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의 제국

   
제니퍼 클랩(역자: 정서진)
ǻ
이상북스
   
16000
2013�� 01��



■ 책 소개
“정보혁명 다음은농업혁명이다” 

빌 게이츠의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현 시점에서 세계의 지배자는 ‘식량’의 지배자가 될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식량이 상품화된 사회에서도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이 상황에서 초국적기업들의 세계 식량시장 확보를 위한 움직임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이다. 이미 국제 시장에서 ‘식량’을 둘러싼전쟁은 시작됐다.

청양고추 종자가 다국적기업 몬산토의소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파프리카의 종자 값이 금값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아는가? 매년 우리가 지불하는 종자 로열티가 1000억 원에이른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리고 재사용이 불가능한 터미네이터 씨앗에 대해 알고 있는가? 당장 내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이런사안을 안일하게 바라본다면 불과 얼마 가지 않아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초국적기업과 국제무역, 그리고 금융시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른바 ‘세계식량경제’ 시스템에 대한 책. 거대 자본이우리 몸에 들어오는 ‘식량’을 지배하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불균형, 특히 우리의 생명과 관련된 ‘식량’의불균형이 초래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에 앞서 왜 지금 ‘식량’이 세계무대에서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되었는지밝힌다.

■ 저자 제니퍼 클랩(Jennifer Clapp) 
미시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런던 정경대학에서 국제 관계학 분야 석 박사를취득했다. 워털루대학교 환경자원학부와 발실리국제학대학원 교수이자 국제거버넌스혁신센터(CIGI) 국제환경거버넌스 분야 위원장이다. 그녀는 국제농산물 통상 정치학, 식량 지원, 농업 바이오테크놀로지, 지구촌 환경과 식량에 관한 다국적 기업의 역할 등을 포함한 지구촌 경제, 식량, 환경에관한 인터페이스(접점) 영역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를 각종 저술 활동으로 알리고 있다. MIT의 저널 「Global EnvironmentalPolitics, 글로벌 환경 정치학」의 공동 편집자이자, 「Global Governance, 글로벌 거버넌스」의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Paths to a Green World:The Political Economy of the Global Environment, 녹색 세상으로; 글로벌 환경에 대한 정치 경제학(MIT,2005)』 『Toxic Exports: The Transfer of Hazardous Waste from Rich to PoorCountries, 유독성 수출품: 부자 나라에게 가난한 나라로 수출되는 유독성 폐기물에 관하여(코넬대학교, 2001)』 『Adjustmentsand Agriculture in Africa: Farmers, the State and the World Bank in Guinea,아프리카에서의 조정과 농업; 기니에서의 농부, 국가, 세계은행(맥밀란, 1997)』와 『Corporate Accountability andSustainable Development, 기업의 책임과 지속가능한 발전(OUP, 2008』 『Corporate Power in GlobalAgri-Food Governance, 지구촌 농식량 지배에 관한 거대 기업의 파워(MIT, 2009)』 『The Global FoodCrisis; Governance Challengers and Opportunities, 지구촌 식량 위기: 관리에 관한 도전과기회(월프리드대학교)』 등이 있다. 

■역자 정서진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스파이스-향신료에 매혹된 사람들이 만든 욕망의 역사』가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자연의 종말, 몸의 식민화 -홍세화 
서문: 먹을거리가 위험하다! - 강수돌 

1 세계식량경제 알기 쉽게 풀어내기
2 세계 식품산업시장의 등장 
3 불공정한 농산물 무역 규정
4 초국적기업
5 식량의 금융상품화
6 세계식량경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원주 
약어 목록 
도표와 표 
찾아보기





식량의 제국


매일 아침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말해주는 이 책이,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우리의 통제 밖의 상품이 될 때 어떤 위기가 오는가에 대한 인식을 넘어, 콜럼버스 시대로부터 500년 후 인간의 몸 자체를 식민화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목적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

- 홍세화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을 보다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도와준다. 갈수록 식량, 음식이 글로벌 상품으로 변하는 이 시대에 도대체 무엇이 잘못 돌아가는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옳은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고 이웃과 함께 깊이 있는 토론과 실천을 해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태나, 돈이 있어도 엉터리 같은 음식을 먹고 몸과 정신을 망치는 어리석은 일, 한쪽에서는 남아돈다고 음식을 버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먹을 게 없어 굶주리는 사회적 자아분열 현상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 강수돌(고려대 교수, 『살림의 경제학』저자)


이 책 안에는 굶주리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진리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 안에는 먹는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먹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진짜 이야기입니다. 활동가뿐 아니라 아이나 어른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한 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소중한 책입니다.

- 서정홍(농부 시인, 열매지기 공동체 대표)


세계식량경제는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관련된 모든 측면, 즉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음식이 더 이상 영양의 원천이나 문화적인 요소로 여겨지지 않고 대체 가능한 상품이 된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초국적기업, 국제무역, 금융시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식량경제를 알기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공정무역, 식량정의, 식량주권을 널리 도입하고자 노력하는 활동가들이 세계식량경제를 재설계하는 데 필요로 하는 정보와 방법들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 매리언 네슬(뉴욕대 교수)


세계식량경제를 주도하는 세력들에 대한 날카롭고 간결하면서도 충분히 상세한 안내서!

- 라즈 파텔(UC버클리 교수, 『경제학의 배신』 저자)


이 책은 식량이 왜 세계무대에서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되었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 로버트 포크너(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



세계식량경제 알기 쉽게 풀어내기

당신은 오늘 아침 먹은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물론 이것은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먹은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거치는 생산, 운송, 가공, 거래 과정에 대해 거의 속속들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신선한 유기농 계란이나 니카라과산 공정무역 커피 같은 식품을 선택한 소비자라면 말이다. 반면 냉동 와플이나 인스턴트 코코아 같은 가공식품을 사 먹는 소비자라면 그 과정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주로 대형 마트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가공식품은 전 지구적인 식품산업 체계를 통해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도착한다. 때문에 우리 중 대다수가 우리가 먹는 음식의 원산지와 운송 경로는 물론 이동 중 얽혀 있을 권력관계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세계식량체계의 기능,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의 생산, 가공, 무역, 마케팅에 이르는 관계망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식량체계가 적당한 가격에 안전하고 풍부한 먹거리를 편리하게 공급하면, 그 체계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실제로 식품의 장거리 교역이 이루어지고 식품산업체계의 힘이 전 세계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확대되면서, 급속하게 성장하는 소매식품 시장을 통해 전 세계 소비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더욱 다양한 식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들은 과일이나 야채처럼 다양해진 식품을 일 년 내내 구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영양학적인 혜택을 누린다. 과학 기술이 도입되어 식품을 오래 유지할 뿐만 아니라 식량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지역까지 수월하게 운송함으로써 식량의 낭비도 줄어든다. 지난 30여 년간 이 식량체계는 표면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가능한 진정 세계적이고 안정적인 식량 공급망으로서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안정적이고 풍부한 식량체계 덕분에 식량이 공급되는 지리적 범위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식품가격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체계가 값싸고 손쉽게 식품을 제공하는 한, 굳이 의문을 던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식량을 재배, 가공하고 매매하는 방식과 관련해 그 이득과 비용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었다. 최근 수십 년간 세계식량체계의 현 구조가 미치는 생태적, 사회적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생물다양성이 훼손되고 농약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독소가 노출되는 등 대량 농업생산의 부작용이 갈수록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현 세계식량체계에 의문을 던지는 또 다른 요인은 최근 세계시장에서 식량 가격이 급상승한 데 있다. 가격폭등은 세계식량체계 안에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 우리가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세계식량체계에 일어난 이 충격적인 혼란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왜냐하면 지난 30년 동안 세계시장의 식량 가격은 낮은 상태를 유지하거나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식량파동 이전까지 식량체계에 쏠린 주요 관심은 개발도상국 농업 생산자들에게 적절한 소득과 식량안보를 보장하는 데 있었다. 개도국 농민들은 식량을 생산하면서도 식량의 순구매자로, 스스로 적절한 수준의 영양을 유지할 만한 소득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식량안보에 큰 파장을 불러온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현 식량체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세계식량체계의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역학관계가 전 세계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식량경제는 하루아침에 저절로 확대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해 세계식량경제를 형성했다. 세계식품시장은 이미 1세기 전에 등장했지만, 특히 1940년대와 195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의해 탄력을 받아 성장했다. 세계식량경제가 확대되던 이 시기에 산업형농업이 전 세계적으로 채택되었고, 국제적인 식품시장이 발달했다. 그 과정에서 최근 수십 년간 세계식량경제를 더욱 확대시킨 또 다른 요인들이 등장했다. 세계 농업 무역의 자유화를 위해 새롭게 세계적 규범이 성립되었고, 글로벌 식품의 생산, 가공, 무역, 유통을 좌우하는 초국적기업이 등장했다. 또한 농산물과 먹거리가 상품화되어 금융 투자자들에 의해 매매되는 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세계식량경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먹거리가 점차 일반적인 상품처럼 취급되면서 세계식량경제에서 식품의 이동거리가 늘었다. 둘째, 세계식량체제는 불균형과 변동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위기에 취약한데, 특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마지막으로 생태학적인 위험에 취약해 먹을거리와 농업의 기본 토대마저 위험에 빠뜨린다.


세계식량경제의 이러한 특징들이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 세계식량경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저항운동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식품시장의 세계적인 추세에 비하면 규모 면에서 여전히 미약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에 중대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불공정한 농산물 무역 규정

현 식량체계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식품의 이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식품과 농산품이 세계 상품무역의 약 10퍼센트, 그리고 1차 상품무역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한다. 식품무역의 총 가치는 엄청나서 1990~1991년에 3150억 달러에서 2008년에 1조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또한 각국 정부들은 오랫동안 자국의 농산물 생산과 무역을 관리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국가안보와 정치적으로 중요한 유권자인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자국의 농산물 생산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가격 및 소득 지지정책을 통한 자국 농민 보조, 수입식품에 대한 높은 관세나 쿼터 부과 등 여러 정책들이 여러 국가에서 일반적인 관례가 되었다.


이러한 정책이 자국 내에서는 농업을 보호하는 데 일조했지만 국제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고, 일부 국가들은 다른 국가에서 실시하는 높은 수준의 농업무역 보호주의로 인해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198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산업국가들로 구성된 기구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해마다 평균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농업에 지원했다. 이렇게 산업국가들이 보조금 지급을 많이 함으로써 값싼 농산물이 세계시장에 유입되고, 심지어 생산가보다 밑도는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자 개발도상국의 농산물 생산자들은 값싼 수입 농산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비록 가난한 나라의 도시 소비자들은 싼 가격의 혜택을 봤지만 말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 같은 보조금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농산물 수출국들은 자국 수출품의 가격 하락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일부 국가들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인한 높은 비용과 이러한 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계기로 농산물 무역의 장벽과 왜곡현상을 없애자는 요구가 사방에서 빗발쳤다. 그 결과 당시 새롭게 WTO 체제 하에서 1994년에 국제협정인 농업협정이 맺어져 무역 자유화에 몇 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나 결국에는 선진국들이 대농 및 거대 농업 관련 산업들에게 혜택을 주는 보조금 제도를 유지하면서 개도국의 소농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불공정한 무역규정이 생겨났다.


WTO의 도하라운드에서 진행되는 현 농업무역협상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있다. 그러나 2001년 11월에 시작한 협상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선진국 정부들은 자국의 농업보조금을 줄이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편, 개발도상국의 시장에 대해서는 문호를 개방하라고 더욱 압력을 가했다. 게다가 유럽공동체의 뒤를 이어 1993년에 출범한 기구인 EU(유럽연합)와 미국은 어떤 형태의 보조금이 가장 해가 되어 가장 많은 삭감이 필요한지를 두고 의견 차이를 빚었다. 이러한 견해 차이로 인해 최근 10년 동안 협상은 번번이 결렬된 한편 국제무역규정의 불균형은 지속되어 소농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난 30년간 농산물 무역에 관한 새로운 규정들이 국제적 수준에서 마련됨에 따라 세계식량경제에 새로운 중간지대가 생겨났다. 이 국제 규정들은 이전에 만들어진 자국 내 농산물 무역규정보다 우선했는데 실제로는 선진국들에게 유리할 뿐 대단히 불공정한 규정이었다. 개도국들은 경제개혁 프로그램과 우루과이라운드의 일환으로 실시된 관세감축정책으로 인해 자국의 농산물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그러나 부유한 선진국들은 해마다 자국 농민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계속해서 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상호 호혜적인 차원에서 개도국들의 농산물에 대해 자국 시장을 개방할 의무도 없었다.


협상합시다?

"잘못된 협상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하다"


이 문구는 도하라운드, 특히 농업 협상과 관련해 도처에서 회자되고 있다. 주요 협상국들은 각각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고 있고,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언제든 협상 테이블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이 시장접근성을 개선하고 국내 농업보조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미국은 협상에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유럽 또한 자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민감 품목에 대해 관세감축의무를 면제받지 못한다면 협상을 통해 얻을 이익이 별로 없을 것이다. 농산물 무역의 왜곡현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개도국조차 현재의 협상안에서 얻게 될 이익은 그리 크지 않다. 협상 초기에는 도하라운드, 특히 농산물 무역 자유화 덕분에 개도국에 돌아갈 이익 규모가 약 50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최근 추정치에 의하면 160억 달러 정도이다. 게다가 도하라운드의 효과는 개도국들 사이에서도 불균등해 더 크고 부유한 개도국이 작고 가난한 개도국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일례로, 브라질과 인도는 각각 36억 달러와 22억 달러의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겨우 4억 달러의 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심지어 멕시코 같은 일부 나라들은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들에게 있어 문제는 미국과 EU가 여전히 세계 농산물 시장을 왜곡할 정도로 자국의 농업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개도국들은 농업 보조금을 지급할 정도로 자금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관세와 세이프 조치가 보조금을 받는 저가의 선진국 농산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책이다. 이 방책마저 없다면 개도국 농민의 생계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다. 개도국의 이러한 기본적인 목표마저 반영하지 않는 반쪽짜리 협정이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것이다.


한편 협상이 무기한 중단되고 있는 동안에도 선진국들은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 수준을 높이고 관세정점과 경사관세제도를 계속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행이 지속된다면 개도국들은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개도국들은 목소리를 높여 협상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지만, 농업규정을 둘러싼 교착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막판 타협이 새로운 농업무역 협상 타결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때가 돼서야 협상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에게 미칠 진짜 영향에 대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초국적기업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세계식량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실 최초의 초국적기업-두 개 이상의 나라에서 활동하며 국제적 견지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은 식품 및 농기업들이었다. 식품교역이 지난 50년간 더욱 세계화되면서 민간 기업들이 교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경을 이동하는 식품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세계 식품기업들이 식량체제에서 중심적인 행위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1980년대에 특히 활발해졌다. 당시 전 세계 정부들은 20세기 중반의 특징이었던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에서 벗어나 식량체계를 민간 부문이 운영하도록 장려하기 시작했다. 초국적 농식품 기업들은 규모뿐만 아니라 범위 면에서도 커져 수많은 회사들이 다양한 부문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이 규모와 범위를 확장하면서 세계식량경제 내에서 기업 활동은 더욱 세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훨씬 집중화되었다.


초국적 농식품 기업들이 지배하는 세계식량경제는 크게 세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중심에는  농식품 무역 및 가공회사가 있다. 이 기업들은 1세기 넘게 세계 식품 교역을 주도해 왔다. 두 번째는 종자나 농약을 판매하는 농업 투입재 부문으로, 1990년대 이후 주요 기업들 간에 인수 합병이 활발해지면서 높은 수준의 집중화가 이루어졌다. 세 번째는 식품소매기업으로, 1990년대 이후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엄청나게 성장해 소수의 거대 식품점 체인들이 소비자들의 식품 구매에서 예전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계식량경제의 각 부문에서 집중화가 두드러지면서 기업들은 점차 수평적인 통합(농식품 시장 내에서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수직적인 통합(공급사슬의 위에서 아래 단계까지 아우르는 것)을 이루었다. 따라서 최근 수십 년 동안 인수합병이 빈번히 일어난 이후로 세계 농식품 기업은 이 세 가지 부문 중 어느 한 곳에서 활동한다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방식으로 여러 부문에 얽혀 있다.


이 기업들에게 중요한 것은 규모와 범위뿐만이 아니다. 기업의 성공 여부는 사업 활동 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초국적기업들은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면서 세계식량경제의 중간지대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식량경제의 규정과 운영규범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기업들 중 일부는 농산물을 사고파는 가격을 정할 수 있는 가격결정력을 보유함으로써 경쟁 회사들뿐만 아니라 농산물 공급업자들의 사업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회사들은 공급자들이 제공하는 상품의 유형과 특징을 결정하는 민간표준화기구에 참여한다. 기업에 유리한 교역과 투자 규정을 수립하도록 정부에 직접적으로 로비를 하는 회사들도 있다. 또한 일부 회사들은 자신들의 사업과 관련된 문제가 공적인 토론 대상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기업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한 이 같은 여러 전략 중 하나에서 강점을 보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모든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도 있다.


기업 영향력의 근원

식품체계에서 기업들이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규모나 매출액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요인들도 물론 기업들이 시장에서 활동하는 방식에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식량경제에서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는 중간지대에서 활동하는 규칙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업들의 이러한 영향력은 대단히 크며 또한 최근 수십 년간 계속 커지고 있다. 세계식량체계 안에서는 물론 그 너머에까지 기업들이 미치는 영향의 양상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들은 시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해 사업을 더욱 탄탄하게 한다. 기업들은 가격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급업체가 지켜야 하는 기준을 정하며, 자신들이 따라야 하는 규정, 제도, 기준을 만들고, 시장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식량체계에서 자신들의 활동과 역할에 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농식품업계의 여러 부문들 중 기업의 힘이 집중된 곳은 모래시계의 가장 좁은 지점-집중화 정도가 가장 높고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곳- 즉, 상품을 사고 싶도록 만드는 단계다. 예를 들어, 옥수수로 콘플레이크를 만들고 밀로 빵을 만들거나 씨앗에 좋은 형질을 이식해 유전자조작 종자를 만드는 등, 구매하기 쉬운 상품으로 만드는 단계이다. 특정 상품이나 부문에서 모래시계의 이 좁은 지점을 점령한 회사들이 사업 환경에 힘과 영향력을 더욱 행사한다. 이러한 회사들은 다른 회사들이 경쟁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판매자와 구매자 중간에서 활동함으로써 그 좁은 영역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이러한 사업방식은 기업에 이윤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생산, 가공, 소비에 대한 통제권을 쥘 수 있다. 이제 먹거리와 관련된 지배권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손을 떠나 투입재 판매 업체, 곡물 무역업체, 식품 소매업체의 수중에 들어갔다. 



세계식량경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수많은 요인들이 세계식량경제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국가, 국제기구, 민간재단, 초국적기업, 금융기관들이 각각 다양한 동기와 상황에 따라 세계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식량경제가 세계화되면서 위의 행위자들이 차지하게 된 새로운 중간지대가 생겨났고, 게임의 법칙을 정하는 힘은 점차 중간지대에 집중되었다. 주요 행위자들이 중간지대를 장악함에 따라 국가의 중상주의적 목표, 국제기구와 민간재단의 개발목표, 초국적기업의 이윤추구, 투자자들의 금융적인 목표가 식품과 농업 부문의 지배적인 목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에 관한 농민의 선택과 먹거리 구입에 관한 소비자의 선택 사이에 존재하던 연결고리가 끊어졌고, 대신 세계식량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한 행위자들이 농민과 소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세계식량경제를 형성한 주요 요인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 근원을 추적하기가 어려울 만큼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낳았다. 식량체제를 장악한 행위자들의 활동과 결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량체계가 세계화되면서 실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적어도 돈만 있으면 계절과 상관없이 사시사철 전 세계의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쉽게 구입하게 되었다. 또한 세계 식품공급사슬을 통해 잉여 생산물 국가에서 식량이 부족한 국가로 작물을 보냄으로써 식량을 재분배하게 되었고, 식품안전기준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식량경제의 세계화로 인해 반드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농식품 공급사슬과 식품시장이라는 조직은 국제적 수준에서 먹거리를 상품화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바꿔놓았다. 먹거리를 국제 교역에 의존하게 되면서 특히 세계 빈민들의 경우 가격 변동과 위기에 취약해졌다. 또한 산업형 농업 모델이 도입되면서 부국과 빈국 모두의 생태계가 위험에 처했다. 현대의 식량체계에서 일 년 내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구입하게 하기 위해 사회와 생태계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얼마나 큰가?


2007~2008년 식량가격파동으로 기아인구가 기록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체계가 생태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이후, 식량체계를 반대하는 이들은 물론 식량체계에서 주도권을 쥔 행위자들 또한 세계식량체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중간지대를 장악한 행위자들, 즉 국가, 국제 개발기구, 민간재단, 기업, 금융투자기관은 국제적으로 채택된 주류 세력의 대응책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세계식량체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들의 방식은 식량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강화하고, 세계식품시장을 더욱 통합하며, 기업들이 식품업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장려할 뿐만 아니라 농산물 원자재 선물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식량체계의 가장 뚜렷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약간 변화시키되, 근본적으로는 세계식량체계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기존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주류 세력들의 방식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최근 수십 년간 현재의 세계식량경제에 반대하며 대안을 제시하거나 세계식량경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러 저항운동들이 등장했다. 이 운동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이나 전략에 있어서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세계식량체계가 현재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이들에 따르면, 세계식량체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들은 농민, 특히 개도국 농민에 대해 더 공정한 대우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음식이 세계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환경적인 농업방식을 채택하고 기업의 집중화와 지배를 줄이며 먹거리의 금융상품화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대안적인 먹거리 운동들은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목표를 성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를 낼 때도 있다. 일부는 국제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정책을 도입해 국제 식품교역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식량의 금융상품화를 제한하는 등 규제개혁을 통해 체계 자체를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한편 다른 운동진영은 개도국 농민들을 위한 공정한 무역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제 식품무역에서 중개 행위자들을 배제시킴으로써 대안적인 상품 공급망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또한 세계식량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지역식량체계를 되살리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각각의 운동들은 주류 세력의 방식과 달리, 농민과 소비자가 아닌 다른 행위자에 의해 생겨나고 점령된 중간지대를 축소하거나 탈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