만 평균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 우려를 자아낸다.


터널에서 나오는 일본 터널로 들어가는 한국

잠시 터널에서 나온 일본

2012년 12월 아베 신조가 총리대신에 취임하고 2013년 3월 구로다 하루히코가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하면서, 아베노믹스라는 경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본원통화의 양을 1년에 60조에서 70조 엔 정도 증가시키겠다는 일본은행의 발표를 시작으로 야심만만하고 위험천만한 도박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일본의 언론은 아베노믹스가 성공이냐 실패냐를 둘러싸고 극과 극을 오가는 보도를 내어 놓고 있다. 경제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면 아베노믹스의 지지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조금 가라앉는다 싶으면 반대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도 일본에 관한 보도라면 아무래도 일본 언론을 인용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때로는 아베노믹스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조롱하면서 일본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중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정상적인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며 발전한다. 터널이 전혀 없는 경제나 그런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이란 없다. 한편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나는 일본 경제의 부침을 오쿠타다미의 터널에 비교한 바가 있다. 그것은 어쩌다 한 번씩 터널이 나오는 평지의 길이 아니라 길고 짧은 터널이 연이어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산길이었다. 터널에서 나왔나 싶으면 수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터널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자, 터널 밖의 밝은 햇살을 받더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일본 경제를 오쿠타다미의 산길이 아니라 평지의 도로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실 지난 25년간 일본 경제가 끝없이 나빠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부침을 계속했지만 중요한 것은 회복하는가 싶으면 다시 가라앉고, 좋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나빠지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연속되는 터널의 경험으로 일본인들은 장기침체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점점 익숙해져 갔다. 터널을 나와 있어도 다음번 터널을 예상하고 전조등을 그대로 켜 두는 운전자의 심정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가가 하락을 거듭하던 2000년대 초에는 도산기업 수가 기록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2003년에서 2007년 사이에는 주가는 상승하는 한편 도산기업 수는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터널에서 벗어났다는 혹은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팽배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실제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의 부침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수상으로 있었던 2001~2006년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드디어 터널에서 벗어난다는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내 세미나의 첫 제자들은 2007년 3월 졸업하였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채용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었다. 따라서 모두들 나름 만족스러운 직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첫 제자를 배출한 나로서도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2006년 9월 수장에 취임하여 제1차 아베 내각을 시작한 아베 수상은 그의 소신표명연설에서 “긴 정체의 터널에서 벗어나 미래에 밝은 전망이 열리고 있다”고 표현하며 경제 회복에 대하 자신감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그 후 세계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은 일본 경제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하였고, 주가지수 역시 저점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2012년 아베노믹스 이후 주가 상승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2007년의 피크를 조금 넘어선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경기회복과 유사한 경험을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중반에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은 물론 2010년대 중반인 현재에도 장기침체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터널이 연속되는 위태한 산길을 달리고 있다고 보이는 것은 일본인 스스로가 언제 다시 터널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침체기의 심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비정상적인 경제 현상, 즉 디플레이션 역시 언제 되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은 오쿠타다미의 터널에서 벗어났는가? 디플레이션 체제가 끝나지 않는 한, 디플레이션과 장기침체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여전히 터널이 연속된 산길을 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잠시 터널을 벗어나 눈부신 햇살을 만났지만 언제 또 터널로 진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데이터가 나오면 언론이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터널 입구에서 당황하는 한국

그렇다면 2016년 한국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가? 나는 저성장 시대의 입구에서 당황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본다. 이미 작은 터널을 몇 개 지났고 설마설마 했는데 자꾸만 연이어 터널이 튀어 나오고 있다. 옆 나라 일본이 겪었던 것이 이것이었는가, 하는 불안감에 일본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일본 경제에 대한 언론 보도가 하루를 멀다 하고 포털의 1면을 장식하는 것이 우리의 불안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의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식 장기침체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역시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구구조, 노동력의 감소, 경제성장률, 잠재 GDP, 인플레이션율, 저금리, 주택시장 침체 등의 움직임이 1990년대 초·중반의 일본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의 일본보다 나은 점도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연평균 성장률 0%대에 머물 만큼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부실채권과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고 무엇보다 GDP 대비 정부부채의 비율이 낮다. 게다가 1980년대 말 일본과 같은 버블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 갑작스런 버블의 붕괴로 충격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일본에 비해 불리한 점 역시 존재한다. 가계부채가 많고, 부와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너무 높다. 청년실업률이 높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니 소득 불평등이 개선될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1995년부터 2012년까지 개인소득 상위 10%에게 집중된 소득의 비중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동안 일본과 다르게 경제 성장하고 있었지만 불평등의 정도는 일본보다 더 가파르게 악화되었다. 1995년 일본의 상위 10%에게 집중된 소득의 비중은 34%였던 데 비해 2012년 우리나라는 그 값이 44.9%나 된다.


지난 20~30년간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악화되어 온 것은 비단 일본이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저성장 경제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큰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이미 불평등 정도가 상당히 높은 우리나라가 저성장 경제로 진입하여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이 더욱 타격을 입으면 개인적·사회적 손실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저성장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



아베노믹스 세 번째 화살 - 장기 성장 전략

아베노믹스에 대한 오해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장기 성장 전략이 아니다

국내 언론 보도를 보면 장기 성장 전략을 아베노믹스의 핵심으로 보는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양적완화 정책이나 기동적 재정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일본 경제의 부활은 결국 장기 성장 전략에 달려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장기적 성장 전략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 원인으로 돌아가보자. 총공급과 총수요 어느 쪽에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쟁의 결과 총수요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더 큰 지지를 받았다. 물론 총공급에도 문제가 있었고 총공급의 부진과 총수요의 부진은 서로 맞물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총공급의 문제가 총수요의 문제를 촉발시킨 부분보다 총수요의 문제가 총공급의 문제를 촉발시킨 부분이 더 컸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총수요를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고 해결을 위한 핵심 정책이 대규모 양적완화였다. 아베노믹스의 초창기부터 가장 논란이 되었던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장기 성장 전략이라는 세 번째 화살이 아니라 대규모 양적완화라는 첫 번째 화살이었다.


장기 성장 전략이나 경제구조 개혁은 총공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베노믹스의 처음 두 화살이 총수요의 진작을 1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면, 세 번째 화살은 총공급의 혹은 잠재 GDP의 원활한 성장을 1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총공급과 총수요가 서로 맞물려 있으므로 이 세 종류의 정책 모두 수요와 공급 양면에 영향을 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선 타깃을 보면 세 번째 화살의 타깃은 총공급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공급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자, 즉 기업과 노동자다. 그렇다면 정부가 도모하는 전략이란 결국 기업과 노동자가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어야 할 터이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성장전략을 보면 너무 광범위한 한편, 정부 주도적이어서 과연 제대로 된 성장전략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실제로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을 경제적 전략이 아니라 정치적 선동이나 선언이라고 펌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기업과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분, 정부가 나서서 이건 하고 저건 하지 마라는 식으로 간섭하는 것은 오히려 효율성을 저해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성장전략이 불충분하다고 불만을 토하는 이들은 대개 해외 투자가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기적 성장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기적 성과를 높여서 투자 이익을 극대화하면 그뿐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케이오대학의 다케나카 헤이조 교수의 최근 저술을 보면, 정부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장기 성장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이 정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크게 공감가는 말이다.


기술력의 일본

기술력에 모든 것을 걸다

장기 성장 전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기술력에 대한 강조다. 세계 최고의 기술로 경제 성장을 리드하겠다는 것인데, 터무니없이 들리지 않는 것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산업들이 실제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분야일 뿐만 아니라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1990년대 들어 하락하였다는 말을 하며 기술 그 자체만을 본다면 여전히 과거와 같은 속도로 진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일본은 기술에 목을 매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작은 중소기업의 대표 중에도 이런 저런 기술로는 세계 최고임을 자부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일본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 중에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창과 방패의 대결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예를 들면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금고를 만드는 기업과 아무리 튼튼한 설비도 파괴할 수 있는 폭약을 만드는 기업의 대결 같은 것이다.


어떤 일본인들은 기업의 이익에 해가 될 정도로 기술에 집착하는 것이 일본의 문제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맨션은 10년 전인 2000년대 중반에 지어진 서민용 맨션이다. 한국의 30평형 아파트보다도 작은 규모다. 그런데 욕조에 물을 받는 자동시스템이 있다. 물의 양과 온도를 정하고 버튼을 누르면 물이 자동으로 욕조에 차고 준비가 되면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런 시스템은 없어도 좋으니 집값이나 월세가 좀 쌌으면 좋겠다고 하니 부동산 업자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일본 학생들에게서도 기술력의 일본을 느낄 때가 있다. 4학년 학생이 어느 기업에서 취업 내정을 받았다며 소식을 전하는데, 그 기업이 어떤 기업인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학생이 만족한다면 함께 기뻐해 줄 일이지만 마지못해 가는 거라면 함부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기 미안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못 들어본 기업인데 어떤 곳이냐고 하면, 이런 저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고 나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그러면 선생 입장에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국인 입장에서 부럽기도 하다. 우리도 그런 중견기업이 많으면 청년실업에 조금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다.



어제의 일본에서 내일의 한국을 찾다

한국도 양적완화를 해야 하는가

양적완화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대규모 양적완화가 가능하지 않다. 또 지금으로서는 필요한 단계도 아니다. 다만 통화의 공급이 충분한가를 점검하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량마저 충분하지 않고 금리가 오르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앞장에서 보았듯이 금리의 상승은 소비와 투자, 수출 등에 악영향을 준다. 총수요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적완화가 필요한 단계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일본이 두 번에 걸쳐 대규모 양적완화에 발을 들여놓은 가장 큰 이유는 디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으로 전환시키고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크루그먼 교수가 1998년에 양적완화를 제안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율이 떨어지고 있는 디스인플레이션 상태에 있고 현재의 인플레이션율이 적정수준인 2%를 밑돌고는 있지만, 아직 디스플레이션 단계 진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디플레이션 기대로 인하여 명목 이자율보다 실질 이자율이 높았다. 아무리 명목 이자율을 낮추어도 실질 이자율이 그보다 높은 상황에서는 투자와 소비가 자극받기 어렵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고 마는 디플레이션으로의 이행가능성이 높은 경제에 필요한 처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래의 인플레이션율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을까? 실제의 인플레이션율과 한국은행이 조사한 소비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1년간 물가상승률을 얼마로 보는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실제의 인플레이션율보다 훨씬 완만히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기대를 변화시키지만 즉각적으로 크게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 3%의 물가상승률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물가가 일시적으로 4~5%의 상승률을 보이더라도, 지금까지 경험한 3%로 회귀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률은 1%에 불과한데도 기대치는 2%를 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여기에 기대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한번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져 버리면 사람들은 물가가 오르더라도 다시 내려갈 거라고 예상하고 쉽게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이 겪은 일이고 양적완화와 같은 극약처방이 필요했던 이유다.


우리는 지금까지 디플레이션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직 디플레이션을 예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번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마이너스가 되면, 그 기대를 깨부수기가 웬만해선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추이와 사람들의 기대를 예의주시하고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아직 우리에게는 양적완화가 필요하지 않지만, 여전히 여유 있는 통화공급과 저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위험한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고 양적완화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크루그먼 교수가 양적완화를 제안하면서 일본은행에게 당부했던 말을 기억하시는가? 책임감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금융환경,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앙은행의 책임감을 버리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까지 무조건 본원통화를 늘리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잃고 통화가치가 무너져서 물가가 정말 오르겠구나하고 겁을 먹을 때까지 멈추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발생하였는가? 자국 통화가 버림을 받았다. 과거 독일이나 남미에서는 물가상승률 1,000%도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었다.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아시아에서는 자국 통화를 거부하고 달러나 엔화로 결제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2000년대 초에 미얀마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공항에서 불과 수천 엔을 환전했더니, 한 뭉텅이의 미얀마 화폐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호강하겠구나 하고 좋아했는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텔이든 시장이든, 상인들은 달러나 엔화를 받고 싶어 했다. 미얀마인데 미얀마 화폐가 괄시받는 것이었다. 당시 같은 현상이 베트남 등에서도 발생했다는 것을 후에 책에서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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