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경제학

   
서정희
ǻ
매일경제신문사
   
14000
2013�� 05��



■ 책 소개
한국 경제의 문제와 한계, 그리고 가능성과희망을 보다! 

매일경제 서정희 기자가 멀리는 IMF부터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압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세계 경제의 회생 조짐까지 담은 책이다. 저자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진보가 선행되거나 혹은 정치 발전이나 노사대타협 등과 같은 사회적 자본의 거대한 축적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에는 단순히 ‘새희망’의 솔루션을 구하는 것만으론부족하기에 &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다함께 새희망’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경제를 ‘거품의 시대-위기의 시대-분노의 시대-새희망의 시대’ 총 4단계사이클로 들여다보고, & 우선 새희망의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를 모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의 상황을분노의 시대로 묘사해 다루고,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거품의 시대와 위기의 시대를 순서대로 배치했다.
■ 저자 서정희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나왔다. 1990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경제, 금융, 산업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재정·금융정책을 포함한 정부의 거시,미시 경제정책의 허실을 꿰뚫어 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취재해 왔다. 

미국 미주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워싱턴특파원을 거쳐 논설위원, 금융부장, 경제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증권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총리실 규제개혁위원을 지냈고 금융발전심의위원, 민간투자심의위원, 연기금투자풀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하나은행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언론인으로서 관훈클럽 편집위원과 편집인협회 분과위원을 맡아 활동했으며 2011, 2012년 씨티언론인상 대상을 2년 연속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글로벌 임밸런스와 미국의 숨겨진 비밀』『나는 분노한다』 등이 있다. 
■ 차례
머리말 
Part 1 다함께 새희망의 시대 
제3차 30년전쟁이 시작됐다 | 알파 에러를 즐겨라 그래야 창조경제 싹튼다 | 그레이존을 바로 세우면 나라가 바로 선다 | 한국인도 금융 DNA 있다 -견선여기출(見善如己出) | 감독당국이 일류가 되어야 금융회사가 일류 된다 | 모피아 공무원과 금융감독원을 합쳐라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서로에게 묻다 | 2013년체제와 2018년체제의 조건 | 지옥을 믿어라, 성장률이 올라간다 | 스티브 잡스형·맹자형 리더십을 찾아라 | 대충그리면 망친다, 시장을 디테일하게 설계하라 | 근소한 차이(마지널)까지 존중받는 게 시장경제다 | 진정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만나는 곳 |호주 금융 왜 강해졌나 | 18대 대통령 당선자께 

Part 2 분노의 시대 
한국인의 분노엔 남다른 이유가 있다 | 분노의 진화,양극화에서 저성장으로 | 가라앉을 위험, 뒤집힐 위험 |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경제를 망친다 | 포퓰리즘정책에도 족보가 있다 | 갈 곳 잃은돈이 길을 묻다 | 과잉보호 패러독스 | 문 앞의 야만인들 | 정부 반대로만 하면 되나요 | OECD 가입과 G20 개최가 불러온 파국 |특보와 공무원의 패싸움 

Part 3거품의 시대 
달러를 움직이는 워싱턴 사람들 | 부동산 광풍의 비밀 - 토지보상비 100조 원 | 위기를 부르는 ‘같기도’한국 경제 | 글로벌 ‘쩐의 전쟁’이 온다 | 시장의 지배자 베이비 붐 세대 | 세계는 지금 청년실업 중 | 미국, 비만과의 끝나지 않는 전쟁| 20만 달러짜리 귀빈실 

Part 4위기의 시대 
대한민국, 액션플랜을 짜라 | 글로벌 경제대전서 승리하려면? | 이제 수술동의서를 씁시다 | 어중간한 정책이위기를 키운다 | 누가 ‘쏠림’을 부추기는가 | 중기(中期) 개혁과제에 올인하라 |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인다고? |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 ‘인디언 서머’의 본뜻을 아시나요 |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 사이 | 한 번은 비극, 또 한 번은 희극?

 





브런치 경제학


Part1 다함께 새희망의 시대

알파 에러를 즐겨라 그래야 창조경제 싹튼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 역할이 여기에 있다. 죽을 것과 살 것이 구분되는 건전한 생태계를 복원해 이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 이런 논쟁이 벌어진 적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좌파 집권 10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를 놓고 우파와 좌파가 전혀 다른 주장을 편 것이다. 우파에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빗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꼬집은 반면 좌파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잃어버린 게 있으면 신고하라, 찾아주겠다”는 지적처럼 우파 주장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그러면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할까. 이런 관점에서 1997~2007년을 되돌아보기에 좋은 그래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위 기업 마인드를 보여주는 제조업 업황 실사지수(BSI)고, 다른 하나는 기업 수익성 지표의 하나인 제조업 매출액 경상이익률이다.


장기 트렌드로 볼 때 경상이익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분명 상승 커브를 그렸다. 김대중 정부 평균이 1.2%였던 반면 노무현 정부 평균은 6.2%에 달한다. 반면 업황 실사지수는 들쭉날쭉 하지만 장기 하향 추세를 보이며 여전히 뚜렷한 개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일은 동일한 기간에 대해 양쪽이 서로 다른 그래프를 들이대며 자기 편한 대로 주장을 펼 수 있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들먹이는 쪽에선 업황 실사지수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래프가 장기 하향 추세를 보이는 건 기업인들의 기업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게 있으면 신고하라, 찾아주겠다는 쪽에선 실제 경상이익률이 올라갔음을 제시하며 반론을 편다.


이처럼 엇갈린 평가가 있지만 지난 15년간 외환위기가 재발하지 않은 것(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우리 경제도 큰 고생을 했다. 하지만 세계 모든 나라가 위기를 경험한 이때를 두고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다시 겪었다고 보는 건 곤란하다)에 대해선 모든 이들이 축복으로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지 모른다. 한 번 외환위기를 당한 나라가 다시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연구 결과에 따라 무려 35~48%에 달한다는 수치가 있다. 이러니 한국 경제가 그 사이 제대로 된 위기를 다시 겪지 않은 것만도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하지만 문제는 외환위기 대응 과정에서 생긴 위험 기피적이고 방어적인 사고방식과 행태가 오래 지속된 탓에 시장과 경쟁 대신 새로운 구조악이 싹튼 게 아니냐는 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흔적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하다. 대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에만 관심을 두니 대기업 납품에 목매는 중소기업으로선 언제 닥칠지 모를 납품 후려치기에 조용히 숨죽인 채 강파른 비탈 위 경영을 할 뿐이다.


이런 생태계에선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생존을 사회에 강요한다. 힘 있는 기득권 집단일수록 더 심하다. 재벌이든 노조든 혹은 교육자나 의사, 약사든 예외가 없다. 이러니 일감 몰아주기가 횡행하고 철밥통들이 깨지지 않는다. 리스크를 진단해 분담하는 일을 고유의 업으로 삼고 있는 은행들이 나날이 철밥통으로 전락해 가는 이유도 이 같은 위험 기피적 생태계 때문이다. 은행이 망하면 위기가 재발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무기로 해서 거꾸로 사회를 협박한다.


위기에 익숙해진 생태계는 리스크 회피적으로 변해 방어적 실패학습의 오류를 탐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학으로 말하자면 흔히 알파 에러(진실인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류)보다 베타 에러(거짓인 가설을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오류)를 즐긴다 할 수 있다. 코앞의 악천후를 적극적으로 짚어내지 않은 탓에 국민적 비난을 한 몸에 받은 뒤의 기상청 예보 패턴이 흔히 이와 엇비슷하다.


더 이상 이런 방어적 행태만으론 글로벌 위기 속에 벌어지는 국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럴 바엔 외환위기를 다시 겪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사회를 과감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비가 안 올 것 같으면 용감하게 날이 맑을 것이라고 예보해야 한다. 혹시 비가 내려 알파 예측 에러를 범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 우산을 준비하는 대신 운동회도 하고 공장 기공식도 열 것 아닌가. 우리 시대의 지도자 역할이 여기에 있다. 죽을 것과 살 것이 구분되는 건전한 생태계를 복원해 이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도 어찌 보면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art 2 분노의 시대

한국인의 분노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시장 경제로 오인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비판하는 것은 자본주의라기보다 부패한 시스템이다. 즉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정책과 인간의 탐욕을 탓하라. 소득 불평등 심화도 글로벌화와 혁신의 산물이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다.(앨런 그린스펀(2012, 파이낸셜타임즈 기고문))


대한민국은 지금 분노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빈곤층이나 일부 불만세력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젊은 층이든 노년층이든 혹은 가난한 사람이든 돈 많은 사람이든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고 강변한다.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분노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무엇이 우리를,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걸까.


지난 10여 년 사이의 국민의식 변화 속에 정답의 단초가 보인다. 매일경제가 1997년 실시한 비전코리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7%가 최우선 국가목표로 ‘경제강국 진입’을 꼽았다. 하지만 상당기간이 흐른 지금 같은 내용을 다시 조사한 결과 경제강국 진입을 꼽은 응답자는 22%에 불과했고, 무려 56%가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여 달라고 주문했다. 경제강국 진입이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성장 신화’에 금이 간 것이다.


제도 탓이야 허망하기 그지없고 저성장이나 세계화도 우리만의 악조건은 아닐 터, 21세기 한국인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설명이 꼭 추가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뭘까. 필자는 반복된 위기와 이로 인한 잘못된 생태계 환경 조성이라고 본다.

위기를 반복해서 겪다 보면 모든 유기체는 생존 자체를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문제는 개별 생명체가 아닌 어느 집단 전체가 생존 본능을 조직의 가장 우선시 되는 원칙으로 삼을 경우 이 집단의 미래는 참담해진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신진대사가 무너지면 생태계는 더 이상 자동조절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죽어 사라져야 할 것들이 죽지 않고 불사조처럼 살아남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숨만 붙어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건강하지 못한 100세 시대가 축복은커녕 재앙인 것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회 전체가 병들어버릴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경제를 망친다

공무원들이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과 반대의 정책을 추진하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을 듣는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공무원들은 자기 생각을 떠나 떠받들어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요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인 공무원들에게 ‘영혼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직업 공무원으로서 상당한 비애를 느낀다. 재정부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보루인 만큼 지금의 재정부 공무원들은 ‘영혼’을 가져도 좋다.(윤중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2009년 2월 인사청문회와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 중)


2012년 유럽위기가 전 세계로 번질 것인지 여부의 변곡점에 그리스의 선택이 놓여 있었다. 그리스는 당시 유로존 탈퇴와 동시에 채무불이행 선언을 할 것이냐 유로존 잔류를 결정하며 긴축의 고통을 택할 것이냐를 고민했다. 이 선택에 유로존의 운명도 달려있는 듯했다. 세계 이목이 집중됐던 그리스의 선택은 일단 긴축과 자구 노력을 통한 유로존 잔류로 나타났다. 다행히 블랙스완은 없었다.


전 세계가 한 나라(그리스)의 결정에 이토록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바로 공포심 탓이다. 위기 국면에선 이런 자그마한 돌발변수와 교란요인(Disturbance)이 자칫 블랙스완으로 극대화할 수 있다. 수리나 계량경제학에서 보통 에러 항목으로 표현되는 교란요인. 시간이 흐르며 흔히 통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변수지만 이따금은 불행의 씨앗으로 돌변한다.


현대 경제학에선 복수균형이란 교묘한 방법으로 이 난제에 대한 변명을 대신하고 있다. 과거처럼 펀더멘털(경제 기초체질)이 아주 나빠야만 위기가 온다는 식의 단선적 설명 대신 펀더멘털이 어느 정도만 나빠도 다른 요인의 합성에 따라 위기 여부가 결정된다는 식이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경제가 위기 국면일 경우엔 이럴 가능성이 있는 펀더멘털의 밴드 영역이 더 넓어진다. 펀더멘털이 극단적으로 좋은 게 아니라면 촘촘히 연결된 세계경제 틀 속의 부정적 전염 효과를 피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 한국 경제는 위기 촉발 가능한 이 밴드 안에 위치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실제 위기 촉발로 이어질 조건은 무엇이며 그 반대로 이를 막아줄 조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경제학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요체는 정책이고 정치다. ‘교란요인’이 산재한 정권교체 시기는 그래서 미묘하고 위험하다. 반복된 위기 속에 스며든 내성화된 가식적 위기의식, 그래서 비껴간 위기로부터는 반성도, 교훈도 터득하지 못하는 우리의 못난 리더십과 체질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히 우리처럼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힘을 잃어가는 현 권력이 새로 부상하는 차기 권력과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정책의 일관성이 붕괴된다. 이 기간이 되면 공무원은 다시 영혼이 없어지거나 혹은 여러 개의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자동 변환한다. 개헌 필요성이 여기에도 있는 셈이다.



Part3 거품의 시대

세계는 지금 청년실업 중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온 고용위기는 3A로 요약된다. 아시아(Asia), 자동화(Automation), 풍요(Abundance)가 그것이다.(다니엘 핑크, 2004, 워싱턴 케이토연구소 심포지엄 중)


워싱턴에 소재한 케이토(CATO)연구소가 유명 경제저널인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개최한 대형 심포지엄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2004년 봄이었다. 주제는 소위 미국의 일자리와 아웃소싱(Outsourcing)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논란이 충분히 진행된 주제였지만 워싱턴의 많은 싱크탱크 가운데 가장 우파 쪽이라는 케이토연구소가 다시금 집중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케이토연구소의 ‘케이토’란 이름은 고대 로마시대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웅변가로서 율리우스 시저 황제에 반대해 끝까지 공화정을 사수하려 했던 마커스 포셔스 케이토라는 인물에서 따온 것이다. 사실 그의 이름은 케이토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지적 관점을 추앙한다는 취지에서 라틴어로 최고의 지성이라는 뜻을 지닌 ‘케이토’란 이름이 붙게 됐다.


심포지엄에서 한시도 빠짐없이 등장한 화두가 하나 있었다. “18세 청소년에게 무슨 일을 해보라고 권할 것이냐”가 그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과연 어떤 분야를 유망하다고 말할 것이냐는 건데, 지금 그 답이 선명하지 않아 고민스럽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중국과 인도 등 인구 대국들의 경제성장이 빨라지면서 다른 선진국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상황이 되고 보니 대부분 국가들이 모두 청년 실업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답은 얻지 못했지만 참석자들은 그래도 교육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에는 하나같이 동의를 표시했다.


20만 달러짜리 귀빈실

1990년대 들어 적자에 헤매던 구단들이 취한 스포츠 마케팅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소위 ‘공공재(Public Good) 실패’에 대해 프라이빗 비즈니스와 사적 자본이 이를 보완하는 한 단면이기도 한다. 아마도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런 전용실을 갖고 있다면 빗발치는 여론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모든 이를 위한 공공적 성격의 경기장이 누적된 적자로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미국 미식축구장이나 야구장에는 개인전용 귀빈실(Suite)이 따로 마련돼 있다. 관중석 가운데 로얄석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로얄석이라고 해봐야 경기장에 설치된 관중석의 일부일 뿐이고, 그래서 자기 좌석 옆에는 남모르는 사람들이 앉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인 전용 귀빈실은 다르다. 이따금 영화에서 보면 거부 역할을 맡은 등장인물이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자기들만의 전망 좋은 공간에서 미식축구나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고급 식당처럼 종업원이 정성껏 각종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용 화장실도 따로 있다.


그러면 실제 이런 개인 전용실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고 그 가격은 얼마나 할까.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애틀란타 팔콘스와의 미식축구를 경기를 워싱턴 인근 페덱스(FedEx) 구장의 바로 이 ‘개인 전용실’에서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꽉 막힌 도로가 미안할 따름이었지만 ‘귀빈실’ 손님들이 가진 주차티켓은 한쪽 편 길로 비교적 한적하게 프리 패스를 하는 대접을 받았다. 주차 후 경기장에 입장할 때도 아예 입구가 달랐다. 경기장에 들어간 뒤 ‘귀빈실’이 있는 4층까지 가는 것도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토록 하고 있었다.


귀빈실이 있는 층에 도달하자 방 앞에 각기 문패가 붙은 귀빈실이 나타났다. 귀빈실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50개는 넘고 100개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문패에 적힌 귀빈실 주인들은 다름 아닌 이 지역 굴지의 기업들이었다. 간간이 개인 거부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10여 평 됨직한 방 안에는 고급 와인을 비롯해 각종 음료수와 스낵과 식사류가 준비돼 있다. 편하게 앉아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안락의자 10여 개, 소파, 탁자 등도 비치돼 있었다. 큼직한 화장실과 세면실도 있었다.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가격. 1년 단위로 임대를 하는데 연간 임대료는 20만 달러라고 설명했다. 규모와 시야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가장 비싼 것은 50만 달러를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가격에는 식사, 음료수 등 부대비용은 제외다.


1년 내내 최고급 대우를 받으면서 이 정도 비용이면 그리 비싸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사실은 1년 통틀어 고작 10번 정도다. 정규시즌 동안 홈경기를 치르는 것과 비정규 시즌의 프리시즌 게임의 횟수를 합해봐야 그 정도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최대 20명 정도가 1회 이 곳을 이용하는 가격은 방값만 최소 2만 달러가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Part4 위기의 시대

누가 ‘쏠림’을 부추기는가

쏠림 현상의 본질을 리스크 회피라는 이기심으로 해석하는 경제학에서는 ‘불완전 정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과거에 비해 정보 유통이 무척 빠른데 무슨 얘기냐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정보 유통이 10배 빨라졌다 해도 100배, 1,000배 늘어난 비즈니스 기회와 리스크에 비하면 정보의 불완전성은 더 심해진 셈이다. 사실 정보의 질과 유통주기, 배분구조 등이 혁명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빠른 정보 유통은 오히려 쏠림을 가중시킬 독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소위 쏠림 현상(Herd Behavior)이 아닐까 싶다. 누가 저쪽이다 외치면 우르르 저쪽으로 몰려가고 반대로 다시 이쪽이다 하고 바람을 잡으면 또 이쪽으로 몰려온다. 누가 뭐라든 자기 소신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남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쏠림 현상은 한마디로 군중심리 혹은 합리적 이기심에 입각한 집단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새 떼처럼 선두에 선 한 마리가 방향을 틀면 그 뒤를 따르는 무리가 일제히 그쪽으로 방향을 트는 군집 행태를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쏠림 현상은 글로벌 경제를 비롯한 모든 경제 영역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국제금융이나 외환시장에서는 경제학적 분석틀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경색도 쏠림 현상의 일종이고, 참여정부에서 나타난 부동산 광풍이나 대출 경쟁도 일종의 쏠림 현상이다.


인터넷을 포함해 우리의 정보 유통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정보 유통시장이 커진 만큼 정보의 질과 배분구조에도 그만한 발전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방송이나 신문이나 포털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입맛에 맞는 그 뉴스에 그 뉴스고, 그런 칼럼에 그런 주장이다. 정보 유통시장에 제대로 된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았던 탓이다.


백스윙이 크면 포워드스윙도 커진다. 한 쪽으로의 쏠림은 다른 한 쪽으로의 쏠림을 키운다. 펀더멘털(기초여건)을 무시한 단기대책은 이런 시장구조만 악화시킨다. 다시금 인사가 만사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비극, 또 한 번은 희극?

흔히 정치적 사건의 굴절된 반복을 일컫는 표현으로 이런 명구가 있다. “세계사의 중요한 사실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해 나타난다. 한 번은 비극(Tragedy)으로, 또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사실 이 말은 칼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을 다룬 저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나온다. 자칫 ‘한 번은 비극적 종말, 다시 한 번은 해피엔딩’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799년 쿠데타를 모방해 1852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을 역사의 우스꽝스러운 광대극처럼 묘사한 것이니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하면 옳을까. 마르크스의 저작까지 들먹이려니 좀 거창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길이 조금 잡혀가던 2009년경 우리 경제정책 당국의 출구전략(Exit Strategy, 일반적으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취해진 긴급대책 등을 정상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미로 사용됨) 정책을 지켜본 결과 드는 생각이다.


글로벌 위기가 터지자 너무 겁을 집어 먹고 돈을 마구 풀어대지 않았나. 그 결과로 주택담보 대출 증가세가 워낙 심상치 않은 데다 2006년 뼈 아픈 경험을 겪어 보지 않았나. 한은과 금감원 모두 서로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핑퐁을 치다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조이는 부산을 떨었지만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자칫 집값이 다시 크게 오르기라도 하는 날이면 2010년 상반기 지방자치단체 선거는 해보나마나 집권당의 필패가 뻔한 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이번엔 당국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앞장서겠다고 나선 모양새였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수단이 너무 구태의연하고 3년 전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이었다. 얼마 지나서도 주택담보대출이 잡힐 조짐을 안 보이면 정책 당국자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가계의 지불능력이 극단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다. 주택담보대출도 절반 정도가 부동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실상 생활안전자금이다. 2006년엔 금리인상이 집값 앙등을 가라앉혔지만 이번에는 위기 탈출은커녕 자칫 가계부채 대란의 뇌관에 불을 붙이며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가계부채 문제가 정권을 넘기면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건 희극이자 비극이다. 창의적 정책 조합이 항상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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