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마티아스 빈스방거(역자: 김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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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4��



■ 책 소개
낡아빠진 아이디어가 창조한 쓸모없는 성과들!
효율성의 가면을 쓰고 우리를 무한경쟁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죽은 경제학자의 유령을몰아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날 과도하고 불필요한 경쟁을 시장 경제 원리 ‘보이지 않는 손’에서 찾고, 이 무의미한 경쟁을 저지하기 위한 7가지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학계와 의료계, 교육계뿐만 아니라 경제 전 분야에 걸친 폭넓은 사례와 풍부한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죽은 경제학자의 허상만강요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유머러스하고 통쾌한 반격을 날린다. 그리고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자이자 『문제는경제다』의 저자 선대인은 감수의 글을 통해 입시경쟁, 스펙경쟁, 입사시험경쟁, 승진경쟁, 성과급경쟁, 아파트 평수 경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건전성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 문제의 근원인 무자비하고 무의미한 경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약자에한없이 가혹한 경쟁의 이중구조를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 저자 마티아스 빈스방거(Mathias Binswanger)
스위스 상트갈렌대학교에서교수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과 스위스 바젤대학교, 중국 청도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솔로투른대학교와북서스위스응용과학대학에서 금융과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거시경제, 금융시장이론 등을 주요 연구 분야로 하고 있으며, 행복과 수입의 상관관계를다룬 『행복을 향한 제자리걸음』은 2006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스위스 최고 권위지인 「취르허 벨트보헤」에서 주요 칼럼니스트로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학술지와 경제지, 일간지에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 역자 김해생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독일어과와통역대학원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제12회 한독번역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대학교에서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우스트 박사』『낭만적인 고고학 산책』『밤의 여왕』『4개의 인간』『마음을 훔치는 공간의 비밀』 등이있다.

■ 감수 선대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케네디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와 미디어다음취재팀에서 기자로 생활했고, 2007년 서울시 정책전문관, 2008년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현재 시민모임 ‘세금혁명당’의 대표이자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김미화, 우석훈, 김용민과 함께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 출연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위험한경제학』(전 2권),『프리라이더』『세금 혁명』『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공저),『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공저) 등이있다.

■차례
감수의 글
서문

1부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1장 ‘보이지 않는 손’의 불편한 진실 -시장은 항상 이성적일까?
‘보이지 않는 손’의 탄생 |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한 시장 | 완전경쟁의허상 | 시장숭배자의 착각 

2장 이성적 인간의 비합리적행동 - 경쟁은 정말 효율적일까?
민영화의 딜레마 | 선의의 경쟁과 악의적 다툼 | 이성적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 | 시합을 위한 시합

3장 성과의 역설 - 숫자의 함정에 빠진경제학
100미터 달리기 VS 피겨스케이팅 | 경제에 드리운 라플라스 악령 | 균형성과기록표와 벤치마킹의 속임수 | 변태성만 자극하는숫자경쟁 | 내부경쟁의 무의미한 성과 

4장 인센티브의함정 - CEO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진짜 이유
당근과 채찍 | 내적동기와 외적동기 | 인센티브의 구축효과 | 뷔르트 시스템

2부 죽은 경제학자가 지배하는 사회
5장 경쟁의 광기 - 무의미한 경쟁이 만들어낸 수많은 허튼짓들
교육계를 점령한 경쟁의 그림자 | 검증하지 못하는검증 마크 |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 

6장 무너진상아탑 - 논문 올림픽에 참가한 연구하지 않는 교수
우수성을 창조하려는 헛된 노력 | 연구비를 둘러싼 논문 올림픽 | 승리를 위한 편법,학문적 매춘 | 쪼개고, 늘리고, 조작하라 | 매춘부들의 평균수입에 관한 쓸데없는 연구 | 학계에서 생산하는 허튼짓의 부작용

7장 휴짓조각이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 - 의사들을장사꾼으로 만드는 법
시장논리에 휩싸인 의료산업 | 비용과 사망률을 아웃소싱하다 | 의사들의 ‘품질경쟁’ | 복종에 대한 보상 | 예방하지못하는 쓸데없는 예방 | 의료계에서 생산되는 허튼짓의 부작용 

8장 성스러운 소는 없다 - 무의미한 경쟁의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법
허튼짓을 멈춰라 
감사의 글

참고문헌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서문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시장이나 경쟁의 기능을 맹신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공공기관이든 민간단체든 시장경제의 뛰어난 효용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러한 가운데 시장경제의 효용성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만연하게 되었다.


다음 두 사례는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시장이 성립되지 않는 분야에서 인위적으로 유도한 경쟁이 어떤 변태적인 행동을 낳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절 하노이의 프랑스인들은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들은 쥐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쥐 가죽을 가져오는 하노이 주민에게 한 필 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하노이 주민들은 쥐를 사육하기 시작했고, 결국 조장된 경쟁 때문에 쥐로 인한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두 번째 사례는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생물학자들은 공룡 뼈를 찾는 작업에 농부들을 동원하기 위해 뼈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한 개 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농부들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며, 가능하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비교적 큰 뼈를 발견할 때마다 그 뼈를 여러 개의 작은 조각으로 쪼갰다.


이러한 사례는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 사례에서 쥐를 질병으로 바꾸고 하노이 주민들을 의사로,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정부를 국가의 의료체계로 바꾸면 오늘날 의료 분야의 실태를 상당히 잘 묘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단지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그 질병을 치유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돈을 쓰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 결과 의료비용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우리 사회는 질병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한다.


공룡 뼈와 관련된 두 번째 사례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오로지 이름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편수만으로 학문적 성과를 평가 받는데, 이러한 시책은 불꽃 튀는 논문경쟁을 불러일으켰다. 한 편의 논문에 방대한 내용을 담는 학자는 약지 못한 사람이다. 한 가지 주제를 여러 개의 소규모 주제로 나누어야 유리하다. 즉, 논문의 편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깍두기 전술을 쓰는 것이다. 그러고도 각각의 논문을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하찮은 내용을 가지고 형식이 극도로 복잡한 모델을 만들거나, 저급한 수준의 내용을 어마어마한 전문용어로 포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이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더 많은 논문이 발표될수록, 더 많은 개혁이 단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에 진학할수록, 더 많은 건강검진을 받을수록, 더 많은 품질보증서가 발행될수록 잘 사는 나라라고 들어왔다. 안됐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쓸모없는 제품의 생산은 이 자리를 창출할 수는 있겠으나, 동시에 꼭 필요한 좋은 제품의 생산을 저해한다. 무의미가 의미를 구축하고, 질 대신 양이 득세하며, 일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당근과 채찍이 일터를 지배한다.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보이지 않는 손의 불편한 진실 - 시장은 항상 이성적일까?

보이지 않는 손의 탄생

보이지 않는 손은 원래 아담 스미스가 처음으로 경제학에 도입한 개념인데, 스미스는 개인이 시장원리에 따라 영리를 추구할 때면 언제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여 개인의 영리와 더불어 공공의 이익도 증진되도록 조종한다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축복과도 같은 기능을 경제학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할까?


결론을 말하자면,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쟁, 즉 시장경쟁은 가격체계에 의해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킨다.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가격은 상품의 희소성뿐만 아니라 그 효용가치도 반영하므로 시장가격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각자의 뜻을 최상으로 이룰 수 있다. 기존의 생산요소를 이용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또 그 생산이 정확히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진다면 공공의 복지가 증진되는 결과를 얻는다. 따라서 시장은 효율적이고, 효용가치의 상승으로 모두가 이익을 보게 되므로 도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 오늘날 경제학에서 효용이라는 말이 모든 논의의 핵심이 된 일도, 시장의 기능을 맹신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효용성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일도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켜 시장의 효용성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정확히 무엇일까? 우선 이른바 완전한 처분권이 보장되어 어떤 재화나 서비스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에 완전한 처분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가격이 형성될 수 없다. 완전한 처분권은 당연히 사유재산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깨끗한 공기와 같은 공공의 재화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유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에 한해 완전한 처분권이 보장될 때, 추가로 다음과 같은 조건들도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손이 기능을 발휘한다.


1. 시장 참여에 제한이 없어야 하고,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시장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 완전경쟁원칙이 유지되므로 시장경쟁이 가능해진다.

2. 시장의 투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 참여자들 누구나 시장상황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3. 시장 참여자 각각은 합리적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다른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동일 종류의 제품 가운데 누구의 제품이 팔릴지는 오로지 가격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4.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공급자는 이윤 최대화를, 모든 수요자는 효용 최대화를 추구하며, 이때 누구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한 제품이 추가로 생산될 때마다 생산비용이 증가해야 하고(한계비용의 증가), 동일 상품의 소비가 늘어날 때마다 효용가치는 줄어들어야 한다(한계효용의 감소).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조건들 가운데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상품을 다수의 생산자가 공급하는 사례는 오늘날 보기 드문 일이다. 실제로는 소수의 독과점업체가 차별화를 추구하기 위해 경쟁사의 제품과 어떻게든 다른 제품을 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머지 조건들도 충족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늘날에는 상품에 딸린 옵션이 너무도 많고, 소비자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 따라서 시장에 나온 모든 상품에 대해 정보를 완벽하게 꿴 후 그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르는 일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급자들이 가격비교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정보의 투명성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나선다.


이성적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 - 경쟁은 정말 효율적일까?

민영화의 딜레마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시장숭배사상이 널리 퍼지는 동시에 곳곳에서 경쟁을 찬양하는 목소리 또한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이들 경쟁숭배자들은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쟁을 통해 우리 모두 더 잘 살게 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학술,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서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경쟁을 일으키려 애썼고,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엘리트 운동선수들처럼 최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끊임없는 겨루기를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경쟁을 조장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무참히 실패했고, 우리도 오늘날의 인위적 경쟁으로 말미암아 똑같은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계획경제시대에 일어난 한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소련의 제조업은 노동생산성은 매우 낮은 반면 자원의 낭비는 대단히 심했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생산량과는 관계없이 일정했고, 그나마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장을 도입하면 매우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 방법은 이념적인 이유로 채택될 수 없었다. 결국 시장경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모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방법은 이념적으로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경제전문가들은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기 위해 생산성을 측정할 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신발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소비경쟁을 조장하기 위해 자재를 많이 사용한 우수 노동자에게는 성과에 따라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발상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 많은 신발을 생산하는 사람은 더 많은 원자재를 소비할 터이고, 원자재 소비량은 무게로 측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겉보기에 훌륭해 보이는 이 아이디어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생산되는 신발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업무에 열성을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이 갑자기 원자재 소비를 늘리기 위해 머리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더 많은 자재가 드는 새로운 모델이 끊임없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경쟁으로 경제의 효율을 높이기는커녕 점점 더 조야하고 불편한 제품만 생산되었고, 이렇게 만든 신발은 마침내 아무도 신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2007년 스위스 주요 일간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은 21세기 초반 영국의 공공업무 아웃소싱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영국의 각 시 당국은 블레어 내각이 불러일으킨 민영화 열풍에 동참해 공공업무를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불법주차 단속 업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법주차 단속을 민간기업이 맡으면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텐데 굳이 국가가 직접 딱지를 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동시에 단속 업무를 맡은 업체에서는 담당직원의 근무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경쟁을 조장했다. 즉, 발부한 범칙금 통지서의 수에 따라 담당직원의 보수를 차등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우수 직원에게는 특별 보너스로 텔레비전이나 자동차까지도 주기로 했다. 그러자 민영업체의 주차 단속 담당직원들은 대단히 생산적이고도 혁신적인 직원으로 변모했고, 나아가 시민의 진정한 골칫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직원들은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가 주차 시간이 만료되기 무섭게 딱지를 끊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영국의 일간지들은 자동차 운전자가 시간 측정기에 동전을 넣기도 전에 딱지를 끊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도했다. 또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의 시각을 변조하는 단속요원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에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들기도 했다.


구소련과 오늘날의 영국에서 있었던 이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일반적으로 공익증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변태적인 충동을 불러일으켜 마찬가지로 변태적인 행동을 낳을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가급적이면 많은 재료를 소비하라고 충동질을 하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다. 가능하면 많은 딱지를 떼게 만드는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일처리는 사람들의 욕구와는 무관하게 진행된다. 사람들은 극도로 무거운 신발을 원하지도 않고, 많은 범칙금 통지서를 발부하는 주차장도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쟁에서는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생산할 때 소비자의 욕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정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자들끼리 경쟁할 뿐이다. 또한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하는 시장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정상적인 시장과는 달리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품이 생산되지도 않는다.


성과의 역설 - 숫자의 함정에 빠진 경제학

경제에 드리운 라플라스 악령

물리학자들은 이른바 라플라스(Laplace) 악령이 허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라플라스 악령이란 유명한 프랑스 물리학자 라플라스가 19세기에 세운 가설로, 어떤 구조를 정확히 측정할수록 그 구조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이론이다. 19세기는 아직 뉴턴에 입각한 역학적 세계상을 믿던 시대였으므로, 이론적으로는 정확한 자료측정을 통해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훗날 물리학자들은 어떤 구조를 정확히 측정할수록 그 구조에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립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위치측정에 사용된 에너지가 구조 전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기업이나 공공기관과 같은 사회조직에도 매우 유사하게 적용된다. 업무의 질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애쓸수록 조직체계에 대한 간섭이 더욱 심해지므로, 나중에는 조직원들이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업무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경영학자들과 컨설턴트들이 여전히 라플라스 악령을 숭배하고 있으며, 질적인 업무의 수행을 정확히 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제조업이 산업의 중심이던 시대에는 노동자의 업무수행을 단순한 수치로 나타낼 수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사람이 수행한 일은 노동시간의 양이나 처리한 제품의 수로 판단할 수 있었고, 이 두 지표는 노동자의 실제 수행능력을 상당히 정확하게 나타냈다. 이 경우 업무능력 측정은 질적인 측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100미터 달리기와 유사하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이런 식으로 노동하는 곳은 거의 없다.


균형성과기록표와 벤치마킹의 속임수

고객만족도는 불만신고비율로 측정하고 직원만족도는 결근율로, 사회적 의무는 장애인 고용비율로 측정하는 등 각 부문의 실태를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한 지수를 통해 평가하려 한다면 나중에는 정확하기는 하나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수치만 얻게 된다. 이를테면 특정 서비스나 제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는지는 불만신고비율로써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불만신고비율은 고객만족도의 여러 가지 측면 가운데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불만을 신고하는 고객은 전체의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반면, 이 지수는 나머지 대부분의 고객들이 얼마나 만족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공공행정을 위한 균형성과기록표가 아무리 포괄적으로 또 세부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질적인 업무의 수행과 성과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균형성과기록표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은 본질적인 면에서 벤치마킹에도 거의 똑같이 할 수 있다. 벤치마킹은 실제 기업경영에서 확립된 기법인데, 이후 컨설팅 회사에서 인수했다. 미국의 제록스가 처음으로 도입한 벤치마킹의 목표는 개선 가능성과 이에 필요한 조건들을 조사하고, 다른 사례에서 본보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비용, 업무수행, 성과, 진행과정, 기술, 구조 등을 지수나 표준에 의거해 부서, 사업, 조직 등과 같은 다른 단위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한다. 그 결과는 저기 어딘가에 있다는 대단히 미심쩍은 모범사례를 찾느라 영구적으로 노력하는 일이다. 그런데 모범사례를 지표에 의해 알아내는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기업경영에서는 그나마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무엇이 모범사례고 무엇이 아닌지는 결국 시장에 의해 판가름나니까. 시장에서는 비용을 수요에 따른 성과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으므로 기업의 이윤, 자기자본비율 또는 시장과 관련된 기타 지표들을 통해 그 기업이 모범사례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밖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의 경우 다른 사례를 통해 배우기는 웃기는 광대극이 된다. 최우수 직원의 영예는 임의로 정한 어떤 지숫값이 가장 높은 사람이 누릴 테니까. 그러므로 벤치마킹은 있지도 않은 시장을 대신해 인위적으로 경쟁을 조장하기 위해 도입되고, 이 경쟁에서 모든 사람이 최우수 직원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개선하기 위해 영원히 노력해야만 한다.



죽은 경제학자가 지배하는 사회

휴짓조각이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 - 의사들을 장사꾼으로 만드는 법

시장논리에 휩싸인 의료산업

모든 선진국에는, 최근에는 미국까지도, 의료행위에 든 비용을 지급해주는 의무건강보험이 있다. 즉, 환자가 치료비를 직접 지불하지 않고 자신이 낸 보험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불하는 제도다. 이른바 제3부문 지불을 통해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의 치료비 부담을 덜어주고, 건강한 사람이 많이 가입한 보험기관은 환자가 많이 가입한 보험기관에 부담금을 지원해줌으로써 한 국가의 모든 국민이 수입이나 건강상태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건강을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재화로 보기 때문에 건강보험은 본질적으로 공공복지에 크게 기여한다. 반면 성형수술과 같은 사치 의료행위는 기본 의료 서비스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므로 돈벌이가 궁극의 목적인 의사들은 부유층 환자들을 상대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주력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방금 설명한 바와 같은 의료 서비스 공급체계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시장은 전반적으로 제제를 받았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건강보험의 의료비 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비가 증가한 원인이 소비자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의사들은 건강보험기관으로부터 의료수가를 받아왔고, 병원들도 의사들이 제공한 서비스에 따라 보험기관에 비용을 청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로는 업무의 효율성을 촉진하기도 어려웠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자극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서비스의 질과는 관계없이 의료비는 청구하는 대로 지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의료비에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질병군별 포괄수가제였다.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란 병원이 보험기관에 청구한 입원환자의 치료비에 대해 질병의 종류에 따라 일정액으로 정해진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이 제도로 인해 비용경쟁이 불붙게 되어 병원들은 입원환자의 치료비를 내리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주장이 자리 잡고 있다.


비용과 사망률을 아웃소싱하다

우선 포괄수가제는 환자의 재원기간을 가급적이면 줄이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하기 전에는 재원기간을 바탕으로 수가를 계산했으므로, 병원 측에서는 환자를 가능하면 오래 붙잡아두려 했었다. 반면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이후부터 조기에 유혈 퇴원을 시킴으로써 직접적인 비용절감효과를 노리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환자의 조기퇴원은 외래진료비 증가로 이어지지만, 병원은 이러한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병원의 관심은 오로지 환자의 입원기간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는 데 있을 뿐이다. 결국 의료비의 일부를 입원치료에서 외래치료에 떠넘기는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조기에 퇴원한 환자들 가운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진단을 받고 또 입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병원은 같은 환자에 대해 이중으로 포괄수가를 청구할 수 있으므로, 장기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해서도 질병마다 따로따로 치료하여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만든다.


포괄수가제가 의료계에 끼치는 두 번째 영향은 의사들이 특정한 질병만을 치료하려는 경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질병군에 속한 질병들 가운데 진료가 표준화된 간단한 질병만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치료가 복잡하고 어려운 질병은 가급적 회피한다. 또한 간단한 치료를 하면서 가능하면 많은 비용을 들이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포괄수가 산출액에서 초기 진단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치료 단계에서 실행한 이른바 주요 처치에 대한 수가는 점점 높게 책정되고 있으므로, 간단한 질병 치료에 고비용을 들이면 포괄수가는 훨씬 높아진다. 이를테면 환자를 불필요하게 중환자실로 옮기는 일도 포괄수가를 더 높게 책정받기 위한 조치 가운데 하나다.


결국 병원들은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여전히 대포로 참새를 잡고 있다. 다만 사용하는 대포가 달라졌을 뿐이다. 의료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기 전에는 병원들이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치료기간을 늘림으로써 금전적 수입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반대로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이후로는 표준화 진료와 치료기간 단축을 통해 각 환자군 당 실진료비를 낮추는 대신 값비싼 의료기기 사용과 고비용 처치 등 이른바 과잉진료를 함으로써 전체적인 포괄수가를 올리고 있다.


성스러운 소는 없다 - 무의미한 경쟁의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법

허튼짓을 멈춰라

- 모든 양을 잠재적인 검은 양으로 간주하지 마라

학문, 교육, 그리고 의료 분야에서는 능력 있고 동기 충만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롭고 고무적인 환경을 마련해줄 때 최고의 기량이 발휘되고 질적으로 우수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학자, 교수, 교사, 의사들에 대해 업무태만을 의심하고, 코앞에 당근을 흔들거나 채찍을 휘둘러야만 좋은 성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검은 양으로 보는 태도는 생산성을 저해하는 일이다.


물론 검은 양 몇 마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통제가 아니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창의적이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통제는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관찰한 결과 검은 양일 소지가 다분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테면 어떤 학자가 몇 년에 걸쳐 논문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의구심이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 질은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질적인 업적을 양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고 있음에도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이제는 이러한 측정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질은 원래 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주안점은 계량화된 지수를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특정 목표를 달성하거나 과제를 완수하는 일에 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특정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하는 연구나 학교교육을 통해 국민의 교양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 성과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지수를 보완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수의 값은 단지 추가적인 정보로만 이해해야 하며, 질을 평가하는 주된 잣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 효율성은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라!

실제적인 효율성이란 오로지 질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복합적인 성과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일의 효율성 역시 오로지 질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너무 경솔하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종종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효율성을 좀 더 폭넓게 정의하고 좀 더 정확히 이해하는 순간, 경쟁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효율성 향상으로 얻는 이익은 거품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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