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세계 경제 5년을 관통하는 주제 ‘화폐’!
앞으로 5년, 세계 경제를 지배할 거대한 이벤트가 온다. 세 가지 화폐발 경제 지각변동이다. 첫째는 유동성의 덫이고, 둘째는 강달러 시대의 도래이며, 셋째는 암호 화폐의 물결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화폐 대전환기가 온다』는 세계 경제 주체들의 치열한 현실 인식과 경제사의 교훈, 그리고 과학적 추론이 그려낸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화폐 대전환을 말하면서 오늘날 자본주의에 파문을 몰고 올 세 가지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물론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기업을 말려 죽이는 기막힌 경제 현실을 분석한다.
■ 저자 윤석천
경제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 동시대인과 함께 자본주의와 경제 성장주의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그 아픔을 함께하며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미래 청사진을 그려내는 데 힘쓰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와 대한경제교육개발원 등에서 환율과 트레이딩에 관한 강의를 했으며 현재는 선대인교육아카데미와 오마이스쿨 등에서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광주일보 등에 경제 칼럼을 썼다. 선대인경제연구소에는 ‘윤석천의 글로벌 뷰’란 칼럼을 쓰고 있으며, 한겨레신문 경제매거진 「이코노미 인사이트」의 ‘Finance’ 집필을 맡고 있다, 은행연합회 월간 「금융」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아시아경제 팍스TV?매일경제TV 등에 경제전문가로 출연했다.
지은 책으로는 『경제기사가 말해주지 않는 28가지』『개념과 원리가 있는 실전 외환 투자』『개념과 원리가 있는 친절한 기술적 분석』이 있다. 쓴 책들은 예리한 분석과 신랄한 내용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블로그 blog.hani.co.kr/maporiver
■ 차례
머리말 | 화폐발 경제지각 변동은 진보다
1장 부채 슈퍼사이클의 끝에 온 세계 경제 ― 돈·유동성·부채, 화폐량 역설
왜 부채가 버블의 연료가 되느냐고?
풍부한 돈은 어떻게 디플레이션 재료가 되나
새로운 부채 위기가 시작된다
유동성 역설과 채권시장 발작
통화정책은 종말을 고하는가
2장 달러와 위안 전쟁 ― 기축 통화라는 세계 경제 주도권 쟁탈전
달러 강세가 몰고 올 경제지각 변동
신실크로드의 지정학
오일 가격 하락이 말해주는 에너지 시장의 구조변화
원자재시장을 움직이는 진짜 동인
위안의 기축통화 쟁취
뉴노멀 차이나 : 고난의 여정
3장 화폐 패러다임 전환 ― 화폐라는 자본주의 축의 대전환
주류경제학에 밀어닥치는 물결, 암호 화폐
화폐, 자유 그리고 비트코인 탄생
마이너스 금리와 비트코인 탄생
은행을 금하라
4장 첨단 기술과 일자리 - 자본, 신경제 그리고 일자리의 함수
인간과 기술의 경주
청년 몰락은 어떻게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킬까?
온-디맨드 경제와 일자리 혁명
자사주 매입이 기업의 적이 된 까닭
화폐 대전환기가 온다
부채 슈퍼사이클의 끝에 온 세계 경제 - 돈 / 유동성 / 부채, 화폐량 역설
왜 부채가 버블의 연료가 되느냐고?
마침내 한국에만 존재하는 버블이 탄생했으니 바로 전세 버블이다. 어느새 우린 버블이란 단어를 즐겨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품이라 번역되는 이 단어는 특정 자산 가격이 그 실제 가격을 벗어나 그 이상으로 거래될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실제 가격이란 무엇일까?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실재하는 현상일 수 있다. 하나 모든 시장가격이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면 이 세상 어디에도 거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거품의 존재 여부는 학문적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은 특히 많은 화제를 낳았다. 서로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공동 수상했기 때문이다. 시카고대 파마 교수와 예일대 실러 교수는 자산시장의 가격 결정에 관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상극이라 할 정도로 정반대 논리를 취한다. 논쟁의 핵심은 자산시장 거품이다. 파마는 시장에 거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러는 과열 등 투자자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이 거품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파마는 철저히 거품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는 합리적 시장 가설의 창시자로 잘 알려졌다. 그는 시장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참여자들은 모두 이성적이며, 시장은 모든 정보를 즉각 반영해 가장 합리적인 가격을 내놓는다고 한다. 거품이라 부르는 현상은 오를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이지 비이성적 과열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비이성적 형태를 종종 보이며 시장 또한 이상 과열에 휩싸이곤 한다는 실러의 주장과는 정반대이다.
사실 거품이 무엇인지에 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20년 전 경제학 교과서엔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단어다. 신조어인 셈이다. 개념자체는 현재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학계 거물들 간 거품 논쟁은 불가피한 운명이다.
거듭 말하지만 거품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한 정의란 게 없다. 그러니 똑같은 현상을 보고 누구는 거품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지극히 정상이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현 국면을 보는 시각에 따라 거품은 얼마든지 정상으로 호도될 수 있고 반대로 정상이 거품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정말 시장가격은 항상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다. 튤립 알뿌리가 지금 값으로 20억 원대에 거래되던 때가 있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이 거품은 3년에 걸쳐 5,900% 상승률을 기록한 후 끝났다. 돌이켜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인간은 외려 비합리적 형태를 보일 때가 더 많다. 시장가격 역시 마찬가지. 비합리적 인간은 때로 비합리적 시장을 만들어낸다.
거품은 별 게 아니다. 특정 자산 가격이 역사적 평균치를 훨씬 웃돈다면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거품으로 불러야 옳다. 이는 대부분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물론, 훨씬을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이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가 여기서 거품의 정의나 본질을 다룰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경제학자들이 풀어내야 할 숙제다. 단지 나는 거품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래서 그 가정하에 거품이 생기는 원인이 대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거품은 정말 왜 생기는 걸까?
2008년 금융위기는 분명 미국 주택 시장에서 거품이 폭발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이른바 팩트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주택 시장에 거품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대부분은 무분별한 신용 확대 즉, 부채 남발을 꼽는다. 그런데도 부채와 거품 간 상관관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뜻밖으로 적다. 부채가 늘어나면 거품이 발생한다는 것은 정말 사실일까? 이를 명확히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신용 팽창은 정치가 의도한 산물이다. 명목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일은 정치인들이 사활을 건 문제다. 보통 경제 성장률과 정치인의 능력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무슨 수를 쓰든 숫자를 높이려 애를 쓴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신용 팽창이다. 빚을 내더라도 일단 돈이 생기면 대중은 소비하기 마련이다. 팽창한 돈은 집과 주식 등 자산시장을 올리고 이는 부의 효과를 불러와 소비를 일시적으로 늘린다. 부의 효과란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부자가 된 느낌에 돈을 더 쓰게 되고 결국 이것이 경제를 자극할 거란 이론이다. 소비가 늘면 성장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적정량 이상의 신용 팽창이 필연적으로 자산시장에 거품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한데 모든 거품은 언젠가 반드시 꺼진다. 그러면 정치적 의도의 산물인 신용 팽창은 온전히 빚을 진 사람들 몫으로 남게 된다. 소비할 때 지르는 환호는 일시적이지만 빚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청산할 때까지 지속한다.
신용사회인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현명해져야 한다. 부채가 어떻게 거품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또 왜 지속할 수 없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린 누군가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현대판 노예의 삶이다.
빚이 거품을 만드는 메커니즘
거품은 매수자가 있으므로 생긴다. 매수자가 없는 시장에서 거품이 발생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매수자가 없는 자산시장은 현실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겠다. 언제나 가격이 싸다고 생각하는 낙관론자 흔히, 시장에서 말하는 비이성적 과열에 휩싸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거품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발생한다. 우선 매수자가 낙관론자여야 한다. 그리고 해당 자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매수할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날 거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가격이 내릴 것으로 생각하며 자산을 사는 사람은 없다. 통상 특정 자산을 매입할 때는 그것이 언제나는 오른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또 오르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사줄 거란 확신이 있다. 자산을 사는 일은 소비할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미래에 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 그때 누군가가 사주지 않는다면 자산 구매는 의미가 없으며 거품 가능성은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예일대 교수인 존 지나코플로스는 부채가 낙관론자의 구매력을 어떻게 확장하는지 연구했다. 동시에 자산 가격이 지속해서 오를 것으로 믿는 사람들의 구매력을 부채가 어떤 방식으로 증폭시키는지도 연구했다.
주류 경제학은 이자가 수요와 공급 메커니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나코플로스는 담보에 관한 신용한도 비율에 주목했다. 이자율 이상으로 레버리지가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레버리지가 높으면 자산 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반대로 낮으면 자산이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레버리지란 차입금 등 타인자본을 이용하여 자기자본의 이익률을 높이는 행위를 말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부채의 레버리지 효과와 그것이 어떻게 거품 연료가 되는지 알아보자. 시장에 100채의 똑같은 주택이 매물로 나온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 세계엔 두 부류의 사람들만 존재한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다. 비관론자들은 주택 가격이 1억2천만 원 정도라 믿는다. 반면에 낙관론자들은 주택 가격이 너무 저평가돼 있으며 1억5천만 원 정도가 적정가격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위 가상 세계에서 집값은 어떻게 결정될까?
가격은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수로 결정될 것이다. 낙관론자 수가 충분해 100채의 주택을 모두 살 수 있다면 주택 가격은 1억2천만 원을 넘어 1억5천만 원이 될 것이다. 하나, 낙관론자 수가 충분치 않아 비관론자들이 주택을 사야 하는 상황이라면 주택가격은 1억2천만 원에 머물 것이다. 시장 가격은 전체 매물이 소화될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에서 결정되는 탓이다. 싼 집이 있는데 그보다 더 비싸게 주고 사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똑같은 주택이라면 같은 가격에 팔려야 하는 게 원칙이다.
이제 부채를 조달할 수 없는 세상을 가정해보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집 가격 전부를 현금으로 지급해야만 한다. 낙관론자들이 가진 총 현금이 30억 원이라고 해보자. 이런 경우라면 이들이 구매할 수 있는 주택의 최대치는 25채뿐이다. 주택은 한 채당 최저 1억2천만 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매수하면서 주택가격은 조금씩 상승할 것이다. 하나, 시장 매물 전체를 매수할 수 없으니 주택가격은 비관론자들이 매수하려고 하는 1억2천만 원까지 다시 떨어지게 된다. 부채가 없는 세상이라면 주택 가격은 1억2천만 원에 머물 것이다. 낙관론자들이 최대 25채를 사게 되고 비관론자들은 남은 75채를 구매하게 된다.
그럼 부채를 조달할 수 있다면 주택가격은 어떻게 영향받을까? 낙관론자들이 주택가격의 80%에 이르는 부채를 빌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주택가격의 20%에 상당하는 현금만 있다면 집을 살 수 있다는 말과 똑같다. 차입 능력이 생기면 즉, 부채 조달이 가능해지면 낙관론자의 구매력은 극적으로 늘어난다. 현금 1원이 있다면 4원의 부채를 빌릴 수 있다. 30억의 현금으로 120억을 빌릴 수 있으니 총 가용 자금은 150억 원이 된다. 30억 원으로 150억 원의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버리지 효과다.
이제 낙관론자들은 설사 주택가격이 1억5천만 원까지 오르더라도 시장 매물 100채를 모두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부채가 가져다주는 확장된 구매력으로 시장의 모든 주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채가 끼어들면서 주택가격은 낙관론자들이 기꺼이 지급하려는 금액으로 결정된다. 부채 조달이 가능해지는 순간 주택가격은 그 즉시 1억5천만 원으로 오른다. 빚을 낼 수 있는 세계에서는 낙관론자들이 시장의 모든 주택을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돈을 빌려줄 때는 한 푼의 손해도 없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되돌려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엔 단지 두 부류의 사람만 있다고 가정했다. 낙관론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비관론자들이다. 왜일까? 비관론자들은 주택가격이 1억2천만 원 이상 오르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낙관론자들이 너무 과도한 가격을 주고 집을 구매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꺼이 낙관론자들에게 1억5천만 원에 주택을 사라고 1억2천만 원을 빌려준다. 왜냐하면, 비관론자는 주택을 담보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관론자는 거품이 머지않아 터질 것이며 주택 가격은 1억2천만 원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돈을 빌려주는 까닭은 자신이 빌려준 돈을 충분히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거란 사실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1억2천만 원을 빌려주었지만, 주택가격이 아무리 내려가도 빌려준 가격은 될 것으로 믿으므로 자기 돈은 충분히 보호되리라 생각한다.
부채는 거품 속도를 높인다
부채는 위 사례에서처럼 주택가격을 높인다. 그러나 이것이 필연적으로 거품을 말한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사람들을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로 나눴다. 주택가격 오름세가 거품이냐 아니냐는 둘 중 누가 옳은가로 결정된다. 낙관론자가 옳다면 주택가격은 상승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거품 폭발은 없을 것이고 그 폭발로 인한 위기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자가 옳다면 주택가격 상승은 일시적일 것이며 미래 어느 시점에서 그 거품은 터질 것이다.
문제는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그 자체가 거품을 잉태한다는 데 있다. 주택가격 상승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가격 상승 자체가 새로운 시장참여자 즉, 투기자들을 불러 모아 폭등 상황으로 번지는 탓이다. 본격적으로 거품이 시작되는 셈이다. 부채는 거품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일정 기간 이를 지속시킨다. 부채에 접근이 쉬워질수록 낙관론자들은 더 많아진다. 이것은 더 높은 가격일지라도 자산을 구매할 누군가가 있을 거란 믿음을 강화한다. 그 세력은 점점 더 커진다. 이렇게 거품이 심화할 거란 기대는 낙관론자에 더해 투기자들을 시장에 끌어들이는 유인이 된다.
주택 붐을 비롯한 자산시장 거품을 설명할 때 야성적 충동의 요소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을 주로 기업가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성적 충동은 기업가들이 아니라 되레 투기세력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산 가격 강세현상이 지속할 거란 걸 안다. 이들이 참여하면서 시장은 거품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려간다.
신용 팽창을 막아야 거품 제어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거품이 생기는 원인이 야성적 충동에 있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거품 생성에 가장 크게 이바지하는 것은 역시 신용 팽창이다. 설사 비이성적, 비합리적 낙관론자가 다수여도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면 거품은 생기지 않는다. 부채 조달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에서는 거품을 막을 수 없다. 가격이 오르는데도 여전히 비합리적 낙관론자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합리적 투기자들은 시장에 진입한다. 이것은 거품을 끊임없이 팽창시킨다.
문제는 담보 자산을 토대로 한 신용창출을 통해 호황기 때는 끝없는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불황기가 오면 담보 자산의 시장가치는 낮아지고 채무자들의 이자상환능력 또한 고갈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신용창출이 언제나 담보 자산만큼 발생하리란 보장도 없다. 오히려 담보 자산 이상의 무분별한 신용이 공급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것이 붕괴를 불러오는 뇌관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거품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분별한 신용 팽창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담보 가치를 넘는 신용 공급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라면 담보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 것이냐인데, 이는 극히 기술적인 사안으로 분명한 것은 보수적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신용 팽창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신용은 정치의 몫이고 이는 결국 인간이 만드는 작품이다. 신용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도 결국은 사람 몫이다.
화폐 패러다임 전환 - 화폐라는 자본주의 축의 대전환
주류경제학에 밀어닥치는 물결, 암호 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 인식은 그야말로 볼품없다. 매우 의심스러운 화폐로 알거나 투기적 상품으로 오해하고 있기도 하다. 불법 약물 거래 사이트였던 실크로드가 FBI에 의해 폐쇄된 사실을 들며 비트코인이 마치 암흑가의 불법 거래나 자금세탁 도구인 양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가격 변동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거품이란 단어로 비트코인을 단정하기도 한다. 마운트곡스 폐쇄를 언급하며 엄청난 액수의 비트코인이 일시에 사라진 것에 언성을 높인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이런 얘기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비트코인 세계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뭐든지 실체를 모르면 설명하기가 외려 쉬운 법이다. 비트코인은 은행업과 상거래 방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이 있다. 비트코인은 단순한 화폐시스템이 아니라 혁신적 디지털 기술로 수십억 인구를 현대화, 통합화 그리고 디지털화, 글로벌화 한 경제로 안내할 나침반이다. 비트코인 세계가 구체화한다면 오늘날 세계는 마치 중세시대처럼 낡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어제의 은행 시스템
비트코인 시스템의 파괴력을 알아보기 전에 현대의 화폐, 자산 시스템 혹은 뱅킹시스템을 먼저 알아야 한다. 현대 화폐, 자산 거래 시스템은 르네상스 때 메디치가에서 기원한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은행이 탄생했으며 유럽의 화폐경제를 지배했다.
메디치가는 예금자와 차입자를 중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예금자가 가진 초과 자본을 이를 필요로 하는 차입자에게 수수료를 받고 연결해주는 방식이었다. 현대 은행이 하는 대표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혁명적 발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은행이 수많은 부채를 중앙 장부에 기록함으로써, 은행가는 강력하면서도 중앙집권화한 신뢰 시스템을 만들었다.
은행의 전문화된 중개 서비스 덕으로 과거엔 서로를 신뢰할 수 없어 비즈니스를 꺼렸던 이방인들이 이젠 마음 놓고 거래한다. 예금자는 차입자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돈을 빌려주고 차입자 역시 누구 돈인지도 모르면서 안심하고 그 돈을 쓴다. 모두가 은행이 중간에 서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메디치가가 이룬 혁신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돈을 창조해내는 고강력 시스템을 만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돈은 물론 물리적 화폐는 아니다. 메디치가는 일종의 신용시스템을 창조해냈다. 한 사회의 부채와 지급을 공유하고 확장하며 조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상거래가 급증하면서 특정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부와 자본이 창출됐다. 메디치가의 혁신은 세계를 바꿔놓았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들이 만든 은행 시스템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은행은 중앙집중화한 신뢰시스템을 만들면서 그 핵심에 있다. 결국, 은행은 매우 강력하면서도 과도한 권력을 갖게 됐다. 은행이 없으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되면서 세계 경제는 한층 더 은행의 중개기능에 의존하게 됐다. 은행이 그 깊숙한 금고에 보관 중인 장부는 한 사회의 부채와 지급을 추적할 수 있는 필수 수단이다.
또 오늘날 은행은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금융 트래픽을 관리하는 기능도 한다. 금융 트래픽을 관리하는 기능도 한다. 금융 거래를 하고 싶으면 은행과 거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은행업은 궁극적으로 지대추구 비즈니스이며 조세와도 같은 수수료를 부과해 이득을 챙기게 된다.
한편 새롭고도 복잡한 금융 비즈니스가 생겨나면서 또 다른 지대 추구 중개업자들이 출현했다. 전문화된 신뢰를 제공하는 채권과 증권 브로커, 보험사, 금융 변호사, 신용카드 회사와 지불 처리 업체에 이르는 이들은 끊임없이 세분화하고 전문화되어 있다.
오늘날 경제는 이들에게 예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활동을 멈추면 경제 시스템은 일시에 붕괴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어떻게 실물경제를 파괴했는지를 기억하면 한층 이해가 쉬울 것이다. 실물경제가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금융이 실물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시대다.
암호 화폐의 가능성
여기에 암호 화폐의 미래가 있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 화폐가 진정으로 대단한 이유는 중개인을 배제한 데 있다. 위에서 말한 현대 경제에서 중심에 자리 잡은 은행의 중개 기능을 무력화한 것이다. 중앙집권화된 금융기관이 보유한 거래 장부를 떼어내 자율적인 컴퓨터 네트워크가 그 일을 대신하게 한 것 즉, 어떤 금융기관 통제도 받지 않는 분권화된 신뢰 시스템을 창조해낸 것이 바로 암호 화폐다. 그 핵심에 완전히 공개된 그리고 고강력 컴퓨터로 지속해서 확인되는 보편적이지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장부가 있다.
이론적으로 우리에게 신뢰의 고리를 제공해주던 은행 혹은 금융중개자가 더는 필요 없게 됐다. 네트워크 기반의 장부는 중개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거래상대방 돈이 그 사람 것이 맞는지를 우리에게 효율적으로 알려준다. 은행은 중간에 개입해 거래 상대방의 신뢰를 담보해준다. 마찬가지로 암호 화폐 세계에서는 공개장부가 이 역할을 대신한다.
중개인과 그 수수료를 없앰으로써, 비즈니스 비용을 줄이고 중개기관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완화할 수 있다고 암호 화폐는 약속한다. 암호 화폐가 사용하는 공개장부는 과거엔 숨겨져 왔던 경제, 정치 시스템을 공개했다. 침범할 수 없는 중앙집권화한 기관 내부에 비밀리에 보관돼오던 장부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이 기술이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투명성과 회계성은 정보를 통제하는 중개인을 없앨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은행과 같은 금융 중개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거래에 적용할 수 있다. 일례로, 부정선거를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다. 그 핵심은 돈과 정보를 통제하는 파워 엘리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원래 주인인 일반 대중에게 이를 돌려주는 것에 있다.
암호 화폐가 완벽하진 않다. 많은 결함과 리스크를 안고 있다. 비트코인은 공개장부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컴퓨터 소유자들에게 유인을 제공한다. 이 과정을 보통 비트코인을 캐낸다고 하는데 실제론 공공장부를 관리하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는 것이다. 이는 화폐 권력의 분권화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 세계에선 네트워크를 장악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진 독점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비트코인이 그런 위협에 처해 있지는 않다. 또, 비트코인 생태계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짓을 하지 않을 거란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런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비트코인과 범죄는 상호 밀접하게 연결됐다. 이는 실크로드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디지털 화폐의 익명성을 활용해 약물을 팔고 자금 세탁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암호 화폐는 신천지나 다름없다.
어떤 사람들은 암호 화폐가 경제 위기를 조장할 거라 주장한다. 현재 통화 공급은 온전히 정부와 중앙은행이 행사한다. 그런데 암호 화폐가 일상화된다면 정부나 중앙은행이 이러한 통화 공급 독점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당연히, 경제 위기가 도래했을 때 현재와 같은 통화 공급 조정을 통한 경기회복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암호 화폐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암호 화폐는 파괴적 기술임이 분명하다. 모든 상황이 같다면 파괴적 기술은 경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낸다. 하지만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른다. 파괴적 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기존 시스템에서 먹고 살던 수백만 명이 자기 직업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정치적 긴장은 폭발할 것이다. 정치적 갈등은 옛 시스템 옹호자와 새로운 시스템 지지자들 간에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시스템 아래 여러 집단 즉 이상주의자, 기회주의자, 실용주의자, 기업가들 간에도 암호 화폐의 미래를 통제하려는 권력을 차지하려고 싸우게 될 것이다. 파괴가 돈과 관련된 기술로 주도됨에 주목해야 한다. 갈등은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파괴적 기술은 불가피하며 인류에겐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호 화폐는 디지털 화폐 시장의 새로운 아이템이 아니다. 달러, 유로, 엔을 대체할 새로운 교환 매체도 아니다. 그것은 중앙집권화한 신뢰의 폭군 즉, 기존 금융권력자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할 수 있는 무엇이다. 은행, 정부, 법률가 그리고 소수 기득권층이 가진 권력을 보통사람 즉, 대중에게 돌려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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